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뇌성이 울려퍼지다 (3)
대모는 보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비현실적으로 변화하는 환상의 그림이라도 보는 것 같았다.
‘저게…… 저렇게……?’
강령술사의 손짓이 있었다. 그런 직후 도깨비 취락에 있는 수천 구울들이 폭사하는 것이다. 구울들을 폭사시키는 바람이라도 부는 것처럼 앞줄부터 순차적으로, 그러면서도 붉은색이 전체에 퍼져 순식간에 폭사하는 광경이다.
‘저건 강령술이 아니야. 강령술보다는 방혈에 가까운….’
그런데 세상에 이런 대규모의 방혈술이 있는가.
있다고 하여도 저토록 많은 구울 무리를 손짓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하지만 아무리 의심하고 부정해도, 지금 대모의 눈에 보이는 건 무엇보다 현실이었다.
‘방혈…. 방혈이 맞나…?’
구울의 혈액이, 내장이, 살가죽이 홍수처럼 퍼지며 다른 구울들을 덮치고 있다. 붉은 물결에서 붉고 기다란 피의 줄기 같은 것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다른 구울을 꿰뚫고 집어삼키고 찢어발기는 광경이다. 그 붉은 것의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건물과 나무 따위가 무너졌고 흙더미나 작은 바위까지 붉은 물결 위에 흘러 다녔다.
그야말로 붉은 홍수였다. 보고만 있어도 위압적인 재해였다.
대모의 시선은 그런 광경에 던져진 채 이리저리 방황했다.
그러다 알고 싶어졌다.
‘도깨비…!’
구울 무리의 숫자도 문제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도깨비였다. 도깨비는 무공이 뛰어나면서도 웬만한 장군에 밀리지 않는 지략까지 갖춘 끔찍한 마귀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마귀의 국가라도 세울 수 있는 위험한 녀석이다.
그러니까 도깨비는 시급히 해치워야 하는 마귀다. 오늘 도깨비와 싸워서 녀석을 해치울 수 있다면 그걸로 대만족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도깨비의 대응을 기대하게 된다.
저 붉은 홍수 속에서 도깨비가 어떠한 타개책을 보일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대모로서 도깨비가 뭔가를 하리라고 기대를 해선 안 되는데 말이다.
‘도깨비 자식…! 어디에 숨은 거야…?!’
보이는 것이 온통 새빨간 난장판이라서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때 셰르카가 나지막이 말했다.
“해치웠나?”
페인은 무척이나 담담하게 답했다.
“죽었어.”
대모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명확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도깨비가 죽었다고요?!”
죽였다.
죽었다.
어감이 다르다.
페인은 도깨비를 ‘죽였다’고 하지 않았다.
도깨비가 죽었다고 말했다. 그냥 어쩔 수 없는 재해에 녀석이 휩쓸려 죽은 것처럼, 자신은 굳이 도깨비를 죽이려고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애쓰지도 않고 그냥 휘두른 힘에 그 악명 높은 도깨비가, 잔챙이처럼 다른 구울 무리와 함께 휩쓸렸다는 듯이 말이다.
이제 대모의 눈은 붉은 광경이 아니라 페인을 향하고 있다.
반면에 페인은 대모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다. 그는 미지의 시선으로 전장을 관조하고 있는 것 같다.
“예. 도깨비는 저곳에서 죽었습니다.”
“죽어있었어요…?”
“죽어있던 게 아니라, 방금 핏물에 빠져서 익사한 것 같습니다.”
“네? 아니, 잠깐, 뭔…. 익사한 것 같다고요? 확신이 없는 거예요?”
“녀석의 숨통이 끊어졌다는 건 확인했습니다. 제가 녀석을 방혈한 건 아닌데 말입니다. 일단 핏물 안에 가두고 어떻게 나오나 지켜보려고 했는데….”
대모는 더는 말도 못 하고 입술만 움찔했다.
“익사가 아니라면 떠밀리는 바위나 나무에 맞아서 죽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도깨비가 죽었다는 건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이걸로 한 건은 해결이구나. 몸은 괜찮나?”
