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지옥으로 가는 길 (5)
영혼의 지붕에 떨어진 점액은 뜨겁게 타올랐고 창자들은 그 위에서 펄떡거리다 죽어갔다.
스으…. 스으….
두 마리가 된 델펜토르는 이리저리 몸을 틀면서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그런 델펜토르 두 마리를 향해 무자비한 십자가들이 쇄도하였다.
인근 병사들은 십자가로부터 터지는 찬란한 섬광에 시선을 빼앗겼다.
“저 빛이… 세인트 왕국의 아그니샤 님이라고 했나?”
“정말로 화신이 되신 거야….”
극형집행의 십자가는 아니었다. 그래서 델펜토르가 죽을 때까지 쇄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단순하고 일시적인 십자가 공격이었다.
퍼어어어!!
특별한 마법이 아니라, 아그니샤가 평범하게 십자가를 소환하여 날려보냈을 뿐이었다.
스으으!
수십 개의 십자가가 온몸에 박힌 두 델펜토르.
녀석은 신음하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온몸에 박힌 십자가들이 어찌나 고통스러웠는지 그 몸부림에서 소리 없는 비명이 들리는 듯하였다.
그러면서도 녀석은 몸을 이리저리 틀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이쪽이다. 델펜토르.”
어느 틈에 접근한 걸까. 아그니샤가 델펜토르의 스무 걸음 앞에 서있었다.
“나를 경계하고 있었지?”
푸화아악…!
두 델펜토르는 그녀를 향해 점액과 창자를 토출하였다. 온몸에 박힌 십자가를 떨쳐냄과 동시에 그녀를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키잉!
아그니샤는 즉각 보호막을 전개하면서 내달렸다. 그녀를 노려 토출된 점액과 창자는 보호막을 뚫지 못해서 모래사장에 처박히기만 했다. 그러자 두 델펜토르 중 뒤에 있는 녀석은 몸을 웅크렸고, 앞에 있는 녀석은 몸체의 절반 이상을 일으켜 세우며 혐오스러운 촉수를 그녀에게 들이댔다.
‘일륜(一輪).’
그녀는 닥쳐오는 촉수들을 향해 십자가를 한번 휘둘렀다. 그러자 짧고 강렬한 섬광이 터졌다.
쩌억!!
직후, 십자가에 직접 닿지도 않은 촉수들이 좌우로 찢어지고 갈라졌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뛰어서 갈라진 촉수의 벽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다시 십자가를 휘둘렀다.
‘이륜(二輪).’
쩌저정!
이번엔 하늘에서 다섯 뼘이 안 되는 길이의 십자가들이 소환되어 앞쪽 델펜토르의 주변에 떨어졌다. 델펜토르는 그 순간까지도 창자를 토출하고 있었고, 작은 십자가들은 녀석의 근처 모래사장 위에서 들끓던 창자들을 모조리 파괴해버렸다. 그런 다음에도 작은 십자가들이 더 소환되어 앞쪽 델펜토르를 노렸다.
푸푸푸푹!
앞쪽 델펜토르는 작은 십자가를 너무 많이 받아낸 탓에 몸이 부풀고 말았다. 그렇게 십자가를 받아내면서도 몸속 끓는 점액을 이용하여 십자가를 소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녀석의 각지면서도 울퉁불퉁하게 부푼 살갗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소화력이 좋아도 이미 뱃속이 터지도록 십자가를 먹어치운 것 같은 모양새였다.
이제 아그니샤와 앞쪽 델펜토르 사이의 거리는 열 걸음이 안 된다.
‘삼륜(三輪).’
그녀는 또 십자가를 휘둘렀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십자가는 이번에도 델펜토르의 몸에 닿지 않았다. 하지만 화신의 힘은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퍼엉! 퍼엉!
