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99화 (99/181)

19. 뇌성이 울려퍼지다 (4)

바다를 젓는 노와 커다란 돛이 세 개씩 달린 목조 범선 열다섯 척.

그중에 열두 척은 대장군의 지휘를 받는 수군이며, 다른 세 척은 대모의 지휘를 받는 무사들이 승선한 것이다.

범선 하나에 사람이 백 명 안팎으로 승선하였다. 따라서 이번 ‘카프하니드 토벌 작전’에는 대략 1500명이 투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장군과 대모는 서로 다른 지휘함에 승선하였다. 페인과 셰르카는 거미 악귀와 소수의 흑기사들만이 있는 별도의 범선에 승선하여 먼바다를 향하는 중이다.

“거기서 너는 뭐라고 답하였느냐?”

“나랑 손을 잡은 대모를 해친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경고했지.”

그것이 지난밤 페인의 대답이었다.

“대모는 실력이 출중하지만, 배가 침몰하면 무력하게도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인간이다.”

「아닌데? 물의 마법사 파보크는 살아남을걸?」

각 범선에는 작살 발사대가 여러 대 설치되어 있다. 발사대마다 장전된 크고 흉악한 작살은 부적을 하나씩 달고 있는데, 부적의 종류에는 폭발하는 것과 불태우는 것으로 두 종류가 있었다.

대장군의 범선 열두 척이 화력을 모아 대모의 지휘함을 집중 공격한다면 그녀에겐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 카프하니드와 싸우면서 대장군의 범선 여러 척이 침몰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도 대장군이 지금 대모를 노리지 않는다는 건, 그는 대모를 제거하는 것보다 카프하니드 토벌을 우선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 같다.

「아니면 너의 경고 때문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거겠지.」

“페인. 내가 네 생각을 맞춰보겠다.”

“해봐.”

“대장군이 처음부터 대모를 노려서 손을 잡자고 하였다면, 너는 얼마든지 대장군의 편에서 대모를 노렸을 것이다.”

셰르카는 대장군이 타고 있는 지휘함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너와 손을 잡기로 ‘먼저’ 약조한 건 대모다. 반면에 대장군은 한발 늦었지.”

“….”

“그가 보란 듯이 대모의 등을 노리는데 가만히 방관만 한다면, 너는 어쨌거나 거래를 약조한 대모를 배반한 셈이 된다.”

만약 페인이 대장군의 진의를 모르고 있다면, 오늘 대장군이 대모를 갑자기 죽이든 말든 이쪽은 몰랐던 일이니까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래서 너는 대장군에게 경고한 것이다.”

대모와 대장군.

누구의 편을 들더라도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입장이다.

누구의 편을 들더라도 낙인의 돌은 손에 들어온다.

누구의 편을 들더라도, 오늘 도망칠 곳 없는 바다 위에서 둘은 아마 싸우게 될 것이다.

「대장군이 이기면 대모와 무사들은 전멸하겠지. 대장군이 대모의 유언을 조작해서 네가 낙인의 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줄 거야.」

늙은 왕은 수명이 다하여 죽고 예정된 왕세자가 디아나를 물려받게 될 것이다.

「반대로 대모가 이기면 대장군과 수군이 전멸. 너는 그대로 거래를 속행해서 대부를 죽인 후 디아나의 머리가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새로운 여왕의 신뢰까지 가질 수 있게 될 거야.」

왕가 사람들이 모조리 죽임당한 후 대모가 직접 여왕이 되어 디아나를 바꾸게 될 것이다.

“네 성격이라면 이런저런 미래를 그리며 어떤 것이 옳은지 고민하겠지만 이미 마음은 정해졌다.”

셰르카는 확신했다.

“너는 방관하지 않고 대모를 돕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장군은 너의 경고를 들었으니, 대모가 자연스럽게 죽거나 네가 모르는 사이에 죽이는 방향을 잡을 것이다.”

그러자 페인은 대장군과 대모의 지휘함을 번갈아 보더니, 셰르카의 확신과는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내 마음이 대모 쪽으로 기울었다는 건 맞췄네.”

“마음만? 너는 대장군에게 확실한 경고도 하지 않았느냐.”

“어떻게 행동할지는 조금 더 지켜보고 결정할 거야.”

대장군이 한발 늦었다. 함께 대모를 치고 싶었으면 진작 말했어야 했다. 대장군이 말을 꺼내기 전에 이미 대모와 거래를 약속하였기 때문에, 그녀를 배반하거나 방관하는 건 싫다. 그럴 바에 차라리 대모의 편을 들고 싶다. 그게 페인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페인의 머리는 차가웠다.

