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124화 (124/181)

24. 인간으로서, 사람으로서(4)

데이진타우 제국 폐허의 황궁에 거미 악귀와 흑기사들을 들였다.

나는 몇몇 거미 악귀가 짐으로 달고 있던 식량을 풀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봤자 산양의 내장으로 요리하여 보존된 것들과 식수가 전부지만, 황궁에 숨어있던 자들은 진수성찬이라도 본 것처럼 굶주린 배를 허겁지겁 채웠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 고립되었던 겁니까?”

젊은 여인은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을 하나씩 펴면서 지난날들을 세어보았다.

“4주. 아니, 사막을 횡단한 것까지 합치면 6주는 되었을 거예요.”

“쥐를 닮은 이물들한테 당했다고 하셨죠?”

“이물…. 네. 그런 것들이 수백 마리는 되었어요. 저희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요.”

「수백 마리라, 꽤 괜찮은 머릿수네.」

“그분들이 시간을 버는 동안 도시에서 탈출하고 여기까지 숨어들어올 수 있었어요…. 황궁? 여긴 벽으로 둘러싸여서 가장 견고해 보이는 건물이었거든요.”

이들은 원래 비첸크로이 제국 폐허에서 살아가던 생존자 집단이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6주 전에 쥐를 닮은 이물 수백 마리가 출몰하여 이들 집단을 공격한 것이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위협적인 이물은 아니었어요. 키는 아이처럼 작고 덩치도 왜소했거든요. 하지만 그 머릿수가 어찌나 그악스럽던지…. 덩치랑은 다르게 정말 잔혹하기까지 했어요. 게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조차도 알 수 없는 역병에 걸려서 떼로 죽어가는데…. 제 남편도 피부가 까맣게 변해서….”

여인은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어쨌든 이들은 그런 사건을 겪고서 사막을 횡단하여 이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식수는 새벽에 이슬을 모아서 해결하고, 먹을 것은 분뇨와 흙을 섞어 만든 작은 재배지에 씨앗을 뿌려서 풀뿌리를 재배해 캐먹었다고 한다.

「농사하는 방법을 낙원에 들일 수 있겠어.」

그러나 먹고 마실 것보다 입이 훨씬 많아서 하나둘씩 쇠약해져 죽어가는 중이었다는 말이다.

“그…. 그 쥐들은 피가 숯처럼 까만색이에요. 그리고 사람처럼 걸어 다녀요. 갑옷과 무기도 있고요. 자기들과 다른 족속이면 이물이든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붙잡아요. 붙잡아서 우리에 가두고 피를 뽑아먹어요….”

“다른 특징은요?”

여인은 애써 울음을 삼켰다.

“잔인해요. 정말…. 정말 잔인한 것들이에요. 저희가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당한 건 아니었어요. 처음엔 500명은 있었거든요. 그래서 방어하려고 했어요.”

「낙원보다 큰 집단이었네?」

“그런데 녀석들은 불리해지면 인질을 잡고 함정을 파기도 했어요. 저희가 보는 앞에서 인질을 처형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리고 자기들끼리 동료의식도 없는지, 죽은 녀석의 사체를 방벽 너머로 던지고 도망가기도 했어요. 그런 싸움이 밤낮도 없이 이어졌죠. 그렇게 저희는 지쳐서….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어요.”

「시체를 던져서 흑사병을 퍼뜨리고 쉴 틈 없이 공격해서 휴식조차 취할 수 없게 만들고.」

「그냥 머릿수만으로 이긴 게 아니었네. 녀석들에겐 전술이라는 게 있어.」

‘따라서 지휘관, 우두머리도 있겠지.’

여인이 말해줄 수 있는 정보는 이게 끝이었다.

“강령술사님…! 부디…!”

여인은 내 손을 덥석 붙잡고서 애원하는 것이다.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제발, 제발 그 쥐새끼들에게 복수하고 싶어요…!”

그러자 젊은 여인과 노인들이 모여들었다.

“저희는 아, 아직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무기만 주시면, 그리고 조금만 힘을 보태주시면 최선을 다해서 싸우겠어요! 그러니까 제발…….”

그만 애원했으면 좋겠다.

내 마음속에서 죄책감이 질병처럼 올라온다.

“부디, 놈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세요….”

