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54화 (54/181)

10. 역모 (4)

남쪽 관문을 수호하던 친위부대장이 죽었다.

“부대장님이….”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부대장님이 전사하셨다!”

그의 온몸이 피를 터뜨리며 쓰러지는 광경을 목도한 친위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굳게 닫힌 관문에 변화가 일어났다.

으직!! 끼기긱!

두꺼운 나무에 철판을 덧대고 이중 철창까지 있는 관문이다. 그 관문이 공성추도 없이 안쪽으로 으스러져서 열리고야 만 것이다.

그때 벤들렌타의 전격대장은 나쿠타서스가 단번에 관물을 돌파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저, 저 관문이…….”

전격대장 근처에 있는 나머지 4만 병력들도 눈을 번뜩였다.

“관문이 열렸다!!!”

그러자 4만 명이 우레 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나갔다. 그들 뒤로 장엄한 그림 같은 흙먼지가 피어올랐고 관문 위에 있던 친위대들은 지면으로 내려와서 전투에 응했다.

하지만 서쪽, 북쪽, 동쪽에서도 다른 변경백들의 군사가 관문을 뚫으려는 상황. 남쪽을 수호하는 친위대들은 후방으로부터 지원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아, 앞장서겠소…! 모두 나를 따르라! 거, 거기 공성추도 잘 가져오시오! 황궁까지!”

나쿠타서스는 친위대 병사들을 터뜨려 죽였다. 아무리 잘 훈련된 친위대라도, 아무리 견고한 방패라도 주술로 가해지는 방혈에는 저항할 수 없었다.

남쪽 친위대의 사기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친위부대장의 권한을 이어받은 지휘관이 시끄러운 전장 속에 뭐라고 소리쳤지만 귀에 들리지 않았다.

물밀듯 관문을 넘어오는 전격단은 난투를 벌이다가도 뒤에서 북소리가 나면 순식간에 모여들어 대열을 형성하였다.

“전진!”

콰직…!

그들은 방패와 창을 앞세워 친위대를 몰아붙였다. 실력 좋은 친위대 검사들은 전격단의 창질에 검을 휘둘렀지만, 이미 대열이 형성된 전장에서는 검보다 창이 우세했다.

시체가 발에 걸리고 피로 된 웅덩이가 밟힌다. 남쪽 관문은 처참하게 불타올라 검은 연기를 피워올렸다.

수도에 있는 모든 친위대와 변경백의 군사들이 그 연기를 내다보았다.

- 와아아아아!

그때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 남쪽 관문이 뚫렸다는 것을. 수많은 내란에도 뚫리지 않던 수도에 기어코 군사가 들이닥쳤음을.

“혀, 혁명의 날이로다…!”

나쿠타서스는 전장의 중심에서 황홀경을 느낀 듯 온몸을 떨며 적들을 방혈시켰다. 간혹 그를 노린 화살이 창이 매섭게 날아들었지만 그의 주변에서 항시 대기 중인 방패병들이 그를 지켜주었다.

이윽고 벤틀렌타의 전격대장과 나머지 군사들까지 남쪽 관문을 통과하였다. 그들이 뚫어낸 공격로를 따라서 도시가 불타올라 검은 연기를 길게 이었다.

이제 전격단의 전장은 평원이나 관문 앞이 아니라 도심이 되었다.

건물들로 꽉 막힌 전장에서 그들은 난투를 중단하고 철저하게 대열을 이루어 친위대를 상대했다.

이에 맞서는 친위대들도 방패와 창을 앞세우고 건물 위로 궁병을, 건물 안으로 석궁병을 배치해 전격단에 대항했다.

“들어라! 우리가 들어가면 삼 방위 관문의 방비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도심에 들어온 전격대장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러니 뒤는 생각하지 마라! 오로지 황궁으로 진격하라!”

