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방독면의 뒷면 (5)
홀로스트 수용소의 죄인들은 방독면을 쓴 괴인에게 열광하였다.
“저분이 우리의 구세주시다!”
“다 죽여버려!”
“괴물들이 우리 편이다!”
오랜 핍박과 억압 속에 오로지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나날이었다.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으면서 죽지 못해 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간수들을 공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너도 한번 살려달라고 빌어봐! 이 개새끼야!”
아니, 단순히 공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당했던 그대로 복수까지 하고 있다.
곡괭이로 머리를 깨부수고 옷을 벗겨 채찍질을 했다. 무기고를 털어서 검과 창을 들고 싸웠다.
잿빛으로 탁하게 물든 또 다른 지옥이었다. 간수와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수용소 건물들은 죄수들이 일으킨 화재 속에 열렬히 불타올랐다.
삽시간에 함락된 수용소의 주인이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우린 자유다!”
이윽고 수백 죄인들이 수용소의 정문에 모여들었다.
문을 열 필요조차 없었다. 이미 파손된 정문 너머에는 그들의 숫자보다 많은 거미 악귀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악귀 군단 앞에는 아라나크가 있었다.
“오오오!”
“거미 여신이시여!”
그리고 죄인들 사이에서 강령술사가 등장했다.
정확히는 강령술사가 아니라 그의 방독면을 쓴 가뭄의 생존자이지만 말이다.
아라나크가 입을 열자 죄인들은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됐어?”
방독면을 쓴 가뭄의 생존자는 자아도 지능도 없다. 하지만 이 순간에 페인이 시킨 말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다. 마치 그의 분신처럼.
“……침공이 결정되었다.”
짧지만 무거운 한마디였다.
죄인들은 동조했다.
“뭣, 침공이라고?”
“제국을?”
“가, 가능해…. 이렇게 강력한 군단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게다가 제국군은 세인트 왕국과의 전쟁에 투입됐잖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전에 간수들이 하던 말을 엿들었어.”
“그럼 진짜로 제국이 침공당하는 거야?”
그들은 웅성거렸다. 그러다 한 죄인이 나서서 가짜 강령술사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저희는 어떻게….”
그때 아라나크가 가짜 강령술사에게 접근했다.
거미 몸체에서 자라난 여성의 상반신이 그에게 창백한 손을 뻗었다.
틱!
아라나크는 가짜 강령술사의 방독면을 회수했다.
……풀썩!
그러자 방독면이 벗겨진 녀석은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잘 버텨주었다. 가뭄의 생존자.”
“이제… 아프지 않아도…”
“네 역할은 끝났다.”
“…배가 고프다…”
“네가 내뱉는 문장들의 뜻은 알고 말하는 것이냐?”
가뭄의 생존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쓰러진 그대로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죽어서 악으로 변해, 목줄을 따라 페인의 영혼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또한 녀석이 방독면 안에 감추고 있던 벌어진 턱을 목격한 죄인들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었다.
그래도 한 죄인이 용기를 냈다.
“거미 여신님! 저희는 자유가 된 것입니까?”
“자유?”
악명. 무고한 아라나크.
아라나크에겐 인간혐오가 있다.
아무리 깨끗하고 무고한 존재라도, 그 존재가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간’이라면 일단 혐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죄인들.
흉악범들.
“…누가 네놈들에게 자유를 논했느냐?”
“제, 제국 놈들은 우리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놈들의 형벌이라는 것에는 끝이 없고 자비도 없었습니다!”
죄인들이 하나둘씩 억압된 감정을 표출했다.
“옳소! 나는 벌써 3년째 갇혀있단 말이오! 이곳에서 5년을 넘기는 놈이 없소! 모두 죽을 때까지 막노동을 하거나 간수들의 장난감이 되어 개죽음을 당할 뿐이었지!”
“우리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거미 여신님과 함께 싸웠습니다!”
