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176화 (176/181)

35. 공허한 꿈 (1)

- 가르간이 하나라면 의미가 없을 겁니다. 반대로 가르간이 많다면 그만큼 샤의 공격이 분산되어서 제가 녀석에게 무사히 도달할 확률이 높아질 겁니다.

- 촉수의 대지로 향할 가르간은 총 30명이에요.

땅을 헤엄치는 소리가 어두운 공간에서 울린다.

나는 지금 올고호르휘의 뱃속에 있다.

- 그리고 이 일을 실행하기 전에, 가르간 하나를 먼저 데려와서 갑옷을 뜯어낼 거예요. 엑수스의 가르간이 그의 의지를 이어받아서 희생하겠다고 나섰거든요.

올고호르휘는 가르간의 갑옷 조각을 용의 비늘처럼 덧입은 채 핏빛세계의 지하를 가로지르고 있다.

- 말씀드렸잖아요. 가르간의 ‘갑옷’은 당신의 존재감을 숨겨줄 수 있다고.

가르간이 아니라 가르간의 갑옷이 핵심이었다.

꼭 가르간의 품에 숨어서 올 필요가 없던 것이다. 30명의 가르간 중에서 운 좋게 나를 품은 가르간이 촉수의 대지에 있는 난관을 극복하고, 브텔론의 눈까지 피해서 샤가 있는 곳에 도착하기를 바란다는 건 샤를 속이기 위한 포장이었다. 그 희박한 승산에 인류와 모든 차원의 미래를 건다고, 샤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엑수스의 가르간은 스스로를 희생하여 천계의 대장장이 라만에게 소재를 제공했다. 라만은 그 신성한 소재를 가공해서 내게 줬고, 나는 그것을 잿빛세계로 가져가 올고호르휘의 살에 붙였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지금의 올고호르휘다. 승리를 위한 하나의 조각이다.

- 어중간한 숫자로는 당신에게 도리어 힘만 주게 되는 꼴이죠. 그렇다고 다른 전장에 있는 악마나 대규모 피조물 군단을 빼내자니 천계의 군대를 상대로 버틸 수가 없어요.

- 결국 샤는 30명의 가르간을 전부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만 난관을 준비하겠죠. 이쪽이 걸고 있는 희박한 승산을 그렇게 밟아버리려고 하겠죠.

올고호르휘가 나를 완벽하게 숨겨서 이곳까지 데려다주었다.

쩌어어!

핏빛세계의 붉은 광원이 어두운 뱃속에 쏟아져 들어온다. 올고호르휘의 바깥으로 나와서 땅을 밟아보니, 짙은 핏빛의 공기가 가시거리를 줄이고 공기 너머에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지평선을 둘러싸고 있으며, 뼈와 촉수처럼 굳어진 칠흑 같은 구조물들이 나무를 대신하여 자라나 있는 널찍한 대지였다.

“키이이….”

가르간의 갑옷을 두르고 있는 올고호르휘가 괴롭게 신음했다.

「얘도 보내줄 때가 됐네.」

올고호르휘는 세계를 탐험한 후 전생에 자신이 저지른 일을 속죄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물로 태어난 이번 생에는 자신이 동반자를 대신하여 죽고 싶은 것이다.

녀석은 바로 그러한 죽음을 줄곧 원하고 있었으며, 녀석에겐 바로 그런 죽음이 곧 성불이었다.

“키이이…. 키이…….”

쿵!

흙 속에 몸의 대부분을 파묻고 있는 악귀.

녀석의 창자 같은 머리가 내 앞에서 힘없이 주저앉았다.

“올고호르휘.”

「신성한 소재를 살갗에 박고도 잘 버텨줬지.」

“나한테서 원하는 건 얻었냐?”

“….”

녀석은 죽음의 문턱에서 만족감을 느꼈다.

“그래….”

아라나크 때 이후로 악귀에게 정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올고호르휘에게도 정을 붙이지 않을 거라고 단단히 못을 박아두었다.

하지만 막상 이런 순간이 오면 그런 다짐도 의미가 없었다. 이렇게 가슴속이 먹먹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죽었어.」

올고호르휘는 옅은 빛을 내면서 모래가 되어 부서졌다. 그러다 끝내 가르간의 갑옷 조각만 남겨둔 채 사라지고 말았다.

성불이자 죽음이다. 속죄이자 안식이다.

“요즘에도 생각하고 있어.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하고.”

