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전조현상 (3)
사실 내가 보고 있던 건 구멍이 아니라, 심해 속 괴물의 공허한 눈알이었다.
“그어어어!”
첨벙! 첨벙!
갑판에 올랐던 어인들이 갑작스레 바다로 도망쳤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지친 병사들은 멍한 얼굴이지만 눈에 초점은 거대한 괴물에게 홀린 듯 흔들리고 있었다.
셰르카는 거대한 존재를 목도하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이형의 존재들을 정의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실재세계의 악령이 저리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저것은 온 하늘을 뒤덮고 있는 먹구름과 천둥번개의 창조자인가.
아니면 다른 세계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인가.
「어인들이 카프하니드 쪽으로 몰려가고 있어.」
번개가 칠 때마다 바다가 번쩍이면 수면 아래 녀석의 본체가 보였다.
식물의 뭉툭한 뿌리. 그것도 잔뿌리가 아주 많은 형태라고 할까. 그 뿌리가 모두 촉수 같다고 표현한다면 얼추 맞을까. 하지만 저 몸통에 달린 심연 같은 눈알은 어찌 이렇게 보고 있어도 차마 보는 느낌을 형언할 수가 없다.
버거운 전율에, 거대한 형체에, 미지의 존재감에 문자 그대로 압도당한다.
이런 건 직접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이 깎여나간다.
“크라켄입니다.”
제국의 병사가 내게 설명했다.
“우리 제국의 어부들이 종종 설화처럼 이야기하는 겁니다. 너무 먼바다로 나가면 크라켄이 나타날 수 있다고….”
데이진타우 제국은 항구가 발달한 국가다.
“제국에서는 저런 걸 크라켄이라고 한단 말이냐? 그게 저 괴물의 악명인가?”
“북서쪽의 ‘용’과 비슷한 겁니다. 실제로 있었던 괴물의 이야기를 신화처럼…. 바, 방금처럼 촉수가 달린 녀석도 있고 고래나 해파리를 닮은 크라켄도 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크라켄이라는 것을 처음 들어본다.
세인트교의 성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아무래도 크라켄은 바다와 관련된 역사라 그런 걸까. 내륙에 있는 세인트 왕국에는 기록되지 않은 것 같다.
대륙의 각국이 기록한 역사는 전부 다른 내용을 가지고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어 있으니 말이다.
“너희의 신화에서 크라켄은 어떻게 되었느냐?”
“…크라켄 놈들은 악마의 피조물입니다.”
“몇 마리나 있었다고 하던가?”
“악마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떼어내 창조한 크라켄의 숫자는 본래 666마리였다고 합니다.”
크라켄의 전설. 악명은 카프하니드.
어인들의 후퇴로 전투는 일단락되었다.
지금 카프하니드는 유령선을 끌고 저 어딘가의 수평선으로 멀어지는 중이다. 그리고 하늘을 뒤덮었던 먹구름도 카프하니드를 따라서 떠나가는 것 같다.
“크라켄 무리는 천사들과 전쟁을 벌이다가 전멸하여 심해에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몇 마리는 뛰어난 재생력으로 죽지 않고 살아서, 영겁의 잠을 잘 수도 있다고 천계는 경고했습니다.”
“모종의 원인으로 깨어난 것이구나.”
나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번쩍 떠올렸다.
“선장은 어떻게 됐죠?”
* * *
선장은 하루 전부터 범선을 먼바다로 끌고 갔다. 먼바다로 나가면 위험하다는 사실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그는 모든 이들에게 연신 사죄를 했다. 사죄를 하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너무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땐 제가 정신이 어떻게 되었나 봅니다. 그게 ‘세이렌’의 유혹이라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장의 이야기가 끝난 후 사신은 나와 셰르카를 조용한 방으로 데려왔다.
“어인, 크라켄에 이어서 세이렌까지 나타났으니 실로 두려운 일입니다.”
만약 갑판 위에 키가 있었다면 선장은 세이렌의 육체까지 목도하여 완전히 미쳐버릴 수도 있었다.
만약 카프하니드가 어인들을 데려가지 않았다면, 만약 카프하니드가 직접 이 범선을 노렸다면 우리는 전멸할 수도 있었다.
“전에도 몇 번인가 바다를 나와봤지만 이번 일은 의문점이 많습니다. 크라켄과 어인이 함께 활동한다는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고, 인간을 눈앞에 두고 순순히 물러간다는 것도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세이렌의 유혹은 우리를 먼바다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라 봄이 타당하다. 하지만 이상하다. 그 유령선의 정체부터 어인 무리까지….”
