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127화 (127/181)

25. 지옥으로 가는 길 (2)

수도 폐허의 지상.

페인이 개미지옥으로 만들어낸 거대한 구덩이는 다시금 혈취자들과 악귀들의 싸움터로 변모하였다.

아니, 이제는 싸움터가 아니라 악귀들의 사냥터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전황이 기울었으니.

“케에에게게겍!”

혈취자들은 머릿수를 너무 많이 잃었다.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어도 악귀 한 마리를 이겨내기가 벅찬 상황이었는데 지하의 보금자리까지 위험해져서 지상에 있던 녀석들 대다수가 지하로 투입된 것이다.

“찍, 찍, 찍…!”

“크르르르!”

그런 와중에 흑기사들까지 소환되었으니 지상에서 혈취자들에게 승산이란 없었다.

전의를 상실하여 도망치는 혈취자들의 등을 거미 악귀들이 덮쳐서 배불리 포식하였고, 도망치는 중에도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던 혈취자들은 흑기사 한 마리를 이겨내지 못해 난도질을 당하였다.

쿠콰아앙!

흑기사들의 검기는 혈취자들을 베는 것으로도 모자라 폐허가 된 문명의 건물까지 무너뜨렸다. 그 압도적인 위세를 멀리서 목도한 혈취자들은 동료의 목숨으로 시간을 벌고서 폐허 바깥으로 도망치려 했다.

부우웅!

으적…!

“찌이이이이…!”

하지만 도주를 시도하는 혈취자는 불나방의 사냥감이 되었다. 아까부터 상공을 누비던 불나방들이 지상으로 내려와, 도주하는 녀석들을 한 마리씩 잡아가는 것이다.

……퍼억!

공중에서 물어뜯긴 혈취자들은 죽은 채로 떨어지거나 반쯤 죽어가는 몸으로 지상에 추락해서 온몸이 으깨졌다.

한편, 혈취자들에게 온몸을 찔린 거미 악귀 한 마리가 이쪽 골목을 비틀거리며 걷고 있다.

“그극…! 그그그….”

녀석은 심각한 수준의 흑사병에 걸려 단단한 갑피 안쪽의 살점이 괴사하였다. 내장까지 전부 썩어버린 탓에 더는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키그그극…!”

근처를 지나던 다른 거미 악귀들이 녀석에게 모여들었다.

쩌어!

모여든 녀석들은 좀 전까지의 전투로 인해 한껏 흥분한 상태였다. 그래서 페인의 경고를 잊어버리고 죽은 동족의 신선한 사체를 탐하였다.

부우우웅!

불나방 한 마리가 근처 지붕에 내려앉았다.

“그그….”

거미 악귀들은 불나방을 올려다보았다.

부우웅! 부우웅!

불나방은 그 자리에서 거칠게 날갯짓을 했다.

하지만 불나방이 그런다고 물러설 거미 악귀들이 아니었다.

“키에에엑!”

츠츳!

거미 악귀들은 불나방의 날개 주변에 거미줄을 사출했다. 그것에 위협을 느낀 불나방은 잽싸게 날아가고 말았다.

방해꾼을 쫓아낸 거미 악귀 무리는 이제 동족의 사체를 먹으려고 한다.

“크르….”

쿵! 쿵!

그때 흑기사 한 마리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크르르!!”

흑기사는 동족의 시체를 탐하는 무리를 보며 으르렁댔다.

이에 거미 악귀들도 흑기사를 보며 으르렁댔다. 일단 자기들의 쪽수가 있으니 각자 16개의 붉은 눈을 부라리며, 앞쪽에 붙은 네 다리를 들어 올려 위협적으로 덩치를 부풀리는 것이다.

“키에에엑!”

“크그그! 그르르…!”

“키엑! 키에엑!”

그러자 흑기사는 장검 두 자루를 높게 들어 올렸다.

카앙!!!

흑기사는 장검 두 자루를 지면에 수직으로 꽂아버렸다. 장검 두 자루가 지면에 꽂히면서 주변 땅이 징징 울렸다.

그 진동이 지면을 타고서 거미 악귀들의 다리까지 간질였다.

이어서 흑기사는 포효했다.

“크르르르! 크아아아!”

녀석의 포효에는 살벌한 경고가 담겨있었다.

그때 거미 악귀들은 무리를 지었음에도 자신감을 잃고 말았다. 눈앞의 흑기사는 비록 한 마리지만, 자기들보다 강하고 지능이 뛰어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자 잊었던 주인의 경고가 떠올랐다.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먹지 말라는 경고를.

