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26화 (26/181)

5. 되먹임 (1)

원인은 그림자 법칙이다.

‘승천자가 날 보고 있어.’

그게 아니라면 지금 다차원 능력 발동이 안 되는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 지금 그가 나를 지켜보며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잿빛세계로 건너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새로운 의문이 떠오른다.

「승천자가 네 정체를 알고 있을까?」

그게 문제다.

세인트 왕국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가. 승천자가 굳이 나를 골라서 보고 있다는 것은 내 정체를 알고 있거나, 내 정체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너…. 좀 전에 장인의 방에서 방독면 벗었잖아.」

만약 내가 내 장비를 만들고 있던 그 순간에도 승천자가 날 지켜보고 있었다면….

이러면 내 선택은 강제된다.

‘오늘 밤에 끝장을 봐야 해.’

달란트 상회와 황금달 사이의 전쟁도, 승천자를 향한 복수도 오늘 안에 끝내야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마법사나 성기사가 몰려와서 날 죽이려 할 수도 있다. 혹은 리인이나 베르자인을 인질로 잡아 날 압박해올 수도 있다.

「베르자인이라면 모르겠는데 리인이 어떻게 인질로 잡혀?」

‘누구라도 승천자를 적대하면 왕국에서 더는 살아갈 수 없게 돼. 내가 여동생을 왕국에 두고 홀몸으로 도망치지 않으리라는 걸 승천자도 알고 있을 거야.’

「그 말이 아니잖아.」

승천자라면 인질도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그는 몇 명이든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나를 귀찮은 적이 아니라 명백한 위협으로 간주한다면 자신이 직접 나타나 강력한 마법을 발휘할 수도 있는 일이다. 승천자는 그만큼 강력하며, 악한 존재다.

‘목줄 3계라서 이물이 이물을 목줄로 묶을 수 있어. 아라나크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면, 지금쯤 녀석은 수많은 이물들을 목줄로 묶고 포식해서 군단을 키우고 있을 거야.’

승천차 측에서 어떻게 대처할 수 없도록 단번에 밀어붙일 것이다. 시간조차 주지 않고 무조건 유리하게 싸울 것이다. 내가 오늘 밤에 모든 것을 청산하리라는 걸 그는 모를 테니.

그리고 승천자를 죽이는데 성공하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내게 그런 짓을 했는지 대답까지 듣고 나면, 나는 마지막 핏줄인 리인과 함께 외부로 도망쳐 새로운 나라에 숨어들어 정착할 것이다.

「얘는 뭔 미친 소리를 하고 있어?」

난 반드시 해낼 것이다.

「리인은 죽었잖아.」

* * *

그래서 지금 가슴에 담긴 복수심이 삶의 원동력이자 죽기 전에 해결해야 하는 독이 되고 말았다.

「승천자는 너무 강하지만…. 그래도 목표는 크게 잡는 게 좋겠지.」

승천자를 죽이고 싶다. 죽여야 한다.

「걔 숨통을 쥐고 물어보자. 왜 그랬냐고.」

‘그리고 리인이 슬퍼하고 있을 거야.’

「지금쯤 자기 ‘오빠도 죽은 줄 알고’ 절망하는 중이겠지.」

* * *

리인은 집에서 옷을 만드는 일을 한다.

“아, 리인은 잘 지내고 있나요?”

“나 같은 촌놈은 모르지. 그 북적거리는 거리까지 들어갈 일이 없으니.”

평상시 사람들과 접촉이 거의 없는 아이라서 그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는 직접 집에 가봐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중하자. 이 상태로는 집에 갈 수 없다. 내 움직임이 도리어 리인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

「뭔…. 그게 왜 그렇게 돼?」

승천자가 내 행방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의심을 하고 있다면 더욱이 지금의 나는 리인과 접촉할 수 없다. 몰래 집으로 가는 것도 안 되고 다차원 능력으로 집에 들어가는 것도 안 된다. 승천자가 리인의 몸이나 내 집안까지 마법으로 감시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뒤처리’ 얘기였구나. 하긴, 승천자부터 처리하지 않으면 양지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네. 집에 돌아가는 것도 위험한 짓이고.」

* * *

“페인.”

“왜.”

“너, 승천자한테 복수할 생각이지?”

그녀가 어떻게 그런 결론까지 도달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무슨 짓을 당했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그녀라면 그리 어려운 추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맞아. 승천자를 죽일 거야.”

* * *

그는 반쯤 태운 담배를 세비우크의 공허한 눈에 구겨 넣었다.

“악령 전문이라서 그렇게 유명하진 않았지. 악령 관련된 의뢰 말고는 전부 거절했다고 하더라. 하늘에 부끄러운 일은 안 된다면서.”

“그런 사람이 어쩌다 추방을…. 손이라면 저희 같은 자들이 더 더럽지 않습니까?”

