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새로운 씨앗, 깊어진 뿌리 (5)
즉, 놈들의 행동과 생김새를 하나씩 종합하면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구울.”
“아….”
“지령을 받은 구울 무리가 이 나라를 노리고 있는 것이오.”
매 역병 교수는 그 말을 끝으로 병사들의 눈에서 사라졌다.
‘가속.’
사실은 사라진 게 아니라 병사들의 눈이 그를 놓친 것이었다.
파스슥!
그가 벗어난 자리에서 바람에 밀려 일어난 풀잎이 바닥에 내려앉기도 전이었다.
“캬아아아아…”
매는 구울 무리 사이를 종횡무진했다. 그의 가속된 몸놀림에 맞추어 흐르는 시간은 구울들이 느리게 보이는 착각마저 일으켰다.
키잉!
그의 넓적하게 휘어진 칼날에서 주술적 의미가 있는 글자들이 붉게 빛났다.
쓰억…! 쓰억…! 쓰억…!
두 자루의 칼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다섯 뼘은 길게 활용되었다. 새까만 연기처럼 보이는 검기가 칼날을 휘감아서 필요한 순간마다 칼날을 연장시킨 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가가가가가아…”
구울 무리는 느려진 울음을 토해내며 팔을 휘적거렸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가속된 그를 붙잡기엔 너무도 느린 움직임이었고, 놈들의 붉게 충혈된 눈이 그를 따라갈 때마다 이미 그는 지나간 뒤였다.
쓰억…!
팔다리나 머리 따위가 깔끔한 절단면을 보이며 잘려나갔다. 혈액이 튀어서 지면을 적시기도 전에 구울 대여섯 마리가 거의 동시에 쓰러지다시피 하였다.
병사들의 시선은 그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하였기에 쓰러지는 구울 무리만 바라볼 뿐이었다.
“저것이 매 역병 교수…. 역병 의사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강령술사의 심복이 되려면 얼마나 강해야 하는 겁니까?”
“너무 빨라서 전이하는 것처럼 보이잖아!”
아무도 그의 패배를 의심하지 않았다. 전투는 머지않아 그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가 싶었다.
“캬아아가가각!”
구울 사이를 빠르게 누비던 매는 한순간 멈춰 섰다.
구울들이 빼곡하게 모여 붙어서 한 사람이 지나갈 틈새도 없이 몸으로 벽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옆이나 뒤를 확인하며 빠져나갈 틈새를 찾으려고 했다.
‘갇혔다…!’
지금까지처럼 두 다리로 뛰는 것으론 빠져나갈 틈새가 없다. 구울들이 훈련된 병사들의 밀집 진형처럼 모여든 것이다. 이래선 둥근 울타리에 갇힌 꼴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속에 투입하고 있던 영력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방혈!’
“쿠웨에엑!!”
앞을 빼곡하게 가로막은 구울들이 피를 토해냈다. 하지만 실책이었다. 마음이 너무 급해서 두 수 뒤를 보지 못했다.
“크읏…!”
구울의 피를 정면으로 받아내고 만 것이다. 1초보다도 짧은 한순간의 움직임이 중요한 상황에 시야가 차단되는 건 위험했다. 그리고 방금 방혈당한 놈들이 즉사했다고 쳐도, 놈들을 몸으로 뚫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놈들이 뒤틀린 육체로 만들어낸 건 그렇게 얇은 포위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면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다. 그는 렌즈에 묻은 피를 재빠르게 닦아내면서 하늘을 확인했다.
‘제길…’
느리게 흐르는 시간 감각 속, 구울들은 그의 머리 위에도 있었다.
서로의 몸으로 그를 에워싼 다음에 하늘로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몇 마리가 몇 초 전에 도약한 것이다.
“캬아아…”
“그가가가각…”
“키에에에엑…”
허무하게 죽어나가는가 싶었던 놈들이, 사실은 이 순간을 노리기 위해 저마다 몸을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는 제자리에 멈췄기 때문에 더는 압도적인 속력의 우위를 점할 수가 없다. 곧이어 사람의 몸을 완력으로 뜯어버리는 긴 손가락들이 앞뒤 좌우, 위에서까지 그를 노려 달려들었다.
