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징악 (5)
나는 승천자의 머리칼을 쥐어서 그대로 들어 올렸다.
「인간이 아니라 악령이었어….」
의심이 있었다. 승천자가 악한 인물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니.
승천자가 가장 선한 인물이라는 것이 세인트 왕국의 상식이자 진리이며, 나는 세인트 왕국의 백성이다.
그래서 승천자가 나와 리인에게 한 짓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승천자가 어떠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으리라 마지막까지 의심하여, 그에게 질문을 하려고 했었다. 왜 그랬냐고.
하지만 그런 것도 다 의미가 없던 것이다. 승천자를 고발하기 위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배척자를 불렀지만, 배척자는 내가 명령하기도 전에 승천자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승천자가 벌인 악행들은 어떤 이유가 있던 게 아니라, 승천자가 악령이었기 때문에 벌였다는 것으로 이해가 돼버리고 말았다.
내 안의 악령은 승천자의 영혼을 먹어치웠다.
「조심해. 860의 악이 흘러들어오고 있어.」
승천자는 평소에도 성수를 약처럼 마셔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860의 악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이젠 내 영혼에 3799의 악이 축적되었다. 이러면 악령화 증상이 나타날 것이다.
나는 서둘러 방독면을 썼다. 지금 뒤에 모여있는 구경꾼들은 끝까지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승천자와 하나가 된 악령은 승천자의 신성한 육체로 신성 마법을 흉내 낼 수 있던 거야. 게다가 승천자는 영혼 자체가 가진 영력이 방대했어.」
문득, 선생의 말이 떠올랐다.
- 악으로 이루어진 존재의 특성을 하나로 정의하려 하지 말게.
- 우리는 결코 그것들을 정의할 수 없다네.
악령. 이물. 악귀.
악인.
우리는 그것들을 정의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승천자는 신성한 마법을 쓸 때마다 자신이 깎이는 듯한 고통을 맛보았겠지만, 모순적이게도 방대한 영력을 이용해 스스로의 영혼과 육체를 지탱할 수 있던 거야.」
우선은 이 머리를 들고 잿빛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잿빛세계를 두고 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해?」
“페인. 너는 저 위에 모인 자들에게 해명할 수 있다. 이 순간 이 자리에서. 해명이 가능한 유일한 존재. 너뿐이다.”
“나한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그리고 이건 너희 둘이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잖아.”
뒤에서 흙을 밟는 소리가 들려온다. 여러 명이 이 구덩이로 내려와 내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세인트 로이틀란크, 세인트 헤이틀란크 전 신관. 너희 둘의 조각상이 중앙교회에서 눈물을 보였어. 그걸 기반으로 어떻게든 설명해.’
나는 재결합 능력을 발동하여 다가오는 자들과 내 사이에 흙벽을 세웠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그들의 시야로부터 자유로워진 나는 다차원 능력을 발동할 수 있었다.
* * *
성기사, 성녀, 퇴마술사들은 눈을 크게 뜬 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하여 떨리는 호흡 소리만이 적막함을 채웠다.
승천자가 죽었다.
죽임을 당했다.
“상황 파악부터 하자고.”
물을 다루는 온화한 마법사, 맨손에 하얀 로브 차림의 파보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아그니샤, 페레스.”
똑같이 하얀 로브 차림이지만 페레스라는 남성은 손에 성서를 들고 있다.
그리고 아그니샤는 등에 자기 키보다 두 배는 큰 은색 십자가를 달고 있는데, 여성임에도 주변에 있는 다른 남성들과 키가 비슷했다.
페레스는 애써 두려움을 감추며 파보크에게 물었다.
“이제 저자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아그니샤가 그를 대신하여 대답했다.
“카누스와 승천자님까지 해치운 강자를 우리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파보크는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아그니샤의 말이 옳다. 그리고 이 거대한 파괴의 현장은 승천자님이 빚어낸 것이다. 아무리 승천자님이라도 성스러운 중앙교회와 인근의 백성들을 학살한 죄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페레스는 반문했다.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승천자님께서 카누스를 보내 강령술사를 처리하려다 실패하셨고 이런 참상이 벌어진 게 아닙니까. 저자가 왕국에 얼마나 큰 위협이었으면 승천자님께서 이러한 희생을 감수하셨겠습니까.”
이윽고 그들 세 마법사를 따라서 성기사들이 따라붙었다. 그렇게 모인 자들이 파괴의 현장으로 내려와서 페인에게 접근한다.
“세인트 로이틀란크…. 세인트 헤이틀란크…. 두 분의 조각상이 저자의 곁에서 살아 숨 쉬고 계신다.”
“이만한 규모의 싸움을 벌였다면 필시 저 강령술사라는 자도 영력이 부족할 것입니다. 파보크 님, 차라리 지금이라도 저희 셋이 힘을 합쳐서…”
“그건 잘못된 판단인 것 같네요.”
“아그니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나서려고 그래?”
“저는 저자와 싸울 수 없어요.”