저 앞에서 어둠이 모여들고 있다. 그것이 어떤 형언할 수 없는 괴이한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동시에 핏빛세계 전체에서 오로지 저 형체를 향해 모이고 있는 사악한 힘이 느껴진다. 너무나 사악하고 거대해서 그야말로 압도적이고 초월적인 존재감이다.

“같은 생각이다.”

샤.

“네놈이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네놈의 안에 있는 악령이 어째서 네놈에게 협력하고 있는 걸까. 하고 말이다.”

“협력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냐?”

“악령은 근원이 사악한 존재이기 때문이지.”

「협력이 가능한 건 배웠기 때문이야. 난 지능도 없이 욕망에만 이끌리는 멍청한 악령이 아니라고.」

“학습이라…. 그래봤자 악령이다.”

「내 말이 들리나 보네.」

“인간과 살아간다고 해도 녀석의 사악한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바뀌지 않아도 돼.”

나는 도끼를 꺼내들었다.

그토록 죽이고자 했던 샤를 당당하게 마주한다.

“본성이 사악해도 끝까지 사악하게 굴지 않는다면, 그건 결국 사악한 놈이 아니라는 거야.”

“과연. 끝까지 그럴 수 있을까.”

마침내 샤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모습은 진작 드러내고 있었고 이제 형체가 완성되었다고 할까. 녀석을 이렇게 보고 있으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천계의 대장장이 라만이 했던 경고다.

- 놈의 실체를 직면하게 되었을 때 두렵지 않을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네.

만악의 근원, 지옥 그 자체, 태초부터 존재했던 악마, 모든 악마들의 머리, 차원에 균열을 일으켜 인과율을 망치고 오늘날의 비정상적인 세계를 만들어낸 원인.

녀석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 막연하게 상상했던 추상적인 형태가 있지만 전부 허상이었다. 지금 샤가 보여주고 있는 형태는 상상을 넘어섰다. 심지어 저것이 샤의 실체인지, 아니면 샤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일시적인 형태에 불과한 것인지 우리로선 알 수 없다.

오만, 분노, 음욕, 탐욕, 나태 등 천계에서 말하는 대죄목만으로도 표현이 부족하다. 혐오, 탐식, 종말, 재앙, 멸망, 질병, 재해, 기아, 거짓말 등 대죄목이 아닌 죄악이나 부정한 일들도 저절로 떠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알고 있던 악마의 상징들이 전부 녀석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깨닫는 것 이상으로 끔찍한 진실이 머릿속에 떠다니는 짙은 안개처럼 두려움을 키우려고 한다.

위를 향한 기이한 뿔 두 개, 아래를 향한 기이한 뿔 두 개, 아래를 향한 뿔 하나는 뾰족한 턱 같기도 하고 수염 같기도 하다. 그렇게 다섯 개의 뿔이 펼쳐진 머리는 역오망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위쪽으로 뻗은 양쪽 뿔에는 감염, 질병, 고통에 노출된 사람처럼 충혈된 눈이 여섯 개가 달려있다. 그 눈과 눈 사이를 잇는 붉은 선은 피눈물이 흐르는 듯하며, 그 붉은 선 두 개가 아래쪽으로 가서는 서로 꼬여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나선형을 이루고 있다.

양쪽 뿔 바깥으로 뻗은 양손은 기형적이게도 손가락이 세 개이며, 손톱은 좀 전에 누군가를 헐뜯은 것처럼 검붉은 피로 물들어있다. 그런 손가락이 눈과 같이 총 여섯 개다.

머리 뒤에는 어두운 살점과 뼈로 뒤엉킨 듯한 육체가 있다. 그 육체란 산양의 뿔, 메뚜기의 다리, 날개, 무언가를 움켜쥔 손, 하염없이 뻗은 손, 빨판이 달린 촉수, 앙상한 척추, 뾰족한 귀, 짧은 뿔, 휘어진 뿔, 이름 모를 벌레의 다리, 뱀의 머리, 뱀의 혀, 분노하는 자의 얼굴, 절망하는 자의 얼굴, 슬퍼하는 자의 얼굴, 피눈물, 말라비틀어진 팔, 파리의 불결한 눈, 무언가의 심장, 핏줄 따위가 만인의 악몽이 뒤엉킨 것처럼 되어있었다.

녀석의 크기는 카프하니드, 델펜토르, 론 등 덩치가 있었던 크라켄들과 비슷하게 거대하다. 그렇게 거대한 몸으로 날개도 없이 허공에 떠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잘 보아라. 네놈 인생의 마지막 존재다.”

