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과도기 (5)
광란의 집단부화.
제국의 병사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자신들의 구멍에서 튀어나온 새끼 거미들에게 도리어 잡아먹히고, 새끼 거미를 뒤집어쓴 아군을 자신들의 검으로 베어내는 것이다. 그 조그만 거미들이 몸과 바닥과 마차를 미친 듯이 기어 다니며 숫자를 불려갔다.
저들의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광란의 현장이었다.
「아라나크를 보고 혐오감을 느낀 놈들만 당한 거네.」
그들 기준에서 후열에 있는 병사들이 새끼 거미를 낳고 죽은 다음엔 비교적 전열에 있는 병사들이 새끼 거미를 상대했다.
전열에 있던 병사들은 몸에서 새끼 거미가 튀어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후열에 있던 병사들 중 극히 일부 또한 몸에서 새끼 거미를 낳지 않았다.
아라나크를 보지도 못한 자들이나 아라나크를 보고도 혐오감을 느끼지 못한 자들은 주술에 당하지 않은 것이다.
“페인…. 놈들은 몇 명인가?”
난 탐지 3계를 써 적들의 구성과 규모를 알아냈다. 처음에 마주했던 것보다 숫자가 많이 줄어있었다.
“이제 검사 여섯, 창병 아홉, 궁수 다섯, 마차 세 대. …그리고 중간에 지휘관으로 보이는 놈이 창기병 둘과 함께 있어.”
“마법사는?”
“특별히 영력이 높다거나 마법사 차림을 한 놈은 없는 것 같아. 혼자 해치울 수 있어?”
“난 혼자가 아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잠시 생각하고 있는데 아라나크가 앞서나갔다.
「우린 구경이나 하자. 어차피 인간은 죽여도 먹을 악이 없어.」
상대는 이물도 악령도 아닌 인간들의 집단이다. 그래서 아라나크나 내가 저들을 몰살하여도 얻을 수 있는 악은 없다.
와중에 적들 사이에서 불어난 새끼 거미들은 아라나크의 명령을 받은 것 같다. 단 한 마리의 예외도 없이 지면에 우르르 떨어져서 저들의 발바닥 사이를 누비고 있는 것이다.
자연히 저들의 시선은 자신들의 발치가 되었다. 필사적으로 새끼 거미를 짓밟고 말이나 마차 위에 오르거나 아예 도망치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저들은 지금 자신들에게 아라나크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는 것이다.
이윽고 아라나크가 육탄전에 돌입했다.
으적!
마차 크기의 몸집이 파괴적이었다. 아라나크는 뾰족한 여덟 다리로 인간 따위는 손쉽게 짓밟아 찔러 죽일 수 있었다.
“서, 선두로 빠져!”
“뒤로 나와! 비키라고!”
“으아아악!”
제국의 검사들은 모두 방패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훈련된 움직임으로 행렬의 중간쯤에서 방패로 벽을 세우고는 아라나크에게 창을 내질렀다.
하지만 아라나크는 상대해주지 않았다. 좀 전까지 무시무시한 기세로 적들을 밟던 아라나크는 방패 대열 앞에 멈춰서 기다릴 뿐이었다.
스스스스슥!!
아라나크보다 보폭이 작은 새끼 거미들이 지면을 기어서 방패 대열로 파고들었다. 수많은 벌레들을 상대로는 견고한 대열도 창질도 의미가 없던 것이다.
“히이익…!”
검사들은 기겁했다. 발치까지 몰려온 것들이 발목, 종아리, 허벅지를 타고 올라서 온몸에 들러붙는 감각은 혐오보다 공포에 가까운 것이 되었으리라.
으드득!
“끄아아아아아!!!”
새끼 거미에 뒤덮인 자는 방패와 검을 떨어뜨리고 허우적댔다. 마치 온몸에 불이 붙은 사람처럼 괴로워하여 죽어갔다. 그런 모습을 코앞에서 목격한 다른 자들은 뒤로 줄행랑을 쳤다. 그렇게 병사들이 자리에서 이탈하면 대열이란 순식간에 무너지는 법이었다.
그리고 창으로, 검으로, 화살로 저 벌레들을 어떻게 상대할 수나 있을까. 나라도 저들의 입장이라면 도망을 택할 것이다.
「창기병 둘이랑 지휘관이 비겁하게 도망치고 있어.」
‘지휘관이 생존을 모색하는 건 비겁이 아니야.’
「그럼 살려줄까?」
‘적장을 왜 살려?’
* * *
세 마법사의 중심인물인 파보크는 숙달된 성기사 네 명만 데리고 추적대를 편성했다.
네 마리의 말을 타고 있는 그들 추적대는 반나절만에 절벽길로 들어섰다.
촤아아!
말들의 발굽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물이 튀었다. 마치 물로 만든 말발굽을 신긴 것 같다.
“파보크 님. 소수 인원으로 편성하면 전후방의 경계 범위가 짧아지는 법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선두에서 파보크와 나란히 달리고 있는 성기사가 우려를 표했다.