“대모가 정말로 카프하니드에 당해서 죽을 수도 있는 거잖아.”

일단 대장군에게 경고는 했다.

대모를 해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이 바다 위에서 적극적으로 대모의 편을 들어준다는 건 적극적으로 대장군을 적대한다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바다에서 대장군을 적대한다는 건, 필요하다면 대장군과 그의 병사들까지 몰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대모의 편을 들어주면서 대장군을 막고 싶지만. 그렇다고 이 바다까지 나온 병사들을 죽이는 일에 동참하는 건 싫어.’

「대모가 정말로 카프하니드에게 당하여 죽는다면 별 수 없어. 네 경고를 무시한 대장군에게 당해서 미처 손을 쓰기 전에 죽는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고.」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너는 남겨진 무사의 편에 서서 대장군과 수군을 박살 낼 수 있어. 무사들의 숫자가 적으니까 네가 나서지 않으면 힘들겠지.」

죽이고 싶지 않은 사람(병사)들을 죽이는 일.

「아니면 대모의 죽음을 외면하고 대장군의 편에서…. 속 편하게 방관하는 방법도 있지. 대모를 잃고 남겨진 무사들을 죽이는 일에 동참해도 되고.」

도와야 하는 사람(무사)들을 돕지 않고 외면하는 일.

많은 이유와 가정이 있지만, 결국 오늘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페인이 원하는 결과는 따로 있었기에.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낙인의 돌을 손에 넣기 전까지는.”

“희망적으로 보자면, 네 경고를 들은 대장군이 대모를 죽이겠다는 결정을 번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강령술사의 경고다.

대장군은 강령술사라는 인물의 경고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해 보니까 오늘 대장군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거잖아?」

* * *

대모의 지휘함.

그녀의 오른팔은 다이얀이라는 덩치 큰 무사다.

“여기가 육지였으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을 거야.”

“하지만 대장군이 정말로 저희의 등을 노리고 있다면 지금 당장 강행하는 편이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이무기…. 카프하니드와 교전 중에 범선을 몇 척 잃을 것도 고려해서 말입니다.”

대모는 연신 담배를 태웠다. 입술 사이로 뭉게뭉게 흩어지는 연기가 평소와는 달리 난잡하다.

“나도 지금 그게 가장 큰 의문이라고.”

“…어쩌면 강령술사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강령술사가 왜?”

“대장군이라면 저희가 강령술사와 거래를 약조했다는 걸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만에 하나라도 강령술사가 저희 편에 서게 된다면 대장군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대모는 페인이 승선한 범선을 바라보았다.

이 세계에 존재해선 안 될 이형의 생명체들이 범선에 가득하다.

‘강령술사는 존재만으로도 만인의 경외심을 이끌어내는 기운이 있었지….’

녀석들 한 마리의 힘이 얼마나 강대할까. 한 마리의 힘이 도깨비보다 강하다고 하여도 충분히 그럴 법하다.

‘저쪽 대륙에는 우토 말고도 우리가 모르는 대단한 존재들이 그를 따르고 있을 거야.’

따르는 사람이 있다면 따를만한 사람이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지금 범선 열두 척을 가진 대장군이 행동을 미루고 있는 것도 납득이 된다.

‘대장군은 강령술사의 인품에 대해서도 고뇌하고 있을 테니…. 당장 대놓고 내 등을 찌르자니 강령술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어.’

대모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다이얀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만약 제가 대장군이라면, 강령술사가 카프하니드를 상대하고 있을 때 뒤에서 대모를 노릴 것 같습니다.”

“카프하니드를 상대하고 있을 때를 노려서…. 일리가 있네.”

일리가 있다. 강령술사가 도깨비를 그렇게 했던 것처럼 카프하니드도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다면, 애당초 수군의 지원 따위는 필요 없다고 했을 것이다.

따라서 강령술사는 카프하니드를 상대할 때 어느 정도는 전력을 발휘해 싸울 것 같다. 그러면 강령술사의 사각에서 대장군이 대모를 노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오로지 대모만을 끔찍이 아끼는 대부가 괜히 겁이나 주려고 경고한 건 아닐 겁니다.”

“배가 침몰하는 수를 노리겠네. 충돌해서 갑판을 연결하는 백병전으로는 우리를 잡기 어렵다고 생각할 테니까. 이 바다 위가 대장군에겐 절호의 기회였어.”

