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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5화 (15/575)

[15] 디 임팩트 1권 15화

안경을 곧추세우며 홍영과 도현을 번갈아 보던 그는 헛기침을 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기다려 봐요.”

돌아선 그는 품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름이 어떻게 돼요?”

“홍영요. 쿵푸 도장을 운영했던 홍문기 씨의 딸이라고 하면 아마 기억하실 거예요. 몇 번 아버지랑 찾아왔었거든요.”

“이름이 홍영이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어르신.”

전화를 끊은 그는 메모지에 주소를 적어 건넸다.

“가 보세요.”

“고맙습니다. 가요, 도현 씨. 택시 타고 좀 가야 될 거리예요.”

“네.”

도현은 가게 주인의 행동을 보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묻는 형국이었다.

단순히 예전 가게 주인에게 전화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어쩌면 황 사장이 과거에 거느리던 조직원 중 한 명일지도 몰라요.”

택시 안에서 홍영이 그의 의문점을 해결해 주었다.

“조직요?”

“전직 도굴범이었대요. 고서점 주인이.”

큰 비밀을 말해 주듯 그녀는 작게 속삭였다.

“정말 그 아가씨군.”

“기억하시는군요. 안녕하셨어요.”

아파트 문을 열고 홍영의 얼굴을 확인한 70대 황 사장은 마른기침을 격하게 하며 뒤돌아섰다.

“들어와.”

같이 온 도현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는 거실 소파에 힘겹게 기댔다.

도현은 넓은 평수의 아파트 안을 가볍게 둘러보며 홍영 옆에 나란히 앉았다. 고풍스러운 가구와 장식품 들이 가득한 그의 집 안엔 다른 사람이 없는 듯 너무도 조용했다.

“어디 편찮으세요?”

황 사장의 얼굴은 예전과 달리 검붉은 버섯이 심하게 피었고, 해골에 가죽만 씌워 놓은 듯 형편없었다.

“그렇게 됐어. 병원에서 죽을 날을 통고받았지.”

말을 하는 와중에도 그는 몇 번의 기침을 더 했고, 홍영은 눈빛으로 위로를 보냈다.

“아버지는 잘 계신가?”

그의 물음에 홍영은 작게 대답했다.

“한 달쯤 전에 돌아가셨어요.”

“음……. 그런가. 미안하군.”

“아니에요.”

“교통사고라도 당하셨나?”

홍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을 했다.

“새벽 운동을 하시러 공원에 가셨다가 쓰러지셨어요.”

“허어, 건강한 사람이 어쩌다 먼저 갔나? 암에 걸린 나도 이렇게 버티며 사는데.”

씁쓸함이 묻어나는 시선으로 홍영을 보던 황 사장은 문득 시선을 돌렸다.

“자넨 누구신가?”

“처음 뵙겠습니다. 백도현이라고 합니다.”

도현이 일어나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친구예요.”

홍영이 덧붙였다.

“친구?”

도현과 홍영을 둘러보던 그는 기침을 하며 말했다.

“괜찮아 보이는군, 친구치고는. 그래, 무슨 일로 날 찾아왔나?”

“3년 전, 아버지께 팔았던 책과 관련해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3년 전?”

“네, 검선문의 비급이라고 하시면서 팔았던 그 책 말이에요.”

홍영의 말이 끝나는 순간 황 사장의 안색이 살짝 바뀌었고 곧이어 격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괜찮으세요!”

놀란 홍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가자 황 사장이 손수건으로 입을 막으며 손짓을 했다.

“미안하지만 물 한잔 가져다주게.”

홍영이 건네는 물을 마시며 숨을 돌린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 책은 왜?”

“기억하시는 거죠?”

황 사장은 어두운 기색으로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어요. 혹시 잊고 계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됐는데요.”

홍영은 조금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실은 3년 전 아버지 도장에 난입한 범인을 추적하고 있어요.”

“뭐?”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그에게 홍영이 물었다.

“그 사건 알고 계세요?”

“얼핏 듣긴 했지. 도장에서 홍 사부와 한국인 한 명이 크게 다쳤다고.”

“맞아요. 여기 도현 씨는 그때 도장 안에서 다치셨던 분의 아들이에요.”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황 사장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도현의 위아래를 살폈다.