「걸어 다니는 흑사병을 상대로 인간이 뭘 어떻게 해? 방독면도 없는데.」

「방독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놈들의 무기에 살짝만 긁히면 금방 흑사병에 걸릴걸?」

「게다가 이렇게들 쇠약해진 몸으로는 병에 저항하기도 힘들 거야.」

그런 것까지 다 감안하더라도 ‘사람’이 이 전투에 참전하는 건 좋지 않다.

방독면을 쓰고서 온몸을 꽁꽁 싸맨 채 다치지 않더라도 흑사병에 걸릴 수가 있다. 녀석들의 털 한 가닥이나 핏방울 하나가, 훗날 집단 전체를 위협하는 재앙의 씨앗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흑사병의 위협을 조금이라도 안고 있는 자들을 ‘낙원’에 들일 수는 없다. 아직 낙원은 역병에 완벽히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황궁에 있던 자들은 안전하겠지.」

‘맞아. 흑사병에 걸린 사람들은 진작 다 죽었을 테니까.’

지금 내 앞에 있는 새로운 사람들은 자정작용이 끝난 집단이다. 따라서 이들이라면 이대로 낙원까지 데려갈 수 있다.

“여러분을 살리겠다고 죽음을 무릅쓴 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맞아요! 하,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 갇혀서 산 채로 피를 뽑히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건 여러분이 참전할 수 있는 명분이 되지 않습니다.”

“놈들을 해치우면서 구조까지 해내려면 손이 하나라도 더 필요할 건데요….”

“그것들은 수백 마리나 있다고요!”

“오, 옳소…! 그리고 우리에 가둔 사람들도 여차하면 인질로 삼겠지…! 그러니까 우리도 나서서 따로 인질을 구출하는 작전을 펼치지 않으면….”

“제 말은.”

나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목에 살짝 힘을 주었다.

“여러분이 그곳에 가봤자 새로운 희생자이자 인질이 될 뿐이라는 겁니다.”

조금은 기분이 나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말해야 한다.

조금은 강압적이라도 상관없다.

“한 마디로, 여러분이 함께 싸워주신다고 해봤자 제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제 발목을 붙잡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죠.”

기분 나쁘게 들려도 된다.

강압적으로 느껴져도 된다.

그것을 능가하는,

그것을 능가하여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그 정도의 힘이 내게 있다는 걸 알리면 된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자들이 있다면 최대한 구조해서 데려오겠습니다. …그리고 그 쥐새끼들은 오늘 이후에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내게는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벨드샤, 카프하니드, 벨로움이었다면 인간 500명으로 이루어진 집단 따위 한차례의 공격으로 없애버릴 수 있었겠지.」

「심지어 500명 전부가 훈련된 군대도 아니었잖아.」

「그런 나약한 인간 집단을 상대로 악착같이, 잔인하게, 교활하게 밤낮없이 싸워서 지치게 만들고 이겼다?」

「그마저도 여자, 아이, 노인들은 죄다 놓쳐버리고?」

「그깟 쥐새끼들. 네 상대가 안 되지.」

오만.

오만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이물 집단일 수도 있다.

“후안 씨.”

“저희는 언제든 이물과 싸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강령술사님.”

“경비대는 이곳에서 사람들을 지키세요.”

“예?”

“왜 그래야 하는지는 스스로 생각해 보시고요.”

하지만 오만이라는 걸 다 제쳐두고서라도, 흑사병을 달고 다니는 놈들을 상대로 ‘내 사람들’과 ‘내 사람이 될 예정인 자들’을 끌고 갈 수는 없다.

그리고 흑사병을 달고 있는 놈들과 싸운 이들이 낙원에 들어가게 할 수도 없다.

“제가 혼자서 가겠습니다. 만약 제가 내일까지 돌아오지 못한다면 사람들을 이끌고 낙원으로 돌아가세요.”

“아, 알겠습니다….”

「간만에 제대로 된 사냥 좀 해보자.」

흑사병은 그곳에서 끝나야만 한다. 그곳에서 모조리 죽고서 끝나야만 한다.

그곳이 놈들과 흑사병의 무덤이 될 것이다.

따라서 흑사병이 밖으로 빠져나갈 그 어떠한 일말의 여지조차 주지 않겠다.

그게 내 결론이다.

