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극채색에서 무채색으로 (1)
달리는 마차 안에는 셰르카와 매가 있다.
“나는 영력이 차면 곧장 왕국으로 전이하며 갈 것이다.”
“세인트 왕국 소속이 아닌 자들은 각자의 고향을 지키러 흩어진다고 합니다. 이래도 괜찮은 겁니까?”
“그야 연합군 모두가 왕국을 도우러 와준다면 좋겠지. 하지만 너도 그들의 겁에 질린 표정을 보지 않았느냐. 현실적으로 그들을 움직이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퀴이이…. 시익…. 퀴이이….”
이리는 셰르카의 품에 안겨서 코를 골고 있다.
“깨부수는 론은 바다도 아니고 내륙에서 출몰하였다. 이는 크라켄들이 먼바다의 심연에 있을 거라는 우리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한다. 허면 언제 어디서든 크라켄이 출몰하여 자기네 국가를 침공한다고 하여도 이상하지 않을 테지. 이런 상황에 연합군 전체를 대동하여 왕국을 도와달라고 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그래도 세계를 지키겠다는 단결 아래에 하나가 된 연합군이 아닙니까. 당장에 론이 출몰하여 세인트교의 성역을 노리고 있는데….”
“그들이 하나의 대의로 모였다고 해서 지키고 싶은 세계가 하나일 줄 알았느냐.”
“….”
“각자 정말로 지키고 싶은 세계는 다른 법이지. 추구하는 이상향도 다르고. 그들이 끈끈하게 뭉친 것처럼 보인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매는 마차의 뒤쪽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올빼미와 독수리를 무심코 보았다.
둘 사이에 놓인 스승의 시신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고요하게 눈을 감은 채,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서 깊은 잠이라도 자고 있는 것만 같다. 저대로 몸을 흔들어 깨우면 금방 일어날 것만 같다.
“인간은 유구한 역사 이래 단 한순간도 하나가 된 적이 없었다. 그건 앞으로 수천, 수만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크라켄이 내륙에서 출몰한 순간부터 연합군은 사실상 존재 의의를 잃게 되었다고 여기거라.”
매는 우토의 시신에 고정했던 시선을 셰르카에게 옮겼다.
그녀의 가짜 눈알, 붉은 동공은 분명히 자신을 향하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앞을 볼 수 없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진솔한 대화라도 나누고 있는 것 같은 이질감이 있다.
“하필이면 세인트 왕국입니다. 악마는 천사가 강림할 수 없는 이 시기를 노려 세인트교의 근간을 무너뜨리려는 겁니다.”
“그뿐인가?”
“그러면서 강령술사님을 흔들겠다는 노림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왕국에 있다면 말이지.”
“황금달의 베르자인 영주님입니다.”
“연인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독수리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분은 강령술사님이 해결사였을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으며, 강령술사님이 추방자가 된 후에도 서로를 긴밀하게 도왔다고 말입니다. 연인은 아니더라도 분명 두 분은 서로를 의미 깊은 존재로 여기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흠…. 아무도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던 시절에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준 년이겠군.”
“셰르카 님.”
“왜 그러느냐?”
“아무리 셰르카 님의 말씀이라도 강령술사님의 오랜 은인이 되시는 분을 무례하게 표현하시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셰르카는 픽 웃었다.
“확실히 베르자인은 인복을 끌어모으는 재주가 있구나. 너까지 그쪽 편을 들면서 내게 이리 말할 줄은 몰랐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됐다. 사실 내가 베르자인을 진심으로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단지 그녀의 존재가 지금의 페인에게는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강한 반발심이 있을 뿐이다. 과거야 어쨌든 지금은 지금이니까.”
“…그게 싫어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런가?”
“베르자인 님도 셰르카 님을 보면서 똑같이 생각하실 겁니다.”
“……흠.”
* * *
잠시나마 실재세계에 강림하였다가 사라진 샤는 크라켄을 모두 깨웠다고 했다.
그리고 깨부수는 론이라는 크라켄은 세인트 왕국으로 접근 중이다. 이는 천사들이 전쟁을 수행하느라 실재세계에 강림할 수 없는 이 시기를 노려서, 세인트교의 성역을 파괴하려는 샤의 노림수로 보인다.
또한 페인이 태어나고 자라온, 그의 소중한 것들이 있는 세인트 왕국을 공격하여 그를 흔들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하필이면 세인트 왕국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긍정적인 목소리도 있었다.
차라리 세인트 왕국이라서 다행이라는 것이다. 다른 국가라면 몰라도 세인트 왕국이라면 크라켄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 테니까. 무력하게 쓰러지진 않을 테니까.
왕궁.