“그, 그리고 거기 쓰러진 남자가 약속했습니다! 함께 지옥에서 탈출하자고…!”
“거미 여신이시여! 우리는 죄를 뉘우치고 있습니다! 잔악한 황제 탓에 죄값 이상의 형벌을 받고 있었단 말입니다!”
“이제는 좀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아라나크는 죄인들의 뜻을 곱씹었다.
“사람답게 살 테니 자유를 달라…….”
그러면서 페인의 방독면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후우웅!
불나방 한 마리가 내려와서 아라나크가 들고 있던 방독면을 낚아채갔다.
“…짐승한테 자유를 준다 한들 그게 사람이 되더냐?”
어쩌면 이들과 말을 한 마디라도 더 섞은 아라나크가 나름 잘 참은 것이었다.
“네놈들은 고기다.”
“거미 여신님…?”
“좀 전까지는 고기 방패였고. 이젠 고기가 되었지.”
그 순간, 죄수보다 많은 거미 악귀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오도독! 오도독!
악귀들의 흉포한 턱이 그들의 뼈와 살점을 으깨고 내장을 뽑아냈다. 그리고 살아있든 죽어있든 씹어먹었다. 발목부터 씹어먹히는 자는 머리부터 먹힌 자를 부러워하였다. 일찍이 거미에게 당해서 다 죽어버린 간수와 병사의 시신을 부러워하였다. 허리가 잘려서 기절한 동료를 부러워하였다. 그들이 토해낸 절명의 소리조차 담벼락을 넘지 못해, 수용소에 갇혀 메아리쳤다.
“싸움에 앞서 배를 채우거라. 아가들아.”
그야말로 생식(生食)의 현장이었다.
사실 탈옥이란 선동을 위한 거짓말이었다.
처음부터 수용소의 높은 담벼락을 넘을 수 있는 건 그들이 아니라 거미 악귀들이었으니.
사실 처음부터, 홀로스트 수용소는 신선한 살점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던 것이다. 인근에 사람이라곤 없는 척박한 사막지대, 높은 담벼락에 갇혀서 도망칠 수 없는 죄악의 살점들이 풍부한 장소였던 것이다.
- 아아아아아악!!!!!
전부 페인의 지시였다. 계획이었다.
거미 악귀들은 살점을 탐하고 죄수들이 갖고 있던 악을 탐했다. 그리고 기하급수적으로 숫자를 불렸다.
이윽고 수용소는 하나의 거대한 군락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제국에는 죽어야 할 놈들이 너무 많구나.”
아라나크는 곧 다가오는 5만 친위대를 목도하게 되었다.
* * *
흑마법사 우토는 군락으로 변해버린 홀로스트 수용소를 목도하게 되었다.
거미줄, 거미집, 알집투성이다. 크고 작은 거미를 닮은 괴물들이 수용소의 안팎을 점령하고 있다. 게다가 수용소의 위쪽 하늘에서는 거대한 나방을 닮은 괴물들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우토! 정찰 결과다!”
군마에 오른 친위대장이 우토 옆에 가까이 붙었다.
“괴물들의 숫자가 족히 천 마리는 되는 것 같다. 하늘에 있는 괴물들도 이백 마리는 넘는다.”
두려움이라는 것이 우토의 내면에서 질병처럼 증식했다.
‘강령술…. 다른 차원의 괴물들을 소환했다는 말인가…. 하지만 저렇게 많은 숫자를 혼자서 다 통제할 수 있다고…?’
“우토. 홀로스트의 정문은 활짝 열려있다. 바깥에 있는 천 마리 말고 수용소 내부에 있는 것들까지 합치면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황명이다.
이 세상에 황명보다 두렵고 절대적인 것은 없다. 저 앞에 있는 괴물 군단이 두려워 황궁으로 돌아가 봤자 목이 떨어질 것이다.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는 친위대장이라면 몰라도.