「그곳에 있는 놈들의 ‘악’도 전부 우리 거야.」

* * *

뿌연 공기 속 폐허.

비첸크로이 제국의 폐허는 도시 전체에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멀쩡한 건물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본래 견고했던 건물들은 지붕이 무너져서 벽까지 허물어진 채 내부를 훤히 드러내고 있다.

“찍! 찍찍!”

성인 남성의 하반신쯤 되는 작은 신장, 동그란 짐승의 귀, 짐승의 두상, 흰자위가 없는 까만 눈. 어렴풋이 보이는 붉은 홍채, 회색 털, 털 한 가닥도 없이 지렁이처럼 꿈틀대는 꼬리.

문자 그대로 시궁쥐를 닮은 이물들이 폐허를 점령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시궁쥐를 쏙 빼닮고선 인간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닌다. 가죽 갑옷, 철 갑옷, 사슬 갑옷, 평범한 의복을 가리지 않고 몸에 걸치고 있으며 두 손에는 조잡한 무기도 쥐고 있다.

그리고 이쪽의 작은 광장에는 녀석들의 사냥감이 포획되어 있다.

감옥의 철창을 떼어다 만든, 짐승을 가둘 때나 쓰일 법한 우리였다.

“찌이익! 찍찍!”

캉캉캉!

어느 녀석이 쇠막대기로 우리를 두들겼다.

“씨발, 쥐새끼들아!”

“우릴 풀어줘!”

우리에 갇힌 남자들은 초췌한 몰골이지만 화를 낼 기운은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를 두들겨 자극하면 격한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격한 반응이 녀석들에겐 일종의 유희였다.

“키익! 킥킥킥!”

“킥킥킥킥!”

작은 광장에는 열 개의 우리가 있는데, 그중에 여덟 개는 인간을 가두는 것이었고 나머지 두 개는 녀석들과 다른 이물을 가두는 것이었다.

그리고 광장의 한쪽, 벽이 반쯤 무너진 건물 안에는 도살장 같은 것이 있다.

희생자의 피가 흥건한 긴 탁자, 바닥, 벽, 날붙이들.

누군가의 머리, 팔다리, 가슴, 손가락, 귀, 뼈, 발라낸 살점을 종류별로 구분해서 담고 있는 바구니.

누군가의 혈액을 담고 있는 통.

“으으으….”

손발을 꽁꽁 묶인 채 막대기에 거꾸로 달려서 끌려오는 남자.

그는 혈색이 창백했다.

“찌직. 찍.”

“찌이익!”

녀석들은 거꾸로 속박된 남자를 보면서 자기들끼리 뭔가 대화를 나누었다.

“찍찍.”

그러더니 한 녀석이 도구를 꺼내들었다. 정체 모를 이물의 뼈를 깎아서 꼬챙이처럼 만든 것이었다.

- 그만둬!

- 하지 말라고 이 새끼들아!!!

바로 앞쪽 광장에서는 이 도살장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희생자를 손질하는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래서 광장의 우리에 갇힌 자들은 그러지 말라며 소리 지르고, 분노하고, 다음 차례는 자신이 될까 두려움에 떨기도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이런 도살장을 광장에 훤히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반응을 유도하는 것 또한 녀석들에겐 유희였다.

“킥, 킥킥킥!”

쑤욱…!

녀석은 거꾸로 매달린 남자의 항문에 뼈로 된 꼬챙이를 찔러 넣었다.

쏴아아아…!

그러자 그의 창자에 담겨있던 것들이 고통스럽게 쏟아졌다.

“찍찍!”

녀석들은 그것을 통에 받아냈다.

이어서 꼬챙이를 든 녀석이 이번에는 남자의 목을 노렸다.

“아아…! 아아아…!”

푹!

목에 구멍을 냈다.

목의 아래쪽에 놓인 통으로 피가 쏟아졌다.

하지만 아까부터 혈색이 창백했던 남자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다. 애당초 이 남자는 너무 많은 피를 쏟아내고 쇠약해진 끝에 더는 피를 뽑아낼 수 없게 된, 가치가 없는 가축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이내 절명하였고, 녀석들은 남자를 긴 탁자 위로 옮겨서 해체하기 시작했다.

쩌걱! 써걱써걱!