“저희 쪽에서 먼저 대장군을 공격하는 건 어떻습니까? 강령술사가 도와주거나 최소한 눈이라도 감아주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먼저 대장군을 치는 건 쉽지 않아.”

대장군을 죽이고 살아서 육지로 돌아가겠다면, 대장군이 이끌고 있는 범선들과 병사 전원을 바다에 수장해야만 한다.

그래야 대장군과 휘하 병사들이 카프하니드에 당했다고 말이라도 맞출 수 있다.

“육지도 아니고 배 위에서 수적 열세를 극복하는 건 자신이 없어. 강령술사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친다면.”

강령술사 없이 세 척으로 열두 척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떠오르질 않는다.

“카프하니드가 대장군 쪽 머릿수를 줄여주던가….”

뭐가 되었든 지금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따라서 대모는 일단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면 내 뒤를 노린 대장군을 강령술사가 처단하는 쪽이 나한테 유리하겠지.”

“어쩌면 정말 아무 마찰도 생기지 않고 카프하니드만 토벌한 채 육지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긴 합니다.”

“맞아. 우리한텐 그게 가장 이상적인 결과야. 이 나라의 왕궁 놈들은 다 쓸모없지만 대장군만큼은 달라.”

“대장군은 바위 같은 기개를 갖고 있습니다.”

대장군은 대모를 죽이고 싶어 하지만, 대모는 대장군이 이 나라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적으로 삼아 죽이는 것보다 아군으로 포섭하는 편이…”

부우우우우우!!!

커다란 소라를 불러서 울리는 뱃고동이 생각을 멈추게 했다.

번개가 끓는 먹구름이 저 수평선 위쪽 하늘에서 대자연의 공포처럼 엄습해오고 있다. 동시에 대모의 코끝을 진한 혈향이 찔렀다.

페인의 혈향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그때 다이얀이 외쳤다.

“어인입니다!”

다이얀은 대모의 지휘함과 나란히 항해 중인 대장군의 범선 하나를 가리켰다.

- 아아아아아…!!!

어인들이 대장군의 범선에 뛰어들고 있었다. 저쪽에서는 벌써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카프하니드는?!”

진하고 역겨운 혈향이 풍겨온다.

대모는 그곳의 먹구름이 있는 수평선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태산 같은 덩치에 무수한 촉수를 자랑한다던 카프하니드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웬 유령선 하나가 가까운 전방에서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놈이 끌고 다닌다는 유령선입니다!”

유령선의 갑판 위에 어인들이 아주 많았다.

“사람을 유혹한다는 세이렌도 저곳에 있을 거다!”

그때 다이얀이 칼을 뽑아들었다.

동시에 무언가 범선의 아래쪽에서 찐득하게 긁는 소리를 냈다.

처벅처벅처벅! 끼기긱…!

“어인들이 갑판에 오르고 있습니다!”

대모도 칼을 뽑아들었다. 그녀는 무사들이 들을 수 있도록 소리쳤다.

“어인은 바다의 구울이다! 분명 세이렌이 저 유령선에서 놈들을 통제하고 있을 것이다!”

- 그어어어!!!

곧이어 비린내 풍기는 어인들이 갑판 위로 기어올라서 혐오스러운 낯짝을 들이댔다.

첨벙! 첨벙!

어떤 녀석들은 갑판을 기어오르고 어떤 녀석들은 수면 아래에서 곧장 뛰어올라 갑판에 떨어졌다.

무사들은 즉각 전투에 임했다.

“다이얀! 어인을 맡아라!”

“예! 대모!”

무사들은 악령을 상대한 경험이 많았다. 그래서 생전 처음 보는 어인 무리를 상대로도 전혀 기죽지 않고 능숙하게 살갗을 베어내며 대항했다. 그러면서 높은 돛대를 따라 전투를 알리는 깃발을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그그그극…!”

“불결한 놈들!”

스억! 스억!

대모는 유체이탈 능력으로 무사와 어인들 사이를 질주하며 칼을 놀렸다.

그리고 그녀는 갑판에 설치된 작살 발사대까지 달려가서 발사대를 맡은 자들을 보호했다.

“유령선을 노려라!”

대모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열댓 발의 작살이 전방의 유령선을 향해 쏘아졌다. 작살에 줄이 있으면 적함을 끌어와 백병전을 하는 것이고, 지금처럼 줄이 없으면 폭발하는 부적이나 불태우는 부적을 붙여 적함을 원거리에서 침몰시키는 용도가 된다.

쐐애애애앵…

대모는 날아가는 작살에 시선을 고정했다. 시선을 고정한 채로 생각했다.

