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징악 (3)
밤. 중앙교회.
제단 위에 빛나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승천자는 마법진의 중심에 서서 눈을 감고 천리안 능력을 발동하는 중이다.
‘전언(傳言).’
그의 감은 눈에는 마법사가 보였다.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시야는 현장의 마법사가 보지 못하는 부분도 대신 볼 수 있게 해준다.
지금 마법사는 베르자인의 은거지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변 건물의 지붕이나 숨겨진 골목에 도사리는 황금달 자객들이 보인다.
‘놈들이 널 포위하고 있구나. 하지만 저들로선 너의 털끝 하나 건들 수 없을 테니 강령술사를 해치우는 일에만 집중하거라.’
승천자의 전언에 연결된 마법사는 그 즉시 질문했다.
- 강령술사를 해치우기 위해서라면 희생을 감수해도 되는 것입니까?
‘그자는 잿빛세계에서 사악한 힘을 지니고 귀환한 존재다. 악의 하수인들을 풀어 거리를 피로 물들이고 달란트 상회를 하룻밤 만에 무너뜨린 괴물이지.’
- 본디 악이란 자비 앞에 명이 길고, 무자비함 앞에 명이 짧은 법입니다.
마법사는 의지가 충만했다.
- 회개할 수 없는 절대악은 불꽃으로 다스림이 옳습니다.
‘그래서 널 보낸 것이다. 너의 마법은 가끔 불필요한 희생을 낳기도 하지만…. 이번 경우엔 그런 희생조차 필요한 것이 되리라.’
역시나 황금달도 마법사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점점 더 많은 자객들이 은거지 주변에 모여들어서 다가오는 마법사에 대비하는 것 같다.
‘강령술사는 장차 우리 왕국에 크나큰 재앙이 될 존재로다.’
그는 천리안으로 상황을 지켜보다가 명령했다.
‘놈의 사악한 소굴을 깨끗이 정화하거라. 카누스.’
* * *
하얀 로브 차림의 카누스는 휑하고 어두운 거리에서 베르자인의 은거지를 눈앞에 두었다.
그는 두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발화 4계.’
치직…!
그러자 그의 앞에서 주홍빛 마법진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그려지기 시작했다.
‘지역소거(地域消去).’
마치 화염으로 된 그림을 그리듯 하나의 빛나는 점이 시계방향으로 빠르게 돌면서 공중에 불길을 놓아 마법진을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마법진이 다 그려지기 전, 주변에 잠복했던 자객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쐐액!
단검과 화살 따위가 카누스에게 날아든 것이다. 그것들은 동시다발적으로 그의 앞, 뒤, 옆으로 날아들어 그가 어떤 자세를 취하더라도 회피할 수 없도록 하였다.
그러나 카누스에겐 믿음직한 하늘의 눈이 있었으니.
- 머리 위는 비었다.
그는 발동하던 마법을 취소하고 제자리에서 공중으로 뛰었다. 하지만 자객들은 그러한 대처까지 상정하고 있었다.
“죽여라!”
지붕에서 대기하던 자객 세 명이 카누스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불결한 놈들이 얄팍한 수를 쓰는구나!”
카누스는 두 손을 위로 향해서 주문이 필요 없는 고유 마법을 발동했다.
화아아!
불타는 공처럼 된 화염 덩어리 스무 개가 하늘로 솟구쳤다. 공중에서 방향을 틀 수 없던 세 자객은 화염 덩어리에 맞아서 지면에 추락하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악!”
추락한 자객들은 산 채로 익는 격통 속에 비명을 질러댔다. 이어서 카누스가 지면에 착지함과 동시에 그의 앞뒤로 자객들이 달려들었다.
그는 즉각 육탄전에 돌입했다. 칼 한 자루도 없이 자객들의 단검을 피하며 마법까지 섞는 것이다.
‘방사.’
콰아아!
