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전율 (1)
나는 뒷골목을 향해 뛰고 있다.
성기사들의 말대로 도심에서는 조에 무리와 왕국군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이렇게 거리를 내달리고 있으면 어디에서나 싸움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서 뛰던 도중에 그들과 마주치는 건 필연적이었다.
으직…!
도심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조에 무리는 제법 덩치가 큰 편이었다. 갓 태어난 순백의 조에는 키가 내 종아리까지만 닿는 녀석들이었는데 말이다.
으직! 으직!
나는 그들의 싸움에 뛰어들었다. 성인 남성의 하반신까지 키가 닿게 된 녀석들을 한 마리씩 죽여서 모조리 해치웠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강령술사님.”
이 병사들은 가벼운 방어구에 창과 성수로 무장하고 있다.
“이 근방에도 조에가 많습니까?”
“말도 마십시오. 아주 하수도까지 타고 튀어나와서 기껏 세워둔 방어선들이 다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거미처럼 벽까지 타고 올라가서는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지나온 길에도 놈들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네요.”
“맞습니다. 그래서 후방에서는 병력을 선발과 후발로 나누어 여러 번 진군시키고 있습니다. 저희는 선발 병력이고요.”
“그, 그리고 론이 도심으로 들어온 탓에 고립된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구조하는 것도 저희의 임무입니다.”
「고립된 인간들은 지금까지 피난하지 않고 뭘 했던 거야?」
‘각자 사정이 있겠지.’
백만 단위의 인구가 한 명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피난한다는 건 어느 나라에서도 불가능하다.
「왜?」
왜냐고 물어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원래 사람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뜻대로 통제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아, 혹시 필요한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조금이라도 강령술사님께 도움이…”
“이쪽으로 오시면 안 됩니다!”
“여긴 위험하다니까요!”
뒤쪽에 있는 병사들이 누군가를 막고 있다.
“강령술사…! 저, 저 까마귀, 저거!”
“이 사람이 왜 이래?”
“돌아가십시오! 여긴 전장입니다!”
「웬 노인네가 널 손가락질하고 있는데?」
저렇게 노쇠한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이 위험한 외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이상한 행동과 달리 차림새는 멀쩡한 걸 보니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저거 강령술사 맞지? 맞잖아!”
“예, 예. 신기하다는 건 알지만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어르신.”
“뭣들 하는 거야? 뒤쪽으로 데려가!”
뭔가 있는 것 같다.
“잠깐만요.”
나는 병사들 사이를 지나서 노인에게 다가갔다.
“절 찾으려고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아…! 진짜 강령술사…!”
그는 내 어깨를 붙잡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사람이 진짜!”
병사들이 경계심을 높였다.
「정신병자 아니야?」
“하고 싶은 말씀이라도 있어요?”
“강령술사님! 제, 제가 진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게들을 피하고 여, 여기까지 왔습니다요!”
횡설수설한 문장 속에서 한 단어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게들?’
나는 보다 못해 나서는 병사들을 손짓으로 만류했다.
“계속 말씀하세요.”
“저는 데이진타우! 거기 출신입니다! 소싯적에 거기서 어부로 살았죠! 바닷길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만약 제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면 개새끼라고 해도 좋아요!”
「뭐라는 거야, 이 개새끼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을 해야지.」
“듣고 있습니다.”
그는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말을 이상하게 했다. 하지만 내게 전하고 싶은 뜻은 확실했다.
“게라고요! 게! 그거를 쏙 빼닮았다고!”
“게?”
“실수로 바다 멀리 나가면 가끔 그물에 딸려오는…! 너무 징그럽게 생겨서 먹지도 못하는 그런 바다의 벌레들이 있습니다! 그걸 게라고 해요! 게! 아, 아아! 머리는 가재를 닮기도 했는데 일단 전체적으로 게를 닮았으니까!”
“그래서 어르신 말씀은…. 론과 조에들이 ‘게’라는 생물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게 약점이 될 수 있다고?”
그러자 그는 온몸으로 긍정했다.
“그렇다니까요! 저것들, 저 뒤에 있는 커다란 놈도 그렇고 거리에 있는 작은 놈들도 그렇고! 아가리에 거품을 물고 있잖아요!”
