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보았기에 미쳤는가, 미쳤기에 보았는가 (2)
실재세계, 광인의 숲에서 죽인 도적의 말에 따르면 북서쪽에서 아주 수상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소녀 혼자서는 절대 다닐 수 없는 광인의 숲에 소녀의 구두 같은 발자국이 찍혀 있었고, 그 발자국을 발견했다는 도적은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사라진 도적의 발자국은 도중에 끊겨있었다. 사람이나 짐승의 발자국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마법이나 주술에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마법은 본디 신성한 영력을 다루는 능력이니, 사악에 물든 광인의 숲에서 마법을 쓰는 자는 없으리라.
따라서 도적을 사라지게 한 것은 주술이나 흑마법이다. 만약 흑마법이라면 토리우스의 딸인 ‘셰르카’와 연관되었을 것이다.
마침 내 최종 목적지인 비첸크로이 제국이 북쪽이라 이동시간에 손해는 거의 없었다. 거미 악귀를 타고 반나절을 달리면서 마주치는 사악한 것들은 내 영력 발산에 의해 알아서 길을 비켜주었다.
「찾았다.」
나는 그 문제의 흔적이 있는 장소에서 멈췄다. 잡초가 무성한 땅 위에 발자국이 있는 것이다.
구두 모양의 발자국이다. 그것의 크기와 보폭으로 보건대 영락없는 소녀의 것이다.
‘셰르카….’
「흑마법을 구사하는 셰르카라면 부친인 토리우스처럼 노화를 극단적으로 늦췄을 수도 있을 거야」
‘맞아. 제법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야. 나이는 먹었어도 체구는 소녀라던가.’
그래서 일단 거미 악귀에서 내려 발자국을 따라 도보로 이동했다. 도적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는 6개월이나 지난 것이기 때문에 당시에 찍혔던 발자국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숲에 이런 발자국이 찍혔다면 반드시 최근의 발자국임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진가.’
「끊겼네.」
도중에 발자국이 끊겼다. 하늘이라도 날 수 있는 걸까. 나무 위로 다닐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순간 이동에 관련된 흑마법이라도 쓸 수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위에…!」
내 안의 악령이 그 말을 꺼냄과 동시에 나도 탐지 3계를 통해 느꼈다.
그리고 녀석이 눈앞에 착지했다.
“잠깐!”
소녀가 아니었다.
그냥 신장이 왜소한 여자였다.
검은 구두에 검은 드레스에 검은 머리칼에 검은 우산을 쓰고, 그야말로 마녀 같은 화장에, 저주받은 저택에서 마녀가 다룰법한 섬뜩한 인형을 닮은 옷차림에 다소 앳된 얼굴에….
“잠시만요. 저는…”
내가 입으로는 말을 꺼내면서 눈으로는 그녀의 눈동자가 붉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무언가 붉은 것이 코앞에 들이닥쳤다.
콰앙…!
흑기사의 사철로 된 방독면을 쓰고 있음에도 안면에 뼈아픈 충격이 퍼졌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
잿빛세계에서 보았던 혓바닥 주동자.
그 뚱뚱한 이물이 커다란 혓바닥을 내게 휘둘렀을 때 마치 붉은 벽이 돌진해오는 것처럼 보였었다. 이건 그때와 비슷하다.
…쿵!
나는 어느새 뒤로 나가떨어져서 거목에 등을 찧었다. 그래도 넘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 오른손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등 뒤로 가서 도끼를 뽑아든 채다.
“커헉! 허억! 허윽…! 잠깐 말 좀 들어보라니까!”
라고 소리치는데 또다시 붉은 혓바닥 같은 것이 코앞에 들이닥쳤다. 그래서 재빠르게 도끼를 휘둘러 어디에서 뻗어온 것인지도 모를 혓바닥을 베어내려고 했다.
부웅!
그런데 순간, 내 얼굴로 돌진하던 혓바닥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윽고 불결한 감촉이 복부 쪽에서 느껴졌다.
「허리를 휘감았어!」
시선을 아래로 내릴 틈도 없다. 나는 빈 왼손을 움직여서 내 허리를 휘감고 있는 혓바닥을 쥐었다.
