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172화 (172/181)

34. 뒤틀린 꿈 (2)

셰르카는 모른다. 자신의 모친이 이리를 낳기까지 얼마나 고뇌했는지, 그녀가 잠든 사이에 몇 번이나 낙태를 시도하고 몇 번이나 자살을 고민했는지.

셰르카는 모른다. 자신의 모친이 드라쉬르의 그림자를 시켜 수술도구를 들게 했다는 사실을. 질을 벌려서 그 안에 있는 촉수 달린 태아를 몇 번이나 칼로 찌르고 집게로 잡아당겼다는 사실을.

- 퀴이익…!

셰르카는 모른다. 이리는 자신을 죽이려는 수술도구를 촉수로 부러뜨리고 밀어냈다는 사실을. 시위하듯 모친의 배를 촉수로 찼다는 사실을.

뱃속에서 아이의 팔다리가 열 개 이상 느껴지는 감각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 내 몸에서 나가! 제발!

- 퀴익…! 퀴익!

- 제발 부탁이야…. 셰르카를 위해서라도….

이리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날이 갈수록 더 강하게 저항했다.

- 드라쉬르…!

모친은 셰르카의 미래를 보호하고 싶었다.

- 크르르!

- 이 아이의 힘이 느껴져…! 이게 태어나면 셰르카를 해칠 거라고…!

- 크릉…

- 죽여야 해!

맨정신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일이었다. 수술도구로 그곳을 헤집고 가르고 찌르고 긁어내는 일련의 고문 같은 행위였다. 그러다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 자궁 속에 틀어박힌 촉수 덩어리와 싸우는 고통스러운 싸움이 셰르카가 모르게 이어졌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을 정도의 고통이었지만, 모성애가 그것을 이겨냈다. 모성애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 끝내 모친은 이해하고 말았다.

새벽이었다.

- 그렇게나…….

촉수가 달린 그것 또한 자신의 소중한 아이라는 사실을.

- 그렇게나…. 살고 싶은 거니…?

이리는 자궁 속에서 애타게 울었다. 살고 싶다며, 자신을 죽이지 말라며, 자신을 낳아달라며 울었다.

끝내 모친은 이리를 낳고 말았다.

이리는 덩치가 너무 컸다. 촉수가 너무 많았다.

정상적으로 낳을 수가 없어서, 이리가 자신의 배를 찢고 나오게 두었다.

- 퀴이이이이!

이리는 서럽게 울었다.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어미의 몸을 찢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아 울고 말았다.

- 괜찮아…. 괜찮아….

그녀는 자신의 복부 전체를 헤집은 존재를 다정하게 안아주고 사랑해 주었다. 그것 또한 모성애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 이리…. 셰르카는…. 너의 언니야…. 유일한 가족이니까….

- 퀴이이! 퀴이이이!

- 어떤 욕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언니를 해치는 일이 있어선 안 돼…. 알겠지?

- 퀴이이이이!

- 그리고 드라쉬르….

- 크르르르르…

- 피 좀 닦고…. 내 몸 좀 정리해줘…. 아이가 보기엔 좀…. 그러니…….

드라쉬르는 주변의 피를 닦고, 시신의 헤집어진 복부를 어두운 실로 꿰맸다.

이리는 온몸에 피를 묻힌 채, 어미의 죽은 몸 위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새벽에 큰 소리를 듣고서 그 방으로 들어온 셰르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너…. 네가….”

“퀴이익….”

“으아아아아아아!!!”

셰르카는 이리를 죽이려고 했다. 이리는 방어만 했다. 드라쉬르가 자꾸만 끼어들어 셰르카를 뜯어말렸다. 어렸던 셰르카는 영력을 다 써서 기절할 때까지 이리를 죽이려고 했다. 그러다 깨어나면 또 이리를 죽이려 했고, 그러다 이리가 도망쳐버리니 또 지쳤다.