카누스가 손바닥으로 자객의 팔다리나 몸을 칠 때마다 뜨거운 화염이 사출되었다. 그러다 자객들과 거리가 조금이라도 벌어지면 두 손바닥을 각각 다른 방향으로 향해 연속으로 화염을 쏘아댔다.
콰아아! 콰아아!
앞뒤로 화염을 쏘면서 몸을 틀면 화염도 그의 몸을 회전축으로 삼아 함께 틀어졌다. 자객들은 불꽃을 뿜어대는 팽이라도 상대하는 기분일 것이다. 와중에도 카누스는 사각을 노려 정확하게 날아드는 단검 따위를 모두 회피하고 있다.
- 뒤. 화살이다.
콰아아!
- 오른쪽에 단검이다.
콰아아!
그의 마법에 당한 자객들은 절대 곱게 죽지 못했다. 극심한 고통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정신을 잃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산 채로 불타는 것이다.
머지않아 카누스의 주변은 전쟁터라도 된 것처럼 곳곳에 불이 붙어있었다. 또한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강령술사! 직접 나와서 날 상대해라!”
은거지의 정문 앞에는 몇 자객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수정구슬 같은 것을 손바닥에 올리고 있었다.
“귀찮은 졸개들이!”
애당초 카누스의 목표는 강령술사를 죽이는 것.
카누스는 은거지 앞에 늘어선 자객들이 신경 쓰여 화염 덩어리 스무 발을 다시 쏘아냈다.
쿠르르르르!
그러자 수정구슬을 든 자객들 앞에 물로 된 벽이 솟아오른 것이다. 화염 덩어리 스무 발은 물에 닿아서 모조리 꺼지고 말았다.
‘주물?’
물로 된 벽은 이내 파도처럼 변하여 카누스에게 밀어닥쳤다.
‘나름 준비는 한 것 같지만….’
그는 처음에 했던 것처럼 두 손바닥을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다시금 열기를 내뿜는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처음에 보여줬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구축되었다. 카누스가 그만큼 더 많은 영력을 투입한 것이다.
“무의미한 발악이다!”
그리고 엄청난 폭음과 함께 눈부신 불꽃이 파도를 덮쳤다. 너무도 뜨거운 그 불꽃은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고 주물이 만들어낸 파도조차 순식간에 증발시켰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 뒤에 있는 자객들을 즉사시키고 건물을 통째로 불태우는 위력이었다.
베르자인의 은거지는 거대한 화재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승천자 님!’
강령술사라는 자는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놈은 저 소굴 안에 있는 겁니까?’
천리안으로 카누스를 지켜보던 승천자도 잠시 페인을 찾고 있었는지, 조금 느리게 전언이 돌아왔다.
- 곧 네 앞에 나타날 것이다.
까맣게 변해서 숨통이 끊어진 시체들.
더는 누구도 비명을 지르지 못하여 불에 타는 소리만이 차가운 밤공기를 울리고 있다.
“영력을 그렇게 소모해대면 남은 싸움은 어떻게 하려고?”
페인은 카누스의 측면에서 홀연히 등장했다.
“강령술사…. 언제부터 밖에 있었지?”
“방금 밖으로 나온 거야. 창문 깨고.”
카누스는 로브를 만져 머리와 얼굴을 드러냈다.
그의 주름진 얼굴은 군데군데가 화상 흉터다.
“더는 앞세울 졸개가 없는 모양이구나. 이러면 네가 자랑하는 강령술이라도 써야 할 것이다.”
그가 말을 할 때마다 흉측하게 눌어붙은 피부가 더 심하게 주름을 강조했다.
페인은 오른손으로 도끼를 뽑아들었다.
“그전에 몇 가지만 묻자. 일단 넌 화염술사가 맞겠지?”
“보면 모르나?”
“그럼 내 정체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이런 짓을 벌인 거지?”
그때 승천자가 카누스에게 속삭였다.