저 멀리 황궁이 보인다. 강과 성벽을 끼고서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 황궁은 그야말로 성과 하나가 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래도 전격대장과 전격단의 눈에 명확히 보이는 높은 황궁이다. 현실로 다가온 목표를 봤으면 사기진작을 넘어 전율까지 차오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각하! 반드시 승전보를 가지고 귀환하겠습니다!’

저 목표물을 향해 앞으로 몇 백 걸음만 더 가면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대로 공격로를 뚫고 다른 변경백의 군사들과 합류하여 최후의 공선전을 벌이면 될 것이라 희망했다.

- 투석이다!!!

돌연 커다란 바위의 그림자들이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대장님! 피하십시오!”

방패병들이 전격대장을 감쌌다. 그 짧은 순간에 전격대장은 생각했다.

황궁은 높은 언덕 위에 있다. 지금 우리 전격단는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진격하고 있다. 자연히 오르막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오르막길에서,

바위는 무자비하게 구른다.

콰콰콰아아앙!!!

황궁 쪽에서 날아든 바위들이 전열의 창병들을 으깨며 굴렀다. 그것도 울퉁불퉁한 바위가 아니라 몇 개월에 걸쳐서 공들여 깎은 듯 아주 둥그런 바위였다.

쿠직쿠직쿠직쿠직…!

병사들은 바위에 맞아 부서지고 자기들끼리 깔려서 빨갛게 으깨졌다. 그리고 대열의 중심과 후방까지도 떨어지는 바위들이 길을 내려가며 병사들 사이를 굴렀다.

…쿠직!

전격대장 또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바위에 맞아서 주변 방패병들과 함께 즉사하고 말았다.

짓눌린 마차 위에서 과일즙처럼 터진 혈액이 그의 사망을 주변 병사들에게 통보하였다.

“으아아아아!”

누군가는 분노했고 누군가는 함성이 아닌 비명을 질렀다. 또 누군가는 대열을 재정비하여 앞으로 진격했다.

하지만 건물로 꽉 막힌 도심에서 친위대가 몸으로 세운 벽은 두텁고도 견고했다.

“의술사님!”

투석기들의 공격에 아비규환이 된 전장 속, 벤들렌타 변경주의 깃발을 들고 있는 기병대장이 나쿠타서스에게 달려왔다.

“이, 이게 다 무슨 일이오?! 분명 투석기는 다, 다른 세 관문에 배치되었다고 하지 않았소?!”

“황제가 일부 투석기들을 숨기고 있던 겁니다! 우리 군이 경사로를 오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것 같습니다!”

“뒤에 부, 불타는 도시는…?”

“네?!”

“우, 우리 전격단이 이렇게까지 깊게 들어왔, 왔는데 뒤에 있던 친위대와 구획들은 투석기로 지원할 수 있, 있음에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오?!”

“그런 게 전쟁입니다!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한의 피해를 가하는 것이 전쟁이란 말입니다! 다른 건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뒤에 불타는 도시가 이 한 번의 노림수를 위해…? 아! 아까 앞서간 전격대장은…!”

“전격대장은 전사하셨습니다! 바위에 깔려 죽었단 말입니다!”

후우웅…!

그 순간 나쿠타서스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바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콰가각!

바위는 네 조각으로 갈라져서 주변 건물의 지붕에 떨어졌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의술사님이 당장 전열로 가시어 속공에 힘을 실어주셔야겠습니다!”

“알겠소! 마, 맡기시오!”

“길을 터라!”

빼곡하게 뭉쳐서 진군하고 있던 병사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나쿠타서스는 기병대장과 함께 군마에 올라서 전장을 가로질렀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주변은 더욱 처참해졌다. 투석기의 바위뿐만 아니라 화살도 문제였다. 건물 안의 석궁병들이 쏘아낸 화살에 당한 이들이 피의 강물을 이루는 것이다.

“개새끼들…!”

“죽어!”

“으아아…! 씨발!!!”

건물 사이의 골목에서도 난투가 한창이다.

그리고 오르막길에 견고한 대열을 형성한 친위대 창병과 방패병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로를 따라 이쪽에 역공을 가해 오고 있던 참이다.

