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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3화 (13/575)

[13] 디 임팩트 1권 13화

거침없이 말을 하던 그는 홍영의 굳어진 낯빛에 작은 한숨을 토해 내고는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놨다.

“홍영 씨, 내가 말이 심했다면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지사장님.”

“혼자만 알고 있어요. 조만간 상해 지사, 문을 닫을 겁니다.”

그녀는 지사장의 말에 놀라며 자기도 모르게 지사장실을 둘러싸고 있는 통유리 밖, 중국인 사무직원들을 쳐다봤다.

“우리가 철수하면 새 일자리를 구해야 됩니다. 당신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알지만, 활기찼던 중국 경기가 주춤하는 바람에 상해에서 지금보다 좋은 직장을 구하는 건 어려울 거예요.”

“왜 제게 그런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시는 거죠?”

“같이 일하고 싶으니까요.”

여유롭게 대답을 한 그는 조금 전 그녀가 가지고 온 서류를 옆에 있는 문서 파쇄기에 집어넣었다.

자물쇠도 모자라 쇠사슬로 칭칭 감긴 쿵푸 도장 정문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도현은 주변을 살피다 건물 뒤편으로 돌아갔다.

뒷문도 굳게 잠겨 있었다.

“이곳이 백 관장님이 3년 전 다치셨던 그곳이란 말이지?”

도현과 함께 상해에 온 용주는 쿵푸 도장 옆면에 나 있는 창문에 이마를 붙여 안을 살폈다.

햇빛이 스며드는 창문을 통해 쿵푸 도장 실내를 조금 확인 할 수 있었다.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바퀴벌레처럼 생긴 벌레 몇 마리가 빠르게 이동했다.

“창문 깨고 들어가 볼까?”

“아니, 됐어.”

“안에 들어가 보고 싶어서 온 거 아니야?”

용주가 창문에서 이마를 떼며 뒤돌아봤다.

그의 이마에는 먼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곳은 아버지가 다치셨던 곳이기도 하지만 처음 패배를 당하셨던 곳이기도 해. 머리에 검상을 당하실 만큼 격렬하게 싸우셨던 곳이지.”

도현은 손으로 건물 벽면을 지그시 누르며 말을 이었다.

“굳이 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어. 그분이 얼마나 큰 패배감과 상실감을 느꼈을지.”

“자식, 별걸 다 느끼려 하네. 좋은 것도 아닌데.”

“용주야, 나 솔직히 3년 전 그 복면인은 상대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버지를 죽인 내가 고수는…… 장담 못 하겠다.”

“걱정 마! 천하 고수라도 이거 한 방이면 끝난다. 범인만 밝혀내면 내가 이걸로.”

용주가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며 쏘는 흉내를 내자 도현이 그의 손을 덥석 잡으며 단단히 말했다.

“안 돼. 같은 방식으로 돌려줄 거야. 보란 듯이 사람 장기를 찢어 죽인 그자들에게 나와 아버지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이걸로?”

용주가 칼을 뽑아 휘두르는 자세를 취하자 도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아, 복수에 무슨 방식이 있어? 닥치는 대로 이용하면 되지.”

용주는 수 미터나 되는 정신병원 펜스를 가볍게 뛰어 넘나드는 내가 고수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소름이 와락 들었었다.

그런 자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괴물을 죽이는 데 도를 찾고, 예를 따지고, 방식을 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복수였다.

“찾아내면 총으로 그냥 조지자. 중국에서 총 구하는 방법도 알아봤어. 너도 장담 못 한다면서?”

“장담 못 한다고 했지, 그를 어쩌지 못 한다고는 하지 않았어. 내가 20년, 아버지가 40년. 검을 수련해 온 세월들이야. 그 긴 시간들이 결코 무의미하게 끝나게 할 수는 없어. 죽음을 각오한다면 그자는 결코 나를 이길 수 없을 거야!”

결연한 말을 하는 도현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뭐지 이 기운은?’

용주는 뒤로 크게 물러나며 침을 삼켰다.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따가운 감촉이 피부에 느껴졌다. 마치 수만 개의 바늘이 훑고 지나간 듯 온 몸이 따끔거렸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도현은 저만치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야! 같이 가!”

“호텔에 돌아가 있어. 홍영이 만나고 갈게.”