- 강령술사의 혀놀림에 넘어가선 안 된다.
카누스는 그 속삭임을 들은 즉시 스무 개의 화염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말도 없이 페인을 공격했다.
화아아!
스무 개의 화염 덩어리는 화살과도 같은 속도로 페인에게 쇄도했다. 동시에 페인은 카누스를 향해 내달리면서 화염 덩어리를 이리저리 회피했다.
그러나 스무 개를 전부 몸놀림만으로 피하기란 무리였기에, 페인은 맞불을 놓았다.
‘방사.’
콰앙!
페인과 카누스 사이의 허공에서 화염이 서로 충돌했다. 카누스의 화염 덩어리는 페인의 불꽃에 휘말려 상쇄되었고 일부 화염 덩어리는 페인의 몸 근처를 비껴갔다.
“강령술사! 네놈에겐 화형식도 아깝다!”
또 새로운 화염 덩어리들이 카누스의 배후에서 생겨나 공중으로 떴다. 이번엔 서른 개를 족히 넘는 숫자다.
화아아! 콰앙!
결국 페인은 어깨, 다리, 방독면에 화염 덩어리를 직격당했다. 그래도 불이 금방 꺼져서 치명상이 되진 않았고 그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4계 이상의 마법 저항을 가지고 있구나!”
페인은 달리면서 카누스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방혈…!’
“커헉!”
그 순간 카누스는 피가 섞인 기침을 했다.
그러나 쓰러지진 않았다.
‘재결합 5계…’
드드드드!
카누스의 발치로부터 벽돌이 가시처럼 변하며 튀어나왔다. 그러나 가시의 끄트머리는 카누스의 몸에 닿더니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카누스는 추가로 화염 덩어리를 만들며 보란 듯이 소리쳤다.
“네놈만 저항 능력을 갖고 있는 줄 알았나!”
그래도 페인은 계속해서 화염 덩어리의 피해를 감수하며 거리를 좁혔다. 그 처절한 접근 끝에 페인의 도끼가 카누스를 노려 날아들 수 있었다.
부웅!
카누스는 육탄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몇 걸음을 뒤로 움직여 도끼를 피하고는 순간적으로 페인에게 다가가 손바닥을 붙이는 것이다.
콰아아!
페인은 그의 한쪽 손목을 쳐내고는 다른 오른손으로 재차 도끼를 휘둘렀다.
부웅!
카누스 역시도 남아있는 한 손으로 도끼를 붙잡았다.
“흐읍……?!”
한순간이었지만 그는 페인의 괴력을 느꼈다. 그래서 붙잡고 있던 도끼를 페인에게 밀치면서 두 손바닥을 모두 페인에게 조준했다. 바로 이 순간이라면 상대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나 가까운 거리에서 화염을 쏘아내면 자기 자신조차 화상을 입게 되겠지만 상관없다. 눈앞의 강령술사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고 자신은 또 하나의 화상 흉터가 생기는 것으로 끝날 테니.
그러나 카누스는 페인의 기괴한 방독면 너머, 그 새까만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나는 붉은 시선을 목도했다.
‘자살 충동.’
너무 가까운 탓에 너무 깊은 것을 봐버린 감각.
절대 봐선 안 될 것을 봐버린 감각.
무력감.
우울감.
그리고 애써 무시하고 싶은, 부정하고 싶은 공포가 심장을 옥죄는 듯하다.
- 카누스! 한눈팔지 마라! 놈의 정신계 주술이다!
“아, 안 돼!”
너무 가깝다. 너무 가까워서 제발 좀 떨어지고 싶다. 그런데 자신의 두 손바닥은 왜 상대를 향하고 있는가.
분명 좀 전에, 단 몇 초 전에 뭔가 마법을 써서 화상을 감수하고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려고 하지 않았었나.
와중에 상대가 기괴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가 저항 능력을 갖고 있지. 그건 알고 있었어.”