마주하여도, 이렇게 직접 두 눈으로 보아도 거시적인 존재 같아서 현실감이 없다. 하지만 일단 눈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미시적으로 접근하게 되는데, 해석하게 되는데, 그렇게 녀석을 이루고 있는 원초적인 것들을 하나씩 이해할 때마다 좋지 않은 느낌이 몸속 혈관을 따라 퍼져나가는 것만 같다.

「탐지 7계.」

「심안(心眼).」

샤의 몸속과 샤의 주변에 있는 영력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속화 7계.’

‘가속, 광속, 광폭화(狂暴化).’

뛰는 소리조차 없이 뛰었다. 한 발자국을 옮기고 다음 발자국을 옮기기도 전에 도약하여 샤에게 달려들었다. 광폭화로 인해 온몸에서 힘이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그러나 정지된 시간 속에서 샤의 시선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뭔가를 시도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강렬한 직감이 있었다.

따라서 녀석을 상대로 탐색전 따위는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상대해야 한다.

‘아무것도 아끼지 마!’

「탐지 8계!」

「밀청(密聽)!」

밀청을 발동하여 녀석의 주문을 들을 것이다.

- 사안(邪眼).

그때 손가락 끝이 돌로 변해서 움직이질 않았다.

촤아아…

나는 돌로 변한 손가락과 아직 돌로 변하지 않은 멀쩡한 부분을 경계선으로 정해 방혈했다. 피와 살이 터져나가면서 돌로 변한 손가락 열 개가 공중에 띄워졌다. 동시에 나는 흩뿌려진 피를 조종하여 방금 놓친 도끼를 핏물로 휘감아 샤에게 내던졌다. 그 순간에도 악령은 도끼에 가속, 광속, 광폭화를 별도로 걸고 있었다.

도끼는 정지된 시간 속에서조차 거의 전이라도 한 것처럼 날아갔다. 고속화 관련 주술이 중첩된 덕분이었다.

…쩌억!

그 도끼가 샤의 얼굴에 한번 처박히고는 손잡이와 연결된 핏물에 의해 떨어져 나와서, 손가락이 수복된 내 손으로 돌아왔다.

「매혈!」

도끼로 만든 생채기로부터 샤의 검붉은 피를 뽑아내 나의 영력으로 흡수했다. 그러고 있으니 샤의 반격이 이어졌다.

- 노충형(露蟲刑).

샤의 머리 뒤쪽에 배경처럼 있는 뒤엉킨 육체. 그중에서 머리가 달린 것들이 기괴한 각도로 턱을 벌리자 새까맣게 무리를 지은 파리떼가 튀어나왔다.

부우우웅!!!

나는 공중에서 파리떼에게 덮쳐졌다. 녀석들의 덩치가 내 주먹만 한데 머릿수는 수십만을 족히 넘는 것만 같다.

퍼퍼퍼퍼퍽!

아래로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가 없다. 파리들의 육탄공세에 뼈가 으스러지고 내장이 파열되었다.

‘제물방류.’

촤아악!

파리떼를 모조리 방혈했다. 방혈해서 나온 더러운 혈액을 조종했다. 그걸로 파리떼를 덮쳐서 방혈하고 또 혈액을 뽑아내 더 많은 파리들을 죽였다.

「팔에 붙었어!」

팔에 커다란 구더기들이 들끓고 있었다. 녀석들이 내 옷 틈새로 파고들고 있다.

‘열폭풍.’

샤와 내 사이에 순간적으로 작은 태양 같은 것이 생성되었고, 그것이 눈부신 섬광과 함께 뜨겁게 폭발하여 일대의 지면과 공기를 불태웠다.

나는 화염으로 이루어진 폭풍 속에서 무사히 착지할 수 있었다. 열폭풍은 발화 5계로부터 파생된 주술이고, 나는 저주 저항 8계가 있기 때문에 열폭풍에 휩쓸려도 무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항 능력이 있는 건 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열폭풍으로 죽인 것은 결국 파리떼뿐이었다.

- 신체관통형(身體貫通刑).

듣고 나서 반응하면 늦는다. 방금처럼 당할 것이다. 나는 밀청으로 녀석의 주문을 듣자마자 직감적으로 대처했다. 지면에 있는 혈액을 끌어올려서 피로 된 방패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좀 전의 열폭풍 때문에 이 근방의 혈액이 전부 사라져버렸다. 짓무른 땅이 건조하게 태워진 상태다.

그렇게 단 한 번. 짧은 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샤를 상대로 단지 ‘생각’을 한 번 번복했을 뿐이지만, 그 대가는 살벌했다.

