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방독면의 뒷면 (1)
도끼를 휘두른 방향 그대로 쇄도한 검기는 건물을 베어내 무너뜨렸다. 흙먼지가 길을 따라 폭발적으로 퍼져나갔고 꽉 막힌 시야 속에 우토가 투명한 보호막을 전개해 검기를 막아냈다.
우토는 검기까지 막아내는 흑마법으로 자신과 나쿠타서스를 보호한 것이다.
“반다토툼 운 샤헤라리움!”
우토가 주문을 외우자 건물로부터 떨어진 파편들이 흙먼지 속으로 매서운 화살처럼 날아갔다.
쐐애액!
그리고 우토는 전방의 소리에 집중했다.
‘…뭔가 이상하구나!’
분명 파편들을 날려보냈는데 무언가에 충돌하는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은 것이다. 그건 상대가 파편을 막아냈든 회피했든 들려야만 하는 소리다.
그때 나쿠타서스가 손을 뻗었다.
“바, 방사…!”
그의 코앞에서 시작된 커다란 화염이 마치 벽처럼 전방으로 쏘아졌다. 그렇게 흙먼지를 밀쳐내며 나아간 화염이 자연히 꺼졌다.
자욱했던 흙먼지 또한 순식간에 태워졌다.
- 키그그그극!
‘저렇게 막아냈구나…!’
방패를 뚫고 사람의 몸을 찢는 파편들은 거미줄에 막힌 것이었다. 길의 양쪽 건물에 거미 악귀들이 붙어서 허공에 촘촘한 거미줄을 쳐놓은 것이다.
그리고 거미줄 너머에 강령술사는 온데간데없었다.
키이잉!
그때 둘의 바로 옆 건물 내부에서 소리가 들렸다. 흑마법사 우토와 의술사 나쿠타서스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
그건 무언가가 소환되거나 추방될 때 들리는 소리와 매우 유사한 것이었다. 그 즉시 우토가 입을 열었다.
“놈이 이 건물 안에…”
콰과광!
그 순간 건물 벽을 가르고 나온 것은 검기였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코앞에서 곧장 날아드는 것이다.
우토는 다시 한번 잽싸게 보호막을 전개했다.
“이런 제길!”
부서진 벽 너머로부터 강령술사가 달려들었다. 두 손으로 도끼를 쥐고 달려드는 그의 모습이 마치 죽음의 낫을 든 사신과도 같았다.
“으아아! 나쁜 강령술사…!”
나쿠타서스는 우토의 보호막 안에서 주술을 발동했다. 당장 달려드는 강령술사를 방혈시키는 것이었다.
“쿠허억…!”
달려들던 강령술사는 방독면 바깥으로 피를 터뜨렸다. 그리고 주춤했다.
“오, 옳다! 놈에게 방혈이 통한다! 나쿠타서스!”
“흐으, 으으으아아아아!!”
나쿠타서스는 허공에 손을 휘저어댔다. 그러자 방독면에서 흐르는 피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허공에서 꿈틀거렸다.
“어서 놈을 죽여라!”
“기필코 그럴 것이오!”
나쿠타서스는 순간적으로 피를 조종했다. 그 붉은 것을 끄트머리가 뾰족한 실처럼 만들었다. 그대로 강령술사의 눈을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강령술사는 홀몸이 아니었다.
콰악!!!
거미 악귀 한 마리가 나쿠타서스를 덮쳤다. 위기감을 느낀 우토는 즉시 보호막을 해제하고 다른 주문을 외웠다.
“드라쉬르!”
우토의 그림자가 입체적인 무언가로 바뀌어 일어섰다. 그리고 그림자의 오른팔이 단번에 길어지면서 강령술사를 노렸다.
그림자의 야수가 손톱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카앙…!
강령술사는 도끼로 그림자의 손톱을 막아냈다. 바위라도 쉽게 가르는 손톱인데 말이다.
“평범한 도끼가 아니었구나!”
이윽고 강령술사는 나쿠타서스와 거미 악귀를 뛰어넘어 곧장 우토를 노렸다. 수직으로 치켜든 도끼가 우토의 정수리를 노려 단두대의 칼처럼 떨어졌다.
카앙!
