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벼랑 끝에 피어난 꽃 (3)
셰르카는 우산 모양으로 돌아온 이리를 손에 쥐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모는 벌어진 입을 가리고 침묵했다.
대장군은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가 떨리는 눈을 했다.
- 우와아아아아!!!
병사, 무사할 것 없이 모두가 기쁨에 찬 탄성을 내질렀다. 짙었던 먹구름의 틈새로 밝은 햇빛이 쏟아져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었고 쏟아지던 빗줄기는 가랑비가 되더니 금방 잠잠해졌다.
핏빛으로 물든 바다 위에 하나의 육지처럼 떠오른 카프하니드.
녀석의 커다란 눈알 위에서 선혈과 새끼 거미를 뒤집어쓴 페인은 심히 불안정한 호흡을 몰아쉬고 있었다.
「도망쳐.」
사사사삭!
새끼 거미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악령화가 시작되고 있어.」
페인은 카프하니드의 눈알을 박차며 대장군의 지휘함으로 도약했다.
…쿠궁!
그는 제대로 착지하지 못했다. 몸을 뜻대로 가누지 못하여 갑판 위에 쓰러진 것이다.
기뻐하던 대장군은 화들짝 놀라서 페인에게 달려갔다. 대모도 그 뒤를 따랐다.
“강령술사!”
“강령술사님!”
터억!
두 사람을 이리의 촉수가 가로막았다.
셰르카는 위협적인 어조로 모두에게 경고했다.
“아무도 우리 방에 들지 말도록 해라.”
“…?”
“만에 하나라도 들어오거나 엿보려는 자가 있다면 갈가리 찢어 죽일 것이다.”
셰르카는 이리의 촉수로 페인을 부축했다. 그대로 갑판 아래까지 페인을 데리고 내려가 버린 것이다.
주변 병사와 무사들은 웅성댔다.
“방에서 뭘 하려고…?”
“다친 곳이라도 있는 건가?”
“우리가 모르는 흑마법을 쓰려고 그러신 걸지도 몰라.”
“강령술사님의 상태가 좋지 않았어.”
그때 대장군과 대모는 페인으로부터 느껴지는 극적인 변화를 감지했다.
‘혈향이 강해졌어….’
‘강령술사의 혈향이 전보다 역해졌다.’
강령술사는 낙인의 돌을 찾아서 바다를 건너온 귀인이다.
대장군은 속으로 생각했다.
‘액운과 싸우고 있나.’
강령술사는 액운으로 인한 마귀화를 막기 위해 낙인의 돌을 찾고 있는 것이다.
‘허나 사악한 카프하니드를 죽이는 일은 액운을 일으키지 아니할 터….’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어째서 저리도 급하게 몸을 숨기는 걸까. 그리고 어째서 셰르카는 절대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그토록 강하게 못을 박았던 걸까.
‘그를 더 알고 싶지만…. 그래선 안 될 것이다.’
호기심이나 자잘한 의문은 강령술사의 범접할 수 없는 위세에 간단히 침묵하는 것이었다.
“장군님.”
대모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
“…고생이 많았소. 대모.”
“카프하니드의 사체를 어떻게 할까요?”
“끌고 가는 건 무리 같소. 게다가 놈의 사체가 무슨 역병을 몰고 올지도 모르는 일이니, 이대로 바다에 수장되는 편이 안전하지 않겠소?”
“저와 같은 생각이시네요.”
대모와 대장군.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무사와 병사 사이에도 은근히 서로를 경계하는 시선이 섞여있었다.
좀 전까지 카프하니드를 상대로 함께 싸울 때는 이런 분위기가 전혀 없었는데, 카프하니드가 죽자마자 이렇게 되는 것이다.
잠깐의 적막이 흐른 후 대모가 살갑게 웃었다.
“빠르게 구조해 줘서 고마워요. 하마터면 심연에 빠져 죽을 뻔했어요.”
“고마울 것도 없소. 지휘관으로서 당연한 선택을 했을 뿐이오.”
