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62화 (62/181)

12. 잊지 않겠다 (2)

“주저리주저리 떠든 보람이 없군.”

황금 철퇴가 코앞까지 돌진해왔다. 황제의 주먹보다는 느렸지만 그 위력은 맞지 않아도 직감할 수 있었다.

후우웅!

나는 철퇴를 옆으로 회피했다. 한 박자 늦은 강풍이 스쳤다. 뒤이어 철퇴는 황궁의 천장을 한 바퀴 돌아서 내 어깨를 노렸다.

타닷!

어차피 황제와 나 사이의 거리는 열 걸음. 나는 철퇴가 내 어깨를 때리기 전에 도끼로 황제의 목을 칠 기세로 달려들었다.

“좋은 자세다!”

황제는 곧바로 대처했다. 회전 중인 철퇴와 이어진 황금 사슬로 하여금 내 목을 휘감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황제의 목을 칠 ‘기세’로 달려들었지 진짜로 그의 목을 노린 건 아니었다.

콰과과…!

나는 황제의 다섯 걸음 앞에서 검기를 날렸다.

콰앙!

황제는 이번에도 검기를 몸으로 받아냈다.

「저 육체에 검기는 통하지 않아!」

안다. 그래도 나는 방금 황제에게 검기를 맞춤으로써 사슬의 궤도가 살짝 틀어졌다는 걸 확인했다. 즉 황금 사슬의 움직임은 황제의 몸놀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황제가 바닥을 힘껏 밟았다.

콰아아앙!!!

배척자의 제단분쇄라도 보는 줄 알았다. 황제의 발치로부터 바닥이 부서져 거꾸로 튀어 오른 것이다. 나는 뒤로 뛰어서 균형을 잡았다. 균형을 잡기가 무섭게 황제의 철퇴가 날아들고 있다.

‘교수척장분지형…!’

그냥 방혈이나 마른 익사가 아니었다. 오로지 하나의 목표물을 한해 가장 강력한 방혈 주술이었다.

그런데 황제는 멀쩡하다.

“철인 7계라고 밝히지 않았느냐.”

그 순간, 황금 사슬이 내 시야 바깥까지 이어져있었다. 위쪽으로 높게 이어져있었다. 그래서 나는 직감적으로 뒤로 굴렀다.

쿠웅!!!

내 정수리로 떨어지던 철퇴를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철퇴에 맞은 바닥이 투석기의 바위라도 받아낸 것처럼 움푹 꺼져서 균열을 퍼뜨린 채다.

‘방혈이 안 통하는 건 철인 7계랑 별개잖아.’

철인 7계는 영력과 육체를 연동해서 육체적 힘을 강화하는 능력이 아닌가. 그와 별개로 방혈은, 내가 방금 발동한 교수척장분지형은 방혈 5계다.

그건 저주 저항 5계가 있어야 상처 없이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교, 교수척장분지형은 분명 통했어!」

처거거거걱….

황제는 사슬을 당겨 철퇴를 끌어갔다.

「그냥 저 새끼 몸이 너무 강인한 거야!」

「체내에 출혈 좀 생기고 혈관 몇 개 틀어진다고 죽는 육체가 아니라는 거라고!」

“힘 조절이 어렵군. 죽이지 않고 불구로 만들려니….”

황제는 이 와중에 시선을 엉뚱한 곳에 두고 있다.

깨진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다들 저 날개 달린 괴물들 때문에 호흡을 제대로 못하고 있군.”

그가 뭔가를 하려고 한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게 둬선 안 될 것 같다. 나는 그를 향해 내달리며 발화 2계로 화염을 방사했다. 그것으로 그의 시야를 차단함과 동시에 왼쪽 손목에 차고 있는 손목쇠뇌를 드러냈다.

퓻!

화염 속에 숨겨진 은화살이 그의 미간을 노렸다.

화르르륵!

방사된 화염이 오른쪽으로 밀쳐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황제는 여전히 바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왼손으로는 은화살을 쥐고 있었다.

