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23화 (23/181)

4. 당신에게 도달하는 길 (3)

잠시 마당에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내가 가야 할 길을 마주해야만 했다.

선생은 이물이었다.

그의 악명은 ‘남겨진 강령술사’였다.

선생이 나로 인해 성불하면서 내가 달리 얻을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나는 이미 그와 대화하면서 그가 가진 고유한 능력인 ‘목줄’을 습득한 상태이니 말이다.

「너무 좋은데? 이 오두막은 이제 네 거잖아.」

좀 전까지 앉았던 의자 앞의 책상.

그 위에는 선생이 쓰던 뼈칼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금속이 아니라 이물의 뼈로 만든 단검은 금속으로 만든 내 단검 못지않게 예리했다. 그래서 모종의 강화가 된 뼈칼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그 뼈칼을 주워서 재결합 2계로 품속의 단검과 완벽히 합체시켰다. 확실히 뼈칼은 강화가 된 ‘주물’이었고, 합체 과정에 54의 악을 소모하였다.

「여왕의 독니.」

「악한 존재를 상대로 효과적인 단검이 되었어.」

본래 선생이 갖고 있던 뼈칼은 목줄 능력과 연동되어 이물을 상대로 공포를 각인하기에 좋은 무기였다. 그랬던 무기가 철로 만든 단검과 합쳐져 더욱 공격적으로 바뀐 것이다.

「날붙이에 베인다는 공포를 이물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이지.」

그리고 이물이 공포를 느끼면 복종시키기도 쉬워진다. 복종시키기 쉬워지면 내게 의존하도록 만들기 쉬워지고, 그러면 결과적으로 목줄을 채우는 일도 쉬워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목줄이 아니라 단순히 이물 사냥을 위한 무기로도 유용하게 쓸 수도 있다.

‘그런데 여왕의 독니라고 한다면…. 선생은 여왕이라는 이물을 사냥한 건가?’

「그가 갖고 있던 악은 116이야.」

「그리고 그의 목줄 1계 능력이 중복으로 흡수되면서, 너의 목줄 능력이 2계로 강화되었어.」

목줄 1계는 내게 의존하는 악귀를 소유할 수 있으며, 내가 원할 때 소환진으로 불러낼 수 있는 주술적 능력이다.

그랬던 목줄 1계가 2계로 강화되면서 새로운 기능이 생겼다.

「너한테 굴복한 악귀도 소유할 수 있어. 또한 언어능력이 부족한 악귀라도 복잡한 정보교환이 가능해졌지.」

의존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굴복만 시켜도 목줄로 묶을 수 있다. 그리고 거미 악귀처럼 말을 못하는 악귀라도 내게 복잡한 정보를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내가 알아낸 것은 다름 아닌 ‘여왕의 독니’의 출처였다.

혐오의 대상이라는 이물.

다시 말해 거미 악귀들은 모두 어미를 두고 있었다.

전생이 있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잿빛세계에서 시작된 존재들이자, 모두 하나의 공통된 어미로부터 영력을 나누어 받고 태어난 소환물이었다는 것이다.

거미 악귀들이 가지고 있는 악 또한 어미로부터 나누어 받은 것이었다. 녀석들의 육체를 이루고 있는 피와 살점 역시도 어미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무고한 아라나크.」

거미 악귀들의 여왕이 가진 악명만 들어도 짐작할 수 있다.

일단, 근본적으로 악한 존재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이유에 의해 이물이 될 수 있다. 99마리의 한이라는 이물이 원한과 복수심을 품고 이해와 공감을 원했듯, 무고한 아라나크라는 이물도 분명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을 터이다.

‘선생이 아라나크를 목줄로 소유하고 있었나?’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가 성불하면서 무고한 아라나크는 자유의 몸이 되었어.」

‘아라나크가 무슨 이유로 선생에게 의존하게 된 거지?’

「거기까진 모르겠네.」

무고한 아라나크가 내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일. 그것은 거미 악귀를 다루는 것만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넌 목줄 2계까지 됐으니까 형편이 좀 나아. 녀석이 네게 의존하지 않으면 그냥 굴복시켜버려도 되니까.」

「아니면 성불시키거나 죽여서, 녀석이 갖고 있는 악을 습득하고 고유한 능력 흡수를 노리는 것도 괜찮지.」

어느 방향이 되든 나는 무고한 어미라는 이물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두막을 나오자마자 거미 악귀에게 물었다.

“너희를 낳은 어미는 어디에 있지?”

* * *

베르자인은 집무실에서 보고를 듣는 중이다.

“갑자기 나타나셔서 세비우크의 시신을 가지고 홀연히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시신을 어디다 쓰겠다는 말은 없었어?”

