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새로운 씨앗, 깊어진 뿌리 (1)
바람을 맞은 커다란 돛이 팽팽하게 범선을 끌고 있다.
그리고 지하라고 할까, 아래층이라고 할까. 사신단이 타는 범선이라 그런지 사람이 노를 젓는 게 아니라 어떤 바위처럼 생긴 주물이 노를 저을 힘을 공급하고 있었다. 범선에는 주물과 도르래로 연결된 복잡한 기계장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세인트 왕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기한 기계장치였다.
「이게 바다 냄새구나.」
지금은 범선의 난간을 두 손으로 쥔 채 서있다. 난간에 팔꿈치를 걸쳐 기대자니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서다.
바다라는 것은 내가 지금껏 보았던 그 어떤 평야보다도 넓었다. 물은 두려울 정도로 깊어 보이고 규칙적으로 넘실대는 파도가 범선을 칠 때마다 긴장하게 된다.
만약 실재세계에 심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틀림없이 저 수평선 너머의 어딘가 바다 한복판에 있을 것만 같다.
“동쪽 대륙에서는 영력을 기(氣)라고 한다. 그리고 주물의 일종인 부적, 치료나 무술의 일종인 침술, 인간의 몸에 있는 혈(穴)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지.”
“혈이 뭐야?”
“때로는 치명적인 급소이자 때로는 죽어가던 인간을 살리는 공략점. 혈에 대해서 통달하면 어떤 마법이나 주술을 개방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너와 내가 역병 교수들의 영혼에 영력을 불어넣어, 그들이 능력을 개방하는 일에 도움을 준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낙인의 돌을 찾기 위해 셰르카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거기도 마법을 마법이라고 부르나?”
“마법은 백주술(白呪術), 주술은 흑주술(黑魔法)이라고 한다.”
“복잡하네.”
외국이라 그런가. 낯선 단어들이다.
“마법이라는 단어 자체를 좋게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흑과 백으로 구분한 것이지.”
“그럼 흑마법은?”
“그곳에서도 흑마법은 흑마법이다. 동쪽 인간들 기준으로는 흑마법이 흑주술보다 더 안 좋은 뜻이다.”
“왜?”
“나도 모른다.”
수평선을 보고 있던 셰르카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좋은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까.
“아주 오래전에 내 어머니의 품에서 동화처럼 흘려들은 외국의 이야기다.”
“많은 지식을 갖고 계셨나 보네.”
“배울 점이 많은 인간이었지. 내 동생 이리가 잡아먹기 전까지는 인생이 참으로 편안했다.”
“이리가 원망스럽진 않아?”
이리는 셰르카의 모친을 잡아먹은 것으로도 모자라 그녀의 눈알까지도 파먹었다.
“어머니의 뱃가죽을 찢고 나온 촉수를 보았을 때는 분노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힘이 흥미로웠지. 직접 피부로 와닿는 완력과 공포는 내게 그것이 진정한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진짜 미친년이야. 진짜로.」
“나의 어머니에게 배우는 것보다 이리와 함께 싸우며 하나씩 습득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광인의 숲에 있는 도적이나 광신자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게 계속 흑마법을 연구하다가 심연을 본 거네.”
“무작정 먹기만 했던 이리는 악을 게워내는 방법을 몰랐다. 나와 이리의 영혼에 악이 계속 쌓였지. 너처럼 숫자를 보는 능력은 없어서 그게 얼마나 컸는지는 모른다. ……그러다 며칠간 같은 악몽에 시달렸는데, 그건 네가 벨드샤를 통해 보았던 그 붉은 세계와 비슷한 것이었다.”
운명의 장소.
악마에게 끌려가든 죽어서 떨어지든 결국엔 우리가 도달하게 될 세계.
셰르카의 달관한 옆얼굴은 이 순간에도 지옥이라는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너와 나는 지옥을 이겨낼 것이다. 악마도 두렵지 않게 될 것이다.”
그녀가 나와 함께 하려는 이유는 결국 힘을 합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페인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페인이 가지고 있는 힘과 능력을 원하는 것이다.
