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폭풍 (1)
날이 밝았다.
사신단은 왕궁에서 디아나의 왕과 신하들에게 배웅을 받았다.
그런데 대모, 대장군에 이어서 대부까지 지난밤에 죽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마귀가 된 대부는 오밤중에 왕궁에서 폭주하며 자신을 막으려는 병사들과 신하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였다고 한다.
그래서 디아나 사람들은 도저히 웃는 얼굴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형식적인 배웅으로 사신단을 보내주었다.
얼마 후 사신단은 제국의 범선에 올랐다.
페인과 셰르카는 멀어지는 디아나 항구를 잠시 지켜보다가, 듣는 귀를 피해 뱃머리로 올라왔다.
“축하한다. 긴 여정을 견뎌내고 새로운 육체를 손에 넣었구나.”
“낙인의 돌은 사라진 거야?”
“악이 되어서 흩어졌다.”
셰르카는 부두인형을 꺼냈다. 그것은 머리에 특수한 부적이 붙은 주물로, 페인의 악을 임시로 가두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에 가둔 것도 지난밤에 너에게 돌아갔다. 알고 있었느냐?”
“의식이 없어서 몰랐어. 그런데 몸이 아무렇지도 않은 걸 보니까 낙인은 성공했나 보네.”
“그렇다. 이제 업보는 너의 육체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화르륵!
부두인형은 그녀의 손에서 순식간에 불타 없어졌다.
“방독면에 채워둔 성수도 사라졌어.”
페인은 방독면을 더듬었다.
“안 벗겨져.”
“그게 너의 얼굴이다. 오늘부터는 그 얼굴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몸은 됐고. 앞으로는 정신만 조심하면 되는 거지?”
“타락하지 않도록 말이다.”
「업보가 쌓이면 지옥과의 연결성도 강해진다고 했잖아.」
「이제 페인은 전보다 더 빠르게 강해질 건데, 그러면 벨드샤처럼 페인을 노리는 것들도 많이 찾아오겠지?」
“당연한 수순이다. 악마를 유혹하는 향기가 갈수록 짙어질 테니.”
그래도 페인은 홀가분해 보인다. 아침부터 걸음걸이에 망설임이 없고 지금은 난간을 짚은 채 어깨를 활짝 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어떨까.
“대모가 죽었음에도 끝까지 약속을 지키는 걸 보니 역시 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격에 빠진 왕은 조만간에 앓아누울 것 같다. 그리고 혈세를 걷던 대부, 군사를 꽉 잡고 있던 대장군, 왕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신하들 대다수가 사라졌다.
이대로라면 처음에 대모가 계획했던 ‘물갈이’는 일부가 완성된 것이다.
곧 왕세자가 자신의 세력을 일으켜 왕위를 계승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미 새로운 지도부가 형성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디아나는 틀림없이 바뀔 거야.”
“의식이 없었을 텐데 대부는 어떻게 처리한 것이냐?”
그러자 페인은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내가 한 일이 아니야.”
* * *
어젯밤.
대부는 왕을 독대하고 있었다.
“강령술사의 혈향이 더 짙어졌다고?”
“크나큰 액운을 쌓은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액운…. 여기에 와서 크나큰 액운을 쌓을 일이 있다면….”
“도깨비, 구울, 어인, 세이렌, 카프하니드까지 해치운 강령술사입니다. 그런 마귀들을 토벌하였는데 도리어 액운이 쌓인다는 건 괴이한 일이옵니다.”
왕은 졸린 눈을 끔벅거렸다.
“그 말은 즉…. 강령술사가 이곳에 와서 크나큰 죄를 저질렀다는 말이구나.”
“그의 혈향이 더 짙어진 건 항구에 도착했을 때가 기점이었습니다. 먼바다에서 액운을 쌓고 돌아온 것이옵니다.”
“그럴 리가….”
“토벌에 나섰던 대장군과 휘하의 수군이 전멸하였습니다. 대모 또한 죽어서 돌아왔습니다. …수상하지 않습니까?”
