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166화 (166/181)

33. 부서진 꿈 (1)

셰르카는 거미줄 같은 어둠을 협곡의 벽 사이에 퍼뜨렸다. 그것이 요마와 몽마를 묶어서 녀석들이 일순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드라쉬르의 그림자, 이리, 페인이 뛰었다.

“흐어어어어!!”

드라쉬르의 그림자는 속박된 요마와 몽마에게 흑염을 사출하였고, 그 흑염을 막기 위한 요마의 어둠이 맞불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흑염과 어둠이 서로를 잡아먹는 사이에 몽마의 채찍이 벽을 따라서 돌진해왔다.

“퀴이!!”

이리는 촉수를 비대하게 부풀려서 몽마의 채찍을 살점으로 받아냈다. 촉수가 터지면서 혈액이 흩뿌려졌다. 페인은 자신의 몸을 혈액으로 분해하였다. 이리와 페인의 혈액이 허공에 흩어져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페인은 충돌하는 촉수와 채찍 사이를 재빠르게 통과해버렸다.

그 순간, 몽마는 자신의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

페인이 등을 보인 채 뛰어가고 있다.

그래서 몽마는 또다시 이 싸움을 처음으로 되돌리려 했다.

샤아아!

영혼의 벽이 이 비좁은 길을 격리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슈탈룬헤르토툼이다.”

“셰르카….”

“그의 육체와 영혼은 벽 너머에 있지. 네년의 주술로 벽 너머의 그를 다시 끌어올 수 있다면 해보거라.”

지금껏 그 어떤 존재도 영혼의 벽을 통과한 적이 없었다. 육체가 있는 존재도 육체가 없는 존재도, 심지어 잠시나마 실재세계에 강림한 샤조차도 그녀가 전개한 영혼의 벽을 통과하진 못했다.

“…역시. 못하는구나?”

촤아악!

몽마는 자신의 얼굴 가죽을 제 손으로 잡아 뜯어내버렸다. 그러자 인간의 얼굴뼈처럼 들끓고 있는 구더기들이 드러났다.

“혐오스러운 낯짝을 드러내는 걸 보니 날 현혹할 생각은 접었나 보구나.”

“나는 페인을 원했어! 그런데 네가 다 망쳤다고!”

“그가 정욕 따위에 넘어갈 것 같으냐. 네년들에게 페인을 맛볼 기회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씨발년이!!”

몽마는 지면으로 들끓는 구더기를 보냈다. 그러자 채찍을 상대하던 이리가 셰르카에게 뛰어들어 우산처럼 몸을 펼쳤다.

타다다다닥!

짧은 높이를 도약한 구더기들은 이리에게 막혀서 어수선하게 흩어졌다. 곧이어 셰르카의 손에 쥐어진 이리가 아주 가느다랗고 뾰족한 촉수를 발사하듯 몽마에게 내보냈다.

샤아아!!

그때 요마가 몽마 곁으로 달려와 어둠으로 된 우산 같은 것을 펼쳐서 이리의 촉수를 받아냈다.

“방해하지 마!!!”

몽마는 그림자 같은 망토를 달더니 셰르카에게 돌진했다. 녀석은 허공에서 몇 번이나 도약하고 어두운 벽을 몇 번이나 박차며, 공중을 가로지르고 있는 이리의 촉수들을 손톱으로 베어냈다.

촤자자작!!

몽마는 이리의 촉수들을 여러 차례 베어내며 셰르카의 코앞까지 달려들었다.

콰악!

몽마가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씨발, 씨발년아….”

얼굴을 이루는 구더기들이 살점을 토해냈다. 그 살점이 몽마의 예쁘장한 얼굴 가죽을 수복하였다.

“너, 너 이 씨발년아…. 페인을 소유하고 싶은 거지?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

“사랑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

셰르카는 목을 조여지는 와중에도 몽마를 비웃었다.

“그는 내가 아끼는 물건이다. 네년은 손도 댈 수 없을 거라는 말이다.”

“그럼 나한테 양보해! 아니, 같이 놀게 해줄게!! 페인의 영력을 알잖아! 페인이라면 수천, 수만 번이나 쉬지 않고 뽑아낼 수 있어! 너도 나도 페인도 다 같이 행복할 수 있을 거야!”

몽마는 몸을 뒤틀면서 침을 질질 흘렸다.

“딱 3만 번만…! 1년 안에 3만 번 뽑아먹고 돌려줄 테니까!”

“네년을 보고 있으니 역병 마녀가 생각나는구나.”

“뭐?”

“너는 모르는 그의 이야기지.”

그 발언이 몽마의 심기를 건드린 걸까.

콰아악!!