“크르르!”

흑기사는 여차하면 장검을 뽑아서 휘두를 기세였다.

“…키익…!”

“키잉….”

끝내 거미 악귀들은 지레 겁을 먹고서 물러나고 말았다.

* * *

개미지옥을 발동한 뒤로 혈취자들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녀석들은 절벽 끝까지 내몰린 것처럼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울음을 내뱉으며 필사적으로 날 막으려 했다.

그 끝에, 나는 수많은 혈취자들을 죽이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처음보다 비교적 넓어진 지하수로.

저 끝에는 굳게 걸어 잠근 문이 보인다.

“찌이이….”

하반신을 잃고서 죽어가는 놈이 내 다리를 붙잡았다.

으직!!

나는 녀석의 머리를 밟아 부수고서 앞으로 걸었다. 문을 지키고 있는 녀석들이 주춤주춤 물러서다가 등이 문에 닿았다.

“찌이이!!”

“찍찍!”

「원래 물지도 못할 것들이 짖는 건 잘해.」

‘저 안에 넓은 방이 있어.’

「우두머리가 있는 곳이지.」

콰콰콰아!

나는 수평으로 검기를 날렸다. 문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혈취자들은 이번에도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스으으…

나는 녀석들의 먹물 같은 피를 모아서 허공에 띄웠다.

파파팟!

피로 이루어진 검은 덩어리는 가시를 돌출시켰다. 각각의 가시는 쓰러진 혈취자들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철퍽!

「형태를 유지하기가 어려워.」

‘저번에 나쿠타서스로 변장해서 싸울 때는 기름에 섞인 피라도 잘만 조종했잖아.’

「모르겠어. 이것들의 피는 심하게 오염된 거라서 그런가.」

이제 나는 문 앞에 있다. 원래는 문이라는 게 없는 지하수로인데 녀석들이 만들어둔 것이다.

콰앙!

지체할 것 없이 문을 걷어찼다. 어떤 쇳덩이가 안쪽에서 부러지며 문이 으스러지듯 열렸다.

이윽고 우두머리의 방이 눈앞에 펼쳐졌다.

「뭐가 많네.」

천장이 높고 제법 널찍한 공간이다. 수도 전체의 물이 모이는 대형 저장고처럼 쓰였을 법한 곳이다.

물론 지금은 바짝 메말라서 혈취자들의 넓은 방이 되었지만 말이다.

“찍찍찍찍!”

“우, 우릴 구하러 오신 거야!”

“찌이익!”

“여기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찍찍…!”

약 백 마리의 혈취자들이 공간의 절반 이상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득실대는 놈들은 지금까지 마주쳤던 놈들보다 조금 더 덩치가 컸다.

「정예처럼 보이지만 악명은 같아. 같은 종류야.」

또한 커다란 우리가 여러 개 있었다. 녹슬지 않은, 상태가 비교적 멀쩡한 철창을 뜯어다 만든 우리였다.

“제발 살려주세요…!”

「예쁜 여자들만 있네? 알몸으로.」

뭔가 더러운 상상이 떠올라 내 머릿속을 자극했다.

그런 게 아니길 바라면서, 나는 우리에 갇힌 나체의 여자들을 투시하였다.

「으…….」

그런 게 아니길 바라면서 했던 더러운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그녀들의 자궁에는 혈취자의 새끼가 있었다.

그것도 자궁 하나에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씩 말이다.

‘…내가 꺼내줄 수 있어.’

「뭐를?」

「저 여자들을 우리에서? 아니면 저 여자들의 뱃속에 있는…」

“찌이이이!”

그리고 이렇게 부하들을 앞세운 채 저쪽 벽 끝에 앉은 우두머리가 보인다.

뭐라 뭐라 소리치면서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예르쉬니아의 전파자.」

「586.」

혈취자들과 똑같은 생김새다. 더러운 회색 털, 동그란 귀, 지렁이 같은 꼬리, 동공도 없이 새까만 눈과 어렴풋이 비치는 붉은 홍채, 아무거나 주워서 입은 것처럼 헤지고 더러운 의복.

다만, 다른 녀석들과 달리 심하게 뚱뚱한 체형이다.

‘암컷인가?’

