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34화 (34/181)

6. 징악 (4)

승천자가 날 죽이기 위해 보낸 마법사는 강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마법사와 싸우는 것이 처음인 내겐 사전에 그의 능력을 분석할 기회가 필요했다. 자객들을 내던져 그들의 목숨을 거름으로 상대 마법사가 어떤 마법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그는 여러 개의 주물이 만드는 물의 방벽까지 깨부술 정도로 강력한 영력을 갖춘 화염술사였고, 마법사임에도 육탄전에 능한 기량을 보여주었다.

그때쯤 자객으로부터 그의 이름이 카누스라는 걸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카누스를 상대하면서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발화 2계 기반인 방사도 써보고 재결합 5계로 기습까지 시도해봤다. 그럼에도 그는 내 모든 주술을 방어해내는 저항 능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단 하나. 방혈에는 피가 섞인 기침을 하였다.

「네가 필요한 순간에 선택적으로 어떤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야.」

나는 방혈을 결정타의 근거로 삼았다. 저항 능력이 높아서 그를 물리적으로 죽일 듯이 달려들어 육탄전에 응하고, 그와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진 시점에서 자살 충동을 발동하였다.

카누스가 자살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만 끌면 되는 일이었으니.

그 순간에 나는 카누스의 눈동자에서 공포를 엿볼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기회로 방혈 3계를 4계로 강화하여 그를 해치울 수 있던 것이다.

「승천자가 하늘을 날아서 오고 있어.」

또한 나는 카누스가 싸우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마치 뒤통수와 정수리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자객들의 변칙적인 기습과 공격에 모두 대응한 것이다.

따라서 당시에 승천자는 천리안으로 카누스의 전투를 봐주고 있었다는 뜻이며, 나는 그때 악귀들을 빠르게 소환하여 승천자의 자택으로 보냈다.

그의 가족, 보금자리, 추억, 그의 소중한 것들을 모조리 죽이고 파괴했다. 인질극이나 협상 같은 것도 배제했다.

그저 그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도록 만든 것이다.

「놈은 완전히 눈이 돌아간 것 같아. 다른 곳에 지원 요청도 없이 그냥 홀몸으로 오는 중이야.」

승천자를 따르는 마법사는 카누스 말고도 셋이 더 있다. 그들 모두 내가 단두대에 올랐을 때 추방술식을 구축했던 자들이다. 다만 지금까지 카누스를 포함해 승천자를 따르는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도 얼굴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카누스는 과거에 불필요한 희생을 초래할 정도로 큰 화염을 만든 적이 있다고 하여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승천자의 입장에서는 아마 실패해도 아깝지 않을 카드를 하나 쓴 셈이라 생각한다.

키이잉!

나는 불나방을 소환하여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

‘승천자가 오는 경로를 크게 우회해서 중앙교회로 간다.’

불나방은 더듬이로 내 방독면을 만지작대더니 꽁무니를 떨었다.

「얘가 널 걱정하고 있어.」

‘빨리 움직이기나 해.’

녀석은 그대로 밤하늘을 날았다. 나는 불나방 위에 올라탄 채 세인트 왕국의 밤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듬성듬성 솟은 산, 강을 끼고 있는 성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도심의 불빛들, 산허리에 보이는 가문 모를 저택들과 멀찍이 있는 농경지, 구불구불하게 왕국 전체를 보호하고 있는 성벽.

중앙교회는 왕국의 중심 쪽에 있다.

존재 추적에 따르면 승천자는 지금 내 기준으로 북쪽 하늘에서 접근 중이다.

「밤나방이 승천자보다 빨라.」

승천자가 영력을 소모하여 밤하늘을 비상하고 있다면, 비행하는 것이 일상인 밤나방은 육체의 힘으로 힘껏 날갯짓을 하는 악귀다.

당연히 그 비행속도와 유연성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공중에서 꼬리잡기를 하듯 왕국을 크게 돌았고 승천자도 나를 쫓아서 크게 밤하늘을 돌았다.

결국 내가 승천자를 뒤에 붙인 채 중앙교회로 날아가는 구도가 되었다.

* * *

페인은 엄청난 덩치의 불나방 위에 올라타서 중앙교회로 향하는 중이다.