세이렌이 선장을 유혹하여 우리를 먼바다로 끌어들였다. 이어서 어인들의 급습이 있었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유령선을 끌고 나타난 카프하니드는 우리에게 손도 대지 않았다.
녀석은 어인들을 데리고 사라졌으며, 그 과정에 세이렌도 물러갔는지 선장은 스스로 제정신을 되찾았다.
모든 것이 의문이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사신께서는 크라켄이 왜 물러났다고 생각하시죠?”
사신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크라켄에게 지능이 있습니까?”
“…모릅니다.”
“크라켄의 목적은요? 대개 악한 존재들은 탐식, 탐욕, 분노 같은 것을 가지고 행동하는데.”
“송구합니다. 크라켄은 워낙 오래된 존재라 저도 거기까진….”
“악마의 피조물이라면 악마의 명령을 들을 수 있을 것 같구나. 허면 크라켄의 배후에 악마가 있다거나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랬으면 진작 천사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악마의 존재감이란 어찌 숨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악마 말고 악마의 하수인이라면? 저번에 벨드샤처럼.」
‘벨드샤의 경우에도 발키리가 존재를 추적할 수 있었어.’
“어인 무리에 지령은 크라켄이 내린 것이냐? 아니면 세이렌이 내린 것이냐?”
“아무도 모르지.”
“쯧. 무엇 하나 알아낼 수가 없구나.”
사신은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일어섰다.
“우선은 이 소식을 디아나에 알리면서 실마리를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동쪽의 신묘한 대국. 디아나.
마침내 우리는 디아나의 항구에 도착한 것이다.
* * *
디아나에서는 데이진타우 제국의 사신단을 환대하였다. 그들의 늙은 왕이 사신을 통해 교류하는 모습에서는 긴장감이나 어떤 견제의 느낌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늙은 왕은 비첸크로이 제국이 우리 대륙을 지배하기 전에, 데이진타우 제국과 무역을 했던 경험이 있는 자였다. 그래서인지 사신이 제안하는 무역로 회복에 대한 건을 매우 반가워하였다.
그리고 디아나의 늙은 왕은 목소리에 힘이 없고 귀가 안 좋았다. 그래서 내 개인적으로는 곧 수명이 끝날 동네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신과 왕의 대화는 그간 두 대륙이 나누지 못했던 중요한 소통의 장이 되었다. 그러던 중에 왕은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나를 가리키며 누구냐고 묻기도 하였다.
사신은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 단신으로 세인트교의 타락한 승천자를 처단하였으며, 비첸크로이 제국의 백만 대군과 악랄한 황제를 해치운 강령술사라 합니다. 그는 이쪽 대륙에 볼일이 있어…
사신은 나를 아주 강력한 존재로 묘사하였다.
물론 내가 어떤 것들을 해치웠는가에 대해서 거짓은 없었지만, ‘단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건 다소 허풍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납득은 된다. 나는 공짜로 범선을 타고 바닷길을 지나와서 이렇게 높은 자리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비첸크로이 제국에 굴욕적인 합병을 당했던 데이진타우 제국이다.
그런 제국이 나를 앞세워 국가로서 위신을 지키려는 건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대가다. 나는 그런 속셈까지도 고려해서 황제와 호의를 주고받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신단의 앞줄에 선 내가 대화에 끼어들 틈은 많지 않았지만 오늘 밤에 정보를 얻을 기회는 생겼다.
- 전하께서는 연세와 지병이 있어 해를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차후에 나누는 것으로 하고 금일 밤엔 신하들과 만찬을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왕이 빠진 사석에서 높은 자들과 만찬을 즐기는 시간이 준비되어 있었다. 양국과 관련된 외교적인 이야기는 빼놓고서 조금 더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곳에 있다.
왕궁 안에 지어진 이 구조물은 마루와 지붕만 있어서 사방이 탁 트여있다. 그리고 보통 이런 자리에서는 가운데에 긴 식탁이 있는 법인데, 이곳에서는 각자의 자리에 작은 식탁이 하나씩 놓여있다.
의자가 아니라 방석이라는 납작한 베개 같은 것에 앉아서, 단정하게 꾸민 여인들이 알아서 음식과 술을 가져오는 방식이었다.
