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101화 (101/181)

20. 벼랑 끝에 피어난 꽃 (1)

“차원침공을 발동한 다음엔?”

“수면 밑에 숨은 개자식들을 끄집어낼 거야.”

카프하니드는 짙은 먹구름과 뇌성을 몰고 다니며 내 마음에 공포를 주입하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득한 심연 아래에 득실대는 어인 무리와 거대한 카프하니드를 상상하고 있으면, 누구라도 두렵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놈이 몰고 온 어인 무리와 먹구름이 도리어 놈의 심장을 터뜨리는 수가 되리라.

‘더 깊게 들어가. 멈추지 마.’

갑판 아래에서 노를 젓고 있는 가뭄의 생존자들은 인간보다 힘이 강하고 쉽게 지치지 않는 악귀들이다.

쐐애애앵…!

콰콰앙!!

세이렌에 홀린 범선들이 이쪽으로 작살을 쏘아댔지만 그럴 때마다 셰르카가 영혼의 벽을 전개하여 막아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범선을 뒤집으려는 파도까지 부숴주었다.

쿠르릉!!

카프하니드 무리의 중심에 들어오니 실로 위압적인 뇌성이다. 폭음처럼 들리는 뇌성은 몸속에 있는 액체를 울렸고 점멸하는 번개는 이 세계의 금지된 구역에 들어온 것을 경고하는 듯하였다.

‘아직인가….’

「차원침공을 발동하기엔 너무 밝아!」

내가 타고 있는 범선은 가뭄의 생존자들 덕분에 다른 범선들보다 속도가 빨랐다. 그래서 범선의 후미에 붙은 아군 범선들로부터 거리는 금방 벌어졌다.

「더! 더 들어가야 해!」

작살의 공세는 줄었지만 어인들은 더욱 격렬하게 모여들었다.

적진의 한복판에 들어온 것 같다. 온 사방의 수면 밑에 꿈틀거리는 그림자들이 전부 뒤틀린 사지와 지느러미를 달고 있다.

‘더….’

잇달아 파도가 노골적으로 범선을 덮치려고 하면 영혼의 벽이 전개되었다. 갑판 위에서 거미 악귀와 흑기사가 종종 어인에게 당하여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게 왜 아직도 안 되는 거야?!」

‘더 들어가야 해….’

나는 악귀가 죽을 때마다 그 숫자를 채우기 위해 다시 악귀를 소환했다. 녀석들은 혐오스러운 어인과 혈투를 벌이면서도 나를 보호하였고 이리는 지친 탓에 움직임이 굼떠졌지만 여전히 잘 싸우고 있다.

언제 범선이 침몰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어인들이 어떤 도구를 가져와서 범선 밑바닥을 뚫는다거나, 카프하니드가 직접 움직여 어인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범선을 노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카프하니드는 그러지 않고 있다.

어인들은 그러지 않고 있다.

“그거거거거어어!”

“네놈들은 지금 요리를 할 입장이 아니야….”

콰콰콰아!

내 앞에 달려든 어인을 흑기사의 검기가 부숴버렸다.

때마침 내 안의 악령이 외쳤다.

「됐어! 여기는 충분히 어두워!」

우리는 먹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운 검은 바다의 한복판까지 들어왔다.

카프하니드.

놈이 지금쯤 깨달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깨달았어도 이미 늦었을 것이다.

나는 사냥감 따위가 아니다.

‘차원침공.’

짙은 먹구름이 뒤덮은 하늘. 그 먹구름을 아래에서 다시 뒤덮는 거대한 소환진이 전개되었다. 지금까지 위압적으로 몰아쳤던 번개의 섬광이 차원침공의 붉은 번개에 잡아먹혀 핏빛으로 변했다.

이윽고 공중에서 수백 마리의 불나방이 각각의 소환진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불나방으로 뭘 어쩔 생각이냐?”

「끄집어낼 거라고 했잖아!」

“우리에겐 작살이 있어.”

나는 흑기사들에게 명령하여 작살 발사대를 전부 조작했다. 이윽고 하늘로 작살을 쏘아 올릴 수 있었다.

하늘에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불나방들은 위쪽으로 쏘아진 작살을 하나씩 턱으로 물어 낚아챘다.