- 우토, 이 얼빠진 자식! 누가 네놈더러 짐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돌아오라 하였느냐! 법무관이 네놈의 이런 기행을 허락하였느냐?
- 네놈을 질책할 시간도 없다! 당장 친위대장을 따라 홀로스트로 튀어가라! 가서 강령술사를 막으라고!
황제는 이 사태를 눈으로 직접 보기도 전부터 예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토에게 화를 낸 것이다.
‘절대 죽게 내버려두지 말라고 했으면서 왜 나한테 역정이냐고….’
억울한 건 둘째치고 지금은 황제가 우토에게 화를 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친위대장이라면 몰라도 우토는 도저히 황궁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선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저것들을 해치워야 하겠지…. 아니면 친위대장이 후퇴를 명령해서 어쩔 수 없이 나도 황궁으로 돌아가는 거라면 괜찮은데.’
하지만 어느 지휘관이 친위대장을 재촉했다.
“대장님! 놈들이 이쪽으로 몰려옵니다! 조속히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우토! 다가오는 전투에 대비하라!”
“지, 진짜요?”
“저 괴물들을 폐하가 계신 수도로 보낼 수는 없다! 이곳에서 결착을 지어야 한다! 비록 우리가 이곳에서 전멸할지언정 숫자를 한 마리라도 더 줄어야 하는 것이다! 단 백 마리만으로도 수도를 혼란에 빠뜨렸던 괴물들이 아닌가!”
괜한 기대였다. 여기서 싸우지도 않고 후퇴를 명령할 친위대장이 아니었다.
“그럼 소인 또한 싸우…. 전력을 다해 싸우겠습니다.”
친위대장과 5만 친위대는 용맹하게 나섰다.
두두두두두!
1만 창기병들이 좌우로 크게 갈라져서 거미 군단을 포위하는 진형을 갖추었다. 그러면서 가로로 길게 대열을 형성한 3만 창병들이 방패와 창을 앞세워 빠른 걸음으로 진격했다.
이와 달리 거미 군단은 어떤 대열이나 규칙성도 없이 그저 하나의 검은 무리가 되어 친위대를 향해 돌진해오는 중이다.
“놈들에겐 방패가 없다! 쏴라!”
1만 장궁병과 석궁병들은 하늘을 뒤덮는 화살비를 퍼부었다. 거미 군단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화살들을 그대로 받아냈다.
티티티티티티티틱!!
그러나 단 한 마리도, 아주 조금의 상처도 입은 녀석이 없었다.
그들의 화살은 거미 악귀의 단단한 갑피를 뚫을 수가 없던 것이다.
그래도 친위대장은 당황하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 화살의 위력이 떨어진 탓이다! 궤도 각을 낮추고 최대한 직선으로 쏠 수 있도록 다음 명령에 대비하라!”
척! 척! 척!
전방에 늘어선 3만 창병들이 한 사람씩 간격을 비워서 그 자리에 석궁병과 장궁병들이 설 수 있도록 대열을 수정하였다.
“우토! 너의 흑마법으로 아군 화살의 위력을 강화해라!”
“하지만 만 개의 화살을 강화하면 소인의 영력이….”
친위대장은 우토에게만 들리도록 목소리를 낮췄다.
“저것들과 백병전을 붙어서 이길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
“그러니까 당장. 저 괴물들이 한 발자국이라도 멀리 있을 때 하나라도 더 해치우자는 말이다.”
우토는 떨리는 목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쉠, 페럴라툼…!”
직후 친위대 진영의 최전방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로로 늘어선 대열의 발치를 따라 피어오른 연기가 벽처럼 형태를 갖추었다.
“쏴라!”
그 기다란 벽을 통과한 만 개의 화살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속력까지 단번에 가속되었다.
쐐애애애액!!!
허공에 지나온 길을 검은 연기로 표시하듯 날아간 만 개의 화살. 그것들은 포물선 궤도가 아니라 휘어짐이 거의 없는 직격타였다.