돌연, 울퉁불퉁 각지게 부풀었던 앞쪽 델펜토르의 살갗이 터지고 말았다. 녀석의 몸속에 가득 파고든 십자가들이 녀석의 점액에 소화되기 전에 탈출한 것이었다. 그렇게 반쯤 녹은 채로 빠져나온 작은 십자가들은 아그니샤를 향해 쇄도했고, 그녀는 한 손으로 마법진을 펼쳐 그 모든 십자가들을 자신의 영력으로 고스란히 회수하였다.
그때쯤 앞쪽 델펜토르는 만신창이였다. 온몸의 살갗이 터지고 몸속까지 처참하게 휘저어져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도 많은 창자와 점액을 쏟아내었다.
하지만 화신의 마법은 끝나지 않았다.
‘사륜(四輪).’
앞쪽 델펜토르가 쏟아내고 있던 점액.
닿는 것을 모조리 태우며 고약한 연기를 피워올리던 점액이 곧 투명하게 반짝이는 물처럼 바뀐 것이다.
치지지지직!
그렇게 무해한 물처럼 바뀐 액체는 도리어 델펜토르를 태우기 시작했다. 다른 것은 하나도 태우지 않고 오로지 델펜토르의 육체와 그 육체로부터 비롯된 창자들만 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델펜토르는 성수를 뒤집어쓴 악령처럼 이루 말할 수 없는 격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녀석이 자랑하던 촉수는 진작 두 갈래로 갈라졌으며, 몸속에 채우고 있던 창자는 다 쏟아내었고, 점액은 오로지 자신만을 태우는 알 수 없는 액체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녀가 다섯 발자국 앞까지 뛰어왔음에도 도저히 대응할 수가 없었다.
‘오륜(五輪).’
앞쪽 델펜토르를 산 채로 태우던 신성한 액체가 주변으로 퍼졌다. 그리고 차올랐다.
첨벙첨벙!
쏟아진 창자들은 갑작스레 수위가 높아진 액체 속에서 괴롭게 몸부림치다가 죽어갔다.
촤아아!
아그니샤는 그렇게 만들어진 신성한 수면 위를 둥글게 뛰었다. 충분히 발이 빠질 수 있는 수심인데 수면 위에 보이지 않는 바닥이라도 있는 것처럼 뛴 것이다.
이윽고 그녀는 앞쪽 델펜토르를 중심으로 크게 돌면서 여러 차례 십자가를 휘둘렀다. 그 과정에 신성한 빛이 검기처럼 여러 번 사출되어 델펜토르를 조각조각 갈라버렸다.
그렇게 많은 조각으로 갈라진 델펜토르의 몸은 모래사장에 차오른 액체 속으로 가라앉아, 격렬하게 부글대며 거품을 띄워올렸다.
신성한 액체는 모래알 밑으로 흡수되면서 천천히 수면이 낮아졌다.
촤아!
그녀 옆에 페인이 착지했다.
“아그니샤.”
“…쉽게 죽질 않아요.”
“더 작은 단위로 태워질 때까지 이 액체를 유지하고 있어야 해. 델펜토르의 육체는 무한하게 분열할 수 있어.”
“얼마나 작은 단위로 없애야 하죠?”
“이 살점들이 더는 끓지 않을 때까지.”
아그니샤는 그 말을 듣고서 전방을 확인하였다.
…푸화아아악! …푸화아아악!
뒤쪽에 있던 델펜토르가 끊임없이 창자를 토출하고 있었다. 그 창자들이 지하로 파고들어서 상대적으로 후방에 있는 병사들을 덮치고 있는 것이었다.
“잘못 공격하면 머릿수만 더 늘어날 거예요.”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공격하는 수밖에 없어.”
「가만히 두면 계속해서 창자를 토출할 거야. 지금은 연합군이 창자를 상대로 잘 버티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거든.」
페인은 도끼로 후방을 가리켰다.
아그니샤는 그의 도끼를 따라서 후방을 돌아보았다.
- 제길! 더 커지고 있잖아!
- 투석기를 포기해라!
- 부풀고 있는 창자부터 노려!