‘활공(滑空)으로도 따라잡지 못하는 속도라니…!’

그리고 승천자는 살기 가득한 눈을 부릅뜬 채 페인의 뒤를 쫓는 중이다.

‘전언! 파보크! 아그니샤! 페레스!’

그의 부름에 세 마법사가 귀를 기울였다.

‘사악한 강령술사가 중앙교회를 공격하려 한다! 당장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추어 집결하라! 각 교회의 신관, 성녀, 성기사, 퇴마술사들도 이끌고 오거라!’

그러자 파보크의 굵직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 오밤중에 무슨 일입니까? 강령술사라는 자는 또 무엇이고…

‘묻지 말고 당장 튀어오란 말이다! 왕국의 근간이 위협받고 있다!’

벌써 페인은 중앙교회 위까지 도달했다. 녀석이 신성한 중앙교회에 들어가서 무슨 짓을 벌이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리라.

‘백색포격(白色砲擊)….’

그리고 용납할 수 없다는 명분으로 이러한 마법 공격을 가해도 왕궁은 이해하리라. 설령 이것으로 신성한 중앙교회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강령술사는 처단해야 하기에.

밤하늘을 활공하는 승천자의 몸 주변에서 신성한 마법진이 펼쳐졌다.

- 이 지긋지긋한 싸움은 여기서 끝내자고.

‘널 직접 밟아 내 손을 더럽히지 않은 게 실책이었다! 페인…!’

창의 형태를 모방한 빛 수십 개가 차가운 상공을 가로지르며 중앙교회 위로 내리꽂혔다.

중앙교회의 천장에 구멍이 뚫리고 아치형 창문이 깨졌으며 정원의 곳곳이 폭발하였다.

같은 순간, 불나방의 등에서 내려온 페인은 정원의 참상을 눈에 담았다.

중앙교회의 밤을 지키는 성기사들이 당혹감에 휩싸인 채다. 그중 몇 명은 승천자의 백색포격에 당해서 영문도 모른 채 부서진 살점이 되었다.

“가, 강령술사다!”

이곳 성기사들은 사전에 언질을 받았는지 저마다 대검을 뽑아들고 페인을 경계했다.

페인은 그런 그들을 보며 변조된 목소리로 외쳤다.

“너희는 속고 있다!”

성기사들은 멈칫하였다. 좀 전에 중앙교회로 떨어진 찬란한 빛의 창들이 아군을 죽였고, 적군이라고 생각했던 상대의 의미심장한 외침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승천자는 뒷골목으로 화염술사 카누스를 보내어 수십의 백성을 불태워 죽였다! 그리고 황금달의 건물까지 파괴했다!”

“황금달…?”

황금달이라면 이번에 달란트 상회를 대신하여 왕국의 어두운 부분을 관리하게 된 조직체가 아닌가.

왕국의 안정을 위해 존재하는 세인트교의 실질적 책임자인 승천자가, 어째서 새로운 조직체에 그런 일을 벌인다는 말인가.

그때 방패를 든 성기사가 외쳤다.

“놈의 간사한 발언에 넘어가지 마라!”

검붉은 로브, 흉악한 도끼, 살벌한 손목쇠뇌, 변조된 목소리, 배후에 있는 날개 달린 괴물.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하여 기괴한 방독면으로 가리고 있는 얼굴.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강령술사와 승천자 중에 어느 쪽을 더 믿을 수 있겠는가.

이들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답은 뻔했다.

“승천자님께서 우릴 구원하러 오실 것이다! 그전에 놈의 영력을 최대한 빼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 성기사들의 의무다!”

“전원 공격!”

철저하게 훈련된 성기사들은 방패를 앞세우며 페인을 포위했다. 그러면서 방패 사이로 대검을 내민 채 온 사방에서 거리를 좁히는 방식으로 포진했다.

그때 페인의 불나방이 힘차게 날갯짓하여 정원 전체에 가루를 흩뿌렸다.

“허억…!”

“끄으으…!”

페인은 호흡의 곤란함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곧장 도끼를 휘둘렀다. 코앞에 가장 가까이 있는 성기사는 저항도 하지 못했다.

콰직!!

그는 성기사 한 명의 머리를 깨부수고는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입을 열었다.