“가, 강령술사는 그런 인물이 아니네. 데이진타우의 사신은 그와 관련된 일화를 많이 이야기해 주었어.”
왕은 데이진타우 제국을, 그곳에서 온 사신의 말을 신뢰하고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창궐한 돌림병을 역병 의사들로 치료하고, 비첸크로이 제국에 당했던 약소국들의 독립을 도운 인물이네. 그러니 강령술사는…. 강령술사는 사악한 인물이 아닐 게야. 그럴 수가 없지.”
“하오나 그는 흑주술을 다루는 자입니다. 근원이 사악한 힘을 다루는 자가 어찌 흑심을 갖고 있지 아니하겠습니까…? 그의 무공과 혈향을 고려해 보면 악마 강림의 그릇이 될 수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옵니다.”
“정말 그렇다고 하면 우리가 무얼 할 수 있겠느냐?”
“전하….”
“그가 도깨비와 카프하니드를 토벌한 덕택에 디아나는 부흥하는 일만이 남았네. 그와 함께 온 사신단은, 데이진타우 제국은 우리와 친우와도 같은 나라이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강령술사를 모함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네.”
이후 대부는 아득바득 이를 갈면서 안뜰을 걸었다.
‘다들 강령술사에 심취하였다.’
지금 강령술사를 불신하는 자신이 도리어 비정상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어째서 다들 강령술사의 모든 말을 믿고서 대모와 대장군의 죽음에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는 말인가.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대모의 아래에 있던 무사 열 명이 전부다. 그래서 그들을 따로 불러내어 심문했지만 대답은 같았다.
- 세이렌에 홀린 탓입니다.
- 강령술사가 없었다면 그 누구도 살아돌아오지 못할 뻔했습니다.
‘대장군의 지휘함을 타고 돌아왔는데 어찌 무사들만 생존했다는 말이더냐. 어찌 병사가 단 한 명도 생존하지 못했단 말이더냐.’
뭔가 작위적이다.
가까스로 돌아온 생존자가 강령술사, 셰르카, 무사 열 명만이라는 사실이 작위적이다. 그런데 그 사실이 작위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낙인의 돌….’
아주 짙은 혈향과 액운을 퍼뜨려 마귀를 모은다는 돌이 있었다. 대모는 그 돌을 봉인하였다고 했다.
‘내게 거짓말을 할 아이가 아니야.’
낙인의 돌은 액운으로 인한 마귀화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구체적인 원리나 효과는 모르지만 대모가 그렇게 말해줬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철저히 숨겨 봉인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정말로 낙인의 돌로부터 퍼지던 혈향이 사라진 것이다.
‘그 아이가 원하던 것은 마귀 토벌….’
자신과 똑같이 혈향을 맡을 수 있는 대장군에게 말해서, 강령술사와 대모가 접촉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강령술사의 힘을 이용하여 대모가 원하던 것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려고 했다. 대모가 강령술사를 등에 업고 마귀 토벌에 앞장서는 것이다.
그러면 왕궁에서도 대모를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그 선택의 결과가 이거다.
‘강령술사는 말도 안 되는 혈향을 풍기면서 자신이 인간이라고 하였다….’
만약 그가 정말로 인간이라면,
그렇게나 강력한 흑주술을 다루고 있음에도, 그렇게나 짙은 혈향을 풍기고 있음에도 그가 정말로 인간이라면,
그렇다면 강령술사는 마귀화에 시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설마 낙인의 돌을 탐하여 그 아이를…!’
대부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크게 뜬 눈에 밤하늘의 보름달이 비쳤다.
‘하지만 대모가 낙인의 돌을 봉인해두었다는 사실을…. 강령술사가 무슨 수로 알았단 말인가….’
불신한다. 원망한다.
‘무슨 수로 알기는….’
망상한다. 미워한다.
‘강령술사라면 알 수 있겠지. 봉인된 혈향이라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확신한다. 증오한다.