세인트 왕국의 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하들과 교단의 신관들이 모여있다. 이 나라의 통치권은 전적으로 왕궁에 있지만, 실질적인 군사력은 교단이 쥐고 있기에 이런 식으로 모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타락한 전 승천자가 처형을 당한 후 천계로부터 직접 다음 승천자로 지목을 받은 현 승천자.
네이트의 화신 아그니샤를 비롯해 모든 신관들이 입을 모아서 현명하다고 추대하는, 경험 많은 신관 출신.
오직 승천자만이 받을 수 있는 고귀한 여신의 이름, ‘세인트’와 렌달틀란크라는 본명이 합쳐진 남자.
“드넓고 깊은 바다는 상처를 입은 크라켄이 당시에 숨기 좋은 위치였을 뿐, 모든 크라켄이 지금까지 바다에 숨어있을 것이라 여겼던 건 우리의 착각이었습니다.”
현 승천자. 세인트 렌달틀란크.
그는 왕이 보는 앞에서 모두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샤는 여섯 크라켄을 깨우고 흑마법사 우토를 살해한 후 지옥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쯤 우리가 국명을 모르는 아주 먼 타국들도 크라켄의 침공을 당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시국입니다.”
왕은 그에게 물었다.
“연합군은 이대로 흩어지는가?”
“크라켄이 내륙에서 출몰할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 타국의 군사적 지원을 바라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었사옵니다.”
그 발언은 신하와 신관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의 불안한 기운을 느낀 왕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짐은 성역의 국왕으로서 병사와 성기사들을 기꺼이 외부로 보냈다. 그들이 자국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최소 10일에서 최장 15일이 걸릴 터. 맞는가? 렌달틀란크여.”
“그렇사옵니다. 전하.”
왕은 모두를 둘러보았다.
“그렇다면 성역을 품은 이 나라가 깨부수는 론을 상대로 ‘고작’ 10일에서 15일을 버티지 못하여 멸망하리라 우려하는 자는 있는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 정도 기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자들이 있고, 반대로 하루를 버티는 것도 버겁다고 생각하는 자들 또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감히 입을 떼지 못한다.
“천사가 없어도 성역은 성역이다. 그리고 성기사들은 숫자가 아닌 신념으로 싸우는 자들이다. 이는 왕궁의 병사들도, 교단의 신관들도 다를 것이 없다. 우리 모두가 세인트교의 신자들이다.”
왕의 깊고 단단한 목소리에는 마음을 휘어잡는 힘이 있었다.
“또한 우리에게는 강령술사가 있다. 그가 돌아온 다음엔 네이트의 화신과 대륙 최고의 흑마법사까지 합류할 것이다. 렌달틀란크.”
“예. 전하.”
“무엇이 두려운가? 진정 두려운 것은 깨부수는 론이 아니라 그대들의 마음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성역을 지키지 못할 거라는 불안,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대다수 병사와 성기사들이 빠진 상황에 연합군까지 당장 곁에 있어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게로다.”
곧 왕궁을 잠식하던 불안과 공포는 왕의 목소리에 놀라서 달아나고 말았다.
- 사방위의 성문을 개방하고 성벽 밖 영지의 백성들을 모두 들이도록 하라.
세인트 왕국은 다가오는 크라켄에 대처하였다.
- 혼비백산한 거리에서 악령화가 발생할 수 있다. 신관들의 절반은 백성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순회기도를 돌도록 하라. 또한 절반의 퇴마술사들은 외부의 론이 아닌, 내부의 백성들을 살피게 하라.
- 승천자, 절반의 신관, 절반의 퇴마술사, 그리고 10만의 군사는 동쪽으로 나가 론을 저지하라.
신관, 퇴마술사, 마법사, 원래 병사인 자들과 징병된 병사들로 편성된 약 10만의 왕국군.
성벽을 넘어 동쪽으로 진군하는 그들은 사기가 차올랐다.
신앙의 힘은 위대했다.
“전설의 괴수를 상대로 이기려고 하지 마라! 놈을 쓰러뜨릴 각오도 하지 마라!”
“놈을 최대한 저지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놈이 성벽을 넘는 순간부터는 여자와 아이들도 피를 흘리게 될 테니!”
약 10만의 왕국군.
그때쯤, 그들 중에 론을 두려워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 * *
쿵…!
쿵…!
쿵!!
새들은 하늘로 날아올라 도망쳤다. 짐승들은 겁에 질린 울음을 내지르며 꽁무니를 내뺐다.
쿠웅…!
지진과도 같은 땅울림이 두렵게 울려 퍼진다. 개미들은 알과 번데기를 턱에 물고서 피난한다. 굴에 숨어있던 개구리와 뱀들이 개울을 따라서 우르르 도망친다.