그러면서 대장군은 대부의 말을 떠올렸다.
- 대모는 무엇보다 이 나라를 생각하며 마귀에 맞서는 인물입니다.
- 본성은 정의롭고 선한 아이니까…. 훗날 왕궁에서도 시선을 바꾸고 따뜻하게 감싸주었으면 하는군요. 대장군.
‘나는 대모의 지휘함이 침몰 위기를 겪고 있을 때 흔들렸다. 이 나라의 진짜 위협인 카프하니드를 눈앞에 두고도….’
그렇다면 대모는 어땠을까.
지금 대모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대장군은 대모가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걸 첩보를 통해 알고 있다. 그래서 대장군은 이번 기회를 활용하여 왕궁이 모르게 대모를 해치우려고 했다.
- 허허허. 두고 보라니까요. 대모는 장차 더 큰 인물이 되어서 이 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 테니.
‘대모가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첩보가, 틀렸을 가능성이 있을까.’
살갑게 웃고 있는 대모의 표정이 진심일까.
아니면 웃으면서 속에 칼을 품고 있을까.
“돌아가기 전에 피해 집계부터 할까요?”
“그럼 나는 흩어진 범선들을 불러 모으겠소.”
대장군은 지휘함의 앞쪽으로 가서 각 범선들이 올리고 있는 깃발을 확인하였다. 그러고는 병사들에게 시켜 집결을 명령하였다.
부오오오오오! 부오오!
대모는 지휘함의 후미로 가서 다이얀이 준 종이에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몇 병사와 무사가 와서 보고를 하면 내용을 문서로 정리하는 것이다.
그때도 대장군은 대모에 대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대모 또한 대장군을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날 죽일 생각이 없었나? 직접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이 그냥 뒀으면 알아서 수장될 운명이었는데……. 그럼 대부가 내게 했던 말은 그냥 추측과 지나친 걱정으로 했던 경고라는 건가.’
대장군은 대모의 지휘함이 침몰하고 있을 때 곧바로 구조 요청을 받아주었다. 그건 사실이다.
‘강령술사님도 카프하니드와 싸우느라 바쁜 상황이었고…. 구조할 여유가 없었다고, 보지 못했다고 변명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지휘함의 앞뒤에 선 두 사람은 서로를 전과 다른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정작 본인들은 모르는 것이다.
전우애가 생겼다는 사실을.
‘됐다. 어차피 물갈이는 미루기로 했으니까. 이참에 서로 오해를 풀고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도 나누면 이 나라의 다른 해답을 찾을 수도 있을 거야.’
대장군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난밤 강령술사의 경고를 떠올리며.
- 대모는 저와 손을 잡았습니다.
- 만약 장군님이 전장에서 대모를 해치신다면, 저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이젠 대모를 죽이려야 죽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대모를 죽인다는 판단 자체가 굉장히 위험하고 성급한 것일 수도 있었다.’
대모와 거래를 했다는 강령술사가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은 대모와 그녀의 무사들이 같은 배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첩보가 맞든 틀리든 오늘을 계기로 대모와 회포를 풀 수도 있다. 그러면 서로가 솔직하게 터놓고…. 피로 얼룩진 내일을 피하는 방법도 함께 모색할 수 있겠지.’
대장군은 대모의 곁에 있는 다이얀을 보았다.
‘역모를 꾸민다는 첩보가, 틀렸을 가능성….’
다이얀은 대모의 오른팔인 무사다.
그의 충성심은 상관을 대신하여 언제든지 불구덩이에라도 떨어질 수 있을 만큼 굳건하다.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일이 거의 없고 무엇을 상대하든 변함없이 용맹한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래서 대장군 훗날 다이얀에게 ‘장군’의 자리를 약조하였다.
‘첩보가 틀렸을 리가 없다. 내게 충성을 맹세한 다이얀이라면.’
* * *
15년 전.
왕궁의 안뜰에서 목검을 든 소녀.