쓰억! 쓰억!
그는 제자리에서 칼질을 했다. 구울들이 자신의 몸을 붙잡지 못하도록 손가락과 손목을 초 단위로 베어냈다. 하지만 위에서 달려드는 놈들은 팔을 베어내도 몸이 떨어져 충돌하기 마련이었다.
퍼억!
그는 구울들에게 덮쳐져 쓰러지고 말았다. 한번 쓰려졌으면 나머지 구울들이 달려드는 건 시간문제였다.
‘멍청하게 이딴 실수로 죽다니……!’
시야 안에 구울들만 보인다. 충혈된 눈, 붉은 동공, 늘어진 타액, 벗겨진 살가죽, 포악한 손아귀들.
곧 산 채로 해체당할 것이다.
“징그러운 구울 놈들!”
“으아아아아!”
그때 병사들이 뛰어들었다. 모든 구울이 매 역병 교수 한 명을 노리는 순간에 병사들이 뛰어와 구울의 등을 베어냈다.
뚜드득!
“크아아악…!”
매는 집요한 구울 한 마리에게 잡혀서 발목이 비틀리고 말았다. 이렇게 쓰러져서 저항하던 와중에도 구울 한 마리가 발목을 노리는 게 심상치 않다.
“역병 교수님!”
촤악! 촤악!
다행히도 병사들이 그를 끄집어냈다. 덕분에 부상은 발목 하나로 그쳤다. 이젠 병사들의 방패와 몸이 그의 앞에 어지러이 늘어서서 구울 무리를 상대하는 중이다.
“괜찮습니까?!”
“발목을 다쳤소!”
“우선은 일어나십시오!”
병사들이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잠깐!”
그는 일어나기 전에 병사와 구울의 다리 틈새로 시선을 집중했다. 워낙 빼곡하게 모여서 난전을 벌이고 있는 터라 이렇게 밑으로 봐야만 확인할 수 있는 게 있었다.
‘…저거다!’
좀 전에 방혈을 맞춘 놈들이 쓰러져있었다.
“나를 지키시오!”
그는 병사들의 어깨에 의지하여 일어섰다. 이 와중에도 그를 노려서 달려드는 구울을 병사들이 막아섰다.
‘방혈!’
“쿠웨에에엑!”
“으앗…! 이게 뭐야! 안 보여!”
“뒤로 나오시오!”
구울을 한 마리씩 방혈시켜 죽인다. 강령술사처럼 상대 집단을 순식간에 방혈시킬 정도의 위력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기동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놈들을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수단을 찾아내기라도 한 게 다행이었다. 몇 없는 병사들이 용맹하게 나서주어서 다행이었다.
“쿠웨에에에에!”
“퀘에에엑…!”
구역감이 치밀 정도로 방대한 혈액이 풀밭에 쏟아졌다.
“살려줘! 살려줘어어!!”
전투는 급박한데 한 마리씩 죽이고 있다. 그래서 운이 없는 병사는 구울들에게 잡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기도 했다.
놈들의 긴 손가락이 갑옷을 뜯어내고 의복을 뚫어 살갗까지 파고들었다. 그대로 살점과 함께 내장을 뜯어내거나 갈비뼈를 쥐어 바깥쪽으로 부러뜨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팔다리가 뜯겨나가고 머리까지 뽑혀서야 죽을 수 있는, 잔혹하기 그지없는 죽음이었다.
‘더 빨리, 더 빠르게….’
매는 방독면 안에서 눈에 핏대가 서도록 방혈에 집중했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구울을 죽여야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것이다.
“헉, 헉, 후우우….”
끝내 병사 다섯 명의 목숨을 대가로 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는 것이다.
“이건 지도자에게 알려야 하는 일이오. 다른 악령도 아니고 구울이잖소.”