“아직까지는 괜찮아. 계속 마시고 있어서.”
“적잖게 해치웠으니 조심하거라.”
지금은 전투 중이다.
수많은 구울 무리와 악명 높은 도깨비라는 상대를 두고 목숨을 걸어 싸우는 전투 상황이다.
그런데 페인과 셰르카는 일상적인 대화라도 나누는 것 같다. 둘에게서는 아무런 흔들림도 긴장감도 엿보이지 않는다.
대모는 떨리는 눈을 돌려 다시 전장을 바라보았다.
- 방금 뭐야?!!!!
- 악마의 재해야!
- 설마 상대를 착각한 건가?
- 긴장의 끈을 놓지 마라! 도깨비보다 위험한 것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그나마 이곳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보았던 백 명의 무사들은 놀라기라도 했다.
그런데 저 전장에 있는 수백 무사들은 상황을 단단히 오해하는 중이다. 도깨비보다 무시무시한 악마가 방금 그 재해를 일으킨 것이라고.
“대모님? 다 끝났습니다.”
“네?”
“돌아가죠.”
“아. 하하. 정말 대단…. 방금 보여주신 대규모 흑주술은 뭐죠? 아, 너무 놀라서 혀가 꼬이네….”
“제물방류라는 겁니다.”
“…일종의 강령술인가요?”
“방혈입니다.”
역시 방혈이었다.
그런데 저게 어떻게 방혈이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은 티끌만큼도 생기지 않는다.
강령술사인데 강령술은 쓰지도 않았다.
“제가 아는 방혈이랑은 많이 다르네요.”
“6계까지 강화하면 쓸 수 있는 주술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방혈을 6계까지 강화할 수 있냐고 따질 수 없다.
지금 대모가 따지고 싶은 건 하나다.
“결례가 될 수도 있지만 구태여 또 여쭤서 죄송한데요. 강령술사님.”
“예.”
“인간…. 맞죠?”
그러자 셰르카가 콧방귀를 뀌었다.
“의외로 귀여운 면모가 있구나. 격차가 느껴져서 분한가?”
“아니요. 하하…. 너무 순식간에 끝나는 바람에 뭔가 허탈한 것 같아서요.”
“표정이나 풀고 말해라.”
“….”
“이 녀석은 인간이니까 낙인의 돌을 찾는 것이다. 인간으로 있기 위해서. …다시 설명해야 하느냐?”
* * *
대모와 강령술사가 도깨비 취락을 해치웠다는 소식이 왕궁과 거리에 퍼져나갔다.
이번 일로 철인을 3계에서 4계로, 영적 저항을 1계에서 2계로 강화한 페인은 잿빛세계의 낙원으로 가서 성수를 보충하여 돌아왔다.
그리고 왕궁에 마련된 자신의 방에서 셰르카의 부적을 살펴보고 있는데 대장군이 직접 찾아온 것이다.
“실로 경이로운 흑주술이라고 들었소. 다른 차원의 군대는 쓰지도 않고 서있는 그 자리에서 놈들의 씨를 말렸다니…. 핏물로 된 홍수라는 것을 보지 못한 게 아쉽소.”
“대모의 무사들이 구울 무리를 잘 모아둔 덕택입니다.”
“그런 흑주술을 선보이고는 겸손이라…. 압도적인 무공에 인품까지 고루 갖춘 인재라는 말이오. 전하께서 기운을 회복하시면 분명 그대의 공로를 치하할 것이오.”
“전하의 지병이 심각합니까?”
“심각하다고 하기엔 어폐가 있소.”
“제가 치료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돕고 싶습니다.”
“노쇠하여 자연히 따라오는 지병이오. 기운이 없어서 언행에 힘이 떨어지고, 좀 전의 일들을 깜박 잊어버리시거나 죽고 싶지 않다며 아이처럼 우는 경우도 더러 있는 편이오.”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요.”
“노화라는 것을 어찌 막겠소? 본디 살아있는 것이란 저마다 명줄이 정해져 있는 것이니….”
