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디 임팩트 1권 11화
도현은 홍 사부에 이어 아버지까지 내부 장기가 손상돼 죽었다는 사실을 크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용주야.”
“그래.”
상복을 입고 우울한 표정으로 옆에 서 있던 용주가 조용히 대답했다.
“나 미칠 것 같다.”
“도현아.”
“이번 일 반드시 진상을 밝혀낼 거다. 무슨 수를 쓰든.”
단서
“삼촌, 레이저 총 같은 거 못 만들어요?”
“…….”
조 박사는 복잡한 전선을 색깔별로 분류하다가 멈칫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도현이 아버지 죽인 자식 잡으려고요. 아무래도 맨손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서요.”
용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하는 모습에 조 박사는 혀를 찼다.
“사람이 내부 장기만 쏙 파괴하는 게 가능하겠어? 죽음은 안타깝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해.”
“삼촌, 정말 냉정하십니다. 그래도 실험까지 참여하고 저보다 오히려 더 삼촌을 존경하던 도현이인데요.”
“그래서 하는 말이다. 죽은 사람은 빨리 잊는 게 좋아.”
“삼촌은 다른 일에는 관심조차 없죠? 오직 연구밖에요!”
“내가?”
“네. 장례식장에도 오시지 않았잖아요. 삼촌 때문에 이계에서 죽을 뻔하고 온 도현이인데.”
“내가 가서 위로한들, 도현이가 슬픔을 거두었겠냐?”
조 박사는 플라스틱 상자에 전선을 밀어 넣으며 뒤돌아봤다.
“난 가지 않고 여기서 마음으로 위로를 보냈어. 그러니까 쓸데없는 시비 걸지 말고 가서 커피 좀 타 와.”
“삼촌이 타다 드세요.”
“뭐?”
“저는 마음으로 커피를 정성껏 탈 테니까, 직접 타다 드시라고요!”
용주가 성을 벌컥 내며 지하 연구실을 나가자 조 박사는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정말 난 이곳에서 도현이를 위해 기도를 했는데.”
투덜대던 조 박사는 다시 일에 집중하기 위해 몸을 구부렸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용주가 커피 잔을 들고 슬며시 나타났다.
“드세요.”
“필요 없어.”
“싫으시면 관두시고요.”
“거기 올려놔.”
용주는 탁자 위에 커피를 내려놨다.
말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일을 하던 조 박사가 헛기침을 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도현이는 아직도냐?”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겠죠. 아버지 생각을 얼마나 하던 앤데요.”
도현은 장례식 이후 도장 문을 굳게 닫은 채 그 안에서 며칠째 틀어박혀 있었다.
“범인 잡으러 간다며?”
퉁명스러운 삼촌의 물음에 용주는 입술을 쌜쭉이며 내밀었다.
“내가 고수 같은 건 안 믿으신다면서요?”
“차원 이동 장치도 만드는 판에 그깟 내가 고수 얼마든지 존재하겠지.”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선 조 박사는 용주가 타 온 커피를 입에 댔다.
삼촌의 기색을 살피던 용주가 넌지시 말했다.
“단서라고는 중국의 홍 사부라는 분이 같은 수법으로 당하셨다는 것밖에는 없대요. 도현이는 홍 사부라는 분과 아버지가 열흘도 안 돼 차례로 돌아가신 것으로 보아, 두 분이 모종의 일에 같이 연관된 게 아닌가 의심을 하고 있어요.”
“3년 전 피습 사건 말이냐?”
“네.”
“3년 전 일과 지금에 벌어진 일들이 관련이 있다? 흠, 그 사이 공백이 너무 길어. 무려 3년이야. 이제 와서 왜 살인을 해?”
조 박사의 냉정한 지적에 용주가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답했다.
“그건 범인이 아닌 이상 알 수가 없잖아요. 현재로서는 의심되는 일이 그 사건밖에 없으니까요. 아무튼 도현은 3년 전 그 사건을 추적하려고 해요.”
“오래전 일인데, 쉬울까?”
조 박사는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장례식 때 도현이 얼굴을 삼촌이 보셨어야 해요.”