내 힘과 능력을 지키고, 키우고, 자기 곁에 두어서 운명의 순간이 오면 자기 힘에 보태려는 것이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아.”
“알면 알수록 불쾌한 년이지 않느냐?”
불쾌한 것 같기도 하고.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중요한 부분이 결여된 자. 사정을 이해하니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악을 게워내는 이리 덕분에 악령화를 면한다는 게 부럽기만 해.”
나는 딴소리를 하고 가만히 수평선이나 구경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디아나’의 항구.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범선이 제국에서 가장 좋은 배인데, 이걸 타고 가도 해류나 해풍에 따라 15일에서 18일이 걸린다고 한다.
「해류가 뭐야? 해풍은 또 뭐고?」
‘해류는 바다의 흐름, 해풍은 바다 위에서 부는 바람.’
어느덧 수평선 아래로 해가 떨어졌다. 대낮보다 더 검게 보이는 바다는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듯했다.
그래서 더는 갑판에 서있고 싶지 않았다.
「잿빛세계에 갔다 올 수는 없나?」
‘돌아왔는데 그 자리에 범선은 없고 바다만 있겠지.’
「아, 그러네. 여기로 돌아오면 그냥 바다 위에 떨어지겠구나.」
나와 셰르카는 사신과 함께 별도로 꾸며진 방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사신은 처음에 내 맨얼굴과 붉은 눈을 보고 오만가지 질문을 다 던지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끝까지 내 얼굴이나 눈에 대한 질문은 일절 꺼내지 않았다.
“동쪽 대륙의 국가들은 왕국이라는 말 자체를 붙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이 있지만 디아나 왕국이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예외 없이 ‘디아나’라고 하죠.”
“디아나는 어떤 나라입니까?”
“옛 비첸크로이 제국이 바닷길을 막고서 저희와 교류가 끊기긴 했지만…. 다른 사신들이 말하기를 굉장히 신묘한 대국이라고 하였습니다.”
“대국…. 대국이라면 제국보다 큽니까?”
“당시에는 세인트 왕국의 세 배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쪽 대륙의 국가들은 여러 가문이 뭉쳐서 나라를 이루는데, 가문들이 틈만 나면 분열하여 싸우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죠. 마치 나라 전체가 불안정한 영지와 영주를 보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디아나가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가봐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사신아.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있기에 다들 디아나가 신묘하다고 하는 것이냐?”
그녀는 우토처럼 흑마법에 남다른 자신이 있어서, 이름을 통해 가해지는 주술이나 흑마법 따위는 경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강령술사의 조력자이자 우토보다 강한 흑마법사, 셰르카라는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갑옷도 다르고 무기도 다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백성들의 생활양상, 주술, 마법, 지도층의 정책, 믿고 따르는 천계의 신까지도 다릅니다. 악마나 지옥에 대해서도 저희와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죠.”
“말 나온 김에 묻고 싶구나. 데이진타우 제국은 어떤 신을 섬기느냐?”
“저희 제국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너희 데이진타우 제국의 신이 궁금하다.”
“원래는 나라에서 정한 것이 없고 세인트교를 믿는 자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포드키엘’이라는 천계의 존재들을 존중하였죠. 하지만 제국에 당한 뒤에는 오로지 엑수스만을 섬기라고 강요당했습니다.”
“포드키엘과 관련된 성서나 상징물 같은 것도 다 없어졌겠군요.”
“황제는 상위 천사인 엑수스가 있는데 하위 천사인 포드키엘을 믿는 것이 예법에 어긋난다고 하였죠. 그래서 요즘엔 세인트교를 토대로 라만과 포드키엘을 섬기는 방향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성서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셰르카는 이런 영역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다.
“라만과 포드키엘이 무엇이냐?”
“라만은 천계의 무기를 만드는 대천사. 포드키엘은 남자 발키리 같은 거야.”
“대천사는 뭐고 상위 천사는 또 무엇이냐?”
“상위 천사는 엄격하게 분류하는 느낌. 대천사는 상위 천사를 조금 더 높여서 부르는 느낌.”
“복잡하구나.”
