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143화 (143/181)

28. 전율 (3)

승천자와 아그니샤는 각자가 가진 가장 강력한 마법을 발동한 후 론이 어떻게 되었는지 지켜볼 틈이 없었다.

“아그니샤! 저들을 지키게!”

이곳에서는 조에 무리를 상대하면서 피난민들까지 보호해야만 한다.

콰앙! 콰앙!

아그니샤는 계율의 십자가를 끊임없이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간혹 덩치 큰 조에들을 죽이기 위해, 혹은 조에 무리의 동선을 차단하기 위해 천노의 커다란 십자가도 섞어서 떨어뜨리고 있다.

이 기나긴 피난민 행렬이 모두 서쪽 관문을 빠져나가기 위해선 모여드는 조에 무리를 막아야만 하는 것이다.

“지붕! 저쪽 지붕에 있다!”

“태워버려!”

병사들은 멀쩡한 건물에 불화살을 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승천자는 자신의 강력한 마법에 주변 상가가 파괴되더라도 등 뒤에서 피난하고 있는 자들을 우선하여 지키려고 했다.

“꾸르르륵…!”

“승천자님! 이쪽에 지원이 필요합니다!”

“안내하시오!”

승천자는 몇몇 병사들을 따라서 골목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러자 비좁은 골목을 꽉 채울 정도로 커다란 조에가 양쪽 집게발로 건물을 긁으며 돌진해오고 있었다.

녀석의 발밑에 깔려서 죽은 자들은 병사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가족들도 있었다.

“이런 천벌을 받을 놈들!!!”

도망치고 있는 병사들은 그 와중에도 함께 뛰는 피난민들을 보호하였다. 그들의 어깨를 감싸서 골목의 양쪽으로 바짝 갈라져 붙은 것이다. 그렇게 길이 열리자 승천자는 즉각 마법을 발동했다.

“지옥으로 썩 꺼지거라!”

승천자의 주변에서 찬란한 마법진 수십 개가 전개되었다.

콰콰콰쾅!

근거리에서 발동된 백색포격의 빛줄기들이 커다란 조에를 덮쳤다.

“꾸르륵…!”

조에는 백색포격을 정면으로 받아내고서 주춤했다. 그러는 사이에 피난민들은 병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승천자의 뒤까지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아그니샤! 이쪽이다!’

- 네! 승천자님!

곧이어 천노의 십자가가 녀석의 머리에 정확히 떨어졌다.

으지지직!

녀석은 땅에 머리를 처박고 말았다. 그러고도 죽지 않아서 머리를 치켜드니, 녀석의 머리 위에 십자가가 비석처럼 고스란히 박혀있는 것이다.

덩치 큰 조에는 푸른 혈액을 뚝뚝 흘리면서 승천자를 노려보았다.

“무얼 쳐다보느냐! 이 불경한 괴물아!”

승천자가 팔을 뻗자 창의 형태를 한 빛이 쏘아졌다. 그렇게 쏘아진 빛이 녀석의 머리에 꽂힌 십자가를 쳤다.

투드드드득!

덩치 큰 조에의 머리에서 십자가가 쑥 뽑혀버렸다.

“꾸르르르르….”

쿵!

녀석은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 쓰러지고 말았다.

“끝이 없구나, 끝이 없어….”

피난민과 병사들은 그에게 감사를 표하러 달려왔다.

“목숨을 빚졌습니다! 승천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어서 서쪽 관문으로 가십시오! 병사들은 나를 따라서 안전한 방어선으로 합류하고!”

“아, 예…!”

“알겠습니다!”

승천자는 골목에 고립되었던 병사들을 인솔했다. 그렇게 방어선이 유지되고 있는 거리까지 서둘러 나와보니 여전히 조에 무리와의 혈투가 한창이다.

그 조에들 사이에서 십자가를 들고 싸우는 아그니샤가 있다.

으지직!

그녀의 십자가는 조에의 경이로운 갑각을 깨부쉈다.

그야말로 화신의 힘이었다.

“승천자님! 다친 곳은…”

“없네!”

승천자는 자기 주변에 섬광을 터뜨려 조에들의 눈을 멀게 하였다. 그리고 아그니샤의 옆으로 합류했다.

“지켜야 할 피난민의 규모에 비해 병사들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무고한 피난민들이 놈들의 먹이가 되고 있어!”