발목부터 살가죽을 살살 벗겨내 다리까지 뒤집고, 목을 베어낸 후 목의 둘레를 따라서 아래쪽으로 동시에 살가죽을 벗겨내는 것이다. 머리털과 음모 따위는 대충 바깥에 버리고 눈알은 그 자리에서 식감 좋은 별미로 즐겼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광장에서는 훤히 보이는 것이다.

우리에 갇힌 일곱 남자들은 아득바득 이를 갈았다.

“도살장에 가까운 우리에서 사람들을 차례대로 빼내고 있어….”

그들은 목에 더러운 천을 붕대처럼 감고 있었다.

다들 끌려가서 피를 한 번 이상은 뽑힌 경험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버티지 못하게 되면 도살장에서 저런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난 벌써 세 번이나 피를 뽑혔다고. 더는…. 더는 안 돼.”

“그쪽 말고도 다들 상태가 안 좋아요. 곧 저희 차례가 올 거예요.”

“어쩌지?”

“이대로 죽느니 뭐라도 해보겠어.”

“뭘 어쩌시려고요?”

그들 사이에 있는 중년의 남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차피 이 광장 밖까지는 시야가 닿지 않아.”

공기가 뿌옇다.

보이는 것이라곤 같은 처지에 놓인 주변 사람들과 아홉 개의 우리. 다 허물어진 건물들과 도살장. 그리고 작업을 하는 녀석들과 광장을 지키는 녀석들이다.

“저쪽, 사람 피 빼고 살점 발라내는 것들은 작업을 할 때가 되면 바빠져.”

“놈들 말고도 다른 쥐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잖아요. 빠져나갈 구멍이라고는… 아니, 애초에 이 철창으로 만든 우리는 무슨 수로 탈출하려고요?”

그러자 그는 자신의 목을 감은 붕대를 만졌다.

“아까 피 뽑힐 때 슬쩍했어.”

피로 젖은 붕대 너머에 무언가 윤곽이 잡혔다.

“쇠막대야.”

“열쇠가 아니고요?”

“열쇠를 어떻게 훔치냐? 저 새끼들 바짓가랑이에 달려있는걸.”

그는 우리의 구석을 가리켰다.

“이 철창은 오래된 감옥에서 떼어온 거야. 그래서 저렇게 녹슨 부분이 있지. …저기다 쇠막대를 끼워서 힘껏 벌리면 부러뜨릴 수 있어. 틈이 좁아서 몸을 좀 긁히겠지만 어찌어찌 빠져나갈 수는 있을 거야. 다들 야윈 몸이잖아.”

- 으아아! 싫어! 난 아직 팔팔하다고!!

때마침 도살장에서 누군가의 절규가 들려왔다. 작업하는 녀석들은 당분간 저 희생자를 보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차례가 머지않았어. 할 거면 지금 해야 돼.”

그는 목을 감은 붕대에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쇠막대를 꺼냈다.

그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같은 우리에 있는 이들은 눈치껏 움직여서 각자의 몸으로 그를 가려주었다.

“다 같이 뛰자고. 모두가 살 수는 없겠지만 우리 중 누군가는 사막까지 나갈 수 있을 거야.”

그는 우리의 녹슨 부분에 쇠막대를 끼워서 힘껏 잡아당겼다.

끼긱! 끼긱!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쿨럭쿨럭! 흠! 흠!”

그를 몸으로 가린 자들은 헛기침을 하여 소리를 숨겼다.

끼기긱…….

이윽고 우리의 틈새가 벌어졌다. 녹은 철창이 좌우, 앞뒤로 휘어져서 한 사람씩 비스듬히 빠져나갈 수 있는 너비가 된 것이다.

“나가!”

지익…!

녹슨 철창의 거친 표면에 맨살이 긁혔다. 등줄기를 따라 피가 주르륵 흘렀다.

하지만 그런 고통은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빨리, 빨리…!”

서로 밀치지 않고 한 사람씩 침착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일곱 명이 모두 우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제 어떡해요?”

중년의 남자는 주먹 크기의 돌멩이를 주워들었다.

“서쪽으로.”

“좋아. 일단은 두세 마리만 돌파하면 돼. 다 같이 모여서 두세 마리만 힘껏 때리고 죽어라 달리면…”

- 와아악! 선생님들!

바로 근처의 우리다.

