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지옥으로 가는 길 (1)
혈취자들은 지하수로를 보금자리로 삼아 땅굴을 파며 살아가고 있었다. 지상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각종 가구와 도구가 배치되어 있고 벽돌로 마감한 벽을 허물어서 복잡한 땅굴을 파 놓았다.
만약 내게 탐지 5계, 투시가 없었다면 이곳에서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혈취자들이 갖고 있는 악보다 더 큰 악을 가진 놈이 지하 깊숙한 곳에 있었잖아? 그걸 우두머리라고 생각했고.」
「그런데 더 큰 악을 가진 놈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었어.」
‘그중에 우두머리가 있겠지.’
흑사병이 골칫거리다. 저주 저항이 있는 나라고 흑사병에 걸려서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은 아니다.
“찍찍!”
퍼억!
나는 반대쪽 통로에서 뛰어오는 혈취자들을 검기로 베어내며 길을 돌파하고 있다. 녀석들의 털, 핏방울, 뾰족한 무기가 몸에 닿을 때마다 흑사병이 나를 위협한다.
「살갗이 까맣게 썩고 있어.」
살이 괴사하는 고통이 끊이질 않고 있다.
‘나는 싸움에 집중할 테니까 네가 흑사병에 대처해. 재결합으로 수복하는 거야.’
「알겠어.」
밀폐되고 더러운 공간에서 흑사병은 어디에나 있었다.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흑사병에 살갗이 괴사하는 걸 막기 위해 재결합으로 신체를 고쳐야만 한다. 이곳은 그런 전장이었다.
“찍찍찍!”
“찌이이!”
지하에 있는 혈취자들은 눈을 붉게 밝히며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예전에 이곳, 비첸크로이 제국의 수도에서 싸웠을 때 도시 전체의 악령들이 모여들었던 때와 상황이 비슷하다.
어지럽게 이동하는 수많은 존재감이 느껴진다. 혈취자들이 사방팔방에서 움직이며 내게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더 깊은 지하에 우두머리가 있는 게 확실해.’
나는 상대적으로 강한 존재들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서 돌파하고 있다. 그러고 있으니 혈취자들은 이번에도 날 막으려고 모여들었다.
“찌이이이!”
혈취자들이 또 앞길을 막았다.
“찌익! 찍찍!”
내 뒤쪽에서도 땅굴을 타고 온 녀석들이 길을 막고 있다.
앞뒤에 혈취자들이 있다. 놈들이 내지르거나 내던진 뾰족한 무기에 상처를 입는다고 해서 그게 치명상이 되진 않지만, 다칠 때마다 흑사병에 의한 피해를 입게 된다.
흑사병에 의한 피해를 입게 되면 재결합으로 수복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녀석들과 싸울 때마다 영력을 소모하게 된다. 주술을 부리지 않고 싸워도 말이다.
‘방혈.’
퍼퍼퍼퍼어억!!!
앞뒤를 가로막고 있던 혈취자들이 일제히 폭사하였다.
녀석들의 혈액은 먹물처럼 검은색이었다.
「인질들 때문에 피가 많이 튀는 수단은 쓸 수 없다며?」
‘이쪽 통로에는 인질이 없어.’
나는 녀석들이 만들어낸 검은 피 웅덩이와 사체를 짓밟으며 다시 뛰었다. 그 과정에 핏방울이 튀어서 온몸의 살갗이 조금씩 괴사를 시작했지만 재결합으로 수복하였다.
뛰다 보니 오르막길이 나왔다. 저 앞쪽에도 혈취자들이 있다.
「저것들이 잔머리를 굴리고 있어.」
쿠르르르!
놈들이 이쪽으로 바위를 굴렸다. 경사로를 따라 거칠게 굴러오는 바위는 통로를 아슬아슬하게 꽉 채우고 있어서 절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도끼에 영력을 흘려 넣었다.
콰카카!
검기를 날렸다. 내게 굴러오던 바위를 사선으로 갈랐다.
- 찌이! 찍찍!
바위는 사선으로 갈라져서 경사진 통로의 중간에 끼었다. 그리고 바위의 갈라진 틈새에서 뾰족한 무기들이 내게 쇄도해왔다. 놈들이 또 무기를 내던진 것이다.
‘재결합.’
나는 임기응변으로 발치 앞에 흙벽을 올렸다. 놈들의 더러운 무기가 흙벽에 다닥다닥 꽂혔다.
그렇게 한차례 공세를 방어한 후 흙벽을 허물었다.
‘광속.’
