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디 임팩트 1권 9화
“음.”
도현의 타투를 카메라에 담은 조 박사는 의자에 앉으며 낮게 신음을 흘렸다.
황금색으로 변한 도현의 타투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저절로 타투의 색깔이 변화를 일으키다니. 색이 변했다는 걸 인지한 게 어젯밤이라고?”
“네.”
“팔에 통증은 없나? 몸에 이상한 점은 없고?”
“팔도 정상이고 몸도 이상 없습니다. 다만, 타투의 색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도현은 팔을 가볍게 움직이며 대답했다.
“삼촌, 왜 이렇게 된 건지 짚이는 게 없으세요?”
조카의 질문에 조 박사는 턱을 매만지며 도현의 얼굴과 팔에 그려진 타투를 번갈아 보았다.
“글쎄, 차원 이동의 후유증으로 보기에는 도현이의 몸 상태가 정상인 것 같고, 거참 알 수 없는 일이군. 차원 이동 장치 속 스톤의 문양이 팔에 생기더니 이제는 색까지 변화를 일으켜?”
말을 하면서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들던 그는 용주가 팔을 건들자 정신을 차리며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미안하네. 이 모든 게 내 실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속 시원히 타투의 변화에 대해 설명해 주면 좋겠지만, 현재로선 내가 더 연구를 해 보겠다는 말밖에 해 줄 수가 없어. 정말 미안하네.”
“아닙니다, 박사님.”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면서 타투의 변화에 대한 해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고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타투가 왜 자신의 몸에 생겼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을 조 박사가 마련하지 않는 한은, 타투의 색 변화에 대한 답을 모르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가 보겠습니다.”
도현이 마당에 나타나자 개집 앞에서 하품을 하던 커다란 흰 개가 껑충껑충 뛰며 짖어 댔다.
꼬리를 흔드는 게 반가운 모양이다.
“아까 내가 밥 줄 때는 본 체도 안 하더니, 이제는 배부르니까 네게 친한 척하네.”
뒤따라오던 용주의 말에 피식 웃은 도현은 개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은 뒤 차로 향했다.
“도현아, 미안하다. 그거 꽤 신경 쓰이지?”
용주가 타투를 언급하자 도현은 차 문을 열며 대꾸했다.
“엄청 신경 쓰인다. 네가 좀 가져갈래?”
“자식이. 좋게 생각해, 인마. 보기에 따라 그럴듯하잖아.”
“알았어. 난 괜찮으니까 너나 신경 쓰지 마.”
“또 이상하게 변하면 바로 연락해. 뭐 그래 봤자 삼촌이 도움을 주실 입장은 아니지만.”
뒷머리를 긁적이던 용주는 추리닝 바지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불량스럽게 손짓하는 친구의 모습에 도현이 차창을 내리며 소리쳤다.
“담배 좀 끊어라.”
“네가 술 끊으면.”
말문이 막힌 도현은 입맛을 다시며 차를 돌렸다.
서울로 올라온 도현은 건물에 딸린 주차 구역에 조용히 차를 세웠다.
‘별일 없어야 될 텐데.’
타투의 변화 때문에 은근히 신경이 쓰인 도현은 남방 소매를 내려 타투를 가렸다.
차에서 내린 그는 낡은 도장의 간판을 올려다봤다.
‘도장의 물품들도 적지 않고. 다른 곳에서 작게 도장의 명맥이라도 유지할까? 아버지가 퇴원하시면 서운하시지 않게.’
아버지의 땀이 밴 도장을 지키고 싶었지만 팔리는 건물을 그가 사지 않는 한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쉽고 또 아쉽지만 건물이 팔려서 도장을 비워 줘야 할 때를 대비해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 봐야 한다.
아버지의 손때가 묻어 있는 검도장의 물품들을 버릴 수도, 어디 창고에 처박아 놓을 수도 없었다.
자신 역시 하루라도 검을 수련하지 않고는 지낼 수 없기 때문에 수련할 공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돈도 벌어야 하고, 할 일이 적지 않네.”
도현은 혼자 피식 웃으며 지하에 있는 도장으로 향했다.
그가 막 잠긴 도장 문을 열 때, 전화가 왔다.
-도현 씨, 저예요.