“저 앞에서 우리의 진격이 막혀 역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그때 나쿠타서스는 아군과 적군의 시신을 가리지 않고 주술을 걸었다.

“걱정 마시오! 나, 나는 많이 죽이면 더 강해지는 의술사요!”

순간, 시신 안에 있던 핏물과 혈관들이 나쿠타서스의 손짓을 따라 허공으로 떠올랐다.

역겹고도 붉은 것이 뱀처럼 요동쳤다.

“이, 이놈들! 비키지 못할까!”

나쿠타서스가 조종하는 붉은 것은 친위대의 대열 중심에 떨어져서 사방으로 터졌다. 그러자 전열의 친위대 방패병들이 피를 토해내며 쓰려졌다.

쐐액…!

나쿠타서스의 어깨에 화살이 꽂혔다.

“의술사님!”

“난 괜찮으니 가시오…! 어서 벼, 병사들을 지휘하시오!”

기병대장은 외쳤다.

“지금이다! 돌파하라!”

순간 방패 대열이 사라진 친위대는 전격단의 창질에 일방적인 피해를 입게 되었다. 친위대 쪽에도 창병은 많았지만 전격단은 그들과 달리 방패병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나쿠타서스는 자기 뒤에 있는 기병대장에게 급히 알렸다.

“기병대장! 황궁에 들어가서 스, 쓸 영력은 아껴놔야만 하오…!”

그리 말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

누군가 기병대장의 시신을 깔고 앉아있었다.

검은 로브, 작은 해골로 엮어낸 목걸이, 민머리, 수척한 얼굴에 악마의 문자를 새겨 넣은 듯한 몰골의 괴인.

그가 기병대장의 시신을 밟고 당당하게 일어선 것이다.

“기병대장을…!”

“저놈을 죽여라!”

“죽어어어!”

기병대장의 죽음을 코앞에서 목도한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 순간에 괴인의 중얼거림은 나쿠타서스만이 들을 수 있었다.

“반다토툼…. 운, 샤헤라리움.”

무엇을 뜻하며 어떤 일을 벌일 수 있는 주문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세상 그 어떤 마법도 주술도 저런 괴이한 언어로 주문을 외우지는 않는다.

따라서 나쿠타서스는 외쳤다.

“다들 조심하시오! 놈은 흑마법사…!”

쐐액!

주변에 있던 돌멩이, 자갈, 건물의 파편 따위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휘몰아쳤다.

퍼퍼퍼퍼퍽!

흑마법사에게 달려들던 병사들 모두가 그 자리에서 온몸이 꿰뚫리고 말았다.

* * *

노을에서 피 냄새가 났다.

벤들렌타 변경주.

이곳의 변경백은 좀 전에 신하들과 일을 마친 후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왔다. 평상시라면 하루 일이 다 끝나 쉬어도 되는 시간대지만 오늘은 바쁘다.

- 각하! 근위대장입니다!

“들어오너라.”

근위대장은 헐레벌떡 들어와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떻다고 하던가?”

“문서도 없이 구두로 전하게 되어 송구합니다…! 방금 정찰병을 통해…!”

“알았으니 호흡부터 다스리거라.”

근위대장은 이마와 목에 흥건한 땀을 손바닥으로 닦았다. 그리고 이제 말을 하면 될 것인데 무슨 일인지 침부터 삼키고 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변경백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이미 달관한 표정으로 물었다.

“……패전 소식인가.”

“송구합니다….”

“됐다. 송구하기는.”

그리고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당장 내일 목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심각한 사태다. 아니, 반란에 실패한 대가로 두 사람의 목만 떨어진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이건 황제의 결정에 따라 일가족을 몰살당하고 벤들렌타라는 지명까지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다.

“내게 권력이 없어 근위대장에게 미안할 따름이네. 충성을 맹세한 대장과 병사들까지 사지로 내몰았으니…. 내 실책이 크다.”

“각하….”