험난하다면 험난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상해에 자리를 잡은 지 수십 년, 사람 보는 안목이 나름 있는 그는 도현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아직 범인을 못 잡았으면 잡아야겠지. 그런데 나를 찾아와 왜 그 책 이야기를 하나?”

“3년 전 사건과 책이 관련이 있는 건 아닌지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요.”

“내 책이?”

“네.”

“이유는?”

“사건 이후 책이 보이지 않거든요. 그 책을 범인이 가지고 간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요.”

홍영은 도현을 힐긋 한번 바라보며 대답을 했다.

“그럴 리가 있나.”

황 사장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자네 부친이 그런 사실을 주위에 말했겠지. 자네는 부친으로부터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

홍영은 도현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아니요.”

“그것 보게. 피해 당사자가 왜 그런 일을 겪었으면서도 함구했겠나. 억측이야.”

“책을 팔거나 빌려 줄 분이 아닌데 사라져서 그래요. 더구나 늘 서재를 청소하던 어머니도 그리고 저도 3년 전 그날 이후로 본 적이 없거든요.”

하지만 그녀는 황 사장의 지적에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범인이 그 책을 가지고 갔다면 아버지가 구태여 숨길 이유가 있었을까.

그녀의 시선이 다시 도현을 향했다.

사실 이 문제는 여기 오면서도 한 차례 도현과 주고받았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제가 한 말씀 드리죠.”

도현이 나섰다.

“홍 사부님이나 아버지나 도장 안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셨습니다. 어떤 내막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정 의심스럽다면 지금이라도 자네 부친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겠나?”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적극적으로 묻지 못한 게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도현의 대답에 황 사장의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다.

“자네 부친도 죽어? 여기 홍영의 부친도 죽고?”

“한 달 사이에요. 가까우셨던 분들인데.”

홍영의 말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황 사장은 또다시 격하게 기침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이런 망할!”

손수건 사이로 욕설이 흘러나오자 홍영은 당황한 눈치였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황 사장의 감정 변화를 눈여겨보던 도현이 말했다.

“그래서 꼭 확인했으면 합니다.”

“뭘 말인가?”

입 주변의 침을 닦아 내며 황 사장이 도현을 응시했다.

“검선문의 비급의 가치는 어느 정도입니까? 실제로 명나라 시대에 기록된 무예 비급입니까?”

“장사를 하는 사람은 필요할 때 필요한 말을 지어낼 줄도 아는 사람이야. 나라고 다를 바 없고.”

“과장된 책이었다는 거죠?”

홍영이 가짜 비급이었냐는 표현 대신 좀 더 포장된 말로 묻자 굳어 있던 황 사장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어렸다.

“말을 예쁘게 하는군. 과장된 책이라. 사실 난 무예가도 아니고 그저 고서점 주인일 뿐이야. 겉표지에 검선문이라는 말이 있기에 검선문의 비급이 된 것이고, 안에 무예가 기록되어 있기에 팔 만한 대상인 홍 사부에 그 책을 팔았을 뿐이지. 그 책의 진실 유무는 나도 모르네. 보기 나름이지. 하아, 힘들군. 그만하세. 말을 너무 많이 했어.”

힘겨워하는 그의 모습에 홍영이 망설일 때 도현이 과감히 물었다. 미련을 남겨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죄송하지만, 그 책의 출처를 알 수 있습니까?”

“알려 줄 수 없네.”

아픈 노인답지 않게 이때만큼은 눈빛이 싸늘했다.

“부탁입니다. 책과 관련해 의혹을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말해 준다 해서 뭘 어쩌려고?”

“책이 증발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책을 보기 위해 상해로 오셨고요. 3년 전에요. 적어도 그 책과 관련해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사장님께 그 책을 제공한 중개인이 있다면 그 사람을 통해 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봐야겠습니다.”

“답답한 친구군. 내가 평범한 사람들과 거래를 해서 그런 고서들을 구했을 줄 아나? 알려 하지 말고, 돌아가게. 내 책과 자네들이 조사하는 사건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니까.”

황 사장이 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는 그날 도장에서 다치신 후유증으로 3년간 정신병원에 갇혀 계셨습니다.”

천천히 일어나며 도현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쓸쓸히 돌아가셨죠. 누가 왜 아버지 머리에 상처를 남겼는지 알아야겠습니다.”

