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임팩트 - 장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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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 임팩트 1권 1화
백도현
-오늘 새벽, 충북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일어나 환자들과 병원 관계자들이 대피하는 도중, 입원 환자들이 집단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대부분은 경찰의 수색 과정 중에 발견되어 다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두 명은 아직 행방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도현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귓등으로 흘려보내며 연식이 오래된 중고차를 세웠다.
병원 3층과 4층 사이의 외벽은 시커멓게 그슬리고 유리창 일부는 파손된 채 아직 교체가 되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오셨죠?”
뭔가 어수선한 병원의 분위기를 훑으며 도현은 원무과 직원에게 느릿하게 대답했다.
“백남식 환자 보호자입니다. 면회 왔습니다.”
넓은 면회실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며 노트에 몇 컷의 만화를 그리던 그는 건장한 남성 간호사와 함께 등장한 아버지의 모습에 손길을 멈추고, 노트를 가방 안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왔냐.”
정상인과 다를 바 없이 친근한 미소를 보낸 그의 아버지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신병원에 소속된 건장한 남성 간호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우람한 체격의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 봐도 당당했다.
아버지의 골격을 그대로 이어받아서인지 20대 중반인 도현도 키가 크고 뼈대가 굵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호리호리해 보였다.
간호사가 뒤로 물러나고 둘만 남자 도현이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별일 없으셨죠?”
“그럼. 무슨 일이 있으려고.”
아들과 달리 백남식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빠르게 답했다.
“새벽에 화재가 있었다고 해서요.”
“잠자다 놀라기는 했다. 그 미친놈들이 라이터를 어디서 구해서는……. 헛! 이런, 젠장.”
백남식은 얼른 주위를 살피는 시늉을 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 들은 얘기는 어디 가서 하면 안 된다. 알았지? 라이터 얘기는 나밖에 모르거든.”
“알았어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라니. 자네 제정신인가? 친구보고 아버지라니.”
두 눈을 부릅뜨며 호통을 치는 아버지의 모습에 도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몇 해 전 중국에서 머리를 크게 다친 이후 이해 못 할 행동을 때때로 했고, 결국 주위에 피해를 줘선 안 된다며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아버지가 정신병원에 있다는 게 못 견디게 괴로웠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심정도 이해가 되었다.
문득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의 목을 힘껏 누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면, 자신 역시 아버지와 다름없는 선택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면회를 왔을 때 온전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대해 준 날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면회를 가는 날이면 부디 오늘은 아버지와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돌아가신 어머니께 수없이 기도를 드렸지만, 아직 어머니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아버지의 친구 노릇을 대신해 주며 묵묵히 이런저런 말을 들어 주던 그는 깊은 시선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려고?”
“일이 있어서요.”
“아, 맞다. 자네 만화 그린다고 했지?”
만화는 취미였지만, 그는 빙그레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와 어렸을 때 함께 만화책을 보며 깔깔거리던 때가 떠올랐다.
서울 변두리에서 작은 검술 도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관원들보다 훨씬 혹독하게 그를 가르쳤는데, 어느 날인가 어린 그를 옆에 앉혀 놓고 만화책을 쓱 내밀었다. 어린 그는 흥미진진한 만화책의 내용에 푹 빠져, 조금 전까지 아버지의 엄한 교육에 입이 한 자나 나왔던 게 그만 쏙 들어가 버렸다.
“너도 이렇게 될 수 있어.”
“아빠, 이건 만화잖아요. 어떻게 칼로 바위를 잘라요.”
만화책을 넘기며 대꾸하는 그에게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녀석아,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꿈을 가져 봐. 너라면 가능해.”
“어떡해요?”
“하루에 천 번씩 검을 휘두르고, 자기 전 아랫배에 기운을 모으는 호흡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돼.”
“그러면 정말 그렇게 돼요?”
“그럼! 아빠도 못 했고, 할아버지도 못 했고, 그 할아버지에 할아버지도 못 했지만, 너라면 가능해!”
“왜요?”
“넌 내 아들이니까, 하하하!”