「와, 그거 존나 절망적인 사고방식이네.」
「아무리 살려고 노력해도 언제 뒈질지 정해져 있다는 거잖아?」
‘진짜 그 뜻인가?’
「그런 말 아니야?」
솔직하게 한탄하던 대장군은 페인의 옆쪽 벽에 세워진 도끼가 눈에 밟혔다.
어떤 철광을 소재로 쓴 건지 색깔이 거무튀튀하다. 손잡이까지 철로 되어 있어서 상당히 무거울 것 같다.
도끼날에 새겨진 문자들은 외국의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것처럼 신비하고도 위험해 보인다.
“이렇게 대모를 돕는 까닭은 역시 낙인의 돌을 얻기 위함이오?”
“거래를 했습니다. 함께 도깨비와 이무기를 해치우는 대가로 낙인의 돌을 약조했습니다.”
“그리하여 함께 싸워보니 어떤 것 같소? 대모라는 자는.”
“생각보다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대장군은 잠시 말이 없었다.
동시에 페인의 안에 있는 악령은 대장군의 표정에서 순간적이고도 미묘한 변화를 포착해냈다.
「봤어?」
「눈썹이 살짝 떨렸는데.」
‘봤어.’
「본심을 더 보고 싶지 않아?」
‘떠봐야지. 혹시 모르니까.’
이제 페인은 의도적으로 대모에 대한 말을 더 꺼낸다.
“대모께서는 디아나가 직면한 커다란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고 민생을 돕고자 하셨습니다. 도깨비 취락 토벌은 촌락과 영토의 안정을 위해, 이무기 토벌은 바닷길 확보와 상업의 활성화를 위한다는 목적이 뚜렷했습니다. 정말 누구보다도 이 나라를 위해 앞장서 칼을 뽑으시는 분 같았습니다.”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시오?”
“이상합니까?”
“다름이 아니라…. 그대의 통찰력이라면 상대가 가면을 썼는지 아닌지 정도는 귀신처럼 꿰뚫어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소.”
“거짓말까지 분간하는 능력은 없습니다. 제가 대모를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결국 대모께서 행동력으로 몸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근거는 없습니다.”
“사람이란 말도 행동도 얼마든지 거짓으로 꾸며낼 수 있는 영악한 동물이오.”
“그렇긴 합니다만…. 대모께 달리 숨겨진 진의라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대장군은 페인의 시선을 한순간 피했다. 그러다 다시 페인과 시선을 마주했다.
「고민이 짧았어.」
‘그래. 뭔가 마음을 정하고 온 모양이야.’
「굳이 속마음을 떠볼 필요도 없었네.」
어차피 대장군은 본심을 말할 예정이었다.
“왕궁에서는 대모의 요청에 따라 수군을 지원하기로 했소. 이것이 정말로 이무기를 해치울 수 있는 기회라면 놓칠 수 없다는 게 왕궁의 판단이오.”
“전하의 판단도 포함된 겁니까?”
“그런 셈이오.”
“그런 셈이라는 대답으로는 부족합니다.”
“…전하께서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라고 고쳐 답하면 되겠소?”
“대부님이 왕궁의 판단을 거의 대행하듯 하고 있겠네요.”
“우리의 사정을 빠르게 이해한 것 같아 다행이오.”
“그래서 대모가 어쨌다는 겁니까?”
“대모는 언제나 속에 칼을 품고 있는 인물이오. 이무기를 해치울 때 그대의 뒤를 노릴 수 있소.”
“그 말씀은 믿기 어렵습니다.”
페인이 계속해서 대모를 옹호하고 있다.
그래서 대장군은 미리 준비한 말을 꺼냈다.
“대모는 역모를 꿈꾸고 있소.”
「…알고 있었네?」
“그걸 대장군이 어떻게 아십니까?”
“우리에게도 듣는 귀가 있기 때문이오.”
* * *
성공적으로 도깨비 취락을 토벌한 대모는 온종일 불만족스럽게 인상을 쓰고 있다.
와중에 그녀를 치하하러 온 대부는 거듭 강조하는 중이다.
