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뇌성이 울려퍼지다 (2)
당시 대모와의 거래를 수락한 페인은 그날 밤에 다시 대모를 찾아갔다.
하루라도 빨리 낙인의 돌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도깨비부터 당장 해치웁시다.”
“이무기보다 도깨비를 먼저요?”
도깨비 무리를 먼저 해치우면 낙후된 촌락들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이무기를 먼저 해치우면 디아나의 바닷길이 뚫린다.
“제가 봤던 이무기는 카프하니드라는 악명이 따로 있었습니다.”
“카프하니드….”
“카프하니드는 버거운 상대입니다. 일단은 도깨비를 정리하면서 동시에 해군을…. 아니, 수군(水軍)을 준비하는 편이 시간상 효율적입니다.”
여기서는 해군이 아니라 수군이라고 한다.
“네. 순서는 딱히 상관없어요. 저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도깨비를 해치우는 동안 수군을 준비하면 되겠군요.”
“그런데 대모님께 수군이 있습니까?”
“없어요. 왕궁에 말해서 준비해야죠.”
왕궁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는 대모가 아닌가. 안 그래도 거느리고 있는 무사들이 많은 대모인데 왕궁이 그녀에게 바다에서 운용할 군대까지 내어주기는 할까.
“대모님께서 수군을 지원해달라고 하면 왕궁이 허락할지 걱정입니다.”
“태고부터 바다의 공포로 군림했다던 이무기를 해치울 기회라는데 설마 묵살하겠어요? 녀석을 해치우면 민생이 사는 것은 물론이고 외국에도 소문이 퍼져서 나라의 위신이 살아요.”
“왕궁이 거절하진 않을 거라는 말씀이군요.”
“그래도 순순히 제 밑에 붙여주진 않겠죠. 아마 수군을 저한테 넘겨주진 않고 대장군한테 붙이는 식으로 할 것 같네요. 제 감시까지 겸해서.”
“알겠습니다. 그럼 도깨비 무리를 일망타진할 계획부터 짜봅시다.”
“저는 1800의 무사를 데리고 있어요.”
“그럼 그중에 절반인 900 무사를 우회해서 놈들의 부락으로 보냅시다. 그러면 주변에 퍼진 마귀들도 도깨비의 지령을 듣고 모여들어 싸울 겁니다. 그래야 놓치는 놈 없이 씨를 말릴 수 있습니다.”
“군대처럼 움직이는 마귀에 대해서 잘 아시나 보네요.”
“몇 번인가 겪어봤습니다.”
“그래요?”
“그리고 지금부턴 구분하기 쉽게 ‘구울’이라고 합시다. 도깨비를 따르는 마귀들은 구울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게 편하시다면 그렇게 하시죠.”
구울들은 주인의 지령 없이는 절대 후퇴하지 않는다.
따라서 도깨비에게 위기감을 준다. 그러면 위기를 느낀 도깨비는 주변에 있는 구울들을 불러들일 것이다.
그때 모조리 한곳에 모아 쓸어버리는 편이 깔끔하다.
「군대가 된 구울은 각개격파하는 게 정공법 아니야? 구울은 많을수록 위험하잖아.」
‘그건 우리가 놈들 무리보다 약할 때 이야기지.’
「군대가 아니라 벌레 떼 상대하듯이 하는 거구나?」
대모는 내 의견을 전적으로 따랐다.
“좋아요. 그럼 900의 무사를 먼저 보내 구울을 모으고. 저와 강령술사님은 나머지 900을 데리고 한 발자국 늦게 합류해서 한곳에 모인 놈들의 씨를 말리면 되겠어요.”
“그래도 됩니까?”
“안 되죠.”
「……뭐냐?」
예상대로 대모가 가지고 있는 1800의 무사를 전부 이번 일에 투입할 수는 없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하. 전부 자리를 비우면 왕궁에서 무슨 개수작을 부릴지 모르잖아요. 900을 먼저 보내고 저희는 소수로 움직이죠. 100명만 빼서.”