홍 사부의 딸 홍영이었다.
동갑내기 그녀의 갑작스러운 전화에 도현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차분히 대답했다.
“오랜만이에요. 잘 있었어요?”
-네. 당신은요?
“저도 뭐.”
2년 전 홍 사부와 함께 서울을 방문했던 그녀와는 그 뒤로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연락도 안 했다.
그래서 약간 어색함이 감돌았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전화를 먼저 걸어온 그녀가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어조로 짧게 한마디 했다.
-사실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장례식이 이미 끝났으니 올 필요 없다는 그녀의 매정한 말이 있었지만, 그는 다음 날 오전 비행기로 상해에 있는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검정색 정장을 입고 택시에서 내린 도현은 문이 굳게 닫힌 쿵푸 도장을 한동안 미동도 않고 바라보았다.
도장의 명패는 낡아 있었고, 쇠사슬로 손잡이가 묶이고 자물쇠가 채워진 도장의 입구는 마치 안에 괴물이라도 가둬 둔 것처럼 너무도 튼튼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간 그는 중학교 때 아버지와 함께 처음 방문했던 이곳의 추억을 더듬다가 천천히 몸을 틀어 옆으로 걸어갔다.
도장에서 멀지 않은 아파트에 홍 사부의 집이 있었다.
도현은 집 안에 마련된 위패 앞 향로에 향을 꽂고, 고인이 된 홍 사부의 극락왕생을 바랐다.
절친한 친구였던 홍 사부의 죽음을 아버지께 어떻게 전해야 할지 가슴이 답답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경건한 자세로 위패 앞에 오래도록 서 있는 그의 듬직한 뒷모습에 홍영과 홍 사부의 부인은 눈시울을 붉혔다.
“와 줘서 고맙네.”
장례식이 끝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작은 키의 홍 사부의 부인은 말을 하다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고, 홍영은 그녀를 부축해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잠시 후 다시 나온 그녀는 도현을 거실로 안내해 차를 건넸다.
차를 입에 대며 도현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녀를 봤다.
피부가 하얗고 광택이 날 정도로 건강했던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많이 힘들었는지, 몰라보게 수척해 있었다.
“홍 사부님은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고마워요.”
둘의 대화는 그렇게 끊겼고, 견디기 힘든 고요함 속에 도현은 도를 닦는 심정으로 식어 가는 차를 비워야만 했다.
아까 문을 열고 자신을 보던 그녀의 눈빛은 분명 반가운 기색이었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착각했나 보다 싶었다.
왠지 자신에게 화가 나 있는 듯한 그녀의 표정에 묻고 싶은 말이 많았던 도현은 그대로 안으로 삭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나자 가만히 숨죽이며 찻잔만 만지작거리던 홍영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초승달 같은 눈을 보며 도현이 말했다.
“오다가 보니 도장에 문이 잠겨 있던데, 한번 볼 수 있을 까요?”
“그곳은 더 이상 우리 도장이 아니에요.”
“네? 그게 무슨.”
“원래 그곳은 쿵푸를 사랑하는 지역 유지의 후원을 받아 유지해 온 쿵푸 도장이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3년 전 그 일이 있으신 후, 도장 운영을 포기하셨어요. 지금은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데, 문을 여는 날이 드물어요.”
“그랬군요.”
도현은 홍 사부가 도장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3년 전 그 일로 아버지 못지않게 홍 사부도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홍 사부님은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어제 전화상으로는 길게 말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아직 그는 홍 사부가 어떻게 죽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묻는 그에게 홍영은 슬픔을 감추며 말했다.
“새벽마다 근처 공원에서 몸을 풀고 오세요. 도장이 곁에 있지만 이용할 수 없으니까요. 그날도 평소처럼 나가셨는데, 공원에서 쓰러지셨어요.”
도현의 머릿속에 뇌출혈이나 심장마비와 같은 여러 응급상황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셨나? 수십 년간 운동을 꾸준히 해 오던 분인데…….’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상상 밖의 말이었다.
“제 생각으로는 아버지는 누군가의 손에 돌아가신 게 분명해요.”
“홍영 씨.”
놀란 도현의 표정을 보며 그녀는 계속 설명을 했다.
