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뒤틀린 꿈 (1)
셰르카는 전이하여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다. 수평으로 절단되어서 흩어지고 있는 어둠 속을 가르며 애타게 페인을 찾았다.
하지만 페인이 그녀에게 오는 일은 없었으며, 그녀가 페인에게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문득 깨달아보니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만 것이다.
‘방향감각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 건지, 어디로 가고 있던 건지 모르겠다. 갓난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모든 방향에서 들려오고 있다. 분명히 뒤에 있었던 라후미야의 존재감이 저 앞에서 느껴진다.
라후미야가 자신을 앞지른 걸까.
아니면 전이하던 도중에 자기도 모르게 앞뒤 방향을 착각해버린 걸까.
일단 이리가 잘못되어서 자신의 감각까지 망가지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이리!”
이리는 대답이 없다.
더는 전이할 수 없다.
어디로 가는 건지도 모르는 채 전이할 수는 없다.
“이러지 말거라….”
대답이 없는 이리는 곧 꺼질 것처럼 옅은 호흡만을 간신히 내뱉고 있었다.
“….”
그때 품속에 있는 이리는 무섭다고 하지 않았다. 더는 아프다고 하지도 않았다.
“앞이 안 보인다….”
그녀는 눈을 뜨고 있지만 어둠 속에 갇히고 말았다. 광기의 산맥을 이루던 어둠이 흩어져서 시야가 트이고 있지만, 홀로 선 그녀는 완전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히고 말았다.
홀로 선 그녀는.
“아….”
이리의 심장이 뛰질 않는다.
심장소리를 찾아서 가슴에 이리를 꼭 껴안았다.
“아니야…. 아니야….”
심장소리를 원해서 이리를 꼭 껴안았다. 숨결을 원해서 이리에게 뺨을 붙였다. 그래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살덩이였다.
지금 품속에 안겨있는 것은 더는 소리를 내지도, 심장이 뛰지도, 호흡을 내뱉지도 않는 살덩이였다.
- 으애애앵!!
어떤 거대한 존재가 어둠을 가르며 그녀의 왼쪽으로 돌았다.
- 으애애애앵…
거대한 존재가 일어섰다. 흩어지던 어둠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뾰족하게 상승하여 새로운 가시 같은 산맥을 이루었다.
- 낳지 말았어야 했는데.
샤아아아아!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셰르카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 마지막까지 가족에게 상처를 입히네.
- 엄마가 이리를 낳지 않았다면,
- 너를 낳지 않았다면,
-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일도 없었겠어.
라후미야.
각자 다른 방향을 쳐다보고 있는 수십 개의 눈, 타원형의 버섯 같은 머리, 머리로부터 꼬리처럼 길게 이어진 앙상한 몸, 무한히 재생되며 시시각각 형태를 바꾸는 팔다리.
손 대신 달려있는 수술도구.
살을 갈라서 안에 있는 것을 잘라내 빼내기 위한 도구. 살을 벌려서 안에 있는 것을 긁어내 빼내기 위한 도구. 자르고 가르고 찢고 벌리고 집어서 긁어내는 도구들.
- 으애애애애앵…
그 도구들이 셰르카를 향하고 있었다.
- 파괴적이고 가혹한 세상입니다. 슬픔과 고통은 너무나 쉽게 새겨지고, 행복과 기쁨을 쟁취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세상입니다.
- 만남은 반드시 이별과 사별을 예고하고, 성장하면서도 사실은 노화에 한탄하며, 시련의 극복은 또 다른 시련만을 낳는 끔찍한 굴레입니다. 그렇게 타오르는 쳇바퀴 속에 갇혀서 뛰는 삶은 오로지 죽음이라는 영원한 해방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그런 세상과 삶을 겪다가 끝내 죽어서야 고요한 어둠 속에 안식을 취하니.
- 가장 좋은 건 낳지 않는 것이며, 태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 당신의 모친이 당신과 이리를 낳았으니…. 당신의 모친이 바로, 당신과 이리를 이런 세상에 내놓아 죽인 살인자입니다.
셰르카는 자신의 아득한 기억을 떠올렸다.
150년은 더 지난 일이었다.
* * *
이 소녀는 모친을 쏙 빼닮아 머리칼이 아주 검고 체구가 왜소한 편이다. 하지만 그런 소녀에게 머리칼이 정말 검다거나 키가 작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소녀는 자신을 굉장히 평범한 사람으로 여기며 자라났다.
가끔은 저택 앞의 꽃밭을 걷는 것이 즐거웠다. 꽃이 예쁜지는 모르겠지만 간혹 꽃에 붙은 벌레들을 보는 게 재밌었기 때문이다.