* * *
병사는 보고했다.
“…때문에 구울 무리의 움직임은 북서쪽 외부에서 지령을 내리는 존재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사료됩니다. 각하.”
바르드베쿠스의 지도자는 나이 지긋한 백작이었다. 그보다 서열이 높은 자들은 모두 황제에게 당했거나 흑사병에 걸려 절명했다고 한다.
“악령이라는 게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니 믿기가 어렵군요. 경의 보고가 사실인가요?”
매는 역병 교수로서 당당하게 백작을 상대했다.
“사실이오. 놈들은 촌락 사람들을 살해하고 도시까지 노려서 무리를 지어 달려왔소. 그렇게 목표를 가지고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구울들은 반드시 배후에 조종자를 두는 법이오.”
“각하. 자국의 국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약화된 실정입니다. 각 영지의 사병들이 예외 없이 집결하여도 총합 500이 넘지 않을 겁니다.”
“징병을 한다면…?”
“흑사병의 피해가 막심하여 징병은 백성들의 반발이 심할 것입니다. 게다가 이 상황에 병사를 늘리고자 징병을 강행한다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나라의 기반마저 무너질 염려가 있습니다.”
백작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그때 매가 물었다.
“혹시 북서쪽에 마녀나, 흑마법사나, 광신자 무리라도 있소?”
백작은 발성을 위해 호흡을 정돈하였다.
“아주 험준한 능선이 있죠. 탈주를 시도했다가 그곳에서 길을 잃어 악령이 된 자들도 있을 테고….”
“광인의 숲이랑 비슷하단 말씀이오?”
“그 숲처럼 뭐가 많지는 않아요. 들어가서 이상한 게 나타나는 숲은 아니죠. 겉보기에도 멀쩡한 숲이고요.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군요.”
백작은 괜스레 머리를 긁적였다. 입술을 몇 번인가 떼었다가 닫으면서 뭔가 말하기를 망설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이 자리에서 말하지 않고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어렵게 받아들인 듯했다.
“무엇이 걸리기에 그리 뜸을 들이시오?”
“이 나라의 북서쪽 외부는 용(龍)이 쓰러진 땅이에요.”
신화 속, 혹은 역사 속에서나 존재했던 전설의 괴수.
인간을 능가하는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늘 과묵하여 천사의 편인지 악마의 편인지도 알 수 없는 괴수.
“아주 오래전, 온 세상이 혼란했던 태고의 시대에 저 북서쪽 땅에서 용이 날뛰었어요.”
뱀 같은 비늘은 어떤 무기로도 뚫리지 않으며, 하늘을 뒤덮는 날개로 비행하면 날씨가 바뀐다. 깊은 목구멍에서 뿜어내는 화염은 지옥불처럼 뜨거워서 연못과 강을 순식간에 말려버리고 일개 국가쯤은 멸망시킬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 용이 그 시대에 날뛰면서 수많은 인간들을 학살하였지만,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용을 무찔러 인간들을 구원해냈다는 이야기.
매가 알고 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이 대륙에서 살아가는 자들 대다수가 딱 거기까지만 알고 있으리라.
“천사들은 대지에 만연한 악마들을 상대하는 것만 해도 바빴어요. 그래도 북서쪽의 용은 누군가 맡아서 해치워야만 했죠.”
“…엑수스?”
“네. 천계의 정복자 엑수스였어요.”
지금은 몰락해서 없어진 비첸크로이 제국의 황제가 엑수스의 화신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제국령의 모두가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바르드베쿠스에 있는 자들은 내심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차라리 황제가 엑수스에게 축복을 받았다면 모르겠는데 대놓고 자신이 엑수스 그 자체, 엑수스의 화신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것은 바르드베쿠스가 반란에 가담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황제가 엑수스의 이름에 먹칠을 한 것이다.