“어디 말해보거라. 내 소중한 대장과 병사들이 수도에서 얼마나 용맹하게 싸웠는지.”

근위대장은 애써 괴로움을 감추었다.

“…벤들렌타 변경주의 전격대장 란코우트가 이끄는 12만 전격단. 행군 11일째에 비첸크로이 제국의 수도에서 남쪽 관문을 돌파. 전격대장, 기병대장, 보병대장, 의술사 나쿠타서스를 필두로 황궁까지 공격로를 확보하여 최소 1만의 친위대 군사를 무찌르고 만 명 이상의 아군이 전사…….”

변경백은 그 열렬했던 전장을 상상하였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싸웠을까.

“황궁을 삼백 걸음 남겨둔 위치에서 적 투석기의 역습으로 전격대장이 전사. 적 흑마법사의 급습으로 기병대장이 전사….”

“황제에게도 있었구나. 그런 개인의 힘이.”

“…의술사 나쿠타서스가 포박당하고 전격부대장, 기병부대장, 보병대장, 보병부대장은 전격단의 병사들을 살려 소국으로 추방한다는 황제의 자비를 받아들여…. 황궁의 문턱 앞에서 자결하였습니다.”

“황궁에 발을 들이지도 못하고 당하였구나. 황제에게….”

“상황은 다른 방위의 변경백 군사들도 같았습니다. 그들의 지휘관들이 우리 지휘관들과 함께 자결함으로써 남은 병사들의 목숨을 지켜냈습니다.”

“황제는 그들의 최후를 두 눈으로 봐주었는가?”

그러자 근위대장의 원통한 표정이 이미 대답이 되었다.

“……황궁에서 나오지도 않았는가.”

“황제는 얼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대장들은 황제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황궁의 문턱도 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자결을 강요당했습니다.”

패배다.

실패다.

이걸 예상하고 시도한 일이 아니었다.

“혁명은…. 역모가 되었구나.”

변경백은 희미하게 웃었다.

“곧 나에 대한 처분이 결정되겠군. 반역자라고 고통스러운 처형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각하, 황제는….”

그의 근위대장은 검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팔뚝이 떨릴 정도였다.

“근위대장은 어서 몸을 피하게. 이 싸움은 내가 주도한 것이지 않나.”

“아닙니다. 각하…. 그것이 아닙니다….”

스릉.

근위대장은 검을 뽑았다.

“황제는…. 아, 아니, 폐하…. 폐하께서는….”

“….”

“폐하의 자비는 현장의 병사들을 살려주는 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변경백은 겁먹지도, 당황하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그 자리에 앉은 채 근위대장에게 웃어주었다.

“듣고 있다.”

“폐하는 벤들렌타 변경주를 불태우지 않겠다고 약조하셨습니다….”

“그래.”

“그리고 저의 일가족, 보병대장, 기병대장, 전격대장들의 일가족들에게도 반역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자비롭게 약조하였습니다….”

“그래.”

“폐하께선 제법……. 이 역모가 제법 즐거우셨다고…. 하지만 사방위 변경백들은 용서할 수 없으니…. 각 변경백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최악의 죽음을 내릴 테니…. 각하와 변경백들의 일가족 또한 아무 문제 없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바다와도 같은 자비를….”

“근위대장.”

“제게 제안이 왔습니다. 그것도 황명으로 직접….”

“이보게. 근위대장.”

시선을 내린 채 벌벌 떨던 근위대장은 화들짝 놀라 변경백을 바라보았다.

변경백은 아직도 희미하게 웃고 있다.

“무엇 하는가?”

“각하?”

“어서 반역자의 목을 베지 않고 무엇 하는가.”

그래도 근위대장은 망설였다.

“폐하께 내 유언을 전하게.”

“….”

“내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어서 고맙다고 말일세. 그리고 근위대장은 나를 베어낸 후 폐하께 충성을 맹세토록 하게.”

“각하, 저는…”

“내 마지막 명령이네.”

“…따르겠습니다.”

“고맙네.”

촤아악!