「당연히 수컷이지.」

‘복부가…’

「저 여자들을 누가 임신시켰겠냐.」

「그냥 배불뚝이인 거야」

배뿐만 아니라 팔다리까지 심하게 뚱뚱하고 목살이 접혀서 목이 안 보일 지경이며, 얼굴까지 뒤룩뒤룩 살이 쪘는지 눈매가 게슴츠레하다.

「존나 못생겼네.」

예르쉬니아의 전파자.

악명이 너무 기니까 그냥 우두머리라고 하자. 좀 전부터 저 우두머리가 앉아있는 푹신한 가죽의자에서 역겨운 오줌 냄새가 풍겨온다.

그 냄새는 다른 혈취자들에게 없는 것이었다.

‘적어도 똥오줌은 가려서 싸는 놈들이야. 그런데 우두머리라는 놈이 저런 냄새를 풍기고 있어.’

「설마…. 앉은 자리에서 그냥 싸는 거야?」

‘똥은 부하들이 치워주는 거고.’

「씨발 더러운 새끼! 여러 의미로 더러운 새끼! 빨리 죽이자! 저 미인들은 우리 거라고!」

우두머리는 거동할 수 없는 몸이다.

남은 혈취자들은 거의 다 이 방에 모여있다. 나는 지금껏 우두머리를 직접 노리지는 않고 간접적으로 위협하여 녀석들의 대다수를 이 공간까지 몰아넣었다.

이대로 다 쓸어버리고 싶지만, 저쪽 우리에 인질들이 갇혀있으니 이번에도 과격하게 피가 터지는 싸움은 피해야만 한다.

「…이미 흑사병에 걸린 거 아니야? 그 짓을 당했으면 결국 접촉했다는 거잖아.」

그런데 우리에 갇힌 여자들의 피부에는 괴사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잿빛세계의 사람치고는 아주 깨끗하고 멀쩡한 피부다.

‘부하들은 흑사병 덩어리인데 우두머리는 아니라는 건가.’

그리고 벽에 감옥처럼 끼워둔 우리가 하나 있는데, 부적을 붙인 천막으로 가려놔서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저건 비장의 수단이겠지.」

“찌이이!”

관찰은 여기까지다. 우두머리의 기름진 외침에 혈취자들이 몰려오고 있다.

여기에 있는 놈들을 전부 마른 익사로 죽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마른 익사만 쓰고 있다간 내 몸이 먼저 괴사할 것이다.

그래서 광속을 계속 발동한 채 마른 익사를 쓰자니 영력이 부족할 것이다. 광속은 정말 많은 영력을 소모하는 주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방혈을 썼다간 피가 튈 것이다. 악귀를 소환해도 마찬가지다.

발화로 불을 질렀다간 목제품에 불이 옮겨붙을 수도 있다. 놈들을 재결합과 관련된 주술로 쓸어버리자니 이 공간이 무너질까 염려된다.

「뭐가 이렇게 안 되는 게 많아?」

‘일단은 하나씩 잡아죽인다.’

나는 단신으로 혈취자들 사이에 뛰어들었다. 도끼로 놈들의 신체를 예리하게 갈아내고 검기를 날려 여러 마리씩 쓰러뜨렸다. 최대한 피가 튀지 않는 방향으로 말이다.

푹!

그러면서도 녀석들의 뾰족한 무기에 몸을 찔렸다. 머릿수가 너무 많아서 놈들이 휘두르고 내지르고 내던지는 무기를 전부 피하는 건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도 아직 영력에 여유가 있으니 괜찮다.

나는 괴사하는 살갗을 수복하면서 싸우다가 방혈을 발동했다.

‘마른 익사.’

“찌익…!”

「저주 저항이 있어.」

우두머리를 지키는 혈취자들에겐 계가 낮은 주술이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계가 높은 주술을 쓰자니 더러운 피가 튀는 과격한 방식이 된다.

「남은 숫자는 95마리.」

녀석들이 내 등을 노리고 있다. 나는 뒤꿈치로부터 흙으로 된 가시를 일제히 돌출시켰다.

푸푸푸푹!

뒤에 있던 녀석들을 꿰뚫어 죽였다. 그와 동시에 코앞으로 달려든 놈의 안면에 발길질을 날렸다. 녀석은 안면이 오목하게 으깨져서 뒤에 있던 녀석들과 충돌하였다.

쿠당탕!!

“키이…!”

나는 공중에 튄 검은 핏방울들을 짧은 순간에 하나씩 조종하여 떨어뜨렸다. 인질들에게 튀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때 우두머리가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찌이이이이!”