“셰르카. 영력에 여유는 있어?”

“큰 소모는 없었다. 하지만 이리는 지쳤으니 녀석에게 전력을 기대하진 마라.”

“알겠어.”

그 즉시 작살을 문 일부 불나방들이 바다를 향해 수직으로 돌진했다.

* * *

어두운 바닷속에 몸을 던진 불나방.

쿠르르륵…!

밤에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녀석들의 눈은 심연에 숨은 존재들을 마주했다. 수많은 어인들이 하나의 층을 이루다시피 수면 아래에 도사리고 있었고, 그보다 더 깊숙한 곳에는 카프하니드의 붉은 촉수에 휘감긴 유령선과 세이렌이 있던 것이다.

- 아아아아아아…

유혹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세이렌은 결코 미녀가 아니었다.

어인들과 크게 다를 것도 없이 혐오스러운 생김새였다.

갈비뼈를 따라서 그어진 아가미에 무엇인지도 모를 지렁이 같은 생물이 머리를 처박은 채 꿈틀거리고 있다. 눈꺼풀도 없이 생선을 닮은 눈깔에, 독이라도 품고 있을 것만 같은 화려한 비늘로 혐오스러운 육체를 덮고 있다.

그리고 하반신 전체가 영락없는 생선의 것이다.

- 아아아아…

세이렌의 노래를 들은 어인들이 불나방에게 달라붙었다. 불나방이 어인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세지만 머릿수가 부족하다. 게다가 물속에서 어인들은 불나방보다 빠르게, 더욱 능숙하게 헤엄칠 수 있었다.

쿠르륵… 쿠르륵…

어인들이 너무 많다. 몇몇 불나방은 벌써 어인들에게 잡혔다. 고기떼가 하나의 커다란 사냥감을 포위하여 산 채로 해체하는 듯했다. 불나방은 다리와 날개 따위를 뜯기고 곧 온몸이 해체되어 새빨간 선혈과 내장이 물속에 터뜨리게 되었다.

어인들이 너무 많아서 다른 불나방들도 유령선까지 내려가기 전에 모조리 붙잡힐 것 같다.

- 힉, 힉힉힉….

세이렌은 노래를 멈추고 낄낄댔다.

저 위에서 어인들에게 당하여 해체당하는 불나방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조롱했다. 녀석들이 작살을 물고 내려오고 있으니, 이쪽을 찔러서 수면 위로 낚아내려는 의도가 훤히 보인 것이다.

- ….

그 순간, 세이렌의 얼굴이 경직되고 말았다.

퍼어어…

퍼어어억…

가만 보니 물속에서 혈액과 내장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붉은 덩어리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물속을 누비며 어인들을 집어삼키고 터뜨려 죽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인들이 죽으면서 물속에 흘린 선혈과 내장과 살점 따위는 또 새로운 덩어리가 되어 다시금 어인들을 학살하는 것이다.

세이렌은 입을 크게 벌렸다.

고함이라도 지르듯 분노의 노래를 불렀다.

- 아아아아아아아…!!!

범선을 노리던 어인들까지 불러들여 붉은 덩어리를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붉은 덩어리는 어인들이 붙으면 붙을수록 더 많은 어인들을 학살하여 검은 바닷속을 붉게 물들일 뿐이었다.

- …아아아아…

세이렌은 어인들에게 후퇴를 명령했다. 자신이 있는 더 깊은 곳으로 내려오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어인들은 붉은 덩어리를 피하여 유령선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러자 바닷속을 헤집던 붉은 덩어리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지고, 약해지고, 옅어지는 것이다.

혈액과 내장과 살점으로 만들어진 붉은 덩어리였지만 가장 큰 비중은 역시나 혈액이었던 것이다. 저렇게 방치하면 결국 물살에 휩쓸려서 자연히 사라질 것들이었다.

그렇게 붉은 덩어리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가 싶었다.

- 아…!

쿠르륵! 쿠르륵!

다음은 산양이었다.

녀석들은 산양과 인간이 합쳐진 모습을 하고 있는, 잿빛세계의 낙원에서 가축으로 길러지는 악귀였다. 녀석들의 내장은 소장이나 대장 따위보다 적당히 길쭉하고 적당히 짧았다.