느려진 시간 속에서, 허물어지고 있는 흙벽을 비집고 경사진 통로를 빠르게 돌파한다. 통로를 벗어나니 다시 평탄한 지면이 나왔다. 지하수로가 아니라 놈들이 직접 땅을 파헤쳐 만든 자그마한 광장이었다.
횃불이나 모닥불 따위로 밝혀진 공간. 광속을 발동하는 중이라 이곳의 혈취자들이 아주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 상태에서 방혈을 연계하면 일일이 도끼를 휘두를 필요도 없이 녀석들을 손쉽게 해치울 수 있지만, 이길 수 있는 전투에서 영력은 과하게 소모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
나는 즉각 도끼를 휘둘러 바로 앞에 있는 혈취자의 머리를 쪼개려고 했다.
그때 우굴거리는 놈들의 몸 뒤에 있는 것이 보였다.
‘…!’
광장의 둥근 벽을 따라서 철창으로 만들어낸 우리가 네 개나 있던 것이다. 그 우리마다 사람들이 두세 명씩 갇혀있다. 이대로 이 녀석의 머리를 쪼개버리면 더러운 뇌수와 핏방울이 사방으로 튈 것이다.
‘마른 익사.’
나는 앞에 있는 놈의 폐에 출혈을 일으켰다. 그리고 쓰러지고 있는 놈의 뾰족한 쇠꼬챙이를 빼앗아 바로 근처에 있는 놈들의 심장을 하나씩 찔렀다. 그러다 쇠꼬챙이가 부러지고 말았다.
이윽고 광속 발동의 효과가 해제되었다.
열 마리 이상이 거의 동시에 쓰러졌다.
그래도 여전히 수십 마리가 내게 달려들고 있다.
「각자 한 번씩이라도 더 찌르려는 거야!」
「그게 이 쥐새끼들의 전략이라고!」
인질이 있다. 피가 튀게 해선 안 된다.
키이잉!
나는 지상에서 싸우던 거미 악귀를 두 마리만 천장에 소환했다.
거미 악귀가 직접 싸우게 하진 않을 것이다. 악귀들의 전투 방식은 반드시 피가 튀기 때문이다.
‘그물망을 써.’
두 거미 악귀는 즉시 거미줄을 엮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물이 내게 떨어졌다. 나는 다시 광속을 발동하여 그물을 피하고, 내가 있던 자리로 우르르 달려들던 혈취자들은 대다수가 그물에 걸리고 말았다.
“찌이익!”
“찌익! 찌익!”
질긴 거미줄로 엮은 그물은 녀석들이 깨물고 긁어도 절대 찢어지지 않았다.
‘죽여.’
투두두두둑!
그물이 빠르게 수축하였다. 그물에 갇힌 녀석들은 자기들끼리 몸이 끼어서 버둥대다가, 더욱 수축하는 그물에 살갗이 베이고 뼈가 부러져서 절명하고 말았다.
“찍찍!”
남은 녀석들은 도끼로 죽였다. 도끼의 날이 없는 쪽으로 놈들의 가슴뼈를 부수고, 머리를 때려 뇌진탕을 일으키고, 필요하다면 발길질이나 주먹까지 뻗어서 놈들을 때려죽였다.
그렇게 이 작은 공간은 정리가 끝났다.
「더러운 쥐새끼들.」
피가 튀진 않았지만, 놈들의 털이나 타액 따위가 내게 묻는 건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흑사병은 어김없이 내 살갗을 괴사시켰다.
뚝!
새끼손가락이 괴사하여 부러졌다.
나는 순간적인 통증에 놀랐다. 부러진 새끼손가락으로부터 느껴지는 통증이 괴롭다. 그건 신체가 절단되는 고통과 비슷한 정도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고통을 참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결코 아프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후우…”
부러진 새끼손가락은 피와 살로 분해되어 다시 새로운 새끼손가락이 되었다.
일단 이 자그마한 광장에 있는 혈취자들은 전멸하였다.
“우리를 구하러 온 건가?”
“몰라!”
“살려주세요!”
“여기 사람이 갇혔어요!”
“제발 우리를 풀어주십시오…!”
“근데 저것도 우리랑 같은 인간이야? 저 가면이나 분위기가 좀…”
나는 사람들이 갇힌 우리로 걸어갔다.
“물러서세요.”
카앙!
우리를 이루는 녹슨 철창은 도끼를 가볍게 휘두르는 것으로 금방 부서졌다.
카앙! 카앙!
다른 우리에 갇힌 자들도 풀어주었다.
“아이고!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도끼를 겨누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예, 예…?”
“제 손에는 더러운 것이 묻어 있습니다.”