“같은 생각입니다. 놈들도 정찰이라는 걸 할 줄 안다면 이쪽의 진짜 공세는 소수로 숨기는 편이 좋습니다.”
“맞죠. 맞죠. 저랑 얘기가 진짜 잘 통하시네요. 어휴, 다른 장군 놈들이랑 얘기하고 있으면 답답해서 미치겠다니까요.”
「나는 진짜 지휘관 머리는 안 되겠다….」
“그리고 대모님께 소개해드릴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죠?”
“우리 쪽 대륙에서 가장 강한 흑마법사입니다.”
“우토?!”
대모는 눈을 반짝였다.
비첸크로이 제국의 황금기를 지나온 우토가 확실히 유명하긴 한가보다.
“우토는 두 번째로 강한 흑마법사입니다.”
“아…. 그 우토보다 강하다면 너무나 영광이죠. 어서 만나 뵙고 싶네요.”
“다만, 미리 당부드리고 싶은 점이….”
“네?”
“말투가 조금 권위적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수명을 한참 넘어서 살고 있는 흑마법사라….”
* * *
대모는 촌락의 구울들을 쉼 없이 쓰러뜨리고 있다.
‘유체이탈(幽體離脫).’
그녀의 동공이 빠르게 운동한다. 각 구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자신을 노리는 구울들의 손아귀를 경계한다. 그러면서 최적의 장소를 골라 육체를 내버려 두고 영혼만 분리하여 보낸다.
…촤아악!!!
그녀의 발치에서 진흙이 튀었다. 바로 직전에 그녀를 덮치려던 구울은 허공만 휘적였다.
“그어어어!”
영혼이 육체를 따라가는 게 아니다.
육체가 영혼을 따라간다.
구울의 배후로 이동한 그녀의 영혼이 유체이탈을 해제하면, 몇 발자국 뒤에 남겨진 육체가 실재세계에 있는 존재들의 인식을 초월하여 전이하듯 밀려오는 것이다.
“지금이다! 쳐라!”
대모가 구울 무리에 뛰어들어 녀석들을 헤집어두면 무사의 차례였다. 그들의 예리한 검과 절도 있는 동작은 구울의 질긴 살갗을 손쉽게 베어냈다.
이렇게 구울 무리를 상대하는 게 일상인 자들이었다. 대모와 무사들이 구울 무리를 삽시간에 정리해버려서 페인이나 셰르카는 나설 필요조차 없었다.
촤악!
“끄어어어….”
마지막 구울이 쓰러졌을 때, 전장의 가장 먼 곳까지 도달한 대모는 칼을 두어 번 흔들어 흥건한 혈액을 털어냈다.
무사들이 그녀에게 달려왔다.
“보고해.”
“상황 종료입니다! 부상자…”
“사망자는?”
“없습니다!”
대모는 가볍게 호흡을 정리했다. 그리고 흐트러진 머리칼을 뒤로 모아서 여유롭게 묶었다.
“저분들은 기분이 어떠시려나.”
그녀는 저 멀리 있는 페인과 셰르카를 돌아보며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 * *
수 시간 전,
군마를 탄 백 명의 무사가 대나무 숲길에 일직선으로 도열한 채다.
그들의 후미로 대모가 합류하자 그녀의 오른팔인 덩치 큰 무사가 따라붙었다.
“다이얀.”
“대모. 마귀들의 혈향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강령술사와 흑마법사는? 먼저 왔어?”
“앞서갔습니다. 도깨비 취락까지 가는 길에 촌락을 둘러보면서 흩어진 마귀들을 해치운 후 합류하겠다고 했습니다.”
“숲에 흩어진 마귀 정찰병들도 제거하겠다는 뜻이네. 그러면서 늦기 전에 합류까지 할 수 있겠다니….”
“강자에게서 느껴지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강자는 강자겠지. 하지만 우리가 아는 사실들은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있어.”