우토의 배후에 서있던 그림자가 도끼를 두 손으로 쥐었다. 그래도 도끼는 우토의 콧잔등까지 내려온 채다.
그리고 아슬아슬한 힘 싸움이었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이…!”
그때 우토는 처음으로 그의 변조된 목소리를 접했다.
“역시 제국에도 능력자는 있었구나.”
“…!”
등줄기로 서늘함이 흐르는 목소리였다.
꾸드득!
게다가 그림자의 손아귀가 힘 싸움에서 밀리고 있다. 도끼의 예리한 날이 우토의 콧잔등까지 닿아서 핏물이 맺히게 하였다.
우토는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으리라.
“끄아아아아아! 괴물, 괴물!!”
퍼어어억!
그때 나쿠타서스를 덮친 거미 악귀가 폭발하였다. 거미 악귀로부터 터져나간 혈액과 혈관은 뿌려지지 않고 허공에서 몇 바퀴를 회전하더니 강령술사의 온몸을 붉은 실처럼 칭칭 감아버렸다.
“자, 잘했다! 나쿠타서스!”
“오래 붙잡고 있을 수는 없소!”
“드라쉬르!”
힘겹게 도끼를 쥐고 있던 우토의 그림자. 그것이 강령술사의 발치에 있는 그림자로 이동하였다.
촤악…!
우토의 코는 세로로 갈라지고 말았다.
“크아악!”
대신 그림자는 강령술사의 배후에서 일어나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와중에도 혈액과 혈관을 조종하여 그를 붙잡고 있는 나쿠타서스는 앓는 소리를 냈다.
“끄으으으! 무슨 이런 힘이…!”
모든 것이 걸린 힘 싸움이었다.
“헉, 헉, 허억…!”
“노, 놓칠 것 같소!”
“조금만 더 버텨라!”
그림자의 손아귀가 강령술사의 목을 더욱 강하게 조였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미 목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떨어질 정도의 힘이었다. 그런데 강령술사는 버티고 있다.
그때 나쿠타서스가 외쳤다.
“우토! 놈의 힘이 빠, 빠지고 있소!”
“제발 좀 죽어라아아아!!!”
우토는 남은 영력을 모조리 쥐어짜 그림자의 손아귀에 쓸 힘으로 투입하였다. 나쿠타서스는 서있을 기력조차 없는지 한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다른 한 손으로 강령술사를 구속하는 중이다.
우토와 나쿠타서스의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마침내,
“됐다!”
…털썩!
강령술사를 쓰러뜨렸다.
둘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혈액과 혈관으로 만들어진 붉은 실이 무너졌다. 우토의 그림자는 힘을 잃고 사라졌다.
“질식사했는가?! 어서 놈의 생사를 확인해라!”
나쿠타서스는 허겁지겁 바닥을 기어서 쓰러진 강령술사의 가슴에 귀를 대보았다.
“어떠냐! 어떠냐고!”
나쿠타서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대답을 하는 것이다.
“심장이 야, 약하게…. 뛰고 있소….”
“이런 괴물 같은 놈을 봤나!”
아직도 죽지 않았다니.
그는 괴물들을 이끌고 제국의 수도까지 들어와 수많은 친위대를 상대했다. 그리고 기어코 황궁의 바로 앞까지 돌파하였다. 그런 그를 죽이기 위해 코앞에서 방혈하고 뼈를 으스러뜨리는 강도로 온몸을 옥죄고 가지고 있는 영력을 쥐어짜 혼신의 힘을 다해 목을 조였는데,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죽은 게 아니라 기절했다는 것이다.
우토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칼! 칼 같은 거 가지고 있나?!”
“아아, 어, 없소!”
강령술사는 쓰러뜨렸지만 둘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아직 살아있는 저 몸이 잠자고 있는 괴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놈이 데려온 거미를 닮은 괴물들은 아직도 곳곳에서 날뛰고 있다.
절박해진 우토는 목이 갈라지도록 외쳤다.
“친위대애애애애!!!”
그의 절박한 외침을 들은 병사들이 근처 골목에서 죽기 살기로 뛰어왔다.
“흑마법사님?! 그자는…”
“기절했다! 어서 칼을 내놔라! 이 자리에서 놈의 심장을 도려내야 한다!”