“그래서 계율을 발동하여 최대한 많은 이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피난이 완료된 구획은 십자가를 떨어뜨려 거리를 틀어막게! 녀석들은 자네의 십자가를 경계하고 있으니 그걸로 시간을 더 벌 수 있을 게야!”

마법진이 펼쳐진 하늘로부터 더 많은 계율의 십자가가 떨어졌다.

그녀는 거리의 어딘가에 떨어진 십자가들이 한목숨이라도 더 구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승천자는 저 멀리 중앙교회 쪽에서 보이는 론을 곁눈질했다.

- 꾸으으으으으으…!!!

론이 저곳에서 붉은 혈액을 흘리고 있다. 분명 녀석의 혈액은 푸른색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 색깔의 이질감이 뜻하는 건 분명했다.

‘론의 혈액을 방혈한 게 아니라… 다른 것의 혈액을 역으로 집어넣어서 방혈한 것인가.’

쿠쿠쿠쿵!!

그러는 사이에 이쪽 거리에서 날뛰던 조에들이 정리되었다.

아그니샤는 심호흡을 하면서 승천자를 따라 론을 보았다.

“한 점에 집중된 힘이라고 하셨죠. 그게 통한 모양입니다.”

“론이 쓰러져도 이곳의 조에들이 쓰러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게.”

“네. 명심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뒤에는 서쪽 관문으로 피난하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피난민들의 사선과 뒤를 지키며 함께 이동하는 왕국군이 있다.

따라서 승천자와 아그니샤는 저들과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들이 도망칠 서쪽이 아니라, 조에들이 오고 있는 동쪽으로.

“바로 옆 거리로 이동하지.”

“뛰겠습니다.”

타타탓!

두 사람은 좀 전에 덩치 큰 조에를 쓰러뜨린 골목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쉼 없이 뛰었다.

콰앙!

종종 건물에 매복했던 조에들이 뛰쳐나와서 두 사람을 노렸다.

키이잉!

아그니샤는 승천자에게 보호막을 씌워주었다. 뛰어든 조에들의 집게발이 승천자의 살갗 대신 보호막을 긁었다.

“조심하게!”

쿠지직!

승천자는 보호막 바깥에 마법진을 전개하여 코앞에 백색포격을 발동해버렸다. 그러자 두 사람을 중심으로 밝은 폭발이 일어났다.

승천자에게 붙었던 조에 무리는 좀 전에 매복했던 건물들과 함께 박살이 나고 말았다.

“꾸륵꾸륵꾸륵…”

오도독! 오도독!

새하얀 갑각의 작은 조에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죽은 것을 파먹고 있다.

녀석들은 뒤늦게 태어나서, 그저 주워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있던 어린 조에들이었다. 아직 사람을 죽여본 적도,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는 어린 존재들이었다.

“꾸륵꾸륵….”

오도독! 오도독!

당장 아그니샤와 승천자가 자신들에게 뛰어오고 있는데 아무 반응도 없이, 굶주린 배를 채우기에만 급급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어린 녀석들에게 죄가 있는가.

태어나서, 길바닥에 버려진 살점을 주워 먹었을 뿐인데.

타다닷!

이제 아그니샤는 그런 것에 고민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승천자보다 앞서 뛰어가 십자가를 휘둘렀다.

퍼엉!

폭발적인 섬광이 터지면서 어린 조에들을 으깨버렸다. 그리고 조에들이 파먹던 것까지 빛으로 태워서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물론 조에들이 ‘파먹던 것’에는 인간의 시신도 있었다.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누군가의 주검까지 지워버린 것이다.

“아그니샤….”

“네. 승천자님.”

“자네 괜찮은가?”

승천자가 보기에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이지만, 어느샌가 지친 눈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승천자님은요?”

“물론 괜찮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네.”

“저도 같아요.”

둘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겠다고 불나방 150마리가 죽었어요. 저를 등에 태우고 하늘을 날다가 지쳐서요.”

“….”

“조에들과 크게 다를 것 없이 사악한 존재들인데, 조에들과 달리 가엾게 여겨도 되는 걸까요.”

“천사들이라면 어떨 것 같나?”

“사악한 존재들에게 일말의 연민도 품지 않겠죠. 그런데 저는…. 왠지 그 불나방들이 가여워서요.”

“자네는 천사가 아니라네.”

승천자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니 자네가 느끼는 그런 것들도, 천사들이라면 전부 헤아릴 테야. 자네의 선한 마음에는 죄가 없으니.”

“제 마음이 선한지 악한지 어떻게 아세요?”

