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27화 (27/181)

5. 되먹임 (2)

“저게 우릴 쳐다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네 암살자가 수상한 음영으로 한 발자국을 내디디려던 순간,

쯔윽!

그곳에서 사출된 거미줄이 그들의 목과 하관에 붙어버렸다.

“끄읍…!”

거미줄은 폭력적으로 수축했다. 그들의 목을 조르고 그들의 턱을 부술 기세로 수축해서, 그들이 비명은커녕 숨조차 제대로 내쉴 수 없도록 만들었다.

“흐읍! 흡…!”

누구는 목을 조이는 거미줄을 떼어내려 하고 누구는 도망치고 누구는 거미 악귀에게 직접 칼을 들이밀었다.

“크그기기기기기…”

그러나 음영 속 16개의 붉은 눈에는 결코 적수가 아닌, 그저 포획된 사냥감들이 보일 뿐이었다.

촤악!

골목길에서 어두운 선혈만이 터져 나왔다. 그 조용하고 비좁은 사냥터에 비명은 없었고 소란 또한 없었다.

“으으읍! 으읍…!”

그래도 즉각 도망쳤던 암살자 한 명은 거리로 나올 수 있었다. 목에 붙은 거미줄을 떼어내느라 손톱에 피가 묻어있고 두 눈에는 핏대가 섰다.

“쟤 뭐냐?”

“왜 저러지?”

같은 거리에 있던 다른 암살자 네 명이 그를 목격하였다.

- 읍…! 으으으읍읍!!

멀리서 보면 새벽에 잔뜩 취해서 바보처럼 춤이라도 추는 것 같다.

“저 미친놈이 왜 혼자 다니고 있어?”

이윽고 네 암살자는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 읍…!

느닷없이 뭔가가 골목에서 튀어나와 그를 덮친 것이다. 사람보다 몸집이 큰 그림자가 그를 넘어뜨리고 머리처럼 보이는 것을 그에게 들이대더니,

…쿠직!

산 채로 씹어먹는 것이다.

- 읍! 브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

“씨발…! 저 괴물은 뭐야?!”

악령이라고 하기엔 육체가 한참 뒤틀렸다. 인간이었을 시절의 형태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오히려 인간보다는 벌레에 가까운 형태다. 그것도 노골적으로 거미를 쏙 빼닮았다.

“구해야 돼!”

“이미 뒈졌어!”

“이, 일단 너는 빨리 튀어가서 보고해!”

“괴물 새끼…!”

그들은 호기롭게 단검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

그들의 배후에도 거미 악귀가 있었다.

그들의 배후, 건물 벽에 거미 악귀가 붙어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다리가 거미줄에 묶여있었다.

“이런…. 이런 건 어떻게…”

지금까지 수도 없이 사람을 죽여왔다. 까다로운 상대라도 네 명이 한 몸처럼 움직여 난도질하면 상처 하나 없이 죽일 실력이 있었다.

“키기기극…!”

그런데 이번엔 사람이 아닌 것을 어떻게 상대하라는 말인가.

- 커헉!

- 끄아악!

결국 그들은 그 자리에서 거미 악귀의 다리에 찍혀 숨통이 끊어지고 말았다.

* * *

달란트는 암살자 세 명과 함께 지하로 급히 내려가는 중이다. 나선형으로 깊어지는 돌계단을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그들의 땀방울도 점차 많이 떨어져 계단을 적셨다.

“내가 왜 지하까지 도망쳐야 하는 거야?!”

“그 괴물들은 벽을 오르고 창문을 깹니다!”

“괴물들?!”

“족히 열 마리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녀석들 한 마리 한 마리가 너무 날렵해서 저희 애들과는 상성이 좋지 않습니다…! 속도와 덩치도 문제지만 표창이나 화살이 먹히질 않고 성가신 거미줄까지…”

“루소!”

돌계단의 가장 선두에서 내려가고 있던 자가 달란트를 돌아보았다.

그는 다른 암살자들과 달리 복면을 착용하지도, 검은 복장을 하고 있지도 않다.

철그럭.