‘방혈…!’
퍼억!!!
허리를 휘감았던 혓바닥이 빨갛게 터졌다. 그러나 완전히 터지진 않았는지 혓바닥은 뻗어온 방향을 그대로 되돌아갔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저건 혓바닥이 아니라고.
「촉수….」
붉은 촉수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바닷속 깊은 곳에 있을 괴물의 것처럼 여러 개다. 여러 개의 촉수가 하늘하늘 기이하게도 움직이고 있는데, 그 촉수들의 시작점이 바로 저 우산이었다. 붉은 촉수들이 우산의 안쪽과 이어져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뭔가 이상하다.
부자연스럽다. 마치 눈은 인형처럼 그대로인 채 안면 근육과 입만 움직이는 것 같은 괴리감이 있다.
“네 영혼엔 뭐가 많아 보인다?”
목소리도 외모와 비슷하게 묘한 느낌으로 앳되었다.
쉬익!
또다시 촉수가 돌진해오려고 한다. 뾰족한 끄트머리를 창처럼 내게 향한 것을 보니 이번엔 휘감는 게 아니라 찔러버릴 기세다. 그녀는 내가 입고 있는 방어구와 로브를 꿰뚫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네 영혼을 가져가마.”
“셰르카!!!”
그러자 우산으로부터 뻗어 나온 촉수들이 일순간 정지했다.
“…네놈, 누구냐?”
“나는 당신 아버지가 보낸 사람이야!”
나는 유언장까지 꺼내서 보란 듯이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이 시원찮다. 방금 오른쪽 눈썹 근육이 살짝 떨린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토리우스! 잿빛세계에 떨어진 흑마법사 토리우스가 날 보냈다고! 자기 딸, 셰르카한테 이 유언장을 전해달라고 했다니까!”
이번엔 그녀의 눈꺼풀이 반쯤 내려왔다. 미심쩍다는 듯 쳐다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더 말하는 수밖에.
“토리우스는 흑마법의 지식을 이 뒷면 봉인진에 담아놨어! 이리를 잘 키우라는 언급도 있었고!”
“증명하거라.”
“뭐를?”
대답 대신 촉수가 돌아왔다. 끄트머리를 뾰족하게 하고 있던 촉수가 내게 돌진해온 것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흙벽을 세웠지만 촉수는 거의 직각으로 두어 번 꺾였다. 그 속도로 흙벽을 우회하여 조금의 느려짐도 없이 돌진해오는 것이다.
퍼억! 퍼억!
그래서 나는 촉수가 하나씩 시야에 잡힐 때마다 방혈시켰다.
“퀴익…!”
“퀴이익…!”
길이의 절반 이상을 잃어버린 촉수들은 제각기 이상한 소리를 내며 후퇴하더니 우산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뭘 증명하라는 거냐고!”
“네가 좀 전에 말한 것들.”
기껏 촉수들을 방혈해놨는데 우산에서 또 새로운 촉수들이 스멀스멀 튀어나왔다.
“어설픈 힘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사실들이지 않느냐.”
「뭔 개소리야?!」
그런 말인 것 같다. 내가 잿빛세계에서 토리우스의 유언장을 가지고 실재세계로 와서 셰르카를 찾아냈으니, 내가 그런 능력이 있는 당사자라는 걸 증명하라는 것이다.
그녀는 일단 내 능력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너의 무슨 능력을 확인해? 다차원 능력?」
부웅! 콰아아…!
나는 도끼를 휘둘러 검기를 날려보냈다. 저 촉수들이 다시금 쇄도하기 전에 내 쪽에서 선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셰르카는 자세를 바꾸지도 않고 그냥 서있었다.
파앗!
직후, 우산 안쪽에서 검은 연기가 빠르게 흘러나와 셰르카를 감쌌다. 그와 동시에 내가 날려보낸 검기가 그녀를 대각선으로 갈라버렸다.
「미친놈아! 죽이면 어떡해?!」
‘안 죽었어!’
셰르카는 검은 연기 그 자체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나는 널 죽여서 그 유언장을 빼앗을 수도 있다. 그리고 네가 가져온 유언장이 진짜인지도 나로선 모른다.”
