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31화 (31/181)

6. 징악 (1)

목줄 3계부터는 내가 소유한 악귀가 다른 이물을 목줄로 묶을 수 있다.

악귀가 악귀를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 아라나크의 거미 군단은 잿빛세계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아라나크는 거미 악귀를 움직여 이물들을 사냥하고, 그것들의 살점과 영혼을 먹이로 더 많은 거미 악귀들을 낳았다.

또한 사냥하여 죽이기에 아까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물은 목줄로 묶었다. 그렇게 사냥과 포획을 반복하면서 폐허의 절반 이상과 근방의 숲은 사실상 아라나크의 영역이 되고 말았다.

해가 저물고 있어 주변이 어둑어둑하다.

이곳은 잿빛세계의 뒷골목, 길거리다.

“키이이잉….”

나는 방금 거미 악귀 한 마리를 본보기로 때려죽였다. 주변에 모여든 다른 거미 악귀들은 겁에 질려서 더는 내게 달려들지 못하고 있다.

“아라나크. 네가 직접 나서도 날 이길 수는 없어.”

아라나크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좀 전까지 날 기습해 죽이려던 거미 악귀들이 슬금슬금 물러났다.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세 번째.’

아라나크는 벌서 세 번이나 날 죽이려고 했다. 녀석은 내가 비첸크로이 제국을 침공하는 줄 알았다가 그게 아니라고 하자 실망한 것이다.

“날 죽이고 내 능력을 빼앗고 싶다면 몇 번이라도 더 상대해줄게.”

나는 물러가는 거미 악귀들의 등에 대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건 명심해. 네가 실패할 때마다 피를 보는 건 너의 자식들이야.”

밤 사냥.

잿빛세계의 밤에는 더 강력하고 사악한 이물들이 출몰한다. 예전에 나는 밤을 피하고 밤에 숨는 전략을 취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더 강력하고 사악한 이물들을 사냥하여 더 많은 악을 취하고, 필요하다면 목줄로 묶는 것이다.

「저쪽에 먹기 좋은 존재가 있어.」

잿빛세계의 해는 실재세계의 해보다 빠르게 저물었다. 불빛이라곤 하나도 없는 거리를 칠흑 같은 어둠이 잠식하면 온 사방에서 이물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들 모두가 정체불명이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가봐.」

거리의 귀퉁이에 비좁은 골목길이 하나 있었다. 난 골목에 들어가지 않고 멈춰 섰다.

「분명 앞에 있는데…? 왜 안 보이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밤눈 능력은 사물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내 안의 악령보다 먼저 녀석을 찾아냈다.

‘가로등.’

녀석은 가로등에 있었다.

빛바래고 깨진 가로등의 돌출된 마법석 부분에 거꾸로 붙어 있었다. 아니, 거꾸로 서있다고 할까. 마치 어떠한 법칙을 무시하고 땅 대신 하늘을 걸어 다니는 것처럼 가로등에 우두커니 거꾸로 서있다.

여인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가로등에 잘 붙어서 서있지만 긴 머리칼은 을씨년스럽게 아래로 축 늘어진 것이다.

내 안의 악령은 곧장 녀석을 탐색하였다.

「밤의 외도자(外道者)」

「330」

역병 마녀가 344였다.

「시야 바깥으로 벗어나서 은신과 기습에 아주 탁월해. 그걸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녀석은 왼손에 뾰족한 말뚝을 들고 있었다.

「첨단공포(尖端恐怖)」

「말뚝을 닮은 주물이야. 찔렸을 때 단계적으로 정신적인 영향을 가할 수 있어. 많이 찔릴수록 피해는 배가 되는 거지.」

그럼 저 뾰족한 주물의 공격을 몇 번이나 용납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겠다.

「처음 찔리면 분노.」

싸움에 있어 분노는 망설임을 없애주지만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두 번 찔리면 절망.」

절망하게 되면 전의를 상실할 수도 있다.

「세 번 찔리면 공포를 느끼게 돼.」

「그런데 문제가…. 세 번 찔린 사람은 영구적으로 저 주물을 두려워하는 저주에 걸리는 거야. 녀석을 죽이고 저 주물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더라도, 다시 저것에 찔릴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평생 안고 살아가게 돼.」

「그밖에 저 녀석이나 주물이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이기더라도 세 번 찔리는 것은 피해야 한다.

