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94화 (94/181)

18. 전조현상 (4)

나는 대장군을 따라서 왕궁 밖으로 나왔다.

그의 주변으로 병사들이 모여들었다.

바깥에 있던 병사들은 사지나 급소를 방어하는 가벼운 방어구에 얇은 칼을 차고 있는 무장이었다.

「쟤들 칼은 목검처럼 귀엽게 생겼네. 상대 갑옷이 조금만 두꺼워도 부러질 것 같아.」

‘칼이 묘하게 긴 곡선이긴 한데, 칼날의 두께는 데이진타우 제국의 병사들과 비슷해.’

「그게 왜?」

‘가죽이나 살점을 베어내는 일에 특화된 거야. 제국의 칼보다는 조금 더 다용도라는 느낌이고.’

어느 병사가 장군에게 조용히 알렸다.

“장군님. 밤이 깊어졌습니다.”

“다들 자리 좀 비켜주겠나?”

“하지만 사신단이 물러가기 전까진 전하를….”

“이쪽 귀인과 긴히 나눌 담소가 있어서 그러네. 이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은 없으니 염려 말게.”

“예. 그럼 잘 보이는 곳에서 대기하겠습니다.”

병사들은 왕궁 쪽으로 돌아가서 거리를 벌려주었다.

“보다시피 나는 이번 일이 끝나기 전까지 발이 묶여있다는 것이오.”

“제가 ‘악’을 앓고 있다는 걸 아시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액운과 마귀라고 하지만, 그쪽 나라에서는 ‘악령화’와 ‘악령’이라고 말하지 않소?”

“이러면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피차 시간이 없는 것 같으니까 본론부터 합시다.”

그는 내게서 혈향이 난다고 했으며 이대로 가다간 악령이 되어버릴 거라고 경고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낙인의 돌을 찾아왔다는 것까지 간단히 추측해냈다.

“그대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기 전에 몇 가지만 질문하겠소.”

“좋습니다.”

“강령술사. 그대는 사람이 맞소?”

거짓말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눈빛이다.

“사람입니다. 아직까지는.”

나의 대답에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 대답을 음미하다가 수긍하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대는 우리처럼 무인에 속하는 실력자인 것 같은데, 힘의 원천이 무엇이오?”

나는 단순히 육체의 힘만으로 싸우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쓰는 능력은 마법도 아니고 흑마법도 아니다.

주술이다. 혹은 고유 능력이거나.

“이쪽 말로는 흑주술이라고 합니다.”

“…그 대답을 들으니 기괴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소.”

“근원이 사악한 힘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허나 그대는 사악한 힘의 근원을 통제할 수 있소. 때문에 아직까지는 사악한 존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오. 맞소?”

“예. 그런데 앞으로 질문이 몇 개나 남은 겁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소.”

대장군은 내게 한 발자국 다가와서 목소리를 낮췄다.

“그대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이오?”

그리 어려운 질문도 아니다.

그래서 바로 대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머릿속에서 말을 정리하기도 전에 입술이 먼저 떼어졌다. 하지만 말이 나오질 않았다.

「지금은 생존을 위해서잖아?」

그런 걸까.

악마가 내 존재를 알고 있다.

악마의 하수인 벨드샤를 해치웠다. 내게 쌓인 업보로 인하여 악령화가 더 잦게, 더 심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낙인의 돌을 찾으려고 한다.

그럼 지금 나는 내 몸의 악령화를 해결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인가. 그건 또 아니다. 아까 범선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함께 있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어쩌다 보니까. 살다 보니까.

복수하기 위해 싸웠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애국 때문에 싸우고 생존 때문에 싸우고 얄팍한 선심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내 문제를, 주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웠다. 어떤 관점에서 지금은 또 정보를 얻기 위해 싸운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싸웠으며, 앞으로 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가. 그 궁극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있어야만 한다. 있었던 것 같다. 다들 이유를 갖고 있다. 당연히 내게도 있을 것이다.

내게도 그런 것이 하나쯤은.

“대답하기 곤란한 것이오?”

“아니요.”

내게도 그런 것이 하나쯤은 있었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남겨진 것이 있었다.

“멋지게 살다가 죽으려고 합니다.”

복수가 끝난 날, 나는 죽지 못하게 된 것이다. 불태워진 공허가 다시 채워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살고 있다. 싸우고 있다.