평소와 달리 눈빛이 너무 차갑고 풍기는 기운이 싸늘해서 그가 알던 도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자신이 납득하기 전까지는 결코 아버지 일에서 손을 떼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넌?”
“저요? 당연히 친구하고 함께해야죠. 백 관장님 장례식 때 저도 맹세했어요. 범인을 찾아내고 말 거라고요.”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하는 조카의 모습에 조 박사는 깎지 않아 길게 자란 수염을 한동안 만지며 말없이 서 있다 담담히 말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대로 내가 고수의 손에 그분이 사망했다면 너희들만으로는 위험해. 혹, 밝혀내더라도 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경찰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해.”
“도현이가 그렇게 하지 않을걸요. 그 녀석 단단히 벼르고 있거든요. 설령 그 일로 자신이 어떻게 된다 하더라도요.”
용주가 조금은 어두워진 얼굴로 대답했다.
장례식 후 도현은 도장 문을 걸어 잠그고 그 안에서 며칠을 단식하며 아버지와 쌓인 정을 조금씩 조금씩 희석시키고 있었다.
잊는 게 아니라, 너무나 아픈 가슴을 치료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세상에 이제 홀로 남았다는 느낌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 못 할 기분일 것이다.
이미 어른이 된 나이이고, 세상은 그렇게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서로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것쯤은 그도 잘 알고는 있지만, 몇 년을 병원에서 보내고 마지막에 비극적으로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아버지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라도 이 아픈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꼭 필요했다.
어딘지 차가움이 묻어나는 시선으로 도현은 며칠간 앉아 있었던 도장 한가운데서 검을 들고 일어났다.
스물여섯.
젊음을 만끽하며 자신의 인생을 힘차게 개척해야 할 시기.
도현은 들고 있던 검으로 자신의 남은 인생을 단칼에 베어 내며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했다.
은혜정신병원의 간호사 최성국은 병원 주차장에 세워 둔 자신의 차로 향하며 퉁퉁 부어 오른 눈두덩을 매만졌다.
어제 새로 들어온 환자는 전직 복싱 선수였는데, 오늘 난동을 제압하던 그의 얼굴에 강펀치를 날려 이렇게 흔적을 남겼다.
“관두든지 해야지.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이러니. 이거야 원.”
노총각 간호사 최성국이 막 차에 오르려던 그때 누군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최 간호사님.”
뒤돌아보니 얼마 전 돌연사한 환자의 보호자가 서 있었다.
‘백도현.’
이름도 기억할 만큼 눈앞의 청년은 그의 아버지를 자주 찾아왔었다.
백남식 환자를 데리고 면회실로 종종 갔던 그는 도현이 얼마나 아버지를 지극히 생각하는지 면회실 한쪽에 서서 바라볼 때마다 느꼈었다.
자신의 아버지는 건강하시지만 만약 아버지가 이런 시설에 갇혀 있다면 도현처럼 자주 방문하거나 짜증 내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면회를 지속적으로 할 자신은 솔직히 없었다.
그래서 유독 기억에 남는 면회자였고, 남몰래 백남식의 죽음도 애통해했었다.
“네, 안녕하세요.”
“퇴근하시는 길이죠?”
“네.”
“괜찮으시면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산을 뒤로하고 세워진 은혜병원은 공기가 맑았다. 그래서 아버지 면회를 올 때마다 서울의 공기와 많이 다른 이곳이 좋았다. 그런데 아버지 없는 이곳에 오늘 와 보니 그 공기가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일로 절?”
병원 내에 있는 나무 아래 벤치에 앉자마자 최 간호사가 불편한 시선을 담아 물었다.
그가 비록 백남식 환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도현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병원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망 사건과 관련된 유가족과는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경찰 수사도 끝난 일이라고는 들었지만, 유가족은 원망할 대상을 찾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칫 말 한마디 잘못해서 나중에 병원 간부들에게 혼이 날 수도 있었다.
“간호사님 만나기 전에 병원 측의 협조로 아버지가 쓰러지셨던 병원 뒤편에 가 보았습니다. 공원처럼 잘 조성된 산책로도 있고, 높이가 4미터가량 되는 울타리가 쳐져 있더군요.”
