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55화 (55/181)

10. 역모 (5)

비첸크로이 제국의 수도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전장의 시체를 치우고 무기와 갑옷 따위를 회수해 후방으로 옮겨 비축한다. 목적지 없이 방황하는 군마들도 데려다가 건초를 배불리 먹이고 친위대의 것으로 만들었다.

건물의 화재는 꺼졌고 친위대는 황명에 따라 큰 소리로 호각을 불었다.

“우리의 위대하고도 강인한 폐하께서는 사방위 변경백들이 주도한 24만의 반란군을 무찌르시고 역모를 잠재우셨다!”

승리한 친위대와 제국의 깃발이 거리를 자랑스럽게 누볐다. 수도의 백성들은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그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며 황제를 칭송했다.

“역모를 꾀한 죄는 무겁다! 반역자와 그 일가족을 모조리 처형한 후 그 밑의 병사들까지 농노로 만들고! 반역자들의 성과 영지를 불태워 엄하게 다스려도 벌이 부족하다!”

친위대는 다음에 이어지는 말을 강조했다.

“하지만 진정 엑수스의 화신인 폐하께서는 그런 반역자들에게도 강자로서 마지막 자비를 베푸셨다!”

오로지 강자가 베풀 수 있는 것.

강자의 증거.

황제는 항상 ‘자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사방위의 변경주는 존속한다! 그리고 각 변경주의 통치권은 반역자 놈들의 밑에 있던 자들에게 위임하여 지켜본다! 대신 충성을 맹세하면 반역자들의 일가족과 부하들에겐 죄를 묻지 않겠다! 그것이 폐하께서 백성과 아랫것들에게 베푸시는 자비이니라!”

비첸크로이 제국 전체가 그러한 ‘승전보’를 알렸다.

그 소식을 접한 이들은 황제의 힘에 감탄하고, 황제의 힘에 절망했으며, 황제의 힘에 따르기로 하였으리라.

그리고 역모를 잠재운 황제는 제국의 남쪽.

즉, 광인의 숲 북쪽에 군사를 집결시키고 세인트 왕국에 사신을 보냈다.

- 위대한 비첸크로이 제국의 백만 대군은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소. 그대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그 사실을 알고 귀 기울여 들으시오.

사신은 세인트 왕국의 왕궁에 들어갔다. 그리고 왕이 보는 앞에서 고개조차 숙이지 않았다.

사신은 교단과 왕족들이 보는 앞에 당당하게 최후통첩을 고했다.

- 세인트 왕국의 종교적 침략은 제국의 드넓은 영토에 허가되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소. 선량하고 무지한 백성들을 현혹하여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시험하는 만행은 도저히 눈을 뜨고 지켜봐 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소.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제국에서 온 사신의 발설에 모두가 분노하였다고 한다. 왕과 왕족과 교단과 가문들까지 모두가 제국에 분노하였다고 한다.

황제는 세인트교를 모독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교묘하게, 세인트교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또 세인트교를 모독했다.

- 악이 범람하는 세계에 선을 가르치고 선한 성향의 천사들과 여신을 따르는 세인트교는 잘못되지 않았소. 오히려 짐은 세인트교의 무결함과 신성함을 높이 사, 제국에 적극적으로 들여 백성들을 선한 길로 인도할 도량이 있소.

- 하지만 그랬던 세인트교는 크나큰 실망감을 안겨주었소.

- 타락한 승천자라니. 그리고 그런 승천자를 처단하여 왕국의 백성과 교회를 구한 것이 세인트 교단도, 왕궁도 아닌 사악한 힘을 다루는 정체불명의 ‘강령술사’라니.

- 짐은 세인트 왕국의 근본이 되는 ‘선함’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소. 따라서 많은 상황과 명분들을 고려하여 세인트 왕국은 제국의 속국이 되어 도움을 받는 것이 모두에게 좋으리라 판단하였소.