소녀는 또래의 소년과 대련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장군이 된 남자는 그 소녀를 지켜보며 대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 사내아이, 검술이 출중하군요.”
“다이얀이라고 합니다. 대부.”
“어디서 구한 아이죠?”
“저번 원정에서 데려온 아이입니다. 전쟁으로 몰락한 문파에 남아서 울고 있던 놈인데, 저희 군을 마주하고도 손에 든 칼자루를 절대 놓지 않는 기개를 보이기에 데려왔습니다.”
“저 나이에 주술도 없이 저만한 무공을 부리는 사내아이는 찾기 힘들지요.”
대부는 흡족한 얼굴로 까만 수염을 문질렀다.
이를 곁눈질로 확인한 장군은 속에 담고 있던 말을 꺼냈다.
“잘 키우면 장차 대모가 될 아이의 오른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는 장군은 장차 대장군이 될 남자로서, 대모가 될 아이의 곁에 눈을 붙여두고 싶은 게 아닌지요?”
“눈과 귀는 많을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타악!
소녀가 소년의 목검을 쳐냈다. 그러면서 소녀는 재빠르게 소년의 등 뒤로 갔다.
그렇게 목검으로 다리를 때렸다.
- 아악!
뒤에서 다리를 맞은 소년은 쓰러졌다.
대련은 대모가 될 소녀의 승리였다.
“다이얀…. 저 사내아이가 장군을 어떻게 보던가요?”
“살려주고 먹여주고 키워주겠노라 약속했더니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그게 진심 어린 충성인지는 모르겠군요. 전쟁으로 몰락한 문파라면 장군에게도 원한이 있을 법한데.”
“송구합니다. 제 설명이 미흡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요?”
“전쟁으로 국가의 치안이 악화된 마당에 마귀들의 습격을 받아서 몰락한 문파였습니다. 우리 군의 직접적인 공격으로 몰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 그러면 장군에게 목숨을 빚졌다고 생각하겠군요.”
“대부!”
소녀는 쪼르르 달려왔다. 땀으로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돈도 하지 않고 대부에게 자랑하였다.
“이번에도 이겼어요!”
대부는 소년을 슬쩍 보았다.
소년은 흙바닥에 쓰러진 채 피멍이 든 다리를 쥐고 있다.
“어떤 연유로 다리만 치고 끝냈느냐?”
“아, 그거요? …아, 그래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다리만 쳐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머리를 치면 아프잖아요.”
“그래도 대련은 실전처럼 해야지. 다리만 노리다가 네가 머리를 맞았으면 어쩌려고 했나? 그렇지 않나요? 장군.”
“하하. 심성이 고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심성이 고운 것과 나약한 것은 차이가 있죠.”
소녀는 대부를 올려다보며 칭찬을 바라는 눈을 했다.
하지만 대부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칭찬을 끝냈다.
“만약 저놈이 대련하는 척 너를 죽이려고 했다면 어쩔 뻔했나?”
그러자 소녀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럴 것처럼 보였다면 제가 먼저 죽였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보이지가 않았어요.”
대부가 듣기에 완벽한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 목숨을 위해서라면 상대를 곧잘 죽였을 거라는 뜻을 싱글벙글 해맑게 웃으면서 말하는 걸 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겠다.
“좋은 대답이다. 어이! 저거 이름이 뭐라고요?”
“다이얀입니다. 대부.”
“다이얀! 이리 오너라.”
소년은 대부의 부름에 헐레벌떡 뛰어왔다.
“네 옆에 보이는 여자아이가, 앞으로 네가 모시게 될 주인이다.”
“…그렇습니까?”
소년은 당당하게도 대부에게 반문하면서 눈은 장군과 마주쳤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장군에게 묻는 것이었다. 지금 대부의 말대로 해도 되는 것이냐고.
“이런 건방진 놈이.”
퍼억!
대부는 소년의 배를 걷어찼다.
소녀는 깜짝 놀라서 얼어붙었다.
퍼억! 퍼억! 퍼억!
