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3화 (3/575)

[3] 디 임팩트 1권 3화

“글쎄.”

“같이 가자. 혼자 가기 영 꺼림칙해.”

“작년에 너랑 같이 갔다가 그분이 많이 불쾌해하셨잖아. 왜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을 데리고 왔냐고.”

“이번엔 전화하면 되지. 같이 가자.”

용주가 볼일이 있어 저녁 늦게 서울에서 출발한 그들은 깜깜한 밤에 경기도 가평에 도착했다.

집 앞 자갈이 깔린 공터에 도현이 차를 세웠지만 조수석에 타고 있던 용주는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불 켜진 삼촌의 집을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시골 마을에서 조금 외떨어지고 산을 배경으로 하는 용주의 삼촌 조일민의 집은 단층에 지하실이 넓었고, 집 뒤편에는 기름으로 돌아가는 비상 발전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도현아, 초고대 문명의 진보된 기술들을 복원하겠다니, 그게 말이나 되냐?”

“말이 되든 안 되든 그분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존중해 줘야지. 안 내릴 거야?”

“가만있어 봐. 왠지 느낌이 싸해. 내가 올 때마다 짖어 대던 똥개도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그의 불안한 시선은 마당 한편에 있는 개집에 가 있었다.

사람 방문이 뜸해서인지 용주가 올 때면 미친 듯이 달려들던 개였는데, 웬일인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50대 중반인 용주의 삼촌은 일류대를 나와 국비로 미국 유학까지 갔다 온 수재다.

대기업 연구소에 수석 연구원으로 몸담았다가 10여 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에서 초고대 문명과 관련된 연구를 이어 오고 있었다.

용주는 멀쩡한 연구직도 내던지고 이런 곳에서 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실험만 하는 삼촌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늘 삼촌의 잘못된 실험 대상이 되었다가 전기 감전으로 쇼크사를 당하거나 화재로 인해 지하실을 못 빠져나오거나 하는 등의 불길한 사고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침에 받은 삼촌의 극도로 흥분된 목소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삼촌 기다리시겠다. 들어가자.”

도현은 용주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먼저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조일민의 두 눈동자는 붉은 물감이라도 칠한 듯 시뻘겠다.

“삼촌, 피곤해 보이시네요.”

“괜찮다. 어서 따라와.”

조일민은 둘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집 지하 연구실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적지 않은 키에 빼빼 마른 조일민의 등을 보며 도현은 그가 무척 흥분해 있는 상태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천장이 높은 15평 남짓한 지하 연구실에는 각종 전자 장비와 알 수 없는 기계장치들이 가득했고, 컴퓨터와 연결된 모니터들도 보였다.

언뜻 보면 무슨 대단한 전자 장비들 같아 보였지만, 실은 능력 좋은 조일민이 고장 나거나 버려진 중고 전자 장비들, 부품들을 모아서 새롭게 변신시킨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조일민은 꺼 놨던 기계장치들을 작동시키며 빠르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가 초고대 문명이 석벽에 남겨 놓았던 설계도를 완벽히 해석하고 복원해서 차원 이동 장치를 만들었다. 그 영광스러운 첫 실험에 임하게 된 너희들은 정말 행운아야.”

용주는 인상을 썼지만, 도현은 미소를 지었다.

허황된 말이었지만 포기할 줄 모르는 초고대 문명 연구가의 집념 어린 마음이, 바위를 칼로 절단 내겠다는 자신과 비교가 됐다.

여유를 가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조일민의 실험에 응하려던 도현과는 달리 용주는 펄쩍 뛰었다.

“삼촌, 차원 이동 장치요!”

“그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지 않냐? 내가 그렇게 만들어 주마. 다 됐다. 저기 들어가.”

조일민은 벽에 세워진 관처럼 생긴 네모난 장치를 가리켰다.

두 사람이 들어가면 꼼짝 못할 정도로 비좁아 보이는 그 장치에는 수십여 개의 복잡해 보이는 선들이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 걱정스러운 얼굴 할 필요 없어. 성공한다면 아주 잠깐 동안만 다른 차원의 세상을 구경하고 오는 거니까. 다녀와서 얼마나 멋진 곳인지 말해 다오. 알겠지?”

“삼촌이 가시면 되잖아요.”