“앞서 전방을 정찰할 인원이 없으니 제국의 정찰대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걱정 마라. 이 좁아터진 길목에서 놈들의 정찰대가 누군가를 마주친다면 그건 우리가 아닐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됩니까?”
“거대한 나방은 성기사들이 죽였다고 하였지. 그래서인지 강령술사는 거미 악귀로 나방을 대신하였다고 한다. 하늘이 아니라 땅으로 이동하는 중이지.”
“하지만 거미는 수직의 절벽을 타고도 이동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선 속도가 붙지 않을 거다. 제국 정찰대의 존재를 모르는 강령술사가 굳이 절벽을 타고 가진 않겠지.”
“그럼……. 저희가 안전하기 위해선 강령술사가 앞에서 정찰대를 다 처리해야만 하는 것이군요.”
“그래. 모순적이게도 그래야만 해.”
정찰대가 전멸당하면 제국에서는 이를 세인트 왕국의 소행으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앞서고 있을 정찰대가 전멸당하지 않았다면, 이쪽 추적대는 정찰대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절벽길이라 상대를 피해 우회하는 방법 따위는 없다.
“이미 어느 쪽이든 좋은 상황은 아니란 말이다.”
“파보크 님! 저 앞에…!”
그렇게 말을 타고 달리던 중에 고삐를 잡아당겼다.
히히이잉!
일단 정지했다.
앞에 어떤 현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기척은 없…. 아니, 오히려 유골들이 있습니다.”
“둘은 뒤에서 대기. 너는 나랑 도보로 접근한다.”
“예.”
“만약 싸움이 벌어지거든 너희 둘은 뒤도 돌아보지 말고 왕국으로 복귀해 모든 사실을 보고해라. 지금 왕국엔 ‘전언’을 연결할 수 있는 자가 없으니.”
“예! 알겠습니다!”
말에서 내린 파보크와 성기사는 조심스럽게 현장으로 접근하려 했는데, 벌써 발치에 무언가의 흔적들이 있었다.
“그을린 화살들이 왜 떨어져 있지?”
“저쪽에서 이쪽으로 불화살을 쐈군요. 제국 정찰대가 강령술사를 향해 쏜 것이 분명합니다. 강령술사의 거미가 말보다 빠른 탓에 정찰대의 후열과 마주치고 만 것이겠죠.”
“그럼 이 싸움의 첫 합이 여기서 시작된 것인가….”
그리고 둘은 앞으로 갔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마차 세 대. 부러진 검, 창, 활, 부서진 갑옷, 찢어진 의복 따위가 유골들 근처에 방치되어 있다.
“흠.”
파보크는 지면에 버려진 의복을 주워서 살펴보았다. 옷에 핏물이 묻어 있지만 살점이나 신체의 조각 같은 건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 없다. 게다가 지면에도 핏자국은 없어서 도저히 정상적인 현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옷가지들이 피에 젖어있다. 마르지 않았어.”
“유골들도 새하얗습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깨끗이 닦아낸 것처럼요.”
성기사는 두개골 하나를 주워서 파보크에게 보였다.
“구멍도 뚫려있지 않은 두개골인데 안이 텅 비었습니다.”
“얼굴에 있는 구멍으로 침투한 것이다.”
“예?”
“생쥐는 아니고…. 마치 굶주린 파리떼가 지나간 것 같군.”
“유골의 숫자와 무기의 숫자가 맞지 않은 건 어째서입니까? 만약 강령술사가 이들의 보급품을 가져갔다면 마차도 함께 가져가는 편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여기에 있는 마차 세 대가 전부인가?”
“예. 저 앞에는 바큇자국이 없습니다.”
파보크와 성기사는 현장의 선두까지 나와서 지면의 흔적들을 확인했다.
“말 세 마리와…. 이건 거미의 발자국입니까?”
“그래. 두 마리인데 한 마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군. 다리가 여덟 개 달린 거인이라도 지나간 것 같다. 자네 말대로 바큇자국은 없고.”
“이러면 보급품이 어디로 사라졌다고 보십니까?”
“잿빛세계로 가져갔겠지. 그리고 이곳의 제국군들은 아주 작은 생물들에게 파먹힌 것 같다.”
“강령술사의 특기인 방혈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그가 방혈에 있어 아주 높은 계를 가졌다는 정보가 있다.
“아주 은은하게 피비린내가 풍기지만 지면에 혈흔이 없다. 본래 방혈이란 전투의 현장이 피로 물드는 것이 기본이다.”
“그럼 방혈조차 쓰지 않고 이 많은 인원들을 혼자서….”
“그는 혼자가 아니다.”
성기사는 그게 무슨 뜻인가 잠시 생각했다.
“아. 강령술사니까….”
“그렇지. 그는 제국의 정찰대를 궤멸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소환물을 다뤘다는 말이다. 그리고 구더기 한 마리, 까마귀 똥 하나도 없는 깔끔한 현장에 핏기가 있으니…. 전투는 순식간에 끝났을 거다. 그것도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 말이지.”
