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징악 (2)
늘씬하고 키가 큰 체형의 중년, 문신으로 도배된 얼굴이 특징적인 헤로는 해가 떨어진 시각에 의뢰소의 업무를 보는 자다.
그는 입이 무거우니 내가 여기서 베르자인과 어떤 대화를 나누든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 상회에서 관리하던 의뢰들까지 전부 우리한테 넘어왔어.”
헤로는 베르자인의 술잔과 내 술잔에 말없이 술을 따랐다.
“그 방독면 벗어도 돼. 승천자는 이미 네 정체를 알고 있을 거야.”
“그럴 것 같더라.”
나는 방독면을 벗어서 술잔 옆에 뒀다. 그러자 헤로와 베르자인이 동시에 반응했다.
“페인 님. 혹시 악령화가…”
“너 얼굴이 왜 그래?”
“이제 성수 구하는 건 일도 아니지? 베르자인.”
그녀는 내 얼굴의 뒤틀린 부분을 측은하게 만졌다. 그러다 조금은 화가 났는지 눈썹을 치켜올렸다.
“승천자가 했던 말이 이거구나.”
“승천자가 뭐라고 했는데?”
“너의 마음이 아주 위태로운 상태라고. 조금만 더 건드리면 네가 악령이 되어버릴 거라고 했어.”
헤로가 잠시 허리를 숙이더니 담배 하나를 꺼내서 내게 권했다.
나는 손바닥을 보여 거절하고 베르자인의 말에 집중했다.
“널 배신하라고 하더라. 그러면 발렌잔타르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게 해준다면서.”
“그리고?”
“……널 배신할까 고민했어.”
「이 새끼가 감히 배신을…!」
‘시끄러워.’
날 배신할까 고민했다는 말을 내 앞에서 토로하고 있다.
그러면 날 배신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닌가.
그녀는 술잔 하나를 다 비우고 꾸역꾸역 하던 말을 이었다.
“흔들리더라.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내가 널 배신했다는 사실을 네가 알게 된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 넌 무너질 수 있었다는 거야.”
“정말 간단하게 날 처리할 수 있었네.”
“그런데 그게 또 어려웠어. 도저히 너한테는 그럴 수가 없었어.”
베르자인은 무엇보다 자기 이득만 계산하는 사람이다.
“너한테 갖고 있는 정 때문만이 아니야.”
“그럼?”
“승천자의 민낯을 보고 말았어.”
그녀도 긴가민가했을 것이다.
세인트 왕국에서 가장 선한 인물이자 천사의 대리인으로 여겨지는 승천자가 사실은 시커먼 본성을 숨기고 있다는 것.
이런 나조차도, 승천자에게 호되게 당했던 그 당시에도 작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승천자가 내게 이러는 타당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고. 그야 그는 승천자니까.
이 왕국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이라면 모두가 그럴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승천자가 악하다는 사실은 믿기가 어렵다. 그건 기존의 상식을 철저히 깨부수고 세인트교에 대한 믿음의 근간부터가 흔들리는 일이니까.
“본색을 드러낸 승천자가 너무 무서웠어. 그런 거악의 말에 흔들리는 나 자신도 무서웠고. 그래서 뭔가 한참 잘못됐다고 느낀 거야.”
그러면서 베르자인이 눈짓하자 헤로는 그녀의 빈 술잔에 성수를 따랐다.
물처럼 투명하지만 물보다 반짝이는 액체다.
이런 뒷골목 의뢰소에 귀한 성수가 있을 리가 없다. 따라서 이건 그녀가 미리 준비한 것이다. 내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걸 미리 알고서 성수를 가져온 것이다.
그녀는 성수가 담긴 술잔을 내 쪽으로 밀었다.
“중앙교회에 있는 조각상 두 개가 이상 현상을 보였어. 세인트 로이틀란크 전 신관, 세인트 헤이틀란크 전 신관의 조각상이었지.”
“어떤 현상이었는데?”
“얼굴 부분에 균열이 생기면서 파편이 떨어지더라고. 그게 눈물이라도 흘리는 것처럼 보였어. 이건 네가 중앙교회에 이물을 몰아넣은 효과겠지?”
잿빛세계의 어느 장소에서 이물을 퇴치하면 실재세계의 그 장소에서 좋은 일이 생긴다.
반대로 잿빛세계의 어느 장소에 이물을 모으면 실재세계의 그 장소에서 나쁜 일이 생긴다.
지금 잿빛세계의 중앙교회에는 이물들이 모여있다. 그 효과가 실재세계의 중앙교회에서 그러한 현상으로 발현한 것이다.