“파보크 님이랑 내가 힘을 합친 것보다 너 하나가 훨씬 강하잖아! 네가 나서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아니요. 저는 저자가 악한 존재라는 확신이 없으면 나서지 않을 겁니다.”
“페레스. 두려움에 판단을 그르치지 마라. 그리고 아그니샤는 네이트 님의 힘을 언제나 신중하게 사용하는 여전사다. 그녀의 십자가가 망설인다면 우리도 마땅히 망설여야 하는 것이다.”
“네. 그리고 좀 전에 승천자님을 처형한 두 신관의 조각상도 예사롭지 않아요.”
“당사자의 자초지종부터 들어보자고.”
하지만 강령술사라는 자는 배후에 흙벽을 세우더니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윽고 흙벽이 무너졌다.
그 자리에는 머리 없는 승천자의 시신과 두 배척자만이 남게 되었다.
이 일의 중심에 있던 강령술사는 사라졌고 승천자는 죽은 몸이다. 그래서 이들은 전 신관을 닮은 두 조각상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결국 파보크가 앞장섰다.
“세인트 로이틀란크 전 신관님, 세인트 헤이틀란크 전 신관님. …맞으십니까?”
그러자 왼쪽에 서있는 배척자가 몇 걸음 앞으로 나왔다. 사람보다 두 배는 큰 덩치와 신장, 조각되어 중앙교회에 남겨질 정도로 세인트교의 역사에 큰 자기희생을 바친 신관.
그런 신관의 조각상에 내심 압도당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우리는 사념이 모여 다시 태어난 존재. 우리가 전 신관이냐는 물음. 반쯤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나는 세인트 로이틀란크의 죄악감, 후회, 염원이 차가운 석상에 깃들어 잉태한 존재. 본래 잿빛세계의 존재다.”
파보크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다. 그러자 그와 함께 온 자들이 모두 같은 자세를 취했다.
“소인의 명은 파보크라 합니다. 승천자님을 따라 세인트교의 올바름을 전파하고 왕국과 백성을 수호하기 위해 일생을 바쳐온 물의 마법사입니다.”
“너는. 필요악인가?”
파보크는 대뜸 그게 무슨 질문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때 아그니샤가 나섰다.
“필요악의 임무를 수행하던 자는 강령술사에게 살해당하였습니다. 이 자리의 저희들은 왕국과 백성을 위한다는 공통된 목표 아래에 세인트교를 중심으로 뭉친……. 승천자의 칼과 같은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너는. 무엇이지? 너의 등에 있는 거대한 은의 십자가. 그리운 감각이다.”
“저는 아그니샤입니다. 네이트라고 불리는 천사의 축복을 받고 태어나, 현계에서 악한 존재에게 무력을 휘두를 수 있는 권리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네이트……. 승천자가 천사를 강림시킬 수 있던 시대. 나는 멀찍이서 그분의 형상을 보고 감탄하였다. 그런 기억이. 파편처럼 내게 잔재하고 있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실제로 있었던 신화를, 그 신화 속의 등장인물을 통해 듣는 듯한 감각이었다.
“세인트 로이틀란크 전 신관님.”
그때 파보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물어봐야만 했다.
무례를 감수해서라도 말이다.
“어째서 승천자님의 목을 베어내신 겁니까?”
“내가 처형한 존재. 너희가 믿고 추앙하던 승천자는 타락하였다. 스스로. 죄를 쌓고도 용서를 받을 수 있어, 계속 죄를 쌓은 것이다.”
“그 말씀은 즉 승천자님이…”
“타락한 승천자. 그는 악령이 되었다.”
이후 두 배척자는 세 마법사와 함께 왕궁으로 가서, 왕이 보는 앞에 모든 것을 설명하였다.
* * *
반구 모양으로 거대하게 파여버린 파괴의 현장.
중앙교회와 그 일대가 처참하게 부서진 채다.
이곳은 잿빛세계의 중앙교회가 있던 장소다.
파괴의 현장 중심에는 처량한 존재가 홀로 방황하고 있었다.
“죽어어……. 죽어버려…….”
이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울화가 치민다.
“싫어…. 싫어어….”
악명. 저주하는 여인.
까맣게 타버린 몸으로 십자가에 구속된 이물.
가지고 있는 악은 85.
실재세계의 존재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이물. 잿빛세계에 있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는 이물.
그야말로 깊은 원한과 피해의 산물.
“…리인. 나 좀 봐.”
“너무 미워어어…”
이제 리인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제 다시는, 다시는 리인과 볼 일이 없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내가 승천자에게 복수했어.”
나는 리인에게 승천자의 머리를 보여줬다. 베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피가 뚝뚝 흐른다. 그렇게 뜬 눈으로 절명한 자의 머리다.
눈알도 없는 얼굴이지만 리인은 분명히 승천자의 머리를 보았다.
“아………?”
나는 방독면을 벗었다.
리인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었다.
3799의 악을 쌓게 되면서 악령화 증상이 조금 있었지만, 이렇게 리인과 마주하기 전에 성수를 한 병 마셔서 멀쩡한 얼굴로 되돌려놨다.
“아…….”
리인은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손으로 내 얼굴을 더듬었다.