“그러는 자네는 내가 다음 승천자가 되기에 가장 적합한 신관이라고 어떻게 확신하고 있었나?”

“가장 훌륭한 신관이었으니까요.”

타락한 승천자가 있었을 때, 그는 그저 교단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경험 많은 신관이었을 뿐이다.

“당시에 나는 그가 타락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네. 그때도 지금도 교단은 나를 추대하고 있지만, 나는 교단의 생각보다 부족함이 많은 인물이지.”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요. 다들 완벽했다면 타락한 승천자가 생기지도, 놈이 악행을 벌일 일도 없었겠죠. 사람들이 휘말려서 죽을 일도 없었을 거고요.”

“나는 그것이 나의 죄라고 생각하네.”

“저도 같아요. 심지어 저는 알고 있었는데도 고발을 미루고 있었죠. 제가 더 현명했다면 미루지 않고 다른 더 좋은 방법을 떠올렸을 거예요. …누군가 끔찍한 짓을 당하기 전에요.”

“자네는 그때부터 늘 한결같았지. 언제나 마음이 무거워서 잘 웃지도 않고 말이야.”

“네?”

“자네가 활짝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

“여전사의 기개를 갖춘 발키리라면 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도, 인간은 다르다네.”

승천자와 아그니샤는 골목의 끝자락에서 멈춰섰다.

“강조하지. 자네는 인간이라네. 모든 것을 짊어지고 완벽한 계율을 추구해야만 하는 천사가 아니야.”

왼쪽에서 다가오는 조에들이 보이며, 오른쪽에서 방어선을 만들어 대기하는 병사들과 그 뒤로 빠지는 피난민 행렬이 보인다.

“승천자인 나조차도 이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거짓을 말하였네. 언제나 신도들에게 진실되어야 한다는 계율을 어긴 것이지.”

계율을 지킬 수 없었다.

천사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계율을 지키며 죽겠지만, 인간은 목에 칼이 들어오면 계율을 어겨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

“어쩌겠나. 이곳은 인간의 세계이고, 우리는 때때로 계율을 어겨서라도 생존과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인간들인 것을.”

언제나 계율을 지킬 수 있고, 계율을 지켜도 되는 세상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천계처럼 이상적이지 않다. 천계처럼 아름답지도, 주변의 모든 존재들이 천사인 것도 아니다.

“발키리 집단에는 그런 신념이 있지. 계율을 어긴 탓에 타락천사가 되더라도 악에 대한 집행은 이루어져야만 하며…”

아그니샤는 그의 말을 이어받았다.

“집행이 이루어졌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이니, 가장 좋은 방법은 악이 될 수 있는 새싹 자체를 짓밟아버리는 것이다.”

아그니샤는 거리를 가득 채워 다가오는 조에들을 차가운 얼굴로 노려보았다.

“승천자님도 이런저런 생각의 변화가 많으셨나 보네요.”

“그러니 좀 웃도록 하게. 우리는 천사처럼 살고자 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니.”

“노력해 볼게요.”

“자네에겐 악을 처단한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꿈이란 없는 것 같네.”

아그니샤는 승천자의 말을 듣고서 짧은 순간에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무엇이 되고 싶은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그리고 어떻게 죽고 싶은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자신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누구보다도 ‘선’의 축에 서있지만, 언제나 눈앞에 있는 ‘악’만 보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극명하겠지만.

‘페인….’

강령술사. 페인.

그에게 더욱 사죄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이 모든 전쟁의 시작점에 불을 붙인 그를 더욱 원망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 또 원망스러워서, 그에게 다시 사죄하고 싶은 걸까.

이성적인 이해가 아니라 진심이 담긴 용서를 받고 싶은 걸까. 계속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에게 무슨 말을 하고서 어떤 대답을 듣고 싶은 걸까.

이번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지만, 너무도 많은 것들이 섞여 있어서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단지 그런 생각은 든다.

희미하게 선만 그려낸 그림처럼 추상적인 상상이다.

이 모든 일들이 끝나고서, 그때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회상하며 그와 함께 웃는 미래.

그런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 꾸으으으으으으으으르르르르!!!!!

순간,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틀림없이 론의 비명이었다.

모두가 그곳에 시선을 빼앗겼다. 조에들도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목도했다.

그러자 모든 거리에서 괴물의 절규와 인간의 환호성이 동시에 퍼져나갔다.

“꾸르르르……!”

“우와아아아아!!!”

론이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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