“예. 놈들은 모두 거품을 물고 있습니다.”
“그거…!”
그것은 내가 모르는 지식이었다.
과거에 드넓은 바다를 누볐던, 미지의 공포가 가득한 심연 위를 누볐던 사내.
그 용감한 사내는 스스로 안전한 장소를 벗어나서, 조에들이 들끓는 거리를 홀몸으로 통과해서, 기어코 날 찾아낸 것이다.
그런 길을 거쳐온 사내의 값진 조언이자 지혜였다.
- 물 밖으로 나온 게들은 숨을 못 쉬고 있는 겁니다!
- 아가리에 물고 있는 거품이 그 증거라고요!
- 그 거품 덕분에 물 밖에서 버티고 있는 겁니다!
론은 처음부터 호흡을 참고 있었다.
지금도 입에 물고 있는 거품을 진통제로 삼아서.
* * *
뒷골목의 거리는 격렬한 싸움터가 되었다. 더 깊은 도심으로 가려는 조에 무리와 이를 막으려는 병사들의 싸움이었다.
그들이 거리에서 싸우는 사이에 일부 조에들은 황금달의 본거지로 난입했다.
“저것들이 왜 굳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거야?”
“모르겠어! 어, 어쩌면 인기척을 느끼고서 사냥을 하러 온 걸 수도…!”
서른 명도 되지 않는 소수의 자객들이 내부에서 조에들과 혈투를 벌이고 있다.
‘고속화!’
지금까지도 이곳에 남아서 싸우는 자객들은 나름의 정예들이었다. 모두가 고속화를 다룰 줄 알고, 손에 잡히는 건 무엇이든 무기로 쓸 수 있으며, 상대방의 급소를 빠르게 치고 빠지는 전술에 특화되어 있다.
덕분에 조에들을 상대로는 상성이 나쁘지 않았다.
쿠직!
그들은 조에보다 월등하게 민첩했다. 비좁은 실내에서 빠르게 몸을 놀리며 조에들의 집게발을 회피하고 유연하게 몸을 틀어서 녀석들의 아가리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빠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야! 야! 뒤쪽!”
“거기 올라가잖아!”
“계단부터 틀어막아!”
쾅! 콰과광!
계단 위에 있던 자들이 가구를 계단 아래로 굴렸다. 조에들은 계단에서 멈춘 채 집게발로 가구를 깨부수기 시작했다.
“꾸르르!”
“씨발놈들!”
그들의 정교한 칼질은 조에들의 비좁은 갑각 틈새까지도 정확하게 베었다. 단검을 내지르다가 조에가 아가리를 닫으면, 재빠르게 단검의 궤도를 바꿔서 다리나 집게발 따위를 절단해버렸다.
“죽은 것들로 막아!”
임기응변도 수준급이었다. 그들은 조에의 사체를 들어서 방패로 삼았다. 그리고 조에의 사체를 복도에 쌓아서 녀석들이 들어올 길을 막아버렸다.
“올라와! 1층은 버려!”
소수의 자객들이 2층에서 합류했다. 각종 가구와 조에들의 사체로 모든 계단을 막아버렸다.
“꾸르르르르!”
쾅! 콰직!
조에들이 계단 아래에서 우글대고 있다. 몇 마리는 벽이나 천장을 타고서 2층까지 들어왔다.
쿠직!
자객들은 기다란 쇠꼬챙이로 녀석들을 저지했다.
“그거 가져와!”
자객 두 명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 왔다.
성수가 가득한 상자였다.
“이 새끼들, 성수도 효과가 있다고 했어!”
건물에 불을 지를 수는 없으니 이렇게 성수라도 붓는 것이다.
촤아아아!
“꾸르륵…!!!”
“꾸르르르르!”
꽉 막힌 계단 아래쪽에서 녀석들의 괴로운 울음이 들려왔다.
“다쳤어?”
“살짝 긁힌 거야. 집게발에.”
“후우….”
그리고 다음 전투에 대비해 잠시 한숨을 돌리려던 순간이다.
“꾸르륵…!”
“꾸르륵…!”
녀석들의 울음이 벽 뒤에서 들려왔다.
아래도 위도 아니다.
