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전조현상 (1)
바르드베쿠스의 북서쪽 외부.
‘이 땅에는 세계가 모르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실체를 알아내야 한다.’
매 역병 교수는 더욱 깊숙한 미지의 산중으로 들어갔다.
…타앗!
그는 주로 나무 위를 도약하고 다녔다. 공기에 몸을 맡겨 활공하고 있으니 역풍이 점점 더 거세지는 느낌이었다.
후우웅!
거세지는 역풍 속에 더욱 강한 역풍이 한차례 섞여서 그를 밀어내려고 했다.
‘나무를 방패로 삼는 편이 안전하겠군.’
매 역병 교수는 활강을 포기하고 숲속에 착지했다. 여기까지 왔던 방식 그대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도약하며 산 아래로 빠르게 이동했다.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떴을 때, 그는 두 번째 산의 정상까지 올라왔다.
후우우우우웅!
높은 곳에서 온몸으로 체감한다. 첫 번째 산에서 느꼈던 역풍이 몇 배는 더 거세졌다.
“….”
갑작스레 역풍이 멈췄다.
이 근방부터 저 멀리까지 바람이 멈춰버렸다.
이 땅에 흐르는 공기가 침묵하고 있다.
그는 나무 아래로 착지했다.
그리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숲속을 향해 물었다.
“누구냐.”
후우우…
상대는 대답 대신 바람을 보내왔다.
후우우웅!
‘돌풍(突風)…!’
쐐애애애애애앵!!!
위협적인 바람이 그를 거칠게 집어삼켰다. 주변의 수풀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나뭇잎이나 잡초가 뜯겨나가 그를 덮쳤다.
카앙…!
돌멩이가 방독면을 긁고 지나갔다. 맨살에 맞았으면 살갗이 뚫리고도 남을 위력이었다.
쿠와아아아아!
곧이어 뜯겨진 풀뿌리가 흙을 달고서 그를 정면으로 치려고 했다.
‘재결합!’
투두두둑!
매 역병 교수는 발밑에 숨겨진 바위를 뽑아내 벽을 만들었다. 동시에 그의 머리 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는 두 손에 칼을 뽑아들며 위에서 닥쳐오는 상대를 직면했다.
“겁도 없는 제물이 찾아왔네!”
상대는 까무잡잡한 얼굴에 흉터가 빼곡한 남자였다. 또한 들고 있는 무기는 짐승의 뼈를 갈아서 만든 듯한 ‘낫’이었다.
콰가가각…!
그는 매를 노려서 낫을 휘둘렀지만 그 자리엔 아무도 없게 되었다. 매가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뭣?!”
“뒤다.”
매는 그의 인지력을 뛰어넘는 속도로 움직여서 배후를 노렸다. 상대가 뒤를 돌아본다면 목에 있는 중요한 혈관을 베어버릴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이대로 목뼈를 끊어낼 것이다.
그때 낫을 든 상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매는 넓적한 칼을 교차시켜 그의 목덜미를 그어버렸다.
쓰어어억…!
하지만 얕았다. 칼이 살갗에 닿자마자 돌풍이 몰아쳐 두 사람을 밀쳐낸 것이다.
파슥!
두 사람은 대략 열 걸음의 간격을 두고 착지하였다.
“네놈은 누군데 날 제물이라고 하며 기습하는 것이냐.”
“여기까지 들어왔으면 뭐든 당할 각오가 된 거 아니야?”
“싸우기 전에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정보에 관심이 없는 성향인가?”
“그럼 그쪽부터.”
“나는 국적이 없는 역병 교수. 강령술사님을 섬기는 ‘매’다.”
“본명은 숨기는 거야?”
“네놈 차례다.”
“야샤둡. 그게 내 두 번째 이름이지.”
야샤둡.
매는 그의 이름을 곱씹었다.
“해괴망측해서 악마라도 떠오르는 이름이군.”
“그거 고맙네.”
매는 피가 묻은 칼 두 자루를 역수로 쥐었다.