“너무 솔직한 대답이 아닌가 싶소.”

“저는 멋지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려고 하는데, 날마다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어서 싸우고 있는 겁니다.”

“그대의 배경과 그대의 능력을 생각해 보면…. 나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시밭길을 지나온 것 같소. 심지어 그만한 혈향까지 풍기고 있으니 사람으로서 견뎌내기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었겠소.”

칭찬인가.

“그래서 경외심마저 생길 지경이오. 그대는 분명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한 인물일 것이오. 그쪽 대륙에서 많은 이들의 두려움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을 것 같소.”

이런 칭찬이나 격려보다는 낙인의 돌에 대한 이야기나 듣고 싶다.

하지만 너무 급할 필요는 없겠다. 대장군이라는 사람이 진심으로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건 이용할 수 있다.

“장군님께서는 남다른 혜안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과분한 칭찬이오.”

“저는 뭐든지 갚아주는 성격이라, 장군님께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든 제게 도움이 된다면 은혜는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짧은 정보를 줄 뿐이오. 내가 준 정보를 가지고 또 어떻게 나아갈지는 그대에게 달렸소.”

됐다.

“그리고…. 내가 이 이야기를 했다는 건 비밀에 부쳤으면 좋겠소.”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장군은 침을 한번 삼키고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에 대모(代母)를 찾아가시오.”

‘대모?’

“그녀가 낙인의 돌을 갖고 있소.”

「드디어!」

실감이 안 난다.

그는 대놓고 단언한 것이다. 대모가 낙인의 돌을 갖고 있다고.

“대모는 무공만 따지면 나보다 더 뛰어난 무인이오. 어린 나이에 백주술과 무공만으로 그 자리에 올라선 능력자이기도 하니, 그대가 대화를 요청한다면 응하지 않을까 싶소.”

결국 대모가 대화에 응해준다고는 대장군도 확신 못한다는 것이다.

대장군과 대모 사이에 친분이 별로 없다는 걸까. 그는 대모를 완전히 타인을 이야기하듯 설명하고 있다.

잠깐, 그렇다면…

「아니, 그런데 대부랑 대장군이랑 높은 녀석들은 다들 왕궁에 모였는데 왜 대모만 바깥에 있어?」

나도 그 부분이 의아하다.

어째서 대모는 바깥에 있는가. 어째서 대장군은 대모를 이렇게 타인을 대하듯 설명하고 있는가.

“그분께서도 오늘 함께 만찬을 즐기셨다면 좋았겠네요.”

“가지고 있는 무공과 세력이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이오. 언제나 자신감이 넘쳐서 때때론 거만하게 보이는 경우도 있소.”

“아, 그래서….”

“전하와 우리 신하들은 그런 대모를 경계하여 왕궁 밖으로 내보내, 디아나의 밤을 지키라는 책무를 맡겼소. 여기까지 말하게 될 줄은 몰랐소만….”

“덕분에 대모라는 분에 대해선 이해가 되었습니다.”

“백주술을 쓰는 대모는 손수 낙인의 돌을 봉인하겠다며 그 돌을 가져갔소.”

백주술은 마법을 뜻한다.

“전하께서는 대모가 그 돌을 봉인하였다고 믿고 계시지만, 사실은 전하를 제외한 왕궁의 모두가 달리 생각하고 있소.”

“어떻게요?”

“대모는 언제나 꿍꿍이가 있는 아주 위험한 인물이란 뜻이오. 당연히 그 돌을 사악하게 이용할 궁리나 하고 있을 것이라 모두가 의심하고 있소.”

대모가 진짜로 낙인의 돌을 봉인했다면 셰르카가 어떻게든 봉인을 풀어줄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대장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모라는 인물은 왕궁에서 미운 털이 박힌 게 틀림없다.

「위험하다는 것 같은데.」

‘내겐 중요하지 않아.’

대모가 정말로 위험한 인물인지 아닌지는 내가 직접 만나서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인물이든, 나는 낙인의 돌을 손에 넣을 것이다.

* * *

나는 새벽이 되기 전에 잿빛세계를 거쳐서 데이진타우 제국의 항구로 돌아왔다.

우토에게 보고를 받기 위해서다.

“교역로를 뚫고 황금달에 갔던 독수리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그쪽에서 자기만의 성과를 올리려는 속셈인 것 같습니다.”

