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50화 (50/181)

9. 보았기에 미쳤는가, 미쳤기에 보았는가 (5)

실재세계와 잿빛세계는 뒤틀린 인과율 사이에 연결되어 있다. 실재세계에서의 비상식이 잿빛세계에서는 상식이며, 잿빛세계에서의 비상식이 실재세계에서의 상식이다. 따라서 악령과 이물을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잿빛세계도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몇 가지 법칙은 실험적 경험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잿빛세계의 어떤 장소에 이물이 많으면 실재세계의 그 장소에는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반대로 잿빛세계의 어떤 장소에서 이물을 해치우면 실재세계의 그 장소에는 좋은 일이 생긴다.

이를 하나로 정리하자면 공통된 조건이 생긴다.

바로 ‘악’이다.

세인트 왕국 폐허의 이물들은 폐허 바깥의 다른 이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악을 갖고 있었다. 그 이유는 실재세계의 세인트 왕국이 세인트교를 필두로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최대한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실재세계에서 ‘악’이 많은 장소에는 잿빛세계에서 더욱 위험한 이물이 도사리는 장소가 될 거라는 가설이다.

실재세계에서 셰르카는 굶주린 동생, 이리를 먹이기 위해 저택 주변을 돌며 사냥을 해왔다. 그것도 아주 오랜 세월을 말이다.

이리는 무엇이든 먹는다고 했으니 셰르카는 짐승과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사냥해왔을 것이다. 무고하고 선량한 사람까지 사냥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사람을 사냥해 인육을 취했으면,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는 악은 기뻐한다. 그리고 모여든다.

또한 그녀의 저택에 있을 주물들을 상상해보자. 세비우크의 머리띠는 잿빛세계에 99마리의 한이라는 이물을 탄생토록 하였다. 고작 눈알에 가해지는 주술을 방어하는 주물이 말이다.

그런데 그녀의 저택엔 어떤 주물들이 있겠는가. 그 주물들은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어떻게 완성된 것이며, 잿빛세계의 무엇과 연결되어 있을까.

그녀의 저택에서, 저택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존재들이 죽어갔을까. 그것이 또 잿빛세계에 어떤 연결점을 만들어놓았을까.

이곳의 거목들은 잎사귀가 거의 없고 공기는 잿빛으로 탁하다.

「안에 뭔가 많이 있기는 하네.」

나는 셰르카의 저택에 도착했다.

성과 닮은 듯한 저택에 뾰족한 양식이 더해져 여전히 은산한 분위기. 겉보기엔 실재세계에서 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창문이나 벽 따위에 먼지가 낀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내부 구조가 복잡하고 넓어. 느껴지는 존재들의 종류도 다양하고. 다들 이물이긴 한데 여기서 당장 정체를 파악하긴 어려울 것 같아.」

‘상관없어.’

직접 눈으로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나는 저택으로 들어섰다. 바닥엔 누더기 같은 카펫이 깔려있고 내부의 조명은 모조리 꺼져있다. 햇빛이 들어오긴 하지만 모든 창문에 먼지가 끼어있어 그리 밝지는 않다.

그래도 내겐 밤눈이 있어서 괜찮다.

창고나 부엌 등으로 연결된 널찍한 1층. 좌우로 완곡하게 갈라져 2층으로 오를 수 있는 계단.

이번에도 지하는 가장 마지막에 갈 것이다.

「왼쪽 복도 끝에 오른쪽으로 꺾는 길이 있어. 그쪽에 400 이상의 악을 가진 이물이 세 마리야.」

여러 존재들이 느껴지지만 나는 일단 1층에 있는 녀석들에게 집중했다. 도끼를 쥐고 왼쪽 복도로 쭉 걸어가서 오른쪽 복도로 꺾었다.

새로이 보이게 된 복도의 저 끝에 뭔가 보인다.

‘저것들이네.’

천장에 이물 세 마리가 옹기종기 붙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감각 증폭 능력으로 녀석들의 모습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기형아(畸形兒).」

사람과 개의 살가죽을 벗겨서 합친 것처럼 생긴 이물들이다. 네 다리로 천장을 개구리처럼 붙어서 보행하는데, 살갗에 새의 깃털이나 사람의 머리칼 같은 것이 자라있고 온갖 짐승의 일부분도 억지로 찍어 넣은 듯 온몸에 합쳐진 채다.

그리고 배꼽에는 탯줄처럼 늘어진 것이 보이는데 그 탯줄의 끄트머리가 거머리의 주둥이를 쏙 빼닮았다.

“으애애애앵…!”