몽마는 셰르카의 목에 손톱을 찔러넣어서 그녀의 목뼈를 붙잡아 으스러뜨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은 셰르카의 본체가 아니었고,

“아, 아파…. 이건 아파….”

어느샌가 셰르카의 손에는 이리가 없었다.

쿠드드드….

이리가 요마를 하반신부터 잡아먹고 있었다. 그런 이리의 촉수 틈새에서 셰르카가 기어 나온 것이다.

“주문도 내뱉지 않고 어떻게 흑마법을…!”

“연구의 결과물이다.”

몽마는 손을 뻗어 채찍을 날리려고 했다. 하지만 셰르카가 채찍보다 빨랐다.

“일단 이것부터 치우고 다시 이야기하지.”

샤아아…!

몽마와 요마를 격리하는 영혼의 벽이 생겼다.

이제 몽마는 요마의 죽음도, 자리에서 이탈한 페인의 위치도 되돌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윽고 영혼의 벽이 걷히자 몽마의 눈에 들어온 건 이리에게 붙잡혀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있는 요마였다.

“셰르카아아아!!!”

몽마의 뒤로 아홉 개의 새빨간 꼬리가 자라났다. 각각의 꼬리가 엄청난 속도로 길이를 늘여서 양옆의 어두운 벽을 무너뜨렸다.

무너져내리는 어둠이 셰르카를 덮쳤고, 드라쉬르의 그림자가 손톱을 휘둘러 어둠을 찢어발겼다.

* * *

나는 무사히 광기의 산맥을 통과했다.

「이걸 통과했다고 보는 게 맞나?」

여전히 어둠으로 이루어진 뾰족한 산맥이 온 사방을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만카라가 ‘광기의 산맥’이라고 특정해서 지목했던 산맥은 확실히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

‘여긴 공터잖아. 저 앞에 새로운 산맥이 있고.’

이 공터에는 나무를 대신해서 뼈로 이루어진 기이한 구조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피로 된 냇물이 흐르고 풀이나 꽃을 대신하는 혈관들이 바닥에서 자라난 것처럼 핏빛의 풀밭을 이루고 있다.

「미르파스는 어딨지? 존재감을 숨기고 있는데.」

존재감을 숨겼다는 건 도망치거나 기습을 할 것이라는 예고다.

하지만 미르파스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녀석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녀석도 날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이제 나타날 거야.’

샤아아아!!!

피로 된 냇물에서 미르파스가 일어섰다. 녀석의 붉은 형체는 사지가 달린 인간이 아니라 네 발이 달린 짐승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형체가 완전히 갖추어지기도 전에 녀석은 내게 새빨간 빛줄기를 쏘아낸 것이다.

쩌어엉!!!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그 빛줄기를 피하였다. 그러자 빛줄기가 타격한 부분의 땅이 움푹 꺼져서 뜨거운 용암을 분수처럼 토해내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공터를 용암이 뒤덮기 시작했다. 혈관 같은 것이 용암을 뿜어대고, 피가 흐르던 냇물이 엄청난 속도로 메마르더니 부글부글 끓는 용암으로 채워졌다.

“넌 이쪽에서도 유명하다. 페인.”

붉은 형체가 완전해졌다.

네 발 달린 거대한 짐승이라도 보는 것 같다. 미르파스는 두꺼운 네 다리에, 비대한 몸통에, 거북이의 등딱지에, 박쥐의 날개에, 뱀 같은 꼬리에, 세 갈래로 갈라진 염소의 뿔을 달고 있는 악마였다.

“너도 셰르카도…. 지나치게 강하군. 미크쉬가 당했던 것도 이해가 된다.”

페인은 도끼에 살점을 입혔다.

“이렇게나 강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거겠지. 그래서 당한 거다.”

“그럼 너는?”

“나는 안다. 너를 얕봤다간 도리어 내가 죽임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얕보든 얕보지 않든 뒈지는 건 저 새끼야.」

악령은 주문을 외웠다.

「임계점.」

도끼로부터 초록색 빛줄기가 쇄도했다. 미르파스는 세 갈래로 갈라진 염소의 뿔 중심에서 새빨간 빛줄기를 쏘아내 초록색 빛줄기를 상쇄했다.

「하나로 안 된다면…!」

나의 배후에 붉은 덩어리 여섯 개가 떠올랐다. 각각의 덩어리가 초록색 빛줄기를 쏘아냈다.

쩌어어엉!!!

그러자 미르파스도 세 갈래로 갈라진 뿔로부터 여섯 개의 새빨간 빛줄기를 쏘아내 방어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빛을 쏘아내고 받아내는 구도가 되었다.

타닷!