그야말로 자연재해였다.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산을 따라서 흙더미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수백 년간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던 바위들이 처참하게 구른다.
391번째 크라켄. 깨부수는 론.
녀석은 온몸을 회백색 갑각으로 무장한 거미를 닮았다.
쿵! 쿵! 쿵! 쿵!
여덟 개의 기나긴 다리를 하나씩 움직일 때마다 그 밑의 지형은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론은 산맥을 무너뜨리고 평탄한 농지까지 들어왔다. 미처 떠나지 못한 가축들이 울타리에 머리를 처박으며 미친 듯이 울어댔다. 길고양이와 떠돌이 개들이 앞다투어 도망쳤다.
달팽이처럼 삐쭉 튀어나온 눈과 새까만 구슬 같은 두 눈알. 갈라진 턱 아래로 늘어뜨린 네 개의 촉수.
녀석의 인상이 기괴한 노인을 닮은 듯하다.
“꾸르르르르….”
론은 여러 겹으로 갈라진 입에서 거품을 토해냈다.
농지에 흩뿌려진 거품이 살아서 움직였다.
거품이 데굴데굴 굴렀다. 농지를 가로지르며 어느 영지의 마을까지 들이닥쳤다. 거품은 목장과 마구간부터 노렸다.
“히히이이잉!”
말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울타리 안을 뛰어다녔다.
이윽고 거품들이 하나둘씩 꺼졌다.
“꾸르르륵…”
“꾸르르…”
“꾸륵꾸륵꾸륵…”
거품이 꺼진 자리에는 무수한 알이 있었다. 커다란 생선들의 눈알을 떼어다 한자리에 뭉친 것처럼 혐오스러운 알 무더기였다.
퍼어어…!
알들이 말을 덮쳤다. 다리도 없는 알들이 어떻게 도약한 걸까. 어떻게 구르는 걸까. 알들은 말의 꼬리, 다리, 몸통, 목, 머리에 달라붙었다.
말은 쓰러져서 신음했다.
“꾸르르르…”
“꾸르륵…”
알들이 터졌다. 알 속에 있던 것들은 어미인 론을 쏙 빼닮은 생명체들이었다. 다만 회백색인 어미와는 다르게 완전한 순백의 생명체들이었다.
녀석들은 여덟 개의 다리와 날카로운 집게발을 놀리고 네 개의 촉수를 더듬이처럼 움직였다.
푸우욱!
녀석들은 말의 배를 가르고 들어갔다. 형제끼리 경쟁하며 말의 내장과 살점을 뜯어먹었다.
곧 녀석들은 바짝 말라비틀어진 말의 사체에서 살갗을 가르며 기어 나왔다.
그때 녀석들의 갑각은 순백이 아닌 회백색으로 성장한 채였다.
“으르르…!”
때마침 근처에서 순백의 생명체들을 물어뜯는 들개 무리가 있었다.
으직! 으직!
들개 무리는 순백의 갑각을 어렵지 않게 물어뜯었다.
사사사사사사삭…!
그런 들개 무리를 향해, 좀 전에 말을 파먹고서 성장한 회백색의 생명체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왈! 왈왈!”
들개 무리는 회백색의 생명체들도 물어뜯었다. 그러나 이번에 부서지는 건 녀석들의 갑각이 아니라 들개 무리의 이빨이었다.
“끼이잉…!”
“깨갱!”
들개 무리는 새로운 먹잇감이 되었다. 순백의 생명들은 회백색으로 성장하였고 회백색의 생명들은 순식간에 허물을 벗으며 조금 더 큰 덩치를 갖추게 되었다.
론은 그렇게 새끼를 풀어서 마을 하나에 있던 먹잇감들을 해치운 것이다.
“꾸르르르…”
갓 태어난 순백의 생명체들은 마을 외곽에 있던 묘지를 노렸다.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뜯어서 그 안에 안치된 부패한 시신의 살점을 파먹었다. 시신에 붙어있던 구더기나 지네 따위도 집게발로 집어서 으적으적 씹어먹었다.
수천 마리일까. 수만 마리일까.
어미를 빼닮은 아이들이 어미의 기나긴 다리 밑에서 빼곡하게 앞서갔다. 그때 론은 높은 시야에서 새까만 두 눈으로 저 멀리 있는 세인트 왕국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농작물 사이에 매복했던 인간들 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던 걸까. 아니면 보고도 무시한 걸까.
상공에 신성한 마법진 수백 개가 그려졌다.
- 백색포격.
쩌어엉!!!!!!
창의 형태를 모방한 빛 수백 개가 론의 군단 위로 화살 비처럼 쏟아졌다.