“그러고 싶어도 지금은 안 돼. 이 장치들을 한번 발동시키려면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되니까.”

“그러다 저 관처럼 생긴 장치에 문제라도 발생해, 폭발하거나 불이 붙으면요.”

“지금 내 실력을 의심하는 거냐?”

조일민이 언성을 높이자 용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옆에 말없이 서 있는 도현에게 시선을 두었다.

“삼촌, 저만 실험에 응할게요. 굳이 친구까지 할 필요 없잖아요.”

혹시나 문제가 발생할까 봐 용주는 걱정이 되었다.

“아닙니다. 저도 같이할게요.”

둘이 벽에 세워진 관처럼 생긴 상자 안에 들어가자 조일민은 신중한 얼굴로 장치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답답하다.”

좁고 밀폐된 공간에 도현과 함께 서 있던 용주는 삼촌의 분주한 손길을 투명한 문을 통해 지켜보며 투덜댔다.

“금방 끝나겠지. 조금만 참아.”

“다시는 내가 여기 안 온다.”

“작년에도 그런 말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진짜야. 시간이 갈수록 삼촌이 이런 일에 더 빠져 드는 것 같아. 차원 이동기라니. 정말 내가, 아휴…….”

도현은 가볍게 웃으며 두 눈을 감았다. 어차피 이대로 잠시 서 있다 그냥 상자 밖으로 걸어 나갈 게 분명했다. 그리고 작년처럼 용주의 삼촌은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수고했다고 한마디 말을 하고.

그래도 그는 속으로 진정을 담아 조일민의 이 실험이 성공했으면 했다.

‘나도 칼로 바위를 자르고.’

흐뭇한 생각을 하던 그는 갑작스러운 상자의 진동에 번뜩 두 눈을 떴다.

“어, 어, 이거 뭐냐? 왜 이래!”

놀란 용주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투명한 플라스틱 같은 문을 이마로 두드리며 소리쳤다.

“삼촌! 삼촌!”

조일민은 허둥대며 상자로 뛰어왔다.

“괘, 괜찮다. 괜찮아! 원래 그런 거야!”

“거짓말 마세요! 얼른 멈추세요!”

“조금만 참아. 곧 차원 이동이 시작될 거니까.”

“삼촌!”

둘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건 순전히 입 모양을 보며 하는 이야기였다.

완벽히 차단된 공간이라 서로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었다.

도현은 심상치 않은 상자의 진동에 당혹스러워하는 한편 조일민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봤다. 이런 심한 진동은 조일민 역시 예상 못 한 일인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쩌지? 부숴 버릴까?’

그는 손바닥으로 문 역할을 하는 투명한 플라스틱을 어루만져 보았다.

만약 조일민이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실험은 실패를 한 것이고, 더 이상 두고 볼 이유가 없었다. 사고가 나기 전에 막아야 했다.

짧게 호흡을 들이마신 그는 좁은 공간에서 말아 쥔 주먹을 힘껏 날렸다.

콰앙!

‘크윽.’

손등의 뼈가 욱신거리자 그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투명한 문을 내려다봤다. 재질이 뭔지 모르지만 튼튼했고 꿈쩍도 안 했다.

‘공간이 너무 부족해서 주먹에 힘을 제대로 못 싣겠어.’

사실 주먹에 온전히 힘이 실려도 깨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삼촌! 전기를 내려요! 어서요!”

“아, 안 돼.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 봐!”

“삼촌!”

용주의 부릅뜬 두 눈과 도현의 깊은 눈빛을 번갈아 쳐다보던 조일민은 결국 머리를 쥐어뜯으며 서둘러 전원 공급 장치로 뛰어갔다.

하지만 그사이에 상자에 연결된 복잡한 전선들에 스파크가 일어났고, 그 스파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도현을 휘감아 버렸다.

‘흐읍!’

동공이 터질듯 팽창된 도현은 온몸의 털들이 모조리 곤두서는 끔찍한 충격에 부르르 떨며 어렵게 고개를 돌렸다.

친구인 용주는 전선들이 일으키는 스파크에만 정신이 팔려서 도현이 어떤 상태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왜 나만?’