근처의 우리에 갇힌 이물이 소리를 지른 것이다.

“탈출하려고 합니다! 저 인간들이 탈출하려고 합니다! 선생님들! 빨리 와서 잡아가세요!”

팔이 네 개, 눈이 아주 큰 박쥐를 닮은 이물이었다.

“저 씨발놈이…!”

“벌써 들키면 곤란한…”

“잔말 말고 뛰어!”

박쥐를 닮은 이물은 시끄럽게 소리 지르며 쥐를 닮은 이물들에게 아부했다.

“서쪽입니다! 놈들이 서쪽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아아!”

그 외침을 들은 이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찍!”

“찍찍찍!”

…쐐액!

푹!

서쪽으로 뛰던 일곱 명 중에 가장 뒤에 있던 자가 쓰러지고 말았다.

“화살이야!”

푹!

또 한 사람이 쓰러졌다.

“카빈!”

“잠깐, 카빈이 쓰러졌어…!”

그때 쓰러진 자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외쳤다.

“왜 날 쳐다보고 있어?!”

“하지만 너…”

“빨리 뛰라고 병신들아!!!”

남은 다섯 명은 멈칫했던 뜀박질에 박차를 가했다. 뒤는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며 뛰는 것이다.

“카빈이 쓰러졌잖아…. 아직 살아있다고….”

“그래도 뛰어야지! 아니면 지금 돌아가서 그 친구의 희생을 물거품으로 만들래?!”

“제기랄!!”

작은 광장의 경계선에 도달하는 건 금방이었다.

하지만 광장의 서쪽에는 녀석들이 모여있었다. 처음에 상정했던 것과 달리 열 마리 이상은 있는 것 같다. 그것도 무기를 들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좆됐다.”

“씨발, 그 박쥐 새끼만 아니었어도….”

이들이 서쪽으로 도망갈 거라는 걸 미리 듣고서 잽싸게 모여든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광장 쪽에서 달려오는 녀석들도 대충 열 마리는 되는 것 같다.

이쪽은 다섯 명. 맨손이다.

“어쩔 수 없잖냐.”

“…앞? 뒤?”

“앞으로 뛰어야지….”

“앞에 있는 놈들만 어떻게든 제칩시다.”

상황은 절망적으로 바뀌었지만 방침은 같다.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고 절대 모두가 살아나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놈들의 체구가 어린아이처럼 작다는 것이고, 운이 좋다면 누군가는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라고 희망할 수 있는 건, 생존을 원하는 몸이 용기를 주기 위해 희망이라는 착각을 불어넣었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아!”

“찍찍!”

당연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어린아이의 체구를 하고 있더라도 상대는 이쪽보다 네 배는 머릿수가 많으며, 인간보다 민첩하고 손에는 무기까지 들고 있다.

게다가 다들 지치고 야윈 몸.

“끄억…!”

“아아악!”

좀 전까지 갖고 있던 희망이 착각이었다는 걸 증명하듯, 녀석들과 충돌하여 다치는 사람은 있어도 죽는 사람은 없었다.

녀석들에겐 그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할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피 흘리며 쓰러질 때마다, 좀 전에 갖고 있던 희망이 망상이었음을 뼈저리게 체감하게 된다.

그나마 무모한 용기라도 있던 순간이 나았다.

용기가 빠져나간 세 사람은 끝내 녀석들에게 등을 보이고 말았으니.

광장 쪽에서 뛰어오던 녀석들이 어느새 진을 치고서 이쪽 상황을 구경하고 있는 것이었다.

- 킥킥킥!

- 키킥!

“…하.”

“쥐새끼라고 무시해서 당한 거야….”

이젠 아무것도 없이 절망이었다.

“저런 괴물들까지 기르고 있었잖아….”

광장에서 진을 치고 있던 녀석들은 배후에 거미를 닮은 괴물들까지 데리고 있었다.

여전히 광장의 우리에 갇혀 있는, 박쥐를 닮은 이물은 더욱 아부했다.

- 정말 대단하십니다! 선생님들! 주술도 부리실 수 있던 겁니까?!

- 그렇게 무시무시한 거미들까지 소환하실 수 있다니요!

그 말을 들은 녀석들이 하나둘씩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16개의 붉은 눈을 달고 있는 커다란 머리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찍?”

그게 녀석들의 유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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