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122화 (122/181)

24. 인간으로서, 사람으로서 (2)

올고호르휘는 모래 위로 머리만 빼꼼 내밀고서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다.

「호기심.」

녀석의 시선에는 적의가 없었다.

‘내려가서 봐야겠어.’

「조심해. 너보다 약하다고 해서 널 죽일 수 없는 건 아니야.」

‘호기심을 갖고 있어. 후안과 악귀들을 뒤쫓은 것도 일종의 관찰이었던 거야. 어쩌면 아라나크처럼 지성을 가진 이물일지도 몰라.’

「지성이랑은 거리가 먼 생김새인데….」

나는 불나방에게 명령하여 녀석의 머리 앞에 착지했다.

이렇게 직접 모래를 밟고서 녀석을 마주하고 있으니 녀석의 덩치가 더욱 커 보인다. 몸통의 길이까지 고려해 보면 카프하니드의 절반쯤은 되지 않을까.

「이런 덩치를 자랑하면서 어떻게 아무 소음도 없이 모래 속을 헤엄칠 수 있었던 걸까?」

‘모래 속이라서 가능했던 걸지도.’

단단한 땅속이라면 흙을 파헤치고 바위를 깨부수며 전진해야 했을 테니 말이다.

그때, 녀석이 입을 작게 오므렸다.

“키이이이….”

말을 걸어보자.

“뭐가 그렇게 궁금해?”

“키이이이이….”

언어가 없어서 대화가 통하질 않는다.

“키이이이…. 키이이이익….”

올고호르휘.

이 거대하고 순수한 녀석을 목줄로 묶어 내 악귀로 만든다면 대화가 통할 수도 있다. 목줄 5계로는 악귀와 복잡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기심. 그거 말고는 진짜 모르겠어.」

녀석은 입을 오므렸다가 벌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입속에는 날카로운 이빨도 타액도 없이 지하통로처럼 어두운 목구멍만이 보인다.

“불나방이나 거미 악귀 대신 널 타고 다니면 굉장히 편리할 것 같아. 뱃속에 들어가서.”

“키이이…”

목줄의 조건.

내게 굴복한 이물이나 내게 의존하는 이물을 악귀로 소유할 수 있다.

“사람 말은 알아들어?”

“….”

“내 말을 알아듣고 있으면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여봐.”

그러자 올고호르휘는 정말로 고개를 끄덕이듯 머리를 움직인 것이다.

「굴복시키지 않아도 되겠는데?」

나는 녀석의 악명을 부른다.

“올고호르휘. 어쨌든 넌 나한테 묻고 싶은 게 있다는 거지?”

“….”

방금 질문에는 머리를 끄덕이지 않았다.

“내게서 뭔가 알고 싶은 게 있거나, 얻고 싶은 게 있다면 끄덕여봐.”

올고호르휘는 다시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거면 됐어.”

올고호르휘는 나를 통해서 뭔가를 얻고자 한다. 그 사실 하나가 녀석을 목줄로 묶을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게 해주었다.

* * *

쿠우우우우…

쿠우우우…

올고호르휘의 뱃속은 깨끗했다. 거대한 악귀의 뱃속인데 내장도 없이 텅텅 비었다. 타액이나 위액도 없이 깨끗하다. 뱃속에 무언가 있다고 해봤자 간혹 모래 알갱이가 밟히는 정도다.

이렇게 소화기관도 없고 이빨도 없는 존재라면, 무언가를 사냥하여 먹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쿠우우우…

나는 지금 올고호르휘의 뱃속에 탑승하여 모래 속을 누비고 있다.

「올고호르휘는 소극적이고 겁이 많은 이물…. 악귀야.」

창자를 닮은 이유는 녀석의 전생과 관련이 있었다.

녀석은 탐험가였다고 한다. 녀석에겐 어려서부터 가족처럼 함께 자라온 낙타가 한 마리 있었고, 어디를 탐험하든 그 낙타와 함께였다고 한다.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은 나라를 여행하며 얻은 물건을 판매해서 때마다 마련했다고 한다.

녀석은 노년기가 되어서도 무엇보다 이 대륙을 탐험하는 일이 즐거웠고 그 즐거움을 낙타와 나누었다고 한다.