“그분은 단신으로 용을 상대하셨다고 전해지죠. 태양처럼 거대한 황금 철퇴를 하늘에서 떨어뜨려 열 합도 안 되는 짧은 싸움 끝에 용을 때려죽였다는…. 그런 실화가 다양한 형태로 퍼진 게 오늘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용에 대한 이야기예요.”
“어쨌든 ‘진짜 엑수스’가 그렇게 용을 해치웠으면 다 끝난 게 아니오?”
“용은 쓰러지면서 인간을 저주했어요. 더는 나무를 벌목하지 말라고, 더는 ‘자신의 영역’으로 넘어오지 말라고 하면서 숲으로 경계선을 그었죠. 그 경계선이 바로 북서쪽에 있는 외부. 끝이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광활한 숲과 산맥이에요.”
“만약 사람이 경계선을 넘으면 어떻게 되오?”
“사라져요. 북서쪽 외부로 간 사람은 누구도 예외 없이 실종되어서 소식이 끊겼어요. 몇 명을 보내든, 얼마나 강한 능력자를 보내든 결과는 같았죠.”
그래서 북서쪽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까 되물어본 겁니다. 그…. 구울이라는 악령들이 정말 북서쪽에서 여기까지 내려온 게 확실한지를요.”
그러자 병사가 대답했다.
“영토에서 발생한 구울은 아닙니다. 놈들은 굉장히 오래되어 다 헐어버린 의복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녀석들이 남긴 발자국도 농지를 북서쪽으로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이쯤 되니 백작의 눈은 갈 곳을 잃어 애처롭게 방황하게 된다. 창밖의 도시를 보며 걱정하다가, 병사를 보며 미안해하다가, 매 역병 교수의 시선을 애써 피하고 천장을 보며 원망했다.
그가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게 무엇인지는 매 역병 교수도 알고 있다.
‘백작이라도 한 국가의 지도자라는 자가…. 그런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있을까.’
나라가 직면한 적당한 위협이라면 거래라는 형태로 도움을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르드베쿠스라는 나라는 지금 마땅히 거래를 할 돈도 능력도 없는 형편이다.
게다가 용이 죽은 땅에서 구울 무리가 출몰하였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그 땅에 들어간 자들은 예외 없이 소식이 끊겼다. 그래서 그곳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이는 매 역병 교수가 그곳에 가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규모의 문제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마 바르드베쿠스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지도자였다면 위신을 굽혀서라도 도움을 요청했을 법하다.
‘소심한 성격이군.’
지금까지 백작을 지켜본 결과, 그는 굉장히 위축된 상태인 것 같다. 그가 이렇게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배경과 역사가 이 나라에 깊은 흉터로 새겨져있었다. 여러모로 지도자로서의 경험도 부족할 것 같고.
‘…내 욕심은 강령술사님께 보여드릴 공적 하나로 충분하다.’
결국 매는 먼저 말을 꺼내기로 하였다. 막대한 대가나 혜택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공적이며,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선심이었다.
“아무래도 구울 무리에 지령을 내린 배후를 찾아 시급히 처단해야겠소.”
“하지만 군사가 부족해요.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도 확실치 않고….”
“그거야 지금부터 알아보면 되지 않겠소?”
북서쪽 외부 영역에 무엇이 있는지, 구울 무리를 움직인 존재는 누구인지.
“그럼…. 최대한의 군사를 지원해드리죠.”
“됐소. 악령과 흑사병으로부터 백성을 지킬 병사들은 남겨두시오. 그마저도 충분치 않은 군사일 것인데.”
“그러시다면 어떻게 도움을 드려야 할지 입장이 난처합니다만.”
“이 나라의 사정이라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였으니 당장 대가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오.”
“아니면 국고를 열어서라도 보수를 드리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나중에 갚을 빚을 졌다고 생각하시오. 그러는 편이 서로에게 이롭소.”
그냥 호의나 정의감에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훗날의 불투명한 대가를 약속으로 움직여주겠다는 뜻이다.
덕분에 백작은 마음의 무게를 덜 수 있었다.
“나중에라도 괜찮으니까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시죠….”
“그럴 생각이오.”