- 세인트교를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개편하여 제국의 드넓은 영토에 가르쳐, 많은 교회들을 세우고 신관들을 임명해 백성들을 가르치리라 약조하겠소.

- 대신 세인트 왕국은 속국이 되어야겠소. 부디 그대로부터 현명한 대답이 돌아오길 바라며 기다리겠소.

그리고 사신은 왕궁에서도 황제의 자비를 강조하였다.

- 비첸 오솔로니오 아바타라 폴 엑수스.

- 천계의 정복자, 엑수스의 화신이신 우리의 폐하께서 자비를 베풀어 잠재적 적국에게도 기회를 주셨으니.

- 전하께서 군사들도 소중한 백성이라 여긴다면 부디, 그들을 사지로 내모는 판단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 또한 세인트교의 폐단과 악습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세인트교의 가르침을 전파할 수 있는 이 값진 기회를 부디,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 지금 대답을 아주 신중히 고민한 후 제게 말씀하십시오.

그러나 세인트 왕국은 속국이 되기를 거절했다. 제국에 대항하는 강력한 의지를 표출하듯, 왕에게 고개도 무릎도 굽히지 않은 사신의 발목 인대를 잘라서 돌려보낸 것이다.

발목 인대가 잘린 사신은 제국으로 돌아갔다가, 며칠 뒤에 지팡이를 짚고 돌아왔다.

발목 인대가 잘렸어도 사신은 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지도 무릎을 굽히지도 않았다.

- 폐하의 통보입니다.

사신은 그저 황제의 뜻을 마지막으로 통보할 뿐이었다.

- 어리석은 왕은 얼굴과 목을 깨끗이 닦고 기다리시오.

- 머지않아 그대의 머리가 광인의 숲을 건너게 될 테니.

그것은 제국의 선전포고였다.

* * *

황제는 원로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했다.

“십자가나 성서를 가지고 있는 집안. 단 한 번이라도 어딘가에 기도를 올린 전과가 있는 자들은 모조리 죽여라.”

가장 나이 많은 원로가 질문했다.

“하오나 폐하. 일전에 사신을 통하여 왕국에 전하기를, 폐하께선 세인트교를 포용하시겠다는 방침을 알리지 않으셨나이까?”

“그렇기 때문에 명하는 것이다. 짐은 왕국이 자발적으로 속국이 되어주는 조건으로 세인트교까지 품어주겠다는 기회를 주었지만 왕국은 이를 거절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제국 영토에 있는 이단들을 적대하고, 왕국을 추종하는 반역자로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세인트 여신이 강림이라도 한다면 큰일이옵니다….”

“그게 어째서 큰일이란 말인가?”

황제는 늙은 원로를 쏘아봤다.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는 듯하였다.

“짐이 바로 천계의 정복자. 엑수스의 화신이다.”

“아아…!”

“같은 천계의 존재가 지상에 강림한다고 한들 이 몸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만약 세인트 여신이 강림하여 훼방을 놓는다고 한다면 짐은 마땅히 천계의 군대를 불러 여신에 대항할 것이다.”

원로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감탄했다.

“제 생각이 짧아 미처 거기까진 고려하지 못하였사옵니다!”

황제는 근엄한 얼굴로 원로들을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누구 한 명도 세인트 여신의 강림을 걱정하는 것 같지 않다.

그 여신보다 눈앞에 있는 황제가 더욱 강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친위대장.”

친위대장이 그의 사선 아래쪽에서 가운데로 나와 무릎을 꿇었다.

“예. 폐하.”

“네 방향 끄트머리에 있는 소국들을 변경주라고 칭하였던가?”

“그렇습니다.”

“사방위 변경주들의 군사는 잘 처리되었느냐?”

“노예로 만들어 뿔뿔이 흩어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노예를 받은 속국…. 아니, 소국들은 폐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각국에 노예를 공평하게 배분하였는가?”

