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162화 (162/181)

32. 추종자들 (2)

“이쪽에서도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승천자님은 너무 바쁜 것 같아서요.”

“하하. 무엇이든 편히 말씀하시면 됩니다.”

“낙원 사람들과 관련된 일입니다.”

“낙원이라면 잿빛세계에 있는 그들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예. 낙원 사람들을 데려오려고요.”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방법이 생겼습니다.”

* * *

나는 야심한 새벽에 잿빛세계로 찾아왔다.

이곳의 중앙교회에서 후계자에게 설명을 끝마친 참이다.

“실재세계로 가면 작은 영지 하나를 관리하게 될 테니까요. 후계자님은 그곳에 가서도 사람들을 잘 이끌어주셔야 합니다.”

“세계가 바뀐다고 해서 우리 낙원 사람들이 바뀌는 건 아니지요. 믿고 맡겨주셔도 좋습니다. 그보다 이런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저희가 내는 약소한 세금 정도로는 한참 부족한 것 같아 늘 마음이 쓰입니다.”

“사람들에게서 뭔가를 얻으려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내가 처음 이들에게 손길을 내밀었던 건 뭔가를 계산했던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이들에게서 뭔가를 얻겠다는 계산은 이들이 충분히 안정된 후에 진행된 일이다. 그땐 그런 게 필요했으니까.

그러나 이들이 곧 실재세계로 가게 된다면 앞으로 내게 세금을 낼 일은 없게 될 것이다.

「앞으로 세금은 교단에 내야겠지.」

「조금 아깝긴 해. 적은 액수는 아니었는데.」

‘내게 돈이라는 개념은 가치를 잃어버린지 오래야.’

「넌 물욕도 없냐?」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내게 굳이 필요한 건가 싶다. 나중에 저택이라도 짓고 싶다면 모르겠는데 그런 흔한 꿈이 내게는 없다.

「뭐, 네가 원하지 않더라도 왕국에서 너한테 저택 하나쯤은 공짜로 주겠다고 하겠지.」

“그런데 이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일을 진행하시려는 까닭을 여쭈어도 될지요? 굳이 비밀로 하지 않아도 강령술사님의 말씀이라면 모두가 따를 텐데요.”

이번 일은 낙원 사람들에게 예고도 없이 진행할 것이다.

“굉장히 두려운 일이 될 수 있거든요.”

“두렵다고 하심은….”

“두려움에 면역이 없는 자들이나 어린아이들도 있지 않습니까. 다들 각자의 집에 들어가서 자고 있을 때 한꺼번에 진행하는 편이 더 나을 겁니다. 서로 분리되어 있는 지금이 상대적으로 더 안전하기도 하고요.”

「각자의 속도가 완벽하게 똑같진 않을 테니까…. 일찍 변한 사람이 뒤늦게 변한 사람을 해칠 우려가 있긴 하지.」

“흠…. 그럼 저희로선 굼에서 깨어났을 때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것인지요?”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죠. 정확히는.”

낙원 사람들은 끔찍한 악몽을 꾸게 될 것이다. 그러다 다들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 비로소 자기들이 실재세계에 왔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배척자들 준비됐어.」

이후 나는 후계자를 중앙교회에 남겨둔 채 어느 넓은 광장으로 왔다.

이 광장의 중심에는 제단이 있다.

「여기서 처음으로 본 이물이 역병 마녀였지.」

‘차원침공,’

핏물로 된 거대한 마법진이 하늘을 뒤덮고 붉은 번개가 도심에 여러 차례 떨어졌다.

키이이잉!! 키잉! 키기깅!

하늘에 불나방들을 띄우고 도시 전체를 포위하는 형태로 거미 악귀와 흑기사 무리를 둥글게 배치했다. 나는 그 누구도 이 도시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키이잉!

다들 큰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있어선 안 돼.’

「372명의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

「내가 지적 활동이랑 존재 추적으로 한 명씩 확실하게 볼 테니까 낙오자 걱정은 안 해도 돼.」

‘알겠어. 맡길게.’

나는 영안을 발동했다.

지옥으로부터 내 영혼을 잡아당기고 있는 악의 손아귀들이 검은 형체처럼 보인다. 나는 그것들을 도끼로 잘라냈다.

샤아아……!

형체를 잃어버린 그것들은 단순한 악의 편린이 되어서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 모습이 서로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는 어둠 같기도 하다.

‘너무 과하지 않게….’

나는 빙글빙글 돌고 있는 악을 의도적으로 뭉쳤다. 강타하는 혈전처럼 하나의 꿈틀대는 덩어리가 된 어둠이 내 손끝을 따라서 이리저리 떠다녔다.

「시작해도 돼.」

나는 제단의 중심에서 손끝을 바닥으로 향했다. 내 손을 따라서 움직이던 검은 덩어리가 바닥에 거칠게 떨어졌다.