제법 거리가 있어도 화살들은 전혀 속력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아래로 휘어지는 일도 없이 거미 군단의 전열을 덮쳤다.
퍼퍼퍼퍼퍼퍽!
만 개의 화살이 거미 악귀들의 단단한 갑피를 뚫었다. 그중에 오천 개 이상의 화살은 앞에 있는 녀석을 꿰뚫고 뒤에 있는 녀석에게까지 꽂힐 위력이었다.
- 키에에에에에엑…!
- 키이이익…!
멀찍이서 거미 악귀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앞서 우회한 1만 창기병들이 거미 악귀들의 측면과 후방을 동시다발적으로 쳤다.
이어서 3만 창병들과 거미 악귀들이 충돌했다.
“이 괴물들!”
“눈이나 턱을 찔러라!”
“뭣하면 관절이라도 찔러라!”
“키기기게게게겍…!”
방패는 일그러졌고 창은 부러졌다. 친위대가 만든 대열은 거미 악귀들이 대놓고 뛰어넘거나 짓밟으며 무너뜨렸다.
으드드득!
갑옷을 뼈째로 씹어버리는 무지막지한 치악력,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거미줄은 어찌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황제 직속의 친위대는 용맹했다.
“씨발! 다리를 치라고!”
“이쪽 좀 도와줘!”
“죽어라! 이 괴물 놈들아!”
창병들 사이에 검사들도 섞여있었다. 그들은 거미 악귀들과 백병전을 피하지 않았다. 거미 악귀의 눈, 입, 다리 관절 등을 집요하게 노리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창기병들은 군마의 속력을 빌려 거미 악귀들을 찔러 죽였다. 한 번의 창질로 속력을 잃은 창기병들은 거미 악귀 군단 사이를 겁도 없이 가로질렀다. 그러면서 다시금 속력을 모았다.
“키에에엑!”
그러다 거미 악귀에게 덮쳐지거나 거미줄에 걸려 낙마라도 하면 죽은 목숨이었다. 그래도 친위대 창기병들의 부릅뜬 눈은 죽어서도 감기지 않았다.
“제국의 군사력을 보여줘라!”
“물러서지 마라! 우리는 긍지 높은 친위대다!”
이젠 친위대장과 우토도 전장에서 직접 거미 악귀들을 상대하게 되었다.
“드라쉬르!”
우토의 그림자가 입체적인 존재가 되어 손톱을 휘둘렀다. 무지막지한 경도를 자랑했던 거미 악귀들의 갑피는 검은 손톱질에 고기처럼 썰렸다.
“하아압!!”
같은 순간, 친위대장은 깃발 달린 창을 거미 악귀 한 마리의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푸우우욱!
그리고 능숙하게 고삐를 당겨 군마의 앞발로 창을 밟았다.
쿠저적!
마치 창이 못이었고 군마의 앞발이 망치였다.
“포기하지 마라! 모두 전력을 다해 싸워라!”
터억!
친위대장은 땅에 박힌 창을 뽑아서 휘둘렀다. 자신을 노려 사출된 거미줄이 창에 얽히도록 한 것이다.
쯔으윽!
그러나 거미줄이 너무 많았다. 일부 거미줄은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친위대장을 쫓았다.
“으윽!”
기어코 거미줄이 친위대장의 군마를 포박해 넘어뜨렸다. 그렇게 낙마한 친위대장은 발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주변의 병사들과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친위대장은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한눈팔지 말고 싸워라!”
…콰아악!
거미 악귀 한 마리가, 두 마리가, 세 마리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부러진 발목을 약점으로 잡아서 물어뜯고 하반신을 짓눌렀다.
“우리는 친위대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친위대장은 울컥울컥 피를 뿜으면서도 소리쳤다.
“병력 하나가…! 줄었을 뿐이다…!”
드드득!!!
그 말을 끝으로 친위대장은 팔다리와 머리가 뜯겨나가고 말았다.