그렇게 몇 번이나 죽이려고 하다가 깨달았다. 이상하게도 이리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계속 돼지처럼 울어대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리에게 적의가 없음을 깨닫고도 몇 번을 더 그렇게 싸우고 지치기를 반복했을까. 그때쯤 정신이 몇 번이나 무너져버린 셰르카는 무덤에 있는 모친의 시신을 꺼내서 가슴을 파헤치기까지 했다.

“여기에 마음이 있다며….”

모친의 가슴속에 있는 건 썩어가는 심장이었다.

“다시 들려줘…. 제발….”

그 심장에 귀를 붙여도 소리는 들리지 않으며, 힘껏 껴안아도 시신으로부터 따뜻한 체온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눈이 녹았다.

시신은 썩었다. 살점이 사라지고 앙상한 뼈대 위에 살가죽만 남았다가, 결국엔 그 살가죽조차 사라져서 유골이 되고 말았다.

그제야 셰르카는 내면에 있는 소중한 무언가를 포기할 수 있었다. 아니, 포기했다기보다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변화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시끄러운 소음 속에 안정기가 찾아왔고, 그제야 지하실에 있던 모친의 유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후 셰르카와 이리는 15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광인의 숲에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러면서 서로 싸우고, 원망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불신하고, 신뢰하고, 칭찬하고, 탓하고, 배우고, 변화하고, 이해했다.

너무 긴 세월이었다.

따라서 셰르카와 이리의 첫 만남에 생겼던 응어리가 풀린 건, 비교적 최근이었을 것이다.

* * *

라후미야는 셰르카에게 속삭였다.

- 당신의 모친이 당신과 이리를 낳았으니…. 당신의 모친이 바로, 당신과 이리를 이런 세상에 내놓아 죽인 살인자입니다.

셰르카는 죽은 이리를 땅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녀석을 불렀다.

“라후미야….”

- 나를 알고 있습니까?

“네놈이 한 짓이냐?”

- 당신의 모친이 한 짓입니다.

“네놈이구나.”

- …….

“전부.”

라후이먀는 조용히 어둠을 넘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흉악한 집게를 들이밀었다.

- 당신의 모친과 부친이 서로 만나지 않아,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네놈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

셰르카는 일어섰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라후미야를 정확하게 응시했다.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

- 하지만 행복보다 불행과 상실이 더 많은 삶이었습니다.

“행복한 순간이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있을 거다.”

- 하지만 그 끝엔 고통, 노화,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무엇보다, 이왕 태어났으니 죽기엔 아깝지 않으냐.”

샤아아…!

셰르카의 배후에서 드라쉬르의 그림자 세 마리가 일어섰다.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시체가 되어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지.”

- 어리석군요. 당신은 무슨 일을 하든 후회할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비관하며 죽는 것보단 살아서 뭐라도 해보는 게 낫다. 좆같이 생긴 놈아.”

카가강!!

드라쉬르의 그림자들이 라후미야의 집게를 손톱으로 조각 내버렸다.

“퀴헤에에엑…!”

그리고 드라쉬르의 그림자들이 저마다 목구멍에서 촉수를 뿜어낸 것이다. 그 촉수들이 누군가의 원한과 보호 의지를 담고 있었다.

끼기긱!!

라후미야는 수술도구들을 보냈지만 촉수들이 휘몰아쳐 수술도구들을 쳐내고 밀어냈다.

- 왜 더 강해졌습니까?

“포기했기 때문이다.”

콰아아아…!!

셰르카를 중심으로 흑염이 퍼져나갔다. 일대가 어둡게 타오르고 가시 같은 산맥을 이루었던 어둠이 흑염에 삼켜져 더 큰 흑염을 낳았다. 그렇게 어둠이 어둠을 태우는 듯한 광경이 주변에 펼쳐졌다.

- 뭘 포기했다는 겁니까?

“샤를 죽이기를 포기했다.”

그녀의 주변이 새로운 지옥으로 변하였다. 흑염이 드라쉬르의 그림자처럼 사지와 발톱을 갖추고 뛰어다녔다. 어둠을 삼킨 흑염이 활활 타오르다가 촉수처럼 변해서 라후미야의 팔들을 하나씩 붙잡았다.