샤아아!!!

덩어리처럼 뭉쳐진 악이 터지면서 온 사방으로 어둠을 뻗어댔다. 집집마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싶어 문을 열고 나온 자들의 눈구멍으로, 귓구멍으로, 콧구멍으로, 목구멍으로 어둠이 빨려 들어갔다.

- 꺄악!

- 으아아아아!

다들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그들의 비명을 듣고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들이 느낄 공포를 최대한 단축시켜주는 것뿐이다. 그들이 깨어났을 때 이 일을 악몽이라고 여길 수 있도록 이번 일을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만 한다.

- 살려줘!

- 악령이다! 악령이 나타났다!

그렇다.

나는 낙원에 있는 372명에게 악을 흩뿌린 것이다. 지옥을 근원으로 삼고 있는 악은 업보가 별로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도 악령화를 강제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악령화의 재료가 될 업보가 전혀 없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평생을 선행만 베풀며 경이로울 정도로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런 사람들이 극소수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추가로 주문을 외운다. 이것은 내가 인간도 악령도 아닌 존재가 된 후 무수한 악을 흡수하다 보니 자연스레 깨우치게 된 주술이다. 왠지 원리는 모르지만 발동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

‘내가 믿던 신은 날 버렸다.’

천사들에겐 미안하지만, 이게 내 진심이 아니라는 걸 헤아려주길 바란다. 이건 단순한 주문이다.

‘모든 것이 만악이다.’

‘나조차도.’

아라나크의 주술이다.

언젠가 아라나크가 비첸크로이 제국의 수도에 걸었던 대규모 주술이자 강력한 저주다.

‘타락.’

- 아아아아아아아!!!!

372명의 악령화가 더욱 가속되고 있다. 창문을 깨고 나온 이형의 존재들이 모두 악령이 된 낙원 사람들이다. 업보가 없어서 악령화에 저항하고 있던 선한 자들도 타락의 저주에 당하니 금방 악령화를 일으켰다. 그중에는 후계자, 경비대장 후안, 얼굴의 절반에 화상흉터가 있는 성녀도 있었다.

- 히이이이이!

- 키이익! 키익!

- 이히히히!

이제 인간의 비명은 들려오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이 아니게 된 존재들의 뒤틀린 울음이 메아리치게 되었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이제 372명 모두가 악령이 되었음을.

부우웅!

나는 하늘에서 떠돌던 불나방 한 마리를 불러서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 그렇게 상공으로 올라와 낙원 전체를 내려다보았다.

‘전부 몰아넣어.’

도시를 포위하고 있던 악귀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악귀들은 악령이 된 자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거미 악귀들은 괜스레 거미줄을 날려서 그들을 넘어뜨리거나 큰 소리로 으르렁댔고, 흑기사들은 아무도 없는 건물을 보란 듯이 무너뜨리며 난동을 부렸다.

악귀들의 포위망이 더욱 좁아졌다.

모두가 악귀 무리를 피해서 한 점으로 모이게 되었다.

바로 저 아래, 두 배척자와 제단이 있는 광장이다. 계산대로 저 광장은 372명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다.

‘재결합 8계.’

‘제국의 결투장.’

쩌저저저저!!!!

광장을 포위하는 벽이 올라왔다. 지하에 강철이 없음에도 강철로 된 벽을 만들어 올린 것이다. 그렇게 악령이 된 372명을 모두 광장에 가둬버렸다.

- 끼에에에에에!

372명은 마구 날뛰었다. 강철로 된 벽을 손톱으로 긁고 주먹으로 때렸다. 그래도 결투장의 벽에는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영력 발산. 공포.’

광장을 조준하여 내 존재감을 발산했다. 그러자 372명은 두려움에 사무쳐서 무슨 수를 써서든 도망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제국의 결투장에 갇힌 탓에 도망칠 수가 없다.

「배척자들이 필요악을 발동했어.」

내가 영력 발산을 발동한 직후에 두 배척자도 필요악을 발동했다.

필요악은 일정한 영역을 정하여 이물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드는 주술이다. 만약 필요악을 무시하고 그 영역에 들어온 이물이 있다면, 반드시 필요악의 영역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정신적인 압박을 받게 된다. 강박적으로.

그래서 지금 제국의 결투장에 갇힌 372명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것이다. 영력 발산에 필요악까지 발동되고 있는 영역이라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말이다.

결국 372명은 목표를 바꾸었다. 일단 필요악의 근원이 되는 존재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카드득! 카각!

강철로 된 벽이 받아내던 공격을 두 배척자가 고스란히 나누어 받게 되었다. 배척자들의 석상으로 된 몸에 흠집이 생기고 균열이 생기고 작은 돌조각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배척자는 세월 속에 풍화되는 바위처럼 부서지기 시작했다.