독수리 역병 교수는 가장 강하다. 역병 교수들 중에서 충성심과 용맹함 또한 단연코 제일이다.

하지만 그는 지략이 부족한 인재다. 스스로 뭔가를 판단하는 일에는 서투르다.

「대신 듬직하잖아. 엄청 강하기도 하고.」

그래서 독수리가 세인트 왕국에서 베르자인과 함께 활동한다면 안심이다. 베르자인이라면 그의 부족한 지략을 보완하면서도 그의 무력을 잘 이용할 테니까.

“매는 현 시기에 흑사병의 피해가 막심한 북서쪽, 바르드베쿠스를 최종 목적지로 삼아서 가는 길에 있는 흑사병의 치료에 전념하겠다고 했습니다. 녀석도 독수리와 마찬가지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매 역병 교수는 독수리와 정반대의 느낌이다. 역병 교수들 중에서 가장 약하지만 언제나 눈치가 빠르고 정보를 습득하는 일에 탁월하다.

그리고 당연히 정보가 많으면 판단의 정확성도 높아지는 법이다.

그가 흑사병을 치료하는 일에 전념하겠다는 판단을 내린 건 어째서일까. 당장 그것이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어쩌면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겸사겸사 흑사병도 치료하고 다른 성과를 올릴 기회까지 찾으려는 속셈일 수도 있겠다.

「걔도 나쁘지 않지. 눈치 빠르고 무슨 일이든 잘 하잖아. 성향이 살짝 선한 쪽에 가깝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여러 나라를 돌면서 흑사병을 치료하다 보면 사람들과도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직면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면 성과가 된다. 그것이 매의 노림수 같다.

“마지막으로 올빼미는…. 역병 교수의 머리가 되는 일에 전혀 흥미가 없었습니다. 소인이 재촉하기 전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밤바다만 구경하면서 몽상에 잠긴 듯하였습니다.”

“지금은 어디로 갔어?”

“그것도 보고하지 않고 자취를 감췄습니다.”

우토는 올빼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올빼미는 강령술사님보다 셰르카 님께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무례한 종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도 네가 재촉해서 뭔가 활동은 하러 갔다는 말이네.”

“일단은 그런 것 같습니다.”

올빼미는 음침하고 과묵해서 소통이 어려운 자다. 하지만 그녀의 고유 능력은 다른 역병 교수들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확실히 특별하다.

그녀의 고유 능력은 환각과 정신계에 특화된 것이다.

독수리의 힘이나 매의 정보를 합쳐도 대적할 수 없는 상대는 반드시 어딘가에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환각과 정신계라는 변수다.

그녀가 자취를 감췄다는 건 어디로 사라졌다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인식에서 사라졌다고 해석함이 옳다.

「올빼미는 영 아니야. 이왕이면 믿음직한 독수리나 똑똑한 매한테 머리를 맡겨야지.」

누굴 역병 교수의 머리로 삼을지는 조금 더 지켜본 후 결정할 일이다.

“그런데 강령술사님. 외람된 이야기일지 모르겠으나, 디아나에서 낙인의 돌은 어떻게…. 방향은 찾으셨습니까?”

맞다.

마침 우토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우토. 흑마법을 쓰려면 본래 마법을 쓰는 사람이 타락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너는 원래 하는 일이 뭐였냐? 흑마법사가 되기 전에.”

우토는 눈을 끔뻑였다. 자기한테 이런 걸 물어볼 줄은 몰랐다는 것 같다.

“우토?”

“아, 저는 본래 비첸크로이 제국의 영지에 소속된 마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우토는 옛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아름다운 추억을 이야기하듯 향수에 젖은 것 같지는 않다.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었는데, 소인은 그곳의 어린 신도였습니다. …이전 황제는 어떤 문제 때문에 제가 살던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학살했지요. 워낙 어렸을 때라 황제가 왜 그랬는지는 잘 모릅니다만….”

“그때부터 흑마법을 쓰게 된 거야?”

“무작정 광인의 숲으로 도망쳐서 살아남았습니다. 어렸지만 마법을 부릴 수 있는 몸이었기 때문에 생존이 가능했지요. 그러다 보니 황제를 향한 복수심이 생기는 게 아니겠습니까.”

크나큰 복수심은 마음속에 어둠으로 자리 잡는다.