그러나 친위대 병사들은 선뜻 우토에게 칼을 내주지 않았다.
“가, 가, 강령술사, 지, 지금 죽여야 하오!”
“뭣들 하는 거냐? 칼 달라고! 칼!”
“실은 그게….”
어느 병사가 말해주었다.
“…가급적 강령술사를 죽이지 않고 생포하여, 황궁으로 끌고 와 무릎을 꿇리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누가?!”
수도를 이 난장판으로 만들고 우토와 나쿠타서스까지 고전하게 만든 위험한 인물. 그런 강령술사를 살려서 끌고 오라니.
“황명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황제의 명령이었다.
* * *
강령술사의 흉악한 도끼, 용도를 알 수 없는 십자가 목걸이, 엄청나게 질긴 로브와 방어구들은 친위대가 압수해갔다.
“이것은 영력을 봉인하는 부적(符籍)이옵니다.”
강령술사는 방독면을 쓴 그대로 이마에 노란 종이가 붙어있었다. 그 종이에는 인간의 것도 악마의 것도, 그림도 문자도 아닌 것 같은 이상한 것이 검붉은 피로 그려져 있었다.
원로들은 흑마법사 우토의 실력에 감탄했고 친위대장과 고위관직의 원로들은 강령술사를 경계했다.
“정말이지 기괴한 방독면이군.”
황제는 강령술사에게 물었다.
“그래, 이름이 무엇이냐?”
그는 황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강령술사다. 본명은 알려줄 수 없어. 뒤에 있는 놈이 흑마법사잖아.”
그의 변조된 목소리를 처음 접한 원로들은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황제 앞에 얼굴과 목소리까지 숨기고 있는 강령술사를 괘씸하게 여긴 것이다. 게다가 말투에서도 존경심을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
또한 고위관직의 원로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폐하. 감히 폐하의 조치에 의구심을 표해 황공하오나, 저 강령술사라는 자의 민낯과 목소리를 숨기고 있는 방독면이 폐하께 무례가 아닌지 싶습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원로이자 고위관직.
“법무관. 그것은 짐이 수순에 따라 알아볼 참이었다. 짐이 원로들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황송하옵니다.”
법무관은 깊게 고개 숙였다.
“…그래서 강령술사. 자네는 방금 짐의 질문을 듣지 못하였는가? 짐은 분명 자네의 이름을 물었다.”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무, 무, 무엄한 놈!”
나쿠타서스가 버럭 화를 내며 강령술사의 등을 걷어찼다. 원래 이런 일은 종종 우토가 하곤 하였는데, 우토는 강령술사의 몸짓이나 말 하나하나를 모두 경계하는 중이라 바쁘다.
…라는 건 핑계고, 사실 우토는 강령술사가 두려웠다.
‘아니겠지?’
우토는 강령술사를 제압했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고뇌하고 있었다.
‘아닐 거야….’
방독면을 제외한 장비를 모두 압수당하고 영력을 차단하는 부적까지 머리에 붙이고 있는 강령술사.
우토는 그런 눈앞의 강령술사가 지금도 두렵다.
‘아닐 거다…. 일부러 잡힌 건….’
“이름을 말해라! 이 사악한 놈! 무엄한 놈!”
퍽! 퍽!
나쿠타서스는 강령술사의 등을 계속해서 걷어찼다. 그게 조금은 길어진다 싶었을 때 보다 못한 집정관이 나섰다.
“그만하시오. 귀공이 폐하의 황금보다 귀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잖소. 무엇보다 그자의 육체에 발길질이란 무의미한 채찍질이오.”
나쿠타서스는 반발하는 표정을 지으며 법무관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금방 황제와 눈을 마주하고는 가까스로 분을 삭였다.
“그렇다면 다른 질문을 해보지. 강령술사.”
황제는 턱을 문지르며 강령술사를 가만히 보았다. 그저 가만히 보고 있을 뿐인데 그의 눈빛은 영혼이라도 꿰뚫어보는 것처럼 깊어 보였다.
“짐의 수도를 공격한 동기가 무엇이냐?”
“….”
“대답하기 싫으냐?”