목소리가 밑에서 들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내렸다.
그녀는 나보다 낮은 신장을 활용해 시야의 사각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게다가 ‘이리’도 아직은 널 인정할 수 없다는 것 같구나. 그러니까 네 능력을 증명하라는 말이다. 그래야 네 말을 신뢰할 수 있지 않겠느냐.”
도끼를 휘두르기엔 너무 가까워서 단검을 꺼냈다. 여왕의 독니라 불리는 주물이다. 이것엔 사악한 이물에게 공포를 심는 주술이 걸려있다.
사악!
그렇게 여왕의 독니를 힘껏 휘둘렀지만 그녀는 장난이라도 하듯 무릎을 굽혀서 피했다.
“씨발…!”
나는 단검을 역수로 들어서 그녀의 작은 등을 찍으려고 했다. 하지만 우산이 방패처럼 날 막아섰다.
부우욱!
여왕의 독니로 애꿎은 우산만 찍고 말았다. 우산이 말도 안 되게 질겨서 잘 찢어지지 않는다.
“퀴이익!!!”
그러자 우산이 한순간이지만 수축하였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몸체를 떠는 느낌도 있었다. 이윽고 여왕의 독니에 긁힌 부분에서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
이제 확신한다.
이건 살아있는 우산이다. 그렇다면 여왕의 독니에 긁혀서 공포를…
「희열.」
‘공포가 아니라…?’
쭈그려 앉은 셰르카는 슬쩍 우산을 치우고 히죽댔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해보거라.”
이젠 나도 모르겠다.
이대로 그녀를 죽여도 내 탓은 아니다.
‘교수척장분지형…!’
빠르게 주문을 외우며 셰르카와 살아있는 우산을 향해 주술을 걸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눈을 한번 깜박이는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탐지해, 빨리!’
「왼…」
“왼쪽이다.”
눈을 한번 깜박이는 시간조차 셰르카를 상대론 사치였다. 나는 왼쪽으로 시선을 옮기기도 전에 그쪽으로 여왕의 독니를 내던졌다. 그러면서 시선을 왼쪽으로 이동시키며 오른손에 든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그리고 도끼를 휘두르면서 아차 싶었다.
방금 ‘왼쪽’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은 ‘오른쪽’이었다.
퍼어억!
촉수에 오른쪽 어깨를 찔렸다. 로브와 방어구가 있던 덕분에 뼈까지 파고들진 않았지만 몸이 공중에 떠서 또 나가떨어지는 중이다.
「분명 왼쪽에서 느껴졌는데?!」
또다시 거목에 등을 충돌시키고 바닥에 떨어졌다. 이번엔 자세가 무너져서 다시 일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크허억…!”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그 짧은 순간 사이에 셰르카는 어떤 흑마법을 발동한 것이다.
“기형(奇型).”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실체인지 환각인지 모르겠다.
올곧게 우산을 들고 있는 셰르카의 배후에 아주 거대한 핏덩이가, 탯줄이 세 개나 달린 거대한 핏덩이의 형체가 보였다.
그것의 반투명한 살가죽 안에 있는 심장이 붉은빛으로 사방의 어둠과 융화되었다.
알 수가 없다.
거대한 핏덩이는 탯줄이 하나는 배꼽에, 다른 두 탯줄은 양쪽 눈에 박혀있었다. 그 탯줄들이 내 시야의 바깥까지 뻗어있다. 그래서 탯줄들이 어디서부터 이어진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알 수가 있다.
주름진 탯줄 세 개가 모두 내 배꼽에 연결되어 있었다.
내 몸 안에 있는 것들을, 거머리처럼 꿈틀거리며 빨아먹고 있었다.
소장, 대장, 신장, 간, 위, 살점, 지방, 내 배가 홀쭉해졌다. 종잇장처럼 홀쭉해져서 뱃가죽과 등가죽이 붙어서 생선뼈 같은 척추 모양을 드러내고 말았다.
- 페인.
- 너에게도 동생이 있었구나?
닥쳐. 닥쳐. 닥쳐. 내 머리 안에 들어오지 마 내 몸속 혈관을 타고 머리로 올라오지 마 눈에서 뭐가 나오는 것 같아 제발 그만해
- 내게도 동생이 있다. 너와는 달리 살아있는 동생이지.