평생에 한번 볼까 싶은 대천사들을 전부 외우고 있어도 딱히 유용하진 않다. 천계에는 평범한 천사들을 비롯해 수많은 대천사들이 있다는데 그런 신화적인 존재들을 언제 다 외우고 있는가.
천계를 창조했다는 세인트 여신, 아그니샤에게 권능을 준 네이트, 종종 강림하는 발키리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엑수스도 추가해서.」
‘걔는 기억하기도 싫다.’
* * *
독수리 역병 교수는 모든 일을 순조롭게 처리하였다.
그는 2990루아를 들고 케베크 주조소로 갔다. 그러면 홀른이 나와서 성심성의껏 동전을 녹여주었다.
동전의 불순물을 걸러내 만든 주괴를 들고 암흑가 교역소를 찾아가면 기다리던 담당자가 나와서 미리 준비한 돈과 주괴를 바꿔주었다. 그리고 암흑가 교역소의 머리라는 사람도 나와서 페인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독수리 역병 교수는 안부를 전해달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달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것보다는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었다.
‘이 거리의 사람들은 강령술사님의 본명을 알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강령술사의 본명을 알게 된 우토,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세 명의 역병 교수가 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일찍이 강령술사의 본명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알아서 입단속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그 강력한 강령술사라면 본명이 노출되는 것쯤은 크게 문제가 될 일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래도 독수리 역병 교수는 왠지 질투가 났다.
그래서 지금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베르자인의 집무실에서, 강령술사와 친분이 깊다는 베르자인에게.
“이름이 밝혀진 건 나를 도와주느라 그랬지. 말하자면 길어.”
“강령술사님께서 대가도 없이 베르자인 님을 도우셨습니까?”
“처음엔 서로 거래하고 약속하면서 항상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고받았어. 그러다가 더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거야.”
베르자인은 독수리 역병 교수가 가져온 주괴를 하나씩 손에 들어보며 무게를 어림잡았다. 책상 위에 무게를 다는 천칭이 있는데 그런 건 쓸 필요도 없다는 모양이다.
“나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이 정말 많이 행복한데 걔는….”
그녀는 능숙하게 깃펜을 잡아 주괴의 가치를 계산해냈다.
“걔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늘 마음이 쓰이지.”
“저도 베르자인 님의 신뢰를 얻고 싶습니다.”
“갑자기 왜?”
“그러고 싶습니다.”
베르자인은 깃펜을 내려놓았다.
종이 위에 아직 마르지 않은 물감이 2650루아를 가리키고 있다.
“마침 잘 됐네. 네 생각이 그렇다면 바로 본론을 꺼내도 되겠어.”
“본론이 따로 있었습니까?”
“데이진타우로 돌아가기 전에 의뢰나 하나 받아볼래?”
“누구의 의뢰입니까?”
“보통은 여기서 어떤 의뢰냐고 묻는데, 누구인지부터 묻네.”
“강령술사님께 배웠습니다. 어떤 일인지 따지는 것보다 누구의 일인지를 먼저 따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거, 내가 페인한테 해준 말이야.”
“놀랍습니다.”
높낮이 없는 변조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니까 이질감이 있다. 독수리를 닮은 방독면이 그의 표정을 숨기고 있지만, 어차피 방금 목소리처럼 무표정에 가까운 반응일 것이라고 베르자인은 생각했다.
“거르고 걸러서 모은 정예 중에 또 걸러져서 살아남은 최정예. 세상에 셋밖에 없는 역병 교수 중에 하나라고 했지?”
“장담합니다.”
“너희 셋 중에 누가 머리야?”
“독수리가 머리가 될 것입니다.”
“네가 독수리잖아.”
“제가 독수리 역할입니다. 매랑 올빼미는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냥 ‘제가 머리가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빙빙 도는 걸까. 세뇌를 당하면서 어딘가에 문제가 생긴 걸까. 하지만 역병 교수들은 역병 의사들과 달리 우토의 세뇌로부터 자유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세뇌를 당하기 전부터 문제가 있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멀쩡한 정신으로 어두운 힘을 추구하는 사람은 웬만해선 없겠지.’