“성수를 살 돈이 없던 탓이겠지. 그리고 그쪽 가정도 나름 사연이 있잖아.”

“사연이라면…. 혹시 그분의 동생 되시는 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들려오는 소문은 그렇다고 하는데 자세한 사정은 나도 몰라. 베르자인 님도 ‘그자의 정신 상태’에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당분간 그쪽 이야기는 꺼내지 말자고 하셨다.”

* * *

승천자와 퇴마술사들이 와서 나를 붙잡아 가두고 고문할 때도 계속, 계속, 리인을 생각하며 버텼다.

그렇게 했다. 판단했다.

멍청하게도.

무지하게도.

리인은 내가 추방당하기 전날,

나와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화형을 당했는데.

- 살려주세요….

나보다 한 살 어린 리인은 내가 추방당하기 전날에 마녀로 몰려서 화형을 당했다. 그것도 내가 보는 앞에서.

당연히 그 아이를 마녀로 내몬 자는 승천자였다.

- 제발 풀어주세요… 제발, 하지 마, 하지 마…! 아아! 풀어줘…!

퇴마의식. 이라는 이름의. 고문.

몸에 조금이라도 힘이 있었다면, 영력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다면, 나를 구속하고 있는 칼과 성기사들을 찢어발기고 그 아이를 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리인은 죽고 말았다.

내 눈이 붉어진 그날, 죽음을 각오해서라도 버티는 게 아니라 날뛰는 게 정답이었다. 군중들에게 매질을 당하며 기다리다가 승천자에게 해명하는 것보다, 그 자리에서 군중들을 학살하고 승천자가 오기 전에 떠나버리는 게 정답이었다.

- 아아아…! 오빠, 살려줘!!

리인은 나를 보며 울부짖었다.

- 뜨거워! 너무 뜨거워…!

뜨거운 열이 그 아이의 발밑까지 올라왔을 때는 비명이었다.

-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다 불이 붙었을 때는 괴성이었다.

인간의 목청이, 저 작은 몸에서 그런 목소리가 날 수 있는 줄은 몰랐다.

-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미안하다.

미안했다.

할 수만 있다면 군중에게 가만히 매질을 당하던 나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바로 그 순간에는 승천자보다도 나 자신을 증오했다. 잘못된 판단을 한 나 자신을 지옥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 오빠…!

- 살려줘, 빨리…!

내게 살려달라고 절규했다.

- 그냥 죽여줘…! 나 좀 죽여줘!!

그러다 내게 죽여달라고 애원했다.

리인의 마지막 모습은,

그 십자가에는 머리칼도 옷도 피부도 없이 새까맣게 탄,

무언가, 고기 같은 것만 덩그러니 남겨져있었다.

나는 그 까만 것을 보고 의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지쳐서일까, 너무 화가 난 탓일까, 현실을 도피하기 위함이었을까.

눈을 떠보니 하루 종일 광장에 묶여있었던 것 같다.

“이건 악령이 인두겁을 쓰고 있음이 틀림없구나…!”

웃기기도 하다.

평생토록 모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가족도 없이 혼자 남겨지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도 살아갈 이유를 찾아낸 내가 한스럽다.

‘만약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승천자 새끼부터 잡아족칠 거다. 그 새낀 내가 정상이라는 걸 알면서 왜…….’

그런데 실재세계로 돌아갈 수 있던 것이다.

그래서 차마 죽지는 못해 살았고, 그래서 일단 결승선을 정해 달리고 있던 것이다.

승천자를 죽이고 싶다. 죽여야 한다.

그게 내 모습이었다.

복수는 리인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그건 그냥, 오로지 나를 위한 일이었다.

* * *

교회들은 문을 닫았다. 상점가의 불도 꺼진 늦은 밤이다.

이 시간이 올 때마다 뒷골목의 공기는 차갑게 변하는 듯하다.

자객들이 벽에 늘어선 가운데 베르자인은 페인의 방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올 때가 됐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늦지?”

“잿빛세계에서의 일이 순탄치 않은 게 아니겠습니까.”

“오늘 상회를 쳐야 한단 말이야. 당장 내일이면 상회에서 교회에 무슨 입김을 넣을지 몰라.”

베르자인은 방 앞을 이리저리 걷다가 괜히 문을 열어보았다.

아직도 빈 방이다. 아직 페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달란트 새끼 동선 파악은 끝났어?”

“계속 추적하고 있었는데 뒷골목을 벗어나는 바람에 사람을 붙이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잠시 대기하다가…”

“방향은 얼추 예상할 수 있을 거 아니야? 그 새끼 외출했다가 돌아오긴 했어?”