“없었습니다. 그냥 필요하시다는 말씀만 하셔서…. 나중에 베르자인 님께 따로 설명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베르자인은 생각에 잠겼다.

‘얘는 도대체 잿빛세계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거야?’

자객은 이어서 보고했다.

“그리고 소식통에 따르면 달란트 상회 측에서 교회와의 접점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썅…”

“아무래도 이번 전쟁에 양지의 외압이 들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습니다. 세비우크와 최정예 암살단이 너무 간단히 처리된 탓에, 달란트가 위기감을 느껴 그런 쪽으로도 발을 걸치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닌가.

자객은 그런 의구심이 섞인 눈빛을 베르자인에게 보냈다.

‘페인은 승천자를 죽이겠다고 했어….’

그렇다면 승천자는 페인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아마 승천자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마법은 세인트 왕국에서 제일이며 그의 눈과 귀는 왕국 전반에 퍼져 있으니.

외국과 전쟁이 억제되고 있는 것도 승천자라는 마법사 하나가 군대를 대신할 정도의 무력을 갖춘 덕분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나 대단한 승천자가 페인의 존재를 모른다는 게 오히려 어떤 관점에선 이상할 수도 있다.

“야.”

“예.”

“달란트 놈들이 교회와 접점이 있다는 건 구체적으로 누가 누구를 만났다는 거야?”

“달란트 의장입니다. 그가 최근에 들어서 작은 교회를 돌며 자금을 퍼붓고 자신의 긍정적 입지를 높이고 있습니다. 신도들은 물론이며 신관과 승천자도 그에게 많은 헌금과 정화수를 받았고, 그것들이 성수가 되어 신도들에게 돌아가는 순환구조가 생겼습니다.”

베르자인은 한숨을 삼켰다.

자신을 암습한 최정예 암살단과 최악의 적수였던 세비우크가 단숨에 정리되었고 천군만마인 페인까지 있으니 낙관적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쪽이 낙관적인 상황인 만큼 저쪽에서도 다른 대책을 강구한 것이다.

“우리랑 달란트가 충돌했을 때…. 달란트 측에서 대놓고 승천자한테 도움을 구할 수도 있겠어.”

“예. 그게 아니라면 승천자를 다리로 삼아 왕궁까지 입김을 넣을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이 씨발 좆같은 새끼들…!”

베르자인의 얼굴이 구겨짐과 동시에 그녀의 손 밑에 있던 애꿎은 문서도 같이 구겨졌다.

그리고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구겨진 얼굴을 침착함으로 덮어버렸다.

자객은 그런 그녀의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거리낌 없이 물었다.

“먼저 칠까요?”

“먼저?”

“그자들이 양지의 힘을 빌리기 전에 말입니다. 초장에 몰살해버리면 외압이 들어올 기회도 없겠죠. 오히려 전쟁이 빨리 끝나고 음지의 서열이 정해질 테니, 양지의 입장에서는 달란트 상회를 흡수한 황금달의 손을 곧잘 들어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뭐, 어차피 양지에서 원하는 건 돈, 무력, 이 바닥에 대한 통제력이니깐.”

“그 말씀 그대로입니다.”

베르자인은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몇 가지 계획을 짜고 몇 가지 계획을 버렸다.

“…페인.”

“이번에도 그자를 이용하시려는 겁니까?”

“놈들이 그랬듯 우리도 대규모 병력을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어. 양지가 우리보다 상회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면 더욱 그렇겠지. 그러니까 페인이야.”

“그쪽에도 페인과 같은 강자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래서 페인이 실패한다면 어쩔 수 없이 전면전으로 가는 수밖에.”

“페인을 어떻게 잠입시키죠?”

“걔가 2층에서 갑자기 나타났다며.”

“그렇습니다.”

“걔는 실재세계와 잿빛세계를 오갈 때 자기 몸을 원하는 위치에 소환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강령술사라 했지. 그 거미 같은 괴물을 소환해서 날 살려냈다고. 그러니까…. 일단 페인이 내부로 진입만 성공하면 돼.”

“그럼…”

“걔 존재 자체가 달란트를 죽일 실력자이자, 어디에서든 군대를 소환할 수 있는 지휘관인 거야.”

* * *

무고한 아라나크는 숲속의 으슥한 동굴에 있었다.

동굴의 입구 근처에는 거미 악귀들이 배회하고 있었는데, 녀석들은 내가 동굴로 들어가려는 걸 딱히 저지하지 않았다.

“키그그그…”

16개의 붉은 눈으로 날 뚫어져라 쳐다보며 경계하는 듯한 울음만 내뱉을 뿐이었다.

그래서 난 순조롭게 동굴로 들어왔다. 밤눈 능력이 있어서 횃불이나 마법 등불조차 필요 없었다.

