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선과 악 (4)
벨로움은 자신의 안면에 박힌 성스러운 십자가를 으적으적 씹었다.
“…이건 위선자의 맛이구나.”
줄곧 무표정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 없던 아그니샤의 눈매가 강하게 일그러졌다.
“네이트의 여전사여. 자신이 아직까지도 화신이 되지 못한 이유를 정말 모르겠는가?”
“네놈한테 듣고 싶지는 않아.”
“모르는 것 같군. 화신이 되지 못한 이유를.”
“….”
“네이트는 인간 아그니샤라는 하등한 존재를 멸시하여 알려주지 않지만, 나는 알려줄 수 있다. 네이트보다는 자비롭게. …듣고 싶지 않나?”
페인은 아그니샤의 호흡이 순간 흐트러졌음을 느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호흡에 흐트러짐이 없던 사람이 말이다.
“아그니샤. 내가 한번 당해봐서 아는데 저 새끼는 혓바닥도 무기야. 휘둘리지 마.”
“혓바닥이 무기라는 건 내 말에 설득력이 있다는 뜻이지. 그리고 내 말에 설득력이 있다는 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들어야 하는 말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해서가 아닌가?”
페인은 아예 고개를 돌려 아그니샤를 보았다.
그녀가 아직까지도 화신이 되지 못한 이유.
그녀의 녹안(綠眼)이 흔들리고 있었다.
“참으로 위선적인 소리다. 언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의 손에 칼을 주고서 악을 심판하라고 하더니… 정작 ‘악인’은 심판하지 말라고 지껄이는 계율이 말이다.”
“…아그니샤?”
“타락한 승천자, 전쟁광 황제, 그리고 너희의 동료들을 죽이려던 히샤웬과 탈루윈. 그 하찮은 계율을 지키려다 놓친 악인들로 인하여 어떤 결과가 이어졌던 것 같나? 이 세계와 너희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으며 얼마나 많은 기회를 잃었느냐?”
“아그니샤!”
그녀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강인하고 차가웠던 여전사의 모습. 그녀의 무기가 되었던 깊은 신앙심과 정의가 진정한 악 앞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여전사의 갑옷도 네이트의 십자가도 없이 나체로 적군을 마주한 것처럼 불안정해 보였다.
“이래서 천사들이 멍청한 인간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죄를 인간이 지었는데, 어찌 인간을 살려두고 죄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 시답잖은 계율이라는 것은.”
“안 되겠다.”
페인은 벨로움에게 뛰었다. 아그니샤에게 보란 듯이 일단 행동한 것이다.
하지만 벨로움이 혓바닥으로 흔들어둔 상황은 곧 벨로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었다.
“네년이 아직까지 화신이 되지 못한 이유…. 그 이유를 지금부터 보여주겠다.”
벨로움의 뿔 사이에서 검은 구체가 생겨났다.
그 구체가 붉은 동공을 품으며 안광을 발했다.
쩌어어어어어엉!!!!
구체와 눈을 마주친 페인과 아그니샤.
둘을 향해 어둠이 파도처럼 돌진했다.
둘은 거의 동시에 어둠을 맞게 되었다.
키잉!
아그니샤의 등 뒤에서 찬란한 빛과 함께 십자가가 소환되었다. 그 십자가가 보호막을 전개하여 그녀를 어둠으로부터 감싸주었다.
“크하하하! 봐라!”
하지만 페인은 아무것도 없이 어둠에 노출되고 있었다. 그렇게 당하고 있는 페인의 모습이 그녀의 초록색 눈에 들어왔다.
“네년의 목숨부터 지키려고 하는 그 십자가의 위선을…!!!”
“…!”
샤아아아아!
끔찍한 비명과 절규와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검은 눈알로부터 이어지고 있는 어둠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그 속에 페인의 절규가 섞여서 들렸다.
“괜찮다! 어차피 천사들은 개의치 않을 것이다! 페인은 위선적인 네년과 천사들을 대신하여 악을 상대하는 더럽혀진 도구일 뿐이니!”
휘몰아치는 어둠 속에서 아그니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증명할 거야.”
그녀는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십자가를 쥐었다.
“…증명하겠습니다. 네이트 님.”
“흐흐하하하하! 뚫을 수 있다면 뚫고서 달려와봐라!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기다려줄 테니!”
“시련을 받아들여, 증명하겠습니다.”