이곳도 항구가 발달해서 그런지 해산물로 된 요리가 많았다.
「방독면 때문에 즐기지도 못하는 처지잖아.」
그리고 양쪽 상석에 왕과 사신이 앉는 게 아니라 저쪽에는 디아나의 사람들이, 이쪽에는 데이진타우의 사람들이 두 줄로 앉아서 자리를 차지하는 문화다.
「그래서 셰르카는 안 오는 거야?」
‘존재 추적하면 알잖아.’
「아까부터 항구랑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어.」
내가 이곳에서 이런 사람들을 통해 정보를 얻는 동안 그녀는 직접 거리를 돌며 정보를 얻겠다고 하였다. 낙인의 돌을 보다 효율적으로 찾기 위해 당분간은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럼 방독면을 벗지 않는 연유를 듣고 싶군요. 진수성찬이 앞에 있는데 어찌 들지도 않으시고…. 허허허….”
“아무래도 그건 본인께 직접 듣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은 양측의 인원을 합해 스무 명이다. 우리 쪽에 열 명, 저쪽에 열 명이다.
그래서 열 명이 저마다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지나왔는데, 나는 각자의 세세한 관직이나 이름을 까먹고 말았다.
「네가 아까 대충 정리했잖아.」
‘그거 말고도 정리할 게 너무 많다고.’
「사신 앞에 하얀 수염 기르고 있는 늙은이가 실세였어.」
아예 다른 대륙의 외국이라 모든 개념이 낯설다.
일단 제국의 원로들과 비슷한 개념인 ‘신하’.
그런 신하들 중에서도 문인(文人)에 속하는 가장 높은 자. 대부(代父).
‘아마카라’교를 따르는 디아나에서 대부는 여러 정책 같은 것을 걸러내 왕에게 안건으로 올릴 수 있는 자라고 했다.
이쪽 개념으로 하자면 법무관이나 집정관의 역할에 승천자의 역할까지 합쳐진 정치, 종교적 권력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네 앞에 앉은 까만 수염의 아저씨는 군사 쪽 실세.」
내 앞에는 문인과 반대되는 개념인 무인(武人).
근위대장이나 친위대장이나…. 아무튼 대장 중에서도 가장 높은 대장이라고 했다.
「그게 아니고 ‘장군’이라고 했잖아. 장군 중에서도 가장 높은 ‘대장군’이라고.」
“저, 강령술사님?”
“…아, 죄송합니다. 잠시 잡념에 빠져서.”
“대부께서는 강령술사님이 어째서 방독면을 벗지 않는지 궁금하다고 하십니다.”
내 옆자리의 사신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도움을 바라는 눈치였다. 자기가 대답하긴 버겁다는 것이다.
나는 눈치껏 대부와 시선을 교환하였다.
“정체나 출신에 대한 것을 숨겨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더 말씀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입장이라…. 헤아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대답하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 건가 싶다.
“아, 그러시군요. 무례가 되었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세상 모든 이들이 사연이 있고 까닭이 있을 것인데…. 하물며 배경이 범상치 않은 분께 너무 깊은 질문을 드린 것 같군요.”
“아닙니다. 모두가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며 속을 터놓는 자리인데 저만 이야깃거리를 숨기는 입장이라 송구할 뿐입니다.”
“속을 터놓는 자리라…. 흠….”
대부는 하얀 턱수염을 문지르며 날 골똘히 쳐다봤다.
“제 식견에 감히 넘겨짚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강령술사께선 제국의 대륙을 누비며 아주 많은 거악을 상대하신 귀인이라 판단되는군요.”
나를 치켜세우는 대부의 발언에 사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해 주었다.
「다들 갑자기 조용해졌어.」
어느새 모두가 이쪽 화제에 귀를 열고 있다.
또한 대부는 곁눈질로 이쪽에 집중된 시선들을 확인하였다.
그는 주변 시선을 확인한 다음에 고개를 돌려서 옆자리의 대장군을 부추겼다.
“그래서 우리 대장군이 이쯤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을까 싶군요.”
대장군은 두 손으로 양쪽 무릎을 쥐고 가슴을 폈다.
나를 향한 그의 강렬한 눈매가 왠지 부담스럽다.
“좀 전에 나누었던 크라켄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해볼 생각이오.”
그가 말하는 ‘좀 전’이란, 왕과 사신 사이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때를 뜻한다.