“그 책과 관련이 있다고 자신하나!”

황 사장의 고함 소리에 도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태연히 대답했다.

“아니요. 하지만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제게는 무척 중요한 일이니까요.”

반드시 책의 출처를 확인하겠다는 의지가 섞인 그의 눈빛에 황 사장은 허허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내게 책을 판 자는 죽었다. 묻고 싶어도 그는 대답을 해 줄 수 없는 상황이지. 되었나? 이제 그만하고 당장 나가게. 어서!”

“언제 죽었습니까?”

“뭐야? 이 사람이 정말!”

노기 섞인 황 사장 말투에 홍영은 억지로 도현을 끌고 나가며 사과를 했다.

“죄송해요. 사장님. 무례했다면 용서해 주세요.”

별 성과 없이 황 사장 집에서 나온 홍영은 도현을 가볍게 나무랐다.

“도현 씨답지 않았어요. 병든 노인이잖아요.”

“사실 유무를 확인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어 보였어요.”

“그러다 쓰러져서 숨이라도 안 쉬면 어쩌려고 그래요.”

“불안하게 했다면 미안해요.”

도현의 사과에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경사진 길을 내려갔다.

“우리 너무 예민해진 것 같아요. 마치 적진에 투입된 병사들 같잖아요. 황 사장님은 적이 아닌데.”

담담히 말한 그녀는 택시 승강장에 서며 도현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봤다.

“검선문 비급은 우리 그만 이제 잊어요. 황 사장님에게 책을 팔았다는 사람은 죽었다잖아요.”

“다시 올 줄 알았지.”

문 앞에 서 있는 도현을 보며 황 사장이 말했다.

홍영을 집 앞까지 바래다준 도현이 황 사장의 아파트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싫다고 하면 그냥 갈 텐가? 들어와.”

기침을 하며 황 사장이 돌아섰다.

“죽음을 선고받은 상태에서 하루하루 버티며 산다는 게 쉽지 않아. 아니, 너무 고통스러워. 술 한잔 할 텐가?”

“술을 드셔도 되겠습니까?”

“무슨 상관인가? 난 마약도 한다네.”

홍영이 있을 때와 달리 그는 거침없이 말하며 진열장에서 술과 잔을 꺼내 왔다.

“내일 가정부가 와서 내 시체를 치울지도 모르는데, 몸 사릴 필요는 없지.”

황 사장은 도현에게 독한 향이 올라오는 술잔을 건네고는 맞은편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제가 다시 올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눈빛이 그랬거든. 다시 올 테니 기다려라. 끄응.”

황 사장은 말을 하다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굽혔다. 한동안 상체를 숙인 채 힘들어하던 그는 식은땀이 범벅이 된 얼굴로 테이블 위에 올려놨던 술을 입에 댔다.

그의 손은 위아래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봤나? 자네는 끝까지 죽음에 버티지 말고 아프기 전에 죽게.”

도현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황 사장의 바지 일부분이 축축해져 있었다. 아마 고통을 참는 와중에 소변이 흘러나온 것 같았다.

그러나 황 사장은 아직 모르는 눈치였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감정이 단단해져 있던 그였지만 절로 연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런 시선으로 보나?”

“아닙니다, 아무것도.”

연민의 시선을 지운 도현은 술을 한 모금하며 아버지의 일에 다시 집중했다.

“책을 판 사람이 정말 죽었습니까?”

“왜 그렇게 책에 목을 매나? 그래서 뭐가 나온다고. 설마 진짜 그 책 때문에 3년 전 사건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건가?”

“조사를 할 뿐입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요.”

아버지의 죽음과 3년 전 벌어진 도장 피습 사건이 어떤 관계인지 그는 모른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차가움을 넘어 비장하기까지 한 그의 태도에 황 사장은 침을 삼켰다.

“부친이 최근에 죽었다면서. 이제 와서 뒤늦게 왜 그러는 건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제게는 의미가 깊습니다.”

“흐음…….”

“사장님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책의 출처를 알려 주십시오.”

쉽게 물러나지 않을 태도였다.

술을 마시며 한참을 고민하던 황 사장은 무릎에 손을 얹고 일어났다.

“따라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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