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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6화 (16/575)

[16] 디 임팩트 1권 16화

용주는 도현이 내미는 검은 물체를 보며 딸꾹질이 나왔다.

검은 물체는 손가락 두께의 길쭉한 총구가 앞으로 튀어나온 6연발 리볼버였는데, 총구 일부분이 거짓말처럼 매끈하게 잘려 있었다.

“그러니까 황 사장이라는 그 고서점 주인이 호신용으로 꺼낸 이 총을 단칼에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놨다는 거야? 검선문 비급을 어디에 팔았는지 대라며?”

용주는 딸꾹질을 계속하며 총을 흔들었다.

“와아, 진짜 내가 어이가 없어서. 이거 왜 이렇게 고수들이 많아? 4미터 펜스를 뛰어넘는 노인이 있지를 않나, 총을 자르는 여자가 있지 않나.”

객실 의자에 앉아 있던 도현은 용주의 손에서 다시 총을 건네받아서 잘린 단면을 면밀히 살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럽게 잘렸어. 돌보다 훨씬 단단한 총구를 이렇게 자르다니.’

심장이 뛰고 얼굴에 열이 올라왔다.

아무리 태연한 척하려고 해도 눈에 보이는 이 증거로 보아, 황 사장을 위협했던 여자 고수는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은 것 같았다.

‘우물 안 개구리였나?’

내가 고수의 출현보다 검으로 총구를 자를 수 있는 경지의 검객이 있다는 게 그를 훨씬 더 자극했다.

바위를 자르겠다는 일념으로 20년을 수련해 온 그로서는 보이지도 않는 대상에게 깊은 좌절감과 패배감을 맛봐야만 했다.

-처음엔 나와 원한이 있는 사람이 보낸 청부 살인업자인 줄 알았네. 과거에 지은 죄가 제법 되거든. 그런데 내가 꺼낸 이 총을 자르더니 칼을 목에 대고 묻는 거야. 검선문 비급이 어디 있냐고. 그제야 나는 내가 판 그 비급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살려는 욕심에 순순히 나는 홍 사부에게 팔았다는 이야기를 했어. 그런데 안면을 두건으로 가린 여자가 날 죽이려고 했어. 망할 년 같으니, 약속도 어기고. 그런데 죽기 일보 직전에 웬 사내가 나타나서는 내게 묻는 거야. 살려 주면 평생 입을 다물고 살 수 있겠냐고. 무슨 약속을 못 해.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사람은 홀연히 사라졌고, 홍 사부 도장에서는 난리가 났네.

도현은 총구에서 시선을 떼며 용주에게 황 사장 집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더 해 주었다.

“아버지와 홍 사부님은 그들에게 당한 게 틀림없어. 총구를 자를 정도의 실력이면…… 두 분이 상대하기에는 어려웠겠지.”

“검선문 비급도 그들이 회수해 가고?”

용주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그랬겠지. 도중에 아버지 머리에 큰 상처를 남겨 놓고 말이야.”

“도현아, 그 연놈들이 죽일 놈들인 건 맞는 것 같은데 말이야. 이해가 안 된다. 고서점 주인도 살려 주고, 부상이 심하긴 했지만 너희 아버지와 홍 사부도 살려 줬잖아. 정황상 말이야. 그런데 왜 3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돌아가신 거지? 검선문 비급과 관련된 자들이 아니라 또 다른 자의 소행일까? 장 씨가 봤다는 그 육지 노인 말이야.”

도현도 그 점이 이상했다.

“일단 추적의 단서가 확실해진 3년 전 그자들 먼저 찾아보면 육지 노인의 정체도 보다 명확해지겠지. 관련이 있는지, 아니면 전혀 상관없는 제3의 인물인지.”

“검선문 비급을 고서점에 넘긴 사람은 죽었다면서. 어디서 검선문 비급이 흘러나왔는지 알 수가 있어?”

도현은 물을 마시며 황 사장이 했던 말을 마저 해 주었다.

-내게 검선문의 비급을 판 자는 사실 그 책만 판 게 아니라 여러 권의 도교 경전도 함께 팔았네. 같은 곳에서 나온 물건이라면서 말이야. 홍 사부에게 검선문의 비급을 판 것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나는 대학 교수들에게 그 도교 경전들을 팔았지. 날 위협한 년은 애초에 그런 건 묻지도 않고 비급의 행방만 확인해 갔지만. 아무튼 나는 물건을 매입하면서 그 출처에 대해서 꼼꼼히 확인해 둔다네. 어차피 정상적인 물건이 아닌 걸 알고 있고, 파는 그 녀석도 내가 과거에 도굴 쪽에 몸담았다는 걸 알기에 서슴없이 얘기해 주었지.