“승천자한테 목숨 걸지 말라고 이 새끼들아!”

이번엔 승천자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그들에게 향하는 마지막 경고였다.

“이대로 계속하겠다면 나도 더는 봐줄 수 없어!”

그러자 처음에 명령을 내린 성기사가 처절한 목소리를 냈다.

“세인트교는 나라와 백성들의 기반이다! 네놈이 승천자님의 고결함을 더럽히고 중앙교회를 피로 물들이겠다면 그것은 곧 이 나라에 재해를 일으키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씨발…! 승천자는 전혀 고결하지 않은 새끼라고!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러는 네놈은…! 그러는 네놈은 무엇을 안단 말이냐…!”

그는 호흡기가 약했는지 입가로 피를 줄줄 흘리면서 힘겹게 말을 이었다.

“네놈이 생각하는 승천자님이 어떤지는 전혀 중요치 않다…! 그분의 목적도 진의도 중요치 않단 말이다! 이 어리석은 잡놈아!!!”

그 분노에 동조한 성기사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페인은 반사적으로 방어와 회피를 수행하기 위해 도끼를 위로 들면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등에 불나방의 머리가 닿고 말았다.

“…!”

뒤로 물러설 공간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신성한 대검을 다 방어하지 못하여 온몸을 베일 참인데 불나방이 페인을 물어서 뒤로 자빠뜨리고 말았다.

‘비켜!’

페인은 서둘러 불나방을 밀치고 일어섰다.

그때 불나방은 이미 신성한 대검에 당한 채였다. 다리가 잘리고 머리와 턱이 베어져서는 소리 없이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오로지 나라와 백성뿐이다! 네놈이 저지르는 일들이 어떤 재해를 야기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면 차라리 죽는 게 이로울 것이다!”

「네가 무고한 성기사들을 죽이는 걸 망설이지만 않았다면 불나방은 더 긴 삶을 살 수 있었겠지.」

‘넘겨짚지 마.’

그 순간, 성기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페인에게 대검을 휘둘렀다.

페인의 몸에는 상처가 난무했다. 로브 속 방어구가 찢어지기도 했다.

‘난 승천자의 무고한 가족들까지 몰살했어.’

페인은 그가 분노하게 하고 후환이 없도록 했다.

페인이 지금 이 성기사들을 죽이지 않으려고 한 것도 같은 이치다.

촤악!

페인은 몇 번이고 베였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살아있는 시체처럼 미동도 없이 서있는 것이다.

마치 인간이 아닌듯한 그의 태세에 성기사들은 경계했다.

‘영력을 아끼고 싶었어.’

투드드드득!!!

일순간 사방에서 새빨간 혈액이 분출되었다.

“구워어억…!”

페인과 상대적으로 가까이에 있는 자들은 입으로 내장을 토해냈다.

“끄아아아아아…!”

페인과 상대적으로 멀리 있는 자들은 얼굴의 모든 구멍으로 피를 쏟아대며 휘청댔다.

그들 모두가 사방으로 피를 흩뿌리며 몸부림쳤다.

그때 중앙교회 위까지 접근한 승천자는 자신이 뭔가를 잘못 보았나 싶었다.

정원 위에서 성기사들이 단체로 광기의 춤이라도 추는 듯하였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그 실상은 참극이었다. 그들의 피로 된 분수와 소나기가 지나간 후 남은 것은 페인과 같은 색깔이 된, 모든 것이 피로 물든 정원이었다.

페인은 그런 정원 한가운데에서 승천자를 올려다보았다.

방독면 탓에 그의 표정도 감정도 의중도 파악할 수 없다.

그저 기괴하고 참혹하다.

“그야말로 악마의 강림이구나! 페인!!”

쿠콰쾅!

승천자는 공중에서 백색포격을 발동했다. 수십 개의 빛나는 창이 연달아 정원 전체에 떨어지며 폭발하였다.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랐고 그 흙먼지 속에서 페인이 도약하여 승천자에게 일직선으로 날아들었다.

퍼걱!

승천자는 맨손으로 그의 도끼를 막아내고 그의 머리를 짓눌렀다.

“허튼 짓을! 네놈에게 어울리는 곳은 저 아래다!”