바로 곁에 있는 친구가 전기 감전으로부터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가 되면서도, 자신만 이런 상황이라는 게 웃겼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관통이 되는 듯한 심한 고통과 찌릿함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졌고, 어느새 굳게 다물었던 입술 사이로 옅은 신음성이 새어 나오게 됐다.

그제야 고개를 돌린 용주는 친구의 심상치 않은 변화에 크게 놀라며 마구 소리를 쳤다.

“삼촌! 삼촌!”

그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를 때 전원을 차단한 조일민이 서둘러 고장 난 문을 강제로 열었고, 도현은 온몸을 감싸는 찌릿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구에 따라 좁은 차원 이동기기를 박차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강렬한 붉은 빛 무리가 나타난 건 그때였다.

‘뭐지?’

좁은 기기 안을 벗어나던 그는 어떻게 손을 쓸 틈도 없이 뛰쳐나오는 속도 그대로 그 붉은 빛을 통과하고 말았다.

낯선 세계

붉은 빛 무리를 통과한 순간 도현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한순간에 바뀌는 기적을 맛볼 수 있었다.

지하 실험실의 답답한 시멘트 천장이 아닌 푸른 하늘이 보였고, 그 밑으로는 검과 창, 도끼로 무장한 수많은 사람들이 역동적인 모습으로 서로를 죽이려 했다.

앞발을 쳐들고 울부짖는 전마의 위풍당당함과 그 밑에 깔려 있는 사람.

뭐라고 고함을 치며 검을 휘두르는, 투구와 갑주를 착용한 범상치 않아 보이는 장수들.

팔이 어깨로부터 분리되는 병사의 공포 어린 표정.

도현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거라 짐작했다.

‘모든 게 멈춰 있어. 심지어 나까지도.’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건 눈동자밖에 없었고, 그나마 그의 눈 안에 들어오는 장면들의 주인공들은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의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끔찍하군. 바로 내 앞에서 사람의 목이 잘리는 장면을 보게 되다니.’

목이 잘리며 피가 사방으로 튀고 있는데, 그중 일부는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피조차도 허공에 뜬 상태로 멈춰 있었다.

‘그래, 이건 꿈이야.’

도현이 속으로 낮게 웃을 때 돌연 모든 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이 움직였고, 고개가 조금씩 그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그에 맞춰서 비릿한 피 냄새도 풍겼다.

살아오며 여러 꿈을 꿨어도 이렇게 생생한 피 냄새는 여태껏 느껴 보지 못했다.

‘설마.’

도현이 미간을 찌푸리는 순간, 귀머거리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한순간에 받아들이는 듯한 충격을 주는 거대한 소리들이 그의 고막을 강타했다.

곧이어 주변을 메우고 있던 사람들이 살아서 날뛰기 시작했다.

“죽여라!”

“물러서지 마라!”

“크아아악!”

도현은 바로 앞에서 목이 잘리며 쓰러진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피는 조금 전까지 허공에 멈춰 있었는데, 그 피가 쏜살같이 날아와 도현의 왼쪽 뺨에서 철썩하는 걸쭉한 소리를 냈다.

그 피가 흘러내려 입안에 스며들자 도현은 뒷머리가 곤두설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믿고 싶지 않지만 꿈이라고 보기엔 모든 게 너무 사실적이고 감각적이다. 멈췄던 시계가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설마…… 조 박사님의 실험이 성공한 건가?’

그가 혼란스러워할 때 병사의 목을 자른 사내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어서 도현까지 공격했다.

다급히 정신을 차린 도현은 그의 검을 옆으로 흘리며 소리쳤다.

“잠시만요! 난 이 싸움과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급한 마음에 말을 뱉어 냈지만 말을 하면서도 과연 이 사람이 자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그건 괜한 기우였다.

그의 입에서는 그동안 사용하던 말이 아닌 전혀 생소한 언어가 막 쏟아진 것이다.

“주둥이 닥치고 목을 길게 빼라, 이놈!”

황소 뿔처럼 양쪽으로 삐쭉하게 올라온 투구를 쓰고 있던 우람한 체격의 사내는 인정사정없이 도현의 몸에 칼을 쑤셔 넣었다.

‘들리고 말을 할 수도 있어.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이지?’

고개를 재빨리 숙여 사내의 넓은 검신을 피한 도현은 옆으로 몸을 굴리며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 한 자루를 집었다.

검을 쥐자 혼란스러운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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