“얘도 꿀을 먹는 벌레야? 이건 뭐라고 하는 거야?”
“벌이라고 해. 저번에 알려줬잖니?”
“맞다!”
소녀는 벌을 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모친에게 어깨를 잡혀서 그럴 수 없었다.
“너보다 작지만 조심해야 해. 독침에 쏘일 수가 있어.”
“벌은 독침을 쏘면 자기가 죽는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도 쏠 수 있는 거야.”
“그냥 만져볼 뿐인데 왜 쏘는 거야? 목숨을 버리면서.”
“너는 만져볼 뿐이지만, 이 아이의 입장에서는 너의 손이 너무 거대하게 보이잖니.”
“그게 왜?”
“무서울 거야. 자기나 자기네 가족들을 해친다고 생각해서 쏠 수도 있다는 거지.”
“벌은 가족들이 엄청 많다고 했어.”
“잘 기억하고 있구나.”
소녀는 본 적 없는 벌들의 집을 상상했다. 꿀이 가득 발린 벽에 꽃으로 된 지붕을 얹고 옹기종기 수백 마리가 모여서 살아가지 않을까. 그리고 여왕벌은 뿌리로 만든 지팡이를 들고서 마법을 부려 꽃가루를 날릴 것이다.
소녀는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
“응?”
“세상엔 사람이 얼마나 많아?”
“이 대륙에만 수백만이 있단다. 바다 건너의 먼 나라까지 다 합친다면…. 수천만은 될 거야. 억 단위일지도 모르고.”
“직접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
“네 아빠는 세상을 넓게 보셨단다. 그러니까 엄마도 네 아빠한테 들은 걸 너한테 알려주고 있는 거야.”
“엄마가 아빠한테 흑마법을 가르쳐준 것처럼?”
“뭐…. 그렇지. 아빠 얼굴이랑 목소리는 기억나지?”
“기억나.”
“넌 태어나자마자 눈을 떴잖니.”
“그런데 아빠는 엄마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세 보였어. 그런데 항상 엄마한테 졌어.”
“져준 거란다. 사실은 아빠가 엄마보다 강해.”
“아빠가 더 강한데 왜 일부러 져?”
모친으로부터 좋은 감정이 느껴졌다.
“이 세상 무엇보다도 엄마랑 널 사랑하셨으니까.”
“아빠는 남자고 엄마는 여자라서?”
“꼭 그런 것만이 아니란다.”
“잘 모르겠어.”
“나중에 도시로 가면 알게 될 거야.”
그날부터 소녀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하지만 모친 이외에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건 소녀의 상상만큼 순수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동생을 임신한 모친은 배가 불러서 움직이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모친은 하루에 절반 이상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고, 조금 성장한 소녀는 모친을 대신하여 바깥을 돌아다녔다.
무기가 없어도 괜찮았다. 광인의 숲에서는 간혹 ‘악령’이라고 불리는 기괴한 짐승이 나왔지만 그것들은 흑마법을 부리는 소녀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영혼의 소리를 찾아가면 열매나 사냥감을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날도 바구니에 열매를 담아서 저택으로 옮기던 평범한 오후였다.
“쟤 뭐야?”
“저기 웬 여자애가 있는데?”
첫 만남이었다.
“악령 아니야?! 동공 봐봐!”
“갈색 눈이야! 사람이라고!”
“오오!”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에 칼과 몽둥이를 들고 있는 사람 세 명.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힘도 세 보인다. 목소리가 굵어서 저들의 성별이 남자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녀의 심장이 두근댔다.
‘남자….’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쩌면 저들 중에 누군가와 사랑을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들 중에 누군가는 부친이 모친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사랑해 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여기선 모친에게 배운 인사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처음 만난 상대를 존중하는 방법이고, 그렇게 먼저 상대를 존중하면 상대도 자신을 존중해 줄 거라고 배웠으니까.
소녀가 모친에게서 배운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그들은 소녀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와, 씨발…. 오늘 운수 좆 되네.”
“존나 예쁘장하게 생겼어. 아, 씨발 좆됐다. 존나 인형 같아. 못 참겠다. 씨발.”
“지랄하지 마 씨발놈아. 내가 먼저 할 거야.”
“닥쳐, 개새끼야! 내가 찾았어! 좆같은 새끼야!”
“뭐? 씨발?”
“아, 씨발놈아! 그리고 여기로 오자고 한 것도 나잖아! 존나 병신 같은 씹새끼야!”
그들의 언어는 뭔가 난해했다.
‘씨발?’