그러자 양손에 무기 대신 부적을 들고 있는 혈취자 세 마리가 앞으로 뛰쳐나왔다.

「주물이야!」

푸화아아!!!

녀석들이 들고 있는 부적으로부터 검은 혈액이 분출되었다. 혈액이 각자 수평으로 눕혀진 물줄기처럼 되어서 내게 날아드는 것이다.

내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방법이 흑사병밖에 없다는 걸 우두머리가 눈치챈 것 같다.

「내가 받아낼게!」

내 안의 악령은 혈액의 줄기들을 조종했다. 심하게 오염된 혈액이라 형태를 유지하는 것도 원하는 대로 조종하는 것도 힘들지만, 가까스로 궤도를 틀어내는 건 가능했다.

퍼버버벅!

혈액은 내 근처의 흙바닥에 쏟아졌다. 그렇게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오염된 핏방울이 내게 닿기 전에, 움직였다.

‘광속.’

나는 거의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혈취자들의 머리를 하나씩 때리면서 우두머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뛰었다. 그러면서 녀석에게 치명적인 방혈을 발동했다.

한 마리로부터 튀어나가는 핏방울 정도는 전부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교수척장분…’

갑작스레 내 시야가 바닥을 향하고 있다.

뭔가가 내 다리를 붙잡은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고 있는 것이다. 광속을 발동한 채로.

콰아앙!!!

나는 전속력으로 흙바닥에 돌진하여 처박힌 꼴이 되었다. 그렇게 광속이 해제된 직후, 놈들의 무기가 내 등을 쉼 없이 찔러댔다.

‘발화 3계. 증기폭발.’

내 등을 따라서 빠져나간 혈액을 모조리 폭파시켰다. 내게 모여들었던 녀석들은 몸의 전면에 화상을 입고서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일어섰다.

“찌이…! 찌이…!”

무엇이 내 다리를 붙잡았는가 싶었다.

흙바닥에 어린 혈취자가 땅굴을 파고서 숨어있던 것이다. 내가 싸우는 사이에 지하로 땅굴을 파고서 몰래 접근하여 내 다리를 붙잡은 것이다.

녀석은 덩치도 존재감도 작았으며, 한 마리였다.

그래서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재결합.’

흙 사이에 있던 돌멩이들이 칼처럼 변하여 녀석의 온몸을 찔렀다.

“찌이이…!!!”

머리와 손만 내밀고 있던 어린 혈취자는 검은 피를 내뿜으며 날카로운 괴성을 질렀다. 나는 그 핏방울 튀지 않도록 녀석을 생매장하였다.

자신이 판 땅굴과 함께 묻혀버린 녀석은 흙으로부터 빠져나오려고 동그란 머리를 위로 밀어댔다.

퍼억!

나는 동그랗게 튀어나온 흙더미를 짓밟았다. 녀석의 두개골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잠잠해진 흙바닥에서 핏물이 먹물처럼 스며나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두머리가 또 뭔가를 명령했다.

“찍찍! 찌이이!”

우두머리 근처에 있던 혈취자들이 옆으로 뛰어갔다.

「드디어 보여주네. 뭔지는 모르겠지만….」

좀 전에 확인했던, 벽에 감옥처럼 끼워진 우리.

그것을 가리고 있던 부적 달린 천막을 뜯어낸 것이다.

“시이이익!!!”

「병정개미.」

「734.」

‘우두머리보다 강하잖아.’

「인간들도 자기네보다 강한 동물을 기르곤 하잖아.」

우리에 갇혀있던 건 악명 그대로 커다란 개미를 닮은 이물이었다. 녀석은 덩치가 너무 커서 천장에 머리가 닿을 지경이었다.

쩌겅! 쩌겅!

병정개미는 철창을 턱으로 가볍게 가르고선 우리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그 앞에 있던 혈취자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잽싸게 몸을 피했다.

「녀석은 온몸에 부적을 붙이고 있어.」

「무슨 부적인지는 몰라.」

“시이이이!”

온몸에 알 수 없는 부적을 붙이고 있는 병정개미.

녀석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내게 돌진해왔다. 머리로 천장을 긁으면서 위압적으로 닥쳐와 가위 같은 턱을 내게 내질렀다.

부웅!

나는 도끼로 녀석의 턱을 쳤다.

쿠직…!

턱에 흠집을 내는 것으로 그쳤다. 녀석은 도끼로 일격에 가를 수 없는 단단한 갑피를 두르고 있던 것이다.