무심한 듯 왼손을 한번 휘둘러서 화염을 밀쳐내고, 왼손을 휘두른 김에 은화살도 잡아낸 것이다. 그렇게 보인다. 이쪽에 시선조차 주지 않고 저렇게 막아낸 것이다.

이제는 묻고 싶다.

“당신, 좀 전에는 적수를 만나서 심장이 뛴다고 하지 않았어…?”

“잠시 나가있거라.”

“왜 그렇게 설렁설렁하고 있는 거야?”

“오해 마라. 난 지금 최선을 다해 생각하는 중이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의 정리가 끝나면 나 또한 정리될 것 같다.

타닷!

그래서 다시 그에게 달려들었다. 여기서 내가 죽더라도 그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입혀야 한다.

“잠시 나가있으라고. 그러다 뒈지면 안 되니까.”

부웅!

황금 사슬이 순식간에 길어졌다.

콰과가가가각…!

위로 솟은 철퇴가 황궁의 천장을 찢으면서 내게 떨어지고 있다. 이번엔 피하더라도 바닥으로부터 전해지는 충격파를 피할 수 없으리라. 나는 몇 발자국 측면으로 몸을 옮기면서 황제를 향해 도약했다. 적어도 당장은 철퇴와 사슬이 내 뒤쪽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으니.

타앗!

그런데 황제도 나를 향해 도약했다.

그의 왼손에는 은화살이 들려있었다.

악을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진 은화살이.

……푸욱!

「꺄아아아아악…!」

“끄아아아!!!”

그것이 내 갈비뼈 사이에 박혔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아프다. 홀로스트 수용소에서 당했던 고문보다 더 아프다. 폐를 뚫은 것 같다. 호흡이 벅차다.

“미안하지만 나의 아랫것들부터 구해야겠구나.”

그리고 발차기를 당한 걸까. 주먹에 맞은 걸까. 철퇴에 맞은 걸까.

으직…!

무언가 아주 묵직한 것이 내 안면을 쳐버렸다. 방독면이 없었다면 얼굴뼈가 무너져서 두개골 뒤쪽까지 뚫렸을 것만 같은 충격이었다.

도약 중이던 나는 안면을 강타당하여 그대로 멀찍이 나가떨어졌다. 거의 비행이라도 하다시피 뒤로 날아가서 황궁의 벽을 등으로 부수고 널찍한 계단 위에 떨어져서 몇 바퀴를 굴렀다.

푸우우욱.

구르는 와중에 은화살이 가슴 깊숙이 들어왔다.

“커허……! 허어…! 끄어어…!”

등이 아프다.

계단에 충돌해서 아픈 게 아니라 살갗이 아프다. 가슴 전체가 아프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도끼를 놓치진 않았다. 도끼를 지팡이로 삼아 계단을 내리누르며 일어섰다.

“허으윽…. 커허어…! 허윽…!”

은화살이 가슴을 파고들어 등까지 뚫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 호흡이 안 되는 것이다. 시야의 테두리가 하얗다. 머리로 가는 피가 부족한 것이다. 상의와 하의가 뭔가에 젖어서 아래를 보니 전부 내 피였다. 내 피가 저 위에서 이곳까지 계단을 따라 쭉 흐르고 있다. 도대체 그 짧은 순간에 피를 얼마나 흘린 걸까.

「빨리 빼! 제발 이 은화살 좀 빼달라고!」

“으그극……!”

나는 등 뒤로 손을 더듬었다. 통증을 따라서 손을 옮겨 은화살의 화살촉을 쥐었다.

이게 지금 가슴을 뚫고 폐를 뚫고 등까지 뚫은 채 박혀있다. 미칠 것 같다. 살면서 겪어온 그 어떤 통증보다 아프다.

“끄으…!”

지지직!

기절할 것 같다. 기절이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안 된다.

“끄으으으으…!”

비명이라도 내지르고 싶다. 괴성이라도 토해내고 싶다. 하지만 호흡도 벅찬 상황이다. 입에서는 공기 빠진 소리만 애처롭게 빠져나올 뿐이었다.

