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선과 악 (5)
얼굴 가죽이 벗겨진 인간의 머리를 달고 있는 메뚜기들.
츠츠츠츠츳!!!
그녀는 빼곡한 메뚜기떼를 빛으로 불태우며 돌진했다. 메뚜기들은 생전 경험해 본 적 없는 신성한 빛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러자 턱이 아주 긴 해골을 머리로 달고 있는 미지의 존재가 언성을 높인 것이다.
“아야그니쉬샤아!”
“혹시 내 이름을 부르는 거냐?”
무력감을 극복하고 지옥의 공포를 정면으로 마주한 아그니샤.
그녀의 열린 귀에 녀석의 사악한 언어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우이셰헤크케가!”
‘우리 세계가.’
“니야운, 치허크샤키커휘타!”
‘네년을 집어삼킬 것이다….’
그녀는 이어지는 메뚜기떼를 단번에 뚫고서 녀석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아야그니쉬샤아! 아야그니쉬샤아카 혀기있타!”
‘찬가.’
퍼엉!
십자가는 사악한 존재 앞에서 무자비한 섬광을 뿜어냈다. 녀석의 부정한 신도복이 섬광에 불태워지자 그 밑에 숨겨졌던 불결한 살갗이 드러났다. 그 살갗은 뼈다귀 위에 피부만 덧댄 것처럼 아주 앙상했고 관 속에 안치된 노파의 시신처럼 창백하며 주름진 것이었다.
스억! 스억! 스억!
연이어 십자가를 휘둘렀지만 녀석의 뼈는 쉽게 잘리질 않았다. 앙상한 뼈를 뒤덮고 있는 주름진 피부만 베여서, 미량의 혈액만 흘릴 뿐이었다.
“샤아아!!!”
녀석은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다시금 혐오스러운 메뚜기들이 목구멍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쩌거걱!
아그니샤는 메뚜기들을 무시하고 녀석의 목구멍 속에 십자가를 수직으로 꽂아버렸다. 그리고 잽싸게 물러섰다.
“끼기기…! 끼긱…!”
녀석은 허리를 굽혀 연신 토악질을 해댔다. 그래봤자 녀석이 게워낼 수 있는 건 미량의 혈액과 메뚜기들뿐이었다. 그래서 녀석은 목구멍 깊숙이 꽂힌 십자가를 두 손으로 쥐어서 뽑아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키잉!
아그니샤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자그마한 마법진을 전개했다. 그 마법진으로부터 새로운 십자가를 뽑아냈다.
“끼기기기기!!!!”
녀석의 복부와 목구멍이 크게 부풀었다. 얇고 창백한 피부층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몸속에 꽂힌 십자가가 신성한 영력을 빛의 형태로 방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녀석은 새하얗게 폭사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를 감싸는 보호막이 전개되었다. 그것은 녀석으로부터 튀어온 역겨운 살점이나 뼛조각 따위를 막아주는 것이었다.
“하아…….”
호흡이 떨리는 건 영력이 부족한 탓이다. 그래서 잠시라도 휴식을 취하고 싶은데 그건 이 세계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핏빛세계 전체가 그녀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으니.
- 아야그니쉬샤아!
사악한 존재감이 전방의 넓은 땅으로부터 느껴진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적게는 수십 마리, 많게는 수백 마리, 어쩌면 수천 마리가 될 수도 있겠다. 하늘과 땅부터 시작해 공기까지도 사악한 기운을 머금고 있는 이 세계에서 사악한 존재감이라는 건 상대적으로 구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피바람이 부는 전쟁터에서 아군과 적군의 피 냄새를 구별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 아야그니쉬샤아타!
- 샤아아아!
잿빛세계처럼 공기가 뿌연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가시거리는 저 멀리 있는 뾰족한 산맥이 보일 정도로 충분히 확보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 ‘가시거리’라는, 먼 사물이 보인다는 개념은 인간들이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달랐다.
그녀는 지옥을 직면하였다.
‘어느 틈에….’
사악한 군대가 백 걸음 앞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방금 해치웠던 신도복의 해골 같은 녀석들이 저 군대의 사이사이에 보인다. 그런 녀석들 말고도 다리가 수백 개는 달린 거대한 벌레나, 아주 긴 촉수로 보행하는 두뇌 같은 것이나, 살점으로 빚어진 들개 같은 것들이 있었다.
- 아아아아아아아!!!!!!
눈과 입을 철사로 꿰맨 거인들이 솥을 머리에 올리고 있다. 그리고 용암이 가득 채워진 솥에는 영원한 작열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죽지도 못하여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는 저 존재들이 인간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인간이었다면 진작 죽었을 테니.