푸욱!

「뭣…?」

등에서 시작된 통증이 전신으로 퍼져가던 순간, 나는 내 시야 속 가로등에서 녀석이 사라졌음을 인지했다. 그래서 몸을 회전시키며 들고 있던 도끼를 힘차게 배후로 휘둘렀는데,

부웅!

밤의 외도자는 도끼에 맞지 않았다.

녀석의 몸이 아니라 얼굴만 내 앞에 있었다.

그 괴리감은 녀석이 지금 내 앞에 거꾸로 서있기 때문이었다.

“크으윽…!”

시야 바깥으로 벗어나서 은신과 기습에 탁월하다는 게 바로 이 말이었다. 내 깊은 속에서부터 근원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그것을 다시 억누르고 나는 도끼를 수직으로 내려찍듯 휘둘렀다.

부웅!

녀석이 사라졌다.

하지만 내 직감이 소리쳤다.

부웅!

나는 다시 몸을 회전시키며 도끼를 내 배후의 상단으로 빠르게 휘둘렀다.

「밑에 있잖아!」

내가 상단으로 도끼를 휘두를 것도 예상했다는 걸까. 밤의 외도자는 바닥에 엎드려서 첨단공포를 내 발등에 찍으려 했다.

“이 개새끼!”

나는 그대로 발등을 움직여 녀석의 옆머리를 차버렸다. 이번엔 제대로 때리는 감각이 있었다.

밤의 외도자는 뒤로 넘어졌다. 나는 지체 없이 녀석의 심장을 가를 기세로 도끼를 치켜들었다.

「피해!」

녀석이 왼손에 들고 있는 첨단공포. 그것이 갑자기 길어져서 내 코앞까지 돌진해온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감지 않고 머리를 옆으로 틀었다.

카각!

그 뾰족한 것은 내 방독면의 뺨을 긁으며 비껴갔다. 하마터면 안면 정중앙에 구멍이 뚫릴 뻔했다.

“…!”

그리고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녀석은 또 그 자리에 없다. 뒤를 돌아보니 뒤에도 없다. 아래에도 없다. 그래서 내 눈에 들어오는 시야의 위쪽을 빠르게 훑었다. 그러나 없다. 그래서 고개를 아주 치켜들어 하늘을 보았더니 또다시 괴리감이 있었다.

밤의 외도자가 거꾸로 뛰어오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기습하는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허공을 밟으며 냅다 달려오는 것이다.

‘방혈…!’

통하지 않았다. 녀석은 내가 갖고 있는 방혈 2계보다 강한 저항 능력을 갖춘 것이다. 그러면 아마 발화 2계도 통하지 않으리라.

‘방사!’

달려드는 밤의 외도자를 향해 화염을 쏘아냈다. 나는 그 화염을 가림막으로 삼아 몸을 피했고 녀석은 예상대로 화염을 그대로 뚫고 들어와 지면에 말뚝을 꽂았다.

콰직!

그런데 바닥에 꽂힌 그 말뚝이 빠르게 자라나는 가시덤불처럼 땅을 헤엄치더니 그대로 튀어나와 내게 돌진하는 것이다.

내겐 감각 증폭 1계, 밤눈, 고속화 2계, 철인 2계, 지적 활동 1계가 있다. 그래서 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능력들이 없다면 절대 인지할 수 없는 속도감이라는 것을.

나는 돌진해오는 첨단공포를 도끼로 쳐내고 이를 기회로 삼아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방금 네 판단은 섣불렀어.」

우드드득!

밤의 외도자는 기괴한 방향으로 관절을 뒤틀며 일어섰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두 발을 하늘로 향하는 것이다.

그러더니 또 하늘에 서있는 게 아닌가. 이래선 녀석과 처음 조우했을 때와 다를 게 없다. 아니, 방금 녀석의 주물을 쳐내고 곧장 달려든다는 내 판단이 분노로 인해 흐려진 것이라면 상황은 전보다 불리해진 것이다.

「악귀 한 마리라도 불러!」

지금 목줄로 연결된 내 악귀들은 다른 곳에서 집단적으로 밤 사냥을 하고 있다. 아라나크를 필두로 살점과 영혼을 모으고 숫자를 불리는 것이다. 그렇게 군대를 만들어서 빌어먹을 승천자를 상대하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단 한 마리라도 여기에 부르고 싶지는….