나는 옆으로 뛰면서 미르파스에게 연달아 검기를 날려보냈다. 그러자 미르파스 또한 네 발로 뛰면서 검기를 피하고, 뱀 같은 꼬리를 길게 늘여서 내게 채찍처럼 휘둘렀다.

후웅!!

나는 뒤로 허리를 접어서 꼬리를 피함과 동시에 비어있는 왼손을 뻗어 주술을 발동했다.

‘방혈.’

퍼억! 퍼억!

뱀 같은 꼬리가 빨갛게 터져버렸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허공에 뿌려진 혈액이 잠시 정지했다가 미르파스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증기폭발.’

퍼퍼펑!

미르파스의 주변에서 혈액이 폭발하였다. 나는 폭발로 생긴 흙먼지를 돌파하였다. 미르파스의 목을 노려 힘차게 도끼를 휘둘렀다.

카앙…!

미르파스는 재빠르게 몸을 틀어서 자신의 등딱지로 도끼를 받아냈다.

“너에게서 다양한 혈향이 나는군.”

도끼의 손잡이, 손목, 팔을 따라서 내 몸속이 징징 울렸다.

“많이도 잡아먹었구나. 이 세계의 것을.”

곧 미르파스는 뿔로부터 새빨간 빛줄기를 발사함과 동시에 몸을 회전시켜 나를 반으로 갈라버리려고 했다.

쩌엉!!!

하지만 나는 광속을 발동했다.

빛줄기를 피하고 미르파스의 발치로 달려가 도끼로 녀석의 한쪽 발을 베어버렸다.

쿠웅!

미르파스는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기회다. 나는 이어서 도끼를 휘둘렀다. 미르파스의 목을 베려고 했다. 그러나 미르파스가 광속을 발동한 내 도끼에 반응했다. 내게 머리를 들이밀어 턱을 벌린 것이다.

“너의 영혼을 벌하겠다.”

그것은 주문이자 함정이었다. 일부러 목을 보여주고 내가 달려들게 유도한 것이다.

미르파스의 벌어진 턱, 그 너머에 있는 공허한 목구멍으로부터 끓는 잿물이 뿜어져 나왔다.

치지지직!!

나는 잿물에 맞아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영혼까지 녹이는 거야!」

「영력을 발산해서 방어했는데, 방어하는데 쓴 영력을 전부 잃었어!」

‘매혈.’

촤아악!

미르파스의 한쪽 다리에 있는 붉은 절단면으로부터 혈액이 뽑혀 나와 나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나는 그렇게 잃어버린 영력을 보충했다.

‘제국의 결투장.’

쩌거거거겅!

강철로 된 벽이 올라와서 나와 미르파스를 가둬버렸다.

‘차원침공.’

하늘에 거대한 소환진이 전개되며 붉은 번개가 떨어졌다. 제국의 결투장으로 격리된 이 땅을 수백 흑기사들이 가득 채웠다.

“잔재주가 많지만, 근본은 강령술사인가.”

흑기사들이 일제히 장검을 휘둘러 검기를 쏘아냈다. 피할 공간도, 검기 사이에 틈새도 없었으니 미르파스는 수백 흑기사들의 검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게 되었다.

엄청난 폭발이 시야를 가렸다. 폭력적인 공기가 정면에서 내 몸을 벽처럼 밀어내려고 했지만 나는 두 다리로 버텼다.

그래도 미르파스는 상처 하나 없는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너의 주변을 벌하겠다.”

치직…!!

나의 방독면에 어떤 밝은 물방울 같은 것이 떨어졌다. 그것이 방독면을 녹이고 들어가자 방독면에 작은 구멍이 뚫렸고, 유독한 기체가 내 가슴속을 건드렸다.

“…커헉! 커헉!”

「이건 또 뭐야?!」

하늘에서 용암으로 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흑기사의 사철과 론의 갑각으로 만든 장비라도 간단히 녹여버리는 용암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피할 수 있는 그늘이라곤 없다.

“내가 악마다.”

용암이 내리는 전장 한복판에서 미르파스의 끓는 목소리가 울렸다.

“이곳이 지옥이다.”

짧은 순간에 결정해야만 할 것이다. 온몸에 용암을 맞아 쓰러지기 전에 말이다.

“크아아아아!”

“크르릉…!”

흑기사들은 갑옷에 무수한 구멍이 뚫린 채 쓰러지고 있다. 제국의 결투장을 이루는 강철 벽까지 뜨겁게 녹아내리고 있다.

「어차피 이미 꺼낸 흑기사들은 다 뒈질 거야!」

「제물방…」

‘기다려.’

아주 짧은 순간, 나는 의심했다.

흑기사들을 모조리 희생해서 미르파스에게 반격한다는 내 생각을. 악령의 생각을.