“이런 씨발새끼들!”
콰장창!!
덩치 작은 조에들이 창문을 깨고 들어왔다. 바깥에서 벽을 타고 오른 것이다.
“이 새끼들 왕국군을 무시하고 여기까지 기어올라왔어!”
“씨발, 왜?! 왜 굳이 여기야?!”
“그걸 누가 알겠냐!”
“들어오게 하지 마! 최대한 떨어뜨려!”
다행히도 깨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녀석들은 제압하기가 수월했다. 동선이 한정되어 있어서 한 번에 한 마리씩만 죽이거나 치명상을 입히면 금방 바깥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이다.
터업!
그러다 자객 한 명이 집게발에 팔을 붙잡혔다.
“끄아악…!”
조에는 그의 팔을 잡아당겨 바깥으로 함께 떨어지려고 했다. 그러자 다른 자객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조심하라니까!”
“잡아! 잡아!”
“아아아아악!!!”
으드득!!
자객은 목숨 대신 팔 하나를 내어주게 되었다.
“넌 방에 들어가서 붕대부터 감아!”
“끝도 없이 몰려오잖아!”
그렇게 혈투를 벌이던 중 누군가 말했다.
“야! 이렇게 벽 타고 올라오는 거면 위층에도 많이 갔다는 거 아니야?!”
“괜찮아!”
이 위층에는 베르자인과 칼테인이 있다.
“그 두 분이 우리 모두를 합친 것보다 강해!”
“그래도…!”
“여기서 위로 가는 머릿수를 줄이는 게 최선이야! 그게 명령이었다고!”
콰아앙!!!
커다란 집게발이 계단 아래쪽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 집게발이 계단을 막고 있던 가구를 단번에 부숴버렸다.
혼자서 통로를 꽉 채우는 덩치다.
“어휴, 그 새끼 존나게 크네…!”
“뭘 얼마나 처먹은 거야?”
“크다고 다를 거 없어! 약점은 똑같아!”
같은 순간, 자객들의 생각대로 조에 무리는 베르자인이 있는 층까지도 침입하고 있었다.
그나마 싸울 공간이 있는 드넓은 회의실.
회의실 문을 막고 있는 기다란 탁자는 작은 조에들이 깨부수고 들어오는 중이다. 또한 회의실의 창문을 통해서도 조에들이 들어오고 있다.
“더 싸울 수 있지? 칼테인.”
“몸에 생채기 하나도 안 났습니다.”
베르자인은 창문에서 오는 조에들을, 칼테인은 회의실 문에서 오는 조에들을 상대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사각을 보완할 수 있었다.
칼테인은 양손에 쇠꼬챙이를 들고서 싸웠다. 그것은 끄트머리에 작살처럼 안쪽으로 휘어진 칼날이 달린, 강력한 관통력을 기반으로 상대방의 내장을 헤집는 무기였다.
쩌거걱!
그는 조에들의 아가리를 찌르고 손목을 비틀었다. 그러자 그의 쇠꼬챙이에 찔린 조에들은 내장이 헤집어져서 푸른 거품을 토해내며 절명했다.
칼테인을 등지고서 싸우는 베르자인은 강력한 주술을 부렸다.
‘발렌잔타르의 적출…!’
마법과 주술에 저항이 있는 갑각이었지만, 그녀의 귀걸이로부터 발동되는 주술은 조에들의 저항 능력을 넘어섰다.
“꾸륵!!”
조에들의 새까만 두 눈알이 달팽이처럼 길어지더니 뽑혀 나온 창자처럼 바닥에 늘어지고 말았다.
애당초 섬광으로 잠시 눈이 멀어도 혼비백산이 되는 조에들이다. 그런 녀석들의 시각을 영구적으로 박탈해버렸으니, 베르자인은 칼테인보다 민첩하지 않아도 조에들의 아무렇게나 내지르는 집게발을 충분히 회피할 수 있었다.
“교대해!”
“예!”
둘은 서로의 위치를 바꿨다. 베르자인은 회의실의 문에서 들어오는 녀석들을 마주하고 칼테인은 창문에서 들어와 눈알을 잃어버린 녀석들을 마주했다.