“내가 죽일 놈은 샤가 아니라 네놈이었다. 라후미야.”

- …주변의 악을 끌어모아 영력으로 이용하고 있군요.

- 하지만 이젠 당신의 영혼에 붙으려는 악을 대신 받아줄 이리가 없습니다.

- 괜찮겠습니까?

- 그러다 악령이 될 텐데.

“네 걱정이나 해라.”

그녀는 텅 빈 눈으로 라후미야를 노려보았다.

“어차피 난 네놈에게 눈이 멀어버렸다.”

샤아아!!

흑염의 지옥이 되어버린 일대를 영혼의 벽이 격리하였다. 셰르카는 자신과 라후미야를 이 일대에 가둬버린 것이다.

- 사실, 나는 당신을 인질로 잡아 페인을 끌어내려고 했습니다.

- 그런데 페인이 당신을 버린 것 같습니다.

“보류한 것이다. 다른 더 좋은 판단이 있기 때문에.”

- 마지막 순간까지 불쌍하군요. 그건 희박한 승산을 위해 당신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그의 통찰력은 나보다 뛰어나다. 따라서 그의 판단이 옳다고 믿는다.”

라후미야는 새로운 팔과 수술도구를 만들어 영혼의 벽을 긁어보았다.

샤아아!

그런다고 뚫릴 벽이 아니었다.

- 성가신 능력이군요.

성가신 건 영혼의 벽뿐만이 아니었다.

상공에 있던 영혼의 먹구름들이 괴이한 소리를 냈다.

- 퀴이이이이!

갓난아기의 얼굴을 하고 있던 그것들이 눈코입으로부터 거대한 탯줄들을 늘어뜨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탯줄들이 라후미야를 향해 내려오는 것이다.

지상에서는 흑염으로 된 촉수들이 라후미야를 덮치고, 상공에서는 망자의 영혼으로 이루어진 탯줄들이 라후미야를 노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라후미야는 얼마든지 새로운 팔들을 꺼낼 수 있었다.

쓰걱쓰걱쓰걱!!

촉수를 지우고 탯줄을 베어버렸다. 뼈톱으로 대지를 갈라서 피를 뽑아내고 그 피 속에 손가락을 섞어 셰르카를 급습했다. 그녀의 몸이 손가락에 잡혀서 속박되자 라후미야는 작은 칼들을 보내 그녀를 난도질했다.

그녀의 머리, 팔, 손, 허벅지, 종아리, 허리 등 절단된 신체 부위들이 땅 위를 굴렀다.

샤아아!

그래도 그녀는 근처의 흑염 속에서 새로이 나타났다.

- 이런다고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셰르카.

“죽일 수 없다면 영원히 싸울 뿐이다.”

푸우우우!!

라후미야의 머리로부터 하얗게 끓는 점액이 뿜어져서 그녀와 그녀 주변의 땅을 녹여버렸다. 그리고 녹아버린 땅으로부터 피를 머금고 성장한 버섯 같은 것들이 피어나 칼날로 된 포자를 온 사방으로 퍼뜨려댔다.

그녀는 칼날로 된 포자에 긁혀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곧 드라쉬르의 그림자들이 날뛰며 그 버섯 같은 것들을 손톱으로 베어버렸고, 하얗게 오염된 땅에 흑염을 뿜어댔다.

그리고 흑염 속에서 또 셰르카가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흑마법을 대규모로 발동하면서도 그녀의 영력은 소진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 이유는 영혼의 벽으로 격리된 이 공간에서 악이 순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 자학적이군요.

그때 셰르카는 다소 변조된 목소리로 말했다.

“너와 나만의 지옥이다.”

* * *

- 들어라. 나의 충성스러운 심복들이여.

샤와 가장 가까운 악마들에게 명령이 떨어졌다.

- 천사들이 전 병력을 움직여 최후의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도다.