“승천자한테 물어봤어. 두 조각상이 왜 저렇게 됐는지는 당신도 모르는 거냐고.”
과연 승천자는 잿빛세계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는 내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내가 군대를 모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가. 잿빛세계에서 실재세계로 영향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는 대답하지 못했어.”
“대답을 안 한 거 아니야?”
“애당초 신도들이 있었을 때 두 조각상이 그런 현상을 일으켰었어. 그래서 승천자가 신도들에게 해명을 했는데, 처음엔 당황하더니 신도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말을 잇더라고. 마지막엔…. 거짓말을 한 게 확실하고….”
승천자가 정말 뛰어난 연기자가 아니라면 베르자인의 눈은 속일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지켜보는 앞에선 뛰어난 광대들조차 자신들의 표정 너머를 숨기지 못하니.
“아무튼, 승천자는 전 신관들의 조각상이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른다는 거야.”
승천자는 잿빛세계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는 잿빛세계에 직접 가본 적이 없다. 그곳에 어떤 이물들이 있고 그 이물들의 존재가 실재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모른다.
그게 내 결론이다. 결론이지만,
“그자도 의심은 하고 있을 거다.”
“무슨 의심?”
“상회와 전쟁을 벌일 때 나를 도와서 싸운 배척자들을 봤을 거야. 천리안이 있으니까.”
두 배척자는 그 두 조각상을 쏙 빼닮았다.
“당연히 그는 거미 악귀들도 봤겠지. 자살기도자도 봤을 거야.”
그것들은 절대 악령이라고 할 수 없는 육체를 지닌 존재들이다. 인형술사의 주술이라고 하기엔 절대 인형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난 나를 강령술사라 소개하고 있다.
“내가 부리는 악귀들이 잿빛세계에서 건너온 것들이라는 것쯤은 의심할 수 있겠지.”
베르자인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자기 손 안 더럽히고 간편하게 널 처리하고 싶었던 거네. 날 구슬려서 널 배신하게 만드는 게 가장 확실하고 쉬운 방법이니까.”
“승천자는 날 경계하고 있어. 다시 말하자면, 내가 내 주변에 악귀를 소환해서 싸운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것들까지 단번에 무력화하기 위해, 악귀들의 머리인 나를 쳐야 한다고 생각한 거야.”
그러자 듣고 있던 헤로가 한 마디를 거들었다.
“그 악귀라는 존재들은 꼭 페인 님의 주변에서만 소환이 가능한 건지요?”
“그렇지.”
이어서 베르자인이 물었다.
“소환은 네 주변에서 하더라도 악귀들을 중앙교회로 보낼 수는 있는 거잖아.”
“그렇지.”
“그럼…….”
우리 셋은 모두 같은 방법을 떠올린 것 같다.
“그자는 천리안으로 날 감시하고 있어. 내가 내 근처에 악귀들을 소환해서 승천자에게 보내려면 잠깐이라도 그의 천리안이 다른 곳을 보도록 유도해야 해.”
나는 베르자인이 밀어준 술잔을 들었다. 투명한 술잔에 담긴 반짝이는 성수를 단번에 들이켰다.
「꺄아아아악!!!」
사약이라도 마신 것처럼 목구멍이 타오르는 듯하다. 내장에 뜨거운 수은이라도 부은 것처럼 몸의 안팎이 고통스럽다.
그러나 고통은 잠깐이었다.
「마음의 준비라도 좀 하게 해달라고!」
‘얼마나 씻겨내려갔지?’
「1660! 나쁜 새끼야!」
헤로가 나를 유심히 쳐다본다.
“원래 얼굴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래도 눈은 아직 붉은색이네.”
나는 입속에 고인 피를 침과 함께 삼켰다. 그리고 내 술잔까지 비워서 목구멍의 피비린내를 없앴다.
“내가…. 내가 몸은 하나지만 악귀들을 시켜서 승천자 몰래 여러 가지 일을 할 수가 있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을 거지?”
“뒷일이 두렵다면 지금이라도 빠져.”
“난 그런 인간이 멀쩡히 살아서 세인트교를 주무르고 있는 게 더 두려워. 그래서 널 배신하지 않은 거야.”
* * *
내 안의 악령과 내 영혼이 3000 이상의 악을 쌓게 되면 그때부터 육체에 문제가 생긴다. 얼굴이 뒤틀리는 것뿐만 아니라 송곳니가 빠지고 손톱이 길어지는 등의 증상도 있었다.