델펜토르가 토출한 새하얀 창자들 중 몇 개는 점점 짙은 색으로 바뀌면서 부풀고 있었다. 그렇게 변하고 있는 일부 창자들의 색감과 질감은 델펜토르의 본체를 닮아가고 있었다.
“설마 저게 다….”
“여러 마리지만 존재는 하나였어. 델펜토르의 육체로부터 빚어진 것들이 곧 델펜토르 그 자체가 될 수 있는 거야.”
결국 델펜토르를 죽이는 방법이란, 본체와 창자들을 포함해 델펜토르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들을 모조리 태워서 없애는 방법뿐이었다.
이 싸움이 끝나고도 녀석으로부터 나온 창자, 작은 살점이 어딘가에 하나라도 남아있다면 결코 녀석을 해치웠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아그니샤는 다시 페인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페인에게서 해답을 찾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런 상황, 이런 적을 상대로도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거냐고 질문하는 것이었다.
이에 페인은 대답했다.
“무한한 영력을 가진 존재는 어디에도 없어.”
“녀석이 죽을 때까지 죽이자는 뜻이에요?”
“우리처럼 강력한 수단이 있는 자들이 녀석을 효율적으로 분해하면서, 녀석의 주의를 끌고 녀석의 강력한 수단을 대신 받아줘야겠지. 간단한 답이야.”
“만약 전장에서 창자가 하나라도 빠져나가게 된다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거예요. …지하나 바다로도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 그 여자가 전개하는 영혼의 벽으로는 막을 수 없어요.”
“맞아. 그 사실을 깨닫고서 악귀들을 전장 바깥에 배치했어.”
불나방들이 먼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다. 페인이 정한 전장의 경계선을 따라서 지상에는 흑기사와 거미 악귀들이 배치되었고 바다에는 올고호르휘가 돌아다니고 있다.
올고호르휘의 뱃속에는 거미 악귀들이 들어차 있었다. 거미 악귀들은 언제든 델펜토르의 일부를 요격할 수 있는 거미줄을 사출하고, 필요하다면 그물까지 만들어서 대항할 것이다.
“델펜토르는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
쿠웅!!!
후방의 어딘가에서 공성탑이 무너졌다. 무수한 창자들이 공성탑을 휘감아 부수고, 끝까지 공성탑을 지키려던 자들은 저마다 쓰러진 채로 입속 가득 창자를 물고 있었다.
“하지만 전장에서 악귀들이 빠진 탓에 연합군의 부담이 늘었어.”
아그니샤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하고는 말을 빠르게 했다.
“상황은 이해했어요. 그럼 저는 이대로 델펜토르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가하고 있으면 된다는 뜻이죠? 녀석이 몇 마리로 분열하든 그건 신경 쓰지 않고서요.”
“그래. 그리고 가능하다면 난전(亂戰)을 유도해.”
그래야 델펜토르가 더 작은 단위로 분열하여 싸울 것이다.
“녀석의 몸집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녀석 하나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은 줄어드니까.”
몸집이 큰 것은 위협적인 창자와 점액을 토출한다. 반면에 현재로서 녀석의 가장 작은 단위로 여겨지는 창자 하나는, 병사 하나를 노려서 달려드는 것밖에 할 줄 모른다.
따라서 녀석이 더 잘게 분해되어야 연합군이 더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고 녀석의 불합리한 공격에 당하는 자들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서 페인이나 아그니샤 같은 핵심 전력들에게 가해지는 부담도 적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녀석은 점점 더 약해지다가, 끝내 죽게 될 것이다.
「…라는 계획이지 지금은.」
* * *
한차례 몰려오는 창자들을 무찌른 연합군 병사들.
그들은 지금 이상한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저것들 왜 여기로 안 오지?”
“미쳐서 날뛰고 있는 것 같아.”
모래사장에서 새하얀 창자들이 튀어나와 들끓고 있다.
철퍽! 철퍽!