론의 군단이 밟고 있던 농지와 마을은 연쇄적인 빛의 폭발 속에 초토화되었다. 순백과 회백색의 생명체 수천 마리가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서 널브러진 살점이 되고 말았다.
“꾸르르르…!”
론의 기괴한 눈이 전방의 농지를 내려다보았다.
인간 무리다.
그 무리의 가장 앞쪽에, 불쾌한 기운을 내뿜는 노인이 있었다.
새하얀 로브를 걸치고 있는 노인이다.
“천계의 여신이시여! 성역의 영격을 위해 현 승천자가 감히 발키리의 순결한 힘을 빌리고자 하오니…!”
론은 한쪽 집게발을 움직였다. 더 걸어갈 필요도 없이 서있는 그 자리에서 집게발을 내질러 승천자를 공격할 수 있었다. 기나긴 집게발 하나의 길이가 인간의 보폭으로 백 걸음은 넘는 것이다.
“인간인 몸, 한낱 인간인 영혼임에도 천계의 심판을 현계에 대리하여! 샤의 사악한 추종자들과 그 악의 불순물을 발키리의 빛으로써 격퇴하리다!”
이윽고 하늘이 밝아졌다. 상공을 뒤덮는 마법진이 찬란하게 빛났다.
“꾸르르!”
그 순간, 론은 승천자에게 뻗고 있던 집게발을 급하게 물렀다.
그리고 한껏 자세를 낮춰서 자신의 그늘 아래에 새끼들을 모았다.
승천자는 주문을 외쳤다.
“발키리의 낙뢰!”
마법진의 중심으로부터 거대한 벼락이 소리도 없이 떨어졌다. 론의 널찍한 등딱지에 발키리의 낙뢰가 직격한 것이다.
미처 어미의 그늘에 숨지 못한 새끼들은 벼락이 발한 빛에 삼켜져 가루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왕국군은 간절히 희망했다.
“명중이다! 완벽했어!”
승천자도 간절히 희망했다.
‘말도 안 되게 견고한 갑옷을 전신에 두른 괴물 ….’
“제발! 조그만 균열이라도 좋으니까!”
‘조그만 균열이라도 생겨야 약점을 파고들 수 있다.’
곧이어 거대한 벼락의 빛이 꺼졌다.
그 빛에 심판당한 생명의 가루들이, 달아나는 공기와 함께 퍼져서 흩어졌다.
“꾸르르르르!!”
론은 거품을 문 채 거대하게 일어섰다.
승천자 곁에 있던 지휘관은 탄식했다.
“제길….”
자세를 낮췄던 론이 일어서는 과정에 보였다.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좀 전의 마법으로도 녀석의 등딱지에는 아주 작은 균열조차 남기지 못했다는 것을.
“꾸르르르!”
다시금 론의 집게발 한쪽이 거대하게 날아들었다. 승천자와 신관들은 마법진을 전개하여 집게발을 막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론의 집게발은 그들을 직접 노린 게 아니었다.
쿠와아아아아!!!
그들 앞에 있는 대지를 갈라버린 것이다.
평지에서 역전된 산사태가 벌어지는 듯했다. 높게 치솟은 흙더미와 바위가 연합군의 전열에 떨어졌다.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하고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라 시야를 가렸다.
“다음 마법을 준비하겠습니다! 다들…”
“승천자님! 앞에…!”
그리고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론의 새끼들이 뛰쳐나왔다. 그 순간을 목격한 병사들이 승천자를 지키려고 나섰다.
카앙!
“끄악…!”
병사들의 검이 부러졌다.
카가각!
병사들의 방패가 집게발에 찢어졌다.
부우우우웅…!
자욱한 흙먼지 속이지만 그림자가 보이고 공기의 소리가 들린다.
론의 거대한 집게발이 재차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신관들이여!”
승천자의 부름을 받은 신관들이 동시에 마법진을 전개하였다.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도 찬란한 빛을 머금은 둥근 마법진들이 외곽선만 남은 방패처럼 형태를 바꾸었다.
“서로의 신앙심을 합치십시오! 믿음의 방진(防振)은 성벽보다 견고하고 잡초보다 질긴 것이니!”
외곽선만 남은 방패들은 그들의 굳건한 신앙심을 투영한 듯 더욱 밝게 빛났다.
“어떤 시련이 닥쳐올지라도 절대 무너지지 않겠다!”
“와라…!”
곧이어 론의 거대한 집게발이 마법의 방패들을 강타했다.
콰가가가강…!
열 명 이상의 신관들이 으깨진 채 허공에서 절명하였다.
론은 그들의 마법진을 일격에 깨부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