그런 산양들이 하늘에서 소환되어 바다에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퍼어억…! 퍼어어어…!

산양들은 터져죽었다. 불나방이나 어인보다 훨씬 많은 혈액을 터뜨리면서 꿈틀거리는 내장을 무수히 흩뿌렸다. 그것이 또 붉은 덩어리가 되어서 불나방들을 집어삼킨 채 쇄도해온다. 심지어 어인이 헤엄치는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말이다.

- 아아아아아!!!

유령선 근처에 모여들었던 어인들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려고 한다. 세이렌도 어인들 사이에 섞여서 도망치려고 한다.

파앗!

그 순간 붉은 덩어리가 그물처럼 펼쳐졌다. 그물처럼 펼쳐짐과 동시에 밧줄을 핏물로 감싼 작살들이 유령선에 연달아 처박혔다. 그 중심에 있던 세이렌은 생선을 닮은 하반신에 작살을 맞고 말았다.

- 꺄아아아아아아…!!!!

* * *

이제 어인들은 오합지졸이 되었다.

페인은 아직 도망치지 않은 어인들까지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주문을 외웠다.

‘영력 발산.’

그동안 그가 쌓은 악은 어인들을 도망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뒤에서 지령을 내리는 세이렌이 죽고 말았으니 짐승 같은 지능의 어인들이 그의 존재감을 느껴 도망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어서 그는 명령했다.

‘끌어올려.’

바닷속은 제물방류로 붉은 덩어리를 통제하기에 최악의 환경이었다. 그래도 수많은 어인, 산양, 불나방의 죽음으로 간신히 힘을 유지하던 붉은 덩어리는 유령선과 세이렌에 작살을 꽂을 수 있었다.

수면 위로 뻗어 나온 붉은 줄을 수백 불나방들이 물었다.

촤아아!

그리고 힘차게 날갯짓하여 기어코 유령선을 수면 위에 끄집어내고야 말았다.

- 꺄아아아아아아아!!!!!!!

작살에 꽂혀서 허공으로 딸려 나온 세이렌이 절규하고 있다. 그 목소리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고 오히려 끔찍이 시끄러워서 고막이 아플 지경이었다.

- 오빠!

페인의 눈에는 리인이 보였다. 작살에 꽂힌 채로 허공에 축 늘어진 리인이다.

리인은 페인을 보며 애원했다.

- 오빠…! 살려줘!

그래도 페인은 반응이 없다. 그러자 리인의 모습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 페인! 우리 아들!

아마도 그의 모친이다. 하지만 얼굴이 고무로 벅벅 문지른 먹물처럼 문드러져있다.

「너무 어렸을 때라서 기억도 안 나잖아.」

차라리 어렸을 때 잠시나마 그를 키워준, 잠시나마 원망을 숨기고 있던 부친의 얼굴이라도 하는 편이 설득력 있었으리라.

‘내 기억에 대해 무지하다는 거지.’

「그럼 환각 능력의 일종이네.」

「저거 죽이면 운 좋게 능력을 흡수할 수 있을까?」

‘악령이잖아.’

이물을 죽이거나 성불시키면 때때로 고유 능력을 얻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페인이 살면서 이물보다 더 많이 상대한, 실재세계에 있는 악령으로부터는 그런 것을 얻을 수 없었다.

“셰르카. 내가 죽이면 악이 쌓일 거야.”

“저년이었구나.”

굳이 셰르카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녀는 이미 세이렌을 죽일 생각이었다.

“아까부터 시끄럽게 울던 년이….”

그녀는 세이렌에게 검은 연기를 쏘아냈다.

으드드득!

검은 연기는 세이렌의 아가미를 통해 들어가서 입으로 빠져나왔다. 입으로 빠져나오면서 심장과 혀까지 뽑아버렸다. 마치 녀석의 몸속을 손톱으로 긁어서 뜯어낸 것 같았다.

“꼴좋다.”

풍덩!

처참하게 죽은 세이렌은 바닷속에 버려졌다.

그리고 홀연히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래서…. 세이렌과 어인들은 해결됐는데….」

이제 유령선이 수면 위에 있다.