그래서 난 주기적으로 성수를 마시며 악을 씻어냈다. 그러면서 계속 강해졌다.
황금달이 달란트를 무너뜨리고 6일이 지났다. 나는 그동안 아주 반복적인 일을 했다.
낮에는 악령과 관련된 의뢰를 처리하고 밤에는 잿빛세계로 가서 다가올 날을 준비하는 것이다.
「진짜 큼지막한 저택이네.」
나는 오늘도 의뢰를 받고 여기까지 찾아왔다. 넓고 평탄한 농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에 저택이 하나 있었다.
저택의 마당으로 들어오니 하녀들이 정원을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저택의 주인이라는 뚱뚱한 남자가 늘씬한 부인과 함께 나를 맞이했다.
그는 자신의 가문과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이 주변 농지를 관리하는 자신의 가문이 왕국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늘어놓았다.
가문의 자랑질이 썩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그보다 아까부터 말이 없는 부인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부인의 왼쪽 뺨에 피멍이 있어. 왼쪽 어깨에도 그렇고.」
‘그럼 이 남자는 오른손잡이라는 건가.’
남자는 부인에 대해선 이름조차 소개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그림자처럼 늘 곁에 붙어 다니는 사용인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조만간에 또 올 일이 생긴다면 좋겠네.」
악행을 일삼으면 영혼에 악이 쌓여 악령화라는 벌을 받는다. 그런데 비싸고 귀한 성수만 있다면 악령화를 예방할 수 있다.
이 무슨 부조리한 세계인가.
“강령술사님. 제 딸아이는 이 방에 가둬놨습니다. 묶여있지만 상태가 심상치 않아서…”
“위험하니까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주세요.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도 절대 문을 여시면 안 됩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악령이 되기 직전인 딸이 방에 갇혀있는 상황에 도움을 구한 남자가 아닌가. 그런데 방긋 웃으며 잘 부탁하겠다는 게 정상적인 반응인지 모르겠다.
“저….”
그러자 계속 침묵하던 부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예. 부인.”
“천성이 나쁜 아이는 아니에요…. 저희에겐 정말 소중한 아이라서…. 너무 강압적으로 하지 않으셨으면…”
“이 여편네가 기껏 부른 사람 앞에서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전문가가 하는 일에 훼방을 놓으면 안 되지!”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두 분 모두 염려치 마시죠. 제가 잘 해결해 보이겠습니다.”
“크으, 역시 강령술사님! 믿고 있겠습니다! 어중이떠중이 같은 성녀나 해결사들이 다 실패해서 얼마나 갑갑했는지 참!”
외부인인 내가 잠깐만 집안에 들어왔을 뿐인데 이곳의 사정이 훤히 보인다.
「천성이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건, 아비가 뭘 잘못해가지고 나쁜 마음을 먹게 되어버린 걸지도 모르겠어.」
가문의 주인이라는 남자와 그런 남자의 그림자가 되어버린 부인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는 문을 열어서 방에 들어왔다.
어두운 공간이다. 침대, 옷장, 화장대,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 다 녹아버린 양초, 불이 꺼진 마법등이 보인다.
그리고 방의 한가운데에 어떤 소녀가 의자에 결박되어 있었다. 두 팔은 팔걸이에, 두 다리는 의자 다리에 밧줄로 묶인 것이다. 그리고 의자 다리는 또 바닥에 못질이 되어서 정말 완벽하게 고정된 것 같다.
분홍색 잠옷 차림의 소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미동도 없다.
“라일라.”
내가 이름을 부르자 소녀는 고개를 들었다.
예쁜 얼굴이지만 볼이 움푹 들어가서 수척하다.
“누구세요…?”
“너의 질병을 치료하러 왔어.”
“시, 싫어….”
“퇴마라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건 알아. 그래서 무섭겠지. 하지만 난 네가 지금까지 경험한 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라일라는 눈물 흘리며 애원했다.
“십자가는 싫어요…! 불에 달군 것도 싫고 성수도 싫다고요…! 제발…!”
“그런 건 쓰지 않을 거다. 네 몸은 그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않을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가 나 좀 풀어줘요! 이제 지긋지긋해…! 제발 그만해!!”
“네 안에 있는 악령만이 고통을 느끼게 될 거야.”
나는 결박된 라일라에게 다가갔다. 한 손으로 소녀의 조그마한 이마를 쥐었다.
“이 씨발새끼야!!! 그만하라고!!!”
라일라의 목소리가 두 개로 겹쳐졌다.