* * *
어지러운 전장 속, 우토는 어느새 친위대장의 위치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벌써 거미 악귀들이 주변 병사들의 숫자보다 많아진 것 같다.
전방부터 여기까지 돌파당했다는 걸까. 아니면 대열을 무시하는 저 괴물들이 5만 친위대와 한곳에 뒤엉켜 싸우게 된 걸까.
어느 쪽이든 우토는 절박했다.
“허억…! 허억…! 헉, 헉…!”
“우토 님!”
콰드득!
가끔 병사들이 우토를 알아보고 합류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거미 악귀들이 나타나 그들을 골라 죽였다.
그래서 우토의 상상력은 더 큰 두려움을 낳았다.
‘설마 지휘관이 따로 있나…?!’
“대장님을 죽이다니!!”
“으아아아아아!!!”
우토는 절규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저곳에 친위대장이 들고 있던 깃발이 있다.
그리고 그 깃발 아래에 익숙한 시신이 있었다.
“허억…. 허억….”
익숙한 시신이 사지와 머리가 절단된 채 으깨진 내장을 모래 위에 쏟아놓고 있었다.
“흐으…. 흐억…. 흐으….”
5만 친위대가 천 마리의 괴물들과 싸운 지 한 시간도 안 됐다.
홀로스트 수용소의 창공에서 떠다니는 날개 달린 괴물들은 이쪽에 합류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벌써 이 꼴이다.
“흐으, 흐으, 흐으…!”
일반적으로 전장에서 가장 높은 지휘관은 가장 안전한 위치에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친위대장과 자신도 가장 안전한 위치에 있었다. 수많은 병사들의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전투를 시작했었다.
“히이이…! 히이…!”
그런데 벌써 친위대장이 죽었다.
주변에 괴물들이 너무 많다.
너무 강한 괴물들이 머릿수까지 많다.
‘지휘관이 있어, 지휘관이 있어, 지휘관이 있어, 지휘관이 있어, 지휘관이 있어, 지휘관이 있어, 이 괴물들의 지휘관이 있어…!’
괴물들의 움직임이 전략적이다. 이것들을 전부 지휘하는 자가 있다. 강령술사든 지휘관 괴물이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토는 보았다.
위험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시선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곳으로 시선을 옮긴 것이다.
“거미…. 여자…?”
엄청난 덩치의 거미. 위에 있는.
피비린내 섞인 모래바람에 하얀 머리칼을 찰랑이고 있는. 창백한 피부의 상반신만 있는 미인이.
흰자위도 없는 시선이다. 분명하게 이쪽을 보고 있다. 꿈틀거리는 벌레라도 보듯 무심하게 싸늘하게 이쪽을 보고 있다. 보고 있었다.
그 순간부터였다. 우토의 사고는 본인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돌아갔다.
‘이 무서운 괴물들을 통제하는 더 무서운 괴물 지휘관이…’
심장이 부서질 것 같다. 이렇게 무서울 거라면 차라리 부서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저 무서운 괴물 지휘관조차 그 강령술사를 섬긴다고, 그러면…’
결코 도달하고 싶지 않았던 결론.
‘………그럼 강령술사는 얼마나 강한……’
얼마나 강한 놈.
얼마나 강한 사람
얼마나 강한 능력자.
얼마나 강한 분.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얼마나 두려운,
존재(存在)인가.
“히이이익! 잘못했습니다아아아!!!!”
우토는 남은 영력을 모조리 소진하여 자기 주변에 거대한 보호막을 펼쳤다. 우토로부터 시작된 보호막은 사방으로 팽창하여 친위대와 악귀를 가리지 않고 모래째로 밀쳐냈다.
이후 거미 악귀 군단은 날뛰었다. 5만 친위대를 사냥하여 배불리 포식했다.
실종자는 도망친 우토 한 명.
그밖에 생존자는 없었다.
그저, 사막의 모래가 적토처럼 물들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