기형아 세 마리는 일제히 아기의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빠른 속도로 천장을 기며 내게 접근해왔다.

콰아아!

나는 도끼를 수평으로 휘둘러 검기를 날려보냈다. 그러나 녀석들은 날렵하게 바닥에 붙거나 벽에 붙는 식으로 검기를 피했다.

콰아! 콰아! 콰아!

검기를 여러 차례 날려보내도 적중하지 않았다. 바닥에 붙는 녀석은 개처럼 뛰었고 벽이나 천장에 붙은 녀석들은 개구리처럼 뛰었다.

그래서 녀석들이 충분히 접근할 때까지 잠시 기다린 다음, 방혈을 썼다.

“으애애애애애애앵애케에에엑!!!!!”

퍼억!

제일 앞서 있던 녀석이 빨갛게 터졌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살갗만 터지는 부상으로 그친 것이다.

“으애애앵!”

“응으애애애애…!”

세 마리 모두가 급히 몸을 피했다. 복도에 창문이 나있는 부분의 반대편 벽면에는 많은 방들이 있었는데, 저마다 그 문들을 박차고 들어가 숨어버린 것이다.

「세 마리를 다 죽이면 흑기사 하나를 잡은 것보다 더 많은 악을 얻을 수 있어.」

「하지만 영력은 가급적 아끼자고. 2층, 3층, 지하가 남았으니까.」

영력을 요구하는 주술보다는 가급적 육체적인 힘으로 녀석들을 해치워야 한다. 때마침 각 방마다 한 마리씩 들어갔으니 각개격파를 노리자.

나는 발소리를 죽여서 앞으로 걸었다. 좀 전에 세 마리가 각자 어느 방으로 하나씩 들어갔는지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놈이 문 너머에 딱 붙어있어.」

‘바로 앞에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아예 문이랑 몸을 붙이고 있다고?’

「맞아.」

왠지 녀석의 노림수를 알 것 같다.

나는 문 앞에 서지 않고 벽에 붙어서 손만 뻗었다. 그대로 문고리를 쥐어서 살짝 틀었다.

콰직…!

그 직후 녀석의 탯줄이 문을 꿰뚫고 나온 것이다. 만약 내가 문 앞에 그대로 서서 문고리를 돌렸다면 복부에 구멍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촤악!

나는 곧장 도끼를 내려쳐서 녀석의 혐오스러운 탯줄을 잘라버렸다.

“으애애애애애애애앵!!!!!!!!!!”

시끄러운 울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탯줄이 피를 쏘아내며 몸부림쳤다. 그러면서 뚫고 나온 구멍으로 돌아가려 했다.

‘재결합.’

나는 문에 뚫린 구멍을 고쳐버렸다. 그리고 문 앞에 서서 재빠르게 단검을 뽑아들어 역수로 문에 꽂아버렸다.

퍼걱…!

딱딱한 나무 재질을 뚫고 들어간 칼끝에서 살점의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단검을 역수로 든 채 계속해서 문을 찍었다. 그럴 때마다 문 너머에서 애처로운 비명이 울렸고 문에 생긴 칼자국으로부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쾅! 타다닷!

그러자 바로 옆방에 있던 녀석이 문을 박차고 나와 내게 달려드는 것이다.

내 오른손은 여왕의 독니를 역수로 쥐어서 문을 찍느라 바쁘고, 왼손으로 등에 있는 도끼를 꺼낼 시간은 없고, 주술을 쓰자니 영력이 아까웠다.

퓻!

그래서 왼쪽 소매에 숨겨진 손목쇠뇌를 펼쳐 은화살을 쏘았다.

「820의 악을 흡수했어.」

문 너머에 있는 녀석은 숨통이 끊어졌다. 그리고 방금 은화살에 맞은 녀석은 즉사했다.

「머리가 약점이라니, 의외로 평범하네.」

나는 녀석의 미간 사이에 정확히 꽂힌 은화살을 뽑아서 다시 손목 쇠뇌에 장전했다. 비싼 은화살이니까.

마지막으로 방에 숨어 있던 녀석은 겁에 질렸는지 방의 한쪽 구석에서 몸을 웅크린 채 떨고 있었다.

‘특별한 능력이나 이야기라도 있어? 성불의 조건이라던가.’

「먹어봤는데 그런 건 없었어. 그냥 숨만 붙은 살덩이야. 살덩이.」

그렇다면 목줄로 묶을 가치도 없겠다.

“으애애애앵….”

마지막 녀석도 두 번째 녀석과 같이 미간 사이에 은화살이 꽂혀 즉사했다.