어떤 말을 한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처음, 중간, 끝에 여러 번 붙이는 공통된 단어가 있는데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소녀는 나름 흑마법의 언어를 떠올리며 그들을 이해하려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반드시 필요한 접두사, 접미사? 같은 걸까….’
그리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들의 난해한 몇 마디 사이에서 자신을 칭찬하는 단어가 분명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도 호의적인 것이다.
“저는 셰르카라고 해요!”
그러자 그들 중 한 사람이 의욕적으로 소녀에게 다가왔다.
그도 소녀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다.
“셰르카라고? 반가워.”
“어, 어어…! 안녕하세요!”
“나쁜 사람들 아니니까 너무 떨지 마.”
“나쁜 사람이 뭐예요?”
“뭐?”
“네?”
소녀의 상식이 그들에겐 비상식이었다.
그들의 상식이 소녀에겐 비상식이었다.
“……너 여기서 태어났어? 계속 여기서 산 거야?”
“아, 네! 가까운 곳에 저택이 있어요! 거기서 엄마랑 둘이 살고 있어요!”
뒤에 있는 두 명이 반응했다.
“야, 씨발, 엄마가 있대. 그것도 단둘이야. 씨발. 방해꾼도 없다고.”
“좆됐다. 씨발 광인의 숲 한복판에 존나 저택이 있다니, 어떻게 만든 거야?”
“뭔 상관이냐. 오늘부터 거기가 거점이 될 거라고. 병신아.”
“와! 너 이 씨발놈 존나 똑똑하네!”
똑똑하다는 말은 상대방의 지능을 칭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 사이의 분위기도 제법 괜찮아 보였다.
소녀는 신이 나서 말했다.
“엄마가 그랬는데 여긴 광인의 숲이고, 사람을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했거든요! 그래도 혹시나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엄마부터 부르라고 했어요!”
“그렇지! 그럼 어서 엄마를 불러올래?”
“그런데 엄마가 지금 동생을 임신해서 못 움직여요. …죄송해요.”
“아니야, 아니야! 죄송하긴! 우리가 찾아가면 되지! 너희들도 동의하지?”
“씨발, 설마 만삭이야?”
“존나 만삭만 아니면 돼.”
“이 새끼들 눈치가 없나…. 동의하냐고!”
그러자 뒤에 있던 두 명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우호적인 반응을 확인한 소녀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소녀는 그들을 저택으로 안내했다.
낮은 담벼락, 활짝 핀 꽃밭, 깨끗하게 정돈된 흙길.
광인의 숲 한복판에 있는 저택은 그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끼이이…
하지만 그 충격을 뛰어넘는 자극이 저택의 현관문 너머에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소녀는 모친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내가 사람들 데려왔어! 잘했지?”
소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데려온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어째서일까.
그들의 표정이 차갑게 바뀌어 있었다. 마치 자신이 실수를 했을 때 다그치던 모친의 표정처럼 말이다.
“…엄마?”
그리고 모친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하하.”
“당신들은 뭐죠?”
“뭐긴요.”
스릉!
그들은 칼과 몽둥이를 손에 쥐었다.
“아줌마 배가 너무 불러서 존나게 실망한 사람들이지.”
“저 좆만한 년 하나로 돌려먹어야겠네. 씨발.”
“뭐하냐, 씨발 후딱 끝내지 않고.”
소녀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첫 만남부터 친절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어째서 현관문을 넘어 실내로 들어오자마자 저렇게 돌변했는가. 마치 당장이라도 칼과 검을 휘두를 것만 같다.
“셰르카. 당장 방으로 들어가.”
“어, 엄마….”
“엄마 말 들어야지.”
그때 그 상황보다 모친의 표정이 무서웠던 소녀는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가긴 어딜 가?”
그들이 다가왔다.
모친은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애가 지켜보면 안 되잖아요.”
“뭐 인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당신들한테도 최소한의 인간성은 있을 거 아니에요?”
“미안한데 씨발 난 1초도 못 기다리겠거든?”
타다닷!
그들은 뛰었다. 작은 보폭으로 멀어지는 소녀의 머리채를 붙잡기 위해, 그런 소녀를 보호하려는 모친을 죽이기 위해.
하지만 그들은 손을 뻗지도 못했다. 무기를 한 번도 휘두를 수가 없었다.
“드라쉬르.”
샤아아!
모친의 그림자는 모친의 분노와 보호 의지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래서 그들이 뭘 해볼 틈새도 없었다.
쩌거거거걱!!!
모친의 그림자가 그들을 찢어발겼기 때문이다.
“아아아아악!!!”