“너무 자신을 깎아내리지 말거라. 세상이 넓으니 때로는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귀인들 또한 있는 법이다.”
“대부. 저랑 다이얀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넋을 잃고 구경만 했어요.”
“그래도 앞서 촌락의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았느냐.”
“했죠. 그때 촌락을 습격한 구울 무리를 해치우고 자신 있게 강령술사를 돌아봤죠. 하…. 당시 그 사람 눈에는 제가 얼마나 하찮게 보였을까요?”
대모는 수치스러웠다.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허탈함도 느끼고 있다.
“너는 하찮게 여겨질 사람이 아니다. 강령술사에게 남다른 혜안이 있다면, 그도 결코 너를 하찮게 보진 않았을 게다.”
“저랑 다이얀은 평생을 훈련했어요. 평생을 실전에서 싸우며 성장해왔죠. 정말 죽도록 노력해왔는데 오늘 강령술사의 제물방류를 보고 벽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도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노력해왔을 게다. 우리는 아직 그자에 대해서 잘 모르지 않느냐.”
“강령술사라면서 강령술은 쓰지도 않았어요. 옆에 있는 흑마법사는 흥이 떨어졌다면서 나서지도 않았고요.”
“우리와 그자들은 서로 영역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어차피 사신단이 돌아갈 때 헤어질 인연들이 아니더냐. 그런 자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자신을 깎아내리는 건 좋지 않다.”
대부는 변함없이 대모의 편이었다.
대모는 그의 걱정하는 눈빛을 확인했다.
“…그런 거겠죠. 대부 말씀이 옳아요. 저도 알고는 있는데 그런 엄청난 걸 보고 나니까 그냥…. 뭔가 초라해진 기분이라서요.”
“괜찮다. 괜찮아. 또 누군가는 너를 보며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을 게다. 사람들 사는 세상이라는 게 그런 법이 아니겠느냐.”
대모는 애써 미소를 만들었다. 만들어진 미소를 대부에게 보여줬다.
“언제나 고마워요. 대부.”
“허허허. 너의 그릇을 모르는 왕궁 놈들의 따가운 시선은 신경 쓰지 말거라. 너를 향한 음해가 있다면 이 대부가 전부 막아줄 테니, 무인으로서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수행하거라. 주눅 들지 말고.”
“헤헤…. 알겠어요. 이무기도 힘내서 잡아볼게요.”
그때 대부는 대모가 어릴 적 모습이 겹쳐 보였다. 방금 대모의 웃음이 어릴 적 대모를 떠올리게 한 것이다.
“……대장군이 지원한다는 건 알고 있느냐?”
“물론이죠. 덕분에 조금 더 용기가 생겼어요. 강령술사랑 대장군이랑 그 흑마법사까지…. 모두가 힘을 합치면 이무기는 해치울 수 있을 거예요.”
“대장군을 조심하거라.”
“네?”
대부는 대모의 어깨를 살포시 잡았다.
그는 진심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혹여나 누가 들을까 목소리를 낮추면서.
“도망칠 곳 없는 갑판 위다. 앞은 이무기가 가로막고, 뒤는…….”
대부는 마음을 다잡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대장군은 전하와 왕궁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무슨 결단이라도 서슴지 않는 자다.”
“설마요. 대장군은 어려서부터 제 검술을 봐주셨던 사부 같은 분이신걸요. 대부만큼은 아니어도 절 예뻐해 주시는 몇 안 되는 왕궁 분이세요.”
“너처럼 무공이 뛰어난 자는 눈앞의 적군보다 등 뒤의 칼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부….”
“약속하거라. 바다 위에서 절대로 대장군에게 등을 내주지 않겠다고.”
“무섭게 왜 그러세요?”
“어서 약속하라고 하였다. 무엇보다 너를 위한 일이다. 만에 하나라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
“나는 왕궁이나 전하보다 네가 더 소중하다. 대장군이나 왕궁에 있는 신하들보다, 친딸처럼 키운 너를 우선해서 생각한단 말이다. 그러니까 내 말을 들어라. 그런 전장에서는 대장군에게 등을 내줘선 안 된다.”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호소하는 눈빛.