「너 벌써 3276이나 갖고 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방에 있는 거울부터 쳐다봤다. 슬쩍 방독면을 벗어서 얼굴부터 확인했다.

양쪽 눈의 동공이 하나씩 더 늘어나있었다. 동공이 네 개가 된 것이다.

「진짜 번거롭네. 매번 이래서야….」

‘괜찮아. 성수 있어.’

「그냥 이 저택에 있는 것들 다 해치우고 마시면 안 돼?」

‘지옥과의 연결성이 짙어지면 안 된다고 했잖아.’

「으…. 싫어….」

나는 성수를 한 병 꺼내서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고통이 체내에서도 뜨겁게 퍼져나가 내장을 녹이는 것 같다.

그렇게 영혼에 사포질을 하는 고통을 이겨낸 후 떨리는 손으로 방독면을 썼다.

「으아아! 씨발! 그거 마실 때마다 아파서 미치겠어! 진짜…!」

내가 사냥하는 이물들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그만큼 더 많은 악을 가진 것들이라 영혼에 악이 쌓이는 속도가 계속 빨라지고 있다. 성수를 마시는 주기도 짧아졌고.

하지만 별 수 있겠는가. 대가도 없이 무한정 휘두를 수 있는 힘은 동화 속에서나 존재한다.

‘내가 이만한 힘을 휘두르는데 따르는 대가가 고작 성수를 마시는 고통이라면 싸게 먹힌 거야.’

「그렇긴 하지만 아픈 건 싫다고….」

나는 기형아 세 마리를 죽인 후 왔던 복도를 돌아가 2층으로 올라왔다.

「오른쪽에 연주실이 있어. 움직이지 않는 존재가 연주실의 한가운데에 있고.」

연주실은 계단을 오르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있는 방이었다.

끼이익.

천천히 문을 열면서 문틈으로 내부를 살펴봤는데 아무것도 없다. …가 아니라 연주실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라면 저것뿐이다.

피아노.

먼지 쌓인 피아노 하나만이 연주실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저건 확실히 주물이 아니라 이물이다. 피아노의 형태를 한 이물에게서 존재감이 느껴진다.

「밤에 들려오는 비명.」

「900.」

그리고 녀석은 내가 들어오자마자 연주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듣기 좋은 선율을 이루는 곡이었다.

‘이 곡이 주술이야?’

「…아닌 것 같은데.」

예상과 달리 녀석이 내는 ‘소리’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정말로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 나를 위해 연주하는 것처럼 의외로 듣기 좋은 것이다.

처음엔 잔잔하고 부드러웠다가 간혹 가파르게 음이 치솟고 박자가 빨라졌다. 그렇게 한번 절정을 이룬 후에 다시금 잔잔해진 곡은 막바지로 향하는 듯했다.

‘이게 주문일 가능성이 있어.’

「나도 그걸 의심하는 중이야.」

콰직!

나는 피아노의 의자부터 도끼로 부쉈다. 그래도 녀석은 아무 반응이 없다.

콰직!

제멋대로 움직이는 건반을 도끼로 찍었는데, 피가 났다.

「뭐지?」

연주는 계속되고 있다. 다시금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잡다한 음이 하나씩 섞여서 신경을 긁더니 불쾌한 불협화음이 되고 말았다.

콰직! 콰직!

나는 피 흘리는 건반을 연이어 찍었다. 건반 몇 개가 떨어져 나가면서 곡이 선택할 수 있는 음의 개수가 줄었다. 그래도 이미 불협화음이 되어버린 터라 곡에 큰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다.

새하얀 건반 사이에 핏물이 고여있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람의 치아와 잇몸 사이에 고인 피를 떠올리게 하였다.

‘안 되겠다.’

나는 몇 발자국 물러서서 최소한의 영력을 소모하기로 했다.

‘방사.’

화아아!

내 앞으로 사출된 화염이 피아노를 집어삼켰다. 나무로 된 것이라 쉽게 불이 붙어서 활활 타올랐다.

바로 그때였다.

끼기기기기기깅!

불길 속에서 피아노가 미친 듯이 곡을 연주했다. 1초에 건반을 수백 번을 때리는 듯한 거센 곡이었다. 그건 불협화음이 아니라 확실하게 음악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피아노의 뚜껑이 피를 토하며 열렸다.

화아아!

그 안에서 피와 함께 튀어나온 것은 움직이는 머리카락이었다. 머리카락이 불길을 뚫고 나와서 날 붙잡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내겐 느렸다.