푸푸푸푹!

땅밑에서 검은 광물로 된 창이 무수하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발바닥과 허벅지를 찔리고서 가까스로 하나의 창 위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자 보였다. 이 주변 대지가 전부 창으로 뒤덮여있었다. 창으로 된 새로운 숲이라도 생긴 것처럼 말이다.

나는 창에 찔린 상처를 곧바로 수복한 후 발밑의 땅을 뒤집어서 착지했다.

- 괴사(壞死).

주문의 뜻은 알아차렸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로 발동되는 것인지는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녀석으로부터 뭔가 접근하는 게 있는지 집중했다.

“…!”

몸속에 미지의 내상이 퍼지고 있었다. 녀석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니라 내 몸속에서 시작되는 공격이었다.

“계속 강해져왔으니 쉽게 죽을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괴사된 신체를 수복하는 속도보다, 신체가 괴사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웬만한 상위 천사보다도 강해졌군. 영력도, 실력도.”

“카하악…!!”

“그렇게 앓다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데. 당장이라도 네놈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로 그렇게 되진 않겠지.”

아니, 녀석은 당장이라도 날 죽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 내가 녀석의 능력을 잘 모르는 것처럼 녀석도 내 능력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 만약 놈이 두렵거든, 놈도 자네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명심하게.

내가 녀석의 전략을 모르는 것처럼 녀석도 내가 무슨 전략을 세우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그래서 당장 날 죽여서 승리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두려운, 혹은 두려울 수 있는 미지의 것으로 보고 있다.

“무턱대고 달려들자니 난감하군. 무력하게 피를 흘리고 있는 것 같지만, 네놈이라면 무슨 꿍꿍이가 있을 테니.”

팔다리가 떨린다. 살이 썩어서 옷 밖으로 역겨운 핏물이 나온다. 왼쪽 눈알이 빠져서 시야의 반쪽이 사라졌다. 방독면 안에서 굴러다니는 눈알의 감촉이 두렵다. 몸 상태가 너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허억…! 허으윽….”

“페인. 그러다 정말로 죽는다.”

샤의 뒤틀린 육체로부터 촉수들이 쇄도하여 내 주변에 내리꽂혔다. 촉수에 달려 있는 빨판들이 먹이를 탐하는 괴물처럼 뻐끔댔다.

“준비한 것을 지금 꺼내라.”

“샤아아아…!!!”

“뭘 숨기고 있는 거냐!”

샤의 촉수들이 사악한 영혼을 회전하는 칼날처럼 두르고서 내게 닥쳐왔다.

「강화했어!!!」

나는 녀석의 촉수들을 손짓 한 번으로 터뜨려버렸다. 내 몸속에서 썩고 있는 피를 모조리 뽑아내 버린 후 녀석의 촉수로부터 터져 나온 혈액을 빨아들여 그것에 담긴 악과 영력을 흡수하였다.

* * *

「…영적 저항 7계.」

「숫자, 다차원, 존재 추적, 밤눈, 광란의 집단부화, 타락, 진화.」

아직까진 9계에 도달한 능력이 없다. 그 이유는 어떤 계를 더 높은 계로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악이 너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방혈 8계를 9계로 강화하기 위해…

…강해진 만큼, 강해지기 더 어려워졌다.

「9계까지 도달하면 그 능력의 신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경지겠지.」

지옥의 피조물이나 악마의 하수인 따위를 사냥하는 것으론 9계까지 강화를 기대도 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미크쉬 같은 진짜 악마를 한 마리 해치우는 것으로도 부족하게 되었다.

지금부터는 여럿 악마들을 해치워야만 어떤 능력이 9계에 도달하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

* * *

「강화했어!!!」

「방혈 9계야!」

촤악! 촤아악!

내 등 뒤로 나의 촉수들이 돌출되었다.

육체가 뒤틀린 게 아니다. 광기에 집어삼켜진 것도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다.

‘혈해(血海)….’

창이 빼곡하게 채워진 대지에 피가 차올랐다. 좀 전의 열폭풍으로 인해 이곳의 대지는 피가 말랐지만, 피가 마른 환경임에도 혈해는 멀쩡하게 발동하여 내 종아리까지 피에 잠기도록 방대한 혈액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환경이 급변한 것이다.

“페인! 내 부하들의 힘까지 빼앗았구나!”

「샤가 영력을 끌어모으고 있어! 뭔가를 발동하려는 것 같아!」

“와라…….”

지금부터 이 일대의 혈액을 전부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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