기억났다.
이렇게나 가까운 거리에서 놈의 심장에 화염을 꽂아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죽여주마.”
“지, 지역소…”
쿠저억!!!
카누스의 두 손목이 도끼에 잘려서 이상한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악…!!!”
또한 두 손목의 단면에서 혈액과 혈관이 가로로 뿜어지는 분수처럼 미친 듯이 튀어나왔다.
“이건 방금 강화한 방혈 3계다.”
손목의 단면에서 혈액과 혈관뿐만 아니라 살점까지 튀어나오기 시작하더니, 카누스의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도 혈액이 쏟아져 나왔다.
“악감정은 없어. 불에 산 채로 타죽는 것보단 이게 덜 고통스럽겠지.”
“거커커커거거거걱….”
카누스의 바지 아래로 혈액과 오물이 쏟아지더니 아주 두껍고 기다란 내장까지 떨어져서 지면을 더럽혔다.
그 시점에서 카누스는 이미 심장이 멈춘 상태였다.
페인은 이번에도 습관적으로 주변을 확인했다. 몸속에 있는 것이 모두 빠진 시체, 까맣게 타버린 자객들의 시체,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은거지.
그런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페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선 뜨겁고도 어두운 것이 울컥울컥 치미는 듯하였다.
“…씨발.”
그는 한 손으로 이마를 쥐었다. 그래봤자 손에 잡히는 건 이마가 아니라 따뜻하게 데워진 방독면이었지만.
* * *
카누스의 죽음을 내려다본 승천자는 자신의 눈보다 귀를 의심했다.
방금 자신의 전언에 누군가 연결되어 목소리를 낸 것이다.
- 기다려.
- 내가 거기로 간다.
“하…! 하하!”
승천자는 당혹감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페인의 전언에 응답했다.
‘어찌 그런 경이로운 힘을 가지고 있는지 두렵구나. 잿빛세계에서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았나? 페인.’
- 잿빛세계에 악마는 없어.
- 그런데 널 상대하고 있으면…. 실재세계엔 악마가 있는 것 같아.
‘그날 곱게 죽었으면 그 손에 피를 묻힐 일도 분통함에 부르짖을 일도 없을 터인데 참으로 안타깝군. 고양이한테 물려서 피에 젖은 생쥐라도 내려다보는 기분이구나.’
둘은 그날 이후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 나한테 왜 그랬냐? 리인한테는 왜 그랬고.
승천자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걸 알려주면 더 화낼 것 같군. 그냥 만나서 이야기하지. 이왕이면 네놈의 망가진 표정을 보고 싶으니 말이야.’
그러자 페인의 목소리가 묘하게 바뀌었다. 호흡에 불안정한 떨림이 있고 억양의 높낮이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좀 전까지 침착한 목소리였다면 이제는 억지로 무언가를 삼키고 있는 듯한, 꾹 눌린 목소리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게 분노를 삼키고 있는 것인지 희열을 삼키고 있는 것인지 죄악감을 삼키고 있는 것인지 승천자로선 분간할 수 없었다.
- ……천리안으로 어딜 보고 있었지?
‘네놈의 몸부림을 보고 있었지. 지금도 그렇지만.’
- 네가 보낸 화염술사랑 자객들이 싸우고 있을 때도 날 보고 있었어?
‘뭣이?’
- 천사한테 받았다는 그 좆같은 천리안으로 한번 확인해봐.
승천자는 페인의 주변을 빠르게 확인했다. 좀 전의 전투로 황금달의 자객들이 많이 죽긴 했지만 아직도 뒷골목 곳곳에는 자객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잘 찾아보니 의뢰소라는 건물에는 베르자인이 있다. 미리 대피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큰 의미가 있나. 황금달이나 베르자인은 관심사 밖이다. 그들이 뭘 어떻게 하든 자신은 위협할 수 없다. 화염술사 하나에 벌레처럼 휩쓸리는 것들은 그냥 정해진 범위, 뒷골목이라는 시궁창 안에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되는 일이다.