- 이리…. 내 동생이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해서 이런 모습이지만….
내장을 빨리는 감각에 미쳐버릴 것 같다. 그리고 우산이 씨발, 우산, 저 살아있는 우산이 셰르카의 동생이라고…
- 뒤에 탯줄 세 개가 보이느냐? 이리는 태어나기도 전에 나의 어머니를 살해하였다. 그래서 굶주림이라는 벌을 받고 있다.
의식이
끊어질
것
같다.
- 이리는 식탐이 많아서, 내가 일곱 살이었을 때 내 눈알까지 파먹었다. 정말 뭐든지 먹는 동생이지.
- 혈액, 가죽, 눈알, 분변, 뼈, 살점, 내장…. 그중에서도 이리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아느냐?
- 바로 누군가의 ‘행복한 기억’이다.
나체가 된 기분이다.
내 모든 것을 까발리는 기분이다.
- 이틀을 굶었다가 먹은 생쥐 고기.
가난했다.
- 악령이 된 아빠의 목을 칼로 찔러서 죽이고, 네 품에 안긴 채 퉁퉁 부은 눈으로 잠든 리인.
내가 처음으로 죽인 악령은 나의 아버지였다.
- 집으로 돌아왔더니 리인이 길고양이를 집에 데려온 날.
그때는 집안에서 쥐가 많이 나왔다.
- 리인이 너한테 숫자를 공부하라며 화를 냈던 저녁.
배움의 기쁨이었다.
- 베르자인과의 황홀했던 하룻밤.
그녀는 날 존중해주었다.
- 홀른 아저씨와 술잔을 기울였던 더운 날.
그는 내게도 차별 없이 무기를 팔아주었다.
- 악령을 퇴치해줘서 고맙다며 너의 손을 붙잡고 울던 부부.
누군가의 감사를 받으면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았다.
- 잿빛세계에 떨어져서 역병 마녀로부터 도망치고, 그 끝에 마주한 선생의 따뜻한 포옹.
- 그 늙은 몸의 악취. 피비린내.
선생.
그가 그립다.
내가 그를 성불시키고 말았다.
- 리비카. 너에게 감사한 고양이들의 울음소리.
- 인간인 너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는 아라나크.
- 사악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네 편만 들어주는 네 안의 악령.
- 너….
- 생각보다 먹을 게 별로 없구나?
내겐 행복한 기억이 별로 없다는 소리다.
* * *
탯줄이 세 개나 달린 태아는 페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제 페인에게 보이는 것은 광인의 숲 그대로다.
잠시 넋을 잃고 있었던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줄곧 우산을, ‘이리’를 올곧게 들고 있던 셰르카.
그녀는 이리를 어깨에 비스듬히 걸쳤다.
이리의 안쪽에는 그림이 있었다. 새빨간 입술들, 새빨간 눈알들을 묘사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입체적인 촉수들이 각각의 입술 그림에서 혀를 날름거리듯 움직이고 있었다.
“정식으로 소개하마. 나는 셰르카, 얘는 이리. 내 동생이다.”
“페인이다….”
페인은 비틀거리며 셰르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유언장을 내밀었다.
“페인. 어째서 전력을 다하지 않았느냐?”
목줄 이야기다.
페인은 문자 그대로 악귀 군단을 불러서 싸울 수도 있었다. 게다가 그는 영력을 다 쓰지도 않은 상태이며, 앞으로 네 번을 더 죽어도 부활하는 자다.
“그러는 너는 왜…. 내 행복한 기억을 가져가지 않았지?”
“먹을 게 별로 없었다니까.”
“고작 그런 게…?”
“몇 없는 그 행복한 기억까지 가져가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거라.”
페인은 그녀의 호의와 관심이 왠지 모르게 거북했다.
“다차원 능력의 소유자…. 정말 부러운 걸 가졌구나.”
“그보다 너…. 도대체 몇 살이야?”
“나머진 우리 집에서 따뜻한 차나 마시면서 얘기하지.”
셰르카는 눈과 입이 서로 부조화를 이루는 미소를 만들었다.
“따라오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