‘놈은…! 놈은 악마의 그릇이니까…!’
그때 밤공기가 대부의 몸을 차갑게 훑었다.
- 샤아아아아….
바람처럼 불어온 그것은 ‘악’이었다.
대부의 업보에 이끌려 불어왔으며, 대부의 마음에 생긴 사악한 균열을 노려 파고드는 ‘악’이었다.
‘하나같이 어리석은 놈들…!’
신하, 왕, 병사, 무사.
강령술사에게 심취한 어리석은 놈들.
사신, 사신단.
강령술사를 이 땅에 데려온 놈들.
그래서 대모가 죽게 만든 놈들.
대모의 억울한 죽음을 방관하는 놈들.
강령술사가 대모를 쳐 죽였는데 오히려 강령술사를 옹호하는 찢어 죽일 놈들. 평소에도 대모를 밉상으로 보았던 왕궁 놈들.
모두가 대모의 원수다.
대모는 모두가 죽인 것이다.
- 꿈이 무엇이냐?
- 대부를 보고 배운 것들이 있어요. 그걸로 이 나라의 부국강병을 실현하고 싶어요.
- 왕궁이 너를 미워하여도 신경 쓰지 말고 책무에 최선을 다하거라. 그러면 훗날 너도 왕궁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게 될 게야.
- 제가 해내는 걸 꼭 보여드릴게요.
- 그래. 이 대부만 믿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하거라. 나는 뒤에서도 앞에서도 언제나 네 편이다.
- 고마워요. 대부.
대부의 얼굴에서 짐승 같은 털이 자라기 시작했다.
“으…. 그극….”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있는 일이다.
“끄그그극…!”
소중한 사람을 부당하게 잃었다고 생각하는 자가 악령이 되는 것.
세계 어디를 가나 종종 있는 일이다.
특히나 살아오면서 업보를 많이 쌓은 사람이라면 이럴 때 더 취약한 법이었다. 아무리 마법사라고 하여도.
“대부! 어디 편찮으십니까?!”
“여기 약사를 불러라! 당장!”
“부축해드리겠습니다!”
푸욱!
대부는 긴 손가락을 신하의 가슴팍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뭐, 뭐야?!”
“대부…!”
대부였던 악령은, 신하의 몸을 좌우로 찢어버렸다.
오밤중의 폭주였다.
* * *
“내가 한 일이 아니야.”
“그럼?”
“대모가 손을 쓰지 않았어도 결국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는 거지. 그 왕궁은.”
단지 대모의 죽음이, 낙인의 돌로부터 발산된 악이 그 시기를 앞당겼을 뿐이었다.
「전 승천자가 결국엔 타락했던 것처럼?」
“그래. 신성한 힘이 있어도 예외는 아니니까.”
어차피 대부는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
이 세계가 선고하는 악령화라는 벌을 언젠가는 받게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업보…….」
그것이 디아나에서의 이야기의 끝이다.
“돌아가면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
악령화라는 제약이 사라졌다.
얼마든지 악을 흡수하고 업보를 쌓아도 상관없는 ‘육체’가 되었다.
“역병 교수의 머리를 골라야 해.”
“참, 그 일이 있었구나.”
“승천자도 만나야 하고 낙원이 돌아가는 상황도 봐야지…. 잿빛세계의 지도도 확장해야 돼. 할 일이 많아.”
이번에 하나의 커다란 목표를 해치웠을 뿐, 지금까지 온 길보다 앞으로 갈 길이 더 많이 남았다.
“급하다면 잿빛세계를 경유하여 앞서가도 된다. 굳이 나와 함께 범선에 있어줄 필요는 없다.”
“그럴까.”
“….”
그때 셰르카는 페인의 즉답을 서운하게 느꼈다. 그런데 서운하게 느끼면서도 왜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셰르카 본인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페인의 결정은 빨랐다.
“당분간은 혼자서 움직일게.”
당분간은 셰르카가 곁에 없어도 된다.