노를 대신하는 카프하니드의 촉수 역시도 유령선을 따라서 극히 일부가 수면 위에 나타난 채다. 갓 꺼내진 내장처럼 붉으면서도 마차 바퀴보다 큰 빨판을 뻐끔거리는 기이한 촉수다.

「이것도 계획에 없던 상황이잖아.」

유령선이 떠오르면 유령선 위에 악귀를 소환하여 세이렌을 처리한다. 카프하니드의 촉수는 셰르카가 영혼의 벽으로 방어한다. 그 밖에도 다양한 상황에 대하여 대모와 대장군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이런저런 대책을 세워두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유령선은 숨어있었고, 카프하니드는 날 덮치지 않았고, 너무 많은 어인들이 있었고, 세이렌이 우리의 예상보다 더 강력한 환각 능력을 숨기고 있던 탓에 저주 저항 능력이 떨어지는 아군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제물방류에 쓰려고 준비해두었던 산양을 다 잃었고 작살이나 폭발하는 부적이나 흑사병 등을 싣고 카프하니드를 노려야 할 불나방의 대다수를 잃었다.

게다가 페인의 범선은 아군들과 동떨어진 위치에 고립된 채다.

“방독면 안에 성수는 충분하느냐?”

“비축해둔 것도 다 떨어졌어. 싸우는 도중에 ‘그 인형’을 써야 할지도 몰라.”

“낙인의 돌만 있었어도 이렇게 마음이 급하진 않았을 텐데. 악령화를 당하기 전에 끝내야겠다.”

“이번 일만 잘 끝내면 돼.”

페인은 지겹도록 악령화에 시달려왔다. 그래서일까, 그는 상정하지 못한 위협과 거대한 존재를 마주하고 있음에도 전의를 잃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도끼를 쥐고 있는 손아귀에서 강력한 의지가 느껴진다.

그때 셰르카는 그의 손아귀를 보면서 깨달았다.

‘너는 미치지 않아도 충분히 질긴 놈이었구나.’

그는 강했다. 모든 면에서.

“일단은 카프하니드가 어떻게 나오나 지켜보는 게 우선이야. 녀석이 신중하고 소심한 성향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만약 저번처럼 도망친다면…”

쿠우우우우우……

붉게 물들었던 바다가 다시금 어두워졌다. 인간이 닿을 수 없는 깊은 곳으로부터 아주 거대한 존재가 헤엄치며 무거운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바다가 어두워졌을 때 근방의 수면이 상대적으로 높아졌으며, 페인이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위기감을 느낀 셰르카는 반사적으로 어떤 주문을 발동하였다.

키이잉!

페인의 앞에 평면의 검은 소용돌이가 전개되었다.

일단 발이 먼저 움직인다. 그러면서 급히 묻는다.

“이거 어디로 가는 거야?!”

“가장 큰 범선이다!”

그 말을 끝낸 직후 카프하니드의 촉수들이 수면 위로 솟아올라서 범선을 덮쳤다.

콰지지지직!!!!

페인, 셰르카, 이리는 검은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동시에 갑판 위의 악귀들이 촉수에 깔려서 으깨졌다.

붉게 물들었던 바다가 순식간에 어두워진 건 카프하니드가 수면까지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쿠와아아아아아!!

태고의 시대, 악마의 머리칼로부터 잉태한 크라켄의 전설. 뱃사람들에게 설화로 전해지는 이무기, 일부 성서를 통해 신화로 전해지는 괴수.

악명. 가라앉은 카프하니드.

오랜 바다의 공포를 상징하듯 용오름과 같은 기세로 솟아오른 촉수들이 하늘의 불나방들을 때렸고, 이어서 수면 위로 드러난 뭉툭한 몸체의 절반이 태산과 맞먹었다. 그 중심에 박힌 공허하고도 새까만 안구는 밤에 떠오른 악마의 태양 같았다.

그리고 모든 것은 아래로 추락하기 마련이었다.

…쿠콰아아아아아!!!

녀석의 몸체 절반이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면서 재난과도 같은 파도를 둥글게 일으켜 퍼뜨렸다. 좀 전까지 페인과 셰르카가 타고 있던 범선은 촉수에 붙들려서 하늘 아래까지 올랐다가 바닷속으로 끌려가, 거대한 존재의 새로운 장난감이 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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