“나쁜 마음을 먹고 나쁜 생각을 하며 크다 보니 어느새 흑마법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날에 소인이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해서, 제국의 수도로 무작정 잠입했습니다. 황궁으로 들어가서 황제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엑수스…. 자신을 엑수스의 화신이라고 주장하는 젊은이가 수도를 점령한 게 아니겠습니까.”

비첸 아바타라 폴 엑수스 황제.

“소인은 그날 황제의 머리가 거리에 공처럼 구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복수심이 공허하게도 사라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날 황제가 된 사람이 그 녀석이었구나.”

“안목이 있는 황제는 한눈에 절 알아봤습니다. 친위대가 와서 절 붙잡아 황궁으로 끌고 가는데,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었습니다. 황제에게서 거역할 수 없는 영력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우토는 거기까지 의식이 빠진 채 말하다가, 황급히 현재로 돌아왔다.

“그, 그때는 강제적으로 황제를 추종한 겁니다. 지금 강령술사님을 자발적으로 섬기는 것과는 결이 다릅니다. 소인의 흑마법과 사, 상성도 그렇고 강령술사님은 그 악랄한 황제보다 모든 면에서…”

“우리가 한때 적이었다는 걸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어.”

“아…. 하하…. 바로 이런 면모가 진짜 아랫것을 향한 자비가 아니겠습니까.”

「그래. 독수리는 듬직하고, 매는 다재다능하고, 올빼미는 특별하고…. 우토 이 새끼는 그냥 간신 역할이지?」

‘너무 그러지 마.’

우토는 내 앞에서만 이렇게 궁색 맞게 보이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그는 이 대륙에서 셰르카 다음으로 강한 흑마법사이며, 혼자서 웬만한 마을이나 도시 정도는 멸망시킬 수도 있는 능력자다.

강해도 보통 강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독수리 열 명이 우토에게 덤벼도 못 당해낼 것이다.

「올빼미라면 해볼 만하겠지. 우토의 인식에서도 사라질 수 있다고 하니까.」

‘바로 그게 변수의 중요성이야.’

이후 나는 존재 추적으로 역병 교수들의 위치를 하나씩 확인하였다.

매는 북서쪽 바르드베쿠스에 있었고 올빼미는 무슨 생각인지 남서쪽의 해안에 있었다. 그런데 매와 올빼미가 있는 곳은 내가 실제로 가본 적이 없는 장소라서 바로 찾아갈 수가 없었다.

대신 세인트 왕국의 외곽.

엄연히 따지자면 세인트 왕국과 인접한 ‘외부’에 있는 독수리는 비밀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 발렌잔타르 가문이 부활했습니다.

- 여전히 베르자인 님을 해치려는 잔당이 남아있습니다. 저는 자객들과 협심하여 그들을 추적, 협박, 암살하고 있습니다.

- 세인트 왕국의 영토 확장 정책에 베르자인 님이 손을 대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외부에서도 싸우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제 왕국 사람들은 저를, 독수리 역병 교수가 누구인지를 아주 잘 압니다.

그러면서 독수리는 내가 세금을 걷은 낙원의 화폐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 추후에 세금은 은화로 통일하여 걷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잿빛세계로 돌아가려는데, 승천자로부터 반가운 전언이 있었다.

- 하늘로부터의 집행 명령이 철회된 후 잘 지내셨는지요?

- 하늘에서도 벨드샤는 나름 악명이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악마의 하수인을 손수 해치운 건이 여러 천사들의 마음을 설득해낸 것 같습니다.

- 그래도 훗날 악마에 대적하기 위해선 결국 이쪽으로 오셔서 대화를 해야만 합니다. 벨드샤를 잃은 악마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이쪽은 셰르카, 우토, 역병 교수들.

저쪽은 발키리, 승천자, 파보크, 아그니샤.

- 제가 중앙교회에 자리를 마련할 테니, 시급한 악령화 증상부터 해결하시고 시간이 난다면 전언 주시지요.

-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서로 다른 빛과 어둠 사이에서 갈등하며 싸워왔다. 그래서 어느 쪽에도 기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빛이 있는 곳에 손을 뻗어보라는 천계의 요청이 온 것이다.

「참 빠르기도 하다. 천계 새끼들.」

「진작 좀 도와주지.」

「그래서 어쩔 거야? 이번 일 끝나고 승천자한테 갈 거야?」

‘가야지.’

하늘이 밉다고 하여 악마랑 한 편이 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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