경량화 갑옷에 검집 두 개를 등 뒤에 교차로 메고 있다. 그래서 음지와 양지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젊은 기사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자다.

“예, 아버지.”

또한 그는 달란트의 오른팔이자, 상회의 칼이다.

“괴물들이 벌써 1층까지 들이닥쳤을 거다! 네가 가서 처리해라!”

“하지만 저는 곁에서 아버지를…”

퉁!

달란트는 루소의 투구를 주먹으로 찍었다.

“이 새끼가, 내가 가라면 가는 거지 뭘 따져?!”

그러자 루소는 두 손을 투구로 올렸다.

달란트의 뒤에 있던 암살자는 숨을 죽였다.

“……그게 명령이시라면 알겠습니다.”

루소는 투구를 고쳐 썼다. 그러고는 달란트와 암살자를 지나쳐 묵묵히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버지. 그대로 지하 수로에 진입하시면 중앙교회로 가는 길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알았으니까 올라가! 가서 괴물들을 막으라고! 내가 중앙교회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버는 것이 네 임무다!”

“예, 그럼…. 몸조심하십시오.”

그렇게 달란트와 암살자는 돌계단을 내려가고 루소는 돌계단을 오르게 되었다.

자신이 도망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 건지, 아니면 돌계단을 연달아 내려온 탓에 호흡이 부족한 건지, 씩씩대며 돌계단을 내려가던 달라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

조금 더 위쪽에서 돌계단을 오르고 있던 루소는 달란트의 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루소! 그래도 까마귀 가면을 쓴 놈은 상대하지 마라! 덤벼봤자 개죽음일 테니 말이야!

* * *

피가 많다.

“이 괴물 새끼들!”

“끄아악!”

거미 악귀들이 상회의 주점을 휩쓸고 있다.

낮에는 주점이었다가 밤에는 창관이 되는 이 건물, 이곳의 지하에 수로가 있는데 달란트는 그 수로를 통해서 중앙교회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잠깐, 잠깐만…! 사, 살려줘!”

녀석은 단검을 버리고 손바닥을 보이며 애원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도끼를 휘둘러 그의 머리를 쪼갰다.

으직!

8마리의 거미 악귀들이 상회의 암살자들을 사냥하고 있다. 암살자들은 창을 쓰기도 쇠뇌를 쓰기도 했지만 거미 악귀 앞에 그들의 무기는 무용지물이었다.

으적으적!

오도독!

죽은 이들이나 곧 죽을 이들은 거미 악귀들이 씹어먹고 있다.

「또 온다.」

암살자들의 움직임은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빨랐다. 하지만 고속화 2계가 적용된 내 동체시력은 그들의 움직임을 모두 파악하였고, 날아드는 표창이나 화살조차 인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드륵!

나는 식탁을 들어서 방패처럼 삼아 화살을 막아냈다. 그대로 식탁을 든 채 돌진하여 놈들의 몸을 짓이겼다.

“아아아악!”

팔다리가 으스러지고 갈비뼈가 부러져 내장을 찔렀으리라. 하지만 사람은 그 정도로 즉사하지 않는다.

‘마무리해라.’

식탁과 벽 사이에 몸이 끼인 자들은 거미 악귀들에게 산 채로 잡아먹혔다. 그나마 머리부터 씹어먹히는 자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아아…! 아파…! 아아아…!”

다리부터 조금씩 먹히는 자는 단검으로 자결하거나 그 자리에서 미쳐버렸다.

「지하수로로 가는 길은 계단 밑에 있어.」

나는 처참한 현장 속에서 걸었다. 누군가 내 뒤를 노리면 거미줄이 날아들어 배후의 암살자를 천장에 매달아 죽였다.

넓은 주점을 벗어나 문을 열고 계단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오니, 집단자살이라도 한 것처럼 거미줄에 목을 매단 채 천장에 붙은 시신들이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바닥에는 유혈이 낭자하고 누군가의 손가락이나 살점 따위가 나뒹굴고 있다. 그리고 그 핏빛의 현장에서 간신히 거미 악귀 두 마리를 죽인 암살자들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 오지 마…!”

‘방혈.’

퍼억!