아그니샤는 역겨운 공기를 가득 들이마신 후 내쉬었다.
‘계율.’
피처럼 붉은 하늘, 비명을 지르는 먹구름 아래에 신성하고도 거대한 마법진이 전개되었다. 검은 달의 붉은 광원을 이겨내는 새하얀 빛이 이 세계의 색감을 바꾸는 듯하였다.
하지만 그건 잠시뿐이었다.
‘도대체 이 세계는….’
샤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는 먹구름들이 마법진에 들러붙었다. 마법진이 발하던 새하얀 빛이 먹구름에 가려져서 점점 광원을 잃어갔다. 그러다가 이내 계율의 마법진이 소멸되고 만 것이다.
저만한 숫자의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계율의 폭격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악이 지배하는 이곳의 하늘은 신성한 마법진이 그려지는 일을 용납하지 않는 것 같았다.
‘천노…!’
그녀는 차선책으로 천노의 십자가를 소환했다. 먹구름보다 더 낮은 곳에서 수십 개의 마법진을 그려 거대한 십자가의 폭격을 강행했다.
콰앙! 콰앙! 콰앙!
그녀의 분노를 형상화한 듯한 거대한 십자가들이 사악한 군대 위에 내리꽂혔다. 피로 물든 흙바닥이 거꾸로 치솟으며 이 세계의 피조물들을 찢어버리고 가루로 만들었다. 빼곡하게 몰려오던 사악한 군대에 듬성듬성 머릿수의 공백이 생겼다.
그때 해골의 머리를 달고 있는 녀석들이 두 손바닥을 붙였다.
녀석들의 자세는 하늘에 기도를 올릴 때 합장하는 것과 비슷했는데, 손가락 끝마디가 하늘이 아닌 땅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합장의 상징적인 의미가 역전된 것처럼.
그리고 녀석들은 일제히 외쳤다.
- 카하샤! 히윈! 이훔탈룬!
역오망성에 악마의 뿔이 그려진 소환진. 그 거대한 소환진이 녀석들의 군대 위에서 핏빛으로 그려졌다.
샤아악!
소환진에서 장미의 줄기가 뻗어 나왔다. 수많은 장미의 줄기가 엮인 것 같았다. 다만 실재세계의 것과 달리 줄기의 색깔은 어둡고 푸르렀으며, 피로 물든 가시는 줄기라는 살갗을 뚫고 나온 것처럼 뼈로 된 것이었다.
사사사사사삭!!!!
미지의 존재들이 영력을 합쳐 소환한 줄기는 너무도 빠르고 거대했다. 그것이 백 걸음 앞에서 닥쳐오는 광경을 앞서 보았더라도 이미 늦었다. 개미가 죽도록 뛰어도 인간의 걸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것처럼 두 다리로 뛰어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아그니샤는 선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어쨌든 저 소환진으로부터 튀어나와 돌진해오는 줄기도 모종의 ‘존재’인 것이다.
‘극형집행.’
그녀의 배후에서 빛의 구체 세 개가 생겨났다. 이윽고 대상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십자가가 쇄도했다.
퍼퍼퍼퍼퍼퍽…!
쇄도하는 십자가는 줄기와 충돌하여 부서졌다. 동시에 줄기의 앞부분이 십자가에 맞아서 깎여나갔다. 그리고 줄기의 앞부분이 차례대로 십자가에 깎여나갈 때마다 아그니샤의 영력 또한 깎이듯 소모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극형집행의 십자가는 멈추지 않았다. 사악한 소환진에서 시작된 줄기도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저 줄기도 벨로움이나 그 휘하의 구울 무리처럼 무한하게 돌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한하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하여도 줄기의 끝이 어디인지 아그니샤는 알 수 없다.
절대 피할 수 없는 줄기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줄기를 저지하는 것이며, 보호막으로 막으면 보호막째로 집어삼켜질 것이 뻔하다.
그렇게 서로의 영력을 겨루는 구도가 강제되었으며, 먼저 지치는 쪽은 아그니샤였다.
키잉…….
끝내 영력이 바닥나고 말았다.
극형집행의 십자가를 쏘아대던 빛의 구체 세 개는 꺼지는 희망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오십 걸음 앞까지 다가온 핏빛세계의 군대는 가까워지는 절망과도 같았다.
드드드득!!!