“나 소개 안 시켜 줘? 예쁘다면서?”

회사에서의 일로 마음이 심란했지만 그녀는 눈앞에 앉아 있는 도현을 보며 반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놀랐어요. 상해에 왔다고 해서요.”

지사장에게 말을 했던 약속은 도현과 만나기로 한 약속이었다.

커피숍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도현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로 온 거에요?”

“일이 좀 있어서요.”

도현은 쉽게 아버지의 죽음을 입에 거론하지 못하며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홍 사부와 동일한 사인으로 부친이 사망했다고 하면 그녀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두 분이 같은 방식으로 돌연사했다는 건 그녀가 희미하게 의심하고 있던 범죄의 가능성을 크게 부각시키는 일이었고, 이제 막 생기를 되찾고 회사에 다니고 있는 그녀를 혼란에 빠트리는 일이었다.

몸이 약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그녀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자신의 말 한마디가 불러올 후폭풍은 대단할 것이다.

차라리 살인이 아닌 돌연사로 그렇게 기억되는 게 어쩌면 그녀와 그녀의 모친을 위한 일일지도 모른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는 거예요?”

커피숍을 나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자고 제안을 하려던 홍영은 도현의 대답에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뭐라고요! 백 관장님이 돌아가셨다고요?”

“병원에 계실 때 심장이 좀 안 좋아지셨어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도현 씨.”

“울지 마세요. 제가 그동안 많이 울었거든요.”

“그래도,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백 관장님이 돌아가셨는데.”

기어이 눈물을 뚝 뚝 흘리는 그녀를 보며 도현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커피숍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홍 사부님 외로울까 봐 아버지가 일찍 가셨나 봐요. 가서 술 대작하시려고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슬픔이 가시지 않는 눈빛으로 그녀는 말을 했다.

“눈물 닦고 일어나요. 배고픈데 저녁 먹어요.”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그녀가 살짝 째려보자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나 배고파서 그래요. 같이 가요.”

담담한 그의 말 뒤에 진한 슬픔이 느껴졌다.

“두 분이 그렇게 갑작스레 돌아가셨다니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진 조용한 밤거리를 걸으며 홍영이 감상에 젖은 눈빛으로 말했다.

집으로 가는 이 길을 그녀는 아버지와 수없이 걸었다.

지금 곁엔 도현이 있었지만.

“도현 씬 앞으로 어떻게 살 거예요? 도장을 계속 유지할 건가요?”

나지막한 그녀의 물음에 도현은 습기를 가득 먹은 상해 여름 밤공기를 깊이 흡입했다.

“도장은 아버지의 삶이었지, 제 삶은 아니에요.”

“들으셨다면 섭섭하시겠어요.”

“그러실지도.”

씁쓸하게 웃음을 보이는 그의 옆모습을 힐끗 한번 쳐다본 그녀는 낮에 지사장이 했던 말을 상기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국에서 근무하게 될 기회가 생겼어요.”

“…….”

“아직 결정된 건 없지만, 가게 되면 지금보다는 도현 씨와 더 자주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도현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러기에는 조금 어려울 것도 같아요. 어머니 곁에 있는 게 좋겠죠?”

도현은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그녀에게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회사 일이라면 어머니와 상의하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한국으로 가라고 하실 게 분명해요. 제가 알아요.”

“그렇다면 홍영 씨 마음이 중요한 거겠죠.”

도현의 대답에 그녀는 생각에 잠긴 시선으로 앞을 바라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그녀 곁에서 보조를 맞춰 걷던 도현이 본론을 꺼냈다.

“홍영 씨, 제가 상해에 온 목적은 아버지 소식을 전하려고 한 이유도 있지만, 3년 전 도장 사건을 조사하고 싶어섭니다.”

뜻밖의 말에 홍영은 걸음을 멈추었다.

“3년 전 일을요?”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아버지 인생을 망가트린 그 사건을 이대로 묻어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늦었지만, 조사해 보려고요.”

홍영은 두통이 왔다.

3년 전 사건을 파헤쳐 범인을 밝혀낼 수 있다면 공안이 아니라 피해자인 아버지나 백 관장이 벌써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도 못 밝혀낸 일을 피해자들도 모두 세상을 떠난 이 마당에 어떻게 추적을 하고 범인을 찾아낼까.