“물론입니다. 그 노예들이 집결하여 역모를 꾸밀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최대한 잘게 쪼개어 많은 소국에 공평히 배분하였습니다. 노예들은 현재 제국의 영토에서 각 소국으로 이동 중입니다.”

“사방위 변경주와 가까운 곳에 있는 소국에는 노예를 불평등하게 보내거라.”

친위대장은 말없이 눈으로 질문하였다. 원로도 아닌 자신이 감히 황제에게 질문을 하기엔 겁나는 것이다.

그리고 원로들도 친위대장과 같은 질문을 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래서 황제는 모두에게 잘 들리는 목소리로 설명하였다.

“짐이 평소 소국들의 분쟁을 눈감아주는 건 아랫것들을 관리하는 방법론의 하나다. 아랫것들끼리 싸우게 만들어 역모를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지.”

“아, 폐하의 깊은 뜻에 감탄하였습니다.”

“현계에는 폐하의 현명함을 따라올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역시 인간을 초월한 화신의 지략이옵니다!”

“친위대장. 그리고 원로들은 들어라.”

모두가 황제의 말에 집중했다.

“한쪽 소국이 가진 것들을 빼앗아 다른 쪽 소국에 혜택으로 베풀면, 아랫것들은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하여 자기들끼리 싸우기를 반복할 뿐이로다.”

원로들과 친위대장은 황제의 가르침을 깊게 이해하였다.

“갈등의 씨앗을 던져주는 것. 짐을 향한 열에 아홉의 역모는 그렇게 차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나 친위대장은, 짐이 구체적으로 명령하지 않아도 알아서 그런 관점을 가지고 내정을 보조해야 하는 것이다. 알아들었는가?”

“그리 따르겠습니다! 폐하!”

그러던 중, 이번에 새로 승급한 친위부대장이 황궁으로 들어왔다.

“폐하…!”

그는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황제 앞까지 달려와서 무릎 꿇었다.

“무슨 일인가? 친위부대장.”

그것은 거센 강풍 같은 소식이었다.

“보수 중인 남쪽 관문으로 한 괴인이 백여 마리의 괴물들을 이끌고 쳐들어왔습니다!”

“괴인의 인상착의가 어떻든가?”

“까마귀를 쏙 빼닮은 방독면에 핏빛의 로브를 걸친 자입니다! 도끼로 무장하고서…. 거, 거대한 거미를 닮은 괴물 부대를 앞세웠습니다!”

그 소식에 원로들과 황제는 동일한 인물을 떠올렸다.

첩보를 통하여 그 존재는 진작 알고 있었고, 이렇게 제국에 위협이 되리라고 경계 또한 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 존재의 위협이 실제로 다가온 것이다.

“강령술사다….”

그러한 차림새에 그런 괴물들을 끌고 다니는 괴인이라면 강령술사가 확실하다.

강령술사가 수도까지 와서, 얼마 전의 역모로 인해 다소 방비가 약해진 남쪽 관문을 정확히 노렸다는 것이다.

‘세인트 왕국에서 보낸 놈인가. 아니면 왕국과 별도로 움직이며 기회를 엿보다 들어온 것인가.’

황제는 단편적인 소식을 통해 더 깊은 추리를 이어나갔다.

‘어쨌든 양국의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나를 치겠다는 속셈이로군. 이렇게 정교한 순간에 정확히 남쪽 관문을 노렸으니 바깥에서 우리를 정찰해 정보를 모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작 백여 마리의 괴물로 10만 친위대를 돌파하여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계산이 떨어졌다는 말인가.’

황제는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번뜩 떠올렸다.

‘하지만 이왕 공격할 작정이라면 반란이 한창이던 시기에 오는 것이 좋았을 터. …구태여 지금 왔다는 건 반란 당시엔 수도의 전황을 몰랐다는 것이다.’