혹은, 없는 편이 좋다는 뜻이다.
“…나는 저택과 데이진타우 제국을 돌고 있으마.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존재 추적으로 찾아오거라.”
“알겠어.”
페인은 난간에 올라섰다.
셰르카는 반쯤 농담으로 말했다.
“널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페인은 그녀를 한번 돌아보고, 다시 자기가 갈 길을 보았다.
“수고했어. 나중에 보자.”
그는 난간 아래로 몸을 던졌다.
깊은 바다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어디부터 갈 거야?」
‘낙원.’
키이잉!
그는 다차원 능력을 발동하였다.
* * *
낙원에서는 지속적으로 성수와 세금이 나오고 있다.
더러운 강물을 걸러내고 증류하여 정화수를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자들이 생겼다. 그들이 만들어낸 정화수는 낙원의 중앙교회로 옮겨져 성녀의 기도를 받아 성수가 된다.
세인트 왕국에서 생산되는 성수보다는 효과가 떨어지지만 괜찮았다. 세인트 왕국의 성수는 평범한 성수와 비교 대상으로 두기엔 너무 고품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원의 성수는 ‘평범한’ 효과 정도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젠 네가 성수를 쓸 일이 없지.」
매번 생산되는 성수는 낙원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하였다. 그렇게 낙원의 악령 발생 빈도를 더욱 낮출 수 있었다.
은화는 세금을 내는 용도가 되었고 동화는 낙원에서 자체적으로 유통되는 보편적인 화폐가 되었다.
경비대장 후안은 내게 보고했다.
못 본 사이에 그를 따르는 건장한 사내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대장간과 광산은 안정적입니다. 저희의 활동 범위는 성벽까지 확장되었습니다.”
낙원에서 후안을 주축으로 조직된 소규모 군사는 산양을 군마처럼 타고 다닌다. 언제나 이물을 상대해야 하는 그들은 성수, 칼, 창, 방패 따위로 무장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이물에게 죽임당한 자는 없습니다. 이물 목록도 꾸준히 작성하고 있으니 이대로 믿고 맡겨주십시오.”
“성벽 밖으로 나가면 더 위험한 이물들이 있을 거예요.”
“그래도 저희는 강령술사님께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특성 있는 이물을 골라서 생포하면, 강령술사님께서 유사시에 활용할 수 있는 악귀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후안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잿빛세계에서 낙원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 더 다양한 이물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그중에는 특수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이물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주력으로 쓰고 있는 악귀는 흑기사, 불나방, 거미 악귀다. 그러다 가끔 가뭄의 생존자나 자살기도자도 소환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카프하니드를 상대하면서 내게 더 다양한 악귀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내가 싸우는 전장과 내가 상대하는 적들이 매번 다양하기 때문에, 내 편에서 싸워줄 악귀들도 다양해야 할 것이다.
「전에는 아라나크가 광인의 숲을 돌면서 이물들을 정리해 줬는데 말이야.」
지금은 아라나크처럼 이물들을 통솔하고 쓸모 있는 이물을 따로 생포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진 녀석이 없다.
「배척자는?」
‘배척자는 낙원 사람들을 살펴야지.’
그래서 아라나크가 하던 일을 낙원 사람들에게 맡긴다면 편리할 것이다.
“평상시에 할 일이 없는 악귀들을 붙여드리죠.”
“강령술사님의 악귀들과 함께 성벽 바깥을 탐색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악귀들과 함께 움직이면서 이물을 사냥하고, 이물 목록을 갱신하고,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쓸만한 물건이 있으면 줍고, 쓸만한 이물이 있으면 생포하고, 잿빛세계의 새로운 생존자 집단을 찾아다니세요.”
“악귀가 있다면 두려울 게 없습니다. 맡겨주십시오.”
“비첸크로이 제국의 수도, 데이진타우 제국의 해안까지를 목적지로 삼아서 영역을 확장하세요. 그게 어딘지는 배척…. 신관들한테 물어보시고요.”