대모는 강령술사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의심하고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들을 벌일 수가 있겠어?”
“강령술사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타락했다고 한들, 이쪽 대륙에서도 유명한 승천자를 해치웠다잖아.”
강령술사의 힘은 지나치다.
“게다가 그 무시무시한 흑마법사인 ‘우토’를 심복으로 삼고…. 그것도 모자라서 신화적인 수준이었던 비첸크로이 제국의 엑수스 황제까지 해치웠다고 하네.”
“일대일로 겨루는 싸움이나 등을 노리는 모략에 있어 비상한 머리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쪽 사신이 자랑처럼 늘어놓던 이야기를 벌써 잊었어? 다이얀.”
“사신이 술김에 흥이 나서 다소 과장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그렇다 하여도 이건 아니지. 강령술에 관련된 능력이 뛰어나다면 개인이 다른 차원의 군대를 부릴 수 있다는 점은 납득해. 하지만.”
페인의 지난 행보들은 너무 과장되었다.
적당히 과장된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승천자보다 뛰어나고 우토보다 뛰어난 흑주술, 비첸크로이 제국의 엑수스 황제보다 뛰어난 무공, 변방의 작은 세인트 왕국이 단숨에 대륙의 실세가 되도록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지략, 다른 차원의 군대를 다루어 제국의 백만 대군을 무찌르는 통솔력, 통찰력….”
“….”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한 일이냐? 그런 인간이 실재세계에 존재한다고?”
“말씀을 들어보니 과장이 지나친 것 같기도 합니다.”
“심지어 옆에 있는 최강의 흑마법사라는 계집은 혈향이 풍기지도 않아. 오랜 세월 흑마법을 연마했다는 계집에게서 액운의 냄새가 없다니 이상하잖아.”
“하지만 분명 동공은 마귀화된 것처럼 붉은색이었습니다.”
“그거 가짜야.”
“가, 가짜였습니까?”
“우릴 속이려고 그럴싸하게 준비한 가짜 눈알이었지. 이것 봐. 너도 감쪽같이 속았잖아.”
“과연….”
“내 생각엔 데이진타우 제국이 우리한테 허풍을 부린 거야.”
“허풍의 이유가 외교적인 목적이었다면 이해가 됩니다.”
제국은 외교에 있어 힘겨루기를 이기려고 강령술사라는 인물을 내세워 몸집을 부풀린 것이다.
“강령술사는 강자가 맞지만, 그건 그자가 부리는 군대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개인’이 해낸 것처럼 허풍을 더한 거였어.”
혼자서 승천자를 이겼다고, 혼자서 엑수스 황제를 이겼다고, 혼자서 우토를 이겼다고, 혼자서 제국의 수도를 파괴했다고, 혼자서 백만 대군을 상대했다고.
사신이 말했던 내용들은 강령술사라는 ‘개인’을 지나치게 띄워주고 있던 것이다.
“강령술사 개인이 강한 게 아니야. 강령술사의 군대가 강한 거지.”
다이얀은 그 말을 듣고 문득 떠올렸다.
“이무기의 악명이 카프하니드라고 했습니까?”
“그냥 떠보려고 한 말인데 덜컥 수락했지 뭐야.”
“도깨비라면 간신히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이무기는….”
“도망칠 곳 없는 갑판 위에서 이무기를 마주하면 지금까지 내뱉은 허풍을 후회하게 될 거야. 그리고 내게 살려달라며, 도망치자며 빌겠지.”
“저희는 이무기 때 강령술사의 약점을 잡을 수 있겠습니다.”
“그전에, 도깨비 건에서 우리의 무공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부터 보여주자고. 그래야 약점을 잡았을 때 고분고분 내 말을 따를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대모는 강령술사를 손에 넣고 싶었다.
‘그냥 거래만 마치고 보내주기엔 아까운 힘이다.’
* * *
나는 대모와 무사들이 활약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구울 무리를 순식간에 해치운 대모는 저곳에서 나를 보며 당돌하게 미소 짓고 있다.