베르자인은 속으로 알아서 납득하며 본론을 꺼냈다.
“오래되어 쇠퇴한 가문이 있어. 전 승천자가 포섭하기도 했던 가문인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왕은 그 가문을 의심하게 되었지. 내고 있는 세금에 비하여 너무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이야.”
“전 승천자는 타락한 승천자가 아니었습니까? 녀석은 교단의 재산과 주물을 탐욕적으로 많은 곳에 빼돌렸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그래서 그 가문이 너무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거지. 적당히 받아 처먹었으면 다른 가문들처럼 조용히 티 안 내고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왕은 교단에 말해서 그 가문의 재산을 슬쩍 조사하게 만들었어. 재산이 많다는 게 죄는 아니니까 슬쩍, 눈치껏, 교단이 알아서 사람을 쓰든 직접 알아내든 하라는 거지. 당시에 그 역할을 맡은 게 승천자였고.”
하지만 당시에 승천자는 그 가문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던 참이라 왕의 뜻이 내키지 않았으리라.
- 지금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이 건방지게 변한 참이니 말이지. 이참에 그 땅의 늙은 가문을 교체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전하께서 내게 넌지시 말씀하셨네.
만약 그때 승천자를 따라서 페인을 배신했다면, 하나의 가문이 몰락하고 하나의 가문이 부활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부활한 발렌잔타르 가문은 어차피 기존에 있던 가문의 대체재가 되어 승천자에게 이용당할 게 뻔했다. …합리적인 것만 따지자면.
“타락한 승천자가 죽고 그 가문은 왕의 눈엣가시 같은 것이 되었어. 분명 적법하지 않은 수단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 같은데, 그걸 쓰지도 않고 꽁꽁 숨겨놓으니까 어떻게 손을 댈 명분이 없는 거야.”
“그런 정보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세인트 왕국의 왕이 직접 베르자인 님께 의뢰한 것입니까?”
“내가 왕궁 사람이랑도 줄이 닿아서. 일단 끝까지 들어봐.”
그래서 그녀는 문제의 가문을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말인가.
“전쟁 때 나라를 돕지 않고 사병들을 숨겨놨다는 첩보가 있어. 그래서 내가 이 첩보를 왕궁에 흘렸더니, 놈들 가문을 치워주기만 한다면 내가 원하는 일을 벌이더라도 눈감아주겠다고 하더라고.”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나는 그 가문을 밀어내고 발렌잔타르 가문을 부활시킬 거야.”
원래 발렌잔타르 가문의 땅이었다.
- 계집으로 태어난 탓에 후손을 만들 수 없으니. 그대의 죽은 부친은 제 딸을 원망하며 버렸지. 그리고 그대가 길거리에 버려졌을 때, 그대를 낳고 불임이 되어버린 모친은 병들어 죽고 말았어. 죽기 직전까지도 길거리에 있을 자기 딸을 애타게 찾으며 말이야.
하나의 세대에 적용되었던 그 저주는 가문 전체를 분열시키고 몰락시켰다. 그리고 한 세대의 끝에 가장 늙은 부부 사이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태어난 여자아이가 바로 자신이었다.
그야말로 자신의 탄생 자체가 가문에서는 저주의 말뚝이 되었으리라.
타락한 승천자가 자신의 꼭두각시 같은 가문을 만들고자 하지만 않았더라면, 그 땅에는 지금도 발렌잔타르 가문이 있었을 것이다. 땅에 내린 저주도 가문의 몰락도 집안의 비극도 없이 말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길거리에 앉은 날, 흙내 나는 빗물을 손바닥에 받아마시며 다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되찾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오늘날까지 달려온 것이다.
“무력을 쓴다면 금방입니다. 무력을 써도 왕궁이 눈감아준다면 아주 쉬운 일입니다.”
“왕궁은 알아서 봐주겠지만 나랑 연결된 가문의 인사들은 반발할 수도 있어. 그래서 무력을 쓰려면 가문의 인사들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해.”
“어떤 명분이 있습니까?”
“그건 지금부터 만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