최소한의 영력과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 많은 조에들을 빠르게 죽일 수 있는 전술이었다.
“꾸르르!”
앞을 볼 수 없게 된 조에들은 칼테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반대로 아직 몸이 멀쩡한 문 쪽의 조에들은 다시금 베르자인의 주술에 의해 두 눈알을 뽑히고 말았다.
“교대!”
다시 반복이다.
“교대!”
그렇게 교대하기를 수 분.
회의실에 조에들의 사체가 쌓여서 녀석들끼리 발이 치일 지경에 이르렀다. 조에의 사체는 조에의 앞길을 막는 장해물이 되어주었다.
대신 칼테인은 점점 지쳐갔고 베르자인 또한 점점 영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거 어쩌지?”
“아래층에서도 싸움이 계속되는 모양입니다.”
“거리가 조용해졌어.”
이쪽 거리에서 진을 치고 싸우던 왕국군들이 전멸한 것 같다. 아니면 다른 곳으로 후퇴를 한 것 같다.
“조에 무리는 분산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그렇게 들었어. 각 거리마다 감당해야 하는 조에들은 적으면 수십, 많아 봐야 200마리를 넘지 않는다고.”
쩌억! 쩌억!
칼테인은 베르자인을 노리던 조에 두 마리를 동시에 해치우고서 주장했다.
“먹이를 통해 강해지는 놈들이라면 사람이 많은 곳을 더욱 노리는 게 정상입니다.”
“맞아.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해치운 숫자만 해도 100마리 가까이 되었을 거야.”
“놈들에겐 모종의 목표가…. 이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조에들이 노골적으로 황금달 본거지에 들이닥치고 있다.
과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많은 조에들이 끝도 없이 들이닥치고 있다. 마치 머릿수의 손실을 감수해서라도 이쪽의 피를 말려서 죽이려는 것만 같다.
‘대체 뭘 노리고 있는 거야? 여기에 뭐가 있다고 이렇게까지 많은 놈들이….’
그때였다.
콰아아!!
콰직콰직!
덩치 큰 조에들이 문 쪽에 쌓인 사체를 밀어내고서 등장했다.
녀석들은 온몸에 피를 묻히고 있었다.
그 피의 색깔은 누가 보더라도 인간의 것이었다.
“영주님. 아래층 자객들이….”
“이제 우리 둘뿐이야.”
베르자인은 칼테인의 양손을 슬쩍 쳐다보았다.
푸른 혈액으로 범벅이 된 두 손이 은근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친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다친 걸까. 상처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몸에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칼테인.”
“이 바닥이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아니….”
“걱정 마십시오.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아니, 뒤로 나오라고.”
베르자인은 그의 목덜미를 붙잡아서 뒤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자신이 앞으로 나서서 덩치 큰 조에들을 마주했다.
“영력을 많이 쓸 테니까, 너는 그 상처라도 처치하고 있어. 그래야 다음에 또 교대하지.”
“꾸르르…!”
사사삭!
덩치 큰 조에들이 순간적으로 달려들었다. 녀석들의 큼지막한 집게발이 코앞에서 날아든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발렌잔타르 가문의 유물.
그 유물의 소유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베르자인이며, 그녀가 곧 발렌잔타르 가문을 부활시킨 장본인이자 오늘날의 영주이다.
그 사실들은 곧 가문의 유물이 가진 조건들을 충족하게 해주었으니.
영주가 되고 사교계의 주도자가 되었다고 한들, 그녀는 황금달의 머리로서 자신의 성장을 조금도 소홀히 했던 적이 없었다.
‘발렌잔타르 사안 3계.’
그녀의 귀에 걸린 주물이, 철을 긁는 듯한 기이한 소리를 냈다.
끼이이이!
‘바실리스크.’
그녀를 으깨려던 집게발들이 둔해졌다. 그러다가 녀석들의 두 눈을 중심으로 갑각이 나병환자의 피부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뚜드드드득……!
조에들은 집게발을 휘두르던 자세 그대로 석화(石化)되고 만 것이다.
“됐어! 칼테인, 이제 네가…”
쿠구구궁!
순간, 시선이 하강했다.
몸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
회의실 바닥이 무너졌다. 그녀는 자연스레 아래를 보게 되었다.