아그니샤는 십자가를 힘차게 던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벨로움은 웃고 있었다. 어차피 페인에겐 이 어둠에 저항할 수 있는 영력이 더는 남아있지 않았으며, 벨로움 자신이 십자가에 맞아서 죽는다고 한들 페인은 핏빛세계에 떨어질 운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벨로움은 자신이 죽든 말든 승리를 확신하는 것이었다.
키이이이잉…
그녀의 손에서 떠나간 십자가는 극악무도한 어둠을 밝히며 나아갔다.
…푹!
십자가는 살갗에 박혔다.
어깨에 박혔다.
페인의 어깨에.
페인은 뒤를 돌아보았다.
십지가의 빛을 제외하고선 오로지 어둠만이 보인다.
“아그니샤! 왜 나한테…!”
키이이잉!!!
찬란한 보호막이 전개되었다. 보호막은 어둠을 이겨내는 빛을 발하며 페인의 육체를, 영혼을 어둠으로부터 보호하였다.
그리고 어둠이 사라졌을 때, 아그니샤는 없었다.
“저, 저, 저…. 저년이 어떻게….”
지옥과의 연결성이라곤 없는 인간일 터인데.
그녀는 페인을 대신하여 지옥에 떨어진 것이었다.
“…벨로움.”
페인의 시선이 변화하였다.
위협적으로 변화된 시선이 벨로움에게 고정되었다.
「저 새끼.」
「방금 그 주술을 부리겠다고 힘이 다 빠졌어.」
「지금까지 싸웠던 모든 과정이 방금 그 주술 한 번의 성공을 위해서였던 거야.」
이윽고 벨로움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도끼를 보며 절규했다.
그 도끼는 어둠이 아닌 빛을 머금고 있었으니.
* * *
나는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키야아아아아아아아아…!!!!”
아그니샤.
내가 지옥에 떨어지기 직전, 그녀가 말없이 내 어깨에 꽂은 십자가는 벨로움을 해치우기 위한 그녀의 굳은 의지라는 것을.
“…아…! 하아아아….”
어깨에 꽂힌 십자가로부터 신성한 영력이 흘러들어와 오른팔을 불태우는 듯하다. 빛으로 된 혈관이 오른팔을 뒤덮고서 도끼까지 퍼져나갔고, 나는 빛을 머금은 도끼로 벨로움의 심장을 갈아버렸다.
“….”
벨로움은 절명했다. 뜨겁게 뒤틀렸던 육체는 얼음처럼 차갑고 딱딱하게 굳었으며, 녀석이 갖고 있던 악은 내 영혼으로 흘러들어왔다.
「3676의 악을 먹었어.」
가라앉은 카프하니드가 2666이었다.
후두둑…!
내 오른팔이 은빛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어깨에 박혔던 십자가도 은빛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덥고 습한 바람을 따라 빛의 알갱이들이 수증기 속에 섞여서 흩어지고 있다.
「재결합.」
땅에 떨어진 도끼. 그것을 뒤덮고 있던 피와 살점이 나의 휑한 어깨로 스멀스멀 올라와 붙었다.
나는 그렇게 오른팔을 수복할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리자 온몸의 관절이 후들거린다. 서있는 것조차 힘겹다.
「영력이 거의 바닥났어.」
- 그아아아!
벨로움은 멸하였지만 구울 무리는 오합지졸이 되어서도 날 노리고 있었다. 화산호수가 있는 방향으로부터 수십 마리의 구울들이 내게 뛰어오고 있다.
「더는 못 싸워.」
적진의 한복판에서 힘이 다 빠진 채로 마주하게 된 구울 잔당.
‘이건 대비했어.’
키이잉! 키이잉! 키이잉!
내 주변에서 수십 개의 소환진이 핏물로 그려졌다.
쿵! 쿵!
소환된 흑기사들은 구울 잔당을 어렵지 않게 해치웠다.
그리고 이젠 진짜 영력이 바닥났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다.
‘…아그니샤.’
거악 앞에서 흔들리던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내게 가진 죄책감으로 인한 자기희생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신앙심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한 도전이었을까. 아니면 그녀만의 정의였을까.
「그 세계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할 거야.」
악마의 하수인 한 마리만 상대하더라도 전력을 다하고 목숨을 내걸어야 한다.
그런데 악마의 하수인은 엄연히 사악한 피조물이며, 진짜 악마가 아니다. 악마의 하수인은 핏빛세계에서 말단 지휘관 정도의 존재일 것이다.