지익!

이물감이 사라졌다.

빼낸 것 같다.

「상처는 재결합…. 했어….」

내 안의 악령이 울고 있는 것 같다.

녀석이 이런 목소리를 내는 건 처음이다.

「자살하자…. 응? 다음 기회를 노리자…. 남은 목숨도 있잖아. 나, 나 저런 건 상대하고 싶지 않아!」

“씨바아알…!”

나도 그러고 싶다. 당장 자살하여 황제 앞에서 사라진 후 다음 기회를 노리고 싶다. 하지만 아직 그런 결정을 내릴 때가 아니다. 아라나크와 거미 악귀 군단이 도착하기 직전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홀로스트 수용소를 점령했는가. 내가 무엇 때문에 최대한 많은 친위대를 수용소로 보내게 만들었는가. 무엇 때문에 그런 상황을 만들었는가.

수도의 병력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거미 악귀 군단의 숫자를 최대한 늘리기 위함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황제가 정말 엑수스의 화신이라서 개인의 무력을 갖고 있다면 그것까지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서 제국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수도의 군사를 전멸시키기 위함이었다.

적어도 아라나크와 거미 악귀 군단까지 도착해서 함께 싸워보긴 해야 한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툭툭.

나는 옷에 묻은 피 섞인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금 계단을 올랐다. 내 피로 더럽혀진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황궁이 가까워졌다.

그런데 황제가 황궁 앞으로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

나는 계단을 더 오를 수가 없었다.

키리리리리리리릭!!!!!!!

빛나는 황금 사슬이,

황제의 뒤에서 시작된 너무나도 많은 황금 사슬들이 하늘로 쭉 뻗었다.

하늘에서 잿빛 가루를 뿌리던 불나방 200마리가 그 순간에 모두 날갯짓을 멈추고 있었다.

불나방 200마리가 저마다 사슬에 몸체를 꿰뚫려서 하늘을 장식하고 있던 것이다.

쿠구구구구…

황제의 뒤에 전개된 태양 같은 소환진이 소용돌이치며 무언가 초월적인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슬들의 근원이자 태양 같은 소환진의 존재의의처럼 서있는 황제는, 마치 장엄하게 빛나는 한 마리의 공작새이자 비첸크로이 제국 그 자체 같았다.

키리리리릭!!!!

이윽고 하늘을 향해 뻗었던 황금 사슬들이 일제히 그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하늘에 있는 괴물들은 생각보다 하찮구나. …변소에 붙은 이름 모를 날벌레처럼.”

잿빛세계에서 매일매일 만들어온 불나방들.

녀석들이 힘 잃은 낙엽처럼 제국의 수도 위에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잿빛으로 탁했던 공기가 점차 맑아졌다.

- 폐하! 무사하십니까!!

- 저놈이다! 저놈이 강령술사다!

- 친위대! 저 강령술사는 강하다! 우리 모두가 오늘 죽을 수도 있다!

-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저 계단을 오를 것이다!

- 잡아라아아아!

사방에서 친위대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나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도 없다. 오로지 황제를 위하는 자들이다.

내 뒤에서 병사들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내 앞에는 황제가 있다.

“어서 덤벼라. 강령술사.”

그때였다.

- 키에에에에에엑…!

- 북쪽이다!

- 북쪽 관문을 막아라!

수도 전체의 병력이 황궁에 집중하고 있던 상황.

어느새 아라나크와 오천 마리의 거미 악귀들이 북쪽 방벽을 뛰어넘어 수도로 난입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아라나크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명령했다.

‘오지 마.’

아라나크는 안 된다.

제발.

* * *

아라나크는 눈에 친위대가 보이는 족족 주술을 발동했다.

‘광란의 집단부화.’

도시 전체에 있는 친위대를 모조리 공격하여 살점을 취했다. 그러면서 새끼 거미들을 끝도 없이 늘렸다.

