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용의 무덤 (4)
페인의 살아있는 도끼는 악령과 일체화된 것이다. 적들의 살점과 피로 빚어내 도끼에 덧입혀진 육체는, 악령의 팔다리를 대신하는 그릇이 되어 페인과는 별개로 주술을 발동할 수 있게 된다.
콰콰콰앙!
페인이 영력을 집중하지 않아도 그의 안에 있는 악령이 자발적으로 검기를 쏘아낸다. 검기는 목조주택의 한쪽 벽면을 깨부수면서 터져나가는 공기와 함께 벨로움을 밀쳐냈다.
“흐으윽…!”
혈골귀의 몸은 부서졌다. 부서진 채로 공중에 떠서 나가떨어지던 도중, 벨로움이 녀석의 턱을 비집고 빠져나왔다.
그 순간에 페인이 공중에 뜬 벨로움을 노려 발사되듯 달려들었다.
「고속화.」
‘고속화.’
살아있는 도끼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벨로움의 목을 노렸다.
“네놈! 더 강해졌구나!”
벨로움은 자신의 갈비뼈를 뽑아내 도끼를 쳐냈다. 이어서 페인의 손아귀가 벨로움의 코앞까지 뻗어왔다.
촤악!
페인은 벨로움의 갈비뼈를 노렸다. 갈비뼈를 뽑아낸 탓에 벌어진 살갗 밑으로부터 방혈을 건 것이다. 방혈된 혈액은 허공에서 춤을 추는 꼭두각시의 실타래처럼 페인의 왼손에 얽혔다.
“끄으읏…!”
그래서 벨로움은 페인의 손아귀에 얽힌 자신의 혈액을 역으로 조종했다. 혈액을 옆으로 움직여서 페인의 손아귀까지 옆으로 치워버린 것이다. 이윽고 녀석의 등이 지면의 바위에 충돌했다.
퍼억!
페인은 계속 몰아붙였다. 벨로움 앞에 서서 도끼를 휘둘렀다.
쩌적! 쩌적! 쩌적!
벨로움은 몸을 점멸하듯 뒤틀며 도끼를 회피했다. 그럴 때마다 배후에 있는 바위가 조각조각 갈라졌다.
「방사.」
페인의 도끼가 스스로 화염을 뿜어냈다. 벨로움은 코앞에서 사출되는 화염을 이리저리 피했지만, 화염에 직접 닿지 않아도 살갗에 열상의 피해가 누적되었다.
페인은 빈손을 뒤로 움직였다가 앞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어딘가로부터 끌려온 혈액이 벨로움에게 흩뿌려졌다.
‘증기폭발(蒸氣爆發).’
퍼어엉!!!
혈액이 뜨겁게 기화하면서 벨로움에게 추가로 열상을 입혔다. 벨로움의 살갗은 까맣게 타서 악취 섞인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댔다.
“강령술사아아아…!”
찌이이익!
벨로움의 까맣게 타버린 살갗이 탈피하는 뱀처럼 벗겨졌다. 그렇게 벗겨진 것이 그물처럼 페인을 덮쳤다.
뚜드득!
이어서 살갗이 벗겨진 벨로움은 노란 지방, 빨간 살점과 근육을 드러낸 채 포효했다.
“샤아아아아!!!”
벨로움의 양팔이 휘어진 뼈의 칼날처럼 변했다. 그러면서 칼날에 새까만 연기 같은 것을 둘렀다.
스억…!
벨로움은 자신의 살갗으로 포획한 페인을 베어버렸다. 칼날을 휘두른 방향 그대로 살갗이 갈라졌고, 벨로움은 그 틈새로 페인이 보일 줄 알았다.
그런데 살갗 안에 페인은 없었다.
대신 지면에 웬 구멍이 뚫려있었다.
「재결합 6계.」
「모래지옥.」
쿠드드드득!
갑작스레 땅이 무너졌다. 아래로 무너진 흙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커다란 폭발이라도 있었던 장소처럼 주변 땅이 깊게, 넓게, 둥글게 무너지는 것이었다.
벨로움은 무너지는 땅을 피해 위로 뛰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주술들을 개방한 것이냐.”
땅에서 튀어나온, 흙으로 된 손아귀가 어느샌가 벨로움의 두 종아리를 붙잡고 있었다.
투두둑!
벨로움은 오로지 힘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모래로 된 손아귀가 벨로움의 다리를 따라 질질 뽑혀나갔다. 그때 벨로움은 자신의 종아리를 붙잡은 손아귀에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흐으, 흐으으….”
다리를 움직이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둥글게 꺼진 땅.
이곳이 저지대가 되어서, 좀 전까지 딛고 서있던 땅은 저 위에 있다.
“어디냐…. 어디로 숨은…”
푸화악!