자신의 능력을 잘 보았냐고 자랑하는 듯한 미소다.
「확실히 숙련자들이었네. 자신감에 근거가 있었어.」
‘그러게. 예상외로 강했어.’
세인트 왕국은 천계의 힘을 빌려 악에 대항했다.
비첸크로이 제국은 군사의 힘으로 악에 대항했다.
‘이곳에서는 정예 집단을 만들어서 악에 대항하는 방식이었어.’
대모와 무사들이 바로 이곳에서 악을 처리하는 정예 집단이었다.
「이게 대모의 역할이구나.」
대모를 따르는 무사들만 보아도 그녀가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녀의 인품이나 성격이 어떤지는 몰라도, 그녀를 따르는 무사들은 순수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세뇌당한 것도 아니고 두려움에 따르는 것도 아니었다. 진심으로 그녀를 따르면서 언제든지 목숨 걸고 싸울 수 있는 수완 좋은 무사들이다.
「대모랑 친해지는 편이 좋겠어.」
‘그러려고.’
무사들은 구울의 사체를 한곳에 모아서 태웠다. 그리고 대모의 손짓 한 번으로 일사불란하게 군마를 끌고 와서 두 줄로 집결했다.
나는 대모와 합류하기 위해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대모의 검술은 이제껏 내가 본 그 어떤 인간보다도 정교했다.”
“그래?”
“저들의 칼은 우리 대륙의 것과 달리 뼈를 잘 베어내지 못하는 구조다. 하지만 대모는 구울의 관절과 관절 사이를 정확하게 노려서 베어냈다.”
셰르카도 대모를 고평가했다.
“그 짧은 순간에 쉼 없이 전이하면서 집중력을 유지하고, 다수를 상대로 관절 사이를 노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사들도 구울의 팔다리를 능숙하게 베어냈잖아.”
“그녀의 밑에 있는 자들 또한 검술에 일가견이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정예 중에서도 정예다. 이런 자들을 거느리고 있으니, 왕궁에서 대모의 세력을 경계하는 것도 합당하다.”
“너무 뛰어나서?”
“그렇다. 대모와 무사들은 너무 뛰어나다.”
「셰르카까지 이렇게 평가할 정도라면 대모가 진짜 대단하긴 한가 보네.」
나와 셰르카는 선두에서 대모와 만났다.
“어땠어요?”
“놀라웠습니다. 그렇게나 정교한 검술을 본 건 처음입니다. 그렇지?”
“실로 훌륭했다. 너도 그렇고 너의 무사들도 그렇고, 그만한 검술을 부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상상이 되었다. 얼마든지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실력이었다.”
“두 분에 비하면 미천한 무공인걸요. 하하. 그래도 이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까 기분은 좋네요.”
나와 셰르카는 선두에 준비된 군마에 올랐다.
“이 길을 따라서 산골짜기를 두 번 넘으면 도깨비 취락이 나와요.”
“마귀의 영역이 백성들과 너무 가까운 것 아닙니까?”
“원래는 길이 없는 산속까지 가야 있는 놈들이었어요.”
“취락이라는 말은…. 혹시 도깨비 무리가 원래 백성의 것이었던 영역을 빼앗아 점거했다는 뜻이더냐?”
“네. 맞아요.”
그렇게 우리는 말을 타고 세 시간을 달려서 능선을 두 번 넘었다.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지나서 평탄한 대나무 숲의 비좁은 길을 내달렸다.
그러고 있으니 멀찍이 전방에서 싸움의 소리가 들려왔다.
“무사들이 방어적으로 대응하고 있을 거예요.”
타그닥! 타그닥!
이윽고 대나무 숲을 벗어나면서 시야가 탁 트였다.
우리는 모두 군마에서 내렸다.
황폐화된 농지, 다 무너져가는 건물들, 날뛰는 구울 무리가 보인다.