“시이이…!”

나는 병정개미의 턱에 허리를 붙잡혔다.

「조심해!」

드드득!!

엄청난 치악력이었다. 갈비뼈에 금이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도끼를 스스로 놓아버렸다. 이대로 허리가 잘리기 전에 두 손으로 녀석의 턱을 붙잡아 억지로 벌렸다.

“찍찍!”

“찌이이이!”

내가 그렇게 버티고 있는 순간을 혈취자들은 놓치지 않았다. 온 사방에서 달려들어 내 몸을 찌르려는 것이다.

「뭐라도 발동하라고!」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허리가 잘리는 걸 막으려고 도끼를 놓아버렸다.

하지만 이 상태로도 조금만 방심하면 허리가 잘릴 수 있다. 와중에 혈취자들이 뾰족한 무기를 들고서 달려드는 상황.

양손은 병정개미의 턱을 붙잡아 버티는 중이며, 두 다리는 공중에 떠서 이동할 수 없는 상태이며, 과격한 주술은 인질의 목숨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할 수 없는 상황. 다수의 악귀들을 소환하자니 공간이 협소하고, 소수의 악귀들을 소환하자니 어차피 악귀들의 전투 방식은 온 사방으로 피가 튈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니다. 소수라도 소환하여 거미줄이나 검기의 힘을 빌린다면…

푸욱!

다리를 찔렸다.

푸욱!

등, 심장이 있는 부분을 찔렸다.

온몸에 흑사병이 퍼져나간다. 살갗이 괴사한다. 그 즉시 재결합으로 상처를 수복하지만 놈들의 무기가 쉴 틈 없이 내 몸을 찌르고 있다. 더 찌를 것이다. 와중에 병정개미의 턱이 내 허리까지 닿아서 다시금 갈비뼈를 조이고 있다.

「병정개미라도 어떻게 해봐!」

‘마른 익사….’

통하지 않았다. 병정개미가 온몸에 붙이고 있는 부적들이 마른 익사를 막은 것 같다. 그렇다면 단순한 방혈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교수척장분지형이나 제물방류 같은 강력한 방혈을 쓰면 녀석의 커다란 덩치에 담겨있던 피가 사방으로 튈 것이다.

「인질을 포기해!」

마른 익사에 저항하는 부적을 달고 있으니 재결합으로 녀석의 갑피를 변형시키는 것도 안 된다. 당연히 발화 3계의 방사나 증기폭발로도 피해를 입힐 수 없을 것이다.

「억지 부리지 말고 포기하라고!」

재결합으로 가시나 칼날 따위를 만들어서 녀석의 단단한 갑피를 뚫는 것도 안 된다. 흙을 띄워서 녀석의 목구멍을 막아 녀석이 질식할 때까지 기다릴까. 아니다. 그러기 전에 내 허리가 잘리거나 온몸이 괴사해서 죽을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온몸을 찔리고 있다.

「인질들 때문에…! 오늘 하루 종일…」

병정개미.

물리적인 수단이 통하지 않는 강인한 육체.

부적으로 보강한 저주 저항 능력.

그 모든 것을 갖고 있는 병정개미를, 최후의 병기 같은 이 이물을 죽이기 위해선,

‘영력 발산 5계….’

육체가 아닌 정신을 타격하는 방향이 옳을 것이다.

이것은 영력 발산에서 파생되는 주술이다.

‘공황(恐慌).’

영력 발산이란 말 그대로 내가 가진 영력을, 존재감을 ‘발산’하는 것.

따라서 5계 이상의 주술인 공황을 발동하였으니 이 공간에 있는 병정개미, 혈취자, 우두머리들은 모두 공황이라는 5계 주술에 노출되는 것이다.

그것은 저 뒤에 있는 인질들도 예외가 아니다.

- 꺄아아아!

- 으, 으으으으으…!

우리에 갇힌 여자들은 머리를 쥐어싸매고 벽을 손톱으로 긁어댔다. 단단한 철창에 스스로 머리를 박거나 자신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이제 저들의 몸과 정신이 공황으로 인해 망가지기 전에 이 싸움을 끝내야만 한다.

“시이…!”

병정개미는 턱을 활짝 벌렸다.

나는 녀석의 턱으로부터 벗어나 두 다리로 설 수 있었다.

“시이…! 시이이이…!”

그 순간에 나는 몰랐다.