‘카프하니드의 혈향은 유령선 아래쪽에서 풍겨오고 있다.’

하지만 카프하니드는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니.

‘상처를 입고 싶지 않다는 건가. 졸개들만 내보내서.’

애당초 카프하니드가 범선에서 쏘아낸 작살에 맞아 상처를 입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카프하니드는 전에 강령술사가 승선한 사신단의 범선을 노렸다가 돌아갔다고 했다.

이는 카프하니드가 강령술사의 혈향에 이끌려 그를 찾아갔지만, 생각보다 그의 업보가 가벼워서 돌아갔다는 것이다.

……혹은,

‘졸개들을 내보내서 사냥감의 힘을 빼낸다는 의도.’

카프하니드는 혈향에 이끌려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의 업보가 커서, 일단 후퇴하고 더 많은 어인들을 준비하여 나중을 노리기 위해 돌아갔을 수도 있다.

‘강령술사를 집어삼키고 싶지만 그의 힘을 경계하여 이렇게 힘을 빼낸다는 의도일 수 있다.’

당장 카프하니드가 아군의 범선들을 노린다면 어인의 희생 없이 몇 척이고 침몰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수면 아래에 숨은 채 어인들만 내보내고 있다.

‘강령술사가 어인을 상대하는데 너무 많은 기를 소모해선 안 된다.’

대모가 그렇게 추측하던 순간이었다.

퍼퍼펑……!

유령선을 향해 쏘아진 작살들이 허공에서 터져버렸다.

유령선 앞에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세워진 것처럼.

* * *

먹구름과 천둥번개가 하늘을 뒤덮고 거센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어인들이 성난 파도를 뚫고 갑판 위로 난입한 상황이다.

“그어어…! 그그극그극…!”

“키에에엑!”

「익사하는 인간 같아. 울음소리가.」

어인들은 쉴 틈 없이 나타났지만, 다행히도 악귀의 상대가 되진 않았다.

쩌억!!

거미 악귀의 턱에 물어뜯겨서 내장을 쏟아내고 흑기사의 발길질 한 번에 사지가 부서지는 놈들이었다.

“난 이제 바다 냄새가 싫어졌다!”

“퀴이익!”

악귀에게도 손쉽게 당하는 어인들은 셰르카나 이리에게 상처 하나도 내지 못할 것이다. 녀석들과 악귀 사이에는 명백한 무력의 차이가 있었으며, 녀석들과 우리 사이에는 압도적인 격차가 있었다.

심지어 지금은 갑판 아래나 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며 싸울 필요조차 없다. 이 범선에는 우리만 있다.

“그거거걱…!”

나는 거미 악귀 사이를 애써 뚫고 들어온 어인 한 마리를 마주쳤다. 갈비뼈 사이의 아가미에서 바닷물과 핏물을 질질 흘리는 놈이다.

쩌억!

녀석의 커다랗고 공허한 입속에 도끼를 찍었다.

“케겍…!”

「이런 좆밥들은 악귀한테 맡기자고.」

나는 도끼의 기다란 손잡이를 주먹을 내리쳤다.

콰지지직!!!

“거거거거걱…!”

녀석은 턱부터 사타구니까지 일자로 갈라져서 혐오스러운 덩어리들을 쏟아내며 쓰러졌다.

다른 범선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신단의 배를 타고 왔을 때보다 머릿수가 많아졌어.’

「카프하니드가 어인을 더 많이 끌고 왔다는 건가?」

카프하니드.

녀석의 거대하고도 사악한 존재감이 저 앞쪽의 깊은 바닷속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존재감이 가려질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어인들의 존재가 수면 아래에 득실대고 있다.

‘너무 많아.’

「야! 이거 우리 힘 빼놓고 덮치려는 거 아니야?!」

‘맞아. 그리고 다른 목적이 하나 더 있어.’

타닷!

셰르카는 내 뒤를 노리던 어인들을 검은 연기로 조각조각 부쉈다.

“페인! 이건 뭔가 이상하다! 카프하니드는 아래에 숨어서 나오지도 않고 전에 보였던 유령선과 세이렌은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 어인들의 숫자는….”

카프하니드도 유령선도 수면 아래에 숨어서 보이질 않는다. 오로지 어인들만 달려들고 있다.

“내 힘을 경계하는 거야. 그래서 지금처럼 어인들을 미친 듯이 내보내는 거지. 전과 다르게 유령선을 숨긴 이유는 어인들을 통제할 세이렌을 보호하기 위함인 것 같고.”