“네놈은 이 땅에 들어온 자들을 악마의 제물로 바치고 있었나?”
“너도 제물이 될 거야.”
“네놈이 구울 무리를 보냈나?”
“나 말고 다른 분이 보내셨지.”
“그게 누군지 말해라.”
“내가 왜?”
“바른 대로 말하지 않으면 흉한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야샤둡은 낫을 들어 올렸다.
“글쎄…. 곱상하게 큰 문명인이라 뭘 모르나 본데.”
“…야만인이군.”
“그런데 강령술사가 누구야? 혹시 악마라도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인가?”
“그분께선 악마를 불러내는 게 아닌, 악마를 찾아가 숨통을 끊어놓을 분이시다.”
“안 되지.”
매는 야샤둡의 두 눈에서 더욱 짙어진 살의를 느꼈다.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될 것이다.”
타다닷!
매는 달려들었다. 야샤둡은 눈을 크게 뜨고 그의 칼이 목에 닿기 전에 일찍이 낫을 휘둘렀다. 매는 순간의 그 낫질이 견제나 위협용이 아닌가 짐작했지만 틀렸다.
또다시 돌풍이 몰아친 것이다. 사나운 돌풍은 전방의 일직선상으로 흙더미와 돌멩이 따위를 거칠게 날려버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매는 야샤둡의 시야에서 사라진 채였다.
“안 봐도 뻔하다고!”
야샤둡은 보지도 않고 대처했다. 그 자리에서 자세를 크게 숙이며 자기 몸을 회전축으로 삼아 낫을 360도로 휘두른 것이다. 그리고 낫을 휘두르는 과정에 매의 칼이 얻어걸렸다.
카아앙!!
그래도 매는 칼이 두 자루였다. 오른쪽 칼로 낫을 막은 채 왼쪽 칼을 야샤둡에게 내질렀다.
후웅!
그 순간, 야샤둡의 낫에서 돌풍이 일어나 매를 밀쳐냈다. 그리고 매가 밀쳐지는 도중에 야샤둡이 바람에 몸을 싣고 달려들었다.
“가속이 주특기냐?!”
카앙! 카앙!
그는 매의 발바닥이 땅에 닿기도 전에 몇 번이고 낫질을 하였다. 몸이 공중에 떠있는 탓에 회피할 수 없는 순간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매는 탁월한 반응속도와 동체시력으로 칼을 휘둘러 모든 낫질을 막아냈다.
“그러는 네놈은 바람술사로구나!”
“맞아! 상성이 최악이라서 안타깝네!”
야샤둡의 낫질은 매의 칼질보다 느렸다. 하지만 문제는 둘 사이의 합에 돌풍이 끼어든다는 것이었다. 매가 상단으로 칼을 휘두르면 돌풍이 그 반대 방향으로 몰아치거나 대놓고 다리를 밀어서 자세를 흐트러지게 하였다.
매는 야샤둡의 낫질에 대응하면서 주변에 있는 바람까지 이겨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 상대의 사각을 노린다고 한들, 바람술사는 공기의 움직임을 느끼기 때문에 사각이라는 게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야샤둡! 네놈은 홀몸이 아닐 테지! 기필코 네놈과 네놈의 무리를 멸할 것이다!”
“여기까지 들어왔으면 넌 이미 끝인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야!”
쉴 틈 없는 낫질과 칼질이 거의 대등하게 이어졌지만 순간적인 돌풍이 참견하여 매를 조금씩 수세에 몰아넣었다.
카앙! 카앙! 카카카카앙!
어느새 매는 낫을 받아내기에만 급급하고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호흡이 떨리네! 벌써 지쳤나?”
적게는 한 걸음. 많게는 세 걸음 간격에서 속도전이 이어졌다.
후웅!
그러다 돌풍이 몰아쳐 매의 배후를 때리던 순간이다.
“…!”
매는 왼손에 들고 있던 칼을 근거리에서 투척해버렸다. 야샤둡은 한번 불러들인 돌풍의 방향을 급격히 바꿔서 칼을 쳐냈다. 바로 그때 비어있던 매 역병 교수의 왼손이 야샤둡을 향했다.