떨어지고 있는 와중, 발밑에서 아가리를 크게 벌린 조에가 있었다. 그리고 시야의 양쪽으로 커다란 집게발 두 개가 스쳐가듯 보였다.
퍼억!
공중에서 무언가가 몸을 쳤다.
쿠웅!
그녀는 거대한 조에의 발치에 떨어졌다. 그리고 전신에 통증이 퍼지는 순간에 직감했다. 방금 자신의 몸을 친 것은 조에의 집게발이 아니었다고.
그 사실을 알고서 시선을 위로 향했다.
칼테인이 두 집게발에 붙잡혀 있었다.
“칼테인!!!”
그녀의 시야 안에서 두 집게발이 좌우로 이동했다.
으지지직…!
황금달이 처음 세워진 그날부터 알고 있던 얼굴이, 그 얼굴을 달고 있는 몸이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어 온 사방으로 붉은 것을 흩뿌렸다.
단말마의 비명도 없고 유언도 없는 죽음이었다.
또한 슬퍼할 시간조차 없었다. 분노할 시간조차 없었다.
“꾸르륵… 꾸르륵…”
거대한 조에는 칼테인의 찢어진 시신을 쓰레기처럼 벽에다 던져버리고는 곧장 베르자인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즉시 귀걸이에 손을 옮겼다.
“꾸륵.”
그런데 그녀의 등에도 조에들이 붙어 있었다.
녀석들의 집게발이 그녀의 귀를 뜯어버렸다.
* * *
뒷골목의 거리에 혈흔이 낭자하다. 왕국군의 시신과 조에들의 사체가 널려있다. 그리고 죽은 것들을 집게발로 뜯어먹고 있는 덩치 큰 조에들이 있다.
버려진 허물의 숫자에 비해서 녀석들의 머릿수가 적다.
「덩치를 키운 다음에 도심으로 몰려갔나 봐.」
이 거리에서 싸우던 왕국군은 패배한 것 같다. 시체의 숫자를 보니 전멸하기 직전에 후퇴를 한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성장한 조에들이 그들을 뒤쫓은 것이다.
으지직!
나는 덩치 큰 조에들을 깨부수며 앞으로 뛰었다. 저 앞에 황금달의 본거지가 보인다.
창문이 다 깨져있고 1층의 한쪽 벽은 무언가 거대한 것이 육탄으로 돌파한 것처럼 휑하게 무너져있다.
‘베르자인은?!’
「존재 추적에 쓸 영력도 없어.」
그녀의 생사를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조에들을 해치우며 뛰었다. 그렇게 나는 건물의 내부까지 진입했다.
“베르자인!”
그녀의 이름을 힘껏 부른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자객들의 검은 옷자락을 덧대고 있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 널려있다. 그리고 단단한 갑각만 남은 채 속이 파 먹혀버린 조에들의 사체도 널려있다.
타타탓!
나는 계단을 빠르게 뛰어넘었다.
“베르자인!”
부서진 가구들이 계단의 양쪽으로 치워져 있다. 그렇게 2층까지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그녀의 위치는 3층의 넓은 회의실이었다.
그래서 3층까지 올라가려고 했는데, 2층의 계단 앞에 쓰러진 것과 눈이 마주쳤다.
“허윽…. 허억…. 흐으….”
“당신…!”
“허으으윽….”
이름은 모르지만 언제나 그녀의 곁에 있는, 자객들의 머리이자 그녀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담배를 태우는, 험악한 인상의 자객.
그런 그가 상반신만으로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의 뒤로 늘어진 척추와 내장, 그리고 복도를 따라 쭉 이어진 핏자국이 선명하다.
나는 그에게 달려가서 두 손을 잡아주었다.
‘상처부터 봉합해!’
「방혈도 재결합도 쓸 수 없다니깐!」
“끄으으….”
그가 내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어서…. 그녀를…….”
거기까지 말한 자객은 손에 힘을 풀어버리고 말았다. 부릅뜬 눈은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는데.
「죽었어.」
나는 복도에 이어진 핏자국을 따라서 직감적으로 내달렸다. 그러자 휑하게 무너진 왼쪽 벽과 휑하게 무너진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지금껏 본 적도 없는 크기의 거대한 조에가 있었다.