…그렇게 생각하는 내 판단 또한 승천자를 향한 ‘분노’ 때문에 흐려진 것이겠지.

‘불나방. 나를 도와라.’

키이이잉!

밤의 외도자보다 훨씬 높은 하늘에서 소환진이 전개되었다. 별 하나 없는 밤하늘에 악귀가 출몰하여 밤의 외도자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불나방. 나는 녀석이 들고 있는 첨단공포를 원한다. 저 말뚝처럼 생긴 주물 말이다.’

밤의 외도자는 가능하다면 죽이지 않고 목줄로 묶고 싶다. 그래서 불나방에게 무기를 빼앗으라고 명령한 것이다.

부우우웅!

불나방은 악명 그대로 나방처럼 생겼다. 다만 그 덩치가 거미 악귀에 맞먹으며 날개에서 뿌려지는 적갈색 가루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근방의 모두에게 호흡곤란을 유발한다.

물론 난 방독면을 쓰고 있으니 면역이다.

“커허헥…!”

밤의 외도자는 불나방의 공격을 잽싸게 회피했으나 기침을 하고 있다. 녀석에게 불나방의 가루가 먹힌 것이다.

「그런데 불나방은 장님인데다가 멍청하다는 게 흠이지.」

불나방은 지면에 머리를 처박고는 이리저리 더듬이를 움직이며 벌레처럼 기어 다니고 있다. 머리에서 한 줄기의 붉은 피가 흐르는 걸 보니 어지러움이나 두통 비슷한 걸 느끼고 있는가 보다.

“커허헥! 케헥!”

나는 기침을 하고 있는 밤의 외도자를 노렸다. 빠르게 거리를 좁혀서 첨단공포를 들고 있는 녀석의 왼손을 노려 도끼를 휘두르는 것이다.

“헤에에엑하아악…!”

녀석은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못했다.

내 도끼가 녀석의 왼쪽 손목을 절단하였고 녀석도 자신의 손목을 잃기 전에 첨단공포를 움직여 내 손등을 찌른 것이다.

그래서 깊게 찔리진 않았으나, 두 번 찔렸다는 게 문제다.

“헤에케헤에엑…!”

절망감.

밤의 외도자를 목줄로 묶어도, 지금 바닥에 손과 함께 떨어진 첨단공포라는 주물을 습득해도 아라나크와 악귀들이 그 숫자를 아무리 불려도 내가 승천자를 이길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승천자를 상대로 싸우는 동안 무고한 희생자들까지 나올 것을 왜 생각하나. 이건 주물에 의한 효과다.

이 절망감에 휩쓸리지 말자.

“잡아! 저 새끼 잡으라고!”

제자리를 빙빙 기던 불나방이 그제야 밤의 외도자를 덮쳤다. 그리고 나는 손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 첨단공포를 주워들었다.

절단된 손은 바닥에 버리고 첨단공포만 들었다. 그 사이에 불나방의 큼지막한 턱이 좌우로 벌어져서 녀석의 허리를 붙잡았다.

“내 명령 한 번이면 네 허리가 끊어질 거다.”

나는 첨단공포의 뾰족한 끄트머리를 녀석의 목에 댔다.

“케흐으으…. 크으으극….”

「야. 생각해보니까 이 새끼 한손이 없으면…」

푹!

나는 그대로 첨단공포를 찔러 넣었다. 밤의 외도자는 목에서 피를 쏟아냈고 내 살의를 눈치챈 불나방이 턱에 잔뜩 힘을 주었다.

쿠저적! 뚜둑! 쿠저적!

밤의 외도자를 이루었던 신체의 일부들이 혈류와 함께 널브러졌다.

“그래. 나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어.”

생각해보니까 이 새끼는 한 손이 없으면 제대로 싸울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내가 한쪽 손목을 잘라버렸으니 목줄로 묶어서 악귀로 부리기엔 별로다.

그리고 이러면 첨단공포는 내 차지가 된다.

* * *

나는 새벽에 실재세계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장소를 케베크 주조소로 정하여 주조소 내부에 있던 손목쇠뇌를 가지고 그 자리에 쪽지와 함께 200루아를 두었다.