줄기가 그녀의 온몸을 뱀처럼 휘감았다. 휘감으면서 스치는 뼈의 가시가 갑옷을 찢고 그녀를 피 흘리게 하였다. 줄기는 그녀를 포획한 사냥감처럼 공중에 매달아 꼼짝도 할 수 없게 하였다.
“우우우우우!”
눈과 입을 철사로 꿰맨 거인 하나가 아그니샤 앞에 멈춰 섰다.
쩌저적…!
녀석은 억지로 눈을 뜨고 입을 벌렸다. 공허한 세 구멍 안에는 눈알이나 혀를 대신하여 신음하는 영혼들의 얼굴이 구더기처럼 들어차있었다.
쿠웅!
거인은 그녀 앞에 용암이 채워진 솥을 내려놨다.
“히야아아아아악!!”
“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아!!!”
솥 안에서 불타고 있는 존재들이 그녀에게 살려달라며 손을 뻗어댔다. 물에 빠진 사람이 아무거나 붙잡아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처럼, 용암에 녹고 있는 절박한 손아귀들이 앞다투어 그녀의 다리를 붙잡은 것이다.
그리고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읏…!”
발밑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는 곧 끔찍한 고통이 되었다. 발이 용암에 직접 닿지 않아도 갑옷이 가열되어 살갗에 화상을 입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온몸을 휘감은 줄기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뼈의 가시가 살갗 밑으로 더욱 깊게 파고든다.
“히야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이대로 솥에 들어가 용암에 빠지게 된다면 어떤 고통을 겪게 될까. 그 고통이 잠깐뿐일까, 아니면 영원하게 될까.
그녀가 얼마나 절박하고 두렵든 이 세계의 존재들은 그녀를 비웃고 조롱했다. 해골들은 신이 나서 춤을 추었고 들개를 닮은 것들은 다 벗겨진 꼬리를 흔들며 시끄럽게 짖어댔다.
아그니샤 앞에 솥을 내려둔 거인은 긴 팔을 뻗어 그녀의 사타구니를 어루만졌다.
“아야그니쉬샤아! 흐흐흐흐!”
그때, 아그니샤의 동공이 황금과도 같은 안광을 발했다.
* * *
“부족한 소인이 전체의 전황을 파악하지 못하여 여쭙습니다만…. 벨로움과 아그니샤 님은 어찌 된 것입니까?”
이어지는 내 대답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아그니샤는 나를 대신해서 지옥에 떨어졌어. 벨로움은 완전히 제거되었고.”
그들은 기뻐하지 못했다. 물론 평소에도 기쁜 일이 있다고 해서 환호성을 지르거나 웃는 자들은 아니지만.
승리했지만 분위기 자체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피 냄새가 섞인 수증기를 따라 침울한 적막만이 흘러 다녔다.
「용의 무덤부터 무력화하자.」
나는 승천자와 연결된 전언 속으로 목소리를 보냈다.
‘승천자님. 저희는 방금 벨로움을 해치웠습니다. 베르드베쿠스의 북서쪽 외부, 놈들의 본거지는 초토화되었고 지금은 잔당을 사냥하는 중입니다.’
- ……세계를 구하셨군요!
세인트 왕국과 데이진타우 제국을 주축으로 이곳에서의 승전보가 대륙 전체에 퍼져나갈 것이다.
- 정말이지 기쁜 소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당장 여러분의 노고를 세계에 알리고 천계에 고하도록 하지요. 이토록 명예로운 일은…
‘아그니샤가 지옥으로 끌려갔습니다.’
- …….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 결국 그렇게 된 것이었군요.
‘네?’
-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듣긴 했습니다만…. 그녀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이 그렇게까지 됐다면 악마의 하수인이 아주 교활했던 모양이군요.
‘무슨 말씀입니까?’
- 미리 말씀을 드리지 못하여 미안합니다.
- 엄중한 ‘계율’과 관련된 일이라 지금까지 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 * *
“아야그니쉬샤아! 흐흐흐흐!”
그때, 아그니샤의 동공이 황금과도 같은 안광을 발했다.
그리고 아그니샤는 다른 존재의 목소리를 냈다.
“…잘 버텼네.”
거인의 음흉한 웃음이 싹 지워졌다.
아그니샤를 휘감고 있는 줄기들이 빛의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그녀의 다리를 붙잡아 끌어당기고 있는 손아귀도, 팔도, 용암 속에서 몸부림치던 존재들도 부서지고 말았다.
쩌적! 쩌적!
솥에 균열이 생겼다.
콰장창!
“꾸어어어!”
솥이 깨지고 용암이 쏟아졌다. 용암에 발을 담근 거인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아그니샤는 여전히 공중에 떠있다. 그녀를 속박하여 공중에 매달았던 줄기는 진작 부서지고 말았는데.