“베르자인 님의 예상대로 중앙교회에 갔다 온 게 확실합니다. 만약 승천자가 천리안으로 녀석을 지켜보고 있다면 자객을 붙이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한 시간 전에 그가 뒷골목으로 돌아온 것은 확인했지만, 그 이상 추적할 수는 없었습니다.”

황금달도 그렇지만 달란트 상회의 건물은 한두 개가 아니다. 뒷골목에는 그들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것이 너무 많다.

무엇이 상회의 본거지이고 달란트가 주로 어디에 몸을 두고 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오늘 직접 중앙교회로 갔다 왔다면 더더욱 오늘 밤에 전쟁을 끝내야 해. 이러다 진짜 외압이 들어오면 가만히 당해주는 수밖에 없다고.”

“달란트의 암살자들이나 승천자에게 들킬 것을 감수해서라도 추적을 붙일까요?”

“붙여. 들키더라도 달란트 머리만 어떻게든 떨어뜨리면 돼. 그 새끼 위치도 모르고 기습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

그때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왔다.

아래층에 있던 자객들이 먼저 몸을 보이고, 이어서 검붉은 것이 베르자인의 눈에 들어왔다.

“페인! 왜 이렇게 늦었어?”

“케베크 주조소에서 여기까지 뛰어왔다.”

“그 거리를 뛰어왔다고?”

“난 철인이잖아.”

“누가 그 모습을 보진 않았어?”

“지붕을 밟으면서 왔어. 그리고 네 자객들이 전부 무장한 채로 모인 것 같은데, 너도 오늘로 생각하고 있었냐?”

그 물음에 베르자인은 서둘러 이야기를 꺼냈다.

“페인, 내가 가만히 생각을 해봤는데 전면전으로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크더라고.”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야. 달란트랑 그 자식 주변의 실세들만 처리하고 자객을 펼쳐서 상회를 집어삼키는 게 좋겠더라.”

베르자인은 자신의 말을 그대로 이어받은 페인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가서 처리할게. 넌 자객들 시켜서 아무도 끼어들지 못하게 해.”

“그럴 생각이었는데 하필이면 오늘 달란트의 위치가 불투명해. 뒷골목 안에 있다는 건 확실한데 도중에 놓쳤어.”

“그래?”

“다시 자객을 붙이는 중이야. 녀석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찾았어. 달란트 위치.”

페인은 이미 달란트를 찾아냈다.

존재 추적.

역병 마녀가 갖고 있던 고유한 능력.

특정한 대상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알 수 있는 주술.

달란트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서 달란트와 같은 실재세계에 있는 페인은 그의 위치를 손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너랑 자객들은 조금 떨어져서 와.”

베르자인과 자객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페인을 쳐다봤다.

“내가 내부에서 일을 시작하면 외부에 있는 놈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달라고.”

“아…. 응, 알았어.”

* * *

이제 음지의 인간들은 모두 전쟁을 알기라도 하는 듯, 늦은 밤에도 불이 켜져 있던 건물들까지 깜깜하게 변해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긴장감 가득한 시간대, 이 어두운 거리에 돌아다니고 있는 자들은 달란트 상회의 자객들뿐이다.

“의장님은?”

“좀 전에 안으로 들어가셨어.”

4인 1조로 구성된 암살자들이 주변 거리를 돌고 있다. 황금달 자객들이 자기네 영역에 들어오진 않는가 순찰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마법사 한 명 안 빌려주려나?”

“마법사 하나 있으면 이 전쟁도 10초 안에 끝낼 수 있겠지.”

네 암살자는 비좁은 골목을 하나씩 확인하고 다시 거리를 걸었다.

“괜한 기대는 하지 마라. 마법사가 우리 전쟁에 끼어들었다가 소문이라도 나면 세인트교의 위엄이 어떻게 되겠냐.”

“이럴 땐 좀 불합리한 것 같아.”

“뭐가 불합리해?”

“황금달 놈들은 가끔 주물도 쓰면서 싸우잖아.”

“그거야 주물 쪽 시장은 걔들이 다 먹고 있으니까 그렇지.”

네 암살자는 다음 비좁은 골목에 도달했다.

“그러니까 우리도 이참에 황금달이 갖고 있던 그쪽 시장까지 가져오면…”

“야. 멈춰봐.”

밤보다 어두운 골목.

건물의 그림자가 만들어낸 음영 속에 더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기다려서 동공을 확장시켜야만 보일 정도, 그렇게 가만히 그 음영을 쳐다보고 있어야만 그 형체가 얼핏 보일 정도.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가로등이나 쓰레기나 뭔가의 구조물이나 물건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악몽이라면 몰라도 현실에는 있어선 안 될 이상한 형태다.

“저게 뭐지?”

다리가 좀 많은 것 같다.

왠지 모를 꺼림칙한 시선까지도 느껴진다.

“저게 우릴 쳐다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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