‘미르파스의 생각은…….’

강렬한 직감이었다.

악귀 군단을 희생해서 만든 혈액으로 반격한다는 걸 과연 미르파스가 모를까.

바로 이것이 ‘기시감’이었다.

‘이런 구도, 이런 상황…’

뭔가 익숙했다.

악귀 군단을 희생해서 만든 혈액으로 싸운다는 발상이 익숙했다. 몇 번이고 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미르파스를 상대로도 해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미르파스가 모르는 걸 써야 한다. 미르파스가 상상도 못하는 걸 써야 한다. 나조차, 내 안의 악령조차 모르고 있던 무언가를 써야 한다. 그래야 뭐든 한 번이라도 공격이 통할 것이다.

새로운 무언가.

당장 개방할 수 있는 게 있다.

‘철의 심장을 개방해.’

그러자 악령은 내게 묻지도 않고 서둘러 철의 심장을 개방했다.

‘받아내.’

「뭘?!」

쏟아져 내리고 있는 용암을.

* * *

하늘에서 내리던 용암의 빗줄기가 전부 방향을 틀어서 페인에게 쏟아지고 있다.

그때 미르파스는 말했다.

“아군을 보호하기 위한 주술을 이렇게 쓰는구나.”

페인이 철의 심장을 발동하여 용암의 빗줄기를 전부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흑기사들은 연이어 검기를 날려댔다. 하지만 녀석들의 검기는 어지러운 폭발만 일으켰을 뿐, 미르파스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도 만들 수가 없었다.

“이번엔 자살인가?”

“저번엔 제물방류를 썼지?”

“저번이라…. 눈썰미가 좋군.”

치지지직!!!

페인은 철의 심장을 발동하여 흑기사들을 지키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미르파스에겐 굉장히 달가운 소식이었다.

“잘못된 선택을 했군. 넌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죽게 될 것이다.”

하늘에서 더는 용암이 내리지 않게 되었다. 페인은 몸이 반쯤 녹아서 땅 위에 버려진, 까마귀 모양의 방독면을 쓰고 있는 살덩이처럼 되었다.

푸화아아아…!

미르파스는 그런 페인에게 잿물을 토해냈다. 그것은 영혼까지 녹이는 잿물이었고, 페인은 그 자리에서 영혼까지 녹을 테니 추억 속의 리비카가 발동된다고 하여도 리비카들이 그의 영혼을 옮길 수는 없게 되리라.

그래서 희생을 겸한 자살이란 잘못된 선택이며, 진정한 의미의 죽음이라 예고한 것이다.

치지직!

페인은 모든 용암을 받아낸 후 육체가 붕괴되었다. 거기에 연달아 잿물을 뒤집어써서 영혼까지 녹아내리게 되었다.

치이이이…

곧이어 페인의 방독면까지 녹아, 그의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목도한 미르파스는 의구심을 품었다.

“네놈…. 그게 진짜 얼굴인가?”

흘러내린 것처럼 심하게 늘어진 턱, 너무 길고 뾰족한 이빨, 앙상하고 창백한 얼굴 가죽, 잔뜩 굶주린 눈빛.

“배… 고… 파아…”

그것은 가뭄의 생존자라는 악귀였다.

그리고 미르파스는 녀석이 페인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으며, 동시에 흑기사들이 미르파스에게 달려들었다.

쩌어어어엉!

미르파스는 온 사방에서 달려드는 흑기사들을 향해 새빨간 빛줄기를 뿜어대고 뱀 같은 꼬리를 휘두르고 앞다리를 놀려 녀석들을 짓밟았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터엉!

미르파스의 등딱지 위에 어느 흑기사가 착지한 것이다.

미르파스는 머리를 돌려 그 흑기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느 틈에…?”

흑기사는 변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폭발로 시야가 가려진 틈에.”

바로 그 녀석이 페인이었던 것이다.

그가 흑기사들을 괜히 구한 게 아니었다.

흑기사들의 검기로부터 만들어진 폭발이 미르파스의 시야를 가리고, 그 짧은 순간에 흑기사 한 마리를 가뭄의 생존자로 변이시키고, 페인은 죽은 흑기사 한 마리의 갑옷에 숨어 미르파스의 등딱지에 올라간 것이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 감히 네 따위가…”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맙네.”

사사사삿…!

페인의 로브 안쪽에서 새끼 거미들이 기어 나와 미르파스의 등딱지 위에 쏟아졌다.

그 새끼 거미들에게서 마크쉬의 냄새가 났다. 바다의 냄새가 났다. 심연의 냄새가 났다.

죽음의 냄새가 났다.

미르파스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녀석은 큰소리로 외쳤다.

“회귀자아아아아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