황제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점점 더 적대적인 시선을 강령술사에게 쏘아댔다.
“너의 왕이 시켜서 한 일이냐, 아니면 너의 자의로 한 일이냐?”
“….”
“너는 최근 변경백들의 역모와 관련이 있느냐?”
“….”
“언제부터 제국의 영토에 들어와 있었지?”
“….”
“지금 네가 품고 있는 목표가 무엇이냐?”
그래도 묵묵부답이다.
황제는 인내심을 가지고 잠시 기다렸다.
“…내가 그 질문들에 왜 대답해야 하지?”
그의 말이 살벌한 정적을 깨버렸다. 그에게 쏟아지던 적대적인 시선들은 명백한 살의가 섞인 시선으로 뒤바뀌었다.
그리고 황제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친위대장이 검을 뽑아들었다.
“폐하. 저 무례한 놈의 목을 벨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 집정관이 기다렸다는 듯 친위대장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었다.
“예의도 법도도 상식도 없는 놈이옵니다. 게다가 100마리의 괴물 군단을 수도에 풀고 단신으로 황궁 앞까지 돌파하여 우토와 나쿠타서스를 고전하게 만들 정도로 강한 놈이옵니다. 아군으로 포섭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향후 위협을 배제하는 차원에서라도 친위대장의 간청을 들어주시옵소서.”
집정관이 그렇게 나서자 법무관과 호민관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지나치게 강하고 법도를 모르는 강령술사는 장차 제국에 크나큰 재해를 몰고 올 것이옵니다.”
“부디 친위대장의 간청을 들어주시옵소서.”
원로들도 입을 모아 말했다.
- 간청을 들어주시옵소서. 폐하.
그때 황제의 입이 씰룩댔다.
“…흐, 흐흐흐.”
모두의 시선이 황제에게 집중되었다.
“으하하하하!”
왜.
이 상황에.
어째서, 무슨 이유로.
어떤 부분에서.
“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그 누구도 황제가 웃음을 터뜨린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알 수가 없어서, 이해할 수가 없어서,
당장 눈앞의 위협인 강령술사보다 황제의 존재가 더 두려울 지경이었다.
“하하하…! 우토!”
우토는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엇, 예…! 폐하!”
“이번 일은 누구보다도 자네의 공로가 가장 크거늘. 기분이 어떤가?”
“폐하의 과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그런데 자네는 왜 아까부터 겁에 질린 토끼의 냄새를 풍기고 있느냐?”
그렇게 물으면서 웃음기가 차갑게 지워진 황제였다.
황궁의 공기까지 차갑게 얼어붙는듯했다.
우토는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식은땀을 흘려댔다.
“소…. 소인은….”
“감히 짐의 앞에서 네 생각을 숨기는 것이냐?”
“아아아, 아닙니다! 폐하! 제가 어찌 그런…!”
“그럼 실토해라. 짐이 이렇게 묻기 전까지 숨길 정도로 두려운 게 무엇인지.”
강령술사가 힘을 전부 발휘하지 않고 일부러 잡혀 들어온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 이 자리에 있는 강령술사가 폐하께 위해를 가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죽이는 게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시, 실은…!”
하지만 그 말은 이 자리에 있는 우토보다, 나쿠타서스보다, 친위대장보다, 수도의 긍지 높은 병사들보다, 심지어는 엑수스의 화신인 황제보다 강령술사가 강하다는 소리를 당사자들 면전에 대고 내뱉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지금 저 원로들의 표정이 말하고 있다.
당장 황제가 있는데, 도대체 무엇이 황제보다 두려운 것이냐고 따지는 얼굴들이다.
“실은…. 이 강령술사의 방독면에 걸려있는 저주가 두려웠사옵니다.”
그러면서 우토는 황제의 반응을 살폈다.
몹시, 매우, 굉장히.
여러 가지 표현을 빌리고 싶을 정도로, 황제는 흥이 다 떨어졌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재미가 없다고 반응하고 있었다. 대답이 실망스럽다고.
“…참, 그랬었지. 강령술사의 방독면을 벗기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려고 했었다.”