“예. 알겠습니다.”
내가 직접 잿빛세계를 탐험할 수도 있다. 내가 직접 멸망한 제국의 수도까지 가보고 데이진타우 제국을 거쳐 바다에 무엇이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특별한 이물이 발견되면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몸 하나로 할 일이 너무 많다.
몸은 하나인데 활동하는 세계는 두 개다.
「탐지를 4계에서 5계로 강화했어.」
그렇게 나는 낙원에서의 볼 일을 끝마치고 데이진타우 제국의 항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존재 추적으로 우토를 찾아냈다.
때마침 우토와 역병 교수들이 어느 허름한 민가에 모여있었다. 내가 돌아왔을 때 역병 교수의 머리를 정한다고 했으니 미리 시기를 맞추어 모여있던 것이다.
“앗, 강령술사님! 오셨습니까…!”
우토는 벌떡 일어나서 나를 상석으로 안내했다. 내 영력을 느낄 수 있는 우토의 눈에는 내 모습이 전보다 더욱 거대하게 보일 것이다.
독수리도 일어나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무사 복귀를 축하드립니다. 그 사이에 더 강해지신 것 같습니다.”
올빼미는 가만히 앉아서 날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한다.
“….”
그런데 이 자리에 한 명이 빠져있다.
존재 추적으로 확인해 보니 그는 혼자서만 북서쪽에 있다.
“우토.”
“예…. 예…?!”
“매는 왜 오지 않았지?”
나는 그렇게 물었지만 우토는 곧잘 대답하지 못했다. 어째선지 죄인처럼 우물쭈물 대고 있다.
「네 존재감이 너무 커져서 얼어붙은 거 아니야?」
나는 우토 대신 독수리에게 시선에게 보냈다.
그러자 독수리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매 역병 교수는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왜?”
“중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왜?”
“주술을 부리는 광인들에게 당하였습니다.”
“그건 언제 알았어?”
“약 다섯 시간 전, 역병 의사들의 보고를 통해 알았습니다.”
우토가 독수리의 말을 이어받았다.
“부, 북서쪽 바르드베쿠스를 시작으로 광인들의 습격이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로선 광인들의 근원지가 북서쪽 외부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북서쪽 외부라면 용이 죽은 땅이다.
“그래서 어제부터 데이진타우 제국과 세인트 왕국이 주축으로 정보를 모으는 중입니다. 최근에 알게 된 매의 경고에 따르면 북서쪽에 있는 집단이 세계를 침공할 것이라고….”
「이 지경이 되도록 승천자는 왜 아무 말이 없던 거야?」
나도 방금 그 생각부터 떠올랐다.
나라 하나도 아니고 대륙의 각지에서 광인들의 습격이 발생하고 있다는데, 이건 누가 봐도 일을 벌인 배후가 북서쪽에 있다는 게 아닌가.
‘승천자님.’
「……아하.」
승천자의 전언이 없었던 건, 기존에 연결된 전언이 끊긴 탓이었다.
「낙인을 하면서 전언이 끊어진 거야.」
나는 자리에 앉고서 5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일어서게 되었다.
매의 경고.
각지에서 발생하는 광인들의 습격.
디아나에서도 부쩍 늘어났던 마귀들.
북서쪽. 용이 죽은 땅.
카프하니드. 이무기.
그리고 승천자가 했던 말이 뇌리를 스친다.
- 그래도 훗날 악마에 대적하기 위해선 결국 이쪽으로 오셔서 대화를 해야만 합니다.
- 벨드샤를 잃은 악마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파편처럼 흩어진 정보와 사건들이 암시하는 건 하나다.
바다에서 있었던 일, 디아나에서 있었던 일, 그 사이에 이곳에서 벌어진 일.
그 모든 것들이 ‘전조현상’이었다.
“강령술사님? 어디에 가십니까?”
“세인트 왕국으로 가야겠어. 너희는 일단 대기해.”
틀림없이 악마의 짓이다.
놈들 모두가 악마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