그리고 페인이 추락하려는 찰나, 그는 품속에서 철과 뼈로 만들어진 단검을 꺼내어 승천자의 가슴팍에 찔러 넣었다.

푸욱!

그것은 여왕의 독니라는 이름을 가진 잿빛세계의 주물이었다.

“끅…!”

페인은 단검 손잡이를 잡아당겨 승천자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악한 존재에게 공포를 새겨 넣는 단검인데, 너는 어떨까.”

승천자는 자신의 심장에 파고든 차가운 날붙이의 감각보다도, 이 높은 곳까지 도약하여 공격을 성공시킨 페인의 힘에 당황하였다.

“너에게도 하늘은 어울리지 않아.”

‘재결합…!’

여왕의 독니가 야수의 발톱처럼 휘어져서 승천자의 갈비뼈에 걸렸다.

“끄아악! 이 개새끼…!!!”

페인은 기어코 승천자를 끌고서 정원까지 함께 추락하고 말았다.

와중에도 불나방은 다 죽어가는 몸으로 페인을 받아내고는 승천자를 꽁무니로 쳐냈다.

콰앙! 콰! 쾅!

승천자는 뒤로 나가떨어지면서 지면에 몸을 두 번이나 박고는 정원의 분수대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러고도 곧잘 일어서서 페인을 마주했다.

“감히…! 은총 받은 몸에 상처를 내다니…!”

“세인트 여신이 제금 네 모습을 보면 그 은총도 다 취소하고 싶은 기분일 거다!”

“그러는 네놈은 악마에게 박수갈채라도 받을 몰골을 하고 있구나! 이 정원의 참상을 보아라! 이 성역이 전부 너로 인하여 더럽혀진 것이다!”

“닥쳐! 이 씨발새끼야!!!”

페인은 승천자에게 화염을 쏘아냈다.

그러나 승천자가 손짓하자 그 화염이 공중에서 방향을 틀더니 역으로 페인에게 쇄도해왔다.

드드드드!

페인은 자기 앞에 흙의 장벽을 세워서 화염을 막아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빛나는 대검이 흙의 장벽을 가르면서 페인의 목을 노렸다.

카앙!

페인은 도끼로 대검을 쳐냈다. 평범한 도끼가 아니라 은까지 입혀진 도끼였기에, 은의 신성함과 빛나는 대검의 신성함이 충돌하여 서로 상쇄된 것이다.

복수심에 차오른 승천자는 한순간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죽어라아아아!!!”

곧이어 눈부신 섬광이 흙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빛의 속도로 페인을 타격했다. 그 빛은 페인의 몸을 꿰뚫고 배후에 있는 중앙교회의 벽까지 닿아서 공기를 일렁이게 하였다.

「내장에 화상을 입었어!」

퓻!

페인의 손목쇠뇌에서 발사된 은화살이 정확히 승천자의 왼쪽 안구를 노려서 날아갔다. 그러나 승천자는 그 짧은 순간에 정확히 은화살을 직시하고 고개를 기울여 회피했다.

하지만 페인도 승천자가 왼쪽의 은화살을 직시한 순간에 발돋움한 채였다. 이미 승천자의 오른쪽 허리를 노려 도끼를 수평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카앙!

그러나 승천자는 천리안으로 그 노림수까지 꿰뚫어 보고 있었다. 즉각 대검을 휘둘러 페인의 도끼를 쳐냄과 동시에 무기의 길이 차이를 이용해 페인의 어깨를 베어냈다.

쿠저저적…!

「페인!!」

페인은 오른쪽 어깨를 잃었다.

그의 팔과 손은 도끼를 잡은 채 홀연히 지면 위에 떨어졌다.

촤아아아…!

페인의 오른쪽 어깨 절단면에서 피가 분출되었고, 그는 의도적으로 몸을 틀어서 어깨의 피가 승천자에게 뿌려지도록 하였다.

“이런 더러운 새끼…!”

승천자는 연이어 대검을 휘둘렀다.

페인은 뒷걸음질 치며 대검을 회피했다.

“천명(天命)의 창…!”

승천자가 대검을 버리고 페인에게 팔을 뻗자, 그가 팔을 뻗은 방향 그대로 마법진이 전개되었다.