“피를 토하고 공원에 쓰러져 계셨어요. 부검을 했는데, 몸 속 장기들이 두부처럼 으깨지고 찢어져 있었다고 해요. 부검의의 말이 그랬어요.”
붉어진 눈가에서 기어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도현이 손수건을 꺼내 건네자 그녀는 희고 긴 손으로 그걸 받아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외상 흔적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공안도 부검의도 타살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단정 지었어요. 외부 충격 없이 내부 장기들이 손상될 수 없고, 외상 흔적이 없다는 건 살인은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도현 씨, 우리는 무도인이에요. 그런 수법을 알잖아요.”
“내가 고수…….”
침음을 터트리며 도현이 답했다.
단전에 기를 모아 내공을 쌓아서 그 기운을 이용하는 고수. 구름 속 용처럼 어딘가에는 있다고 전해지는 진정한 고수.
그가 매일 거르지 않고 단전호흡을 하는 것도 단전에 기를 모으는 일련의 수련법이었다.
사실 아직 아무에게도 밝힌 적은 없지만 최근에 그의 단전에 뭔가 작은 기운들이 모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20년 가깝게 단전호흡을 충실히 했지만 무형의 기운이 실제로 단전에 자리 잡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실제로 단전에 뭔가가 생성되고 있었다.
물론, 아직 그는 그 기운이 내공으로 부르는 전설의 기운인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한의사가 말하기를 네 몸이 아주 극상품이란다. 침을 꽂으면 침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혈맥의 기운이 용솟음치고, 혈과 혈을 지나는 기운들이 장대하고 도도하다는구나. 하하하, 그 정도 몸이면 전설의 내가 고수가 되는 것도 허황된 꿈이 아니다. 장하다 내 아들, 아비와 달리 자질을 타고났어.
환청처럼 들리는 오래전 아버지의 칭찬을 머릿속에서 지우며 도현은 그녀의 말이 시사하는 바가 얼마나 엄청난지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과연 얼마나 강해야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아니, 실제로 그 정도 고수가 존재나 할까?’
검으로 바위를 자르겠다는 그의 일념을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놀라운 경지였다.
“도현 씨도 안 믿죠?”
홍영의 눈빛을 보며 도현은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어렵게 대답을 했다.
“믿습니다.”
“범인은 분명 3년 전 그자일 거예요. 도현 씨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를 부상 입힌 그자가 다시 나타난 거예요.”
도현은 회의적이었다.
외상 없이 내부 장기를 파괴해 죽일 정도의 전설의 내가 고수와 3년 전 그 복면인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 정도 고수라면 3년 전 이미 아버지와 홍 사부를 확실히 죽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을 거라는 게 그의 추론이었다.
물론 확실한 건 그 어디에도 없었다.
홍 사부가 살해당했다는 그녀의 주장도.
그런 높은 경지의 내가 고수의 존재도.
하지만 도현은 홍영에게 당장 필요한 게 뭔지 알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 주며 같이 아파해 주는 것이다.
그녀 집에서 하루 머문 그는 새벽에 일어나 홍영과 함께 홍 사부가 즐겨 찾았던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태극권을 연마하는 남녀노소부터 갖가지 운동을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 속에 홍 사부는 운동을 마치고 공원 한가운데서 쓰러졌다.
홍영의 말대로라면 범인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바람처럼 다가와서 일수를 날린 뒤, 유유히 목격자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가능할까?’
“알아요. 무슨 생각하는지. 잊어버려요, 어제 내가 한 말은.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 많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손을 쓰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요. 내가 너무 꿈같은 생각을 했나 봐요.”
씁쓸한 미소를 지은 그녀를 보며 도현은 다정히 말했다.
“나라도 그런 생각을 가졌을 겁니다.”
그녀는 도현의 따뜻한 위로에 조금은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한국엔 언제 돌아갈 거예요?”
“오후에요.”
그의 대답에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 조문 왔으니 그걸로 끝난 거군요.”
“네?”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녀가 쌩하니 앞서 가자 뒤에 홀로 남은 도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서둘러 그녀 뒤를 쫓았다.
사실 그녀 집에 며칠 더 머물고 싶었지만 마땅히 그래야 할 명분을 찾아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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