타앗!

나는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타오르고 있는 피아노는 이제 굉음에 가까운 연주를 하고 있다.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 확실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뜻이지.」

저대로 두면 알아서 타죽을 것이다.

‘왠지 불이 약점일 것 같더라.’

피아노에서 머리카락이 끝도 없이 빠져나와 바닥과 벽과 천장을 잠식하듯 뒤덮고 있다.

드드드드드…!

그러다 피아노가 붕 떴다. 피아노 아래로 엄청난 머리칼이 내려와서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윽고 나는 피아노 안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말린 손수건처럼 된 머리카락이 피아노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것들이 둥글게 말린 한쪽 방향으로 회전하자 새빨간 피부가 보이고, 피아노 면적만큼 커다란 귀가 드러나고, 그렇게 계속 회전하자 눈에서 손톱이 자라난 여인이 커다랗고 새빨간 안면을 드러낸 것이다.

「생존 욕구. 고통. 생존 욕구. 고통….」

화아아아아…!

여인의 안면은 불길 속에서 입을 벌렸다. 치아 대신 건반이 있었고 혓바닥 대신 머리칼 뭉치가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 대신 피아노의 굉음을 내었다.

‘목소리가 연주였어. 비명은 굉음이고.’

녀석이 드디어 본체를 노출시킨 것 같다.

「너 이제 저런 건 무섭지도 않냐?」

머리칼이 내 발치까지 퍼졌다. 내가 이대로 연주실에서 나갈 게 아니라면 녀석을 마무리함이 옳다. 괜히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아서 후환을 남기는 것보다 멍청한 사냥이 없으니.

「불길이 약해지고 있긴 해. 연기가 나오는 걸 보니까 머리카락에 땀이 묻어있나 봐.」

그래서 나는 화염 속에 검기를 날렸다.

무방비로 노출된 녀석의 안면이 세로로 갈라졌다.

굉음 같던 연주가 점점 느려지다가, 심장이 멈추는 것처럼 조용해졌다.

* * *

실재세계, 셰르카의 저택.

그녀는 2층 연주실에 있는 피아노 의자에 앉아있다.

“이리…. 너도 느끼고 있느냐?”

“퀴이익!”

우산 모양의 이리는 반쯤 펴진 채 촉수를 다리로 삼아 피아노 위를 기었다.

“그가 이 망가진 피아노를 고쳤구나. 청소한 적도 없는데 먼지가 깨끗하게 사라졌고….”

“퀴이이….”

“너는 너대로 그의 안에 있는 존재에게 관심이 있구나.”

“퀴이이잉!”

이리는 촉수를 활짝 펼쳐서 건반을 눌러댔다. 그러면서 자신의 제멋대로인 연주에 심취한 듯 피아노 위에서 춤을 추듯 촉수를 움직였다.

“퀴잉! 퀴이익!”

“1층에 있던 곰팡이와 생쥐들도 깔끔하게 사라졌지. 나야 좋지만 너는 먹을 것이 줄었구나.”

셰르카는 이리를 덥석 집어서 아기와 놀아주듯 들어 올렸다.

이리는 셰르카의 얼굴을 촉수로 핥듯이 문질렀다. 그러다 촉수가 그녀의 눈에 닿았지만 어차피 아무 감각도 없는 가짜 눈알이라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래, 그래. 나도 안다. 그는 제국으로 향하겠지. 황제와 접촉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으로…. 제국을 안팎에서 무너뜨릴 궁리를 하고 있으니.”

“퀴이잉….”

“그는 아직 통찰력이 부족하고 착해빠졌다. 이번에는 괴로운 결과를 낳을 것이 너무도 뻔하지.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번 일로 그가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손을 내미는 것뿐이구나.”

“퀴익!”

“지하실에서 평범한 색깔의 눈을 가져오거라.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려면 이 붉은 눈부터 갈아 끼워야겠다. 그리고 오래되어 해진 로브도 가져오거라.”

그러자 이리는 촉수를 빙빙 돌렸다.

“나도 사람들이 있는 장소엔 가고 싶지 않다. 나를 수상히 여기는 자들과 충돌하면 귀찮은 일이 생길 게 뻔하지.”

“퀴잉…….”

“하지만 난 벼랑 끝으로 가는 그를 도저히 방관할 수가 없구나.”

이리는 셰르카의 손바닥에서 껑충 뛰어내렸다.

티티티틱!

그러면서 바삐 촉수를 움직여 아래층으로 내려간 것이다.

‘이겨도 져도 후회할 길을 골랐구나. 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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