“예, 폐하. 이자의 방독면은 마치 얼굴에 붙어있는 것 같사옵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방독면을 벗길 수 있는 장치를 알아낼 수 없었사옵니다. 그래서 억지로 잘라내 벗기려 하니 가위가 상하고 칼이 깨졌습니다.”
“계속하거라.”
“방독면에 벗기는 장치도 없고 억지로도 벗겨낼 수 없고…. 여러 방면에서 소인의 이해를 벗어나는 인물이옵니다. 물론 지금은 엑수스의 화신인 폐하께서 계시니 안심이 되지만, 만약 폐하께서 안 계신 순간에 저 부적이 무효하게 되기라도 한다면…. 그런 상상이 되어 내심 불안했…”
“우토.”
“예…! 폐하…!”
“법무관.”
“예, 폐하.”
황제는 두 사람에게 명령했다.
“저자를 홀로스트 수용소로 끌고가라.”
나쿠타서스가 우토에게 세뇌당한 바로 그 수용소였다.
그런데 거기에 법무관까지 붙이겠다고 했으니 원로들은 황제가 이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에 한 번씩 편지를 써 짐에게 경과를 면밀히 보고하라.”
황제는 신중하게 더 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작디작은 세인트 왕국을 정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힘은 아니지만, 위대한 비첸크로이 제국이 천하를 제패하기 위해선 탐나는 힘이로다.”
아무리 그래도 강령술사가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뜻인가. 물론 강령술사가 비상식적으로 강한 것은 맞지만 그런 개인의 힘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 여길 수 있다는 뜻인가.
원로들이 그런 의문을 품던 와중이다.
“짐이 보기에 저자는 더 많은 괴물 군단을 부릴 수 있는 인물이다. 단 100마리의 괴물이 제국의 수도를 혼란에 빠트릴 정도였으니, 그 괴물이 수만, 수십만이 된다면 어떻겠는가. 그러니 저자에게 세뇌를 시도하는 위험과 수고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천하에 제국을 이길 수 있는 나라가 없다. 수많은 나라들이 연합한다고 하여도 제국을 이길 수 없게 될 것이다.
거기까지 내다본 황제의 뜻이었다.
그의 거대한 야망에 압도당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말이다.
“생포한 적 앞에서 그런 정보를 노출해도 되는 건가? 황제.”
“짐이 아는 건 자네가 그 강력한 승천자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것뿐이지.”
“내가 당신의 정찰대를 처 죽였는데 그 정보는 잘도 알아냈네.”
“물론 짐은 자네가 지금까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들을 상대해왔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자네에겐 엄청난 이용 가치가 있으니, 수도를 혼란에 빠뜨리고 짐의 목숨을 노린 죄는 묻지 않겠다.”
“들었던 것처럼 자비로우시네.”
“친히 말해주마.”
황제의 눈빛에서 야망이 지워졌다.
근엄했던 표정도 강단 있는 목소리도 지워졌다.
그저 침착하고 차가웠으며, 진리를 말하는 것처럼 평탄했다.
“짐은 다를 것이다. 자네가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것들이랑은.”
그러자 강령술사도 받아쳤다.
“나도 다를 거야. 당신이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아랫것들이랑은.”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도 모르는 녀석이 의기양양하구나.”
“난 절대 당신 밑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야. 이런 식으로 무의미한 심문이나 계속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죽여.”
“으하하하하!”
황제는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히 원로들은 강령술사의 태도가 심히 불쾌했기에 황제가 왜 그렇게 웃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황제는 웃음을 멈추고 강령술사를 노려봤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했느냐?”
황제가 웃은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승천자를 죽이고 광인의 숲을 뚫어서 제국까지 들어온 네놈이, 어떻게든 황궁까지 들어오려고 했던 네놈이, 어떤 목적의식이 뚜렷해 보였던 네놈이, 하물며 네놈처럼 강한 인물이 그리 쉽게 목숨을 포기한다고?”
“….”
“아니지. 아니야. 정말 진심으로 목숨을 포기한 건 아니겠지.”
우토의 이마로 땀방울이 흘렀다.
“지금 네놈은….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면서 뭔가를 ‘의도’한 것이다.”
그날 강령술사는 몸에 부적을 여섯 개나 더 붙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속옷만 입혀진 채 홀로스트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곳은 황제가 만들어낸 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