이야기는 끝났다.
매는 점잖은 걸음걸이로 왕궁을 빠져나가려 했다.
“고맙습니다.”
“….”
“내 나라와 내 체면까지 살려줘서.”
그때 매는 자기 자신을 설득했다.
‘큰 문제를 해결하면 큰 활약이 된다.’
호의도 아니고 정의감도 아니다. 도덕심도 아니다. 호기심도 아니다. 마음을 굳게, 차갑게 먹고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아마 강령술사도 그런 것들을 차갑게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 강해졌을 테니.
‘역병 교수의 머리….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독수리는 강하고 용맹하지만 지략이 부족하다. 그는 틀림없이 강령술사를 답답하게 만들 것이다. 머리가 나쁜 심복은 강령술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올빼미는 반대로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것 같다. 그녀는 강령술사보다 셰르카와 함께 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스승. 우토는 다방면에서 능력이 뛰어나지만 너무나도 겁쟁이다. 충성하는 심복은 좋지만 광신하는 심복은 나중에 뜻하지 않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머리가 되어 강해질 테다.’
* * *
바르드베쿠스의 북서쪽은 높고 험준한 산맥의 향연이었다.
타앗! 타다닷!
이곳에 진입한 매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도약하며 매우 빠르게 이동하는 중이다. 그 속도는 거미 악귀가 뛰는 것보다 월등했다.
그는 뛰는 와중에 작은 지도를 펼쳐보았다. 그것은 바르드베쿠스의 백작으로부터 받은 지도였다.
‘용의 무덤은 산을 다섯 개나 넘어야 한다.’
하루에 산을 하나씩 넘는다고 계산하면 왕복으로 열흘이다. 그러나 속도가 특기인 그에겐 이틀로 충분했다.
목적지까지 도달하는데 아무런 방해가 없다면 말이다.
‘동물…. 저것도 동물이고…. 사람의 발자취는 없는 건가.’
그는 빠르게 이동하면서도 자기 밑에 스치는 환경들을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짐승의 발자국부터 나뭇잎 아래를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까지도 전부 포착하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의 꼭대기까지 오는데 반나절도 채 안 걸렸다. 오는 길에 보인 것은 이런 산중에 충분히 있을법한 짐승과 곤충들이 전부였다.
그는 산 정상에서 가장 높은 나무 위에 올라섰다.
도저히 그의 체중을 지탱할 수 없을 것 같은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두 다리로 서서 경이로운 균형감각을 유지하였다.
이어서 주변 지형이 지도와 다른 점이 없는가 하나씩 살펴보았다.
‘산맥이 조금 바뀌었군.’
그래도 대강 비슷하다. 용이 출몰하기도 전에 만들어진 지도라서 이 정도 오차는 있을 수 있다.
‘망원.’
이번엔 시야를 확대하여 산속에 있는 미세한 움직임들을 샅샅이 관찰한다. 그래도 여전히 움직이는 것들은 짐승이나 곤충들뿐이었다.
‘용이 죽은 땅이라고 하여 누구든 들어가면 절대 돌아오지 못한 채 소식이 끊어졌다고 했다.’
산 하나를 넘는 것으론 부족한 걸까. 더욱 깊게 진입해야 뭐라도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다.
후우우웅…
그러고 있으니 바람이 불어왔다.
‘…역풍이다.’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다. 그런데 구름의 움직임을 보면 바람의 방향에 위화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있는 숲부터 저 멀리 펼쳐진 산까지 훑어보았다.
‘역시나 바람의 방향이 이상하다.’
이 땅에 펼쳐진 나무들은 북쪽으로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오로지 자신에게만 남동풍.
즉, 불길한 역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마치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려는 자신을 막으려고 이 땅의 기운이 경고라도 하는 듯하다.
‘이 땅에는 세계가 모르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다.
뭔가 사악한 존재가 저편에 숨어있는 것 같다.
‘실체를 알아내야 한다.’
그는 더욱 깊숙한 미지의 산중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