옛날 생각을 잠시 하던 도현은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이미 그려진 몇 컷의 만화를 탁자 위에 펼쳐서 보여 줬다.
상체를 숙여 흥미롭게 노트를 내려다보던 백남식은 문득 아들에게 눈짓을 보내 가까이 오게 했다.
“아들아.”
“아버지!”
도현은 거의 1년 만에 들어 보는 아버지의 따뜻한 음성에 코가 찡해졌다.
“얼굴이 말랐다.”
“그런가요?”
부자는 잠시 눈빛으로 무언의 대화를 나눈 뒤,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너는 왜 웃는 거냐?”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시원하게 웃겠어요. 아버지 여기 모시고 제가 마음이 편했겠습니까? 하하하!”
미친 듯이 웃는 그들의 모습을 한쪽에 서서 지켜보던 남자 간호사가 시큰둥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면회실에 설치된 TV로 시선을 돌렸다.
“미안하다, 아들아.”
“아니에요, 아버지.”
“도장은?”
“잘되고 있어요.”
“정말이냐?”
도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작은 도장을 그가 3년 전부터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사실은 파산 직전이었다.
“거짓말 마라, 인석아. 어려우면 그만 정리해. 미련 갖지 말고.”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버지를 보며 도현은 미소를 보였다.
“잘된다니까요.”
“나 때문이냐?”
“네에! 아버지 때문입니다. 아버지 돌아오실 때까지 제가 어떡하든 그곳을 지킬 겁니다. 그러니까, 빨리 나으셔서 돌아오세요.”
백남식은 아들의 꼭 다문 입매를 보며 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어려서부터 혹독하게 수련시키며 때때로 만화책 속의 주인공처럼 될 수 있다고 목표 아닌 목표를 쥐여 줬다.
훌륭한 검도인으로 키우려는 욕심도 있었지만 사실 어려서 어미를 잃은 아들이 삐뚤어질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그 기저에 깔려 있었다.
분명 지나친 면이 많았고 때론 가혹했지만, 아들은 묵묵히 따라왔다.
고맙고 미안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1년 뒤에 봬요.”
1년 뒤라도 꼭 지금처럼 제정신으로 돌아오라는 아들의 소망 어린 말에 백남식은 도현과 어딘가 닮은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그래야지.”
딸깍.
문 옆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자 어둠 속에 잠겨 있던 40평 남짓의 지하 검술 도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선 시대 유명한 검객의 검술을 복원해 가르치는 실전 검술 도장이라고 소개하며 도장을 개관한 지 20여 년.
아이들은 힘들어서 지쳐 나가떨어지고, 성인들도 한 달을 못 버티고 욕을 하며 떠나갔던 악명 높은 검술 도장.
그것이 아버지의 도장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별반 다를 바 없이 아버지의 방식대로 운영하고 있었다.
문제는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남겨 주신 제법 되는 유산으로 제 살을 깎으며 버티고 있었다는 점이었고, 그는 그럴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관원들을 가르치는 데 여유를 둘까도 싶었지만, 지난 20여 년간 아버지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지킨 엄한 수련 방식을 버리는 건 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무시하는 처사 같아서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도현은 도장 안을 새삼스럽게 쭉 훑어보다가 안쪽에 있는 관장실로 들어가 검정색 도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도장 한가운데에 정좌했다.
지그시 두 눈을 내리감고 잡스러운 생각을 정리한 그는 옆에 놔둔 진검을 들고 소리 없이 일어났다.
검집을 잡은 채 미동도 없이 전면을 주시하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을 뽑아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번개처럼 검을 날렸다.
일보성검一步成劍.
한 걸음 속에 검을 이룬다.
쿵!
그의 맨 발바닥이 도장 바닥에 깊은 울림을 주는 순간 눈이 따라갈 수 없을 빠르기의 쾌검이 서에서 동으로 번쩍였다.
쿵!
태산이 움직이듯 장중하고 무거워 보이는 발걸음 뒤에 다시 벼락같은 검이 뒤따랐다.
적의 기세를 호랑이 걸음으로 날려 버린 후, 적의 빈틈에 가차 없이 칼을 날린다.