기껏 구한 사람들이 흑사병에 걸려선 안 된다. 이들을 한 사람씩 치료할 시간도 영력도 아껴야 한다.
「올고호르휘.」
「잠시 이쪽으로.」
“아…. 그, 쥐의 역병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실례가 아니라면 선생님의 존함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목숨을 구해주신 분의 존함 정도는 알고 싶습니다.”
“저는 강령술사입니다.”
쿠구구구…
푸화아아아!
올고호르휘가 내 뒤쪽 벽을 뚫고서 머리를 들이밀었다.
“으아앗!”
“뒤, 뒤, 뒤에!”
“뒤를 조심하세요…!”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설명을 생략하고 이동해도 된다.
“선생님! 어디로 가십니까?!”
“이 창자를 닮은 괴물은…”
올고호르휘는 입을 크게 벌렸다. 깊은 통로 같은 어두운 목구멍이 그들 앞에 놓였다.
“으아아아! 살려주세요!”
“키투스! 인드라!”
“…베니우스? 잠깐, 다들 왜 그 괴물의 주둥이에서 나오는 거야?”
앞서 올고호르휘의 뱃속에 있던 자들이 그들을 마중한 것이다.
“저분이 구해주셨다고! 강령술사님이!”
“가, 강령술사……?”
야윈 몸이라 말할 기운도 없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이었다.
그랬던 자들이 이제는 희망을 머금고서 기운을 되찾은 것이다.
“거미 군단과 나방 군단을 지휘하고! 거대한 괴물을 군마처럼 타고 다니는 영웅이셔!”
「…영웅은 무슨.」
나는,
우리는 낙원의 인구수를 늘리고 싶을 뿐이다.
그래야 인재를 움직여 잿빛세계에서 더 많은 일들을 수행할 수 있고, 세금도 더 많이 걷을 수 있기 때문이다.
* * *
페인은 계속해서 가장 깊숙한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더 깊숙한 지하에는 더 넓은 지하수로가 있었다.
“찍찍!”
방금 우두머리에게 새로운 명령을 하달 받은 혈취자들은 마른 풀, 나뭇가지, 목제품 등을 여럿이서 옮기는 중이다.
“찍!”
“찍찍찍!”
혈취자들은 통로의 한쪽에 목제품을 일렬로 늘어뜨려 쌓았다.
- 찌이이이…!
콰앙! 콰콰쾅!
저 멀리서 위협적인 침입자가 무리를 학살하며 다가오고 있다. 침입자가 이곳까지 도달하는 건 금방일 것이다.
“찍!”
혈취자들은 통로의 더 깊숙한 안쪽으로 도망쳤다.
이윽고 페인이 이쪽 통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츠츠츳…
그의 온몸에서 살갗이 수복되는 소리가 조용하게 울리고 있다. 아까부터 흑사병에 당하여 괴사하는 살갗을 재결합으로 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관절도 다 고쳤어.」
타다닷!
페인은 통로를 뛰었다. 이렇게 뛰고 있으면 쥐구멍처럼 생긴 새로운 땅굴들이 나타나는데, 그것들은 전부 혈취자들이 그를 속이기 위하여 파놓은 함정이었다.
「우리한텐 안 통하지.」
지금까지 혈취자들은 그에게 많은 전술을 시도해왔다.
단순히 숫자로 밀어붙이기, 통로의 양쪽에서 공격하기, 방에 숨어있다가 그가 들어오면 급습하기, 바위를 굴리기, 통로를 무너뜨리기, 횃불을 전부 꺼버리고 어둠 속에서 공격하기 등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새로운 땅굴을 파서 그가 길을 잃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투시, 밤눈, 감각 증폭이 있었다.
투시는 막힌 사물 너머를 볼 수 있는 주술이고, 밤눈은 어둠이라도 밝게 볼 수 있는 주술이고, 감각 증폭은 신체로 받아들이는 자극을 극대화할 수 있는 주술이다.
그래서 사방이 흙과 암반으로 막힌 이런 지하라도 투시로 시야를 열고, 밤눈으로 어둠을 밝히고, 감각 증폭으로 시각을 강화하여, 매 역병 교수의 망원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멀리 볼 수 있는 것이다.
「가장 깊은 곳은 아직 안 보여. 다른 통로들이 장해물처럼 겹쳐서 가려졌어.」
그러나 이곳의 지하는 너무 복잡하다. 흙과 암반 너머에 있는 것을 투시하는 것까진 좋은데 개미 군락처럼 온갖 통로와 방이 겹쳐진 곳이라, 무엇이 앞에 있는 것이고 뒤에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어차피 곧 도착할 거야.’