더는 생각할 것도 없이 도끼부터 치켜들었다.
「그것도 죽은 거야!」
거대한 조에의 아래, 근처 바닥에도 작은 조에들의 사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 사체들은 모두 눈알이 뽑혀 있었다.
그리고 일부 사체들은 조각상처럼 단단하게 굳은 채였다.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베르자인!”
벽에 닿아 반사된 내 목소리만 돌아왔다.
나는 조에들의 사체가 쌓인 공간으로 들어왔다.
“베르자인! 어디야?! 어디에 있어?!”
내가 이렇게까지 그녀의 죽음에 절박해질 줄은 몰랐다. 아니,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다.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어디선가 살아있을 것이다. 이곳의 어딘가에 없다면 바깥으로 도망쳐서라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이 거리에서 온갖 위협을 이겨내며 지금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다. 절대 이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많은 조에들을 죽였으니 분명 살아남았을 것이다.
“베르자인! 제발 대답해!”
“……여기야…!”
들렸다.
바닥을 박차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조에들이 있었다.
으직! 으직! 으직!
조에들을 전부 죽이고서 알았다.
“…왔냐.”
그녀는 한쪽 벽에 등을 기댄 채 서있었다.
쓰러지지 않고 서있었다.
한쪽 귀에서, 양쪽 팔에서, 허벅지에서 선혈이 흐르고 있지만 저렇게 멀쩡하게 서있다. 표정은 다소 지쳐 보이지만 혈색은 좋다.
“이번엔 네가 오기 전에 해결했어. 주변에 죽은 조에들 보이지?”
“미치겠네.”
“그런데 마지막 몇 마리는 도움을 받았으니까…. 아니다. 네가 없었어도 이거 몇 마리는 더 해치울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팔을 잡아서 부축하려고 했다.
“상처는?”
“왜 이래? 죽어가는 사람이라도 보는 것처럼.”
그녀는 팔을 빼냈다.
자신의 두 다리로 섰다.
“이거 좀 붙여줄 수 있어?”
그리고 내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 손바닥에는 그녀의 귀와 귀걸이가 있었다.
“망할 조에들이 잘라버려서.”
“…붙여줄게. 나중에.”
“나중에 언제?”
“오늘 안에 붙여줄게.”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보다,
그녀는 훨씬 멀쩡한 상태였다.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었다.
“칼테인을 잃었어. …칼테인을….”
“시신부터 수습하고. 복수하자.”
“복수….”
그녀는 한숨을 섞어 물었다.
“그러면 좀 편해지냐?”
편해지진 않지만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견뎠으니까.”
“그렇구나….”
그녀는 들고 있던 귀와 귀걸이를 옷자락 속에 넣었다.
그리고 내게 안겼다.
“…있잖아. 페인.”
“왜?”
“너는 악마의 하수인이랑 크라켄까지 이기는 놈이잖아.”
“혼자서 이긴 건 아니야.”
“어쨌든 이겼으니까. 바깥에 저것들을 그냥 대규모 주술로 휩쓸어버리면 안 되는 거야?”
“영력이 부족해.”
“쉬다 오지.”
“그랬으면 널 구할 수 없었어.”
“구하기는.”
그녀는 고개를 뒤로 빼고 나를 가까이서 응시했다.
방독면만 없었다면 이 자리에서 키스라도 했을 것이다. 그녀가 먼저 하든, 내가 먼저 하든.
“내가 알아서 살아남은 거야. 이번엔.”
「나는 존나 인정해.」
“왜 여기서 버티고 있었냐? 대피하지 않고.”
그녀는 부서진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기엔…. 내 모든 것이 있거든.”
“모르겠네.”
“그런데 페인. 론의 발을 묶어두는 것도 한계가 있고 조에들은 계속 강해지고 있잖아.”
“그렇지.”
“그런데 이거 이길 수 있는 거야?”
나는 즉답한다.
“세인트 왕국이라면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무슨 뜻이야?”
왕국은 멸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냈다.
「네 명령 때문에 불나방 150마리가 과로로 죽었어.」
부서진 창밖으로 해가 저물고 있다.
노을도 없이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곧 그들이 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