마법진이 빛을 내면서 뿜어내듯 사출한 것은 창의 형태를 하고 있는 빛이었고, 그 두께와 길이가 상대방의 몸을 뚫는다기보다는 짓이겨버릴 정도로 거대했다.

쿠콰콰콰콰아아아!!!

흙바닥까지 둥글게 쓸어버리며 사출된 창은 페인을 문자 그대로 터뜨려 없애버리고 그 뒤쪽의 중앙교회까지 일직선으로 크게 관통하여 둥근 궤적을 만들어버렸다.

“허억, 허억, 허억, 이, 이 끈질긴 새끼…!”

승천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천리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불과 5초 전에 터뜨려 죽인 페인이 다시금 뒤에서 나타난 것이다.

방금 잘라냈던 어깨는 어째서인지 다시 붙어있다.

“오냐…! 몇 번이고 죽여주마!!!”

승천자가 다시 페인에게 손을 뻗은 그 순간이었다.

콰아악!

승천자의 발치에서 흙이 거꾸로 솟아오르고, 솟아오른 흙과 돌멩이 사이에서 거미줄이 움직여 승천자의 온몸을 휘감아버렸다.

……쿵!

그리고 중앙교회 위에 달린 십자가가 떨어졌다.

승천자는 흰자위만 보일 때까지 동공을 한껏 움직여서 자신의 배후를 올려다보았다.

“죽여! 아라나크!”

거대한 거미의 몸, 여성의 창백한 상반신.

흰자위 없이 오로지 검은 눈.

“가라. 내 아가들아.”

- 키에에에엑!!!!

엄청난 숫자의 거미 악귀 군단이 정원의 담벼락 위로 껑충 뛰어오르며 등장한 것이다.

그러자 승천자는 거미줄에 묶인 채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천계(天界)에 계신 여신이시여, 성역의 영격(迎擊)을 위해 현 승천자가 감히 발키리의 순결한 힘을 빌리고자 하오니…”

아라나크는 승천자를 턱짓했다.

거미 악귀들이 승천자에게 달려들었다.

그것들의 턱이 승천자의 몸을 무차별적으로 깨물고 씹었다. 그의 살갗에서 핏물이 터져 나오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승천자는 계속 주문을 외웠다.

“인간인 몸, 한낱 인간인 영혼임에도 천계의 심판을 현계에 대리하여, 샤의 사악한 추종자들과 그 악의 불순물을 발키리의 빛으로써 격퇴하리다….”

이윽고 밤하늘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왕국의 상공 전체를 뒤덮는 빛나는 마법진이 펼쳐진 것이다.

‘발키리의 낙뢰…!’

마법진의 중심으로부터 단 하나의 거대한 벼락이 중앙교회에 떨어졌다.

수십의 거미 악귀 군단은 그 자리에서 가루가 되었고 아라나크와 페인은 그 자리에서 빛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중앙교회는 물론이며 그 일대에 있는 건물 수십 채와 도로까지 휩쓸려서 움푹 파인 커다란 반구 모양의 지형을 만들고 말았다. 거기에 구조물의 잔해는 있었지만 부드러운 시신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다.

그 거대한 벼락에도 흙먼지나 굉음조차 없었다. 그저 움푹 파인 지형의 한가운데에 오로지 승천자만이 멀쩡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

오로지 승천자만이 멀쩡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아주 잠깐은 말이다.

“네놈…….”

이쯤 되면 공포다.

그는 또다시 페인을 마주하고 만 것이다.

“정체가 무엇이냐….”

“페인.”

“아니야…. 내가 알던 그 해결사 놈이 아니라고….”

페인은 자신의 얼굴 쪽으로 손을 올렸다.

그 일련의 움직임에 승천자는 흠칫했다.

“네가 만든 재해. …강령술사.”

페인은 그가 보는 앞에서 방독면을 벗었다.

밝아졌던 밤하늘이 다시금 어두워지고,

그의 붉은 눈동자가 위험하게 빛났다.

또한 그의 입꼬리가 위험하게 올라갔다.

“이제 왕국에 네 편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페인이 그 말을 꺼냄과 동시에, 움푹 파인 지형의 위쪽에서 세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들은 승천자의 명령대로 수많은 성기사, 성녀, 퇴마술사들을 대동하고 온 것이다.