“그 손톱을 전부 뽑아주마…! 네 어미와 아비를 끓는 물에 담가서 익혀버리겠다!!”
그러더니 또 멀쩡한 소녀의 목소리를 냈다.
“엄마! 아빠…! 살려주세요! 이 사람이 제 몸에 손을 대고 있어요! 꺄아아아아악! 내 옷을 벗기고 있어…!”
나는 이마를 꼭 쥔 채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영력 발산.’
그러자 라일라는,
라일라의 몸을 차지한 악령이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냈다.
“그그그그그그그그그극…!”
라일라의 이마가 액체처럼 요동치며 내 손가락 사이로 오르락내리락했다.
“너 뭐야, 너 뭐야, 너…! 네놈! 그으으그그그그 …! 네놈도 악령이냐…!”
‘감각 증폭.’
악령의 절반 이상이 라일라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느낄 수 있다.
“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낮은 음성이지만 엄청난 포효다. 그 소리만으로 바닥이 진동하는 듯하고 화장대의 거울이나 창문이나 마법등 따위가 깨졌다.
침대 위에 있던 베개와 인형들이 라일라를 중심으로 천장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중에 강아지 인형이 내 목덜미를 물고 곰인형이 내 다리를 발로 찼다.
그러다 녀석은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살려줘! 내가 나갈게! 내가 나간다고!”
「안 되지.」
“씨발 방금 누구야?! 방금 어떤 새끼가 내 영혼을 핥았어…! 그 이빨, 이빨이 너무 많아. 이 새끼 이빨이 왜 이렇게 많아? 으흐히히히…! 으으으아아아아그그그그그극…!”
「그 나약한 소녀의 몸을 차지해서 뭔 일이나 할 수 있겠냐? 이왕이면 좀 더 강한 놈한테 들어가지. 나처럼 말이야.」
“그거로 나 물지 마! 아, 아빠 잘못했어요! 이제 그만 때려주세요…! 그런데 아빠가 먼저 엄마 때렸잖아! 이 쓰레기 새끼야! 내가 네 음식에 독 좀 탔다! 네 죽여서 우리 엄마 살리려고 했는데 그걸 왜 하녀한테 먹여! 너 때문에 내가 하녀를 죽였, 였, 죽였, 난 살인자가 아니야…!”
원래 이 소녀는 악령과 하나가 된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라일라의 영혼과 악령의 영혼이 강제로 분리되는 중이다.
「신선해서 맛있네.」
“그그르르르….”
목에 핏대까지 세우던 소녀는 입에 까만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나는 라일라의 입에 묻은 거품을 닦아주고 밧줄들도 전부 풀어주었다.
그리고 잠시 기다렸다.
악령을 퇴치했으니 일은 끝난 거지만 말이다.
“라일라.”
“……누구… 세요?”
“네 아빠가 묻거든 말해. 전부 악령이 시킨 짓이라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다고.”
“네…?”
“밤에 무서우면 마시고 싶다고 성수를 한 병만 달라고 해.”
“….”
“그 성수를 받아서 절반만 마셔. 그리고 거기에 독약을 타서 네 아빠에게 돌려주는 거야.”
“하지만 그랬다간….”
“이 집안에 있는 진짜 사악한 것은 아직 퇴치되지 않았다고. 그건 내가 아니라 네가 해내야만 해. 나머진 네 엄마가 알아서 처리할 거다.”
「애한테 아빠를 죽이라고 조언하는 게 신기하네. 예전의 너였으면 그냥…」
‘그 부인이랑 애 상태를 봤잖아. 한쪽은 피멍 든 벙어리가 됐고 한쪽은 악령이 됐어. 사람도 하나 죽은 것 같고.’
「그냥 나는 지금 네 모습이 좋다는 말이었어.」
나는 그날 의뢰소로 돌아가서 120루아를 받을 수 있었고, 이틀 후에는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200루아를 또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밤이 되자마자 잿빛세계로 출발하려 했는데, 자객이 내 방으로 찾아와 말하는 것이다.
“저희 영역에 마법사가 잠입했습니다.”
“동선은? 중앙교회에서 온 놈이야?”
“예. 그간 베르자인 님께서 별다른 행동을 취하시지 않은 탓에 승천자가 직접 자신의 심복을 움직인 것 같습니다. 분명 강력한 마법으로 무장한 인물일 것입니다.”
“알겠어.”
자객은 비장한 목소리를 냈다.
“때가 되었습니다. 강령술사님.”
잿빛세계의 뒤틀린 존재들이 느껴진다.
그것들의 아우성이 차원 건너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듯하다.
“안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