“잠시 앉았다 가요.”

그녀는 가로등 밑 벤치에 앉았다.

구름 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녀는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3년 전 그 일 이후로 우리들은 모두 힘들어했어요. 아버지는 쿵푸 도장 운영을 포기하시고, 술로 밤을 지새우실 때가 많았죠. 당신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까지 하셨죠. 자식들인 나와 당신도 웃으며 보낸 날들이 거의 없었고요.”

도현은 무거운 얼굴로 그녀의 얘기를 귀담아 들었다.

“범인을 찾아내서 왜 그런 짓을 벌였는지 묻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마음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잖아요.”

그녀는 말을 멈추며 옆에 앉아 있는 도현에게 시선을 두었다.

“이제 과거는 잊고, 새로 시작하면 안 되겠어요?”

“홍영 씨.”

“냉정히 말하면 3년 전 사건은 아버지와 관련이 깊을지도 몰라요. 아버지는 끝까지 아니라고 주장하셨지만요. 당신도 그런 의심 때문에 오늘 날 찾아온 거고요. 묻기 위해서.”

“범인을 찾는 건 돌아가신 두 분 모두를 위한 일이에요.”

“가능했다면 아버지가 참고 있지 않으셨을 거예요.”

“그분도 미처 모르는 일이 그분 주위에서 벌어졌을 수도 있어요.”

“그건 당신 아버지도 그래요.”

그녀는 조금은 날 선 대답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홍영 씨, 우리가 이렇게 신경전 벌일 이유가 있습니까? 3년 전 일을 해결해서 범인을 찾아내는 건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잖아요.”

답답함이 절로 묻어나는 음성이었다.

“왜 지금에서야 그러는 거냐고요!”

몸을 흔들며 크게 소리치는 그녀의 모습에 도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홍영 씨…….”

“두 분이 돌아가신 지금 꼭 이래야겠어요? 우리 아버지나 당신 아버지가 안 좋은 일과 연관되어 있었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분들이 그날 일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했던 이유는 생각 안 해 봤어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도현의 머릿속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아버지, 복면인의 신장이 어떻게 됐어요?

-기억이 안 난다.

-아버지, 어느 쪽 검술 유파 같아요? 중국 맞아요?

-정신이 없어서. 기억이 안 난대도.

-홍 사부님은 칼등에 맞아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던데요. 아버지는 왜 온몸에 칼자국이에요. 머리의 검상도 그렇고요.

-내가 좀 세 보였나 보지.

-정말 복면인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어요? 홍 사부님도 기억이 안 난다고만 하시던데요.

-기억 안 나. 머리 아프니까 더는 묻지 마.

도현은 숨이 턱 하니 막혔다.

‘혹시, 홍 사부가 아니라 아버지가 관련된 일이 아니었을까?’

그는 이마를 짚으며 벤치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언성을 높였던 홍영이 급히 다가와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도현 씨?”

“아, 네. 괜찮습니다.”

“미안해요. 언성 높여서.”

“조금만 더 높였으면 나 기절할 뻔했어요.”

무거운 분위기를 애써 떨쳐 내는 그의 몸짓에 홍영은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3년 전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를 정신병원에 보낸 그였다. 그녀의 아버지가 힘들었다손 치더라도 애초에 비교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우리 둘이 힘든 일을 서로 겪었으니까…… 앞으로 좀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과거는 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한 말이었어요.”

그녀의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에 도현은 담담히 대꾸했다.

“이해합니다. 미안해요. 아직 힘들 시기에 옛날이야기 끄집어내서.”

대화가 끊긴 상태로 그녀 집 앞에 도착한 도현은 그녀에게 말했다.

“어머님께는 아버지 이야기 비밀입니다. 나중에 알려 드려요.”

“같이 안 들어가요?”

“어머님 뵈면 아버지 얘기를 숨길 수 없을 거 같아서요.”

“잠은요?”

“숙소는 잡아 놨어요.”

그는 용주와 같이 왔다는 얘기도 했다.

헤어지기 직전 홍영은 도현을 불러 세웠다.

“3년 전 사건을 수사한 공안은 아무 단서도 없어요. 공안 쪽에 자료 얻는다고 괜한 고생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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