그때 왕과 사신은 크라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오면서 어떤 것을 상대하였고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이야기를 접한 늙은 왕은 아주 평범하게 반응했다. 그런 것이 먼바다에 있다는 건 이쪽에서도 유명하니까 조심하라고. 돌아갈 때는 해안선에 바짝 붙어서 항해하라고 말이다. 늙은 왕으로부터 그밖에 다른 내용은 들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가만히 묘사를 들어보니, 크라켄이라는 건 이무기를 뜻하는 것 같았소.”
「정보다!」
나는 대장군에게 물었다.
“이무기가 뭐죠?”
“용이 되지 못한 피조물이오. 악마의 머리칼로부터 창조되어 충분한 숫자의 사람들을 잡아먹고, 그렇게 쌓은 업보로 하여금 용이 되려고 하는 것이오.”
“그 말씀은 크라켄이 나중에 용이 될 수도 있다는 건가요?”
“용이 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저주를 쥐고 창조된 것이오. 햇빛이 밝은 곳에서는 눈이 멀기 때문에 언제나 심연에 있으며, 필요하다면 먹구름도 일으키는 것이오.”
“그런 녀석이 어째서 수면 위로 올라온 거죠?”
그러자 대장군은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강령술사. 그대에겐 혈향(血香)이 묻어있소.”
피 냄새.
“이무기는 액운을 쌓아서 용이 되고자 하는 피조물이오. 용이 될 수는 없지만, 끝없이 용이 되고자 갈망하고 굶주리는 피조물이오.”
“….”
이쪽 말로 ‘액운’이란 ‘업보’를 뜻한다.
“액운. 그것이 얼마나 쌓여있으면 그대에게 이 정도로 짙은 혈향이 풍겨 태고의 잠을 자고 있는 이무기를 깨운단 말이오?”
이쪽 말로는 이무기.
우리 쪽 말로는 크라켄.
악명으로는 카프하니드.
녀석은 나의 ‘업보’를 노려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녀석은 어인들까지 데리고 사라졌습니다.”
“녀석의 예상보다 부족했던 것이오. 그대의 액운이.”
카프하니드의 예상보다 내가 가진 업보가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실망하여 돌아갔다.
그런데 이게 신뢰할 수 있는 말인가.
“대장군님께서도 아시는 내용인데, 전하께서는 왜 이 문제에 대해 아무 말씀도 없으셨죠?”
“전하께서는 너무 노쇠하셨소. 간혹 정신이…”
“그만하지요. 허허허.”
대부의 한 마디에 적막이 흘렀다.
“만찬은 다 즐겼고, 밤이 늦었으니 나머지는 더욱 깊은 밤에 사석에서 나눔이 옳을 것 같군요. 대장군.”
“….”
“자, 자, 디아나와 데이진타우의 국가적 재회를 축하하며 마지막 잔을 나누도록 합시다.”
대부가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술잔을 들어 올렸다.
「더욱 깊은 밤에 사석에서.」
「이거, 대장군이랑 따로 만나서 이야기하라는 뜻이지?」
‘확실해.’
대부와 사신이 일어나서 서로 술잔을 맞댔다.
“받으시죠! 데이진타우 제국에 새로운 번영의 시대가 찾아오기를! 허허허!”
“양국에 안녕과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대부와 사신이 술을 쭉 들이켰다. 그러자 다들 앞사람과 술잔을 맞댄 후 친근한 대화를 나누면서 술을 마시는 것이다.
그 속에서 나는 대장군과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다 마귀가 될 것이오. 강령술사.”
“그걸 막으려고 여기까지 온 겁니다.”
“감당할 수 없는 거악을 마주했을 때, 이성을 잃고 폭주한 경험이 있소?”
“요즘엔 안 그럽니다.”
“다음에 또 그럴 일이 있다면, 그때는 마귀가 될 것이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장군은 양옆을 곁눈질하더니 대뜸 물었다.
“낙인의 돌을 찾고 있소?”
어떻게 알았냐고 묻고 싶지만, 그보다 다른 대답이 먼저 튀어나갔다.
“예. 그걸 반드시 찾아서 손에 넣고야 말 겁니다.”
“그 정도의 혈향을 풍기고 있으면서도 인간인 그대로 있는 것이 여간 괴로워 보이는 게 아니오.”
대장군은 내게 술잔을 들이밀었다.
나는 그와 술잔을 맞댔다.
“우리는 밖에서 보면 될 것 같소.”
“…그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