동굴의 통로는 상당히 넓었다. 그 넓은 통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지 벽면과 천장에 오래된 거미줄이 빼곡했다. 그리고 간혹 거미줄에 붙은 알 수 없는 사체나 뼈다귀가 보이기도 했다.

결국 난 동굴 끝자락, 어미가 있는 방으로 무사히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천장에는 불규칙적인 거미줄이 있고 그 거미줄에 사람보다 큰 갈색의 알집들이 매달려있다.

일단 평범한 거미 악귀보다 우월한 어미라면 사람 말은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사사사스스슥…!

평범한 거미 악귀보다 몸집이 작은 녀석들이 사방팔방 흩어졌다. 새끼들이었을까.

그리고 저 거미줄과 알집 사이의 어둠 속에서 큼지막한 붉은 눈 16개가 안광을 발했다.

그 붉은 안광만으로 방이 밝혀질 정도였다.

「무고한 아라나크.」

「갖고 있는 악은 315.」

정말이지 거대한 거미의 형상이다. 만약 거미에 관련된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라나크를 마주하는 것만으로 기절했으리라.

저런 몸집이라면 동굴의 통로조차도 비좁아서 바깥으로 나가질 못할 것만 같다. 혹시 개미 군락의 여왕개미처럼 자신의 새끼들만 바깥으로 보내는 습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후두둑…!

아라나크가 조금 앞으로 기어 왔을 뿐인데 천장에서 흙이나 돌멩이 따위가 떨어졌다.

아라나크의 머리는 거미 악귀와 똑 닮았다. 커다란 턱과 16개의 붉은 눈을 가진 것이다.

단, 아라나크의 머리와 배 사이에는 상반신만 노출된 여성의 형상이 마치 자라난 것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제법 미녀이긴 한데, 눈이 까만색이네.」

흰자위 없이 그저 새까만 눈이다. 여성의 상반신 형상을 하고 있는 몸체도 마치 거미의 갑각 같은 갑옷을 두른 듯한 느낌이다.

이윽고 아라나크는 머리를 아래로 향하여, 여성의 상반신에 달린 또 다른 머리로 날 마주했다.

나름 눈높이를 맞춰준 것 같다.

“넌, 그자의…. 아이인가?”

“제자야.”

“제자.”

발음이 조금 어눌하긴 하지만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머리와 배 사이에서 자라난 여성의 상반신 덕분이다.

“그자는…. 그자의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

상실감이 엿보인다.

선생은 자신이 악귀들을 철저하게 이용하는 것이라 했는데, 지금 아라나크의 반응을 보면 또 무조건 그렇게 이용하는 관계는 아니었다는 걸까.

“그분은 성불하셨어.”

“성불을…. 했다고…?”

“염원을 이루셨거든.”

“어째서지…?”

“내가 도와드렸어.”

“어째서지?”

“…뭐?”

뭔가 이상하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쿠드드드드!

아라나크가 느닷없이 크게 움직였다. 천장의 흙먼지가 떨어짐과 동시에 온 사방의 벽면에서 새끼 거미 악귀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하얀 거미줄을 새까맣게 뒤덮었다.

“나를 두고…! 혼자서…!”

촤아악!

새끼 거미 악귀들이 일제히 내게 거미줄을 쏘았다.

어떻게 반응할 겨를도 없었다. 눈으로도 인식했고 그것을 피할 민첩성도 있지만 온 사방에서, 그야말로 모든 방향에서 사출되어온 거미줄을 피하기란 불가능했다.

「이게 뭐야?!」

“으으윽!”

거미줄이 나의 온 몸을 옥죄고 있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다. 그 와중에 아라나크가 위협적으로 다가와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위험하다.

「살의…! 이건 살의야!」

나한테 왜 이런 짓을 하고 날 죽이려는 건지 모르겠다. 모르겠고, 이 장소에서는 절대 녀석을 이길 수 없다. 일단을 살아야 한다. 거미줄이니까 불태워버리면 어떻게든 구속을 풀 수 있으리라.

‘발화…’

콰악!

그러나 내가 속으로 주문을 다 외우기도 전에 아라나크가 내 목을 물었다.

“커헉…! 끄으으…!”

녀석의 송곳니가 흡혈귀처럼 목을 뚫고 들어왔다. 뭔지 모를 위험한 액체가 식도인지 기도인지 목구멍을 타고 심장이 있는 곳까지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숨이 가빠졌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대처할 수 없다. 사고할 수 없다.

“허억…! 허어억…!”

미형의 얼굴이 눈앞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다.

녀석은 나한테 화가 난 것 같다. 왜인지 모르겠다.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

“인간은 죽어야만 한다!”

의식이 점점 멀어진다.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에 들려오는 모든 소리가 머릿속에서 황홀할 정도로 맴돈다.

나는 그렇게 한번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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