닿지는 않았다. 멱살을 잡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주먹을 뻗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손아귀를 펼쳤을 뿐이다.
야샤둡은 그 돌발행동의 의미를 목구멍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것을 토해내며 깨달았다.
“쿠허억!”
“즉사하진 않는군.”
“개…! 새끼가…!”
라고 욕지기를 할 때는 매의 발등이 그의 관자놀이까지 닿은 채였다.
퍼억!!!
발차기에 머리를 맞은 야샤둡은 그대로 나가떨어져서 산을 몇 바퀴 굴러 내려갔다. 그렇게 머리를 맞고 정신없이 구른 다음에도 곧잘 일어섰다. 곧잘 일어선 순간에, 이미 매가 코앞까지 달려들고 있었다. 단 1초라도 늦으면 목이 떨어질 것 같은 죽음의 감각이 야샤둡의 척추를 타고 온몸에 퍼져나갔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발동했다.
‘용오름!’
끼이이이이이이익!!!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이 바람과 함께 몰아쳤다.
쩌적! 쩌저적!
바위가 날아든다. 나무가 바위에 맞아 쓰러진다. 쓰러진 나무가 또 날아든다. 폭력적인 바람이 야샤둡과 매를 중심으로 둥글게 회전했다. 가벼운 것들은 순식간에 하늘로 솟아올랐고 무거운 것들은 바람에 붙잡혀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렇게 회전하는 강풍 속에 폭풍의 눈처럼 바람이 불지 않는 좁은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야샤둡과 매가 두 다리로 서있다.
야샤둡의 목적은 상대를 가두고 찢어 죽이는 것이었다.
‘광풍(狂風)!’
바람에 섞인 작은 돌멩이조차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비행체가 되었다. 회전하는 바람의 벽이 두 사람을 가둔 채 안쪽으로 무언가를 계속 날려댔다.
매는 가죽 갑옷이 찢어지고 살갗을 베여 피를 흘렸다.
“미친 짓거리를 하고 있구나! 이런 광풍 속에서는 네놈도 무사하지…”
“널 막지 못하면 어차피 돌아가서 뒈지거든!!!”
광풍에 당하는 건 야샤둡도 같았다. 그도 매와 같은 장소에 갇혀서 살갗을 베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용오름에 닿으면 공중에서 갈기갈기 찢어질 테니까!”
“이런 광인 새끼!”
그래도 매는 야샤둡을 죽이려고 칼을 휘둘렀다.
촤악!
순간,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와 그의 팔뚝을 그어버렸다.
‘광풍이 움직임을 읽고 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빠르게 찢겨나갈 것이다!’
그렇게 깨닫고 행동을 멈추니까 정말로 같은 시간에 상처를 입는 횟수가 줄어드는 것이다.
“언제까지 버티나 해보자고! 날 죽여도 용오름과 광풍은 끝나지 않으니까!”
“이렇게 공멸해서 남는 게 무엇이냐! 네놈 정도의 바람술사가!”
“씨발! 생각해 보니까 네가 나보다 더 오래 버틸 것 같은데?!”
“알면 어떻게든 이 주술을 멈추란 말이다!”
매는 움직이지 않고도 야샤둡을 공격할 수 있다.
끊임없이 방혈을 거는 것이다. 야샤둡에게 어느 정도 주술에 대한 저항력이 있는 것 같지만, 계속해서 방혈하여 피해를 누적시키면 결국 이 용오름 속에서 먼저 쓰러지는 건 야샤둡이 될게 뻔했다.
“커헉…! 허어억…!”
야샤둡이 피를 토해내며 비틀거릴 때마다 광풍이 스쳐서 그의 살갗을 베어냈다. 하지만 그것이 매의 승리를 장담하진 못한다.
‘놈을 죽여도 용오름이 끝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방혈에 영력을 다 써버린다면 다른 탈출을 고려할 수단도 줄게 될 것이다.
“용오름을 멈춰라! 당장!”