-검선문의 비급을 어디서 훔친 겁니까?

-안휘성 황산 서쪽으로 아직 개발이 안 된 험준한 산들이 여럿 있네. 그중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옥룡산이 존재하네. 오래된 도관들이 골짜기마다 숨어 있는 곳이지. 그중 등선궁이라는 도관에서 훔쳤다고 했어. 아마 날 위협하고 자네 부친과 홍 사부를 부상 입힌 자들은 그 도관에서 보낸 고수들이 맞을 게야.

-감사합니다, 황 사장님.

-고마울 것 없네. 자네를 사지로 끌고 가는 정보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자네가 간들 과연 그 무서운 자들을 상대할 수 있겠나? 총을 자르는 믿지 못할 고수들을?

-그건 그들을 찾아낸 뒤에 고민해 보겠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결과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자네도 범상치 않아 보이긴 하지만. 받게, 총을 자르는 자들을 상대하려면 그에 걸맞은 뭔가는 있어야지.

챙!

맑은 소리와 함께 서늘한 예기가 흘러나오는 칼 한 자루가 그의 손에 들렸다.

“그 거냐? 황 사장이 준 칼이?”

“응.”

생김새는 일본도와 비슷했다.

칼등이 있는 외날의 장검.

오래전 도굴을 하던 황 사장이 지하 깊숙이 꽂혀 있던 칼을 찾아내 칼집과 손잡이를 수선해 부적처럼 집 안에 모셔 뒀다고 했다.

무쇠를 자르는 전설 속 명검인지 직접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굵은 나무토막 정도는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잘라 내는 날카롭기가 그지없다는 검이었다.

황 사장은 여자 고수가 총구를 자를 수 있는 게 단순히 실력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가 들고 있던 검이 명검이 분명할 거라며, 검을 수련했다면 그 검으로 싸워 보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도현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야, 잠깐만 기다려 봐.”

용주는 담배를 비벼 끄고는 도현이 홍영을 만나러 간 틈에 사 온 검 한 자루를 꺼냈다.

“혹시나 해서 사 왔어. 너 검 사용한다고 해서. 자, 내리쳐 봐.”

용주가 사 온 검도 언뜻 보기엔 좋은 검 같았다. 날이 잘 섰고, 단단해 보였다.

도현은 황 사장에게 받은 검을 살짝 들더니 순간 집중하며 벼락처럼 내리그었다.

용주가 들고 있던 검이 두 조각이 났다.

“이런 젠장 할. 검 끝내주네. 도현아, 총구 잘라 낸 그년 무서워하지 마. 덤비면 그 검으로 박살을 내 버려!”

신이 난 용주가 크게 소리쳤지만 도현은 그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설마 쇠로 만든 검을 이렇게 쉽게 자를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보통 검이 아니야.”

도현은 황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검, 나무토막이나 자르는 검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알았나? 그 검 간장이야.

“예?”

-전설의 명검 말일세. 놀랐나? 실은 아니야. 나도 그 검의 이름은 모른다네. 연유도 모르고. 다만, 전설의 간장이나 막야 정도의 명검은 되지 싶어 내가 붙인 이름이지. 아무튼 내가 그동안 팔고 싶은 걸 간신히 참으며 평생 부적으로 삼아 집안에 모셔 두고 살던 물건일세.

도현은 얼떨떨한 시선으로 황 사장이 간장으로 이름 붙인 명검을 내려다봤다.

-나 곧 죽네. 그 검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오늘 자네가 찾아왔어. 내가 그리 양심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내 말 한마디에 그날 자네 부친이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고 하니 그걸로 해결 보세.

“황 사장님.”

-나 아까 오줌 쌌지? 모른 척해 줘서 고맙네. 사실 난감했거든. 검 잘 쓰게. 이제 자네 호신용 부적으로 삼아.

전화는 뚝 끊겼고, 도현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좋은 검을 싫어할 검사는 없었다.

더구나 쇠를 자른다는 전설 속 간장의 이름이 붙은 명검.

총구를 자른 여자 고수의 등장에 움츠러들었던 가슴이 활짝 펴졌고, 간장을 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당장이라도 그 여자 고수와 한판 벌이고 싶었다.

“도현아, 그 검 좀 치워라. 숨 막힌다.”