‘투시는 해제해.’
밤눈은 철인처럼 항시 발동되는 주술이기 때문에 별도의 영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탐지와 연계되는 투시는 발동하고 있으면 지속적으로 영력을 소모하는 것이었다.
타다다닷!
그는 지치지 않고 뛰었다. 지하에 들어와서 첫 싸움이 벌어졌을 때부터 쉬지 않고 있는데 호흡은 여전히 안정적이다.
‘놈들이 조심스러워졌어. 내가 우두머리랑 너무 가까워진 거야.’
그때였다.
쿠르르르르!
페인이 지나온 통로가 무너지고 말았다.
‘뒤로 돌아갈 길을 막아버렸어.’
「어차피 돌아갈 생각은 없잖아.」
‘이렇게 되면 내가 앞으로 가는 걸 강제할 수 있다는 거야. 뒤쪽 길이 무너진 이상, 놈들은 내 동선을 확신할 수 있어.’
「저 앞에서 뭔가를 준비했다는 건가?」
「앞쪽에도 혈취자들이 있긴 한데.」
‘…이거였네.’
화아아아!
앞쪽에서 불길이 다가오고 있다. 통로에 목제품을 쌓아서 불을 붙인 것이다.
쿠르르!
그리고 저 앞쪽 통로가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 이곳은 통로가 아니라, 페인을 가두기 위해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이 되었다.
“하아…. 후우우….”
「불은 문제가 되지 않아. 그을려도 버틸 수 있어.」
「하지만 연기가…」
불로 밝혀진 통로는 곧 잿빛세계의 지상보다 더 뿌옇게 변했다. 순식간에 연기가 들어차서 호흡하기가 점점 힘겨워지고 있다.
‘투시.’
페인은 꺼두었던 투시를 잠시 발동하였다. 무너진 통로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불 때문에 잘 안 보이는데.’
「꽉 막혔잖아!」
‘감각 증폭 3계.’
청각을 강화하였다. 그러자 소리가 들렸다.
쿠르르…
저 앞, 더 깊은 곳으로 도달하는 땅굴들이 허물어지는 소리다.
쿠르르…
그리고 지상에 있던 혈취자들도 내려와서 페인이 지나온 길들을 전부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와중에 호흡은 더 가빠지고 있다.
‘날 생매장하려는 거야.’
「올고호르휘!」
‘아니야. 부르지 마.’
「왜?!」
‘녀석의 뱃속에 인질들이 가득 찼어. 내가 올고호르휘의 밀폐된 뱃속에 들어가면 다들 흑사병에 노출될 거야.’
「그럼 땅굴만 파 달라고 해! 뱃속에 들어가지 않고 직접 걸어서 나갈 수 있게!」
‘이곳의 지반은 단단하지 않아. 벽과 천장을 지탱하는 것도 없이 지상까지 굴을 뚫어봤자 어차피 무너질 거야.’
「멍청아! 너부터 살고 봐야지!」
「여기서 목숨을 하나 버리고 다시 들어오는 건 너무 손해잖아!」
‘누가 죽는 댔냐?’
페인은 자신의 영혼에 흐르고 있는 영력을 한껏 끌어모았다.
지금까지의 전투에서 때마다 영력을 적절하게 분배한 덕분에, 이런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우토와 역병 교수들이 페인을 보고서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이 경이롭다고도 하는 것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에게 이 정도는 위기도 아니었다.
그때 지상의 거미 악귀들은 미리 페인의 명령을 전달받아 뿔뿔이 흩어졌으며 불나방들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올고호르휘는 멀찍이 도망쳤다.
‘개미지옥.’
머지않아 잿빛세계의 비첸크로이 제국, 그 수도의 폐허 중심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기게 되었다.
그의 주술 한 번으로 혈취자들은 보금자리의 절반 이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자욱한 흙먼지가 잿빛세계의 뿌연 공기에 뒤섞이고 장엄하게 가라앉았다.
수도 중심에 생긴 커다란 구덩이에, 혈취자들의 깊숙한 보금자리와 연결된 쥐구멍들이 듬성듬성한 벌집처럼 드러났다.
“찌이이…!”
“찌이이이이…!”
산 채로 파묻힌 혈취자들이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찌익!”
파묻히지 않은 혈취자들은 지상의 햇빛을 피해 쥐구멍으로 쏙쏙 들어가 숨었다.
‘저쪽이야.’
탓다닷!
페인은 그런 혈취자들을 뒤쫓아, 가장 깊숙한 방으로 이어지는 쥐구멍 하나를 골라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