도현은 미리 준비한 음료수를 건네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날 꽤 많은 환자분들이 그곳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제 부친에게 뭔가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많은 수의 환자들 때문에 뒤에서 지켜보던 간호사분들이 즉각 눈치채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죄송하지만 저는 그날 비번이어서 어떤 상황이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오해 마세요. 병원 측을 탓하려고 꺼낸 말이 아니니까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목격자입니다. 감시 카메라에 잡히지 않던 그 사각지대에서 아버지가 쓰러졌을 당시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을 목격자요. 당시 주변에 있던 환자분들 중 그런 분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해서요.”
“그런 부분은 경찰이 다 조사한 걸로 아는데요?”
최 간호사는 도현이 준 음료수로 살짝 목을 축이며 대답했다.
“압니다. 하지만 환자들을 대상으로 얼마나 정확히 조사를 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 말씀은 저희 병원이 뭔가 감추고 있다는 뜻입니까? 저희들 그런 사람들 아니에요. 부검에서도 저희 잘못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살짝 날이 선 간호사의 반응에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허리를 굽혔다.
“아니, 왜 이러세요?”
최 간호사가 깜짝 놀라며 도현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병원 과실이나 찾자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나름 의심되는 일이 있어서 확인을 하려고 그러는 겁니다. 부탁입니다, 간호사님. 그날 현장에 있었던 환자들이 아버지 얘기를 뭐라고 하는지 들리는 대로만 제게 말씀 좀 해 주십시오.”
“허리 좀 펴세요. 이런다고 제가 도와 드릴 수는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최 간호사님.”
도현의 핼쑥해진 얼굴을 보며 최 간호사는 난감해졌다.
“병원 측에 물어보셔야지, 일개 간호사인 제게 왜 이러십니까?”
“아까 요청했지만 어렵다고 하더군요.”
“예? 아니, 그런 걸 저보고 도와 달라고요?”
최 간호사는 더 들어 볼 것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고인의 일로 저도 마음이 아프지만 안 됩니다. 외부에 환자들이 하는 얘기를 퍼뜨리는 것도 금지되어 있고요. 그럼 이만.”
“수년 간 면회를 하면서 뒤에 묵묵히 서 있던 최 간호사님이 전 든든했습니다.”
뒤돌아서 걷던 최 간호사가 걸음을 멈췄다.
“부탁입니다. 도와주십시오.”
가슴을 왠지 찡하게 울리는 도현의 절실한 어조에 최 간호사는 어깨가 무거워졌다.
한참을 등 돌리고 서 있던 최 간호사는 시퍼렇게 멍이 들고 부어오른 눈두덩을 만지며 인상을 썼다.
“빌어먹을. 난 너무 마음이 약해.”
“도와준대?”
용주의 물음에 도현이 차에 오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 준다고 했어.”
“뭣 좀 나오면 좋겠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막 도장을 나서던 도현을 쫓아 함께 충북으로 내려온 용주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도현도 용주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었다.
홍 사부가 죽은 장소는 출입이 자유로운 공원이었고, 아버지는 통제된 장소인 정신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범인이 투명 인간이 아닌 바에야 상해의 공원보다는 분명 눈에 띄는 장소인 병원 내 한정된 장소에서 완벽히 몸을 숨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간호사들도 못 보고 감시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았지만 도현은 마지막으로 환자들에게 기대를 거는 중이었다.
“도현아, 밥은 굶지 말고 다니자. 너 얼굴이 많이 상했어.”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용주가 아까부터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그러자 말없이 운전을 하던 도현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용주야, 그 말 내가 얼마 전에 홍영에게 했던 거야. 그 말을 내가 돌려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도현아.”
“미안하다, 용주야. 신경 쓰게 해서. 너는 그만 삼촌 집으로 가서 연구 도와 드려.”
“뭐?”
“끝도, 답도 없는 긴 시간이 될 수도 있어. 그리고 어쩌면, 진짜 어쩌면, 지금 이러는 거 내 망상이 부른 헛된 추적일 수도 있고.”
“미친놈. 신파극 찍냐?”
용주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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