즉,

강령술사는 흑마법사 우토와 의술사 나쿠타서스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

혹은,

강령술사는 이쪽에 흑마법사가 있든, 의술사가 있든, 10만 친위대가 있든 무엇이 수도에 기다리고 있어도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을 모두 해치울 수 없다면 무작정 돌파해서라도 황궁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놈을 절대 얕보아선 안 된다.’

노련한 황제는 심혈을 기울여 대처하기로 했다.

“그놈이 어디까지 진입하였느냐?”

“이미 남쪽 관문을 통과해 병사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 * *

남쪽 관문을 지키던 친위대들은 다가오는 이형의 공포를 직면했다.

도저히 이 현실에는 존재해선 안 될 것 같은 괴물들이다. 그것들이 도심을 뛰어다니며 난전을 벌이는 것이다.

“야! 거기 막으라고!”

“저 괴물들이 자꾸 뒤로 넘어가잖아!”

거미 악귀들 앞에 단단한 대열은 효과가 없었다.

길목을 틀어막고 방패와 창을 세워도 효과가 없었다.

거미 악귀들은 건물 벽이나 지붕 따위를 타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 번에 한 사람만 덮치고 다시 잽싸게 도망가기를 반복했다.

으드득…!

“끄으아아악!!!”

“이것 좀 떼어줘! 빨리!”

거미 악귀들 앞에 친위대의 신체는 턱없이 나약했다.

사람은 팔다리가 잘리면 그 즉시 전투를 수행할 수 없는 몸이 되는데 거미 악귀는 화살에 맞든, 다리가 몇 개 잘리든, 창에 찔리고 칼에 베이든 그런 부상 따위는 상관없이 계속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친위대의 압도적인 수적 우위는 의미가 없었다.

“저놈이다!”

“여기다…! 여기에 강령술사가 있다!”

친위대는 어느 좁은 길목에서 그를 앞뒤로 포위했다.

“죽여!”

“으랴아앗!”

훈련된 검사들이 그의 앞뒤로 달려들었다.

부웅!

하지만 거센 도끼질 한 번에 그의 앞에 있던 자들은 검과 함께 몸이 잘려나갔다.

촤악!

배후에서 달려든 자들은 그의 등을 베어냈다. 하지만 검붉은 로브가 예상외로 튼튼했다. 마치 단순한 실이 아니라 철가루라도 섞은 것처럼 불꽃이 튀었고 칼이 살결에 파고들지도 못할 정도로 질긴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변조된 목소리는 그들의 전의를 상실케 하였다.

“…비켜.”

으지직…!

또 도끼질 한 번에 대여섯 명이 쓰러졌다. 그 도끼를 검으로 튕겨내려 해봤자 오히려 검이 부러질 뿐이었다. 도대체 무엇으로 만든 도끼인지 친위대의 견고한 방패와 갑옷까지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놈이다!”

소식들을 듣고 잇달아 달려온 친위대들이 올가미를 던졌다. 여덟 사람이 던진 올가미는 그의 양팔과 목을 온 사방에서 옥죄어 잡아당겼다.

하지만 거목이라도 묶은 듯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독화살을 쏴라!”

순식간에 주변 건물의 창문에서 석궁병들이 등장했다. 그러자 올가미에 걸린 그는 매서운 속도로 뛰어올랐다.

올가미를 쥐고 있던 병사들이 오히려 끌려가다가 올가미를 놓치고 말았다. 여덟 명의 힘으로도 그의 괴력을 이겨낼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지나가잖아!”

“이대로 가다간 황궁까지 도달하겠습니다…!”

“빨리 쫓아가, 새끼들아!”

그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군마에 오른 창기병들이 거리를 내달렸다.

“흐읍!”

쐐애액!

친위대 정예의 창기병들이다. 그들은 지붕 위를 날렵하게 뛰어다니는 목표물을 향해 정확한 궤도로 창을 내던졌다.

- 키기기게게겍!!