파보크와 성기사는 서둘러 뒤로 돌아가 다른 두 성기사와 합류했다. 그렇게 모인 추적대는 빠르게 달려서 현장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그 끝에 기적적인 생존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말 세 마리 분량의 뼈다귀, 사람 두 명 분량의 뼈다귀가 있다.
그리고 그 뼈다귀들 위에 팔다리가 묶인 남자가 있던 것이다.
성기사는 그를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정찰대장일 겁니다.”
갑옷도 무기도 없이 천으로 된 옷만 걸친 채다. 그리고 혼이 쏙 빠진 것처럼 공허한 눈을 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사람이 저런 눈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나는 세인트 왕국, 세인트교의 현 3대 마법사들 중 머리가 되는 파보크라고 한다.”
파보크는 말에서 내리지 않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너의 신원을 밝히고 자초지종을 설명해라.”
“히, 히히.”
“이미 제정신이 아닌가.”
“히히히히…. 히히흐흐히히히히….”
정찰대장은 힘없는 실소를 터뜨렸다.
뒤에 있던 성기사 두 명이 말에서 내려 그를 일으켜 세웠다.
“고문을 당한 상흔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코, 코, 코, 코. 귀랑 입. 입이. 귀에 막….”
“알아들을 수 있게 또박또박 말해라.”
“히야아아아아악!!!”
그러자 그는 거친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높은 비명을 내지른 것이다.
그 비명이 수직적인 돌산에 몇 번이고 부딪혀서 울렸다.
“얼굴로 들어왔어. 얼굴로, 귀에도 들어왔다고! 그것들이 얼굴에 막 들어와, 내 머리 안에, 눈알 뒤쪽에서 기, 기, 기기기기어 다녔다고…! 히! 히히히히!”
“이거, 외부의 광인은 아니겠지?”
“정찰대장 맞습니다.”
때마침 그의 옆에 붙은 성기사 한 명이 그의 주머니에서 증표를 꺼내 보였다.
그것은 정찰대장의 직위와 직책을 병사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주어지는, 제국의 문양이 새겨진 증표였다.
“보란 듯이 거미줄로 포박해서 여기에 버려뒀습니다. …저희가 온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요.”
“우리 추적대는 반나절 전에 편성되었다. 그자가 그 사실을 곧장 알아차렸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하심은….”
“어떤 소환물의 눈을 통해 우리를 봤다고 추측할 수 있겠군.”
“도, 돌아가! 돌아가라고!”
“뭐?”
“너희한테 이것만 말하면 빼준다고 했어…! 내 머리 안에 있는 걸 이것만 말하면 빼준다다다다다고고고곡…! 어어…? 어어억…….”
정찰대장은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렸다.
그리고 정찰대장의 귓구멍에서 아주 작은 거미 한 마리가 기어 나온 것이다.
“파보크 님, 이건….”
“전령이다. 강령술사는 지금 우리에게 돌아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의 귓구멍에서 나온 거미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재처럼 부서져서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말았다.
“…돌아가자.”
“그래도 괜찮은 겁니까?”
“마음만 먹으면 우리 발을 얼마든지 묶을 수 있는 실력자다. 그런데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무력을 쓰지 않고 전령을 남겨놨지. 이러면 그의 장단에 맞춰주는 수밖에 없다.”
파보크가 있음에도 한 수 접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뜻을 무시하고 뒤쫓다가 무슨 역풍을 맞게 될지 모른다.”
“설마 저희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저희를 해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악령이 된 타락 승천자를 몸소 퇴치한 자인데….”
그 대목에서 파보크는 승천자의 저택에 대한 일을 떠올렸다. 원인불명의 화재로 저택이 통째로 전소되고 그 안의 사람들은 모두 실종되었다고 하였다.
‘그건 아주 비상식적이고도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전에 있던 일들도 떠올랐다.
뒷골목에서 달란트 상회의 암살자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무너진 일, 카누스가 죽임당한 일, 무엇보다 계속해서 황금달과 움직이며 음지의 일들을 행하고 있는 듯한 그의 숨겨진 행보다.
게다가 그의 힘은 마법이 아니었다. 물론 승천자라는 예외 사례가 있긴 하지만, 마법은 신성하고도 선한 영혼이나 육체, 천사로부터 축복을 받은 힘이 근원이다.
그런데 그는 그런 힘이 아니라 근원이 불투명하고 어두운 주술적인 힘을 다루는 것이다.
“착각해선 안 된다. 강령술사는 절대 정의나 선으로 여길 수는 없는 인물이다.”
“….”
“만약 그자가 꾸미고 있는 일에 우리가 걸림돌이 된다면 가차 없이 무력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파보크는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결정을 들은 성기사들은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제국 정찰대가 이곳에서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던 것처럼 말이지.”
이후 세인트 왕국에서는 강령술사라는 개인의 전력에 대한 평가가 더욱 높아졌다.
그리고 정찰대의 궤멸, 정찰대장의 증언에 의해 두 나라의 전쟁 발발은 기정사실화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