“아……. 으으으…….”
「저주하는 여인.」
「아니다. 그냥 리인이라고 할게.」
「리인은 승천자에게 강간을 당했어. 집 앞에서 빨래를 널다가 승천자와 눈을 마주쳤던 게 사건의 시초야.」
“네가 당하고 있을 때 그 자리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우으으….”
“처음부터 한참 잘못 판단하고 말았어. 전부 나 때문이야.”
“우으…. 으으…. 으……. 아…….”
퍽!
리인은 내가 들고 있던 승천자의 머리를 쳐내버렸다. 그러고는 나를 껴안았다. 피가 말라붙은 로브에 리인의 피눈물이 묻었다.
「승천자는 리인에게 겁을 줬어. 몸에 액운이 있으니 깨끗하게 씻어내야 한다고. 몸 안에 사악한 악령이 자라나고 있어서 그걸 퇴마하여 제거할 건데, 고통스러울 수 있는 일이라고.」
“우으으으으…”
“정말…. 정말 미안해….”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군중에게 붉은 눈을 들켰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잘못된 선택들을 모조리 바로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네가 해결사로 일하고 있었을 시절, 리인은 자기 안에 악령이 있다는 소리를 철석같이 믿었어. 그리고 네가 걱정할까 봐 네가 자고 있는 새벽에 혼자서 집을 나갔지. 그 길로 승천자를 찾아갔어.」
「그렇게 당한 거야. 리인도 상식이 있던 여인이었으니 퇴마를 빙자한 승천자의 악행을 알 수밖에 없었어. 그래도 상대가 승천자라서 어쩔 수가 없던 거야.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승천자가 한 일이니까 반신반의할 정도였지. 네가 그랬던 것처럼, 이 왕국의 백성들이 모두 승천자를 그런 인물로 믿었던 것처럼.」
「이후 승천자는 계속해서 리인을 불러냈어. 전언으로 속삭이고 천리안으로 리인을 관음하면서 협박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어. 오지 않는다면 네 오빠를, 너의 마지막 남은 핏줄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면서 리인을 집요하게 불렀어.」
「그러다 너한테서 악령화 증상이 나타나고 만 거야. 승천자는 그런 김에 널 없애버리고 리인을 영원히 ‘해소’의 도구로 삼으려 했지.」
「리인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승천자에게 대항했어. 자기는 무슨 짓을 당해도 상관없으니까 자기 오빠한테는 그러지 말라고. 자기한테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이제 그만하라고. 얼마든지 명령에 따를 테니까 오빠를 풀어주라고. 오빠는 악령이 아니라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자신이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할 거라고.」
「그 한 마디로 인해 리인은 마녀로 몰렸어. 마침 네가 악령화 증상을 보이고 있으니 둘이 하나로 묶어서 처리하기에 명분이 좋았겠지.」
이렇게 복수가 끝났다.
이런 형태로.
이 공허함의 파도는 뭐라 형언할 수가 없다.
나도 죽을까. 어차피 다 끝났는데.
복수하려고 죽지 못해 살아온 게 아닌가.
내가 살아갈 명분으로 복수를 택한 게 아닌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리인의 영혼도 위로해준 것 같고. 지금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꺼이 죽고 죽이며 달려왔다.
이 정도면 열심히 했으니, 이제 내려놔도 되는 게 아닌가. 더는 살아갈 이유를 모르겠는 이 목숨을 지옥에 던져서 태워버리고 다 지워버려도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복수는 끝났으니까.
“오빠.”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내려보니 리인이 있었다. 아주 멀쩡한 리인이. 그러나 조금은 희미하게.
“오빠. 내가 천국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목이 메고 눈물이 차올랐다. 그래서 씩씩하게 대답해주진 못했다.
“……물론이지.”
“그러면 천국에서 오빠랑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내게 천국은 무리다.
“…물론이지.”
리인은 마지막으로 해맑게 웃었다.
“고마웠어.”
가까이에 있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듯하다. 잿빛세계의 하늘이 밝아지는 듯하다. 리인의 형상이 점점 더 희미하게 변하는 듯하다.
- 하늘에서 지켜볼게! 남은 인생 멋지게 살다가 오라고!
그렇게 웃는 얼굴로 빛이 되어 사라졌다.
난 웃을 수 없었다. 하늘에서 지켜본다고, 남은 인생 멋지게 살다가 오라고.
그 말이 지금의 내겐 따뜻한 저주 같았다. 그런데 이 지독한 공허함 속에 뭐라도 채워지는 걸 거부할 수가 없다.
나보고 죽지 말라고 한다. 계속 살아가라고 한다. 내 남은 삶을 지켜보겠다고 한다.
- 난 불행하지 않았어!
- 오빠가 내 오빠라는 게 나한텐 축복이었으니까!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몇 시간을 울었다.
어두운 밤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울었다.
그래도 사람의 눈물이란 계속 쏟아내다 보면 결국 메마르는 것이었다. 그러다 더는 울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두 다리로 일어서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밝게 떠오르는 해를 증오하며 방독면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