흙으로 만들어진 경사면에서 페인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도 자신의 몸을 발사하듯 폭발적으로 닥쳐오는 페인. 그보다 앞서 흙 알갱이와 돌 파편 따위가 벨로움의 온몸을 난타했다.
그 와중에도 벨로움은 절대 눈을 감지 않았다. 안구에 돌 파편이 박혀도 절대 눈을 감지 않았다.
“모래지옥이라….”
페인으로부터 까만 검기가 날아와 벨로움의 사지를 베었다. 이어서 페인은 직접 도끼를 휘둘러 벨로움의 정수리를 쪼개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지하에 무엇이 있는 줄 알고 이런 재주를 부렸지?”
푸화악! 푸화악!
벨로움의 주변에서 땅이 군데군데 폭발했다. 폭발함과 동시에 팔팔 끓고 있는 화산호수의 물을 터뜨렸다.
그 짧은 순간에 페인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끓는 물 따위 얼마든지 뒤집어쓸 각오였다. 하지만 터져 나온 물속에는 혈골귀들이 섞여있었다.
그것은 아주 미성숙한, 지금까지 페인이 봤던 혈골귀들보다 덩치가 작은 녀석들이었다.
……퍼억!
페인은 어린 혈골귀들에게 붙잡혀 땅에 떨어졌다. 뒤이어 뜨거운 물이 그에게 쏟아졌다.
“눈물은 진작 메말랐고, 이젠 신음조차 내뱉지 않게 되었나?”
타앗!
벨로움은 거칠게 뛰었다. 종아리를 붙잡고 있던 흙의 손아귀를 억지로 뿌리치고 뛰는 와중에 온몸으로부터 기이한 촉수들을 돌출시켰다.
“흐흐흐!”
벨로움의 촉수들이 앞서 뻗어나갔다. 쏟아지는 물속에서 페인을 붙잡고 있는 어린 혈골귀들이 촉수의 목표였다.
“네놈이 비명을 지르지 않게 된 까닭은, 육체의 고통이 살아있는 희열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벨로움은 각 촉수로 어린 혈골귀들의 척추를 휘감았다.
쏴아아…!
그때 끓는 물을 맞고 있던 페인은 이해할 수 없는 경지의 심연을 느꼈으리라.
“기긱….”
“기기기긱…!”
어린 혈골귀들에게서 근육이, 핏줄이, 살점이, 마지막엔 피부까지 자라나는 장면이 눈앞에 보였다. 그렇게 피와 살을 갖게 된 어린 육체들은 페인의 온몸을 꼭 붙잡은 채 더욱 변이하였다.
쿠적쿠적쿠적!
그것들은 인간의 상상력을 벗어난 육체를, 실재세계에 결코 있을 수 없는 육체를 갖추게 된 것이다.
어떤 녀석은 목이 계속 길어지더니 머리가 엉덩이에 붙고 목을 따라서 여러 입술과 이빨들이 자라나 혀를 날름거렸다.
어떤 녀석은 머리가 어깨 사이로 쏙 들어가더니 배꼽으로 얼굴을 내놓고 팔다리가 반대 방향으로 꺾였다.
그야말로 보고도 이해할 수 없는 형태들이었다.
“보아라. 자유로운 육체를.”
어떤 녀석은 눈, 코, 입으로부터 기다란 혓바닥을 돌출시켜 날름거리고 날개뼈가 비대해지더니 살갗을 찢고 나와서 새로운 팔인지 다리인지 모를 것이 되었다. 그리고 어떤 녀석은 안면 전체에 개구리알처럼 눈알이 옹기종기 많이도 자라났으며, 어떤 녀석은 아예 팔다리를 제외하고는 알아볼 수 없는 살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느껴라. 자유로운 정신을.”
페인의 도끼를 뒤덮고 있던 촉수와 살점이 끓는 물에 맞아서 떨어져 나갔다. 위태롭게 버티고 있던 페인은 무릎이 무너지고, 등이 굽어지고, 두 손바닥이 땅을 짚었다.
“만약 저 아이들의 자유로운 육체와 정신이 두렵다면, 네놈은 진정한 자유를 만끽한 적이 일생에 단 한순간도 없었다는 것이다.”
벨로움은 페인의 목을 촉수로 휘감았다.
“그리고 네놈이 지금 내게 저항하지 않고 있다는 건…. 아까부터 흔들렸다는 말이지. 그렇지 않나?”
업보.
지옥과의 연결성.
벨로움은 페인을 죽일 수 없지만, 지옥에 보내버릴 수는 있으리라.
* * *
역병 의사, 거미 악귀, 불나방, 혈골귀들이 산꼭대기의 완만한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
구울 무리는 죽은 만큼 전장에 돌아와서 무한한 전투를 벌이고 있기에, 아그니샤의 ‘계율’ 발동으로 떨어지는 십자가는 그 개수가 처음에 비하여 기세가 약해졌다.