오늘 하루 종일 기를 쓰며 붙잡고 있던 어떤 끈이,

어쩌면 내 안에 남은,

내가 페인이라는 인간을 증명하던 끈을 놓아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 나는 소리를 지르며 병정개미의 몸을 도끼로 깨부수고 있었다.

잘 쪼개지지 않는 나무를 억지로 쪼개듯이.

* * *

페인의 도끼에 맞아서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병정개미는 더듬이를 미친 듯이 떨었다.

그때 다른 녀석들과 똑같이 공황에 떨고 있던 우두머리는 가까스로 병정개미를 가리켰다.

“찌이이!”

그러자 병정개미의 온몸에 붙어있던 부적들이 검은 혈액을 터뜨렸다. 그것은 부적뿐만 아니라 병정개미의 육체까지도 폭발의 소모품으로 삼는 것이었다.

절대 인질들에게 튀어선 안 되는 혈액들이 공간 전체에 터져나갔다. 땅을 더럽히고 벽을 더럽히고 천장을 까맣게 더럽혔다.

와중에 페인은 도끼질을 멈췄다. 자신에게 피가 쏟아지든 말든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광속을 발동하여, 느려진 시간감각 속에 인질들에게 튀는 혈액만이라도 어떻게든 조종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모든 혈액을 하나씩 포착해 조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가 가진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꺄아아악…!”

인질들은 검은 핏방울을 맞고서 온몸이 순식간에 괴사하였다. 병정개미와 그 부적들이 품고 있던 혈액은 평범한 흑사병보다 더 위험한 역병이었던 것이다.

“….”

그 순간, 페인의 검은 렌즈에는 까맣게 썩어버린 인질들의 시신이 담겼다.

그런 인질들의 하복부를 찢어발기며 튀어나오는 혐오스러운 핏덩이들이 보였다.

태어나선 안 될 새끼들이었다.

쿠득쿠득쿠득…

그는 더 위험한 역병에 온몸이 괴사하고 있음에도 수복하고 있었다. 흑사병을 능가하는 병과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목숨이 위험할 정도였다. 정말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우두머리는 그런 페인의 상태를 눈치챘다.

“킥…!”

페인이 인질을 신경 쓰고 있었다는 사실까지도 눈치챘다.

그래서 조소를 터뜨렸다.

“킥킥킥…! 키키킥…!”

공황에 혼란을 겪고 있던 혈취자들은 정신을 차렸다. 녀석들은 곧장 상황을 인지하였고 앞다투어 페인에게 달려들었다.

‘최선을 다했는데.’

「포기했지. 방금은 목숨이….」

‘방금 내가….’

가장 앞서 뛰어든 혈취자 한 마리는 꼬리를 빠르게 틀면서 몸의 축을 회전시켰다. 페인의 앞으로 달려드는 척하면서 그의 측면으로 우회하여, 그의 목에 있는 혈관을 노려 뾰족한 무기를 내질렀다.

쿠드득!

페인은 녀석의 머리를 한 손으로 쥐어서 뜯어버렸다.

화르륵!

그는 잇달아 달려드는 녀석들의 앞에 불을 질렀다.

‘어차피.’

「다 죽었잖아.」

그때 페인은 영력 발산을 해제한 채였다.

그런데 혈취자들은 뭔가 분위기가 바뀐 페인을 보면서 주춤했다.

어서 페인을 죽이라고 소리치던 우두머리도 침묵하였다.

「그만하자. 이제.」

병정개미에게 물린 채로 혈취자들에게 찔리고 있었을 때,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까.

아마 돌이켜보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키기엔 늦었다.

인질들의 존재로 인해 꾸준히 쌓여간 마음의 불순물이, 죽음의 문턱에서 부정한 방향으로 마모되고 말았으니.

감당할 수 없는 거악. 감당할 수 없는 상황. 무너진 정의.

노력한 과정이야 어쨌든 이런 결과가 된 것이다.

“쥐새끼들…….”

그때 혈취자들의 눈에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보이고 있었다. 두려워서 주춤한 것이었다.

그런데 녀석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페인은 아니었다.

페인이 아니라 페인의 뒤에 있는 존재를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 애옹.

그 존재는 페인이 죽은 줄 알고 그의 영혼을 거두러 나타났다. 사실 죽은 건 페인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였는데.

- 애오오옹.

리비카는 작게 울었다.

“찌이이이이!!!”

혈취자들은 크게 울며 도망쳤다.

우두머리는 자신을 지키라며 소리를 질러댔다.

페인은 제물방류를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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