“아야그니쉬샤아…?”
“아그니샤. 네가 최후의 최후까지 저항한 덕분에 여기까지 추적할 시간을 벌 수 있었어.”
아그니샤의 머리 위에 천사의 고리가 생겨났다.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은 십자가가 달려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거인은 깨닫고 말았다.
거인은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우, 우어어어어!!! 네이휘툼!!!!”
아그니샤는 화신이 되었다.
그녀의 몸에 대천사 네이트가 빙의한 것이다.
“선의 근간이자 천계의 창조자, 데이어 세인트 여신이시여.”
아름다움의 극치이자 천계의 선명함을 담은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에 자비는 없었다.
“우리는 지금부터 지옥에 상륙하여, 현계를 어둠으로 물들이려는 사악한 존재들의 근원지를 공격하고자 합니다.”
붉은 하늘에 찬란한 마법진들이 전개되었다.
그러자 비명을 지르는 먹구름들이 마법진을 노려서 달려들었다.
샤아아아아!
하지만 마법진의 너무도 찬란한 빛에 도리어 먹구름들이 도망치는 광경이다.
“고결한 발키리들이여.”
백조의 날개, 성스러운 갑옷, 성검으로 무장한 발키리들이 마법진에서 소환되어 먹구름을 빛으로 베기 시작했다. 발키리들이 각자 마법을 쓰며 하늘에서 먹구름을 베는 광경은 뇌성 없이 번쩍이는 번개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이어서 네이트의 뒤쪽 땅에 새로운 마법진들이 전개되었다.
“용맹한 포드키엘들이여.”
우락부락한 근육의 덩치 큰 천사들이 철퇴를 들고서 소환되었다.
처거거거거겅!!!!
포드키엘들은 일제히 철퇴를 날렸다. 각 철퇴가 허공에서 섬광을 터뜨리며 더 많은 철퇴로 갈라졌다. 그것은 그야말로 철퇴로 이루어진 파도였으며, 그 파도가 사악한 군대를 무자비하게 짓이기기 시작했다.
- 끼이이이이이이이이!!!!!
수천 마리의 새가 동시에 울부짖는 듯한 괴성이 이어졌다. 하늘에서 비명을 지르던 먹구름들이 그 괴성의 중심으로, 거꾸로 떨어지는 용오름처럼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하늘을 누비던 발키리들이 균형을 잃고 하나둘씩 추락했다.
그런 직후에 용오름이 꺼지자, 사악한 군대의 중심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완성된 형태를 드러냈다. 거인보다 열 배는 큰 신장에 허리가 초승달처럼 가늘게 휜 그것은 온몸에 비명을 지르는 얼굴들을 달고 있었다.
그때 어느 발키리가 네이트 옆에 내려왔다.
“네이트 님! 비명의 편린(片鱗)이 출몰했습니다!”
네이트는 한쪽 팔을 앞으로 뻗었다. 손바닥을 하늘로 향했다.
키이이이잉!
네이트의 손바닥 위에 아주 길고 가느다란 십자가가 솟아올라 하늘의 아래까지 닿았다.
“경계하세요.”
기나긴 십자가의 꼭대기에서 섬광이 터졌다. 섬광이 터지면서 생겨난 빛줄기가 비명의 편린을 일직선으로 관통하고서 사악한 군대의 중심에 빛의 폭발을 일으켰다.
- 끼이이이… 기기기기기…
비명의 편린은 온몸이 가루처럼 부서져서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저 존재는 우리가 겪을 시련의 극히 일부…. 편린에 불과한 것입니다.”
곧이어 네이트의 아래쪽 땅에 거대한 십자가들이 떨어져 꽂혔다.
쐐애애애애액! 쿠쿠쿠쿵!
각 십자가가 꽂힌 땅에서는 핏물이 증발하고, 싱그러운 잡초와 깨끗한 꽃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하였다.
그러자 이곳의 신성한 기운을 느낀 핏빛세계의 존재들이 온 사방에서 괴성을 지르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항상 방어만 했는데, 이렇게 직접 쳐들어오니 다들 열 받은 모양이네요.”
이어서 네이트는 단호한 뜻을 알렸다.
“이곳에 다차원 거울을 건설하여 전초기지를 세우겠어요. 다들 천계의 정복자 엑수스가 올 때까지는 전력으로 위치를 사수할 수 있도록 하세요.”
모든 것이 혼란했던 태고의 시대 이후,
선과 악의 두 번째 전면전이 개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