오늘은 잿빛세계에서 밤의 외도자를 죽였다. 그러고도 몇 시간은 더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이물들을 사냥하고 온 탓에 진이 다 빠졌다.

「첨단공포는 주술적인 효과가 너무 복잡해. 네 장비에 합쳤다간 다음에 더 좋은 주물을 손에 넣었을 때 곤란해질 거야.」

동일한 대상을 한 번 찌르면 분노를, 두 번 찌르면 절망을, 세 번 찌르면 영구적인 공포를 새겨 넣는다. 간단히 그 조건만 늘어놓아도 몇 마디를 더해야 하는 첨단공포는 기존 장비에 합치기에 부적합하다. 조건도 효과도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지금 갖고 있는 주된 무기는 고품질 강철과 은으로 만든 도끼. 그리고 보조 무기는 여왕의 독니라는, 벤 상대에게 공포를 심는 단검이다.

첨단공포의 효과를 단검에 합치자니 효과가 겹치고, 도끼에 합치자니 나중에 도끼에 더 좋은 능력을 합칠 기회가 아깝다.

그리고 자고로 단검이란 무엇인가. 유사시에 품에서 꺼내 쓸 수 있는 길이가 짧은 날붙이다. 한 방에 승부를 봐야만 유의미한 무기라는 것이다.

이런 무기로 같은 대상을 세 번이나 찌를 기회가 실전에 몇 번이나 있을지 의문이다. 그마저도 상대가 높은 저주 저항을 갖고 있으면 효과가 없다.

‘첨단공포는 베르자인한테 팔아야겠다.’

「오늘 얻은 악을 배분해야지.」

‘285에 330을 더하고 또 몇을 더해야 했더라?’

「합쳐서 817이야.」

‘철인을 강화해.’

「철인 2계를 3계로 강화했어. 400을 쓰고 남은 악은 417.」

‘남은 건 전부 마법 저항에 넣어.’

「마법 저항이 4계까지 강화됐어.」

저주 저항과 마법 저항을 각각 5계까지 강화하면 영적 저항을 개방할 수 있게 된다.

근본적으로 악한 힘을 쓰고 축복받지 못한 몸인 나는 신성 저항을 개방할 수 없으니, 승천자에게 대항하려면 영적 저항이라도 개방해야만 한다.

「마법 저항 4계. 주문이 있는 복잡한 마법에도 저항할 수 있어.」

나는 아라나크에게서 받은 거미줄을 활시위로 조립하고 미리 만들어둔 은화살을 장전해보았다.

「급박한 상황에 여러 발을 쏠 수 없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잖아.」

싸우는 와중에 손목쇠뇌를 장전할 틈은 웬만해선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손목쇠뇌도 단검처럼 한방에 효과를 봐야 하고, 그렇기에 아직은 강화가 더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화장대 위에 손목쇠뇌, 은화살 묶음, 첨단공포를 올려두었다.

「방독면은….」

벗는다.

승천자가 천리안으로 보고 있다면 보라고 하겠다. 그가 엄청난 멍청이가 아니라면 내가 페인이라는 것쯤은 대충 알고 있을 것이다.

차라리 그냥 얼굴을 보이고 그가 어떻게 나오는지 살핌이 옳다. 페인이라 의심하던 인물이 진짜 페인이라는 걸 확인하게 되는 순간 그가 어떤 동태를 보일지 말이다.

그래서 방독면까지 벗어다 화장대 위에 올린 후 무심코 거울을 쳐다봤다.

‘……야.’

「이, 이게 얼굴이 왜 이러지?」

내 동공이 붉다는 것까진 알고 있었다.

「진짜 몰랐어. 몰랐다고!」

전에 세비우크가 내 눈앞에서 악령화 증상을 보인 적이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내 얼굴이 기괴하게 변했다.

사람이라고 한다면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얼굴이지만 자세히 보고 있으면 어딘가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목구비를 감출 수 없다.

얼굴 절반의 눈썹과 눈이 그 근처의 피부와 함께 한쪽으로 흘러내리는 것처럼 변했다고 할까. 양쪽 눈의 크기도 서로 비대칭이 되었고 광대뼈도 한쪽만 커진 것 같다.