그러다 오늘날 데이진타우 제국의 인근 사막에 조난된 것이다. 물론 그때는 데이진타우 제국이라는 것도 없었던 먼 옛날이지만.

어쨌든 전생의 녀석은 사막 길이라면 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길을 잃었던 그때는 모래폭풍이 불어와 몇 주가 지나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녀석은 경험 많은 탐험가였기에, 모래폭풍이 부는 동안에는 현명하게 이동을 멈추고서 가만히 견뎠다고 한다. 가지고 있던 식량과 식수가 동나자 직접 사냥을 하고 새벽에 이슬을 모아 목을 축였다고 한다.

그러다 모래폭풍이 끝났을 때는 길을 잃은 채였다. 주변 사막의 지형이 완전히 뒤바뀔 정도로, 아주 험악하고도 긴 모래폭풍이었다.

그래도 녀석은 무너지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자신이 갈 방향을 찾으려고 했다.

「평소에 방향표로 삼던 별들이 꺼진 거야.」

「그리고 태양은 구름 뒤에 숨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

날씨 탓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녀석의 주변을 지나던 악이나 악령의 장난질일 수도 있었다. 무엇이 되었든 별이 없는 밤하늘과 태양이 숨은 대낮은 녀석에게 깊은 절망감과 무력감을 심어주었다.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뱃속은 굶주렸고 목구멍은 타들어갈 듯 메말랐다. 낮에는 기절할 정도로 뜨거웠고 밤에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추웠다.

「하지만 곁에는 낙타가 있었지.」

날이 더우면 낙타의 등이 만들어낸 그늘에서 쉬었다. 날이 추우면 낙타를 꼭 끌어안고서 쪽잠을 청했다.

견디고 견디고 견뎠다. 하지만 밤하늘은 변함없이 어둡고 대낮의 태양은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구름 뒤에 숨어서 매번 신기루로 헛된 희망만 보여주었다.

그러고 있으니 마치 사막이 녀석에게 죽으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너무 배가 고팠지.」

「목이 말랐고.」

녀석은 자신의 손으로 낙타를 죽였다.

낙타의 살점을 허겁지겁 뜯어먹고, 낙타의 기름진 물과 피를 꿀꺽꿀꺽 마셨다.

감기지 못한 낙타의 눈망울을 보면서, 자신의 피인지 낙타의 피인지 모를 것을 목구멍으로 쏟아내며 울었다.

당연하게도,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낙타를 죽인 것은 업보가 아니었다. 이 세계는 그런 것을 죄로 정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의 정의와는 별개로 녀석은 죄악감을 가지게 되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죄악감은 끝내 녀석을 악령으로 만들었다.

이후 녀석은 악령이 되어서도 사막을 방황하다가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영혼에 쌓인 1680이라는 악은 녀석이 그만큼 오래 살아왔다는 걸 증명하는 거겠지.’

올고호르휘의 창자 같은 몸에 흐르고 있는 피.

그것은 올고호르휘 자신이 전생에 갖고 있던 피. 그리고 자기 손으로 죽인 동반자의 피가 섞인 것이었다.

「올고호르휘는 함께 세계를 탐험해 줄 동반자를 애타고 찾고 있었어.」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사막을 방황하면서 움직이는 것들은 전부 쫓아다녔지. 호기심을 가지고 말이야.」

「하지만 알잖아. 이런 곳에서 움직이는 거라곤 지성이 없는, 때때론 모든 대상에게 공격적인 이물밖에 없다는 걸.」

그렇게 사막에서 몇 세기를 방황하던 올고호르휘는 이번에도 움직이는 존재를 찾아낸 것이다. 녀석이 찾아낸 것은 낙원에서 온 경비대장 후안과 그를 따르는 낙원 사람들이었고, 녀석은 그들이 자신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존재들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성불하는 조건은 뭐지?’

「세계를 충분히 탐험하고서 전생에 자신이 저지른 일을 속죄하는 것.」

「이번 생에는 자신이 동반자를 대신하여 죽고 싶은 거야.」

* * *

후안과 무장한 낙원 사람들은 거미 악귀의 등에 오른 채 사막을 건너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이물들을 마주치긴 했다. 하지만 그중에 그들을 위협할 수 있는 이물은 없었기에 굉장히 순조로운 길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푸욱. 푸욱.