그들의 검은 옷자락 안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복면에서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또다시 바닥을 피로 더럽혔다.

“으아아아!”

투명한 망토를 걸치고 있던 자가 내 오른쪽에서 창질을 해왔다.

푸욱!

그 창이 내 손목을 관통했다.

이렇게 보니 창이 아니라 작살인 것 같기도 하다. 끄트머리가 역방향으로 꼬챙이처럼 되어 있어 한번 관통시키면 다시 뺄 수 없도록 만든 무기다.

“지금이야!”

“죽여!!!”

투명한 망토를 쓰고 있는 자들이 더 있었다. 내 손목을 관통시켜 붙들고 있는 녀석까지 합치면 일곱 명이다.

“…아.”

달려들던 일곱 명이 행동을 멈췄다.

그들은 영혼이라도 빼앗긴 것처럼 몽롱한 눈을 하고서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다.

“죽고 싶다아…”

내 뒤로 자살기도자가 들어온 것이다.

“죽고 싶다아……”

그러자 일곱 명이 그 자리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들고 있던 단검으로 제 복부를 가르고 화살로 제 관자놀이를 찌르고 벽에 미친 듯이 머리를 박아대는 것이다.

그리고 저 옷장인지 무기함인지 모를 가구 안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묘하게 조금만 열려있는데 그 어두운 틈새에서 누군가의 눈빛이 보이는 것 같다.

‘숨어있는 놈들도 죽여라.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도 죽여라.’

나는 자살기도자를 앞세운 후 계단 쪽으로 걸었다.

“죽고… 싶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 따위는 없어 보이지만 이 카펫을 들추면 납작한 문이 있는 것이다.

타다닷!

그때 내 배후에서 누군가 달려드는 소리가 들렸다. 자살기도자의 자살 충동이 먹히지 않은 걸까, 나는 즉시 몸을 돌려서 도끼를 겨눴다.

“…?”

한순간이지만 앞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악마…! 죽어…!”

나보다 키가 한참 작은 소년이 내 허벅지에 칼을 꽂고 있는 것이었다.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지만 복장은 상회의 암살자들과 동일하게 검은 것을 입고 있다.

“너 몇 살이냐?”

“알아서 뭐 하려고! 이 악마 새끼야!”

“노예냐?”

소년은 나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나는 의장님의 자랑스러운 칼이다…!”

「세뇌라도 당했나?」

‘교육이겠지. 일단 얘는…’

콰가각!

그 순간 거미 악귀가 달려들어 소년을 물고 가버렸다. 동시에 공중에서 소년의 절단된 팔이 칼을 쥔 채로 다섯 바퀴를 돌고는 바닥에 떨어졌다.

비명은 없었으니, 물린 순간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즉사했으리라.

‘…바깥 상황은?’

「이 동네에 있는 졸개들은 다 몰려들고 있는 것 같아. 그래도 베르자인이랑 자객들이 잘 막고 있으니까 걱정 마.」

으드득!

일단 손목을 관통한 작살을 앞뒤로 부러뜨려서 뽑아냈다.

‘재결합.’

나는 허벅지와 손목의 상처를 봉합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계단까지 가서 카펫을 들추자 정말로 납작한 문이 나왔다. 동그란 문고리가 달려있는 것을 보니 상하로 열리는 문인 것 같다.

그대로 문고리에 손을 뻗었다.

콰아아아아아!!!!

뭐에 맞은 걸까.

갑자기 눈이 부셨다. 문 아래에서 무언가 폭발하며 날 밀쳐낸 것 같았고 방금 내 등이 천장에 부딪혔다. 그리고 내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곧장 일어나서 폭발의 근원지부터 보았다.

「루소.」

갑옷을 걸치고 있는 젊은 남성이 날 노려보고 있었다.

티딕! 티딕!

그는 양손에 검을 한 자루씩 들고 있는데, 두 자루의 검이 대장간에서 망치질이라도 당하고 있는 것처럼 불똥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네가 루소… 커헉!”

기침이 나왔다. 기침과 함께 전신으로 엄청난 통증이 퍼졌다. 화상 따위의 통증이 아니라 날붙이에 찔린 통증이다.