대부는 쓰러진 소년을 몇 차례 더 밟았다.
“넌 소모품으로 태어난 것이다.”
“으으…. 으으으….”
“주인을 대신하여 죽고 다치고 싸우고, 온갖 더러운 잡무를 도맡는 것이 소모품의 역할이다.”
그때 소년은 쓰러져서도 장군을 흘깃흘깃 보았다.
‘미안하다.’
장군은 눈으로 사과했다. 혹은, 눈으로 죄책감을 표현했다.
그런 장군의 눈을 확인한 소년은 그제야 대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맹세하겠습니다. 제 주인에게 ‘충성’을….”
“누굴 보고 말하는 것이냐!”
퍼억!
대부는 소년의 얼굴을 찼다. 자연스레 소년의 얼굴은 소녀 쪽으로 돌아갔다.
“다시 하거라. 네놈의 나라에는 예법도 없더냐?”
소년은 소녀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제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소녀는 버럭 화를 냈다.
“대부! 그만해요!”
“다 너를 지키기 위한 일이다.”
“너무하잖아요!”
대부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었다.
“너는 대모가 되어 백주술을 다룰 것이다. 그러니 마귀를 제외하고선 그 고운 손에 피 한 방울 묻히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쟤를 때릴 필요는 없잖아요!”
“더러운 일은 천한 것들에게 맡기는 게다. 그리고 천한 것들은 본성이 위아래를 모르기에 조금만 잘해주면 금방 하늘을 넘보려고도 한다. 방금 내 앞에서 무례를 저지른 것처럼. 알겠느냐?”
소년을 대할 때는 마귀 같았던 시선이, 지금은 어여쁜 딸을 대하는 아버지의 시선처럼 변하였다.
소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알겠다고요….”
“그래도 네가 보인 선한 마음씨는 책망할 것이 아니겠지. 다만 사람을 구분하여 다루는 법을 이제는 깨달았으면 좋겠구나.”
그러는 사이에 장군은 대부의 뒤에 쓰러진 소년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
소년은,
어린 다이얀은 눈물 고인 눈으로 장군을 올려다보았다.
장군은 어린 다이얀의 머리를 잡아서 앞을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부가 모르게 작은 등을 토닥여 위로해 주었다.
* * *
이것은 페인과 대장군이 나눴던 이야기.
“그대가 바다 위에서, 나와 함께 대모를 처단해 주었으면 좋겠소.”
“거절한다면 혼자서라도 하십니까?”
“대모의 무공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그대와 힘을 합치는 편이 더 좋겠지만. 그대가 내 제안을 거절한다고 하여도 대모를 처단할 각오는 되었소.”
“각오만으로는 힘들 겁니다.”
대장군이 계획한 것에 대한 이야기.
“이미 명령을 내려놨소.”
“명령…?”
“우리는 때가 되면 행동할 것이니 그대의 대답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오.”
대장군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에라도 떨어질 수 있는 소년.
오늘날 대모가 이렇게 될 것을 대비한 장군.
그리고 소녀의 곁에서 어엿한 무사로 자라난 남자.
다이얀이 할 일이 있던 것이다.
다이얀이 목숨을 걸고 반드시 해낼 일이 있던 것이다.
* * *
‘첩보가 틀렸을 리가 없다. 내게 충성을 맹세한 다이얀이라면.’
때마침 집계를 끝마친 대모가 지휘함의 앞쪽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오른손을 칼 손잡이에 올린 채, 왼손으로는 정리된 문서를 대장군에게 건넸다.
“장군님. 이거 받으세요.”
“고생이 많았소.”
“장군님도요.”
대장군은 대모가 주는 문서를 받지 않았다.
“안 받으세요?”
심히 갈등하던 대장군은 마침내 결단했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진정 나라를 위한 선택이 무엇인지 재고한 것이다.
“대모. 혹시 항구로 돌아가면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라도 가지지 않겠소?”
대모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방금 대장군의 말이 그녀에게 어떤 새로운 빛으로 다가온 걸까.