그러나 지붕에 숨어있던 거미 악귀들이 이쪽 건물에서 저쪽 건물을 어지럽게 뛰어다니며 허공에 거미집을 쳐버렸다.

“이런 씨바아알!!!”

방패 대열, 투창, 화살, 독화살, 올가미, 육탄전도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맨살을 조금도 노출하지 않은 차림새와 방독면을 보면 공기에 독액을 뿌려도 먹히지 않으리라.

콰아앙!!!

투석기의 느릿한 바위 따위는 멀쩡한 건물만 부술 뿐이었다.

차라리 이곳이 건물 하나도 없는 평야였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도 않았을 것 같다.

“빌어먹을! 저런 걸 어떻게 잡으라고?!”

“사람이야? 악령이야?”

“이, 이젠 어쩔 수 없어….”

이미 저 오르막길을 넘어서 황궁이 직접 보이는 곳까지 가버리고 말았으니.

그는 친위대가 방어하고자 하는 한계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 * *

어두운 방.

햇볕 하나 들지 않는 방.

“의술사 나쿠타서스.”

“…폐하는 어디에….”

“우리의 폐하를 해치려는 강령술사가 지붕을 뛰어넘으며 다가오고 있다.”

“…폐하를…. 지켜야….”

드륵!

제국의 흑마법사 우토는 판자로 된 창문을 활짝 열었다.

“저곳을 내다보아라.”

나쿠타서스는 우토의 손가락을 따라 밝은 창밖을 힘겹게 내다보았다.

- 끄아아아…!

- 벌써 6차 방어선까지 넘어갔습니다!

- 잡아! 빨리 뛰어가!

- 놈을 잡아라! 저쪽이다!

- 아아아아악!

제국의 수도가 다시금 피에 젖고 있었다.

- 꺄악!

- 저 거미들은 뭐야?!

- 숨으세요! 모두 집안에서 나오지 마세요!

우토는 나쿠타서스의 어깨를 토닥였다.

“사람들이 죽고, 두려워하며, 고통받고 있다.”

“아니 되오….”

“저들 모두가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들이다.”

“그래선 아니 되오….”

사람들의 고함과 비명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 다리가 많이 달린 검은 괴물들이 지붕 위를 뛰어다니고 있다. 턱에 누군가의 팔다리나 머리를 물고 있는 녀석들도 있다.

“죽음을 몰고 다니는 존재가 오고 있다.”

그때 누군가가 지붕 위를 뛰어서 거리에 착지했다.

온몸에 피를 묻히고, 사람을 상대로 휘두르는 것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흉악한 도끼에, 시체나 파먹는 새를 닮은 방독면.

“강령술사다. 놈은 계속해서 피를 묻힌 끝에 폐하까지 노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친위대의 방어선이 모조리 뚫릴 경우를 대비하여 이렇듯 황궁 앞 길목에 배치된 것이지.”

“폐하를…. 폐하의 사람들을….”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우리 함께 폐하와 백성들을 위하여 강령술사를 쓰러뜨리자꾸나.”

- 끄아아악…!

- 살려줘어어어!

- 으아아아! 오지마아아!

계속해서 들려오는 단말마의 소리.

나쿠타서스는 격분했다.

“으으으으아아아아! 그만해!!!”

우토와 나쿠타서스는 그대로 창문을 넘어서 거리에 착지했다.

그렇게 강령술사, 흑마법사, 의술사가 한 거리에 서게 된 것이다.

“흐으, 흐으, 흐으으! 나쁜 강령술사…!”

나쿠타서스는 씩씩댔다.

“강령술사! 이 앞은 지나갈 수 없다!”

우토는 이어서 외쳤다.

“나는 위대한 비첸크로이 제국의 흑마법사…”

콰아아!!

그러나 그들의 상대는 다짜고짜 검기부터 날린 것이다.

“저 미친 것이…!”

대화나 소개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