“어쩐지 녀석의 전략에 변화가 생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잠깐, 다른 목적이 하나 더 있다며? 어인을 보내서 이쪽 힘을 뺀다는 목적 말고 또 뭐가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 또 다른 목적이 있다니?”

전에 대장군은 내게 말했었다.

- 녀석의 예상보다 부족했던 것이오.

- 그대의 액운이.

“…나를 더 맛있게 요리하고 있는 거야.”

지나치게 많은 어인들.

끝도 없이 어인을 보내서 이쪽의 힘을 뺀다.

그러면서도 내 영혼에 악을 쌓는다.

방독면 안에 채워진 성수는 결코 무한하지 않으며, 설령 성수로 악을 씻는다고 하여도 존재 자체에 쌓인 업보는 영구적이다.

물론 악을 가진 존재들이기에 죽였을 때 더 많은 ‘악’을 흡수하게 되지만, 무고한 사람을 죽였을 때처럼 큰 ‘업보’가 쌓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인들의 공격이 언제 끝날 줄 알고 계속 싸워?」

그게 문제다.

이 바다에 어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끝내야 해.”

“잠깐…. 페인.”

셰르카가 뒤쪽을 보고 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뒤쪽뿐만 아니라 사방에 있는 대장군의 범선들.

우리와 마찬가지로 갑판 위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범선들. 그래서 아까부터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처럼 ‘어인’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었다.

“다들 세이렌에 홀렸다….”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던 것이다. 아군을 베어내고 바다에 떨어뜨리며 단체로 미친 것처럼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후방에 위치한 대모의 지휘함.

“대모도 예외는 아니었구나.”

쐐애애애앵…

부적 붙은 작살 열댓 발이 이쪽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저 미친 새끼들이!」

저런 작살에 맞는다고 셰르카나 내가 죽진 않겠지만, 범선의 일부가 부서지거나 태워지면 위험하다.

“슈탈룬헤르토툼!”

그 즉시 셰르카가 영혼의 벽을 세웠다. 어두운 연기처럼 보이면서도 그림자를 닮은 벽이 허공에 펼쳐졌다. 그렇게 날아드는 작살들을 막아냈다.

퍼퍼펑……!

「저 새끼들 왜 저래?! 왜 우릴 쏴?!」

‘세이렌한테 홀렸다고 말했잖아.’

쐐애애앵…

대모의 지휘함뿐만 아니라 대장군의 다른 범선들도 이쪽으로 작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셰르카는 이리저리 손아귀를 뻗으며 영혼의 벽으로 범선을 보호했다.

「부적이 붙은 작살은 위험해! 어인보다 더 위험하다고!」

「다 터뜨려서 죽이자! 아군이지만 이미 홀렸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멍청한 악령 녀석! 그것도 카프하니드의 노림수란 말이다!”

세이렌한테 홀린 아군을 죽이는 건 어인을 죽이는 것보다 적은 ‘악’이 쌓인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업보’는 어인을 죽이는 것보다 몇 배는 크게 돌아오리라.

그리고 본질적으로 카프하니드는 나의 ‘악’을 노리고 있다. 만에 하나라도 내가 녀석에게 당한다면 목숨 하나를 잃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리라.

최악의 경우엔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잃어버린다.

그때처럼.

그리고 지금 바다 위에서 함께 싸우는 자들까지 전멸당하는 수가 있다. 그리고 나의 악을 흡수하여 강해진 카프하니드가 이 세계에 어떤 폭풍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리고….

‘절대 안 돼. 두 번 다시는.’

몇몇 범선은 줄이 달린 작살을 쏘아대고 있다. 그러면서 이쪽으로 돌진해오고 있다. 백병전까지 하려는 것이다.

“이리! 네가 어인들을 상대해라! 나는 작살과 범선의 접근을 차단하겠다!”

“퀴익!”

“그리고 페인!”

나는 도끼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어렵다는 거 안다! 나도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네가 나서기도 전에 바다에 수장되는 일은 없도록 막아줄 테니까!”

어인이나 작살 따위는 그녀가 막아준다고 한다. 상황이 지금보다 더 악화되는 건 그녀가 막아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온전히 이쪽에 집중해야 한다.

실패했을 경우의 결과가 평소와는 다른 상황.

심장이 뛰고 손이 떨린다.

그동안 의미를 잊고 있었던 죽음의 공포라는 것이 온몸의 근육을 차갑게 굳힌다.

“네가 세이렌을 해치워야 한다!”

이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을 떠올려서 실행하는 것.

해내지 못하면 나는 모든 걸 잃어버린 채 혼자서 부활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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