「이건 어느 틈에 꽂은 거야?」

내 복부에 단검이 박혀있었다.

설마 좀 전의 폭발 속에 단검을 섞었다는 말인가.

* * *

나는 베르자인에게 물었었다.

“세비우크가 그렇게 강하다면, 세비우크보다 강한 놈은 상회에 없다는 거야?”

“한 명 있긴 해.”

“누구?”

“루소. 가볍지만 견고한 갑옷을 항상 걸치고 다니는 과묵한 놈이야.”

“걔도 상회의 암살자인가?”

“암살자는 아니고 호위라고 하는 편이 맞겠지. 머리가 좋은지는 모르겠는데 항상 달란트 놈을 지키는 역할인 것 같더라고.”

“그럼 오른팔이네.”

“오른팔이지. 그래서 루소에 관해서는 내가 정보를 모아봤어.”

베르자인은 문서 두 장을 꺼내어 읽는 듯했다.

“루소는 전쟁고아인데…. 비 오는 날에 거리에서 구걸을 하다가 젊은 달란트에게 거두어졌다고 해. 이후엔 행방이 묘연한데 아마도 성인이 될 때까지 폭파술(爆破術) 연마 하나에만 투입되었다고 추측하는 중이야.”

“달란트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치겠네.”

“그래도 회유는 해봐. 절대적인 인간관계란 없어. 세비우크가 그랬던 것처럼.”

* * *

나는 복부에 박힌 단검을 뽑아냈다. 그리고 조금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 마디씩 꺼냈다.

“네가…. 달란트의 오른팔….”

“그러는 너는 페인이군.”

말문이 막혔다.

그가 내 이름을 정확히 언급했기 때문이다.

「쟤가 왜 네 이름을 알고 있는 거야?」

모르겠다.

황금달 내부에 첩자라도 있나.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머릿속의 여유가 없다.

‘날 지켜…!’

거미 악귀 두 마리가 루소에게 달려들고 자살기도자가 내 앞에 서서 대신 죽기를 간청했다.

콰콰콰쾅!!!

그러나 루소가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폭발이 일어나 거미 악귀들을 터뜨렸다.

“죽고 싶…”

루소가 내게 두 검을 교차시켜 겨눴다.

타닥! 타닥!

검에서 불꽃이 맹렬하게 휘몰아치는 듯하다.

「저런 미친!」

나는 옆으로 굴렀다.

콰아아아아!!

그 직후 누군가 실내에 천둥이라도 떨어뜨린 것처럼 엄청난 굉음이 터지더니 자살기도자는 살점만 몇 개인가 남겨둔 채로 사라져버렸다.

「복부는 봉합했어!」

「그래도 상처가 누적되면 출혈로 죽게 될 거야! 잃어버린 혈액이 다시 생겨나는 건 아니라고!」

‘방혈!’

그러나 루소는 멀쩡해 보인다. 피 한 방울도 터져 나오지 않은 것 같다.

그에겐 방혈 2계에 저항할 능력이 있는 것이다. 즉, 저주 저항 2계를 갑옷이나 육체에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좀 전에 자살기도자의 자살 충동도 먹히지 않은 것이다.

타닥! 타닥!

태생적으로 영력까지 많이 갖고 있는 놈인 것 같다. 또 검에서 불꽃이 맹렬하게 휘몰아치며 다음 폭파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엔 당하지도 피하지도 않을 것이다. 빨리 달란트를 찾아 죽여야 한다. 승천자가 개입하기 전에.

키이잉!

부정한 소환진이 내 앞쪽 바닥에서 둥글게 펴졌다.

콰아아아아!

루소로부터 시작된 폭발이 빛과 화염의 벽처럼 정면으로 덮쳐옴과 동시에 커다란 조각상이 내 앞에 나타나 폭발을 대신 받아주었다.

“…인가되지 않은 자.”

루소의 눈썹이 꿈틀했다.

“너에게. 기회를 준다. 너 또한 세인트교의 무고한 신도이므로.”

뜨거운 열과 연기를 뒤집어쓴 배척자가 루소에게 명령했다.

“투항하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