그의 기세는 점점 커져만 갔고, 도장 안은 그가 휘두르는 날이 선 진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기로 인해 서늘함이 가득했다.
도현의 검술 도장에서 배우는 검술은 이 호검술이었다.
호랑이의 위맹한 몸놀림을 하체의 움직임으로 대신하고, 짐승의 목을 한 번에 물어 생명줄을 끊어 버리듯 공격적인 검술.
워낙 패도적인 검술이라서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검술 시전자가 오히려 다칠 수도 있는 검술이었고, 그 기본이 되는 보법부터 아주 철저한 수련이 요구됐다.
때문에 검술 도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처음 몇 달간은 보법만 죽어라 연습해야 했는데, 대부분 이 과정에서 지루하고 힘들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나갔다.
스르릉.
검을 칼집에 넣는 맑은 소리와 함께 광풍처럼 몰아치던 검의 기운들이 사라졌다.
가볍게 숨을 돌린 그는 진검을 관장실에 놔두고 나와 그가 흘린 땀으로 지저분해진 도장 안을 밀걸레로 깨끗이 닦아 냈다. 그리고 바닥에 다시 정좌한 채 조용히 몇 안 되는 관원들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루에 단 한 번 있는 저녁 일곱 시 반의 교육 시간.
그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워낙 배우는 사람이 없다 보니 결국 저녁 타임이 관원들과 얼굴을 마주 하는 유일한 시간이 돼 버렸다.
40대 남성 두 명과 대학생 한 명.
그가 현재 가르치는 전부였다.
묵묵히 사람들을 기다리던 도현은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에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조용히 일어났다.
배가 조금 나온 40대 초반의 사내는 도현이 정중하게 자신을 보며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해 오자 어색한 표정으로 마주 인사를 했다.
교육 시간에는 얼음덩이가 따로 없을 정도로 엄하게 가르치지만, 교육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철저하게 예의를 차리고 존중해 주었다. 교단에 있는 그가 도현에게 감탄하며 배웠으면 하는 덕목 중 하나였다. 입맛을 다시며 그는 도현 앞으로 다가갔다.
“저어, 관장님.”
“네, 박 선생님.”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달랑 세 명 있는 검술 도장에 그만둔다는 소리를 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박 선생이 뒷말을 잇지 못하자 대충 사정을 짐작한 도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호검술, 배우는 게 쉽지 않지요?”
“아, 그게 그렇더라고요, 하하하.”
살짝 붉어진 얼굴로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이 상황을 넘기려 했다.
동네를 오가며 힐긋힐긋 시선이 갔던, 이름도 생소한 호검술 도장에 큰마음 먹고 들어왔지만 검술은커녕 두 달이 되도록 기초 체력과 걷는 법을 몸이 부서지도록 집중적으로 시키니 버틸 수가 없었다.
모래주머니를 허리와 양 허벅지, 종아리에 매달고 마보 자세도 취하고, 흰색으로 칠해진 두 점 사이를 반복으로 왔다 갔다 하고.
그렇게 한 시간 교육을 받고 집에 가면 녹초가 되어서 그대로 퍼지기 일쑤여서, 그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특수부대 애들도 이렇게는 훈련 안 할 것 같았다.
“관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별말씀을요. 건강하십시오.”
도현은 박 선생에게 예의를 차리고 그가 편안하게 도장을 떠나게 해 주었다.
그 역시 일반인들이 이 고된 수련을 거쳐 호검술을 배우는 게 녹록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만 배우겠다는 사람에게 쓸데없이 구구절절 긴말할 필요도 없었다.
안타까운 것은 박 선생이 지난 두 달간 잘 버티고 버텨서, 걸음에 제대로 된 힘이 막 실릴 타이밍에 그만둔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이제 두 명 남았나?’
그는 벽시계를 쳐다봤다.
어느덧 일곱 시 반이 다 되었다.
“아니, 사람이 그렇게 가나! 끝까지 함께하자고 했으면서!”
투덜대는 소리와 함께 도장 안으로 불쑥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오는 사람은 박 선생의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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