그런데 저곳에 모인 창자들은 움직임이 이상했다. 자기들끼리 충돌하고 휘감으며, 종종 아무것도 없는 곳을 향해 돌진하거나 뛰어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뭔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 병사들의 눈에는 창자들만 보였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이었다. 실제로 이곳에는 창자들만 있다. 창자들끼리 얽히고 충돌하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여기야….”
“이쪽이야….”
“여기로 와….”
창자들이 미쳐서 날뛰고 있는 이유는 올빼미 역병 교수 탓이었다.
실체가 없는, 델펜토르에게만 보이는 올빼미 역병 교수 수십 명이 창자들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던 것이다.
퍼억!
창자들은 올빼미의 사지를 휘감아 그녀를 넘어뜨렸다. 그리고 그녀의 입을 찾아서 방독면을 때리고, 방독면이 부서지지 않자 안면이 있는 쪽으로 몸체를 틀어서 파고들었다.
푸우우욱!
델펜토르에게 보이는 환상 속 올빼미들은 끊임없이 죽임당하고 있다. 하지만 환상이 벗겨진 실체는 그저 창자가 창자를 공격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같은 순간, 그 광경을 목도하고 있던 병사들 사이에 진짜 올빼미가 나타났다.
“…가서 죽여주세요.”
이곳의 병사들도 역병 교수와 강령술사의 집단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다.
지금 셰르카는 살아있는 우산과 함께 흑마법으로 만든 검은 연기를 휘두르며 싸우고 있다. 우토는 덩치 큰 그림자의 야수를 조종하고 있는 듯하다. 매는 전장 전체를 누비면서 핵심 전력들을 보호하고 정보를 전파하고 있으며, 독수리는 우토의 그림자와 함께 싸우며 전선을 보강하고 있다.
그런데 올빼미는 역할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뭘 하고 있던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녀가 지금 자기들 사이에서 나타난 것도 이해가 안 된다. 전장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난 올빼미는 모두의 인지에서 벗어난 수수께끼의 존재 같았다.
“창자가 창자를 죽이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당혹감에 휩싸인 병사들을 제치고서 군마를 탄 지휘관이 등장했다.
지휘관은 어느 나라의 것인지 모를 깃발을 어깨에 달고 있는, 다소 특이한 무장을 하고 있는 남자였다.
“혹시 올빼미 님께서 저쪽에 어떤 주술을 걸어주신 겁니까?”
“……이걸 계속 걸고 있는 건 영력 낭비인데.”
“예?”
“어서 가요. 열 분 정도만.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병사들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그녀의 난해한 말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자네랑 자네랑, 거기 자네들도 준비해!”
다행히도 연합군의 세부적인 계획까지 알고 있는 지휘관은 그녀의 의도를 금방 알아차렸다. 빠르게 인원을 빼서 별동대를 구성한 것이다.
“저곳에 미쳐날뛰고 있는 창자들을 해치우고 와라!”
“잘게 조각내서요.”
“잘게 조각내서!”
사아…
올빼미 앞에 피로 된 글자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불의 마법사도 한 명.”
“가는 길에 불의 마법사도 대동하도록! 알아들었나?!”
순식간에 편성된 별동대는 입을 모아 힘차게 대답하고서 저 멀리 전진해갔다.
이어서 올빼미 앞에 피로 된 글자들이 새로운 형태를 갖추었다.
지휘관은 그녀에게 물었다.
“전언입니까?”
“네.”
대답만 하고서 별달리 말이 없는 올빼미다.
지휘관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긁적였다.
“어떤 내용인지 말씀을 좀 해주시면…”
“아.”
올빼미는 십자가가 휘몰아치고 있는 가장 격렬한 전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올빼미 님?”
“델펜토르가 더 많아질 거래요.”
“또 분열하는 겁니까?”
델펜토르는 여럿이서 하나였으며, 하나가 곧 여럿 군단이었다.
“네. 지금까지 늘어난 숫자보다 더 많이요.”
이제 녀석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려는 것이다.
“바다에 숨어있던 것들이 전부 해안으로 올라오고 있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