그런 악마의 하수인들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악한 피조물들과 악마들이 가득한 핏빛세계에서 그녀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차라리 고통 없이 죽는 것이라도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죽기를 바라게 되지 않을까.
지옥 같다는 표현을 넘어서 그 세계는 진짜 지옥일 테니.
‘내가 지금 당장 핏빛세계로 가서 아그니샤를 데리고 돌아오는 방법은 없을까.’
「없어.」
「다차원은 고유 능력이야. 강화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그리고 다차원 능력으로는 잿빛세계와 실재세계 사이를 오가는 것만 가능해. 천국이나 지옥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국 내가 지옥, 핏빛세계로 가기 위해선 그곳과의 연결성이 짙어진 끝에 ‘끌려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좀 전에 벨로움이 마지막 영력을 쥐어짜 발동한 주술이 바로 그것이었다. 악마의 눈 같은 것을 빚어서 핏빛세계의 악을 쏘아내, 어둠과 함께 그녀를 끌어간 것이다.
「지옥과의 연결성이 없어도 그렇게 끌려갈 수 있다는 건가?」
‘그 부분은 조금 의아해.’
나는 적들의 모든 행동과 언행에는 어떠한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벨로움은 혓바닥을 놀려서 내 마음을 흔들려고 했다.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선악의 비중을 악이 있는 쪽으로 기울게 하려고 했다. 개미지옥의 구덩이 안에서도 나를 핏빛세계로 보내버리려고 했다. 상대방의 이름을 아는 것도 필요한 조건이었던 것 같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승리를 확신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가, 내가 아닌 아그니샤가 사라지자 절규한 것이다.
‘자기가 영력을 다 쓰고 아그니샤에게 죽더라도 나를 핏빛세계로 보내버리는 게 목표였어.’
「용의 부활은?」
아마 처음에는 정말로 용의 부활을 목표로 삼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벨로움의 뜻과는 다르게 매 역병 교수가 북서쪽의 수상한 정보를 이 대륙에 알렸고, 대천사 네이트까지 개입해서는 용의 부활을 막아야 한다며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했다.
‘도중에 목표를 바꾼 거야.’
벨로움은 용의 부활을 포기했다. 나와 아그니샤와 싸워서 이기겠다는 생각도 접어버렸다.
이후에는 그저 한 가지 목표만 가지고 지금껏 싸운 것이다.
‘나를 핏빛세계로 보내버리겠다는 진의.’
도중에 바뀐 목표.
우리는 용의 부활을 막는 것에 의식을 집중했다. 그러나 벨로움은 용의 부활이 아니라 실재세계에서 강령술사를 배제하는 쪽으로 유연하게 목표를 변경한 것이다.
「교활하네.」
“강령술사님…?”
다수의 역병 의사와 역병 교수들이 흑기사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우토는 올빼미를 두 팔에 안고 있다.
독수리는 매를 등에 업고 있다.
“둘 상태가 왜 그래?”
“광인들을 해치우고 탈진했습니다. 목숨엔 지장이 없으니 괜찮습니다.”
“다들 여기서 쉬어. 구울 잔당은 악귀들이 마무리할 테니까.”
“부족한 소인이 전체의 전황을 파악하지 못하여 여쭙습니다만…. 벨로움과 아그니샤 님은 어찌 된 것입니까?”
이어지는 내 대답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아그니샤는 나를 대신해서 지옥에 떨어졌어. 벨로움은 완전히 제거되었고.”
그들은 기뻐하지 못했다. 물론 평소에도 기쁜 일이 있다고 해서 환호성을 지르거나 웃는 자들은 아니지만.
승리했음에도 분위기 자체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피 냄새가 섞인 수증기를 따라 침울한 적막만이 흘러 다녔다.
* * *
하늘이 핏물처럼 새빨갛다.
수많은 존재들의 영혼이 뒤엉켜 생긴 먹구름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샤아아아아……
이곳의 달은 칠흑처럼 새까맣다. 테두리를 따라 붉은 광원을 퍼뜨리고 있다.
검고 뾰족한 산들이 붉은 배경을 뒤로하고서 사악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 색감이 붉은 공기에서는 역한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서 목구멍까지 들어온다. 호흡만 하고 있어도 구역감이 치민다.
쿠직. 쿠직.
아그니샤는 피로 물든 축축한 흙바닥 위를 걷고 있다. 서늘하고도 역겨운 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훑고 지나갔다.