다만 그들과 함께하고 있는 흑기사 세 마리에겐 사막이라는 지형이 난관이었다. 흑기사들은 본래 몸무게 탓에 모래를 밟는 족족 발이 모래 속으로 꺼지는 것이었다.

어느 낙원 사람이 후안에게 물었다.

“데이진타우까지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습니까?”

후안은 지도를 살펴보았다.

“이 속도라면 앞으로 하루에서 이틀이면 충분할 것 같네.”

“데이진타우에도 폐허가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는 그곳에 생존자 집단이 있기를 기대해야겠지. 강령술사님께서도 잿빛세계의 새로운 생존자들을 기대하고 있으니깐.”

“하다못해 새로운 이물이라도 있다면 좋겠습니다. 호기롭게 악귀들을 빌렸는데 생존자도 특별한 이물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분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그런 걱정을 하기엔 너무 이르다. 우리는 아직 이 세계의 바다도 보지 못했잖아.”

“바다….”

낙원 사람들에겐 그 단어가 생소했다.

“바다라는 지형이 뭐라고 하였죠?”

후안은 배척자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땅을 대신하여 드넓은 물이 있고, 파도라는 것이 있어서 영원히 움직이는 물의 땅이라고 하였지.”

“그곳에 기지를 세운다면 평생 식수 걱정은 없겠네요.”

“아니. 그 물에서는 땀의 맛이 난다고 했어. 그냥 마시면 위험하다고.”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어떻게 그런 지형이…”

그때였다.

푸스스스스스!

그들의 앞쪽에서 미지의 존재가 창자 같은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이, 이물이다!”

“전원…! 전투에 대비….”

후안은 전투에 대비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가 없었다.

모래 위로 머리를 내민 존재가 너무도 거대했기 때문이다.

그 머리부터 꼬리까지의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몸통이 거의 무한하게 튀어나오는 것만 같다. 지금껏 온갖 해괴한 이물들을 다 경험했지만 저 이물은 이렇게 보고만 있어도 압도당한다.

‘아니야…! 저런 괴물과는 싸울 수 없어…!’

싸웠다간 모두가 죽을 것이다.

후안은 즉각 후퇴를 명령하려고 했다.

그런데 흑기사와 거미 악귀들이 이상하리만큼 평온한 것이다. 덩치만으로도 위협적인 이물이 저 앞에서 튀어나오고 있는데 말이다.

스스스…….

이윽고 올고호르휘가 그들 앞에 머리를 내려놓았다.

작게 오므린 입이 둥글게 벌어지며 모래를 쏟아냈다.

“키이이.”

올고호르휘의 존재감에 압도되었던 그들의 얼굴에 화색이 번져나갔다.

녀석의 어두운 목구멍으로부터 아주 친숙한 방독면을 쓴 남자가 걸어 나온 것이다.

“강령술사님…! 하마터면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이야, 정말 반갑습니다!”

“새로운 악귀를 손에 넣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다들 올고호르휘에 탑승하시죠.”

후안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올고…?”

“올고호르휘. 제가 타고 온 악귀의 악명입니다.”

페인은 올고호르휘의 어두운 목구멍을 턱짓했다.

“그러니까 저 괴물의 뱃속에… 들어가라는…?”

“빠르고 안전하게 사막을 횡단할 수 있습니다.”

「지능이 있는 존재라 더 만들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부우웅….

하늘에서 불나방 몇 마리가 날아다니며 날갯짓 소리를 냈다.

“이 사막에서는 더는 얻을 게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곧장 데이진타우 제국으로 가고자 합니다.”

실재세계에서는 데이진타우 제국이 있는 곳.

반면에 잿빛세계에서는 그곳에 폐허가 있는지, 문명이 있는지, 뭐가 있는지 전혀 모른다.

따라서 기척을 감추고 그곳까지 안전하게 이동한다.

만약 폐허가 있다면 주물과 자원을 탐색할 것이고 문명이 있다면 그들을 포섭할 것이다. 위험한 존재가 있다면 무찌르거나 목줄로 묶을 것이다.

「하나 더 있잖아.」

그리고 나는 올고호르휘가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는지도 실험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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