검과 일체가 된 듯 자세를 잡고 있는 도현의 모습에 압도당한 용주가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등선궁

황 사장에게 들었던 일을 홍영에게는 비밀로 부치고 도현은 용주와 안휘성으로 향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 도시 상해와 접해 있는 안휘성의 성도 합비를 거쳐 남부로 이동한 그들은 유명한 중국 관광특구인 황산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옥룡산에 도착했다.

옥룡산은 여러 개의 산을 합쳐 부르는 것으로 산등성이를 연결해 보면 용이 꿈틀거리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높고, 깊네. 어디서부터 찾아야지?”

배낭을 멘 용주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산자락 밑에 있는 마을 어귀에서 말했다.

50여 가구 정도 되는 작은 마을 뒤로 그들이 찾아야 할 등선궁이 있는 옥룡산의 일부가 천신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길이 험해서 못 들어가겠다는 택시에서 내려 자갈이 깔린 비포장길을 한참 걸은 끝에 도착한 마을은 발전하는 중국 경제와는 담을 쌓은 듯 옛집과 낡은 건물들투성이였다.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소란스럽지 않은 마을의 조용함은 뒤에 산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외지인의 방문이 흔치는 않지만 그래도 산을 구경하기 위해 오는 등산객들이 아예 없지는 않았는지, 등산복 차림을 하고 온 도현과 용주를 눈여겨보는 마을 주민들은 없어 보였다.

“도현아,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볼까?”

“글쎄.”

황 사장이 준 검을 길쭉한 원형의 통에 담아 배낭과 함께 어깨에 메고 있던 도현은 지도를 접어 주머니에 넣으며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물어서 간단히 등선궁의 위치를 파악하면 좋겠지만, 그러다 그들이 등선궁을 수소문하고 다닌다는 사실이 등선궁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면 곤란했다.

도관도 사람 사는 곳이니 필시 가까운 마을과 왕래가 있을 것이고, 그 마을이 이 고즈넉한 분위기 속의 마을이 아니라고는 장담을 못 하는 것이다.

“그냥 찾아볼까? 산속에서 잘 준비도 해 왔는데.”

용주도 말을 꺼내긴 했지만 내심 꺼림칙했는지 지나가는 마을 주민을 힐긋 쳐다보며 작게 말했다.

“그러는 게 좋겠어. 가자.”

산은 험했고, 위로 올라가는 길이 아예 없어서 암벽을 타고 위태롭게 기어 올라가야 할 때도 있었다.

“꽉 잡아!”

도현이 손에 힘을 주며 버티고 있는 사이 용주가 가까스로 위로 올라왔다.

“하아, 하아. 이런 제길. 미안하다, 도현아. 니 말대로 아래로 내려가서 골짜기를 넘어갈 걸 그랬어.”

“됐어. 무사히 올라왔잖아.”

암벽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며 도현이 대꾸했다.

멀리 산 밑으로 그들이 거쳐 왔던 마을이 보였다.

그는 뒤를 돌아봤다.

암벽 지대는 일부, 다시 깊은 수림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이어지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이 산을 다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곳이 아니면 그들은 다시 산을 내려와 옥룡산을 구성하는 다른 산과 계곡을 조사해야만 한다.

“도현아, 검선문 비급을 익히면 고수가 되는 걸까?”

땀을 식히며 물을 마시던 용주가 슬쩍 물었다.

“어쩌면.”

“그거 우리가 익히자. 넌 더 강해져서 좋고, 나도 힘 좀 쓰고.”

욕심 가득한 용주의 눈빛에 도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다 무릎 꿇리고 나서 당당하게 뺏어야지. 너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잖아. 자식들이 도둑맞은 비급이나 곱게 회수해 갔으면 몰라, 왜 네 아버지에게 그런 상처를 남기냐고. 그리고 만약 백 관장님이 그놈들 손에 정말 돌아가신 게 맞는다면, 그건 그냥 때려죽여야 되고.”

“용주야, 고맙다.”

“뭐가?”

“함께해 줘서.”

“친구 아니냐.”

시원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보며 도현은 가방을 메고 일어났다.

“그런데 한 가지만 부탁하자. 만약에 위험하면 넌 그냥 산 아래로 도망가.”

“무슨 소리야? 여기까지 와서. 위험하면 같이 도망가야지.”

“고집부리지 말고. 그러는 게 내 마음 편하게 해 주는 거야. 약속해라.”

“약속은 개뿔. 얼른 가자. 해 진다.”

도현이 더 말하기 전에 그는 서둘러 산 중턱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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