그런데 취락이라고 하기엔 전장이 꽤나 넓고 복잡했다. 좀 전에 들렀던 촌락보다 다섯 배는 넓은, 거의 중간 규모의 마을에 가까운 전장이었다.
「마을 규모에 비해 숫자가 많지는 않아.」
‘저게 전부 구울이야?’
「특별한 개체는 없어. 다 똑같은 구울들이야.」
「대충 2000마리 정도가 날뛰고 있네.」
도깨비가 거느리고 있는 무리는 수천 마리라고 했다.
수천 마리라고 해서 언덕과 평지를 뒤덮은 규모의 구울 군단을 예상했는데, 이렇게 실상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일이 쉬우면 좋지.」
‘도깨비는 어딨어?’
「11시 방향.」
나는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산적 같은 옷차림에 우락부락한 덩치다. 어금니가 멧돼지처럼 크고 한 손에는 커다란 망치를, 다른 한 손에는 채찍을 들고 있는 악령이 구울 무리와 함께 있었다.
「도깨비.」
「719.」
때마침 대모가 알려왔다.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좀 전의 전투 때문에 기를 많이 소모해서… 도깨비는 두 분께 맡겨도 괜찮겠죠?”
“그냥 거느리고 있는 머릿수만 많은 놈이었구나. 저런 약골을 상대로는 둘이 나설 필요도 없겠다.”
“하하…. 정말요?”
대모는 미심쩍다는 눈빛으로 셰르카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어쩔래? 셰르카.”
“흥이 떨어졌다. 저 도깨비라는 놈도 별 거 없구나.”
생각보다 적들이 약하면 흥이 떨어질 게 아니라 안심해야 할 일이 아닌가.
“네가 알아서 해라. 이리도 실망해서 싸울 의욕이 없다고 한다.”
“알겠어.”
「카프하니드 상대하기 전에 여기서 악이나 흡수해놓자.」
나는 방독면에 성수부터 가득 채웠다. 구울 2000마리를 죽이면서 쌓일 악에 대비하려면 입술을 적시는 걸로는 부족하다.
전투 중에 성수를 마시다시피 해야 한다.
“그건 마귀화를 막기 위해 채우는 거예요?”
“예. 매번 이것 때문에 낙인의 돌을 손에 넣으려는 겁니다.”
“사악한 존재들을 토벌하는 건데 어째서 마귀화에 대비하시는 거죠? 무고한 이들을 죽이는 것도 아니잖아요.”
“제겐 사악한 존재를 죽이는 일도 업보로 작용해서 그렇습니다.”
「악귀 군단 소환할 거야? 낙원에 많이 있는데.」
‘저 2000마리에 대응하는 머릿수를 소환하려면 영력 소모가 심해.’
차원침공을 발동하면 편하겠지만 지금은 밤이 아니다. 충분히 어둡지 않은 지역에서 차원침공은 발동되지 않는다.
따라서 2000마리를 상대로 영력과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자면, 제물방류가 알맞겠다.
“무사들을 뒤로 뺄까요? 강령술사님의 군대가 진입하기 쉽게요.”
“제 군단까지 소환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혼자서 해보겠습니다.”
“아하하하!”
대모가 이렇게 밝게 웃는 건 처음 본다.
“혼자서요?! 무슨 재해라도 불러오시게요?”
「야, 네가 앞뒤 설명도 없이 그러니까 농담하는 줄 알잖아.」
“놈들에겐 재해가 될 겁니다.”
“아, 그래요?”
전장이 넓다. 무사와 구울을 가려서 공격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눈앞에 손아귀를 뻗어 머릿속으로 정확한 경계선을 그었다.
경계선을 그은 후 영력을 집중했다.
‘제물방류.’
그러자 저곳, 무사들의 앞에 있는 녀석들부터 붉게 터지기 시작했다.
“무사들이 휩쓸리지 않게 조심하거라.”
내겐 악령화가 문제일 뿐이다.
구울 2000마리를 해치우는 것 자체는 쉬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