싸움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새끼 거미들은 엄청나게 숫자가 늘어서 거의 역병처럼 수도에 만연했다.

그 숫자가 어찌나 많은지 길목마다 검은 그림자라도 드리운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황궁으로 가라! 아가들아!’

단 100마리의 거미 악귀로도 수도를 혼란에 빠뜨렸던 다른 차원의 군단.

그때보다 친위대의 숫자는 절반으로 줄었고 거미 악귀 군단의 숫자는 50배나 늘었다. 게다가 이번엔 전장에서 거미 악귀의 숫자를 늘리고 한 마리 한 마리를 지휘할 수 있는 아라나크까지 있다.

‘친위대를 모조리 죽여라!’

그것은 문자 그대로 침공이었다.

피비린내 가득한 광풍(狂風)이었다.

‘페인!’

아라나크는 높은 황궁의 계단에 있는 페인을 직시했다. 지금 그의 뒤에 병사들이 쭉 깔려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저기서 홀로, 외로이 다수를 상대로 싸우고 있던 것이다.

‘무사했구나! 나도 너와 함께 싸우겠다!’

그러다 아라나크는 목격하고 말았다.

페인이 보고 있는 방향은 계단 위쪽. 황궁이다.

지금 이 대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있는 존재가 있었다. 원래 계획은 황제를 죽인 후 황제에게 충성하는 친위대를 모조리 해치우고 수도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계획의 첫 단추부터가 이상하다.

저 인간이 살아있다니.

아라나크는 그곳에 서있는 남자를 보자마자 살기를 표출했다.

‘황제…!’

그가 살아있었다.

페인이 그를 죽이는데 실패한 걸까.

아니면 그의 곁에 있던 심복들이 너무 강하여 아직 황제를 죽이지 못한 걸까.

어쨌든 황제는 곧 죽을 것이고 자신의 역할은 페인과 합류하여, 제국의 심장부를 초토화하는 것인데.

‘……불나방?’

순간, 불나방의 사체가 밟혔다.

여기저기에 불나방의 사체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공기가 맑다. 분명 가루를 뿌려서 수도의 모든 인간들을 무력화하겠다고 하였는데.

어느 한 부분에서 일이 틀어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페인은 궁지에 몰린 상태라는 것인가.

‘페인! 내가 당장 합류하마!’

그때 페인이 이쪽을 보았다.

그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의 명령이, 그의 절박감이 영혼을 타고 머릿속에 흘러들었다.

- 오지 마.

그 순간 아라나크는 영혼 깊은 곳에서 무언가 북받쳐 올랐다.

그것은 아라나크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러나 왠지 성녀였던 시절에 알고 있었던 것 같은, 한때 있었지만 어느샌가 잃어버린 것 같은 그리운 감각이자, 페인을 향한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솔직히 그냥 이대로 돌아가도 된다.

이미 홀로스트 수용소를 군락으로 만들어놨다.

그토록 실재세계에 군락을 펼치고자 했는데 이미 실현된 일이다. 페인이 없어도 언젠가 제국은 멸망시킬 수 있다. 실재세계에 거미 악귀 군단을 얼마든지 퍼뜨릴 자신이 있다.

솔직히 이젠 페인이 없어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후일을 도모할 수 있으니.

하지만 황제는 페인의 죽음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페인은 후일을 도모할 수 없게 되는 게 아닌가.

‘너는 종종 납득할 수 없는 명령을 한단 말이다.’

페인은 안 된다.

다른 인간들이라면 몰라도 페인은 안 된다. 페인은 다르다. 모두가 죽더라도 페인은 죽어선 안 된다. 어째서 이렇게 애타는지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쨌든 페인은 살아야만 하고 살려야만 한다. 그가 당하는 것은 싫다. 싫게 되었다.

페인까지 잃어버릴 수는 없다.

‘아가들아! 당장 황궁으로 가라! 침공이고 뭐고 페인에게 합류부터 해라!’

수도 곳곳의 검은 생명들이 황궁을 향해 파도처럼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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