계율을 발동하고 있으면 영력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녀로선 전선을 이곳까지 단번에 끌어올리는 것까진 성공했기 때문에, 남은 구울들은 아군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
퍼엉…! 퍼엉…!
불나방 위의 아그니샤는 페인과 벨로움이 싸우고 있는 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윤회하는 벨로움은 내가 해치워야만 해.’
페인은 충분히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벨로움이 그를 쉽사리 죽이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페인 역시도 벨로움을 죽일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페인이 녀석의 육체를 아무리 잘게 쪼개고 영혼을 찢어발겨놓는다고 한들 벨로움은 악이 되어서 새로운 육체로 윤회할 것이다.
아그니샤는 불나방을 재촉했다.
“더 빨리 가야 해.”
페인과 벨로움이 싸우고 있는 곳에도 일부 구울 무리가 모여들고 있다. 페인이 벨로움을 상대하면서 동시에 구울 무리까지 상대하다간 정작 중요한 순간에 영력이 부족하게 될 수도 있다.
이윽고 아그니샤는 어지러운 전장의 상공을 지나 목조주택이 밀집한 곳의 상공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페인의 곁에 착지할 수 있었다.
파지직!
느닷없이 불나방을 공격한 번개만 없었다면 말이다.
“읏…!”
불나방을 타고서 몸에 들어온 번개는 바늘로 근육을 쑤시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으며, 당황스러웠다.
순간 온몸으로 위기를 감지한 아그니샤는 불나방을 밀쳐내며 허공에 몸을 맡겼다.
퍼어억!
직후, 불나방은 그녀의 다리 밑에서 빨갛게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때 지상의 목조주택 사이에서 구울 무리와 싸우고 있던 역병 의사들은 목격했다.
하늘에서 자기들 쪽으로 추락하고 있는 아그니샤를.
“추락해서 무사할 수 있습니까?”
“무사할 것입니다. 그런데 부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네이트의 축복을 받은 여전사가 추락 따위로 죽을 리가 없다. 하지만 저대로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지거나 발목이라도 삐끗하게 된다면 그건 곧 이번 전투의 승패와 직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역병 의사들은 구울 무리를 상대하던 붉은 덩어리를 그녀를 향해 쏘아 올렸다. 당장 자신들이 구울 무리에게 죽임당할지언정 그녀는 안전하게 착지시키고 보려는 것이다.
츠츠츳…!
피와 혈관으로 만들어진 붉은 덩어리는 공중에서 그녀를 붙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내려왔다.
이어서 붉은 덩어리를 아그니샤에게 보낸 대가로 구울 무리가 역병 의사들을 노려 달려들었다. 지금 달려들고 있는 구울 무리가 방혈에 저항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 역병 의사들은 힘을 모아서 오로지 한 덩어리를 조종하느라 구울 무리를 상대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키에에엑!”
부우웅!
그때 다수의 거미 악귀와 소수의 불나방이 달려들어 구울 무리를 상대해 주었다. 다행히도 근처의 악귀들이 아그니샤를 예의주시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그니샤를 예의주시하고 있던 건 적들도 같았다.
파지지지지직!!!
번개가 지면을 뒤덮으며 거미 악귀와 불나방들을 순식간에 터뜨려 죽였다. 그러면서도 멈추지 않고 지면을 따라 확 퍼진 번개는 역병 의사들까지 산 채로 태워버렸다.
“아직 더…”
“버텨야…”
“….”
역병 의사들은 타는 연기를 수증기에 섞어 보내며 쓰러졌다. 그러자 하늘에서 아그니샤를 천천히 내려주고 있던 붉은 덩어리까지 형태를 잃고 무너졌다.
…콰직!
아그니샤는 어느 목조주택의 지붕을 등으로 뚫고서 떨어졌다.
좀 전의 번개 탓에 일시적으로 몸이 마비된 탓일까. 그녀는 곧잘 일어서지 못했다.
어두웠던 목조주택의 천장이 무너졌다. 그러자 위쪽이 환하게 열리며, 쓰러진 그녀의 전면으로 흐릿한 빛이 쏟아졌다.
그리고 빛이 닿지 않는 실내의 어둠 속에서 녀석들이 달려들었다.
“그아아아!”
“그그그극…!”
더러운 타액을 늘어뜨린 구울들이다. 녀석들은 쓰러진 그녀 위로 달려들면서 저마다 뒤틀린 손가락을 뻗어왔다.
그녀는 눈을 번뜩였다.
등으로 깔아버린 십자가가 쏜살같이 빠져나가서 구울들을 베었다. 동시에 새하얗게 빛나는 구체들이 그녀의 주변에서 생겨나 높은 소음을 냈다.
“그아아아…!”