대모는 대부의 그런 눈이 역겨웠다.
“알겠어요. 대부.”
“정말이냐? 약속할 수 있겠느냐?”
“약속할게요. 제가 다이얀 다음으로 신뢰하는 사람이 대부거든요.”
“…허허. 와중에 두 번째라니 서운하구나.”
* * *
“대모는 전하와 왕가의 핏줄을 모조리 학살하고 자신의 무사들과 함께 무인의 가문으로 새로운 왕가를 세울 계략을 꾸미고 있소. 이른바 ‘물갈이’라고도 표현하오.”
대장군에겐 사실에 근거한 확신이 있었다.
“대모는 마귀에 당해서 친족을 잃었소. 그런 대모를 친딸처럼 키워준 대부까지도 물갈이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소.”
“대모의 인품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 그거였군요.”
“그렇소. 또한 그런 방식으로 역모를 성공한다면, 디아나라는 국명을 써도 그건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어버리는 것이오. 대모는 백주술에서 흑마법으로 타락까지 꾀하고 있으니 우리의 아마카라교가 무너지고, 훗날 대모는 타락한 승천자처럼 변하여 이 나라에 신앙적 부패를 가져오게 될 것이오.”
“그렇군요. 인품에 문제가 있으니까…. 대부를 포함해 왕가를 몰살한 업보, 흑마법으로 타락한 업보. 그 정도면 훗날 마귀가 될 사유로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훗날 자신이 마귀가 될 것을 대비해서 낙인의 돌을 가지고 있던 거네.」
“나라를 살리는 의인이 아니오. 자신의 야망을 펼치다 나라와 함께 몰락하는 역적이자 최악의 마귀가 되는 것이오.”
“전하께서는 이러한 저희의 밀담을 알고 계십니까?”
“오늘 그대와 나의 밀담은 전하, 대부를 비롯해 그 어떤 신하들도 모르고 있소. 내가 대장군의 명예와 목숨을 걸고 독단으로 제안하는 것이오.”
대장군은 또박또박 말에 힘을 주었다.
“그대가 바다 위에서, 나와 함께 대모를 처단해 주었으면 좋겠소.”
“거절한다면 혼자서라도 하십니까?”
“대모의 무공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그대와 힘을 합치는 편이 더 좋겠지만. 그대가 내 제안을 거절한다고 하여도 대모를 처단할 각오는 되었소.”
“각오만으로는 힘들 겁니다.”
“이미 명령을 내려놨소.”
“명령…?”
“우리는 때가 되면 행동할 것이니 그대의 대답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오.”
“…더 확실하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군요. 제 힘을 빌려서.”
“그대에게 굉장히 염치없고 무례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소. 그대가 당장 내 목을 베어낸다고 하여도 그대를 욕할 수 없는 입장이오.”
그래도 대장군은 페인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의 목숨은 이 나라에 귀속된 것이오. 나는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더러운 돼지가죽이라도 뒤집어쓸 수 있소.”
페인은 시선을 내린 채 방독면의 부리 부분을 괜스레 만졌다.
그러다가 대장군에게 예리한 물음을 던졌다. 불만과 적개심이 섞인 목소리로.
“…늙은 왕과 디아나의 현 상황에 문제가 있다는 건 인지하고 계십니까? 대장군.”
그러자 대장군은 즉답했다.
페인이라면 이런 것까지 물어볼 줄 알았다는 듯이.
“전하의 왕위를 이을 총명한 세자가 있소.”
왕궁에 후계자가 있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전하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대장군인 나의 책무는, 왕가를 대모의 칼질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오. 그게 대장군으로서 이 나라를 위한 일이오.”
“낙인의 돌은 어쩔 겁니까?”
“이무기와의 격렬한 전투로 대모가 전사하였으니 문제라도 있겠소? 대모는 강령술사에게 낙인의 돌을 넘겨주라고 유언을 남길 것이오.”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는 페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