사람의 몸속에 담겨있는 건 악령이나 짐승의 몸속에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선혈과 내장이 있었고, 노란 지방과 하얀 뼈가 있었다.
고통을 느끼고 신음하다가 죽는다는 것도 똑같았다. 표정으로부터 죽음의 공포까지 읽힌다.
“헉, 허커거거어억….”
“끄으으으으…”
“크르르!!”
쓰걱! 쓰걱! 쓰걱!
모친의 그림자는 그들을 더욱 자잘한 덩어리로 조각냈다.
“드라쉬르, 이제 그만해! 애 앞에서 너무 과하잖아!”
“크르르르르!”
모친의 그림자는 그들이 죽어도 멈추지 않았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시체를 유린하듯 짓밟고 팔다리를 뜯어서 벽에 던져버리는 것이다. 복부를 갈라서 붉은 것을 꺼내 으적으적 씹고는 뱉어버리는 것이다.
그때 소녀는 유혈이 낭자해진 현관문과 그 앞에 있는 그림자의 야수를 보며 울었다.
“엄마아아아…!”
여러 가지로 무서웠다. 자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 모친이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는 것, 평소에 짐승을 붙잡고 무거운 짐을 옮겨주던 착한 드라쉬르가 이 순간 긴 손톱을 드러낸 채 피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
살인의 현장이었다.
“셰르카.”
모친은 피로 물든 현관문을 등지고서 소녀를 안아주었다.
“엄마아아….”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저렇게 사람들을 썰어놓은 모친이지만 목소리가 너무 다정했다. 품속이 따뜻했다.
“키잉…….”
피를 뒤집어쓴 그림자가 모친의 뒤에서 낑낑댔다. 간혹 실수를 했을 때 미안함을 전하기 위해 내는 소리였다.
“이럴 수도 있다는 걸 알려줬어야 했는데….”
소녀는 한참을 울다가 잠들고 말았다.
밤이 되어서 깨어나 보니 침대 위였다.
곁에는 모친이 함께 있었다.
“엄마…. 왜 그런 거야…?”
아까 낮에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돌변한 거냐고. 그리고 어째서 그 사람들을 그렇게 죽일 수가 있던 거냐고.
“엄마랑 너를 해치려는 사람들이었어.”
“크르르…”
그림자는 물 묻은 손수건으로 모친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이게 그림자의 평소 모습이다. 긴 손톱을 빼들고 사람의 몸을 산 채로 찢어발기는 녀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 그 사람들이 왜 우릴 해치려고 했던 거야?”
모친은 소녀를 안아주었다.
“…마음이 죽은 사람들이었단다.”
소녀는 물었다.
“마음은 어디에 있는 거야?”
“귀를 기울여보렴.”
소녀는 모친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아까 그 사람들의 소리와는 다르지?”
“달라…. 많이 달라…. 근데 설명하긴 어려워.”
“알 수 있다면 된 거야.”
“마음이 여기에 있다는 거야?”
“그렇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면 배우지 못할 상식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소녀의 귀는 특별했고, 모친은 특별한 귀를 가진 딸을 위해 특별한 가르침을 준 것이다.
“이런 것도 미리 알려줬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 엄마도 엄마가 되어보는 게 처음이라.”
“아니야. 엄마랑 그림자는 날 사랑해서 그런 거잖아? 그래서 살인을 한 거잖아?”
“….”
“이제 듣는 방법을 알았으니까 괜찮아. 나쁜 사람이랑 좋은 사람.”
“너의 귀는 축복받은 거란다.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소리가 들린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소리는 계속해서 들린다. 때로는 무서운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큰 소리가 나거나 속삭이는 듯한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어떤 순간에는 한 가지 소리만 들리고 어떤 순간에는 여러 소리가 뒤섞이는 바람에 따로 걸러내서 들어야만 한다.
그래도 그것이 특별한 능력이며, 축복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남은 삶이 지옥처럼 변할 테니까.
그래서 모친은 소녀에게 가르친 것이며, 소녀는 모친의 말을 그대로 믿은 덕분에 광기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던 것이다.
“영혼의 소리를 듣는다는 건 천사님들도 할 수 없는 일이란다.”
“축복….”
소녀는 모친의 부푼 배를 만졌다.
“그런데 엄마.”
“응?”
“이 안에서 나오는 소리는 뭐야?”
“너의 동생 ‘이리’가 내는 소리지.”
“내 동생은 돼지야?”
“…그게 무슨 말이니?”
업보의 영향일까.
미지의 저주일까.
한없이 모진 운명이었다.
“퀴익, 퀴익. 이러는데. 돼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