대모는 이내 살갑게 웃으며, 끝까지 대장군을 경계하여 칼 손잡이에 올리고 있던 오른손을 선뜻 내밀었다.
“좋죠. 저도 장군님이랑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져서요. 다른 사람 없이 둘이서요.”
“나도 대모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소.”
대장군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번졌다.
아마도 지금 두 사람은 미래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서로 그리고 있는 미래에 차이는 있겠지만, 나라를 위한다는 목표는 같을 것이다.
오해를 풀고, 타협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면 된다.
“앗, 잠깐. 다른 사람 없이 둘이라는 건 취소할게요.”
“문제라도 있소?”
“다이얀은 데려와도 되잖아요?”
“아.”
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다이얀이 있었다.
언제나 그녀의 앞에, 그녀의 옆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다이얀은 그녀의 등 뒤에 있다.
당장 보이는 새로운 내일의 빛에 가려져, 대장군이 잊고 있었던 어제의 어둠.
그날의 충성.
그 계획.
어제의 명령.
오늘의 기회.
카프하니드는 해결되었고 강령술사와 셰르카는 철저하게 폐쇄적인 공간이 필요했는지 자리를 비웠고 지금 갑판 위에는 두 사람의 병력이 엇비슷하게 모여 있고 대모는 왼손으로 문서를, 오른손으로 악수를 하고 있다. 무방비하게.
그 모든 사실들이, 그렇게 보이는 모든 사물과 판단들이 대장군의 머릿속을 엄청난 속도로 훑고 지나가면서 소리 없는 뇌성을 일으켰다.
이윽고 대장군이 다이얀과 눈을 마주친 순간,
서로 가지고 있는 마음의 시선이 엇갈렸으리라.
잘못된 신호가 발생했으리라.
촤아악…!
다이얀은 대모의 무릎 아래를 깔끔히 베어버렸다.
쓰러진 대모는 눈물 고인 눈으로 다이얀을 올려다보았다.
“네가…. 왜……?”
“말해도 모를 겁니다. 당신은.”
다이얀은 차가운 눈으로 대모를 내려다보며, 그녀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었다.
“이런 개새끼들!!!”
격노한 무사들이 다이얀과 대장군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자, 장군님을 지켜라!”
병사들이 대장군을 지키려고 무사들을 베었다.
“다이얀! 이 배신자 새끼야!”
“대장군이랑 붙어먹다니…!”
무사들이 병사들을 베었다.
숱한 전장을 겪어온 대장군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성을 잃었다.
“이, 이게 아니야…. 이건 아니야….”
그때 병사들을 뚫고 들어온 노련한 무사 한 명이 대장군의 목을 노렸다.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것이고, 얼마든지 피할 수 있을 것이라 다들 생각하였다.
하지만 대장군은 그 칼을 피할 겨를이 없었다.
무사의 칼이 목에 닿기 직전,
“장군님!”
푸욱!
대장군을 노리던 칼을 다이얀이 대신 맞아주었다.
“죽어라! 이 쓰레기 새끼들아!!”
푸우욱!
다이얀의 가슴 한복판을 칼이 뚫고 나오면서 대장군까지 찌르려고 했다.
꾸욱!
다이얀은 제 가슴을 뚫고 나온 칼을 움켜쥐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아아아…. 다이얀….”
다이얀은 아픈 내색도 하지 않았다.
“염원하던 순간이 아니었습니까? 아버지.”
…털썩!
다이얀은 대장군의 눈을 보면서 쓰러졌다.
그대로 숨통이 끊어졌다.
- 때가 되었다!
- 저 백정 놈들을 도륙 내라!
터걱! 터걱! 터걱!
근처에 집결한 범선에서 연결 다리를 놓았다.
더 많은 병사들이 지휘함에 뛰어들었다.
격노한 무사들은 더 많은 병사들을 베어냈다.
그들은 다시금 홀린 것처럼 서로 싸웠다.
세이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