- 이것이…….

- 속죄가 되기를…….

나는 두 배척자가 죽기 전에 일을 끝내야만 한다. 그래서 서둘러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진화.’

이비가 썼던 주술을 셰르카가 흑마법으로 해석하였고, 나는 그렇게 해석된 흑마법을 다시금 주술로 해석한 것이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지옥으로 떠나기 전에 이들의 오랜 염원을 이루어주고 싶어서.

- 케게게게게겍!!!!

372명. 아니, 372마리의 악령들은 육체와 영혼이 강제로 잿빛세계에 적응하였다. 당연히 그 결과는 악령에서 이물로 변하는 것이다.

그들의 육체는 더욱 기괴한 모습으로 뒤틀렸다. 촉수도 많아졌고 눈알도 많아졌으며 더는 인간의 사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육체를 가지게 된 존재들도 있었다.

또한 그들은 모두 내게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으니. 목줄로 묶기 위한 조건이 맞추어진 것이다.

「사람에서 악령으로.」

「악령에서 이물로.」

「이물에서 악귀로.」

「이런 식으로 구원하는 건 진짜 대단한 발상이야. 페인.」

나는 372마리의 이물을 모두 악귀로 만들었다. 그리고 명령했다.

‘공격을 멈춰라.’

그제야 광장이 조용해졌다.

부우웅!

나는 불나방을 움직여 두 배척자 앞에 내려왔다.

“페인.”

두 배척자는 손가락으로 살짝만 건들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몸을 하고 있었다.

“수고했어.”

“…….”

두 배척자의 단단한 몸에 생긴 균열로부터 빛이 새 나오며 광장을 밝혔다.

뭔가 목구멍이 아프다. 아프지만, 마지막으로 할 말은 해야겠다.

“고마워. 너희의 후손으로서.”

“……고맙다.”

“…우리가. 더.”

두 배척자는 육체의 내부로부터 발하는 빛에 스스로 휩싸여 존재감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빛의 가루처럼 변하여 허공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염원하던….”

“……속죄를.”

그렇게 두 신관의 영혼이 성불한 것이다.

* * *

실재세계에 새로운 해가 떠올랐다.

제단이 있는 어느 광장.

누군가에겐 ‘낭떠러지’였던 장소다.

키이이잉!!!

핏물로 된 소환진이 제단 바닥에 그려졌다. 그 날카로운 굉음에 주변 행인들은 화들짝 놀라며 제단으로부터 허둥지둥 물러섰다.

이윽고 소환진에서 낙원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으앗!”

“어?”

“어어?”

낙원 사람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어어어?!”

인식을 초월하는 시각.

마음을 초월하는 오감.

이 세계에 있다는 실감.

그들은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하늘이…! 아아아…!”

하늘의 색깔이 시원했다.

공기의 색깔이 선명했다.

주변 건물, 풀, 나무, 꽃의 색깔이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들은 말하는 것이다.

“이곳이…. 천국이야….”

그들이 살아온 무채색의 세계에 비하면 말이다.

“모두 물러서세요!”

그때 아그니샤와 파보크가 소수의 성기사들을 이끌고 광장에 나타났다.

파보크는 제단 위에 서있는 낙원 사람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후계자님! 후계자라고 불리시는 분이 있다면 앞으로 나와주십시오!”

벅찬 감정에 울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후계자가 걸어 나왔다. 그는 비틀대는 걸음걸이로 파보크에게 다가가서, 그대로 파보크를 포옹했다.

“후, 후계자님 되십니까?”

“아이고…! 예!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 하하…. 현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승천자 직속 물의 마법사 파보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같은 소속에 네이트의 화신인 아그니샤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후계자님.”

후계자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이 이상 기쁠 수가 없다는 얼굴로 울었다.

“예, 예…! 압니다! 두 분 모두…! 정말이지…! 아이고!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가, 건물도 사람들도 너무 완벽해서…! 어, 어떻게 이럴 수가….”

“하하. 강령술사님께 말씀은 들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안내하겠습니다.”

그때 상공의 구름 위에서 아무도 모르게 불나방 두 마리가 비행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끔찍한 세계지만, 정말로 끔찍한 세계에서 살았던 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세계인 것이다.”

“그런데 우린 진짜 끔찍한 세계로 가네.”

핏빛세계로.

“천국을 선물하고 지옥으로 가는구나.”

“….”

“페인. 솔직히 난 잠깐 들여다보았을 뿐이라 그곳의 자세한 것을 모른다. 그래서 괜히 묻고 싶구나.”

셰르카는 다소 긴장한 것 같았다.

“네가 본 핏빛세계란…. 어떤 곳이었느냐?”

그곳이라면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지옥.”

“응?”

“지옥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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