“커어억!”
야샤둡이 피를 쏟을 때마다 그 피가 용오름을 타고 하늘로 솟구쳤다.
“그냥 너도, 여기서 죽으라고…!”
야샤둡의 두 눈이 풀려있었다.
‘이성의 끈을 놓쳤나….’
그의 목구멍에서 나온 피가 계속해서 하늘로 솟구친다.
“…하늘?”
매는 하늘을 보았다. 고개를 위로 든다는 행동 때문에 이곳저곳이 광풍에 긁혔지만 상관없었다.
‘…하늘!’
이 용오름 속에 매 역병 교수라서 가능한 단 하나의 탈출구가 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저곳을 탈출구로 삼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람의 벽이 포위하고 있는 비좁은 공간. 그 위쪽에 하늘이 보이며 용오름이 끝나는 지점이 있었다. 용오름의 높이가 무한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갖고 있는 영력을 최대한 태우면 가까스로 빠져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딜 보는 거야?!”
‘가속.’
매는 다리에 모든 힘을 실어서 수직으로 도약했다.
- 안 돼애애애애!!!
발밑에서 들려오는 절규를 더 알고 싶다. 야샤둡이라는 자가 왜 저렇게까지 목숨을 내던졌고 어째서 자신이 탈출한다는 이유로 저렇게까지 절규하고 있는지.
‘일단은 내 목숨부터 부지해야 뭐라도 된다.’
그는 오로지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솟아오르고 있다. 그 급격한 움직임 탓일까, 더 날카로운 광풍이 몰려와 그의 몸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쐐애액!
바람의 벽에 다리나 팔을 걸쳐서 발판으로 삼았다. 그렇게 몇 번씩 거듭 도약했다. 결코 얕지 않은 상처가 온몸에 새겨져서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지만 멈추지 않는다.
‘떨어지면 죽는다.’
그것이 살점을 내어주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 * *
“으으으…. 으으….”
야샤둡은 축축한 흙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하고 있다.
더 이상 이곳에 바람은 불지 않는다.
“으으….”
처벅! 처벅!
쓰러진 야샤둡에게 매가 절뚝이며 다가왔다.
풀썩!
그는 야샤둡 옆에 주저앉았다.
둘 다 상당한 피를 흘리고 있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은 몰골이다.
“사람이…. 어떻게 하늘을 나는 거야….”
“나는 날지 못한다.”
“그럼 뭔데….”
“안전하게 떨어지는 방법을 알고 있을 뿐이지.”
매는 야샤둡의 목에 칼을 댔다.
“네놈을 심문할 기력이 없어 이대로 죽일 생각이다. 내가 목을 긋지 않아도 출혈 탓에 어련히 죽겠지만.”
그리고 출혈이 심하여 가만히 있으면 죽는 건 매도 마찬가지였다.
“으으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하나쯤은 들어주마.”
“두고 봐라….”
야샤둡은 죽어가며 저주를 퍼부었다.
“우리 일족이… 우리의 수호신이 올바른 세계를 완성할 것이다….”
쓰억!
매는 야샤둡의 목을 썰었다.
악마를 닮은 이름. 야샤둡.
제물.
일족.
수호신이라는 언급.
‘아마도 용을 수호신으로 여기는, 제물을 바쳐온, 악의 세력을 추종하는, 새로운 세계를 원하는 야만족.’
진짜 상위 천사인 엑수스가 단 열 합으로 때려죽였다는 용.
다시 말해, 엑수스를 상대로 열 합이나 수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용이다.
‘만약 그런 용이 다시 부활한다면, 부활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무엇이란 말인가.’
용은 오래전에 죽었다. 엑수스가 확실하게 숨통을 끊지 않고 그냥 넘어갔을 리가 없다. 그런데 어떠한 계기로 용이 부활하는 기회를 잡게 된 것 같다. 그들의 수호신이 다른 게 아니라면.
‘그렇다면 역시 악마가….’
죽은 존재를 되살릴 수 있으며, 정말로 되살리려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결코 인간이나 천사가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