변경백의 머리가 일격에 떨어졌다.

“당신을 섬길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뚝…. 뚝….

근위대장의 검이 붉게 울었다.

* * *

부유한 황금과 정열적인 적색으로 치장된 매끄러운 바닥에 제국의 문양이 큼지막하게 새겨져있다. 그리고 견고하게 조각된 기둥들이 저마다 커다란 마법석을 끼우고 있다.

좌우로 쭉 늘어선 원로들. 중심에 짧은 계단으로 이루어진 육각형 단.

그 위에 커다란 비첸크로이 제국의 깃발을 등지고 앉아있는 자는 호리호리한 몸이지만 누구보다도 거대해보였다.

거센 파도를 상징하는 왕관, 안면을 사선으로 지나서 귓바퀴와 목을 사슬처럼 감고 있는 황금 장신구.

32세.

그는 비첸크로이 제국의 황제다.

“꿇어라.”

쿵!

나쿠타서스는 자기 뒤에 있는 흑마법사의 손짓 한 번으로 자의와 상관없이 무릎 꿇고 말았다.

“나쿠타서스…. 방혈술사라고 하였는가?”

흑마법사가 대답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본인은 의술사라고 주장하옵니다. 폐하.”

황제는 나쿠타서스의 괴상한 용모를 신비한 물건이라도 보듯 관찰했다.

“흑마법을 부리는 자는 이미 있으니. 주술을 부리는 자가 있으면 그것도 괜찮겠군.”

나쿠타서스는 겁에 질려서 황제와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듣자 하니 세인트 왕국에도 강력한 주술을 부리는 자가 있다고 했다. 그자가 절벽길에서 나의 충성스러운 정찰대를 학살한 범인이겠지. 그러니 우리에게도 주술을 부리는 아군이 필요할 것 같은데, 나쿠타서스.”

황제가 그리 물었지만 나쿠타서스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그러자 흑마법사가 격분했다.

“이런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는 녀석이! 폐하께서 질문하셨다! 당장 대답하지 못할까!”

퍼억!

흑마법사는 그의 등을 걷어찼다.

“너무 매몰차게 대하지 말거라. 우토.”

“아…!”

흑마법사 우토는 나쿠타서스 옆에 넙죽 엎드렸다.

“주,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소인이 주제도 모르고 그만…!”

“나쿠타서스. 짐이 언제까지 너의 대답을 기다려줘야 하느냐?”

나쿠타서스는 폭풍을 맞은 나뭇가지처럼 몸을 떨었다. 그러면서 가까스로 황제와 시선을 마주했다.

“히익…!”

그러나 그는 곧장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황제의 내려다보는 눈빛이 너무도 거대해 보였던 탓일까.

“어린아이라도 보는 것 같군. 재밌는 놈이구나.”

근엄하던 황제의 표정이 풀어지자 주변에 늘어선 원로들도 황제를 따라 긴장했던 표정을 풀었다.

“고개를 들고 짐을 마주하거라.”

그제야 나쿠타서스는 황제와 1초 이상 시선을 마주하기로 하였다.

황제는 웃는 얼굴로 제안했다. 아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의술사 나쿠타서스. 제국의 힘이 되어주지 않겠나?”

“제, 제, 제, 제, 모, 모,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하리라 맹세드리옵니다…! 폐하…!”

그 누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좋다. 우토는 고개를 들어라.”

“예! 폐하!”

“나쿠타서스를 홀로스트 수용소로 데려가거라. 그리고 내게 충성을 바칠 수 있도록 세뇌하거라.”

“따르겠나이다.”

그 순간, 나쿠타서스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눈빛으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황제는 여전히 웃고 있다.

“목숨까지 걸고 충성을 맹세하겠다 하지 않았느냐. 너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 말이 ‘진심’이 될 수 있도록 해주겠다.”

나쿠타서스는 눈물 흘리며 끄덕였다.

“폐하의 자비에 가, 감사드리옵니다….”

감복한 눈물은 아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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