천계의 군대는 핏빛세계에 세운 10가지 진영에서 각자 벗어나 지옥의 피조물들을 공격하고 있다. 10명의 상위 천사와 10마리의 악마가 전장에서 싸우고 군대와 군단이 충돌하여 신화적인 전쟁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전쟁터란 1초에 수십 번씩 번개가 치고 빛이 폭발하며, 1시간에 몇 차례나 지형이 뒤바뀌고 수만의 존재들이 소멸하는 격렬한 혈투였다.

- 천사들은 라후미야의 투입을 계기로 내 위치를 찾아냈으니. 이러한 공세 속에 나를 격파할 별동대를 숨기려 하리라.

- 그리고 그 별동대란 존재감을 감추기 위해 극소수로 편성되리라.

겹겹이 이어진 어두운 산맥.

하늘을 향한 발톱처럼 뾰족한 형태를 이루었던 산맥이 더욱 기괴하게 뒤틀렸다. 이제는 도저히 산맥이라고 할 수 없는, 거꾸로 뒤집힌 문어 떼처럼 무수한 촉수의 대지로 바뀐 것이다.

그 어두운 촉수들 사이에서 머리가 세 개 달린 거대한 뱀이 솟아나 하늘로 올랐다.

- 레르드휘.

- 너는 하늘을 경계하라.

레르드휘는 영혼의 먹구름 속을 비집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먹구름들은 산 채로 살이 후벼 파이는 듯한 고통을 느껴서 뇌성 같은 비명을 질러댔다.

- 라후미야.

드넓은 촉수의 대지에 있는 어느 경계선에서 어둠이 흩어지고 있고, 흩어지는 어둠 속에 원기둥 형태로 솟아오른 영혼의 벽이 있었다.

그렇게 격리된 영혼의 벽 안에서 라후미야는 싸우고 있다.

- 누군가는 반드시 그녀를 구하려고 하리라. 하지만 당장 구하려고 하지는 않으니, 네가 그녀를 상대하고 있는 건 전력의 낭비로다.

- 그녀를 죽이기 어렵다면, 서둘러 타락시켜라.

그리고 언제나 테두리를 따라 붉은 광원을 내고 있는 칠흑 같은 달.

그런 달로부터 시작되는 붉은 광원이 샤의 명령에 따라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 브텔론. 나의 아들아.

- 적들의 빛이 멀리 닿지 못하게 하거라.

이 세계에서는 달이 곧 하늘을 밝히는 태양이었다. 그래서 칠흑 같은 달로부터 시작된 광원이 변하면 핏빛세계 전체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피와 같았던 공기의 색감이 더욱 붉게, 더욱 진하게 변해서 가시거리가 짧아졌다.

- 또한 전장에 투입하고 있는 악을 내게 보내라.

- 성역 대상… 악의 견제… 없으면… 적들의 성역… 급속… 확장 우려….

- 잠시나마 천사들의 성역이 확장되는 건 승패와 관련이 없다.

- 현재… 상위 천사들… 담당 악마… 10마리… 모두… 곤란….

- 난 내가 패배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철저하게 배제하리라.

- 10마리… 악마들은…?

- 그깟 부하들은 소모품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

- 패배 가능성… 변수는?

- 적들은 최후의 전력을 쏟아내 내 목을 치려고 한다. 따라서 나는 전장의 악을 흡수하여 적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몇 배로 강해지리라. …적들이 더 강해지기 전에.

- 강해지는 적… 페인… 변수의 중심…. 적들의 승산… 최후의 공격… 근거의 중심….

- 그것이 배제되면 내가 직접 이 세계의 천사들을 없애고 균열을 일으키리라.

- 그때 나는 천국에 있으리라.

- 천국을 지옥불로 태우고 다차원을 지배하게 되리라.

브텔론은 그 영광스러운 순간을 꿈꾸면서도 공포에 전율했다.

- 우리 모두의 아버지….

- 진정… 유일신(唯一神)이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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