구울들의 귓구멍에서 진득한 핏물이 흘러나왔다. 안구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아그니샤를 덮치려던 구울들은 귀를 틀어막고 괴롭게 몸부림쳤다.
그녀는 그 틈에 일어서서 십자가를 손에 쥐었다. 그대로 십자가를 휘두르자 구울들은 목조주택의 벽과 함께 썰려나갔다.
‘내 발목을 붙잡으려는 거야.’
파지지직…!
또 번개의 소리다.
화아아!
목조주택에 불이 붙었다. 의도적으로 붙여진 불은 목조주택 전체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내가 강령술사에게 가려는 걸 막는 거야….’
키이이잉!
아그니샤는 투명한 보호막을 전개하여 해로운 연기와 뜨거운 불을 막아냈다. 그렇게 보호막을 전개한 채로 목조주택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아그니샤!”
목조주택을 빠져나오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두 광인이었다.
한 명은 울긋불긋 핏줄을 드러내고 있는 육체에, 썩어가는 구울의 머리를 달고 있는 장창을 두 손에 쥐고 있다.
다른 한 명은 노출된 상반신에 인간의 뼈 같은 것을 살갗에 드러내고 있으며, 그 혐오스러운 상반신에 짓무른 화상의 흉터처럼 인간의 얼굴들을 담고 있는 자였다.
“너희들은 누구냐.”
혐오스러운 상반신을 가진 광인이 짧게 대답했다.
“탈루윈. …악령화를 받아들인 자다.”
이어서 장창을 들고 있는 광인이 팔뚝에 핏대를 세우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나는 히샤웬이다. 나의 우상이자 소중한 근원, 카프하니드에게서 뇌성의 힘을 빌린 몸이지.”
좀 전까지 번개를 다루던 자는 장창을 쥐고 있는 저 광인. 히샤웬이 틀림없어 보인다.
파직! 파직!
히샤웬의 장창에 번개가 흐르고 있으며, 장창에 달린 구울의 머리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강령술사가 나의 귀중한 존재를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여서 놈에게 복수해야겠다.”
아그니샤는 여전히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이지만 말로써 숨김없이 적개심을 표출했다.
“미친놈들. 그게 가능할 것 같아?”
“가능하다.”
히샤웬의 앞으로 탈루윈이 몇 발자국 나왔다.
“천계의 규율에 속박된 네년은 인간을 죽일 수 없다고 하였지.”
“….”
“나와 히샤웬도 인간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어떤 사연이 있어서 이런 몰골이 되어 네년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겠나. …위대하신 대천사 네이트의 축복을 받은 여전사라면 이런 우리를 헤아려줘야 할 텐데 말이다.”
“크흐흐흐…!”
쿠드드득!
탈루윈의 상반신 전체에서 새로운 팔들이 자라났다. 그리고 두 광인의 배후에서 새로운 구울들이 잇달아 합류하고 있다.
“맞아. 정확해.”
그러던 도중, 아그니샤의 적개심이 옅어졌다.
“나는 이 순간에도 너희가 인간이기 때문에, 너희가 처음부터 사악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분명 어떤 사연이 있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거겠지.”
“역시 여전사는 뭔가 다르네. 달라.”
“……네이트 님이라면 너희의 사연을 가엾게 여기시고, 너희가 이곳에서 피 흘리며 죽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실 거야.”
“정말이지 고귀하신 분이 납셨군. 이거 감동의 눈물이라도 흘려야 되는 게 아닌가?”
“그러던가. 장담하는데 너희가 어떤 중죄를 저질렀다고 하여도 네이트 님은 너희를 교화시키는 걸 결코 포기하지 않으실 분이야.”
하지만 아그니샤의 옅어졌던 적개심이 되돌아오고 말았다.
눈앞의 두 광인에게 정말 더러운 것이라도 보는 듯한 눈빛을 쏘아대는 것이다.
“그분은 어떤 쓰레기라도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참회하면 용서해 주실 분이지….”
그녀가 품고 있는 것은 악을 향한 경멸이자, 악을 향한 분노였다.
“그런데 난 천사가 아니잖아.”
히샤웬과 탈루윈은 그 뜻을 뒤늦게 이해했다.
악마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당연한 진리가 있었다. 어쩌면 평범한 인간들조차도 잊을 법한 진리가 있었다.
아그니샤는 천사가 아니다.
천사의 힘을 빌리고 있는 인간이다.
인간은 천사처럼 초월적인 마음씨를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계율을 어겨 우릴 죽이겠다고?”
“그건 아니고.”
그때 하늘에서 오로지 구울 무리를 죽이기 위한 계율의 십자가가 쏟아져내렸다.
그리고 아그니샤는 오로지 인간을 베기 위한 집행의 십자가를 손에 들었다.
“더는 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되면, 그게 착해진 거야.”
“뭐?”
“…내가 너희를 착하게 만들어줄게.”
그것이 그녀의 ‘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