- 나는 가족이 없어. 엄마는 날 낳고 쇠약해졌지. 아빠는 몸이 쇠약한 엄마를 어떻게 대했는지 리인까지 낳게 하고 더 쇠약해진 엄마는 죽어버렸어. 그리고 아빠는 악령이 되었지.
그때 승천자는 페인과 시선을 마주하는 감각을 느꼈다.
페인이 고개를 치켜들어 이쪽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페인의 입장에선 밤하늘만 보일뿐인데.
- 나는 그 아빠라는 새끼를 내 손으로 죽였어. 해결사가 되기도 전부터 악령을 하나 죽이고 시작한 거야.
- 그리고 이번엔 네가 리인을 죽였더라고.
- 그래서 가족이 없어. 아무것도 없게 되었어.
승천자는 자꾸만 씰룩대는 입꼬리를 손으로 눌렀다.
조금만 실수하면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웃지 않겠다. 이왕이면 그의 앞에서 웃어야 한다. 그때까지 웃음을 아낀다.
‘…저런, 너의 안타까운 사연에 동정하여 눈물이라도 흘려주고 싶은 기분이군. 네가 오늘 나를 찾아온다면 친히 자비를 베풀어 널 위로하고 헤아려주마.’
- ….
‘이후 고통 없이 깔끔하게 목을 베어낸 후 정성껏 기도를 올려주겠다. 그러면 하늘에 있을 너의 여동생도 기뻐하겠구나.’
- 리인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어.
‘그렇다고 하니 더욱 안타깝군. 그 순수하고 멍청한 여자가 내게 무슨 짓을 당했다고 그리 한을 품어 구천을 떠돌게 되었다는 말인가?’
- 넌 가족이 있지.
바로 그 순간,
승천자는 자기도 모르게 호흡을 멈췄다.
그 한 마디에 심장이 철렁했다.
온 세상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 너는 나와 달리…. 잃을 게 아주 많더라고.
‘네놈…….’
승천자는 서둘러 천리안을 움직였다.
- 확인해봐.
천리안으로 신성한 저택을 들여다보았다.
안전한 산 중턱에 있는 그곳은 수십의 성기사, 성녀, 하녀들이 있는 저택이다. 중앙교회의 정원처럼 아름답게 가꾸어진 마당에 큼지막한 개와 말도 키운다. 그리고 저택 안에는 부모가, 부인이, 두 딸과 아들 하나가 있어야만 하는 곳이다.
중앙교회보다도 더 소중하게 지켜져야만 하는 곳이다. 험준한 산은 인간의 다리로 오르기 힘들며 하나뿐인 오르막길은 실력 있는 성기사들이 24시간 지키고 있다.
- 나만 병신처럼 화내고 있는 것 같아서, 이건 불공평하잖아.
그랬던 저택이 불타고 있었다.
머릿속 혈관이 터지는 듯한 분노가 차오른다.
오르막길에는 성기사들의 시신이 갈기갈기 찢긴 채 쓰레기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일부 성녀들은 목숨을 잃은 듯하고, 나머지 성녀들과 하인들은 도망치거나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익숙하고, 친숙하고, 가장 소중한 추억을 나눈 자들의 얼굴들이,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시신들이 그곳에 있었다.
“아…”
거미를 닮은 괴물들이 시신을 그악스럽게 뜯어먹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안아주고 정겹게 인사를 나누었던 일가족들의 몸뚱이가 도살장에 있는 가축들의 고기처럼 찢어지고 있었다.
“아아아… 아아…”
일가족 학살의 현장.
인질극이나 정의 따위도 필요 없다는 듯 모조리 잔인하게도 죽여놨다.
- 이제 좀 공평하지? 씨발놈아.
“야 이 개새끼야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