‘…우리가 지금 악을 얼마나 머금고 있는 거냐?’

「음…. 3683.」

해결사였던 시절과 비슷해졌다.

그런데 이건 그때보다 증상이 훨씬 심하지 않은가.

「네가 나쁜 마음을 먹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건 부정할 수 없긴 하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야.」

‘성수가 필요해.’

때마침 문 너머를 자객 한 명이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베르자인한테 첨단공포를 팔고 성수 좀 사야겠어.’

「주물로 벌 돈을 성수로 다 탕진할 판이네.」

‘어쩔 수 없어. 악이 너무 많이 쌓였잖아.’

나는 방독면을 다시 쓴 다음 첨단공포를 든 채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자객이 말했다.

“베르자인 님께서는 의뢰소에 계십니다.”

“이 새벽에 왜?”

“강령술사님께서 돌아오시면 그리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제게는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의뢰할 일이나 찾을 정보라도 있나? 저번에도 그랬잖아.」

그리하여 나는 은거지를 나와서 의뢰소를 찾아가게 되었다. 와중에 자객 몇 명이 날 호위하겠다며 뒤에 붙었지만 거절했다.

“나 지키는 것 말고도 다른 일들이 많잖아. 혼자서 갈게.”

한바탕 피바람이 지나간 후 뒷골목의 새벽은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상가와 건물이 몇 개인가 불이 켜져 있고 가로등의 약한 불빛이 길을 밝힌다.

새벽에는 아주 소수의 인원들만이 거리에 있었다. 용병, 창부, 해결사, 거지, 어딘가 높은 사람의 비밀스러운 심부름을 하러 온 자까지 모두 한 번씩은 날 쳐다봤다.

그중 대다수는 날 피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내가 걷는 방향에 겹치지 않으려고 알아서 몸을 비켜주거나,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여기서 넌 두려움과 선망의 대상이야.」

‘기피의 대상이겠지.’

돌고 있는 소문은 대충 추측이 된다. 세비우크를 터뜨려 죽이고 루소를 상대하고 황금달이 달란트 상회를 하룻밤 만에 무너뜨릴 수 있었던 핵심 전력. 괴물들을 소환해 부린다는 이름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강령술사.

그들 입장에서 내가 확실한 아군이 아니라면 날 피하고 싶은 게 당연하리라.

“저…. 강령술사님….”

의뢰소로 가는 길에 어떤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주변에 있는 자들의 이목이 이쪽에 집중되었다.

“강령술사님, 맞으시죠…?”

그리 비싸지도 헐지도 않은 옷을 입고 있는 키 작은 남자. 엉거주춤한 자세부터가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보따리 상인인가?」

누군가의 심부름꾼일 수도 있고.

내게 말을 걸겠다고 나름의 용기를 낸 걸까. 그의 눈에서 숨길 수 없는 두려움과 긴장감이 엿보인다.

“예. 무슨 일이시죠?”

그는 내 변조된 목소리에 흠칫했다. 내 목소리를 멀리서 들은 자들도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아, 그게, 다름이 아니라 강령술사님께 좋은 의뢰를 하나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일전에 강령술사님께서 루소를 해치우셨다는 이야기는 저희 가문에서도 정말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리 대사를 외워온 것처럼 딱딱하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루소는 온전한 내 힘으로 해치운 게 아니라 마지막에 베르자인의 도움을 살짝 받았는데.

그렇게 소문이 돌고 있다니 그런 것으로 하자.

“저, 저희는 현재 토지분쟁을 처리하는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 가문이 여간 답답한 게 아닙니다. 말도 안 되는 거금을 요, 요구하면서 협상하려는 자세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이 분쟁을 조속히 처리하려면 불가피하게도…”

“제 도움을 받고 싶다면 의뢰소나 황금달을 통해서 하시죠.”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냈다. 이 남자 말고도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제게 수요가 있는 분들을 이런 식으로 일일이 만나고 다니면서 사정을 들을 여유는 없습니다. 황금달이라는 조직체가 괜히 있겠습니까.”

“아앗…. 제가 그만 결례를 범했습니다…!”

이제 호시탐탐 내게 접근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자들은 내가 아니라 황금달에 접근할 것이다.

나는 귀찮음을 덜고 황금달은 더 많은 사람들을 얻게 되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