결국 자기 꼬리를 밟고 만 것이다.

일가족을 잃었다는 분노에 눈이 멀어서.

복수에 눈이 멀어서.

“아니야…. 이, 이건 내가 한 짓이…. 바, 발키리가 찾아와서 날 도왔…. 그, 그게….”

승천자의 눈에는 페인 뒤에 있는 수많은 자들의 표정이 보였다.

그들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 시선들이 가증스러웠다.

“이 미개한 버러지 새끼들이…! 감히 누굴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냐!”

승천자는 온 세상에 울리도록 목청을 높였다.

“네놈들도 즐겼잖아…!”

모두가 그의 뒤틀린 모습을 목도했다.

“너희도 나와 함께 매질을 하고 나와 함께 화형을 하지 않았느냐! 내가 주는 성수를 받아 처먹고 행복해하지 않았느냐! 내가 던져주는 마녀와 악령을 함께 벌하면서 즐기지 않았느냐! 그러면서 내게 감사하지 않았느냐! 인간은…! 인간은 누구나 ‘해소’를 필요로 한단 말이다! 그게 없고선 살아갈 수가 없어!”

그의 눈에 핏줄이 섰다.

“나는 몇 명의 희생을 감수했을 뿐이다…! 그들의 희생으로 하여금 너희가 해소할 수 있게 해주었다! 너희가 즐긴 것에 비하면 내가 즐긴 건 아주 사소한 유흥이지! 그렇지 않으냐!”

“이제 너는 아군도 없어.”

“닥쳐라! 나는 절대다수를 위해 움직였을 뿐이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수의 피해는 전부 눈을 가리고 외면하지! 어차피 이 세상 인간들이 모두 행복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힘들고 괴롭고 불행해야만 다른 이들이 편하게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불행의 숫자를 최소한으로 줄이려 노력했다!”

처절한 변호일까.

비참한 발악일까.

“그리고 이 버러지 새끼들이…! 함께 해소할 때는 언제고…! 네놈들 모두가 함께 돌을 던지며 즐겼으면서, 인제 와서 군중을 이루어 날 그런 눈으로 쳐다본다고…?!”

“내게 성수를 받고 날 찬양하던 놈들은 다 어디로 숨었느냐! 함께 돌을 던지며 욕하던 한 놈 한 놈은 다 어디로 숨었냐는 말이다…!!!”

“그게 군중이야.”

“뭣이?”

“천 년이 지나고 만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지금 왕국 전체를 적대하게 된 자는 누구인가.

불과 5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두가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왕국의 누구도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봐. 이렇게 순식간에 악당 하나가 만들어졌잖아. …그때처럼.”

파괴된 일대.

충격적인 참상이라도 보는 듯한 시선들.

누구 한 명도 승천자를 위해 나서는 자가 없었다. 이제는 승천자가 모두의 매를 맞는 악당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추악한 역전을 뒤늦게 깨달아버린 승천자는 힘이 빠진 눈으로 페인을 쏘아봤다.

“페인…. 네놈은 기필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잘 됐네. 또 만날 테니까.”

그 뜻을 뒤늦게 이해한 승천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 그리고 생을 포기하기로 작정했다. 이성을 놓아버리기로 작정했다.

“흐흐, 흐흐흐흐흐…!”

그렇게 모든 것을 잃고 부서져버린 모습은 한때 누군가의 모습과 비슷했을지도 모르겠다.

“으하하하하하하하! 아아아아아아아아!!!”

그의 얼마 남지 않은 영력이 심장 쪽에서 밝은 빛으로 투영되기 시작했다.

키이잉!

하지만 그때 승천자의 배후에서 두 배척자가 나타났다.

“너는. 교체되어야 한다.”

배척자는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손날을 휘둘렀다. 그 움직임에서는 일말의 자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툭!

그렇게 승천자의 머리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저 고요했다.

사람들은 모두 침묵했다.

페인 안에 존재하는 악령만이 침묵을 깼다.

「자, 잠깐만 승천자 이 새끼…….」

페인은 승천자의 머리칼을 쥐어서 그대로 들어 올렸다.

「이 새끼 이거…」

「인간이 아니라 악령이었어….」

이제 끔찍한 진실을 마주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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