‘대천사 네이트시여…. 이 어린 양을 인도하소서….’
기도하여도 닿지 않는다.
이곳은 지옥이다.
핏빛세계다.
“….”
결단을 내렸다. 행동에 옮겼다. 증명했다.
벨로움은 죽었을 것이다. 순간적으로 신성한 힘을 두른 강령술사는 녀석의 육체와 영혼까지 죽였을 것이다. 그렇게 실재세계를 위협하던 거악은 잠잠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희망한다.
“….”
하지만 결과는 영영 알 수 없다. 지금 자신은 이곳에 있으며, 그곳은 다른 세계다.
푸른 하늘, 하얀 구름, 교회, 거리의 사람들, 신관들, 성기사, 퇴마술사, 승천자, 파보크, 강령술사, 베르자인, 꽃과 나무, 왕국, 제국, 추억, 기억,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이 이곳에는 없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
저 멀리서 빛이 보인다. 새까맣고 뾰족한 산, 그 앞의 언덕에서 뜨거운 빛이 보인다.
그것은 지옥불이었다.
저곳에서 지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누군가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그런데 그 비명이 지옥불 쪽에서 들려오는 건지 하늘에 있는 영혼의 먹구름으로부터 들려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다.
두렵다. 신앙심으로 정신을 무장하여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두렵다. 애당초 그 세계를 구하고서 자신은 이곳에 떨어져 죽을 각오로 왔는데. 죽을 각오를 했는데 어째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살 수 있을까….’
사실은,
사실은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옳은 결과였다. 좀 전의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결국 저는 어쩔 수 없는….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었습니다….’
아그니샤는 무릎을 꿇고 자기 앞에 십자가를 꽂았다. 그리고 저주받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희망의 빛이라곤 한 점 찾을 수 없는 검은 달이 무언가 초월적인 존재의 동공 같다. 그것도 아주 사악한 존재의 동공 같다.
‘두렵습니다….’
각오를 했기 때문에 울상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눈물이 고인다. 그래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겁쟁이의 눈물을 삼키는 것이었다.
지금 올려다보고 있는 붉은 하늘의 저편에 천계가 있는지. 현계가 있는지. 잿빛세계가 있는지.
아니면 공허뿐인지.
알 수 없다.
영원히.
‘저의 영혼은 이곳의 하늘에 남아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그녀는 십자가를 뽑았다.
‘언젠가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십자가다.
아니,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십자가다.
‘영겁의 시간이 지나서라도 언젠가는…. 이 어린 양의 영혼을 구원하러 와주시겠죠.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네이트 님.’
이런 세계에서도 여전히 빛을 잃지 않는 십자가. 그것을 자신의 목에 댔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빛이 꺼져서도 희망을 잃지 않겠습니다.’
그때였다.
- 운악토. 쉬슈. 안흐런. 토. 루.
어절이 뚝뚝 끊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도무지 머릿속에서 정렬할 수가 없는 언어였다. 하나의 목소리 같으면서도 수천 가지의 목소리 같으며, 여자의 것인지 남자의 것인지 아이의 것인지 노인의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으며, 그 목소리에 어떤 의도와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다.
그녀는 눈을 뜨고 앞을 보았다.
“헨하크. 샤혼. 쑤스이텝. 야슌. 하룬다악. 라악쉬. 탈둔툼휘코호크.”
검은색과 황금색이 조화를 이루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형태의 신도복.
그것을 몸에 걸치고 있는 존재는 해골로 된 머리에 악마의 뿔을 달고 있으며, 기나긴 턱뼈가 가슴팍까지 내려와 있었다.
처걱!
그녀는 일어섰다.
스스로의 목을 베려고 했던 십자가를 양손에 꼭 쥐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미지의 존재에게 겨누었다.
“…아야그니쉬샤아.”
츠츠츠츠츠츳!
미지의 존재는 공허한 눈구멍에서 커다란 메뚜기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메뚜기들은 모두 얼굴 가죽이 벗겨진 인간의 머리를 달고 있었다.
아그니샤의 십자가 끄트머리가 떨렸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하나라도 더 집행하겠다….”
이건 이겨낼 수 없는 시련이다.
하지만 이겨낼 수 없는 시련 앞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건 싫다.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리고 여전사로서 죽겠다…!”
츠츠츠츠츳!!!
그녀는 새까맣게 덮쳐오는 메뚜기떼를 새하얀 빛으로 불태우며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